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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 작성일 2025-06-01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점을 넘어서자 저 멀리 버스 정류장 불빛이 번졌다. 들어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펜스 바깥으로 나가 출근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 꽁무니에 합류하고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와 외투 깃을 점검했다. 

   나는 매일 30분씩 늦게 잠에서 깰 수 있게 되었다.


*


   길에도 성격이 있다면 고갯길은 무척이나 음흉한 성격일 것이다. 꼭대기에 다다를 때까지 너머의 풍경을 감춘 채 고개의 이쪽 면만을 보인다는 점에서. 만일 누군가 푸른 초목이 무성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가 멈추지 않고 걷는 이유는 내리막길에도 그 녹빛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너머가 바위산이면 어떡하려고? 얼음산이라면? 절벽이라면? 

   단지 가운데가 볼록 솟은 형태의 통행로를 걷다 보면 매번 이 친구 정말 보통 아닐 것 같다는 직감에 휩싸이는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마주하게 되는 풍광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달리 배치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길은 오르막 동안 이용자가 보고 싶은 신을 연출한다. 양옆에 거느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대단지, 잘 조성될 녹지, 상가 꼭대기 층 시계탑,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오르막길의 신을 가득 메운다. 그러나 길의 고점을 지나 내리막으로 접어들면 그제야 고개 너머 가려져 있던, 단지 밖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외벽이 누렇게 바랜 건물들, 철거 중인 빌라들, 쇠락한 전통 시장. 길 이용자는 그것들을 내려다보면서 단지를 천천히 벗어난다. 충분히 물매를 다듬을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 통행로의 경도에는 어떤 업신여김이 있었다.

   물론 내가 통행로의 속셈을 간파한 뒤에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시 한번 버스 정류장 대기 행렬에 합류한다. 찬 공기에도 졸음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선 채로도 꾸벅꾸벅 존다.


*


   아침 6시의 거리는 네 새까만 속처럼 어둡지만 랜턴을 휴대할 필요까지는 없다. 미완성 대단지로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일까 길 양쪽에도 단지 경계와 마찬가지로 높은 가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가벽 곳곳에 뚫린 출입문마다 작지만 강한 빛을 내뿜는 조명이 달린 덕분이었다. 집에서 내다볼 때와는 달리 막상 들어와 보니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스무 개쯤 되어 보이는 출입문에는 하나같이 ‘안전의 문’이라 적혀 있었다. 

   안전문도 아니고 안전의 문이라니. 어딘가 환상적인 인상을 주는 명명이다. 안전한 문, 안전을 위한 문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세계로 통하는 문일 것만 같다. 저 문들만 모두 열어 두어도 사방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이 좁은 길에 고인 채 이토록 성을 내지는 않았을 텐데. 

   문들은 골바람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굳게 닫혀 있다. 과연 안전문이 아니라 안전의 문다웠다.

   나는 스무 개의 안전의 문을 지나 버스를 타고 오피스로 간다. 탕비실 정수기 옆, 본래 소회의실이었던 작은 방에 팀원들 여섯이 모여서 하루에 여덟 시간을 함께 보낸다. 

   나의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는 엄미소는 이 방에서 가장 잘 웃는 사람이다. 내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다다르기도 전에 엄미소는 와르륵 웃으며 내 머리 위로 손을 홱 뻗더니 포도 맛 사탕 껍질을 수거해 간다. 골바람 때문인지 머리카락에 단단히 엉겨 있었던 모양이다. 

   —승주 씨 이게 뭐야? 뭐 이런 걸 머리에 매달고 다녀? 포도 향 함유 액세서리? 최신 포도 핀?

   다른 사람들이 그제야 이쪽을 보고 눈인사를 건넨다. 엄미소를 제외한 네 사람의 얼굴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다. 엄미소가 쏟아 내는 물음표들에 정말 질문인 것은 없고, 그것들은 더 잘 웃기 위해 말 궁둥이를 갈기는 박차 같은 것이다. 엄미소의 깔깔은 내가 자리에 다다라 목도리를 풀고 장갑을 벗고 외투를 복사기 옆 옷걸이에 걸어 둘 때까지 멈출 줄을 모른다. 

   엄미소의 입도 안전의 문처럼 굳게 닫혀 있다면 좋을 텐데. 매일 아침 꽉 막힌 안전의 문을 지나치면서 그 너머의 풍광을 매일 달리 상상해 보는 것과는 달리, 엄미소의 입이 웃음의 문이라면 나는 열어 볼 시도조차 않고, 궁금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그저 지나치고 말 것이다. 

   안전의 문과 달리, 웃음의 문 쪽은 궁금하지도 않다. 어떤 상상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


   나는 단지 중앙 고갯길의 무서운 골바람을 회피하는 대신, 바람을 보다 잘 견디는 인간으로의 진화를 거듭했다. 등을 반쯤 덮는 머리칼은 뒤통수 최하단에 말 꽁지 스타일로 단단히 묶어 두고, 한국인치고도 제법 큰 편인 두개골은 꽉 조이는 털모자로 전체를 감싼다. 팔은 양 허리에 꼭 붙이거나 앞으로 팔짱을 낀 상태로 전진, 치마보다는 통이 좁은 바지 쪽이 수월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신을 젓가락화하여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 그렇게 매일 아침 수영 선수가 풀장에 뛰어들 때의 마음가짐으로 펜스 안으로 입장한다.

   알맞은 복장과 자세를 터득하고도 진화 실험은 계속된다. 펜스에 꼭 붙어 걸으면 바람 저항이 조금이라도 덜할까 싶어 벽에 몸을 붙인 채 게걸음을 시도해 보던 날, 나는 길 한편에 놓여 꿋꿋이 바람을 견뎌 내던 박스 더미에 무엇이 들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거대한 상자 열댓 개에 빼곡히 담긴 것은 화재경보기였다. 1만 5천 가구에게 공급될 화재경보기인 듯 압도적인 수량이었다. 

   이토록 많은 화재경보기가 한데 모여 있는 것은 태어나 처음 목격한 광경이었으므로 나는 출근 시간 단축 실험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그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작고 동그란 플라스틱 물체가 머잖은 미래에 집집마다 부착되어 식구들을 종일 내려다보다가 불길이 솟을 때면 기다렸다는 듯 시끄러워진다는 말이지···. 너희들, 지금은 이렇게 고요하지만 사실은 고약한 비명을 품고 있는 것, 난 다 알아! 조합원들의 이권 다툼에 공사가 중단된 탓에 화재경보기는 이렇게 길 위에 방치된 채 자신들의 본분을 다할 날을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 거센 바람을 견디면서, 모두에게 잊힌 채로. 나는 그것이 어쩐지 애틋하여 가방 앞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켜 보았다. 

   자, 이게 불이라는 거야.

   그러자 화재경보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빠라라라라라락!(∞) 

   고독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화재경보기들은 댐이 터진 것처럼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고, 불길이 미처 닿지 않은 화재경보기까지도 동료의 외침에 놀라 덩달아 비명을 지른다. 1만 5천 개의 화재경보기가 일제히 울어 대는 새벽녘. 라이터를 멀리 던져 버려도 소용없었다. 대단지에 아직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게 어찌나 다행인지! 1만 5천 개나 되는 화재경보기를 모조리 부숴 버릴 수도 없으니 그대로 정류장 쪽으로 내달리려는데··· 이런, 두 발을 땅에서 동시에 떼 버렸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몸뚱어리는 튀어 오른 그대로 바람에 두둥실 실려 공중을 흘러간다. 공중에 붕 뜬 채로는 중심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 품 넓은 외투를 휘적이며 비틀거리자 그 몸짓이 날갯짓의 효과라도 낸 것인지 나는 정류장 쪽으로 보다 속도를 내어 날아갈 수가 있었다. 

   오전 6시 10분의 풍향은 북서풍. 바람은 나를 정확히 정류장 앞으로 데려다준다. 아앗, 그런데 정류장의 지친 사람들에게 이렇게 공중을 떠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싫어···. 나를 목격하고는 덩달아 하늘을 날고 싶어진 인간들로 단지 내 고갯길을 새벽의 인간 비행장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독점욕이 눈을 떠, 나는 단지를 벗어나기 전 철제 펜스를 더듬어 가며 가까스로 땅 위에 착지, 지상 인간답게 걸쇠를 풀고 두 발로 뚜벅뚜벅 밖으로 걸어 나간다. 

   정류장에서도 저 멀리 화재경보기의 비명이 똑똑히 들려왔지만 줄을 선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고개를 들어 그쪽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


   사흘 동안 바람 부는 길로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날기가 가능해진 낯선 환경이 당황스러웠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곰곰 생각하기가 귀찮기도 하였다. 나는 사흘간, 바람을 알기 전의 내가 되어 아침이면 단지를 빙 둘러 꼬박 30분씩 더 걸었다. 

   그러나 날아오르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영영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호기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곤 하던 면면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고(그러나 이미 멀어진 사람들), 어떤 결론도 없이 공중으로 떠오르던 때의 가벼운 감각만을 거듭 떠올렸다. 

   결국 다시 걸쇠를 푼 날, 나는 길의 시작점에 서서 두 발로 동시에 지면을 팡! 밀어내며 몸을 띄웠고 며칠 전 그때처럼 바람에 실려 구름처럼 향기처럼 흘러갈 수 있었다. 미리 알고 행하면 무지할 때보다는 무엇이든 나아지는 법, 나는 선천적 비행자였던 양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미세하게 바뀌는 풍향을 감각하면서, 겨울을 5년째 책임져 주고 있는 외투를 때때로 날개처럼 펄럭였다. 

   날개를 펼치면 몸길이가 3미터에 이르는 새 콘도르는 최대 17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날갯짓 없이 비행할 수 있다. 비행이라기엔 유영이 어울리는 목적 없는 떠다님이다. 바람의 작동 방식을 완벽히 인지했을 때만 가능한 비행. 아주 지적이고 우아하지. 

   정류장 쪽으로 날갯짓다운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되자 곧 공중의 질서가 눈에 띈다. 이 길 위에서는 모두가 콘도르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방향을 바꿀 때만 날개 혹은 그 비슷한 것을 까딱일 뿐, 다 함께 유영 중이다. 비둘기 까마귀 참새 박새처럼 상식적인 친구들도 있지만 개 고양이 너구리 쥐와 같은 지상 동물들도 눈에 띈다. 공중에는 안경 만화책 후크 선장 인형 키보드 따위의 사물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것들 역시 우리 생물 쪽이 오른손을 까딱여 직선 주행을 유지할 때와 비슷한 몸짓을 부스럭 행하는 것 같았다. 

   질서를 눈치챈 이후에는 탐구라 할 만한 것이 가능해졌다. 날기가 낯설어 단지 내로 들어오지 않았던 사흘 동안, 단지 재건축 때문에 덩달아 휴교한 고등학교 교문 앞을 지날 때마다 늘 마주치는 행인이 있었다. 그는 빨간 코트를 입고 있어 어두운 새벽에도 학교 앞 가로등 밑을 지날 때면 그 색이 무척이나 선명했다. 그 역시 나처럼 대단지를 둘러 둘러 통근 중이었던 모양인데, 내가 다시 바람의 길로 다니기 시작하며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서자, 빨간 코트가 우리 집 앞길의 오래된 건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두 팔을 규칙적으로 휘저으면서 생각한다. 빨간 코트는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그가 들어간 건물 1층에는 약국이, 2층에는 합기도장이, 3층에는 서예 학원과 논술 학원이, 4층에는 세무사무소가, 5층에는 가정집이 있었는데 빨간 코트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단지를 빙 둘러 그 건물로 가는 거라면, 그 역시 이 바람의 길을 통한다면 훨씬 빠를 텐데···. 얘기해 줄까? 말까? 긍휼한 마음으로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정류장 앞이었다. 

   보다 부드러워진 착지, 어느새 단지 관계자라도 되는 것처럼 능숙해진 걸쇠 오픈, 어두운 표정으로 대기 줄 합류, 그리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엄미소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운다. 아침부터 또 뭘 하고 있는 거야···. 아슬아슬 쌓아 두었던 욕실 수건이 선반을 열자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방문을 여니 엄미소의 웃음소리가 밖으로 엎질러진다. 나는 떨어진 수건이 다른 방에 가닿기 전에 잽싸게 방문을 닫았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란 눈을 하고 있다.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먹던 빵이나 조용히 먹을 것이지. 

   맛있는 거 먹어요? 나는 나름의 아침 인사를 건네며 사람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 대신 자리로 향한다. 아침부터 버터 잔뜩 발린 빵을 먹을 생각은 없다. 빵이야 맛이 좋겠지만(내가 좋아하는 후추빵도 있었으니까···) 업무 시작부터 빵을 나누어 먹으며 시시덕대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다. 저렇게 낄낄대는 와중 놓치는 업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대신해 준 엄미소의 일을 목록화한다면 바람의 길 끝에서 끝까지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몫이 아닌데 내가 해내고 만 일들을 모듈러 주택처럼 차곡차곡 쌓아 두고 있었다. 조립식 모듈러 주택은 땅 밑부터 뼈대를 다지는 아파트와 달리 자연재해에 취약하므로, 나의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부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버려 엄미소를 끝장내 줄 참이다. 

   엄미소 자리에 걸려 온 전화를 대신 받아 준 것 113번, 엄미소 담당 주문 건을 대신 발주 처리한 것 31건, 대신 반품 처리해 준 것 58건, 입구가 다 벌어진 발송 물품 봉투를 대신 다시 봉합해 준 것 12건, 공동 담당자인데 회의에 나 혼자만 참석하고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일 4건, 난로를 대신 꺼 준 일 2건, 지각이 표가 나지 않도록 자리에 내 가방을 대신 놓아 준 일 1건···. 이것들을 사소한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니었다. 너무 무거워 바람의 길에서조차 날아오르지 못할 만큼 묵직한 짐 덩이들이었다. 그러고도 엄미소는 저렇게 아침부터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어 대는 것이다···. 

   아슬아슬 상판이 떨어져 나가려는 모듈러 주택을 간신히 다독이며 자리에 앉자 검은 모니터 화면에 비친 내 어깨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흑빛 발톱이 목도리 털실에 칭칭 얽혀 까마귀는 덫에 걸린 모양새였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빵을 먹던 사람들도 어느새 내 자리 근처로 몰려와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두 ※위험※ 딱지가 붙은 상자를 바라보듯 난처한 표정들이었다. 어깨에 까마귀를 달고 다니다니, 날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내가 보아도 그렇다. 모니터 속에는 쉽사리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기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무 공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비난들이 키보드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버젓이 어깨 위에 자리한 까마귀를 없는 일로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어깨 위 까마귀에 대해 물어 온다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바람의 길에 대해 설명해 주어야 하는 걸까? 매일 아침 얼마간 날아서 출근 중인데, 그때 잘못 얽힌 까마귀라고··· 설명을 하면 알아듣기나 할까? 그들이 알아듣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회사 사람들에게 그 길에 대해 알려 주기는 죽기보다 싫어! 그 길에까지 엄미소의 웃음을 묻히기 싫어! 비밀은 어느 누구와 공유하느냐에 따라 몸집을 크게 불릴 수도 있지만, 원래의 형태를 잃고 볼품없이 쪼그라들기도 한다. 결코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회사 사람들과 그것을 나눈다면 섣불리 비밀을 공개해 버렸다는 자책과 함께 비밀을 향유하는 내내 그들의 얼굴이 떠올라(예상 반응: 그게 말이 돼, 승주 씨? 승주 씨 요즘 피곤한가 봐···. 승주 씨는 독특한 면이 있어서 나랑은 좀 안 맞는 듯···. 승주 씨 요즘도 날아다녀? 하하) 결국은 비밀의 최초 발견자인 나조차도 비밀로부터 고개를 돌려 버리게 될 터였다. 그렇게 잃어버린 비밀들이 벌써 한가득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려던 찰나, 승주 씨 오늘은 또 대체 뭘 얹고 온 거야? 엄미소가 깔깔 웃으며 묻는다. 그 웃음 덕분에 다른 팀원의 얼굴들도 슬슬 누그러지더니 곧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폭발물이 든 정체불명의 상자를 바라보는 듯했던 눈빛들은 이내 엉뚱한 장난을 벌이는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는 흥미 가득 눈빛들로 변모한다.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되면 웃음과 농담 따먹기로 자세한 설명을 얼렁뚱땅 넘겨 버릴 수가 있다. 

   나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이상한 의무감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안도가 되었다. 엄미소에게 약간 고마움이 들기까지 하는데, 그동안 당한 게 얼마인데 뭐 그럴 필요까지는···. 까마귀는 까악까악 울지도 않고 얌전히 어깨 위에 앉아 있을 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눈을 감고 졸고 있구나.

   대체 승주 씨 어디서 오기에 어깨에 까마귀가 붙은 거야? 엄미소 옆에 선 동료도 말을 얹는다. 까마귀 엄청 크다···. 몇몇은 까마귀를 실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 자체에 몰입하기 시작하고, 팀장은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승주 씨, 이거 사진 보내 줄게. 귀엽게 나왔어, 까마귀도 승주 씨도. 네에, 감사합니다···. 승주 씨 거기 살잖아요, 재건축 엄청 크게 하는 동네. 아아 거기, 공사 중단된 지 오래됐지? 어 거기 조합원들이 분양가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욕심부리고 그러다가 지금 멈춘 지 한참이지. 협의점을 못 찾았어. 꼭 조합원들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어, 저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요. 단지가 축구장 셋은 붙인 것만큼 크다던데. 근데 동 간 거리는 성인 남성이 양팔을 벌리면 닿을 만큼 좁다더라, 뉴스에서 봤어. 의도가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거기 들어가면 좆되는 거야, 분양가 봐···. 

   팀원들은 눈앞의 까마귀보다 더 가깝고 진실된 이야기를 내 머리 위에서 한참 동안 나누더니 마침내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나는 그제야 까마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어떻게 된 거야? 까마귀는 부스스 눈을 뜨고 아, 벌써 도착인가요? 이쪽에 볼일이 있어 어깨 좀 빌렸어요, 말하더니 내 자리 뒤편의 창틀로 폴짝 뛰어올라 부리로 창문을 연다. 그리고 건물 바깥으로 추락. 화들짝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까마귀가 저 아래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금 중심을 잡는 것이 보인다. 잠결에 여기도 건물풍이 부는 곳이라 착각한 건지 날갯짓도 않고 그대로 뛰어내린 모양이었다. 

   밤 9시가 다 되어 건물을 벗어나니 회사 앞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까마귀가 보인다. 까마귀는 곧장 내 어깨 위로 날아와 자리를 잡았다. 나와 함께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원래 살던 곳으로 편히 돌아가려는 심산인 듯했다. 까마귀가 좀 더 편한 자세를 찾으려는 듯 뒤척일 때마다 낯선 탄내가 풍겼다. 바람이 실어다 준 냄새처럼 멀리서 풍겨 오는 듯하였다.

   퇴근 시간에는 길 위에 사람들이 많아 바람의 길에서 날아다니기엔 너무 눈에 띌 것이다. 바람의 길은 아침에만 이용하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다. 까마귀에게 나 그리로 안 가. 나 단지 주위로 빙 둘러 돌아가. 애써 설명하려 해 보았으나 까마귀는 다시 멀뚱멀뚱 초연한 동물의 눈빛으로 돌아가 묵묵부답이었다. 

   까마귀가 일과 시간 동안 어딜 다녀온 것인지 궁금했지만 지하철 좌석에 앉은 뒤로는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까마귀가 어깨 위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지하철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린 뒤에도 얼마간 걷던 뒤였는데, 까마귀는 언제, 어디로 사라졌을까?


*


   유영하는 자들은 가시권이 넓어진 덕분에 지상의 이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까지도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해졌다. 까마귀가 나의 어깨에 무임승차 하였던 일을 계기로, 나는 같은 무안을 겪지 않기 위하여 승강장에 내려가기 전 개찰구 앞 전신 거울에 온몸을 꼼꼼히 비추어 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 시간을 통해 바람의 길에서 묻은 때 낀 운동화 끈이며, 소소한 불운이며, 헛된 희망이며, 전쟁 트라우마며, 다 쓴 잉크통이며, 한 장도 쓰지 않았으나 색이 바랠 대로 바랜 노트며, 투기욕이며, 검표가 끝난 어린이 뮤지컬 티켓이며, 보풀이 잔뜩 인 목도리며, 절반은 거뭇거뭇 손때가 묻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새 책이나 다름없는 소설책이며, 뜯지 않은 꿀단지며, 유통기한이 지난 카놀라유며, 목재처럼 딱딱해 보이는 약과며, 외로움과 슬픔과 자살 충동··· 따위의 것들을 털어 내고 지하철에 오를 수 있었다. 어떤 것은 손끝으로 가볍게 튕겨 내는 것만으로도 떨어져 나갔지만, 어떤 것은 옷감과 함께 꿰매기라도 한 듯 단단히 엉겨 붙어 있었는데, 그것들을 목록화하여 어떤 규칙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불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몸 이곳저곳에 꿰여 있고는 했다. 하루는 삼색볼펜만 한 불운이 눈썹 위에 붙은 것을 보고도, 그것을 털어 내지 않고 그대로 회사에 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엄미소의 보온병 안에 탈탈 털어 넣었다. 엄미소의 책상에 파일을 가져다 놓는 척하며 눈썹을 긁적이는 것으로 끝. 엄미소는 그날 구입 후 7년이 지난 지압기를 교환해 달라는 항의 전화에 40여 분간 시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나의 하루는 뜻하지 않은 즐거움으로 차올랐으나, 며칠 뒤 이마에 붙어 있던 또 다른 불운을 호주머니 속에 꼬옥 간직하고 출근길에 나선 날에는 회사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벽에 이마를 박아 버렸다. 엄미소의 책상 위에 털어 버리기도 전에 불운이 내게 발휘된 모양이었다. 건물 내벽은 페인트를 몇 번이고 덧칠해 요철이 심한 편이었고, 그 굴곡은 고스란히 내 이마에 상처를 남겼다.

   엄미소는 내 이마에 난 흉을 보고 어김없이 소리 내어 웃는다. 오늘은 까마귀 대신 흉터를 붙이고 왔네? 나는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상처에 앉은 피딱지를 닦아 낸 뒤 그 자리에 엄미소가 건네준 밴드를 붙였다. 


*


   바람 때문에 내게 들러붙은 것이 나의 신체보다 클 때, 그리하여 나의 몸에 무언가 얽혔다기보다는 내가 그 무언가 위에 얹힌 형상이 될 때는 개찰구 거울 앞까지 가지 않아도 그 정체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시선을 옮겨 휘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내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였으니까.

   하루는 일순간 온몸이 건축 중인 아파트들보다도 높은 위치로 솟구쳐 발밑을 내려다보니 ‘비행’이 나를 떠받들고 있었다. 비행은 바람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니까, 골바람을 유영하던 비행이 내게 와 붙은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훨씬 높은 고도에서의 비행이 가능해졌다. 늘 펜스 아래에서 그 일부만을 바라보며 짐작하던 단지 전체가 내 발아래에 펼쳐졌다. 참 크다···. 공중에서 듣자니 고갯길의 큰 골바람과 건물 사이사이의 작은 골바람이 합쳐서 어린 바람과 다 큰 바람이 합창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별건 아닌 것도 같고. 그러니까 엄청 큰 단지이지만,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 할 만하지만, 왠지 그 수식어를 자신 있게 가져다 붙이기에는 규모 외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않는, 얼마 못 가 갱신된 최대 규모에게 수식어를 빼앗기고 우물쭈물할 것만 같은, 어찌 되었든 또 하나의 아파트 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공중의 공중에 가만히 떠 있자니 단지 경계 너머로 빨간 코트가 보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가로등 빛이 가닿는 범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동네 전체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빨간 코트는 노란 가로등 빛의 영역의 한가운데에 들어올수록 점점 진해지다, 가로등 빛이 사윌수록 함께 희미해지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를 반복했다. 

   나는 단지를 가로질러 빨간 코트 쪽으로 날았다. 거리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나는 ‘비행’을 발밑에서 옆구리 쪽으로, 그리고 머리 위쪽으로 옮겨 가며 빨간 코트의 눈앞에 연착륙을 하였다. 

   지상을 걷다 만난 사람들끼리 할 법한 형식적인 인사는 생략하고, 나는 빨간 코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잠깐 발 좀 들어 보실래요? 

   놀란 얼굴의 빨간 코트는 왼발을 번쩍 들었고 나는 머리 위에 얹어 두었던 ‘비행’을 빨간 코트의 발아래 욱여넣었다. 빨간 코트는 발사 실험이 실패한 로켓처럼 몸이 왼쪽으로 한껏 기울어진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상체가 지상을 향해 기울어진 채 공중에 떠 있는 빨간 코트는 발아래 가로등 빛을 거느린 탓인지 신이 지상을 굽어보는 듯한 형상이 되었다. 그 위에서 빨간 코트의 가방이 엎질러졌다. 코트 주머니에 들었던 동전들도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앞으로 헤엄치듯 나아가 보세요! 

   그러자 빨간 코트는 공중에서 평영 자세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둥그렇게 모았다가 쭈욱 뻗을 때면 개구리가 그러하듯 이곳에서 저곳으로 순식간에 옮겨 갔다. 빨간 코트는 처음 날아 본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도록 그 순간에 몰입하였다. 저게 바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의 눈빛인가? 그는 무엇이 자신을 날게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고 그저 더 잘, 더 빠르게 나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빨간 코트의 아래에서 발걸음을 재촉해 걸으며 소외감을 느꼈다. 날게 해 준 게 누군데. 밑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빨간 코트가 그렇게 자신의 목적지에, 그러니까 우리 집 건너편 건물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행’을 다시 살살 굴려 빨간 코트의 발밑에서 빼내었고(정교한 컨트롤을 요하는 작업이었고 다 빼내었다고 생각했을 때쯤 삐끗하여 ‘비행’은 먼 곳으로 비행을 떠나 버렸다. 비행하는 ‘비행’) 그는 다시 지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방금 뭐였죠? 

   너무도 훌륭하게 공중 수영을 해낸 자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재건축 단지 중앙의 바람의 길에 대해 알려 주었고 회사에는 보기 좋게 늦어 버렸다.

   그 뒤로 빨간 코트와 나는 월화수목금 아침마다 바람 부는 길 위에서 마주쳤다. 서로 정반대 출발점에서 헤엄치기 시작하다 중앙에서 만나 교차할 때면 우리는 날기를 잠깐 멈추고 공중에 붕 뜬 채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렇게 매일, 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 그에게 공중 유영법을 알려 주었던 날 그의 가방에서 쏟아진 소지품을 주워 주다 눈치챈바, 빨간 코트는 서예 학원에서 실장 직함을 달고 일했다. 개원 시간은 오전 10시이지만 오전 6시 30분까지 나가 사전 준비를 한다고 했다. 원장이 어찌나 전통을 중시하는지 그날의 먹은 하늘의 먹이 가시기 전에, 그러니까 해 뜨기 전까지 준비를 모두 마쳐야 했고, 그날 쓸 화선지는 23도·60퍼센트의 온습도에서 한 장 한 장 말려 두어야 했다. 개칠(改漆)은 불가하다는 서예의 원칙 때문에 화선지가 하루에 1천 장씩은 필요했다. 

   —서예에 그런 번거로운 전통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도 잘 몰라요,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빨간 코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더니 어떻게 보면 자신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의료기기 관리부에서 출고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데 대체 뭐가 비슷하다는 건지. 빨간 코트처럼, 모든 일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우선 몰입하고 보는 성정을 지니려면 모든 일을 하나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걸까? 나 역시 빨간 코트가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의 말에 우리의 직업에 대체 비슷한 점이 무어가 있느냐고 되묻지 않은 것은 나도 그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


   바람은 파도와 같아서 몰려왔다가는 다시 멀어지고, 크게 덮쳤다가는 다시 잠잠해진다. 바람은 파도와 같아서 뚫고 나아갈 수도 있고 그 위에 올라탈 수도 있다. 바람은 파도와 같지만 짠맛 대신 매캐한 향기, 한겨울 한기,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분기(憤氣)를 품는다. 혓바닥을 내밀면 바람으로부터 그것들을 맛볼 수 있다. 바람은 파도와 같지만 파도처럼 그 오고 감을 바라볼 수는 없다. 바람은 파도와 같아서 이쪽으로 흐르고, 때로는 저쪽으로 흐른다. 파도 근처에 사는 사람이 파도를 잘 알아 그 흐름대로 흘러가기보다는 흐름을 이용하듯이 바람 근처에 사는 사람은 바람 가운데 떠다니다 이내 그 흐름을 이용하여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바람은 파도와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인간종 전체가 그 위, 아래, 가운데 몸을 실을 수도 있다. 바람은 파도와 같지만 맨몸으로 파도에 풍덩 뛰어들 듯 맨몸으로 바람에 풍덩 몸을 맡기는 이는 많지 않다. 바람은 파도와 같지만 파도의 너울은 푸른빛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바람의 너울은 그 너울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들은 하나의 빛깔로 요악할 수 없다. 바람은 파도와 같지만 바닷가와 달리 바람 가에는 사람이 없다. 극히 드물다. 아직 단 둘뿐이다. 


*


   바람은 가끔 좋은 것도 주었다. 이를테면 벽시계. 시침과 초침이 떨어진 것 외에는 망가진 곳 없이 작고 건강한 벽시계였다. 

   벽시계는 겨울 점퍼에 달린 모자 아래 찰싹 붙어 있었다. 그날따라 어깨가 무겁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벽시계가 모자 안이나 바짓가랑이처럼 쉽게 보이는 곳에 달려 있었더라면 엄미소가 못 참고 호들갑을 떨었을 테지. 그럼 나는 그 호들갑을 견딜 수 없어 벽시계를 회사 창밖에 내던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을 테다. 하루 종일 모자 아래 숨어 자신에게 행해질지도 몰랐을 여러 공격들을 훌륭히 견뎌낸 것이 기특해 나는 벽시계를 거실 소파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선반 위쪽에 걸어 두었다. 원래 있던 액자는 책꽂이 맨 위 칸에 올려 두고. 

   분침만 남아 있다 보니 시계는 하루에 스물네 번씩 작은 원 안을 맴맴 도는 행성 같기도 하였는데, 밥을 먹다 벽시계를 바라보면 25분,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시계를 보아도 25분, 잠자기 전 마지막으로 시계 쪽에 눈길을 주었을 때도 25분. 창밖에는 가로등 빛을 받아 자연 발광하는 듯 보이는 눈송이들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고여 있는 안쪽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눈송이가 흐르고 있는 바깥을 내다보자니 이거 뭔가 너무 은유적인데? 그 대상이 무언지는 확실치 않지만(이런 것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데다가 몰랐어도 그만일 자신의 한계를 수없이 마주하게 한다.) 문득 내가 은유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았고 그러자 그간 일어난 일들이 일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이야기의 영락없는 주인공. 지난한 삶을 보내던 주인공이 세계의 선택을 받아 거대한 비밀을 마주한다. 조력자가 나타나고 주인공은 고비를 거듭 극복해 나가며 한계를 모르고 성장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거대한 적의 등장. 가까스로 적을 무찌르고 우뚝 선 나. 그러나 겸손함을 잊지 않음. 

   그리고 다시 시계를 보니 25분이었다. 그로부터 알게 된 것은, 내게는 한 시간마다 시계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점이 꽤 만족스러웠다. 나는 꼭 한 시간마다 시계를 봐, 혹은 내게는 분침뿐인 시계가 있어, 하고 말할 수 있게 된 점이. 

   빨간 코트는 매일 아침 1천 장의 화선지를 말리며 먹을 갈았고 그 믿을 수 없는 일과에 대한 근거는 오직 빨간 코트의 말뿐이었다. 그를 믿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오직 나의 의지에 달린 일이었는데 믿지 않을 것은 또 뭐람, 그것은 빨간 코트의 이야기인걸. 나는 빨간 코트에게 바람의 길에서 만난 벽시계에 대해 어서 들려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빨간 코트와 바람의 길 중간 즈음에서 다시 둥둥 마주하였을 때, 그는 거대한 가죽 케이스 하나를 품고 있었다. 코트 바깥으로 케이스가 삐죽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에 대해 묻지 않고 벽시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대단한 크기였고 나는 결국 그게 뭐예요? 먼저 묻고 말았다. 

   —이거 붓인데, 아침에 씻어 말리려면 너무 빠듯해서 어제 집에서 씻고 말리고 먹까지 촉촉하게 먹인 뒤 가져가는 길이에요. 

   —이렇게 일찍 나가시면서 그냥 출근해서 하시지 왜 집에 일거리를 가져가셨어요···.

   —붓이 너무 커서 잘 마르지를 않아요, 보실래요? 

   빨간 코트는 검을 뽑듯 케이스에서 붓을 빼들었다. 그의 이야기대로 붓은 거대했다. 다섯 사람이 들어야 할 만큼 크다고 하여 오수필(五手筆)이라는 별칭을 가진 붓이라고 했다.

   빨간 코트는 한번 써 보시겠냐며 내게 붓을 건넸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제법 신나는 일이다. 그 일을 사랑하든 아니든. 

   방금 먹을 먹인 듯 까마귀 깃털처럼 윤기가 도는 붓끝이, 나를 어디에고 휘갈기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겠니 묻는 것 같아 나는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곳을 찾다가 한 아파트 외벽 앞으로 둥둥 날아가 이렇게 썼다. 


   바람


   그러자 붓을 건네받은 빨간 코트가 이렇게 덧붙였다.


   바람 부는 날


   서예 학원에서 일한다는 말이 단지 이야기뿐인 게 아니었던 것이, 빨간 코트는 붓글씨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명필이었다. 무겁고 커다란 붓이 바람이라도 탄 듯, 둥둥 떠 춤추며 글자를 새겨 넣는다. 

   —첫 붓질이 약간 거칠게 됐는데, 제가 개칠은 금물이라고 했죠, 그래서 첫 번째의 거친 터치를 이어서 같은 느낌으로 끝까지 완성해야 해요. 

   —왜요? 

   —그게 원칙이에요. 

   —아···. 

   그런데 바람 부는 날? 바람은 매일 불잖아요. 내가 말하자 그러네요, 매일. 빨간 코트가 말한다. 매일매일은 바람부는날바람부는날. 매일우유는 바람부는날우유. 매일신문은 바람부는날신문. 너 매일 정말 이렇게 굴 거야?는 너 바람부는날 정말 이렇게 굴 거야? 인생이 매일 쳇바퀴처럼 제자리에서 맴돌아요는 인생이 바람부는날 쳇바퀴처럼 제자리에서 맴돌아요. 

   우리는 바람을 타고 그 앞을 맴돌면서 수많은 매일들, 그러니까 수많은 바람 부는 날들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다. 수많은 매일들이 수많은 바람 부는 날이 되어 간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빨간 코트와 나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일이면 주말이에요, 오늘까지만 힘내요. 그래요, 안녕!


*


   아직까지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의 뉴 챔피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부지가 넓은 덕분에 각 동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었다. 좁은 대지 면적에도 불구하고 고층 대단지가 되고자 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질서 없이 책을 마구 포개어 둔 책꽂이와 같다면, 이곳은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 일정한 방향으로 도열한 도미노 판과 같았다. 입주 예정 주민들이라면 질서 없는 책장보다는 도미노 쪽을 좋아할까? 내 취향은 오히려 책장 쪽인데. 도미노 쪽은 너무 딱딱해 보여···. 그러나 직접 살게 될 입장에서는 또 모르는 일이고, 나와는 먼일이고,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다만 매주 평일 새벽마다 바람의 길을 이용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도미노식 배열이 자주 공간감의 상실을 야기하였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다가 문득 현재 위치가 궁금할 때면 이 빠진 도미노 대열을 둘러보는 것보다는 시계를 들여다보는 편이 나았다. 출발한 지 8분이 지났으니까 아마 3분 뒤면 정류장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식으로.

   그런데 빨간 코트와 내가 바람의 길과 인접한 한 동 외벽에 [바람 부는 날]을 써 둔 뒤부터는 그 앞에 바람의 길 이용자들이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바람 부는 ]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현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바람의 길에 현실 감각을 부여해 준 덕분이었다. 10분 안팎으로 떠다니는 일이 그리 고되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길이라면 마땅히 벤치를 품듯 바람의 길에도 공중 벤치가 필요했던 걸까? 이용자들은 [바람 부는 날] 앞에 모여 사담을 주고받았다.

   그곳에서 나는 얼마 전 회사에 동행했던 까마귀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뜻밖의 재회로 마음이 너그러워진 덕분에 까마귀에게 또 필요하면 말하라고, 기꺼이 자리를 내주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툭툭 쳐 보이기도 했다. 

   그 앞에서 긍휼해지는 마음이 내게만 허락된 것은 아니었는지, 이용자들 모두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다시 만난 까마귀 안녕, 그의 친구 까마귀들 안녕, 비쩍 마른 고양이 안녕, 빨간 코트에게는 특별한 눈인사를 깜빡, 꿀벌 떼 안녕, 너구리 가족 안녕, 정어리 떼처럼 몰려다니는 화재경보기들 안녕, 때 이르게 피고 진 동백꽃 송이들 안녕, 제목이 『자살』인 책 안녕, 수집가의 희귀 운동화 안녕, 무당벌레들 안녕, 반쯤 쓴 오렌지색 염색약 병 안녕, 유산균 포 안녕, 각종 포장지들 안녕. 

   —안녕!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라는 듯, 이야기 전개상 적합한 사건이라는 듯, 어느 저녁 낭독 모임에서 만난 존재들처럼 우리는 공간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이 분위기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강력하고도 암묵적인 합의를 품고 매주 평일 새벽, [바람 부는 날]을 지나며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내려갔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라 착지를 할 때, 평소라면 팔을 아래쪽으로 한껏 뻗는 것만으로도 철제 펜스를 붙잡기에 충분했던 거리가 언제부턴가 더욱 벌어졌다. 아래쪽으로 잠영을 한 뒤 팔을 뻗어야 펜스를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평균 비행 고도가 높아진 탓이었다. 그 역시 내게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고 뒤를 돌아보니 이용자 모두 평소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서 날고 있었는데, 그렇게 비행 고도가 높아진 게 결코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물풍에 더해지던 겨울바람은 오히려 세가 약해지던 때였으니까. 그럼 대체 왜? 발밑에 뭐가 붙었기에? 운동화 밑창을 살펴보아도 확실한 이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발밑에는 헛바람 조금, 흰 쥐 털 약간, 이건 웬··· 사랑이 손톱만큼 붙어 있었고 그밖에는 마른 껌, 정체 모를 먼지 뭉치, 보일러 부자재, 폐기름 몇 방울 그런 것들이 있었다.


*

 

   어느 날엔가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밑을 살피다 밑창 홈에 단단히 끼어 버린 작은 불운을 보고도 그것을 고이고이 회사까지 가져가 엄미소의 커피잔이나 키보드 위에 흩뿌려 두는 대신 불운이 어느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도록 가차 없이 발라내 잘근잘근 밟아 주었는데, 그러자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그날은 엄미소에게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불성실한 엄미소가 출근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고서야 오늘 오전 반차를 쓰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바람에(그럼 미지급된 대금은 또 너 대신 내가 처리하나요?) 아침 인사는 갈 길을 잃었지만, 만일 이례적인 아침 인사를 건넸다면 한참 동안 후회할 것이 분명했기에(조증에 휩싸여 저런 무례한 인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다니! 그럼 안심한 엄미소는 내게 또 함부로 굴걸!) 그 대신 아래와 같은 결심을 하였다.

   바람의 길에서 획득한 벽시계를 [바람 부는 날] 곁에 매달아 두자! 몇 분에 가면 누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 지 몇 분이나 흘렀는지 이용자들이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시간 강박에 시달리던 화재경보기가 특히 좋아할 소식일 듯했다. 벽시계를 달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면 경보음도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그 음성을 다시 한번 바앙― 하고 들려주겠지. 그렇게 베풀 생각을 하자 길 위의 존재들이 문득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일은 비록 1분기 팀 회식이 있는 날이었지만, 그것이 아무렇지 않을 만큼 나는 다음 날 아침이 기다려졌다. 그날 오후 들었던 부정적인 생각이라고는, 엄미소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오후 반차까지 쓰겠다는 소식을 알려 왔을 때뿐이었다. 

   회사가 장난이야? 엉?


*


   회식 메뉴는 우나기동. 장어의 빈약함을 감추려는 잡다한 재료 대신 양념된 밥에 거대한 장어만 턱턱 올라가 있는 정통 방식을 따르는 가게였다. 한 그릇에 6만 1천 원. 한 술 크게 떠 입안 가득 부드럽고 묵직하게 퍼지는 장어의 풍미를 만끽하며 살코기의 감미로움에 혀를 굴리고 있자면 때때로 작은 가시가 입천장을 찔러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나기동을 먹는 수많은 재미 중 하나였다. 

   웬일로 내가 제안한 탁월한 메뉴가 채택이 되었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팀 메신저에 우나기동을 검색하자 31건의 결과가 뜬다. 그중 28건은 내가 한 말. 무려 3년에 걸쳐서. 스크롤을 내려 보니 두 달 전 엄미소가 이렇게 말한 날도 있다. 승주 씨 우나기동 엄청 좋아하나 봐. 음···. 사실이긴 했지만 그중 5건 정도는 우나기동이라고 그저 말해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우-나-기-동. 

   머쓱한 마음에 음식이 놓이기도 전에 도쿠리 한 잔을 원샷해 버렸고, 곧바로 엄미소가 빈 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단지 나 하나 때문에 우나기동을 먹으러 온 건 아니겠지. 뭐··· 장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대통령 하나가 한 개인의 기분을 이렇게까지 망칠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요? 

   침묵을 깨고 팀장이 말했다.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말하는 거야··· 생각하며 전식으로 나온 들깨죽에 고개를 박고 있을 때 엄미소가 말한다.

   —그러니까요, 최악이죠, 매일 생각해요 저도. 

   사람들이 대통령 이야기를 할 때면 때때로 마치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의 연보를 읊기라도 하는 듯한 시대착오감이 솟아올랐다. 대화 도중 갑작스레 지금은 역사책에 입장해 역사책의 언어로 말할 시간이 시작입니다, 하고 대화의 장이 열렸고, 나는 한동안 구경꾼으로만 존재하다 마침내 말할 준비를 마치고 입을 떼어 보려고 하면 이제 역사책에서의 회동은 마치겠습니다, 하고 퇴각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늘 미묘한 어긋남이 있었다. 아니면 좀 더 가볍게. 회사 사람들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싫어서 꺼내는 말일 수도 있으려나. 그렇다면 나로서도 괜한 어색함을 덜어낼 수도 있겠지만. 

   —승주 씨네 동네 이제 정신없겠다. 

   —음? 

   다섯 개의 얼굴들이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화제가 대통령에 대한 것으로 바뀐 뒤부터 넋을 놓고 있었던 터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적당히 네 뭐 그렇죠 답변한 뒤 그제야 흐름을 뒤쫓자 대화는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것으로 무르익어 있었다. 새 대통령이 집무를 본 지 4개월째, 그는 이전 정권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보란 듯이 훌훌 풀어 버렸다. 투기성 청약을 막기 위한 실거주 2년 제한 조건과 전매 제한 10년의 조건, 중도금 대출 비율 상한선 50퍼센트.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매매가 보다 자유로워지자 하루아침에 2년 동안 멈춰 있던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의 공사 재개까지 결정되었다는 게 대화의 요지였다. 

   —승주 씨네 집 바로 앞이라며. 거기 또 몇 년은 공사판일 거 아니야. 보통 큰 단지도 아니고. 어떡해 승주 씨. 매일 쾅 쾅 쾅!

   때마침 여섯 개의 목재 직사각형 그릇이 방 안으로 스스스 들어왔다. 참으로 똑같은 크기와 모습으로 누워 있구나. 장어가 붕어빵도 아닌데. 먹는 순서와 방법만은 제각각이라 앞에 놓인 밥그릇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모습이 되어 갔다. 

   무슨 뉴스건 팀에서 가장 늦게 알게 되는 내게는 바로 집 앞의 일이었는데도 금시초문인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교체된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년째 멈춰 있던 공사가 재개되고, 다시 단지 안에 인부들이 드나들고, 조경을 위한 나무와 꽃들이 단지 안으로 운반되고, 그렇게 완성된 단지 안에 곧 입주민들이 거닐게 되고. 그런 일들이 곧바로 벌어진다는 말?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집 앞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오가고, 1만 5천 가구의 공사가 재개되고, 건물이 35층까지 올라가고(고층 상한선 규제만은 풀지 못했다고, 팀장의 말), 자재들이 옮겨지고, 자재 하면 통나무가 떠오르지만, 통나무로 고층 아파트를 짓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철근, 시멘트, 콘크리트, 그런 것들이. 이제부터 우리 집 앞에. 

   그날의 회식은 오직 우나기동이라는 단 한 가지 메뉴를 완벽히 연마하기 위해 일본에서 13년간 수학했다는 주인의 자부심이 헛되지 않을 만큼 맛이 좋았다. 우나기동 한 입, 도쿠리 한 입. 번갈아 먹다 보니 금세 그릇 밑바닥이 보였다. 

   —승주 씨, 무슨 묵언수행 해? 

   공식, 비공식 회식을 가질 때마다 팀장이 늘 내게 묻는 질문이었다. 그때 나 대신 엄미소가 대꾸하는 것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 있었다. 

   —승주 씨가 우나기동 엄청 좋아하잖아요. 떠들 시간이 어딨어. 도쿠리도 승주 씨가 제일 많이 마셨네. 

   엄미소는 또다시 내 빈 잔을 채워 주고, 그럼 마실 수밖에···. 투명하게 차오르는 도쿠리는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 당장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회사 인간들과의 대화는 한참 뒷전으로 미룰 만큼. 모든 것이 저 멀리 있고 지금 나의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도쿠리 그리고 우나기동. 그 둘이 전부. 


*


   전날 과음한 탓인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회식 다음 날 이러는 것은 좋지 않지만 팀 메신저에 이렇게 보내 둔다. 

   —죄송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오늘 연차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묵묵부답. 3분 뒤 엄미소의 답변. 

   —푹 쉬어야 해요, 승주 씨! 그런데 팀장님, 오늘 오전 회의는 어떻게 할까요? 그대로 진행할까요? 

   기왕 연차까지 냈으니 침대에 누워 회사 메신저만 쳐다보다 하루를 마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리 다짐하며 창가에 섰다. 

   집 앞 도로는 어느 때보다도 분주했다. 가로수며 도로며 그 위를 거니는 동네 주민들까지 모두 소란에 얼마간 흥분한 듯 보였다. 레미콘과 포클레인 행렬이 바람의 길 쪽으로 줄지어 입장하고 인부들이 탄 승합차와 소형 트럭, 자가용 들도 그 뒤를 따른다. 내가 매일 직접 풀고 다시 잠가 두던 걸쇠는 물론 철제 펜스 역시 철거되고 없었다. 팀장이 승주 씨 이번 주 안으로 이러저러한 것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세요 하면 내가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하루아침에 군대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행렬이 단지 안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아마 저기 저쯤, 짙은 녹색 탑차가 주차된 곳보다 약간 앞쪽 그쯤, 빨간 코트와 내가 써 둔 붓글씨가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 옆에 걸어 둔 분침만 남은 벽시계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진입과 퇴각을 오래도록 내려다보며 나는 이것이 이야기 한 편의 마땅한 결말이라고, 이야기 속 어떤 인물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완벽하고 슬픈 마침표라고 생각했는데,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바람의 길이 내게 중요했나? 이야기의 인물로서, 어쩌면 주인공으로서, 무언가 대항을 해야 하나? 펜스가 있던 자리로 가 침을 뱉는 행위라도 해야 마땅할까? 그렇게 무의미하지만 한 개인에게는 절대적일지도 모를 의미를 창출해야 하나? 그것이 이러한 결말을 더욱 세공하는 주인공의 마땅한 도리일까?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고뇌에 빠졌으나 이야기는 이미 나의 고뇌와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나의 것이었던 적이 없다는 듯 확신에 차 ‘안전의 문’으로 입장하는 레미콘의 꽁무니. 나는 대통령과 그의 통치하에 있는 국가에게 이야기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나로서 이 이야기 안에 존재할 수 없고, 그 안에서 이렇게 변해 버려, 이야기가 나의 한참 앞쪽으로 내달려, 나는, 아니, 나는? 아니··· 

   이제부터는 승주의 이야기.


*


   승주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의 체에 걸러져 남은 감정은 머쓱함, 그리고 배고픔,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음 정도였다. 대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라면을 한 그릇 먹자 배고픔은 금세 해결되었다. 그대로 누워 해가 질 때까지 낮잠을 자자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음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머쓱함은 라면을 끓여 먹거나 한잠 자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고 하루가 저물도록 홀로 꼿꼿이 남아 있었으므로 승주는 이 머쓱함이 시간에 풍화되기를 기다릴지, 혹은 타파할 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지 갈등하다 외투를 챙겨 입었다. 머쓱함이 스르르 더 큰 좌절감 쪽으로 번지려는 기미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단지 안은 물론 그 주변까지, 승주가 집 안에서 그 일부를 내려다보던 것보다 훨씬 큰 인파로 북적였다. 공사장 가림막에 완성된 단지 이미지가 인쇄되어 붙어 있었으므로 승주는 횡단보도 너머 펼쳐질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펜스가 철거된 자리에는 화단이 들어설 것이고 그 왼편으로는 5층 높이의 상가가, 상가 내부에는 아파트 주민을 위한 수영장과 헬스장이 들어설 예정이며 이용료는 주민의 경우 50%, 일반 이용객의 경우 추후 공지. 발 빠른 떴다방 주인들부터 방송 기자와 신문 기자들, 첫 번째 내 집 마련의 기대에 들뜬 신혼부부와 투기성 매매를 노리는 전문업자들, 여러 부처의 공무원들까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대단지답게 다채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단지 앞을 서성였다. 

   골바람은 여전했으나 모여든 사람들을 스치는 동안 수없이 굴절되며 약화되었는지 길 끝에 선 승주에게 와닿는 바람은 타고 날아오르기에는 턱없이 미약한 세기였다. 승주는 언뜻 보면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처럼 보일 만큼 살짝 뛰어 보기도 했으나 무거운 몸은 떠오르기가 무섭게 곧바로 땅 위로 가라앉았다. 기왕 이 앞까지 왔으니 [바람 부는 날] 앞까지 걸어 볼까. 그 앞에서 함께 날았던 동료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꼭 대단히 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러나 승주의 진입은 단지 초입부터 보기 좋게 가로막혔다. 비로소 관계자 외 출입 통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는 모양이었다. 

   승주는 단지 둘레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의 길을 알기 전 2년 동안 거닐었던 출근길이었다. 애써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승주는 길 위에 튀어나온 보도블록이나 전압기, 나무 둥치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승주는 때때로 고개를 휙 쳐들어 허공을 올려다보거나 바닥을 샅샅이 살펴 가며 걸었는데, 그렇게 하면 자신처럼 단지 주위를 맴도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여전히 아주 대단히 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땅에 들러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껌딱지, 내가 바람의 길 위에서 만난 적이 있던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빨간 코트가 나와 [바람 부는 날]을 함께 새긴 그 빨간 코트인가? 나무 위에서 목을 놓고 우는 까마귀가 나와 사무실까지 동행 후 귀가하였던 그 까마귀인가? 그러나 모두가 아닌 것 같았고, 동시에 모두가 맞는 것도 같았다. 

   승주는 눈길을 끄는 상대에게 섣불리 알은체를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허공과 바닥, 가로수 위와 둥치, 빈 가게의 유리창 등을 살피는 것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매주 새벽하늘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던 이가 갑자기 자신에게 알은체를 해 올 수도 있으니까. 

   길 건너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승주에게 눈을 떼지 않던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툭툭 잡아당기며 묻는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다녀?

   —어어, 저렇게 걷는 것을 ‘산책’이라고 하는 거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동네 이곳저곳을 살피며 시간을 보내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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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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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습니다 최재영 가끔 인생이 내게 애벌레가 파먹는 중인 사과를 베어 물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선 오늘도 전 세계 기아들이 굶고 있고 남미 쿠데타 정부의 진압 몽둥이에 시민들이 맞고 있으며 전장의 포탄은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 집 안방엔 세 살 연상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비록 내일이면 공룡 박사 딸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흉내 내며 내 턱에 박치기를 날릴 것이고 아내는 원시인 사냥꾼처럼 괴성을 지르며 딸을 쫓을 것이지만··· 서른여섯 살의 나는 대한민국 성남시의 아파트에, 지금 여기에, 우리 세 가족과 잘 있고, 그것참, 다행이다. 내가 베어 문 사과 반쪽에 벌레가 없어서. 뉴스에 어느 북한군이 등장한 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장이었다. 한 북한군이 부상 때문에 낙오했는지 홀로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러시아 것인지 우크라이나 것인지 모를 드론이 공중에서 그를 촬영하고 있었다. 곧 드론은 부드럽게 수직 하강하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쓰으윽- 줌인 됐다. 뉴스 진행자와 패널들이 호들갑 떨었다. “너무나 리얼합니다!” 무슨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오바하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코웃음 치며 손에 든 캔맥주를 쓰으윽- 들이키려다, 멈칫했다. 아는 사람 같았다. 낯이 익었다. * 약 15년 전 여름, 나는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 6여단 영창에 15일간 구금되어 있었다. 죄명은 후임 폭행이었다. 막 상병이 됐을 때 생긴 일이었다. 영창의 개인 감방에 들어서자 정말이지 감옥처럼 생겨서(정말 감옥이긴 했지만)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커덩 자물쇠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스물한 살에 인생이 망해 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감방 철창 너머론 건물의 입구와 헌병 하나가 근무하며 감시하는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을 기준으로 네 개의 감방들이 반원을 그리며 각각 1호 창, 2호 창, 3호 창, 5호 창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4호 창은 없었다, 해병대에선 숫자 4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3호 창에 수감됐다. 감방 안에 앉아 있으면 보이는 건 꾹 닫힌 건물 문, 그리고 중앙의 그 헌병밖에 없었다. 양옆의 다른 감방들은 시야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1호 창과 5호 창에도 수감자가 한 명씩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단 2호 창만은 비어 있다고 했는데 폭행 사건이 일상적이라 항상 미어터지던 백령도 해병대의 영창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듣기론 당시 북쪽 상황이 심상치 않아 각 부대들의 징계 절차가 보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방 안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했다. 폭은 누워서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안쪽으로 세 걸음 가면 구석에 수도꼭지를 비롯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일명 고무신 변기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의 아담한 담만이 가림막을 해 주었다. 큰 것이든 작은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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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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