미시적 동물
- 작성일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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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내가 보았을 때 그 둘은 아주 예민한 신경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뇌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거의 매일같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도 어떨 때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들어, 죽은 사람처럼 잠만 자기도 했다. 이따금 엄마는 초췌한 얼굴로 내게 말하곤 했다. 네 아빠가 나를 병들게 했어, 네 아빠가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그러나 정작 아빠는 네 엄마가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었다고 했다. 아빠는 모든 괴로움을 술에 의지해 푸는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걸핏하면 술에 취해 자해를 하거나 자살하겠다며 가족을 협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이 상할 정도로 술을 퍼마시는 것 또한 자해의 일종이었다.
어쩌다가 둘이 만나게 된 걸까. 어쩌다가 그 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게 된 걸까. 지금은 이 지경이 되었지만, 그들도 서로 미친 듯 사랑했던 때가 있었겠지. 아니, 어쩌면 미친 듯이 사랑했기 때문에 저 지경이 되어 버린 걸지도 몰라. 아니, 저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사랑이 아닌데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걸지도 몰라. 나는 어떻게든 부모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 존재를 겨우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나와 달리 오빠는 이 모든 문제를 돈의 탓으로 돌렸다. 부모가 저 지경이 된 건 모두 돈 때문이라고, 돈이 없으면 서로를 미워하게 되고 자꾸만 싸우게 된다고, 자기는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언젠가 반드시 부자가 될 거라며 이를 갈았다. 심지어 자기는 돈만 벌 수 있다면 사람 죽이는 일만 빼고 뭐든 할 거라고도 했다. 오빠는 고등학생 때부터 돈을 벌겠다며 학교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한마디로 돈에 미친 놈이 된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그런 오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약 정말로 돈이 모든 관계를 망쳤다면 돈을 미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돈 따위는 꼴도 보기 싫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어쩌면 그건 오빠가 돈을 증오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을 좇느라 인생을 다 허비해 버리는 것. 그건 아마 자학인 동시에 무능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처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연락하지 않지만, 아마 오빠는 서른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리는 똑같은 피를 물려받았으니까.
나는 내가 부모로부터 어떤 유전자가 물려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때,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억지로 잠만 잘 때, 한번 입에 술을 대면 끝장을 보려고 할 때, 구역질이 날 때까지 음식을 목구멍으로 욱여넣을 때 특히나 그랬다. 그들처럼 나 또한 언제라도 망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리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더 무모하고 가학적인 일을 벌일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나 자신을 경계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들처럼 마구잡이로 분노를 표출하지 않기 위해 늘 마음을 다스렸고, 욕 같은 건 아예 입에 담지도 않았다. 몸이 한없이 늘어질 때면 억지로라도 일어나 몸을 움직이려고 했고, 우울감에 몰려올 때면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동네를 산책을 하거나 달리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폭식이나 폭음을 한 이후에는 더욱더 건강하게 챙겨 먹으려고 했다. 직접 채소를 굽거나 삶았고, 손수 도시락 싸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 한 번씩 깊은 우울감에 빠지거나 속수무책으로 망가져 버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노력했다는 거다. 나 자신을 바로 잡으려고,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으려고.
이걸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모가 물러준 유전자를 가지고도 부모처럼 살지 않는 것, 그렇게 부모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는 것. 이 지난한 투쟁은 대학을 졸업 후 부모와 연을 끊으면서 얼핏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차가 되었을 무렵, 불현듯 비극이 시작되었다. 완전한 무기력이 내 삶을 엄습했던 것이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몸을 움직여라.
운동하라.
독서하라.
명상하라.
규칙적으로 생활하라.
건강한 음식을 먹어라.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구태여 거창한 일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간단한 일조차 해내기 어려운 상태였으니까. 어떤 날에는 잠에서 깨어나 이불을 정리하는 일조차도 힘들었다. 세수를 하고 밥을 챙겨 먹는 일도, 옷을 입고 출근을 준비하는 일도,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매일 아침마다 택시를 타게 되었다. 솔직히 택시에서 내려 회사 안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졌는지. 한발, 한발, 발을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발걸음이 무겁다는 표현을 누가 처음 떠올린 건지 놀랍기만 했다. 상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직장 생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지각을 일삼는 건 물론이고, 일 처리도 엉망이었다. 자존감이 박살 났다. 날이 갈수록 능률이 떨어져 갔고, 나중에는 거래처에 메일을 보내거나 상사에게 업무 보고하는 간단한 일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휴일이 되면 나는 거의 죽은 사람처럼 지냈다.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잠깐 일어나 씻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떤 날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그렇게 있다 보면, 언젠가 하루 종일 잠만 자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잠든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역시 그들의 딸인 걸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그렇게 발버둥 쳐도 결국 내 몸에는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 명백한 사실이 내 숨을 조여 왔다.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를 하면 더 무기력해지는 건 아닐까, 그동안 출근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움직일 수 있었던 걸 아닐까, 고민을 했지만 어찌 되었든 더 이상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든지, 상담을 받든지, 어떻게 해서든 하루 빨리 회복을 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질적인 우울감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희망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 무렵, 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려고 상도동 쪽에 집을 알아보았는데, 내가 그쪽에 살았던 게 기억났다는 것이었다.
―아직 그 동네 살아?
―아니, 이사한 지 오래됐지.
―아, 동네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우리는 대학 시절에 교양수업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졸업 이후에는 연락을 자주 못 했지만, 그래도 한때 꽤나 가까이 지냈는데. 내가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현은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이삿짐을 싸다가 서류 뭉치에서 수업자료도 발견했다고 했다.
―와, 그런 유물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그러게 말이야.
나는 현에게 이제 곧 퇴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퇴사를 하고 나면 여유가 생길 것 같으니 그때 얼굴 한번 보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이 먼저 내게 제안했다.
―그럼 퇴사 축하 파티를 해야겠네. 말 나온 김에 당장 약속 잡자. 이게 또 나중에 만나자고 말만 하면 계속 못 만나게 된다니까. 너 언제 시간 되니?
사람을 만나러 돌아다닐 만큼 심적 여유가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현의 적극적인 태도에 못 이겨 얼떨결에 약속을 잡게 되었다.
며칠 후, 우리는 사당역 쪽에 있는 한 술집에서 만났다. 아직 퇴사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날 현은 퇴사를 축하한다며 내게 화분을 선물해 주었다. 새하얗게 꽃이 핀 식물이었다. 거기에선 아주 달콤한 향이 났다.
―조팝나무야.
―욕 같네.
―응, 퇴사에 어울리는 나무지.
나는 회사가 좆같아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웃어넘겼다. 그러자 현은 내게 술잔을 건네며 말을 이어 갔다.
―어휴, 회사 생활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지, 그거. 나는 하루도 못 하겠더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규칙적으로 사는 거 나랑 안 맞아. 내가 얼마 전에 사주를 봤는데, 나는 전문직으로 사는 게 더 잘 맞는대. 내 기술 살려서 하는 그런 거.
현은 작년까지 계약직으로 일했고, 현재는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뭘 배우고 있냐고 물었으나 정확히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냥 뭐, 이것저것. 내가 뭘 할 수 있나,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살펴보는 거지. 이러다가 늙어서 인생 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깔깔 웃었다.
―너 혹시 퇴사하고 여행 갈 생각 있니? 이럴 때 아니면 또 여행 가기 힘들 거 아니야. 이렇게 지내다가는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아.
오랜만에 만난 현은 어딘가 조금 변한 것 같았다. 표현이 조금 과격해졌다고나 할까. 망했다, 죽는다, 끝났다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유머로 사용했으니까. 그게 웃기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나는 자꾸만 현을 따라 웃게 되었다. 그러니까 현이 하는 말이 웃겨서라기보다, 현이 자꾸만 웃어서. 그렇게 웃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 웃긴 것처럼 느껴졌다. 우울할 때 억지로라도 웃으면 뇌가 착각을 한다는 소리를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날 나는 기진맥진하여 집에 돌아왔다. 원래 사람을 만나면 기운이 빠지는 타입이기도 했지만, 술을 많이 마신 탓도 있는 것 같았다. 현에게 받은 조팝나무는 창가 쪽 책장 위에 올려 두었다. 자칫 화분에서 물이 새어 나오면 책이 젖을 수도 있었지만, 빛이 잘 드는 곳이 그쪽뿐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걸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 지금껏 식물을 키우는 족족 죽였던 터라, 솔직히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말라죽은 적도 있었고,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은 적도 있었다. 분갈이를 잘못해 죽은 적도 있었고, 영문을 알 수 없이 갑자기 죽어 버린 적도 있었다. 몇 달이라도 안 죽이고 키우면 다행이겠지. 그렇게 나는 아직 죽지 않은 조팝나무를 두고서 작별할 마음부터 먹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얼마 후 화분을 살펴보니 흙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던 것이다. 흙을 새로 갈아 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통 손이 가지 않았다.
사실 퇴사 이후 내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잠시 쉬면서 치료를 받으려고 퇴사했던 것인데,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힘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자. 내일은 그 일 하나만이라도 하자. 거의 매일 결심했지만 도통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쏟아졌고, 자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식사도 할 수 없었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으며, 유튜브를 보거나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죽지 않기 위해 이따금 힘이 날 때마다 일어나 물을 마셨다. 한 모금, 한 모금.
그러던 어느 날, 가스 점검원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만약 그가 이른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또 하루 종일 잠만 잤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라도 일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잠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이제 막 일어난 얼굴로.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산뜻한 공기가 코안으로 들어왔다. 점검원은 인사를 건네며 집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초췌한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져 그의 눈을 피했다. 집안 꼴이 엉망인데 괜찮을까. 혹시 집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진 않을까. 그동안 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집에서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누군가 집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집 안 상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주방과 베란다를 살피며 가스 점검을 하는 동안, 나는 창가 쪽으로 다가가 슬며시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화분을 쳐버렸다. 화분은 옆으로 툭 쓰러졌고, 순식간에 흙이 쏟아져 책장이 엉망이 되었다. 가스 점검원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이따가 치우면 돼요.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흙도 새것으로 갈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곰팡이가 핀 지도 꽤 되었으니, 어차피 잘된 일이라고. 그러나 가스 점검원이 떠난 후에도 그것은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나도 내가 너무한 것 같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도통 그것을 치울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책장과 바닥에 떨어진 흙을 닦아 내면 되는데, 흙을 새로 구입해 화분에 채워 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조팝나무는 책장 위에 쓰러진 채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새하얀 꽃은 누렇게 말라붙어 떨어진 지 오래였고, 잎사귀마저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곧 죽을 것 같은데, 흙만 갈아 준다고 달라질까.
다음 날, 나는 힘을 내어 정신과에 갔다. 집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의사는 간단한 상담 후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산책을 하면서 햇빛을 많이 쐬고, 너무 늦게 잠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모두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꼭 조언에 따라 행동해 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집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나는 잎이 무성한 가로수를 따라 걸었다. 초여름이라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조금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났지만 그래도 참을 만했다. 거리는 산책 나온 사람들과 아이들로 거리는 활기를 띠었다. 그 사이 할머니 한 분이 개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개는 바깥 생활이 익숙한지, 아주 차분한 태도로 벤치 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개를 키워 볼까. 그럼 매일 산책을 시켜야 하니까, 싫든 좋든 밖으로 나오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자꾸 몸을 움직이다 보면 나도 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군다나 내가 어떤 인간이든 개는 나를 사랑해 줄 테니까, 그럼 결핍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도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단념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개를 키우는 건 너무도 이기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일찍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희미하게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동네에 무슨 일이 있나.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잠을 청하려고 찰나,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창가 쪽 책장 앞에서 서자마자, 그러니까 책장 위에 쓰러져 있는 화분을 보자마자 얼어버렸다. 조팝나무가 줄기를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 죽어‧‧‧.
그 소리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냉장고에서 물을 가져와 쓰러져 있는 조팝나무 위에 부었다. 물이 책장을 타고 줄줄 흘렀다. 흙으로 엉망이 되었던 책장 주변은 이제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쓰러진 조팝나무 위로 물을 조금씩 부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뿌리로 물을 흡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한 모금, 한 모금. 그것은 물을 흡수하면서 줄기와 뿌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인간이 잠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잎으로 된 얼굴에 앙상한 몸뚱이를 가진 괴물이라니, 이런 게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와 같은 반인반수도 아니고, 도대체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존재의 출현은 나는 당황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겁이 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날카로운 이빨이나 갈퀴가 없는 데다가 크기도 나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 아무리 그래봤자 식물이잖아. 저렇게 부드럽고 연약한 잎으로 나를 공격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팝나무가 기운을 차리는 동안, 사방에 흩어진 흙을 정리했다. 그리고 생기가 돌아오는 대로 분갈이를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만류한 건 조팝나무였다. 이렇게 된 김에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워 있는 게 이렇게 편한 줄은 지금껏 몰랐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접시를 가져와 그 위에 조팝나무를 눕혔다. 그러지 않으면 물을 줄 때마다 책장 아래로 물이 흘러내릴 테니까.
―고마워.
―고맙긴‧‧‧.
조팝나무는 내가 자신을 방치하고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원망을 들어도 모자란 상황인데, 어째서 그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
―그게 뭔데?
―원망 몰라? 막 미워하고 증오하는 거.
―그게 뭔지 모르겠네.
고개를 갸우뚱하는 걸 보니, 아니, 잎사귀를 움직이는 걸 보니, 조팝나무는 정말로 원망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조팝나무가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나는 이 일을 현에게 말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네가 선물한 조팝나무가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고 말을 한다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처럼 고개를 까딱이거나 물을 꼴깍꼴깍 마시기도 한다고.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이미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 그럼 현은 뭐라고 답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현에게 조팝나무를 보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 될 때 우리 집에 올래? 네가 선물해 준 조팝나무가 있잖아. 아무래도 네가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오, 잘 키우고 있니?
―아마도.
―알겠어. 나도 너네 집에 가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내가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응, 인간처럼 말도 하고 비명도 지르거든.
―뭐가?
―네가 선물해 준 조팝나무가.
그러자 현은 깔깔 웃었다. 너도 그런 우스갯소리를 할 줄 아냐면서, 역시나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현은 조만간 술을 사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현에게 조팝나무를 보여 줄 생각에 다소 들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 의문을 같이 파헤쳐 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설렜다. 내 안에 의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간만에 느껴 보는 동요였다.
그러나 상황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조팝나무는 한마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접시 위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왜 이렇게 해 놓은 거야?
―누워 있고 싶다고 해서.
현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현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얼마나 섬뜩한 상황일까. 자신이 선물한 화분을 뽑아다가 접시에 올려 두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네가 그걸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집까지 초대하다니. 나는 민망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애써 웃음을 터트렸다.
―웃기려고 그랬는데, 안 웃겼니?
―미친, 이게 웃길 리가 있냐.
우리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조팝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기라도 한 것처럼. 나중에는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현이 떠난 후, 나는 조팝나무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죽었어?
―아니, 부끄러워서 그랬어. 앞으로는 집에 아무나 들이지 마. 나는 너 말고 다른 사람하고는 말 안 할 거야.
―나 참,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놓고서.
그래도 나는 조팝나무가 죽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장마가 시작되자, 어김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기압이 낮은 데다가 습도까지 높아진 탓이었다.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줄곧 방바닥에 누워 지냈다. 더위에 뜨거워진 몸을 차가운 방바닥에 식히면서. 그리고 그렇게 누워 있는 건 조팝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물 좀 뿌려 줘, 아주 시원하게.
―나 지금 누워 있잖아.
―잠깐 일어나면 되잖아.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겠어.
―그래도 한번 일어나 봐.
조팝나무는 나를 귀찮게 했지만, 나를 움직이게끔 만들기도 했다. 수시로 시원한 물을 뿌려 줘야 했으니까. 흙에 뿌리를 내렸다면 수분을 머금고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저렇게 누워 있으니 금방 수분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수분이 조금이라도 부족해지면 무지막지하게 비명을 질러 대기 일쑤였다.
장마가 끝나자, 조팝나무는 이제 화분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그만 누워 있고 싶다고, 누워 있는 게 편하긴 한데 이렇게 계속 누워 있다가는 줄기에 힘이 빠질 것 같다고 했다. 나한테 계속 물을 가져오라고 하지를 않나, 분갈이를 해 달라고 하지 않나. 나를 막 부려 먹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악의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하기야 조팝나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조팝나무를 도와주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조팝나무는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라고 했다. 물을 잘 저장하기 위해서는 마사토와 부엽토를 섞어 주는 게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두 가지 흙을 주문했다.
―후회하지 않지?
―물론.
나는 한동안 접시 위에 누워 있었던 조팝나무를 손으로 들었다. 그것은 한 손으로도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아주 가벼웠다. 나는 그것을 화분에 잘 심었다. 손끝에 흙을 묻히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게 조팝나무가 다시 화분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늘 누워 있기만 했던 조팝나무가 똑바로 서 있다니, 혼자 힘으로도 저렇게 우뚝 서 있을 수 있다니. 이걸 대견하다고 해야 하나,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 또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내 손을 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말이다. 가끔 물을 주는 정도로도 충분히 잘 살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내 오산이었다. 화분에 안착한 이후에도 조팝나무의 요구는 끝나지 않았다. 물을 더 달라, 창문을 열어 달라, 음악을 틀어 달라, 자기와 대화를 나눠 달라 등등.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또 언제부턴가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화분을 들고 나가라고?
―여기는 햇볕이 잘 안 들어. 조금 더 강렬한 빛을 받고 싶은데 말이야. 빛이 없으니까 자꾸 축축 처지잖아. 이것 좀 봐. 나 늘어져 있는 거 안 보여?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으면서.
―나를 슬프게 하지 마.
결국 나는 조팝나무의 요구에 못 이겨, 하루에 한 번씩 화분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주변을 살피면서. 개나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은 있어도, 화분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다행히 이런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적응이 된 이후에는 어디든 조팝나무를 데리고 다녔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갈 때도, 빵을 사거나 마트에 갈 때도. 이따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조팝나무와 함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조팝나무는 점점 더 활기를 띠었다. 줄기에는 힘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잎은 날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졌다. 이따금 나는 윤기가 흐르는 잎사귀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져 보곤 했다. 잎사귀 하나하나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생기를 되찾은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팝나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현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워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자려고 누웠을 때 아침이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밝고 따스한 햇볕 아래서 눈을 뜨고 싶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잠자리에 누워 조팝나무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나도 사실 식물이었나 봐. 빛을 받으니까 좋더라고.
그러자 조팝나무는 까르르 웃더니, 장난치듯 말했다.
―나는 동물인데.
―나 없이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면서 무슨.
―아니야, 나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
조팝나무는 그렇게 말하며 잎사귀를 조금씩 움직였다. 마치 사람이 말할 때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처럼. 나는 그런 조팝나무가 귀여웠다.
*
나는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나서는 불현듯 더 늦기 전에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면 또 멀리 가기 힘들어질 테니까. 언젠가 현이 여행을 가자고 했던 말이 떠올라, 곧바로 현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가고 싶었던 곳이 있어.
―어딘데?
―후지산.
현은 오래전부터 후지산을 등반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한라산이나 백두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에베레스트도 아니고 왜 하필 후지산이었을까. 이유를 들어 보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한라산은 이미 등반했지. 백두산은 오지 같아서 조금 무섭고, 에베레스트에 가기에는 내가 전문 산악인 아니잖아.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가 보고 싶어.
후지산 등반이 가능한 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7월부터 9월까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후지산에 오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곧장 비행기 표와 숙소를 알아보았다. 조금 더 일찍 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최대한 경비를 아끼려다 보니 9월 첫째 주 비행기를 예약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내가 등산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해발 3,700미터가 넘는 산을. 막상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심지어 나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 본 적도 없는데. 아니, 한라산은커녕 동네 뒷산에도 올라 본 적이 없잖아.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등산을 해 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무렵, 산에 가고 싶어 했던 건 현뿐이 아니었다.
―나 산에 가고 싶어.
평소와 같이, 창가에서 햇살을 쐬던 조팝나무가 대뜸 내게 말했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이 산에 잠깐 올라갔다 오자는 뜻인 줄 알았다. 동네 뒷산이나 경치 좋은 곳에 올라가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쉬다 오면 좋을 테니까.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조팝나무는 꽤나 진지했다.
―너도 이제 다시 일을 하게 될 테니, 나도 나 살 궁리를 좀 해 보았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산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서 계속 이렇게 신세 지며 사는 것보다.
―신세라니, 전혀 신세 지고 있지 않은데.
며칠간 만류했지만, 조팝나무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어째서 조팝나무가 나를 떠나려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물도 주고 산책도 시켜 주고,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줬는데.
―그럼 이제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는 거야?
―아니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오면 되지.
그건 내가 산을 올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네가 보고 싶어질 때마다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조팝나무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 부탁이야.
이러나저러나 올해 나는 산에 오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결국 나는 조팝나무를 산에 심어 주기로 했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청계산을 선택했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가, 서울대공원과 가까워 언제나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산이었기에 물을 좋아하는 너에게는 딱 맞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 나는 너를 데리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잠이 덜 깬 상태라서 처음에는 온몸이 뻐근했지만, 그래도 목적을 가지고 계속 걷다 보니 점점 활기가 느껴졌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에 열이 올랐고, 산뜻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네가 찾는 곳이 나올 때까지 계속 올랐다.
―더 올라가?
―응, 아직 아니야.
―거참, 자기 발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가쁜 숨을 쉬며 말하자, 조팝나무는 그저 잎을 흔들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를 원망한 건가?
―뭐가?
―자기 발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면서, 하고 말하는 게.
―뭐야, 지금껏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그냥 가볍게 한 소리였는데. 조팝나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게 원망이냐고.
조팝나무는 그게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나는 당황하여 애써 말을 돌리려 했다.
―아니야. 아무 말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응, 알겠어.
그러나 정작 나는 그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원망이라니, 원망이라니. 지금껏 나는 너무 쉽게 무언가를 원망하진 않았는지. 원망하는 게 습관이 되진 않았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결국에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나 자신마저 원망했으니까. 나는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고요한 산속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조팝나무가 말했다.
―여기다, 나는 여기가 좋아.
나는 가방에서 모종삽을 꺼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흙이 축축한 상태였기 때문에 땅을 파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의 삽질만으로도 땅속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깊이 파헤쳐진 구덩이를 보면서 이별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이제는 정말로 인사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화분에서 조팝나무를 퍼내어 땅으로 옮겼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아주 조심히. 자칫 상처가 날 수 있으니 흙을 덮을 때는 모종삽 대신 손을 사용했다. 그렇게 조팝나무는 마지막으로 내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어때? 괜찮아?
―응, 포근해.
나는 아주 조금씩 구덩이에 흙을 메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흙을 덮으려는 순간, 조팝나무가 내게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마저 흙을 덮었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리듯 흙을 두드려 주었다. 비나 바람에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쉽게 뽑히지 않도록. 나는 조팝나무와 인사를 나눈 후, 빈 화분을 들고 산을 내려왔다.
*
산에서 내려온 후 나는 며칠간 앓아누웠다. 그렇게 며칠간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금세 기력을 잃어버렸다. 산책을 나가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조팝나무가 이제 내 곁에 없으니, 밖으로 나갈 의지가 잘 생기지 않았다. 산을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또 힘을 잃어버리게 되다니.
한편 현과 여행을 떠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거의 매일같이 상기했다. 이대로 여행에 갈 수 있을까. 후지산에 오를 수 있을까. 청계산을 오르고 나서도 며칠간 앓아누웠는데, 이런 내가 후지산에 오를 수 있을까. 그냥 지금이라도 가지 말자고 할까. 다음으로 미룰까. 그러나 후지산에 간다고 들떠 있던 현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을 갈지 말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변했다.
그 무렵 난데없이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언젠가 한 번은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돈에 미쳐 학교 밖으로 나돌아 다닐 때부터 말이다.
―나 돈 없어.
―직장 다닌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 그게 말이 되냐.
―나 지금 백수야.
―지랄하지 마.
―양아치냐? 동생 돈이나 뜯게.
―야, 너 돈 있잖아. 진짜로 금방 갚는다니까?
―없어.
―지금까지 모아 둔 게 한 푼도 없다고?
오빠는 나를 한심하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직장 생활을 하는데 어떻게 모아 둔 돈이 없냐면서, 어디에 돈을 썼냐며 따지고 들었다. 적반하장이었다.
―아니, 시발, 나한테 돈 맡겨 놨어? 내 돈 내가 썼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
―나도 상황이 급하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죽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부탁하는 건데, 네가 자꾸 거짓말하잖아. 월급을 받는데 왜 돈이 없어.
―거짓말? 너는 애초부터 태도가 글러 먹었어. 그게 돈 빌리는 새끼가 할 소리냐? 돈 있어도 주기 싫겠다.
―뭐라고?
―불쌍한 새끼.
그러자 오빠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내게 쌍욕을 퍼부었다. 나도 지지 않고 욕을 했다. 마치 엄마와 아빠를 재현하는 듯했다. 역시 우리는 그들의 자식이었다.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오빠라고 하나 있는 게, 이 따위라니.
―야, 됐다.
결국 오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몰랐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은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한참을 울었다. 누가 누구더러 한심하대, 돈이나 빌리러 다니는 주제에. 저러다가 언젠가 감방에 가는 건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어디 가서 객사하는 건 아닌지. 또 그렇게 내 속을 뒤집어 놓을까 봐 두려웠다. 어두운 미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매번 삶의 의지를 꺾어 놓다니.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가족에게선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잠이나 자고 싶었다. 죽은 사람처럼, 몇 시간이고 계속.
도무지 여행을 떠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럴 만한 힘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만 하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출국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행 가방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거대한 후지산의 이미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상태로는 그 산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현에게 겨우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여행 이틀 전에 약속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현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난치지 마.
―진짜야,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겠어. 괜히 갔다가 너한테 피해만 줄 것 같아.
그러자 현은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그럼 나랑 같이 가기만 해. 산에는 나 혼자 가도 되니까, 너는 숙소에 편하게 있어. 그럼 되잖아.
―아니, 못 할 것 같아. 비행기랑 숙소 값은 돌려받지 않을 테니까, 너라도 혼자서 가. 정말 미안해.
―너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물론, 나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건 분명 내가 잘못한 일이었고,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은 내게 화를 내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곧장 비행기와 숙소를 취소한 후, 환불받은 금액을 내게 보내왔다. 현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막상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니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나 자신이 싫었다. 일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대인관계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이렇게 여기저기 민폐만 끼치고 다니다니. 무기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흙더미에 절반쯤 파묻혀 사는 기분, 매일같이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는 이 기분을 말이다.
*
잠결에 새소리를 들었고, 나는 비가 그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흙탕물이 빠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고, 한동안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려놓은 채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발 한발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열어 보니, 비가 휩쓸고 간 자리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진흙으로 덮인 도로와 여기저기 부러진 나뭇가지들. 기울어진 전신주와 부서진 간판. 그리고 저 멀리 가로수 하나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주변으로 어린아이들이 몰려들었다가, 까르르 웃으며 이내 사라졌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네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동안 청계산 일대는 등산객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산사태로 흙이 무너져 버린 데다가, 빗물이 스며들어 지반이 약해진 탓이었다. 하는 수없이, 나는 그곳이 다시 개방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깨닫게 되었다. 네가 살아있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동시에 다시 한번 산을 오를 힘이 내게 생기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며칠 후, 나는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얼마만의 외출인지, 그렇게 화창한 날도 아니었는데도 세상이 너무 밝게 느껴졌다. 눈이 부셔 적응을 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버스를 타고 청계산 인근에 도착하자,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혼자서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 곳곳에는 아직까지도 태풍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고, 산사태로 흙이 흘러내려 통행이 금지된 구역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렇게 돌아가도 네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하염없이, 계속.
그렇게 계속 걷다가, 우연히 산길에서 찢어진 현수막 일부를 발견했다. 그것은 구겨진 채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발로 잘 펼쳐 보니, 거기에는 들개가 출몰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깊은 산 속에서 들개와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아주 고요했다. 그런데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여기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태풍이 모조리 쓸어가 버린 걸까.
위로 더 올라가 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현수막 하나가 또 있었다. 그것은 절반쯤 찢어진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아까 그 현수막이 여기에서 찢겨져 나온 거구나.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현수막을 손으로 들춰보았다. 거기에는 ‘야생화된’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조합해 보자면 ‘야생화된 들개’가 출몰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나는 현수막을 뒤로한 채 계속 걸어 올라갔다.
혼자서 산을 오르는 동안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날에 대한 기억, 원망과 후회, 현에 대한 생각, 나의 가족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생각. 나를 닮은 얼굴에 드리워진 수심과 주름, 언젠가 반드시 도래할 그들의 죽음과 앞으로 내가 후회할 일들. 그리고 보다 더 현실적인 생각들. 월세나 보험금과 같이, 당장 다음 달에 나가게 될 돈과 통장 잔고. 동시에 그 어느 곳에서도 이력서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다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만약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직장에 잘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머리통에 숨소리가 울렸다.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두 다리를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머리가 텅 비어, 산을 오르는 이유조차 잊어 갈 때쯤이었다. 그때 저 멀리, 산사태가 일어난 자리가 보였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와 뿌리가 잔뜩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그 끝에서 조팝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컸지만, 그건 분명 네가 맞았다. 너는 햇살을 받으며 거기 서 있었다. 그사이 자랐구나.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었던 거야. 그 순간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어 올라갔다. 흙이 무너져 있어 아주 가까이 다가가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너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데까지는 갈 수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무너진 흙더미 위로 뿌리가 드러나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은 어느새 아주 길게 자라 있었다. 쉽게 뿌리 뽑을 수 없을 만큼, 아니, 산사태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만큼. 지금껏 꼼짝도 하지 않는 줄 알았더니, 그저 흙에 파묻혀 있는 줄로만 알았더니, 계속 움직이고 있었구나.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알았더니, 위로 아래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언젠가 네가 내게 장난스럽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동물인데.
그때 어디에선가 새하얀 들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네 주변에 멈춰 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얼핏 너는 마치 그들과 한패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들개가 흥분하지 않도록, 그래서 내게 달려드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한발 한발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살며시 몸을 돌리니, 그제야 등 뒤로 아득하게 이어진 길이 보였다. 나 혼자 이만큼 먼 길을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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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 관리자
- 2025-06-01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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