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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잭 스윙

  • 작성일 2025-05-01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이십이만 더하기 이만 이천 곱하기 칠이니까 칠 이 십사에···. 

   부탁이니까 모두 제발 닥쳐 줬으면 해.

   언제나처럼 공장 안에서는 소음이 인두기 끝 납이 끓듯 지글지글 피어올랐고 카세트 플레이어에서는 천연덕스럽게 다음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눈꺼풀을 힘주어 구겼다 번쩍 편 다음 기판을 다시 지지기 시작했다. 콘덴서의 가느다란 다리 한쪽이 맥없이 기판을 빠져나와 건들건들 흔들렸다. 

   

   자고 일어나면 일요일이라는 사실처럼 위로가 되는 일은 드물다. 몇 시간 못 되어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처럼 절망적인 일은 몇 가지나 되는지를 새삼 헤아리게 되지만. 

   “엄마, 목욕 갈래?”

   “너나 갔다 와라.”

   “안 더워?”

   “가만있으면 시원하다.”

   마루에 누운 엄마 목소리는 미풍으로 틀어 둔 선풍기 소리에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나는 침대에 기댄 몸을 마루 쪽으로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나 공장 그냥 그만두면 안 돼?”

   “조용히 해라. 아빠 주무신다.”

   그 말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잖아. 나는 일부러 발을 세게 구르며 방을 나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스쳐 지나는 김에 슬쩍 눈치를 보니 엄마는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쓰고 있었다. 

   “조용히 하라고 했다.”

   “뭐? 왜? 그냥 걷는 거 가지고 난리야.”

   나는 꿍 소리 나게 화장실 문을 닫고 찬물을 틀었다. 왜 물을 끼얹으면 이 냄새가 더 진해지는 것 같을까, 플라스틱 기판과 금속을 함께 태울 때 나는 느끼하고 역한 냄새. 무심코 샤워기를 고쳐 쥐다가 엄지손가락의 덴 자국을 건드렸다. 손에서 빠져나간 샤워기가 허리 끊긴 뱀처럼 허공에서 몸을 비틀다 바닥 타일에 부딪치며 땡도 아니고 딱도 아닌 땍 소리를 냈다.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내가! 

   화장실 문 너머에서 엄마가 한 번 더 엄포를 놓았다. 왜 나한테 화를 내지? 아빠가 벌써 깰 리도 없고 설령 진짜 깬대도 그건 내가 아니라 엄마 탓일 텐데. 나는 샤워기를 거치대에 걸고 쏟아지는 찬물 아래에서 다친 엄지손가락을 한참 어루만졌다. 그러는 동안에 마루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빠가 깨지 않은 건 당연하고, 어쩌면 엄마도 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자기 시작한 건 IMF 직후부터였다.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나온 아빠는 가족들과 상의도 없이 상가 지하 자리를 계약하고 그 자리에 노래방을 차리기로 했다. 퇴직금 대신 주어진 퇴직 위로금이라는 애매한 돈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었기에 대출에 친척들에게서 꾼 돈에 우리 남매 대학 등록금 명목으로 모은 적금까지 동원해야 했다. 

   개업 직전까지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지만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아빠의 계획에는 변경이 없었다. 우리 솜씨로 치킨집을 차리겠나 반찬가게를 차리겠나, 청소나 열심히 하고 서비스 잘 주면 장사 되는 게 노래방 아니겠나. 아빠의 논리엔 빈틈이 없어 보였다. 하물며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이 더 유흥을 찾게 될 거라는 예측까지. 

   개업식 날 노래방 앞에서는 나보다 한두 살이나 더 먹었을까 싶은 내레이터 모델 둘이 배꼽티를 입고 〈맨발의 청춘〉에 맞춰 춤을 췄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노래방 상호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인 여행용 티슈를 나눠 주는 일에 온 가족이 동원됐다. 귀찮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건성건성 티슈를 돌리는 동안에 나는 내레이터 모델들을 흘끔흘끔 훔쳐보며 그 여자들을 존나 패는 상상을 했다. 내가 대학에 못 가는 건 아빠가 내 학비로 노래방을 차린 탓이었고, 개업을 홍보한답시고 내레이터 모델을 부를 돈이라면 대학에 일주일쯤은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한편으로는 그 여자들이 바로 내 미래라는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안방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엄마가 이기길 바라던, 말하자면 바로 그 얼마 전까지는 해 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일일 고용주 딸내미가 노골적으로 노려보건 말건, 배꼽을 내놓고 우! 아! 우! 아! 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여자들. 크게 틀어 놓은 노래 사이사이 물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도 다른 한 손에는 마이크를 쥐고 미친년처럼 웃는 얼굴로 해피투게더노래방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는 멘트를 날려야 하는. 

   언니들 고생하셨어요. 엄마가 요 앞에서 뼈해장국이라도 사 먹고 가라고 만원 더 넣었대요. 어둑해질 무렵 내가 엄마 아빠를 대신해 건넨 봉투를 두 여자는 양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춤추고 있을 땐 몰랐지만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둘 다 나보다 키가 한 뼘씩은 커서 내가 패긴커녕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쥐어 터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다음 주에 야자를 끊었다. 어차피 공부해도 대학에는 못 가니까. 더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 되지 않냐는 엄마의 말은 비아냥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리 잘하지도 못하던 공부를 핑계 삼지 말라는 말. 내 마음대로 야자를 끊었는데도 엄마 아빠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담임만 화를 냈다. 우리 반 학생 전원이 야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기강이 해이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럼 뭐 야자를 관둘 바엔 학교도 아예 관두란 말씀이신가요, 말대꾸를 하자 담임은 출석부로 내 머리통을 땅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그래도 그걸로 끝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네 시, 또는 다섯 시. 그러면 가게에 가서 대걸레질을 했다. 노래방은 쉬는 날 없이 오후 세 시에 열어 새벽 세 시에 닫았다. 엄마와 아빠가 여섯 시간씩 교대로 카운터를 봤고 둘 다 아빠에게는 비밀, 엄마에게는 비밀이라며 한두 시간쯤은 내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노래를 부르게 뒀다. 

   그러기를 몇 달 만에 더는 부르고 싶은 노래가 없어졌다. 유행가가 아무리 쉬지 않고 나와도 달라질 건 없었다. 질린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도 아마 드물 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기껏 씻고 나와서 갈 데가 천경수네 가게밖에 없다는 게 짜증 났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건 그곳뿐이었다. 가깝고, 만만하고, 에어컨을 상시 가동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노래방처럼 휴일이 없어서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내가 한 달에 25일을 일해도 일요일에는 반드시 쉬는 것처럼 매장 막내인 천경수는 일요일마다 반드시 근무를 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접객용 소파에 털썩 앉자 천경수의 상사나 선배일 안경 쓴 남자는 또 너냐는 듯 인사도 받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천경수는 잽싸게 커다란 컵에다 얼음 띄운 네스퀵을 담고 빨대까지 꽂아 나왔다. 

   “손님도 아닌데 음료수는 뭐 하러 내오냐?”

   “제가 왜 손님이 아니에요? 저도 휴대폰 개통하면 되잖아요.”

   안경남의 핀잔에 내가 대꾸하자 천경수는 난처한 듯 나와 안경남을 번갈아 보다가 얼빠진 웃음을 히, 하고 지어 보였다. 안경남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퍽이나, 할 거면 진작 했겠지. 게다가 말이지 공순이가 휴대폰은 어디 쓰게? 놀러 가면서 오늘 공장 못 나간다고 전화 때리게?”

   내가 씨발 날 때부터 공순이였냐? 공순이 돈은 돈도 아니냐? 게다가 말이지 2월부터 지금까지 공장 한 번도 빠진 적 없거든? 안경남한테 쏘아붙일 말이야 얼마든지 떠올랐지만 천경수 체면을 생각해 한 번은 참기로 마음먹었다. 천경수는 커피 테이블 너머에 놓인 철제 의자를 끌어 내 앞에 앉으며 미라 네가 참아, 하고 속삭였고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부아가 났다.

   “경수가 저 있으면 손님 더 잘 온다던데요?”

   말마따나 내가 천경수네 매장에 앉아 있으면 꼭 새 손님이 찾아왔다. 밖에서 보기에는 나도 휴대폰 개통을 상담하는 손님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리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울렸다. 이마와 뺨에 여드름이 잔뜩 난 여자애와 그 엄마로 추정되는 손님 한 쌍이 매장 안에 들어섰다. 안경남은 나에게 딱딱대던 태도를 싹 거두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 아이고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저 손님 네가 받아야 되는 거 아냐?”

   나는 괜스레 과장된 턱짓으로 방금 들어온 모녀를 가리키며 천경수를 보챘다. 새로 휴대폰을 개통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여드름쟁이 여자애인 모양이었고 안경남은 진열장 아래에서 모조 폴더폰을 꺼내 와르르 쏟으며 요즘은 신세대 여자분들 취향으로 디자인이 잘 나온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개통 손님 한 명당 뭐 얼마씩 더 받는다며.”

   “난 너 있잖아.”

   천경수 뒤에 놓인 얇은 모니터 안에서는 빨간 머리 임은경이 폴짝폴짝 뛰며 자기 나이 스무 살을 외치고 있었다. 그래, 너 스무 살. 나도 스무 살. 내 앞에 앉아 있는 얘도 스무 살. 근데 그게 뭐.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던지고 맞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임은경은 그야말로 토마토처럼 상큼해 보였지만 선전을 보는 내 기분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 그렇게 보면 좀 쑥스러운데.”

   초점을 조금 바꾸어 천경수를 보니 임은경의 머리색 못지않게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내가 자기 어깨 너머로 선전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수줍으면서도 기대에 찬 듯한 천경수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한층 더 너절해지는 것 같았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얘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 그 또한 한숨이 나오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나는 전혀 그런 힌트를 준 적이 없으나, 천경수는 나도 자기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 듯하다는 사실이었다. 

   천경수와 나는 열 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다가구 건물 2층인 우리 집 아래에 천경수네가 이사 왔을 때부터. 나와 천경수와 내 동생은 같은 국민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등하교를 나란히 했고 보험을 파는 천경수네 엄마가 일할 동안 천경수는 주로 우리 집에 있었다. 적어도 내가 여중에 가고 천경수가 남중에 갈 때까지는. 학교가 달라지면서 붙어 다니는 시간은 줄었지만 서로 서먹해지는 일은 없었다. 천경수는 영심이를 따라다니는 왕경태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고 틈만 나면 지금처럼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그게 싫었다. 네가 왕경태라면 나는 영심이잖아. 나는 영심이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제발 그렇게 보지 좀 말라고.

   나랑 네가 만나면 너랑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너는 고작 나랑 만나는 애가 되고 나도 겨우 너랑 만나는 애가 되니까. 

   “가야겠다.”

   “벌써? 다 마시고 가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 밖은 덥잖아. 에어컨 바람 좀 더 쐬다가 가.”

   나는 맹물에 탄 네스퀵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경수는 안절부절못하며 유리문 앞까지 나를 따라 나오다가 잘린 꼬리마냥 매장 안에 남아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천경수에게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날리고 홱 돌아섰다.

   피시방에나 갈까. 

   은행도 안 여는 일요일에 에어컨 바람을 실컷 쐴 수 있는 곳은 달리 더 떠오르지 않았다. 전주에도, 그 전주에도, 전달과 그 전달,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은 계절에도 그랬듯. 아빠가 출근하면 노래방에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을 터였지만 그리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별수 없이 단골 피시방으로 가 익숙한 자리에 앉았다. 

   몇 살이에여? 슴살이여. 오, 대학생? ^^재수생이여. 똑같은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해 봐서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타이핑할 수 있었다. 상대방은 재수생? ㅡㅡ;; 부모님 속 뒤집지 말고 공부나 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 채팅방을 나갔다. 빈 채팅방에서 혼자 뭐야 씨발 재수없ㅇ 까지 치다가 백스페이스키를 길게 눌렀다. 어느 쪽인가 하면 내가 공장을 때려치우고 공부를 하는 편이 오히려 부모님 속 뒤집는 일이 아닐까?

   다음 대화 상대는 좀 더 호의적이었다. 재수생이라는 거짓말을 하는 데까지는 똑같은 패턴. 취미나 좋아하는 가수처럼 뻔한 걸 묻던 상대는 곧 당연한 수순처럼 심심한데 우리 만날래여? 내가 그쪽으로 갈께, 라고 말했다. 남동구랬져? 난 구월동인데 님은?

   나는 내가 만든 방제 [인천]남녀무관 프리토크!!! 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럴까? 만나 볼까? 망설이는 사이 상대방은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세이클럽 채팅창을 내려놓고 하두리캠 프로그램을 켰다. 이전 사용자가 밝기 설정을 얼마나 올려놓았는지 화면에 잡힌 얼굴엔 눈과 입술 윤곽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미묘한 시차를 두고 나를 따라 챕스틱을 바르는 화면 속 인간을 나는 유심히 바라보다가 캠을 껐다. 화면 속 인간은 내내 조금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 속으로 물으며 대화창을 다시 불러왔다. 사진이든 번개든 딱히 겁나지 않았다. 사진 제끼고 그냥 만나여, 라고 할 수도 있었다. 무서운 건 진짜 재수생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내가 모른다는 점. 대학에 갈 생각이 있는 애들은, 내년에나 내후년쯤엔 원하는 대학에 다닐 수도 있는 애들은 뭘 입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를. 내가 하두리캠과 실랑이를 벌일 동안 대화 상대는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나는 쌓여 있는 대화 내용을 보다가 질려서 아예 세이클럽 창을 닫아 버렸다. 다음부턴 방제에다 춘천이나 군산이라고 써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두 시간 정도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하다가 일어났다. 게임이야 더 하려면 더 할 수도 있었지만 바로 옆자리에 줄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앉아서 〈바꿔〉까지 틀었기 때문에 굳이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 그렇지만 정말 미친 건 노래의 화자뿐인 게 아닐까? 에어컨 앞에 놓인 커다란 선풍기가 옆자리 남자의 담배 연기를 계속 내 눈에 불어 넣고 있었고 나는 매운 눈에서 눈물을 찔끔찔끔 짜 대며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이 노래가 내 인생의 복선인지 암시인지를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유행가라는 건 누구나의 인생에서나 주야장천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하지만 나는 왜 내 인생의 주인공이어야 하는가. 

   왜 하필 나는 이런 인생의 주인공인가.

   같은 스무 살인데 왜 누구는 TTL이고 누구는 공순이인가. 

   

   나는 씨발 어떻게 하루 종일 나인가. 

   

   통근 버스는 오전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십오 분 간격으로 우리 동네를 지나갔고 나는 주로 일곱 시 십오 분 버스를 탔다. 정류장은 천경수가 다니는 휴대폰 대리점과 정확히 마주 보는 자리에 있었다. 버스는 남동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두루 태웠기에 우리 동네 정류장에서 통근 버스를 타는 사람들과 나는 서로 다 알지 못했다. 저 사람은 우리 학교 선배 아니었나, 쟤도 나랑 반은 달랐지만 우리 학교 애 아니었나 싶은 사람들이 종종 있을 뿐. 공단 안에도 정류장은 여러 군데에 있었고 같은 정류장에서 탄 사람들이 모두 다른 정류장에 내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피차 그쪽은 어느 학교 다니던 아무개가 아니냐고 묻지 않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기가 이딴 데에서 이까짓 일 할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아직 떨치지 못한 나나 내 또래에겐 그랬다.

   예로부터 인천 사람들은 공부 못하는 애한테 긴말을 안 했다. 그래 뭐 사지만 멀쩡해라 남동공단 가면 되지, 이 한마디면 충분하니까. 졸업하고 진짜로 공단 통근 버스를 타게 된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상당히 불쾌한 문화였다. 진짜 머리 나빠서 공장에 들어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납땜도 머리가 달리면 못한다. 오히려 손발은 하나쯤 없어도 할 수 있지만. 대학 까짓거 뭐 가려면 갈 만큼은 공부한 사람들 공장에 쌔고 쌨다. 대학생을 데려다 놓고 내가 한 것처럼 예쁘게 땜질을 해 보라고 하면 하루도 못 버티고 울면서 뛰쳐나갈 거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이를테면 도요 언니 같은 사람. 결근하지 않는 이상 한 달 삼십 일인 달과 삼십일 일인 달 정도나 차이가 나지, 대체로 또이또이인 급여를 하루 종일 입으로 세고 앉은 도요 언니. 지난달 급여에서 하루 일당 정도가 플러스마이너스 될 거라는 어림도 잘 못할 만큼 머리가 나쁜 언니는 매시간 경신되는 시급을 새삼스레 처음부터 헤아리느라 바빴다. 조금 전에 계산한 셈에다 새로 한 시간 시급만 보태면 된다는 생각을 할 머리가 없는 거였다. 듣고 있자면 잠이 오기도 하고 때때로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는 습관이었지만, 암산은 의외로 거의 정확해 이 사람 사실은 바보가 아니라 천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긴 그렇게 끊임없이 계산을 하면서도 손으로 하는 작업에서 로스를 안 내는 걸 보면 머리가 영 나쁘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몰랐다. 남들보다 잘 돌아가는 머리가 따로 있고 평균에서 한참 달리는 머리도 따로 있을 뿐.

   나보다 한 살인가 두 살인가 위라던 언니는 다른 공장에서 1, 2년쯤 일하다 우리 공장으로 옮긴 케이스였다. 척 보기엔 많이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라 인접 업종 경력이 없었다면 우리 공장에 들어오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얼마나 잘할는지는 시켜 봐야 아는 거고, 겉만 봐서는 아무래도 둔하고 요령 없어 보이는 사람이니까. 내 옆 라인에 서는 언니는 손이 조금 느린 대신 로스 없이 깔끔한 땜질을 했다. 내가 이 공장에 한 달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언니의 지도 편달을 맡긴다던 작업반장이 얼마 안 있어 어이 안미라, 이도요 기판 한번 봐라, 하고 불러 구경을 시킬 정도였다.

   그렇다고 언니를 다시 보게 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이딴’ 곳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딴’ 취급을 받는 사람이 되기 싫었고, 적어도 내가 일하는 공장에 그딴 취급에 어울릴 만큼 뻔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듯 처음부터 공순이가 꿈이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다들 꿈이 있고 사정이 있고, 이도 저도 아니면 핑계라도 있었다. 그러나 도요 언니만은 이 기준에서도 예외였다. 언니는 만근을 찍고 특근비까지 껴야 백이십을 넘길까 말까 한 월급에 충분히 감사한 것처럼 보였고, 한여름에 300도 넘는 인두기를 돌리면서 기판에 먼지 탄다고 선풍기도 마음대로 못 틀게 하는 이 공장을 평생직장처럼 여기는 듯했다. 언니가 이 일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든 저항할 수 없는 뭔가에 체념해서 순응한 것이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언니의 그런 점은 볼 때마다 새삼스레 못마땅해지는 거였다. 같은 곳에서 일한다고 해서 도매금이 되기에, 뭐랄까, 나는 도요 언니가 좀 쪽팔리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변이 감지된 건 점심시간도 지나서였다. 공장 근처 월식집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면서 오후에도 도요 언니가 끊임없이 지껄이겠지, 그래도 너무 화내지 말자 마음의 각오를 할 무렵이었다. 그런데 오전에는 왜 신경이 하나도 안 쓰였지? 월요일이라 안 그래도 짜증이 나서 아예 안 들린 거였나?

   작업 안전 구호를 외치고 라인으로 돌아가 인두기 예열을 시작할 때야 정확히 뭐가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도요 언니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게 아니라 도요 언니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거였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우리 라인이라니, 언니가 우리 공장에 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니.”

   슬쩍 불러도 도요 언니는 대답이 없었다.

   “언니. 도요 언니.”

   이름이 불려서야 언니는 움찔,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안전 수칙대로 인두기를 거치대에 내려놓으면서였다.

   “오늘은 왜 시급 계산 안 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넘어가기엔 내 인내심이 너무 얄팍했다. 언니는 눈을 사방으로 굴리더니 앞쪽 벽을 가리켰다. 쥐 오줌이라도 묻어선지 누렇게 바랜 종잇장에 작업 중 잡담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코웃음이 났다. 지금껏 자기가 하루 종일 남의 정신 사납게 숫자 센 건 중요한 얘기고 그거 왜 안 하냐고 내가 묻는 건 잡담인가. 설령 내 머리채가 먼저 잡히더라도 도요 언니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별꼴이야 씨발 하고 소리 내서 말할까 말까 하던 찰나 언니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돈 다 모았거든. 이제 사고 싶은 거 살 수 있어.”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이 유흥을 찾게 될 거란 아빠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다들 어렵다 보니 술이 당길 거고, 형편이 어려워져 술은 집에서 먹더라도 노래는 노래방에 와서 부르게 되어 있으니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평일 새벽 한 시에도 가족 단위 손님이 와 코요태 노래와 송대관 노래를 번갈아 불렀고 애들이 많이 오니 마진이 높은 음료수도 잘 팔렸다. 그렇다고 방 열한 개짜리 노래방이 우리 가족을 하루아침에 떼부자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니었다. 대출 이자와 친척들에게 꾼 돈을 제때 갚으면서 네 식구 굶지 않을 생활비를 마련해 줄 뿐. 

   노래방 대걸레질을 하고 집에 가 보면 동생은 늘 티브이로 엠넷을 틀어 놓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보다 세 살 어린 이 애가 대학에 가게 될지 그럴 수 없을지를 재 보다가 괜히 동생 뒤통수를 때리곤 했다. 

   아! 이 미친. 미친? 미친? 미친 뭐, 더 지껄여 봐. 해 보라고 이 새끼야. 쉴 새 없이 쥐어박으며 구박하면 동생은 눈이 시뻘게지도록 나를 노려보았다. 여자라서 봐주는 줄 알아라 이 십··· 탱년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동생이 그런 식으로 나를 욕하는 게 좀 웃기고 귀엽게 느껴졌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씨발이라고 했다간 더 맞을까 봐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지기는 싫어서 어쨌든 년으로 끝내는 오기가. 동시에 내 동생이 이런 꼴통이라 결국은 대학에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다행으로도 불행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새끼가 이런 꼴통인데도 결국 대학에 간다면 그건 내게 확실한 불행일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얘가 만약 대학에 간다면 무슨 돈으로 가는 걸까?

   자기가 야간 카운터를 보는 날이 아니면 엄마는 이따금 혀를 쯧, 쯧 차 가면서 식탁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빠가 퇴직할 무렵, 가계부 위에 팔꿈치를 괴고 기도하듯 손을 모은 채 흐느끼던 때와 비교하면 형편이 참 폈구나 싶은 모습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디 내놓든 남부끄럽잖게 꼴통이었던 내 동생도 겨울부터 전 과목 보습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성적이 조금씩 오르는 눈치였다. 그렇구나, 우리 집도 차츰차츰 나아지고는 있는 거지. 그런데 그건 누구 덕이야?

   나는 내 월급에서 이십만 원씩을 내 용돈으로 남기고 모두 엄마에게 주고 있었다. 그게 여태껏 먹여 주고 키워 준 은혜에 합당한 도리라고 생각했을 뿐, 생활비 조금 떼고 나머지 잘 모아 시집갈 때 주겠단 말을 전적으로 믿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주려거든 좀 더 빨리, 이제 우리 집도 빚이 얼추 정리됐으니까 한 일 년 준비해서 대학생 한번 되어 보라며 돌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는 동생의 순번이 빨리 돌아올 것 같았다. 내가 대학생이 될 타이밍은 이미 한 번 지나갔으니까. 이전보다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까진 세상에 보기 드문 꼴통인 내 동생이 가까스로 대학생이 된다면, 걔 등록금은 내가 손등 지져 가며 번 돈으로 치르게 될 거란 얘기였다. 

   그건 남녀 차별 아닌가?

   우리는 아들딸 차별 없어, 머리 좋은 놈은 대학 가고 아닌 놈은 아닌 거야.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박정희 때 나왔다 이거야. 누군 여자라 안 되고 누군 남자라 되고, 이런 거 우리 집엔 전연 없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아빠가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 했고, 부모님이 엄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동생과 나를 눈에 보이도록 다르게 대우한다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 사정은 누가 봐도 살림 밑천인 장녀가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남동생이 대학 갈 공부를 하는 구도인데, 그게 여자는 고등학교 보내기도 아까워했다는 육칠십 년대 얘기랑 뭐가 그렇게 다르지. 지금은 이천 연도인데. 단순히 시간이 흐른 것뿐 아니라 무려 새천년이 시작되었는데. 그냥 내가 운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야 하나? 하필 우리 집 형편이 꺾일 때 내가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라고? 만약 내가 오빠고 내 동생이 여자애였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마찬가지였을까?

   그렇다고 멋대로 공장을 그만두고 앞마당에라도 드러누워 나부터 대학에 보내 달라고 졸라 댈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공장에 다니는 게 싫은 거지 돈을 버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좆같고 하기 싫어도 돈이나마 버니까 엄마 아빠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거라고 나는 믿었다. 돈, 돈, 돈, 그놈의 돈, 내가 직접 벌 것도 없이 진작에 있었으면 좋았을 돈. 대학 등록금은 고사하고 천경수네 가게에서 안경남한테 통박이나 먹으면서도 휴대폰 한 대 개통할 엄두도 안 나는 내 돈. 

   첫 월급날 나는 만 원짜리 스무 장을 빼고 봉투째 고스란히 엄마에게 건네고 마당에 나와서 울었다. 그 꼴을 또 마침 퇴근하던 천경수가 봤다. 천경수는 십 년간 내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몹시 당황했다. 미라야, 왜 울어. 어? 무슨 일 있었어? 나도 왜 눈물이 나는지 정확히는 몰랐기에 설명하기가 짜증 났다. 천경수가 계속 귀찮게 묻고 내가 내키는 대로 대답하는 스무고개 식으로 이유를 밝혀 볼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누가 괴롭혀? 아니. 일이 너무 힘들어? 그건 맞는데 그것 때문에 우는 건 아냐. 돈이 너무 아까워? ··· 그건 아닌 것 같아. 

   마침내 다다른 결론은 복잡하면서도 초라했다. 공장에서 받은 급여 봉투를 집에서 여는 순간 지난 한 달 공장에서 보낸 이백몇 시간이 손에 쥘 수 있는 종이 몇 장으로 일축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걸 엄마한테 폼나게 전부 주지도 못하고 스무 장을 헤아려 내 몫으로 남겨 두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을 만큼 치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 스무 장의 만 원짜리가 내게 그렇게도 소중한 게 너무나도 열받고 한심했는데, 한심해도 어쩔 수 없도록 그 돈을 가진 게 기뻤다. 

   끝끝내 천경수에게는 내가 왜 우는지를 다 얘기해 주지 않았고 대신에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샀다. 천경수는 500cc 한 잔에도 금세 취해 호기롭게 떠들었다. 미라야 내 이름에 천경 들어가는 거 알지, 난 있잖아 돈을 천경 원 벌 거야. 나는 취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천경수가 그러는 게 웃겨서 막 웃었다. 

   천경이 진짜 있는 숫자냐? 

   있겠지 아마? 천경수는 멋쩍어하며 나를 따라 웃었다. 그래 그 돈 벌어서 뭐 하게? 어따 쓰게? 솔직히 정주영에게도 없을 돈을 천경수가 벌 재주가 있겠냐는 게 내 본심이었지만, 그 돈을 어떻게 벌 거냐고는 묻지 않은 게 내 최소한의 예의였다. 천경수는 내가 왜 그걸 모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다 쓸 거냐니, 당연히··· 내가 돈이 많아야 미라 네가···. 

   됐다. 그만 말해라. 

   천경수의 말을 끊은 건 일단 고작 맥주 한 잔에 취한 걔한테서 취중 고백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말끝마다 돈, 돈거리는 게 질려서이기도 했다. 실컷 가져 본 적도 없는 게 질린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지만 정말이지 돈 얘기라면 그 이상은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도요 언니가 사고 싶어 한 물건이 뭐였는지는 싱거울 만큼 금세 밝혀졌다. 더 이상 인간 급여 계산기 노릇을 하지 않게 된 언니가 이제는 그 물건의 프로필을 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엘지가 국내 최초로 모터 제어 IC 만든 거 알아?”

   “아니.”

   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기판에 입김을 후 불어넣은 후 조용히 되물었다.

   “IC가 뭔데?”

   도요 언니는 뭐라 혼자 중얼중얼거리는가 싶더니 당당하게 대꾸했다.

   “나도 몰라.”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게 기판인데 IC가 뭔지 모르긴 뭘 몰라. 나는 속으로만 비웃고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도요 언니가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하프리가 몇 탄 출시되었는지, 올 초에 새로 나온 티브이 선전 모델 두 명이 〈여고괴담〉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걸 내가 알고 있는지, 아하프리 미니 컴포넌트는 무선전화기처럼 충전을 하면서도 리모트 컨트롤러를 이용해 모든 기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든지. 

   “혹시 지난번에 이정현 노래 튼 거 언니야?”

   “아니.”

   어쩐지 짚이는 데가 있어 일부러 고개까지 돌려 쳐다보며 말하니 도요 언니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 테크노 안 좋아해.”

   거의 뭐 어떻게 내가 그따위 걸 틀었다고 착각할 수 있냐는 듯 억울한 표정이었다. 아님 말고. 조금 지나자 언니는 다시 자기가 사려는 아하프리 카세트 플레이어의 상세 규격과 특징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지껄인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급여 계산 병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따금 내 반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약간 귀찮았고, 나로서는 놀랍게도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언니의 수다는 특히 점심시간 직후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느라 잠이 솔솔 올 무렵에 요긴했다. 아하프리 투아이 RV 판과 FV 판의 차이를 아느냐며 채근해 오는 목소리. 뭔데, 뭐가 다른데. 대충 대꾸하니 언니는 뭐라 뭐라 한참 설명을 했지만 내게는 두 기기가 무려 이십일만 원이나 차이 난다는 부분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는 둘 중에 뭐 살 건데? 당연히 RV지. 언니는 내가 관심을 보이는 게 몹시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게 얼마라고? 사십만 구천 원. 

   “사십만 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묻자 공장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작업반장이 어흠 크흠 헛기침을 했고 작업 분위기는 곧 수습되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잠이 확 달아난 참이었다. 사십만 원이면 우리 월급 삼 분지 일 아냐. 언제 그런 돈을 모았지? 언니는 월급을 집에 다 안 갖다주나? 혹시 집이 좀 사나? 아니, 잘 사는 집 딸내미가 이런 데 와서 일할 이유는 없지. 도요 언니는 전에 없이 의기양양해 보였고 나는 처음으로 도요 언니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나로선 언감생심 엄두를 못 낼 물건을 산다는 자랑이라는 게 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충격도 그리 오래는 가지 않았다. 언니가 그야말로 고장 난 음향기처럼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게 또 금세 질렸기 때문이다. 다행한 점은 급여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도요 언니가 곧 그 물건을 살 것이고, 그러면 레퍼토리가 또 바뀔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급여 계산 염불이 시작되지만 않으면 불평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언니가 티코나 마티즈, 혹은 그보다 큰 걸 다음 목표로 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것들은 대충 잡아도 미니 컴포넌트 값보다 열 배는 비쌀 테니까. 

   

   해는 어느덧 야간 특근이 끝나도 아주 기울지 않을 만큼 길어져 있었다. 그건 공장 안에서 체감하는 더위가 절정에 달했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탈의실에 딸린 샤워헤드 두 개짜리 샤워실이 미어터졌고 나도 눈치껏 땀이나 좀 헹구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비누칠을 한 걸로 만족해야 했다. 

   껄쩍지근한 기분으로 옷을 갈아입고 통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도요 언니를 봤다. 언제 나왔지? 탈의실에서 못 본 것 같은데 작업복은 언제 갈아입었지. 설마 안 씻었나? 으, 안 찝찝한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도요 언니가 날아올랐다.

   공장 앞은 공단 지대 대부분이 그렇듯 평지였고 순간적으로 도요 언니가 날고 있다 믿은 건 물론 내 눈의 착각이었다. 언니는 날고 있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거였다. 언니가 한쪽 발로 가볍게 지면을 차올리는 순간 낡고 통 넓은 청바지가 언니 몸의 움직임을 따라 휘날렸고, 그러자 공장 건물들 사이 멀리 보이는 한 뼘짜리 바다가 펄럭 펼쳐지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어 언니는 뛰어오른 채 뒤로 돌며 양발로 동시에 땅을 디뎠다. 펼쳐진 팔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마치 나는 법을 아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모든 움직임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머리는 알았지만 눈은 잔상으로 남은 긴 동선을 아주 천천히 곱씹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니!”

   헤드폰을 쓰고 있는 언니는 내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나에게만 특별히 선심 쓰듯 만져 보게 했던 바로 그 헤드폰이었다. 지난 며칠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떠들어 댄 카세트 플레이어의 구성품. 언니는 이것 때문에 월급날을 그토록 기다렸구나. 이렇게 춤출 수 있어서.

   “도요 언니!”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며 거의 호통치듯 언니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언니는 나를 돌아보았다. 가까이 서니 언니의 헤드폰에서 흐릿한 스케치처럼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리듬이 낯설지 않았다. 춤추는 도요 언니를 멀리에서 발견한 바로 그 순간부터 음악은 이미 내 눈에 보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묻자 언니는 그제서야 헤드폰을 벗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는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듯 겁먹은 기색과 왜 뻔한 걸 묻냐는 듯 어리둥절한 기색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뒤늦게 의식한 것이었지만 주변에는 나 말고도 구경꾼이 몇 있었고 그 사람들도 내가 언니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나는 다만 마음이 급할 뿐이었다. 언니가 방금 뭘 한 건지 정말 알고 싶었고, 아주 짤막하게만 맛본 뭔지 모를 그것에 마치 남은 내 인생 전부라도 걸린 것처럼 긴박한 심정이었으며, 별 의미도 없는 구경꾼들에게 나와 도요 언니의 사이를 일일이 해명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언니의 대답은 간결했다.

   “뉴 잭 스윙.”

   

   나중에 내가 언니에게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게 부끄럽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도 언니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게 그건 발가벗고 다니는 게 창피하지 않았냐는 말과 다를 것 없는 질문이었기에 천진하다 못해 백치 같은 언니의 반응은 또 새롭게 충격적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는 거야? 평소엔 잘만 주절대더니. 

   언니한테는 그게 너무 당연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거야?

   그래서 뉴 잭 스윙, 그게 뭔데. 퇴근하자마자 동생을 밀쳐 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뒤졌다. 알앤비 힙합의 한 갈래···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롤랜드 TR 808··· 사전적으로 설명해 둔 글로는 뉴 잭 스윙이 뭔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힙합 카페에 가입해 뉴 잭 스윙이 뭐냐, 기왕이면 추천곡도 좀 써 달라 글을 남기자 한참 만에 답글이 달렸다. 

   말 그대로 새롭다=뉴, 소년=잭, 스윙=당김음(이건 아시죠?) 리듬을 활용한 알앤비 힙합 장르죠. 여자 버전으론 뉴 질 스윙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잭&질이 갑남을녀 같은 표현이거든요. S.E.S 노래 중에도 도입부에서 신화 에릭이 “We open up the new chapter of funky New Jill Swing(우리가 뉴 질 스윙의 새 장을 열 것이다)”라고 랩을 하는 곡이 있죠. 알앤비 힙합이 좋다면 좀 더 폭넓게 들어 보세요. 뉴 잭 스윙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 좀 지났죠.

   처음부터 끝까지 큰 영양가도 없이 지 잘난 척만 하는 글이네. 한 글자 한 글자가 빠짐없이 재수 없었지만 마지막 한 마디는 그중에서도 백미였다. 누구 맘대로 유행이 지났대. 나한테는 이제 시작인데. 나는 모니터에 대고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컴퓨터를 껐다. 동생이 게임 저장을 아직 못했는데 왜 마음대로 끄냐며 비명을 질렀다. 

   출근길이 기대되는 건 공장에 다닌 지 거의 반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평소보다 15분 일찍 통근버스를 탔고 정류장에서 공장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기다린 지 10분, 도요 언니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언니, 하고 부르자 언니는 사물함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랐는지 악 하고 소스라쳤다. 

   “뉴 잭 스윙이 뭐야?”

   언니는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어깨너비 보폭으로 양옆을 느리게 오가며 엇박으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손뼉 사이사이 무릎을 굽히며 쿵—짝 쿵-쿵 짝 박자를 맞추던 언니는 갑자기 뚝 멈춰 섰다.

   “이게 뉴 잭 스윙이야.”

   절대 충분한 설명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족한 설명도 아닌 것 같았다. 아, 그게 뉴 잭 스윙이구나. 근데 그게 왜 뉴 잭 스윙인데. 나는 언니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기를 기다리다 언니 뒤를 졸졸 따라 작업장으로 나갔다. 

   습관대로 언니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종알대기 시작했다. 이번 주제는 언니가 아는 전설적인 뉴 잭 스윙 곡의 제목들이었고 그건 나도 마침 알고 싶던 분야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내게도 흥미로울 거란 짐작은 착각이었음이 곧 밝혀졌다. 생전 처음 듣는 가수의 영어로 된 노래 제목을 다 외울 재주가 내게 없는 건 둘째 치고, 상식적으로 노래가 아니라 노래 제목만 줄창 듣는 일이 즐거울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와중에도 나는 인두기 수십 개가 불규칙적으로 짜내는 투명한 소음 너머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며 뭔가를 차츰 깨달아 가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난 뉴 잭 스윙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뉴 잭 스윙을 하고 싶은 거라는 사실. 그게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점심시간에 나는 언니를 가까스로 붙잡아 세웠다. 도요 언니는 손이 느린 대신 발이 가벼워선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공장 문을 나서고 있었고 그런 언니를 따라잡으려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했다.

   “언니. 나 춤 가르쳐 줘.”

   “지금?” 

   언니는 난처한 듯 눈을 사방으로 굴렸다. 

   “밥 먹어야 되는데.”

   누가 지금 가르쳐 달랬나. 밥은 나도 먹어야 하는데. 가만 보니 도요 언니는 머리가 나쁘다기보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인 듯했다. 아닌가, 역시 머리는 나쁜가. 내가 전보다 언니를 멋있게 보게 되어서 정도 이상으로 후한 평가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나는 언니를 우리 집 노래방으로 초대했다. 언니는 내 초대가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아 보였지만 아무튼 알았다고는 했다. 미친년처럼 기뻤다 슬펐다 기분이 째졌다 처졌다 하는 쪽은 나였다. 모처럼 쉬는 날 굳이 나를 만나려고 다른 동네까지 오는 게 언니에게 기껍고 내키는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풀이 죽었고, 그래서 언니가 좋든 싫든 나도 언니에게 춤을 배우면 언니처럼 뉴 잭 스윙 할 수 있다는 걸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신이 났다.

   일요일 오전에 언니가 우리 동네에 왔다. 나는 약속 시간 삼십 분 전부터 버스 정류장에 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어딘가 좀 모자란 게 분명한 도요 언니가 버스를 잘못 타거나 정류장을 착각해 엉뚱한 곳에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언니는 약속 시간 오 분 전 별 탈 없이 도착했고 나는 언니를 노래방에 데려갔다.

   “여기가 정말 너희 집 가게야?”

   불을 켜지 않은 지하라 한낮인데도 어두운 노래방에 들어서면서 언니는 계단이 무서운 듯 한 발짝씩 게걸음으로 내려왔다. 혹시 너무 후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눈치를 살피며 가장 큰 방으로 안내하자 언니가 또 말했다. 

   “미라 좋겠다.”

   그 말 한마디에 나도 우리 집 노래방이 조금 좋아졌다. 이제는 조금 좋다는 건 그 전엔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는 뜻. 처음으로 노래방이 내 것, 그중에서도 좋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전에도 나는 노래방을 내 것처럼 마음대로 쓰곤 했지만 말하자면 그건 내 등록금이 됐어야 할 돈을 깔고 앉은 그 개 같은 것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아 내려는 표독에 가까웠다. 왜 난 이걸 내 것처럼 썼을까. 원래 내 것인데. 도요 언니네 거 아니고, 다른 누구네 거 아니고, 우리 집 건데. 그럼 그게 곧 내 건데.

   단순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던 사실이 마침내 명쾌하게 이해되는 건 이상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게 언니가 뉴 잭 스윙인 이유일까. 도요 언니는 말로 누굴 비꼬거나 은근한 가시를 숨긴 말을 못 알아듣는 상대를 보며 고소해할 만한 사람이 못 됐다. 그래서 나도 언니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계산하려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언니는 뉴 잭 스윙의 기초 스텝 몇 가지를 내게 가르쳐 줬다. 옆으로 툭툭 움직이면서 리듬을 타는 법, 양 무릎을 번갈아 높이 들며 앞뒤로 움직이는 범, 한쪽 발을 바닥에 끌어 다른 발에 붙이며 팔을 쓰는 법 따위. 

   “이것만 알아도 하루 종일 출 수 있어.”

   재미는 있었지만 언니의 표정만으로는 내가 잘 따라가고 있는 건지를 알 수 없었다. 실룩실룩 스텝을 밟는 중간중간 나는 방문 가운데 낀 작고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했고, 뉴 잭 스윙이 뭔지는 아직 잘 몰라도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만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를 가르치기만 하고 자기는 재미를 못 봐서 언니가 지루해할까 봐 노래방 기계를 켜 줬다. 언니가 진짜로 기분 내킬 때는 표정에 어떤 미묘한 변화가 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세 시간을 내리 놀았더니 배가 고팠다. 중간에 엄마가 출근했고 나는 언니를 데리고 노래방을 나왔다. 천경수네 가게에 가서 천경수에게 밥을 사 내라고 뻔뻔하게 졸랐다. 천경수의 점심시간은 오후 두 시부터 세 시까지였다. 기사식당에서 냉동 삼겹살과 된장찌개를 먹었다. 매장 복귀 직전 천경수는 언니에게 명함을 건넸다. 휴대폰 개통 필요하시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미라 친구시니까 잘해드릴게요. 나는 내 앞에선 쪽도 못 쓰면서 내 친구 앞이라고 꽤나 사회인인 척 폼을 잡는 천경수가 웃겨서 콧방귀를 뀌었다. 친구, 그러고 보니 도요 언니랑 나는 친구 사이인가. 언니는 명함을 길게 보지 않고 뒷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천경수를 돌려보내고 나와 언니는 우리 집에 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샀던 후진 카세트 플레이어에 언니가 갖고 다니는 테이프를 넣고 뉴 잭 스윙을 들었다. 안방에서 자는 아빠 눈치에 아주 작은 소리로밖에 틀 수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히 좋았다.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거의···.

   

   처음으로 내가 나인 게 조금도 화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출근하는 게 화나지 않았고 돈이 없는 게 화나지 않았고 공장에 다니는 자체가 화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에게 화나지 않았고 동생에게, 심지어 그 만만한 꼴통 새끼에게도 화가 안 났다. 

   그 뒤 몇 주는 일요일마다 언니와 만나 노래방에서 놀고 뉴 잭 스윙을 들었다. 카세트 플레이어 동시녹음 기능을 이용해 언니가 갖고 다니는 믹스 테이프를 복사했다. 언니처럼 돈을 모아 아하프리를 살 인내심은 아무래도 없어서 대우 요요를 샀다. 본사가 부도나서 저렴한 대신 A/S가 안 되니 조심하란 말을 흘려들으며 기분 좋게 값을 치렀다. 늘 지나다니며 H.O.T, 젝스키스, 신화 포스터만 구경했지 들어가 볼 생각까진 안 해 본 음반 가게에 처음 발을 들였다. 헤드폰을 낀 내가 실룩실룩 엉덩이를 흔들자 언니가 웃었다. 

   나 지금 뉴 잭 스윙 한 것 같은데.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쯤 되자 내게도 뉴 잭 스윙에 대한 그럴듯한 의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 뉴 잭 스윙은 미국에서 창시됐지만 한국에서 완성됐다. 몬텔 조던이나 T.L.C의 쫀득하고 소울풀한 목소리도 좋지만 뉴 잭 스윙의 산뜻한 구성에는 가볍고 탄력 있는 미성이 어울리니까. 안 그래? 그래. 어느덧 떠드는 쪽은 나, 맞장구를 치는 쪽은 언니가 되어 있었다. 나는 테크노가 뉴 잭 스윙을 죽여 버렸다고 생각해. 맞아? 맞아! 내가 테크노 얘기를 꺼내자 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호응을 보여 주었다. 자기가 마침 하던 생각을 내가 말해 줬다는 듯이. 이런 사람에게 이정현 노래 언니가 틀었냐고 했으니 억울할 만도 했겠네, 나는 뒤늦게야 언니를 모함한 걸 뉘우쳤다. 특근 시간에는 작업반장에게 사정사정해 언니가 만든 뉴 잭 스윙 믹스 테이프를 틀었다. 누가 이딴 거 말고 김현정 노래나 틀어 보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군말은 일절 없었다. 

   하긴 어느 누가 뉴 잭 스윙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뉴 잭 스윙의 멜로디와 리듬에는 아무리 슬픈 가사를 심어도 한이 실리지 않았다. 다른 많은 유행가들이 그렇듯 뉴 잭 스윙 가사 역시 나, 그리고 너, 둘 사이의 사랑을 주제 삼은 게 다수였지만 제아무리 느끼하고 재수 없는 가사도 뉴 잭 스윙이라면 부담 없이 소화가 됐다. 쫄깃한 듯 질척대지 않는 스윙 리듬 때문에 무거워지려야 무거워질 수가 없었고, 100bpm에서 120bpm 사이 느긋한 속도감은 어떤 심각하고 뾰족한 소리라도 유연하게 감싸안았다. 

   하지만 뉴 잭 스윙이 왜 좋은지를 완전히 해명하는 건 불가능했다. 말로 하는 설명은 이미 좋아진 후에 더듬더듬 찾아낸 테두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이 좋은 거다, 이게 최종의 끝장의 완전한 결론이다 생각해 놓곤 돌아서서 그러니까, 좋으니까 이유를 더 알고 싶은 게 아냐? 하고 다시 자문하는 패턴이 무한히 반복됐다. 

   언니.

   언니는 뉴 잭 스윙이 왜 좋아?

   물어보면 도요 언니는 춤을 췄다. 리놀륨 장판 바닥에 양말 신은 발을 비비며, 내 눈을 사로잡았던 예의 그 춤사위를 시원하게 선보였다. 춤을 출 수 없는 공장 작업대 앞에서 물으면 대답 대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언니의 춤을 보고 멈췄을 때와 공공장소에서 춤추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어느 일요일에 언니가 말했다. 

   “나는 있잖아.”

   카세트 플레이어에서는 유승준의 〈연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난 벌써 시작되었지 우리 만났다는 그 이유 단 하나만으로 언니가 ‘나는’으로 말을 시작하는 건 드문 일이라 저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가수가 되는 게 꿈이야.” 

   그 말은 그때까지 들은 말 중 최고로 뉴 잭 스윙했다. 

   사람이 스무 살 넘어서도 꿈이란 걸 가질 수 있나. 스물두 살짜리 공순이가 ‘나는’과 ‘가수’와 ‘꿈’을 한 번에 말해도 되는 거였나. “소년의 얼굴로 나 노래하리, 세상 가장 맑은 목소리로” 내가 언니의 말을 듣고 떠올린 무겁고 큰 조건들에 비해 그 말 자체는 너무나 산뜻하고 가볍게만 들렸다. 자기가 가수가 되는 장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때나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걸 깨닫자 그 말이 다른 어떤 말보다도 도요 언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을 아끼고 모아 사십만 원을 만들면 아하프리를 살 수 있듯 계속 춤과 노래를 연습하면 언젠가는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아직 믿는 거였다. 

   “언니가 가수 되면 내가 매니저 할게.”

   하지만 그건 언니를 놀리려는 농담이나 그 순간의 충동이 밀어낸 실언 같은 게 아니었다. 짧은 고민 끝의 결론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뉴 잭 스윙이 좋았지만 그냥 뉴 잭 스윙보다 언니가 하는 뉴 잭 스윙이 좋았다. 언니의 꿈에 현실성이 없다는 건 나도 알았지만, 그래서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비관하는 건 오히려 더 현실성 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잘하는데 왜? 안될 건 뭔데?

   늘 그렇듯 언니는 그래라 말아라 말이 없었다. 그 민숭민숭한 태도를 나도 늘 그렇듯 승낙으로 받아들였다. 불현듯 손바닥만 한 내 방이 훌쩍 크게 느껴졌고 뭔지 모를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조금 후에 알았지만 그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시간이 아까워진 탓이었다. 매니저라니, 가수가 되고 싶다는 도요 언니를 따라 얼렁뚱땅 꾸기 시작한 꿈이었지만 나는 언니만큼 진지했다. 나로서는 처음 품어 보는 꿈이기도 했다. 

   졸업하고 흘려보낸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은 긴 방학처럼 느껴졌고 내 스무 살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별안간 무게를 지닌 실체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그전까지 무엇에든 화가 나고 모든 것에 질려 있고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던 건 내가 나의 젊음을 진실로 느끼지 못해서라는 사실을 나는 알아차렸다.

   어쩌면 이 느낌이 나의 뉴 잭 스윙일지도.

   남들이 다 아까워하는 젊음이 나에게도 비로소 아까워지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당연한 깨달음이 따라왔다. 아깝다는 건 그게 비로소 내 것임을 알았다는 뜻. 그리고 뉴 잭 스윙은 이 순간의 젊음이 언제나일 것처럼 노래하고 춤추는 장르. 

   슬프지도 않은데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까맣게 잠들어 있던 내게

   새 빛으로 깨어나 숨쉬게 해 준 너에게

   

   바다를 끼고 있는 공단에는 차가운 계절의 바람이 빨리 찾아왔다. 밖은 썰렁해도 종일 기계 돌아가는 공장 안의 열기는 그대로였기에 해가 조금 짧아진 것뿐이었는데도 일교차가 깜짝 놀랄 만큼 크게 느껴졌다. 

   여름도 이제 다 저물었구나 싶을 무렵부터 도요 언니는 다시 급여를 중얼중얼 헤아리기 시작했다. 또 뭐가 갖고 싶어진 걸까. 어련히 언니가 언젠가 말해 주겠거니 믿고 나는 기다렸다.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작업반장이 공장에 독감을 유행시키자 언니가 처음으로 공장을 빠졌고 나는 언니의 빈자리가 신경 쓰였다. 많이 아픈 건지는 물론이고 이달 만근수당을 못 받게 된 언니가 사고 싶은 물건을 제때 못 살까 봐도 걱정됐다. 급여 나오면 언니에게 부족한 돈을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주진 못해도 꿔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천천히 갚아도 괜찮다고 하면서.

   그간 도요 언니와 보낸 일요일이 며칠이었는지는 양손 손가락으로 다 꼽고도 남았지만 혼자인 일요일이 무척 오랜만인 것처럼 낯설었다. 언니가 출근을 못 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못 했고 집 전화번호도 굳이 묻지 않은 탓이었다. 연락처를 안다 쳐도 아파서 쉬는 사람을 놀자고 불러낼 건 없는지라 나는 나대로 혼자의 휴일을 버텨보기로 했다. 

   다짐이야 굳었지만 심심한 것도 어쩔 수 없어서 전처럼 천경수네 가게에 놀러 갔다. 천경수는 없고 안경남이 대리점 점장과 나란히 근무 중이었다. 경수는요? 물으니 안경남이 괜히 성을 팩 내며 대꾸했다. 내가 걔 쉬는 날 뭐 하는지도 일일이 파악해야 되냐? 나는 머쓱해진 채로 가게를 나왔다. 모르면 말지 왜 지랄. 그건 그렇고 천경수 이 새끼는 언제부터 일요일에 쉬게 됐지? 막내 새끼가 빠져 가지고 휴일에 점장님 출근시키고. 내가 쉬는 날 마침 도요 언니는 연락이 안 되고 천경수는 출근을 안 하는 게 대단한 우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음반 가게를 향해 걷다가 골목에서 뽀뽀하고 있는 천경수와 도요 언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

   하고 나는 잠깐 머뭇거렸으나 곧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두 사람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천경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천경수도 날 못 본 척해 주길 바랐다. 생각해 보면 아무 일 아니었으니까. 도요 언니는 내 직장 동료이자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 천경수는 딱히 나랑 사귀는 사이가 아닌 아랫집 아들내미, 둘을 서로 소개한 건 나였고 둘 다 한창때인 남녀이니 그렇게 됐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것 없었다. 

   아니, 존나 이상해.

   뽀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나인 것도 아닌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기분이 이상했다. 천경수는 천경수고 이도요는 이도요였기 때문이다. 천경수는 십 년 전부터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왕경태였고 나는 걔의 영심이였다. 세상에 어떻게 왕경태가 영심이를 배신하냐? 하긴 내가 언제부터 영심이였냐, 서울 단독주택 사는 열네 살짜리가 나랑 뭐가 비슷하다고. 애초부터 우리가 만화 주인공들 같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다. 도요 언니도 똑같아, 어떻게 그렇게 걱정을 시켜 놓고 남자나 만나러 돌아다닐 수가. 뽀뽀하는 거 보면 독감 걸린 것도 아닌 거지? 하기야 언니가 언니 입으로 아파서 결근한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래서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됐는데? 

   “미라야!”

   골목에서 달려 나온 천경수가 울상을 지으며 내 어깨를 붙들었다. 천경수의 팔을 쳐내면서 이런 구도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이 온종일 틀어 놓는 엠넷 뮤직비디오 같은 데에 많이 나오는 장면 아닌가. 홍콩이나 삿포로 같은 곳 대신 골목골목 구린내가 나는 후진 동네가 배경이고 늘씬한 모델이나 헌칠한 배우 대신 발에 채도록 흔한 갑남을녀가 등장한다는 것을 빼면. 

   “오해야. 그런 거 아냐. 정말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이 새끼는 나한테 왜 변명을 하려고 하지, 우리가 사귀던 사이도 아닌데. 그 생각을 하니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했다. 나는 당황한 거지,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방금 전의 그 골목에 있던 사람이 내 남동생과 얼굴 모를 걔의 여자 친구라고 하더라도 내 반응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 오해 안 했어. 데이트 잘해.”

   방금 상황에 어떤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시트콤에서처럼 눈에 뭐가 들어가서 호호 불어 주는 걸 먼발치에서 보고 착각한 것도 아니고, 둘이 숨어 입술과 입술을 맞대고 있는 걸 코앞에서 똑똑히 봤는데.

   “경수 씨는 잘못 없어.”

   어느덧 천경수 뒤에 와 서 있던 도요 언니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경수 씨 좋아해.”

   언니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천경수와 나 사이에 섰다. 마치 내가 여차하면 천경수를 때리기라도 할 것 같아서 자기가 그 허우대 멀쩡한 남자애를 보호해 줘야겠다는 듯. 천경수는 얼굴을 가렸다. 나는 둘 사이를 방해하는 악역이 될 생각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둘이 찍고 있는 드라마에 엑스트라로도 끼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경수 씨라니, 천경수한테 경수 씨라니. 도요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둘 다 왜 그렇게 심각한 거야. 

   “진심이야?”

   언니는 대답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진심이구나. 그럼 뭐,

   “경수랑 결혼이라도 하게?”

   나는 언니와 천경수를 놀리고 싶은 거였지만 입 밖으로 내뱉고 보니 그 말은 내 생각에서보다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언니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아, 그 정도로 진심이구나. 그걸 확인하자 웃을 마음이 더는 들지 않았다.

   “언니 가수하고 내가 매니저 하기로 했잖아. 남자 사귀고 결혼하면 그런 건 못해.”

   언니는 그래서? 라고 대꾸하듯 나를 줄곧 빤히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나는 그게 언니와 나 공동의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좋았지만 언니의 눈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우리 꿈이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구나. 나 혼자 착각했을 뿐 언니는 애초부터 언니의 뉴 잭 스윙에 나를 끼워 줄 생각이 없었던 거지. 

   “나는···.”

   내가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찾아내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선가 채정안의 〈편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옆구리에 큼지막한 호박나이트 스티커를 붙인 아토스가 우리 옆으로 펼쳐진 차도를 달리고 있는 거였다. 너무 미안해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원망하지마 하필 신호에 걸렸는지 호박나이트 차는 한동안 유로 테크노 비트를 요란스레 쏟아 내다 떠났다.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도통 알 수 없었다. 분명 뭔가 한마디는 하고 싶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것 같았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춤을 출까. 내가 난처한 질문을 할 때마다 언니가 그랬듯 스텝을 밟아 버릴까. 끝내 나는 아무 말 않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음반 가게에 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 반대 방향으로 가야 했지만 기왕 두 사람을 등진 김에 일단 걷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이번엔 나를 잡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나는 조금 전 도요 언니에게 했으면 좋았을 말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나는 있잖아.

   언니가 이보다는 세련된 사람인 줄 알았어. 

   

   다음 날은 월요일이었고 나는 어김없이 통근 버스를 탔다. 그전 주차에 며칠을 내리 쉬던 도요 언니도 간만에 출근을 했다. 나는 이게 보통 사람의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든 돈을 벌러 나와야 하고, 설령 그게 직장 동료와의 일이라 마주치기 껄끄럽더라도 꾸역꾸역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 나는 이따금 언니가 어쩌고 있는지를 힐끔거렸지만 언니는 내내 입술을 꼭 깨문 채 기판만 지지고 있었다. 실수로라도 나를 쳐다볼까 봐 온몸의 긴장을 놓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서 왠지 좀 안쓰러웠다.

   나는 딱히 화난 것도 슬픈 것도 아니었다. 제아무리 청승맞고 그 얼마나 기구한 가사라도 춤추며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만들어 버리는 게 뉴 잭 스윙의 미덕. 나의 스무 살에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사건이 국제적인 금융 위기나 가정경제 파탄이 아니라 어디 말하기도 창피할 만큼 애매한 삼각관계라면, 그건 크게 불평할 거리가 없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뉴 잭 스윙을 미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언니가 뉴 잭 스윙이었기 때문에 뉴 잭 스윙에서 언니만 빼고 그 나머지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안 됐고 그건 결국 내가 언니를 미워할 수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와 혼자 들은 뉴 잭 스윙이 이전과 똑같이 좋지만은 않았다. 힙합 카페에서 본 말이 문득 생각났다. 뉴 잭 스윙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 좀 지났죠. 내게서도 이 유행은 지나가는 중일까. 살면서 뭘 이렇게 좋아해 본 게 처음인데. 내가 또 뭔가에 빠지는 일이 일어날까.

   미리 알 수 있다면 바로 지금부터 그걸 좋아하고 싶다.

   하지만 스무 살 한 계절 내내 내가 열렬히 뉴 잭 스윙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내가 몇 살이 되어도 바뀌지 않으리란 걸 생각하면, 이즈음 미친 듯이 듣던 어떤 노래가 먼 훗날 나를 이 계절에 다시 데려다 놓을 거란 생각을 하면, 벌써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건 어떤 예감과 막연한 기분에 불과했고 나는 여전히 스무 살. 아직도 나는 나였고··· 뉴 잭 스윙을 더 이상 듣지 않는 장래를 상상하는 건 뉴 잭 스윙을 좋아하는 지금 당장을 오직 선명하게 만들 뿐이었다. 

   부쩍 해가 짧아져 퇴근길이 쌀쌀했다. 주머니에 손 넣고 뒷목을 움츠려 어깨 사이에 묻은 채 통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누군가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라야. 나는 못 들은 척 걸음을 재촉했다. 퇴근길에 나를 불러 세울 사람이 누군지는 뻔했고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여서 못 들은 척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미라야! 안미라! 이름 부르기가 몇 번 되풀이될 동안에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이 그쪽을 의식하기 시작하니 나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뭐, 왜? 하듯 삐딱한 자세로 돌아서 보니 짐작대로 도요 언니가 거기 있었다. 헤드폰을 낀 채로 사람 이름을 부르니 목소리 크기 조절이 안 되지. 나는 딱히 밉지도 예쁘지도 않은 도요 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언니는 내 쪽으로 몇 걸음인가 다가오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눈치였다. 내가 다시 돌아서려던 찰나, 언니는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양발로 번갈아 땅을 스치고 다시 쿵쿵 밟으며 리듬을 만들었다. 

   어두운 공장 앞에서 혼자만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는 언니는 조금도 뉴 잭 스윙 같지 않았다. 언니가 나 때문에 춤을 추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춤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건지, 그게 맞다면 뭐가 미안한 건지, 반대로 싸우자는 건지, 넌 이렇게 못 추지? 하며 나를 놀리는 건지. 언니의 춤은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우리 공장을 비롯한 주변 건물들의 불이 전부 꺼지고 나를 제외한 구경꾼들이 모두 사라지도록. 하나도 뉴 잭 스윙하지 않은데도 꿋꿋이 하고 있다는 게 도리어 굉장한 뉴 잭 스윙으로 느껴졌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텅 빈 통근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서 경적을 길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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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 관리자
  • 2025-06-01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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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Riley
    감동했어요

    박서련 짱...♥️

    • 2025-05-06 22:58:18
    Riley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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