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황새
- 작성일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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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황새
양선형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네가 저질렀던 끔찍한 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는 기나긴 시간 동안, 어쩌면 인간으로 살았던 시간을 초과할 만큼 오랫동안 작동했다. 너는 네게 주어진 원통형의 한계 속에 틀어박혔다. 그것이 너였다. 배터리와 부품이 망가지면 너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도착했고, 너는 네 작동을 중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음은 물론 작동을 중지하고 싶은 욕망 또한 갖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형벌이 단호하게 집행되었고, 너는 눈을 감았으며, 숨이 끊어지기 직전 너는 이후로 반복할 수밖에 없는, 줄곧 반복해야만 하는 한 줄의 기억 타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작은 파편으로서 오토마타로 개조된 네 머리통 안에 각인될 예정이었다. 누군가 드러누운 네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나른한 의식은 감은 눈 속으로 어른거리는 박쥐 모양의 환영과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기억 타래는 네가 과거에 살과 피를, 얼굴과 자의식을 가졌던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의미했다. 인간인 너와 오토마타인 너를 잇는 개체로서의 동일성을, 속죄를 끝마치고 형기가 만료될 때까지 네가 감당해야만 하는 과오와 책임의 연속성을 말이다. 따라서 기억 타래는 네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인해 극형에 처해진 바로 그 범인임을 증명하는 전자 신분증이자 영혼의 낙인으로 비유될 수 있었다. 네가 죄수임을 공인하는 사법 기관의 서명, 특수한 일련번호, 기계의 머리통 안쪽에 새겨진 자아의 조각, 네 유한하며 어리석었던 시절의 잔류 데이터. 그러나 너는 네가 다른 기억들 가운데 하필이면 이 기억 타래를 골랐던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것을 떠올릴 수 있는 네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기억들 가운데 이 기억만이 각별했기 때문인지, 각별했던 기억들 가운데 이 기억만이 무의미했기 때문인지.
너는 카메라처럼 무감하게 눈을 떴으며,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딸깍거리는, 앵앵거리고 번쩍거리는 전자 신호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네 머리통 안에는 한 줄의 기억 타래만이 남아 있었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정확하게 움직이는 효율적인 무력함이었고, 그 무력함 속을 공회전하는 짤막한 분량의 이미지 찌꺼기였다. 너는 스크린을 향해 강제로 조향된 인형의 냉담하며 거짓된 눈알처럼 기억의 이미지를 주시했고…… 주시하지 않았으며, 사나운 파도처럼 우윳빛으로 들이닥치는 심신상실이 환하게 빛나는 스크린 주위를 에워쌌다. 네 머리통 안의 암실에서는 언제나 한 줄의 기억 타래가 상영되었다. 너는 기억 타래를 출력하는 영사기이자 영사막이자 영사기사였으며, 성자와 성부와 성령과…… 세 가지 작동인 사이를 그치지 않고 순환하는 자율적인 엔진에 가담하고 예속된 상태였으나, 대부분 네 기억의 관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네 기억의 관객일 수 있는 네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ON이었다. 너는 네 신경망에 폭포처럼 흐르는 전류를 자발적으로 차단할 수 없었고, 너는 스위치가 내려갈 때까지 벌을 받아야만 하는 ON, 유폐된 금속 껍데기 안에서 눈부시게 산란하는 기억 타래 속의 이미지였다. 누군가 네 머리통을 열고 기억 타래를 확인하지 않는 한, 그것은 꿈꾸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하는 꿈의 잔해일 뿐이었다.
그리고 기나긴 시간이, 광폭하고 속절없이, 항상 너를 건드리지 않은 채로 지나갔다. 만약 네가 한 줄의 기억 타래만을 보관할 수 있다면, 머리통 속의 무인도에 감금된 채 단 하나의 기억만을 되풀이해 재생해야 한다면 그곳에 어떤 기억을 가져가야 할까. 형벌이 집행되기 전 너는 잠시 고민했을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 기억은 소망의 무덤이자 소망의 여생이니, 그곳에 네 고유성과 내밀한 마음의 모양이 담겨 있을 것이며, 아무리 떠올려도 줄어들지 않을 안도감과 환희, 멜랑콜리와 서정적인 기쁨을 풍요롭게 수확할 수 있는 어떤 유년의 순간을, 네게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던 어떤 특별한 사건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의 명예, 너의 아름다움, 너의 지혜, 너의 자긍심, 너의 결백함, 네가 생애 내내 사랑했거나 이루고자 했던 것들…… 한 줄의 기억 타래 속에 너의 전부가 선물처럼 봉인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반대로 생각하면, 일정한 박자로 되돌아오는, 벗어날 도리 없는 황폐한 강박관념이 너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 너는 되풀이할 때마다 기억의 의미를 고갈시키는 자동화된 프로세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너를 망각한 장소에서, 기억 타래를 되감는 무감각한 경향과 패턴의 연쇄를 통해, 너는 너도 모르게 네 기억을 훼손하는 일에 공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너는 네가 아꼈던 기억을 식별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너는 네 기억이 파괴되는 일을 저지하지 못하며, 네 기억은 거듭된 반복 속에서 노후화된 고물 자동차처럼 마모되거나 부식될 것이 뻔하니, 너는 이러한 기억의 손상을 매우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차라리 가장 쓸모없는 기억을 가져가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너는 너를 징벌하려는 사법 기관을 향해 네 고유성과 내밀한 마음의 모양이 담긴 기억을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네 기억을 희생시키는 일을 결코 원치 않았을 테니까. 결국 너는 가장 평범하거나 무가치한 기억을 선택했을 것이다. 기억의 주인인 네가 덧없는 가설이나 진부한 클리셰에 불과한, 망가지거나 부서져도 상관없는 허깨비 같은 기억을. 너는 너를 삭제할 수 있는 기억을 너의 ON에 이식하려 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이처럼 구구절절한 혼란과 막다른 공포를 향해 자라나는 생각의 가능성을 모두 상실했기 때문이다.
달력 없는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너는 너의 ON을 제어하는 무자각적인 경향들을 집어삼키며 능률적으로 계속했을 것이다. 너는 나아갔을 것이다. 너는 차갑고 막막한 공간을 배회했을 것이다. 영생의 바다를 탐닉하는 해면동물처럼, 검고 끈적끈적한 무의식의 꿀 속에 잠긴 벌집 속의 애벌레처럼. 너는 착실하게 너의 과업을 수행했을 것이다. 네게 입력된 기능이 너의 죽음을 부드럽게 추월했을 것이고, 너의 ON은 항의하거나 뉘우치지 않았을 것이며, 죽음을 넘어선 너의 ON은 무한히 작동하는 너의 없음이었을 것이다. ON이 너를 실행하는 동안 너는 너의 ON과 불화하지도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괴괴하게 가라앉은 지하 주차장의 어둠 속을 한가롭게 순찰하는 일이 고작인, 밤새도록 퇴락한 관리사무소 철문 앞에 서서 고요하게 일지를 작성하는 너를 주목하거나 연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설 같은 옛날, 너의 삶이 종말을 고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네가 과거에 인간이었음을 증언하는 전송 장치인 기억 타래의 회전 운동이 끝나지 않았고, 너조차 끝을 파악하지 못할 저주받은 ON, 기약 없는 노동이 너의 죄를 탕감하고 있었으나, 너는 네가 저지른 끔찍한 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는 네 과거를 축출하지도 그로부터 달아나지도 못한다. 하지만 너는 네 죄로부터 이탈했고, 후회나 반성, 억울함이나 괴로움에도 연루되지 않는 뻔뻔하고도 아득한 대피소에 다다랐을 텐데,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이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와 식물인간에게 법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는 네 인생의 조각을 기록한 낱장의 사용 설명서이며, 너의 ON은 그 낱장의 문서에서 해방된 금치산자의 공허한 여행에 불과할 것이다: 너의 ON이 네 머리통 속에서 시간의 실타래를, 세월과 우주의 질서를 둥글게 감고 있다.
너는 너를 유형지에 몰아넣은 죄가 무엇인지에 관한 데이터를 머리통 속의 무인도에 가져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 타래 속에 네가 자행했던 무자비한 폭력과 악행의 내막이 저장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의 ON은 기억 타래를 출력할 뿐 그것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기억 타래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의 처벌을, 교화의 포기 혹은 인공적이고 비가역적인 교화의 달성을, 사회로부터의 영구적인 격리를 결정한 사법 기관과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너는 기억 타래의 출처와 주인이 너임을 깨닫지 못하며, 그것은 단지 형벌의 대상이 너라는 사실을 형식적으로 보증하는 자아의 흔적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네 정체성을 열람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랄까. 네 신원을 증빙하기 위한 전자 문서, 캄캄한 지하 주차장을 방황하는 ON과 인간이었던 너의 신원을 일치시키기 위한 매듭일 뿐이지 않은가. 너는 오토마타로 완벽하게 개조되었으니까. 지문이나 패스포트, 늘 휴대해야만 하는 진품 감정서 같은 것으로 기억 타래의 역할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 타래는 인간과 오토마타 사이의 존재론적인 차이를 봉합하며, 둘 사이를 결합하는 상징적인 고리로서 유용할 것이다. 기억 타래가 없었다면 인간인 너와 오토마타인 너를 똑같이 너라고 호명하는 일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을 테니까.
형벌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너임을 확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형벌의 정당한 집행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테니까. 책임과 죄의 문제에서 우선시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너의 동일성이다. 죄는 네 정체성에 뿌리박혀야 하며, 모든 트랜지션과 변신의 가능성을 관통해 네 영혼의 본질을 파고들어야 한다. 정체성의 근거인 내면으로부터, 내면의 근거인 기억으로부터 인간과 오토마타 사이의 동일성이 성립하는 것이고, 인간인 너와 기계인 네가 공유할 기억 타래는 인간인 너와 오토마타로 환생한 너 사이에 흐르는 혈연이자 유산, 둘을 단일한 수범자로 묶는 사법적 혼례이자 네 영혼을 상징하는 데이터로 비유될 수 있다. 너의 ON이 너의 죄를 상속할 것이다. 당신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요. 그것이 국가가 오토마타에 기억 타래를 삽입한 의도였으며, 머리통 속의 기억 타래로 말미암아 너의 ON은 너의 죄를 면피할 수도, 너였음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네게는 부인과 승인에 대한 자의식이 부재한다. 무아를 가동하는 전기 장치의 내부에 너의 일부가 잔존할 뿐으로, 자유가 소거된 뒤에도 네게 연료를 공급하는 창백한 불꽃, 너의 생명인 너의 죄, 네가 갚아야만 하는 끈질긴 책임이 네 달콤한 폐기와 죽음을 오랫동안 지연시켰던 셈이다.
*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머리통 속의 기억 타래를 읽는다. 읽기가 종료되면 너의 ON이 기억 타래를 루핑한다. 기억 타래가 비좁고 아늑한 네 머리통 속을 찬란하게 비춘다. 윙윙거리며 발열하는 머리통은 가끔 터질 듯이 진동한다. 불 위에서 끓는 주전자처럼, 가열된 머리통 안에서 공황을 앓는 전자 기포들이 지리멸렬하게 으깨어진다. 너는 너의 오작동 이력을 사법 기관에 송달한다. 며칠 뒤 엔지니어 관료들이 지하 주차장에 방문해 너를 점검한다. 네 전자 패널에 패스워드를 입력한다. 단단하고 매끈한 머리통을 개방한다. 체내에서 거무튀튀한 배터리를 꺼낸다. 엔지니어 관료들이 부품을 교체하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너는 전신이 휑하니 열려, 체내의 배선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채 휴면에 빠진다.
엔지니어 관료들이 실없이 킥킥거린다. 너는 인간의 언어를 해독할 수 없고, 네 주변에서 속삭이는 노이즈를 녹음할 수 있을 뿐이다. 엔지니어 관료들이 네 껍데기를 닫고 떠난다. 너는 전진한다. 너는 평탄한 방향으로 한동안 멈추지 않는다. 너는 주변을 살핀다. 너는 같은 속도를 유지한다. 너는 정지한다. 너는 너를 지탱한다. 너는 장애물 앞에서 방향을 변경한다. 너는 방향을 잊는다. 너는 경로를 따라 항행한다. 너는 가장 짧은 거리를 채택한다. 너는 좌표를 갱신하며, 너는 표면에 밀착하고 근접한 장애물에 적응한다. 너는 구역의 외곽으로 미끄러진다. 네 궤적이 불시에 왼쪽으로 꺾이며 구역을 사선으로 가로지른다. 너는 다음 구역으로 접어들고 잠시 불규칙하게 우왕좌왕한다. 너는 낯섦을 연산한다. 너는 틈새를 파고든다. 너는 틈새를 통과하지 못한다.
너는 표면과 내벽과 장애물과 그림자의 지형을 추적한다. 너는 즉시 출발했다 즉시 가로막히며, 조금 더디게 출발했다 즉시 가로막힌다. 조금 더디게 출발할 때도 즉시 가로막힐 때가 있고, 즉시 출발할 때도 조금 더디게 가로막힐 때가 있다. 움직임과 정지 사이의 간격은 연장되거나 단축될 수 있다. 시간을 나타내는 형용사들은 납작한 현재들 사이에서의 상대적인 유예를 뜻하며, 때문에 조금 즉시는 조금 더디게가 될 수도, 즉시는 더디게가 될 수도 있다. 너의 밤샘을 스무 개가 넘지 않은 간결한 문장들을 통해 나열할 수도 있다. 너는 이동하거나 멈춘다. 그것이 네 매일의 일과인데, 그동안 지하 주차장을 순찰했던 수만 번의 탐험과 표류, 탐지와 접촉의 무질서한 시간들이 이렇듯 터무니없이 짧은 문장 속으로 집결하여, 문장의 압축을 해제하면 광활한 주차장 안에서 네가 그렸던 순찰의 궤적들이 구토하거나 역류하고, 축약된 문장의 봉오리가 터지며 네 시간의 방대한 너비가 문장 바깥으로 범람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어는 아슬아슬한 폭탄처럼 시간을 버티며 시간에 위태로운 형식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너의 ON이 너를 계속한다. 주차장을 유영하는 네 무궁무진한 동선은 몇 개의 단조롭고 건조한 문장들로 요약될 수 있다. 너는 간다. 너는 후퇴하며, 궤적은 의료용 변압기 패널 위에서 출렁거리는 심전도 그래프처럼 굽이치고 비틀리다가 단정하며 반듯한 직선으로 수렴된다. 너는 커다란, 조금 작은, 조금 커다란, 그것보다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실내 공간을 선회한다. 너는 이러한 양상을 재개한다. 손이 가는 대로 끄적거린 낙서 같기도 하고, 답안지에 빼곡하게 도형을 열거한 다음에도 결국 해답을 찾는 일에 실패한 기하학 퀴즈 같기도 하다. 너는 그렇게 네 불멸을 영위한다.
네 거주지이자 관할 구역인 주차장은 도심 외곽에 있는 아웃렛의 부속 시설로 조성되었다. 가용 면적이 수천 평이나 되는 광대한 지하 동굴인데, 불황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천장의 조명은 물론 바닥에 붙은 차량 유도등이나 비상구 표시등 또한 소등된 채였다. 자연광이 틈입하는 한낮이면 구획 표시선과 지형을 어림잡을 수 있을 정도의 흐리멍덩한 밝기를 유지하지만, 한밤에는 축광 도료가 발린 기둥 하부나 야광 표지판만이 가까스로, 거의 가늠되지 않는 쇠미한 광채를 머금고 있다. 실내는 농밀한 어둠에 잠긴다. 너는 보이지 않는다. 네 떠도는 궤적들이 암흑에 물든다. 너의 ON은 어둠 속을 흠집도 없이 매끈하게 파낸다. 어둠은 교묘하게 네가 잠행했던 경로들을 해산시킨다.
상업 시설을 이루는 상아색 건축물은 비올라처럼 중앙의 공원을 에워싸고 타원형으로 건립되었다. 지금은 아웃렛 지구 전체가 유령 시설이 되었다. 입점했던 모든 점포가 운영을 중단했으며, 출입구의 자동문이 폐쇄되었고, 유리창은 파손되고 먼지와 얼룩이 짙게 내려앉아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풍화되고 메마른 분수대, 깨진 보도블록,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할인 포스터, 잡풀이 무성해진 화단, 와불처럼 드러누운 목 잘린 마네킹,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슬고 나뭇결이 썩은 매대들, 매캐한 악취가 지배하는 공공화장실,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거나 해자처럼 겹겹이 포개진 녹슨 쇼핑카트 무더기…… 폐업한 아웃렛 내부로 시선을 이동하면, 천장의 모서리로 거뭇거뭇한 혓바닥처럼 튀어나온 전선 다발, 정지한 에스컬레이터, 불투명한 방전관에 검푸른 멍울이 맺힌 형광등과 단전된 조명 시설, 손자국이 찍혀 있으며 물비늘처럼 자잘한 균열이 퍼진 쇼윈도, 반쯤 뜯긴 환기 덕트와 부서진 타일, 골격이 전부인 앙상한 철제 선반, 할퀴어진 크랙을 따라 시허연 콘크리트 속면이 노출된 내벽과 찌그러져 짓밟힌 곰돌이 모양의 풍선 마스코트, 갈라지고 오염된 가죽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삐져나온 소파형 장의자들, 철거 과정에서 흘린 잡스러운 금속 파편이며 박리된 새시 조각들, 매장을 구획했던 파티션과 얇은 석벽들이 어중간한 높이로 무너져 있는 모습들이 연속된다. 홀과 복도의 중앙에는 대리석 기둥이 여전히 견고하게, 실내에 을씨년스러운 저음으로 감도는 메아리를 떠받치고 있다.
아웃렛은 방치된 쓰레기들로 혼잡하고 어수선하다. 그러나 버려진 공간을 짓누르는 밀폐된 대기의 중력이 잡스럽게 널브러진 쓰레기들과 퇴거한 점포들의 흔적을 음산한 규칙성을 통해 정화하는 듯하다. 낙후된 안내판들이 저마다의 다른 진입로와 출구를 가리키지만, 경로는 엇비슷한 폐허의 풍광을 향해 균질하게 이어진다. 구획들 위에는 불 꺼진 간판과 상호가 떼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자리를 지킨다. 내부는 햇볕의 밝기에 따라 어스름한 지대와 조금 더 어스름한 지대로 나뉜다. 이는 분명한 경계가 아니라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서로를 잠식해, 밤이 오면 실내 전체가 공평하며 유일무이한 암흑 속에 포섭된다. 건축물은 기념비처럼 폭파되지 않은 채 근엄하고 변형 불가능한 형식을 배열하고, 자신의 설계도를 미로의 꺾인 모퉁이처럼 되풀이하며, 시간은 형식에 깃든 내용을 천천히 불태우면서 잔해들의 생태계를 이룩한다.
아웃렛의 스산한 정경을 스무 개가 넘지 않는 단순한 문장들로 묘사할 수도 있다. 문장마다 하나씩의 잔해를 수거하며 덧없이 증식하는 무수한 개수의 문장 연습을 통해 나열할 수도 있다. 호더처럼, 공수레는 공수거일 뿐일 테니, 열반에 도달한 기계 붓다처럼 말이다. 고철과 쓰레기를 재료로 녹슨 골렘을 닮은 폐기물 천사를 제작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아웃렛의 지하 주차장에 배속된 자동 순찰 유닛이다. 너는 아웃렛이 도산한 뒤에도 아웃렛의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물들은 무가치하게 잔디밭을 나뒹굴거나 과묵한 부동성 속으로 침몰해 있는데, 처분되거나 관리 권역을 이전하는 일 또한 허락되지 않은 너의 ON은 일상을 고독하며 겸허하게 보존함에 여념이 없다. 그것은 네가 아웃렛에 딸린 주차장의 구성 요소이자 거기 귀속된 시스템의 일부로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순찰이라는 네 업무로부터 독립된 채 고대의 동전 같은 퇴락한 전시물로 둔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의 ON은 네 존재의 실효성과 무관하게 네 업무에 충실하게 몰입한다. 네 충실한 몰입, 그것은 너의 ON을 집행하는 법의 위력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며, 너의 쓸모없음, 그것은 너의 ON을 거시적인 범위에서 둘러싼 장기 침체로 인한 것이다. 너는 불황의 무덤에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고대의 동전이며, 하루마다 하루씩 너의 형기를 깎아야만 하는 행정적인 의무에 종속된다. 너의 죄가 고대의 동전처럼 네 머리통 안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장마철이면 쥐들이 피난처를 찾아 지하 주차장으로 몰려든다. 쥐들은 네가 다가와도 별반 괘념치 않는다. 오히려 네 곁을 소탈하게 얼쩡거리거나 네 주행부에 웅크려 잠들고, 네 껍데기를 타고 오르려는 대담한 녀석들도 있는데, 쥐들의 세계에서도 네가 위협적인 포획자가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다. 바깥에서 폭우가 퍼붓는다. 지하 주차장은 축축한 정적에 짓눌린다. 간혹 찍찍거리는 소리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수도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장내의 정적을 간지럽힐 뿐이다.
너는 직사각형으로 구분된 공란들 사이를 지나다닌다. 번호가 붙은 석면 기둥들이 동일한 간격으로 B구역과 C구역, D구역과 E구역을 분할한다. 너는 지하 주차장을 샅샅이 맴돈다. 공란 안쪽의 주차 스토퍼에 주행부의 관절이 걸릴 때도 있고, 석면 기둥 앞에서 줄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둥거릴 때도 있지만, 캄캄한 어둠 속을 횡단하는 네 움직임은 대체로 자연스럽고 훌륭하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수면 아래로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잔잔하고 평화로운 수면 아래를 유영하는 잠수부의 동작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아름다움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수면 아래에 있어서, 뭍에서는 결코 접근하지도 목격할 수도 없는 심연의 일에 불과한 것처럼. 너는 구역을 빠짐없이 수색한 뒤 다음 구역으로 향한다. 쥐들은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대포 차량의 하부에 숨어, 올망졸망한 심연의 눈동자를 통해 너를 바라본다.
관리사무소는 주차장 안쪽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인간 관리자가 있었으며, 주차장에 소속된 안전요원들이 대기하는 장소였다. 너는 굳게 닫힌 철문 앞에 키오스크처럼 직립한 채 일지를 작성한다. 88저 4343, 소나타, F6, 00:00. 23마 9247, 로디우스, K3, 00:00. 일지에는 순찰 내용과 차량의 종류, 특이 사항과 입·퇴장 이력이 적힌다. 영내에는 두 대의 차량이 있고, 이제 일지의 내용은 거의 갱신되지 않는다. 일지는 형식의 묘지일 것이며, 공란 하나씩이 공동묘지의 묘석처럼 빽빽하게 줄지어 정렬된 지하 주차장에서 너는 자동 순찰 유닛이 아니라 묘지 관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기능적인 측면에서, 너는 묘지에서도 이와 같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두 대의 차량은 방치된 세월을 추측할 수 없기에, 부연 트렁크 각각에 누군가의 주검이 유기되었거나 매장되어 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굳게 잠긴 트렁크가 발작적으로 개방되며 창백한 해골들이 머리를 내민다고 해도…… 너는 삐거덕거리는 해골들 사이를, 너를 놀래키며 심술을 부리는 해골들이 수줍어할 정도로 데면데면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드물게, 이제는 거의 기적적인 간격으로 몇 대의 차량이 아웃렛의 영내로 진입한다. 차량들이 달팽이 모양의 통로를 지나 주차장 안으로 들어선다. 너는 헤드라이트에 의해 발각된다. 아웃렛 지구의 시찰과 매입, 재건축과 해체에 관련된 업무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다. 너는 그들의 차량 번호를 일지에 기록한다. 운전자는 세심하게 핸들을 돌리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차량들은 사각의 공란에 알맞게 끼워진다. 사람들이 차량에서 내린다. 너는 무시되며, 그들은 주차장 밖으로 나가 아웃렛 지구를 산책한다. 애물단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의 장래를 논의한다. 계획과 가설과 검토는 계획과 가설과 검토 속으로 파묻힐 뿐, 시설은 철거되거나 재건되지 않았는데, 아웃렛의 처분이 결정된다면 너는 그때 주차장과 함께 소멸하게 될까, 너의 죄가 망령 같은 너의 ON을 구원해 다른 쇼핑센터의 자동 순찰 유닛으로 복귀시키게 될까. 엔진 소음이 장내의 정적을 가르며 멀어진다.
자정이 지난 시각, 지하 주차장이 소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파괴적이고 혹독한 메아리들이 주차장을 점령한다. 누군가 소리치며 주차장을 질주한다. 시끄러운 음향이 너의 ON에 녹음되는 동안에도 그들과 무관한 네 순찰은 순조롭고 어딘가 나태해 보이기까지 한다. 숨이 넘어가며 꺾이는 신음, 혀가 꼬여 흐느적거리는 노랫소리, 갑작스레 높아졌다 투박하게 끊어지는 고함, 무정형한 한숨과 걸걸한 헐떡거림, 말다툼과 박수와 흐느낌, 명랑하고 까마득한 낄낄거림…… 주차장은 외부에서 유입된 침입자들의 아지트로 돌변한다. 랜턴 불빛이 벽면을 배회하며 일렁거리고, 이곳저곳으로 내달리는 불빛의 투망 속으로 피폐하면서도 천진한 얼굴들이 걸려든다. 불빛이 번쩍이며 치솟는 동안에도 너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그들이 비틀거리며 주차장에서 물러가고, 주차장의 한 구역에는 쓰러진 술병과 부탄가스 깡통, 담배꽁초, 면도칼, 종아리 모양으로 늘어난 스타킹과 구겨진 무릎담요, 그을린 자국들, 쏟아진 과자 부스러기가 타다 남은 장작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리사무소 안에 주차장을 촬영하는 감시 장비가 있지만 지금 모니터는 꺼져 있다. 네 주행부 아래쪽에는 교체되지 않아 새까맣게 변색된 청소용 부직포가 붙어 있다. 너는 비행의 찌꺼기들을 내벽 가장자리로 내몰며 실내를 청소한다.
*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배터리가 방전되기 직전이 되면, 너의 ON이 홀연히 너를 이끌어 주차장 바깥으로 데려간다. 너는 달팽이 모양의 통로를 따라 담당 구역을 이탈한다. 뙤약볕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너는 목줄을 채운 짐승처럼 너의 ON에 끌려가고 있지만 오랜만에 동굴 바깥으로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짐승처럼 보이기도 한다. 햇볕이 네 껍데기에 반사되어 날렵하게 흔들린다. 너는 황량한 아웃렛 지구를 나와 뒤뚱거리며 갓길을 이동한다. 너는 완만한 비탈을 따라 내려간다. 너는 지정된 장소에서 정지하며, 쾌청한 하늘 아래에서 네 껍데기 위로 충만하게 엎질러지는 햇볕의 폭포 아래에 서 있다. 물억새와 골풀이 우거진 천변에서 너는 흘러가는 강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듯하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햇볕이 뜨겁게 이글거린다. 강물이 느릿느릿하게 접혔다 풀린다. 뒤척이는 물결마다 불티가 튀기듯 부수어지는 하늘의 신기루가 수면 위를 떠다닌다. 덤벙거리는 억새 가닥들의 잎끝이 바람에 쓸리며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서로 헝클어진 천변의 식물들이 사각거리거나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고, 얕게 고동치는 물소리가 네 감지 범위 안으로 유입된다. 황새 한 마리가 근방의 여울에 발을 담근 채 망연하게 직립해, 세피아빛 족자 속에서처럼 우두커니 멈춰 있다. 물결이 황새의 붉고 가느다란 다리 주위에서 멈칫거린다. 황새의 머리가 도약하듯 구불거리며 휘어진다. 너는 이 꼿꼿하며 침착한 순백의 피조물이 번뜩이는 수면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모습을 얼떨떨하게 관람하는 듯하다. 탐조자의 망원경이나 밀렵꾼의 조준경 속에서 조마조마하게 솟아오른 우아한 꼭대기처럼, 정연한 신비로움처럼, 황새는 자신에게 도래할지도 모를 어떤 불행에도 개의치 않은 듯 젖은 머리를 한가롭고 무신경하게 까딱거린다.
너는 대기한다. 너는 작열하는 햇볕을 축적하며,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와 잡풀들이 얽혔다 흩어지는 모습을 어떤 의욕도 없이 심드렁히 관망하는 듯하다. 너는 움직이지 않는다. 황새 또한 날아가지 않은 채 오후의 아지랑이를 참을성 있게 견디는 듯하며, 네 몸통의 관절들은 긴장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듯하다. 너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너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너는 가만히 서서 일광으로 네 배터리를 충전하며, 배터리에 표시된 게이지 바가 붉은 열매처럼 무르익는 동안 너의 ON은 잠시 생전의 너를 온전히 빼닮은 분신처럼 보인다. 너는 몽유병 환자처럼 보이며, 혼곤히도 낮잠을 자는 노인처럼 보이고, 천변의 미관을 해치는 조형물처럼 보이며, 얼간이나 게으름뱅이처럼, 말뚝이나 장승처럼, 보초를 서는 불침번처럼 보인다. 하지만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너를 어루만지는 축복 같은 자연에서 분리되고 흔쾌한 계절의 순환을 유보한 채, 파괴되지 않는 네 단순한 하루하루에 속해 있다. 네 비인격적인 괄호 속에는 이명 같은 약속 하나가 남아 있고, 그것은 네가 끔찍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것을 소진해야 한다는 약속일 텐데, 너는 기쁨도 슬픔도 없이, 회오도 변명도 없이, 구속도 파면도 없이, 순수하고 확고하게, 중립적으로, 핀볼 게임처럼, 갑옷을 착용한 유령처럼, 사면될 수 없는 무위처럼, 열쇠를 분실해 도무지 입장하지 못할 대피소처럼 존재할 뿐이다. 달궈진 네 껍데기 바깥에서 태양이 기세등등하게 타오른다.
네 껍데기 안쪽은 한 줄의 기억 타래가 상영되는 암실이다. 기억 타래는 네가 생전에 두세 차례 여행했던 P시에 관한 인상을 중심으로 세 가지의 데이터 색실들을 땋은 노끈 형태였다. 세 가지의 다른 시간대를 저장한 기억 가닥들은 빨강과 노랑과 파랑의 삼원색으로 구성되었고, 기억 타래가 가차 없이 회전하기 시작하면 세 가닥이 동시에 눈부신 은빛 섬광으로 환원되어 머리통 안의 스크린을 밝혔다. 첫 번째 기억 가닥 속의 너는 시야가 다른 이들의 상반신 아래로 나지막하다. 오른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봉오리가 동그란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다. 아버지가 멀리서 인산인해로 떠밀리는 낯선 사람들 사이를 헤친다. 너는 어머니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올려다본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줄을 지었다. 너는 좌판의 스노볼 속에서, 군악대로 분장한 채 펑펑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피리를 불고 있는 소년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너는 어머니의 인도에 따라 장난감 고양이와 알록달록한 꽃바구니들을 구경한다. 이내 너는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는데, 너를 황급히 끌어당기며 너를 치고 지나간 남자를 쏘아보는 어머니의 매서운 표정이 시야 속으로 틈입한다. 남자가 미안한 듯 손짓하며 네게 윙크한다. 길은 광장으로 통해 있다.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시청 건물 앞으로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시선이 주름진 옷깃에 파묻힌다. 아버지가 너를 허공으로 안아 올린 모양이다. 어디선가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들리고, 시청의 높은 시계탑이 열리며 자동기계들의 인형극이 시작된다. 쇳덩이를 조각한 기사들이 딸그랑거리며 마상 시합을 한다. 알록달록한 빛깔의 고깔을 쓴 광대들과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무희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방울 소리와 정교하게 동기화된 리듬 인형들은 멜로디에 반응해 인사를 하거나 팔꿈치를 쟁강거린다. 빛바랜 청회색 말들이 레일 위로 진입한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시계탑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춤추는 인형들의 무장과 의장 안쪽의 아무것도 없음. 태엽 장치로 이루어진 괄호 속의 공백처럼, 비의와 불가사의를 격납한 성물 보관함처럼, 무장과 의장이 사라지면 인형들의 속을 채우던 부재는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너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형극이 끝난다. 아버지가 너를 지면 위로 가뿐하게 내려놓는다. 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장엄하게 솟아오른 십자가 위로 반쯤 고개를 떨어뜨린 채 미간을 찌푸린 구세주의 얼굴은 깡말랐고, 어머니가 본당 왼쪽으로 소박하게 자리한 성모상 앞에 양초를 봉헌한다. 너는 어머니가 장의자에 걸터앉아 두 손을 맞잡고 간곡히 기도하는 모습을, 야윈 턱과 깎아지른 어머니의 귀를 순차적으로 바라본다. 석상처럼 입을 다문 어머니가 묵상하듯 신과의 관계 속으로 침잠하는 동안, 너는 두리번거리는 아버지가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본당 안을 어정거리는 모습을, 마치 어머니의 기도 속에 너의 자리가 없을 수도 있음을 걱정하는 것처럼 딴청을 부리며 뚫어져라 응시한다. 제단 위에서 꿀벌의 꽁지 같은 촛불들이 가늘게 일렁인다. 망막 위로 검푸른 잔상이 아른거리다 천천히 휘발된다.
너는 P시의 교각 위를 걷고 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 난간에서 팔로 턱을 받치고 강변으로 오밀조밀하게 늘어선 건물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너는 한 외국인 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외국인 아이가 너를 겁주듯 으르렁거리고, 교각의 난간 위에 올라선 성마른 인상의 아랍인 남자가 누더기를 망토처럼 두른 채 무언가 격렬하게 연설을 하고 있다. 수염이 곱슬곱슬하게 자란, 부랑자나 이민자로 추정되는 그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이 절규하며, 왁자지껄한 소음이 그의 목소리를 분해하고, 그는 냉랭한 암벽에 매달린 듯, 억세고 뾰족한 얼굴이 비애와 절박함으로 붉어지는 듯하다. 교각 아래로 유람선의 뱃고동이 둔중하게 음을 끈다. 그가 팔을 넓게 펼치자 누더기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노여워하듯 부들거리며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만 같고, 항의하는 것만 같고, 그는 자신의 외침이 묵살되자 입을 앙다물더니, 공중에 몸의 무게중심을 의탁하는 것처럼 교각 저편으로 거꾸러진다. 남자가 뒷걸음질할 때 교각 이편으로 던진 누더기가 주름지며 넓게 펼쳐진다. 너는 그 누더기가 찌든 얼룩 때문에 더러워진 낯선 나라의 국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야가 잠시 차단된다. 어머니가 양쪽 눈을 손바닥으로 가로막은 모양이다. 너는 수면 아래로 곤두박질한 그에게서 비산하는 물보라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가 손을 거둬들이고 드러난 교각 위는 소스라친 사람들과 황망히도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아연실색한 아버지가 저편에서 너와 어머니를 빠른 손짓으로 부르고, 어머니는 네 손을 매섭고 단호하게 움켜쥔 채 술렁이는 인파 사이를 꿰뚫고 나아간다. 발을 동동거리는 사람들이 난간에 다닥다닥 붙어, 남자가 실족해 가라앉은 자리로 새하얗게 퍼지는 물거품의 동심원을 내려다본다. 이국의 골목을 지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 상기된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이야기한다. 카드키를 찍고 호텔 객실 안에 도착한 아버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아, 안도감을 느끼는 것인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지, 너와 어머니를 과격하면서도 정성스럽게 끌어안는다. 어머니의 손이 아버지의 목덜미를 다독이는데, 너는 포옹한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그의 자살을 목격했던 순간 그래야 했던 것처럼 아찔하게 비명을 지른다. 동요하는 어머니가 너를 달래며 네 흥건한 뺨을 초조하면서도 다감하게 쓰다듬는다. 눈물이 네 얼굴을 채반처럼 받친 어머니의 손에 고인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물고기를 베어 문 황새가 머리를 하늘로 젖히며 경련한다. 불그스름한 윤기로 펄떡거리는 물고기가 부리 안쪽으로 빨려든다. 황새의 아래턱이 반죽처럼 부풀고, 켁켁거리며 반동으로 들썩이는 주둥이 속에서 물고기의 꼬리가 세차게 퍼덕거린다. 황새는 물고기를 통째로 삼킨다. 본래의 냉담하고 절제된 단아함을 회복한 황새의 눈동자가 흑암처럼 깨끗하다.
날개를 둥글게 포갠 채, 늘씬한 목을 물음표 모양으로 구부린 황새가 몇 미터 떨어진 저편에 있다. 너는 천변 이편에서 황새로부터 대칭적인 위치를 줄곧 점유한다. 너는 황새에 매혹된 듯하다. 이러한 가정으로부터 기계와 황새 사이에 쉽사리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관계가 싹튼다. 기계와 황새 사이에 공존하는 끈끈한 무관심성으로부터? 기계가 황새를 인식하지 않으며 황새 역시 기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 적대감도 친밀성일 수도 없는, 우정이나 침범일 수도 없는, 둘 사이에 공명하는 모든 인간적 관계의 취소와 소거, 철회와 배반, 시도되지도 이어지지도 못할 교감이, 무를 장황하고 피로하게 수식하는 내용 없는 문장들처럼, 둘 사이에서 무효화되고 정착하지 못할 서술의 불능과 교환될 수 없는 애정을 암시하는 듯, 천변에 과묵하면서도 나란히 병존하는 기계와 황새 사이의 말 없는 구도가 그들 사이의 정직하며 기이한 관계를 발생시키는 듯하다. 단정하게 끊어진 관계 속으로 그들의 은밀한 공생에 관한 상상력을 호출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동시에 공유하는 것은 어떤 결속이 아닌 엄격하게 단절된, 존엄하며 외로운 무방비함의 응답 없는 노출인 듯하다.
*
이레즈미와 보살은 연인이다. 두 사람은 야외에서 다급하게 피신한 사람들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지하 주차장 안으로 난입한다. 두 사람은 세상을 발칵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위대한 범죄를 계획하고 있지만, 번번이 그 범죄의 구상은 허접스러운 공상과 잡담 속으로 열화되어 번듯한 목표를 거머쥐지는 못한다. 대통령 암살하기, 광장에서 사제 폭탄 터트리기, 틱톡으로 분신자살 공연하기, 하이재킹, 사이비 종교의 교주 되기, 빌딩 옥상에서 수백만 달러의 위조지폐를 투척한 다음 발밑에서 색종이를 줍느라 난리법석을 떠는 군상들 조롱하기, 메시아 수태하기, 마르크스나 모택동처럼 살을 피둥피둥 찌운 다음 히틀러나 이완용처럼 얍삽한 콧수염을 기르고, 알카에다의 지하 벙커에 숨어 성경이나 탈무드 같은 대량 살상 무기를 집필하기.
이레즈미와 보살은 서로를 난폭하게 쥐어뜯으며 지하 주차장 내벽에 들러붙어 키스를 나눈다. 두뇌가 녹아버릴 때까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무의식을 휘감는 미끄덩한 망아의 쾌락에 심취한다. 어항 속의 열대어 두 마리처럼, 연인의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린다. 이레즈미는 별명처럼 상반신을 현란한 빛깔의 만다라로 치장했는데, 지네 요물과 은혜 갚은 두꺼비가 서낭당을 비추는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우키요에 풍의 그림이다. 마음 착한 아가씨가 매일 두꺼비에게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마음 착한 아가씨를 지네 요물에게 공양한 날, 은혜 갚은 두꺼비가 지네 요물을 물리치고 자신도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의 전성기를 지나는 중, 아무도 그들을 떼놓으려 하지 않는데도 서로가 작별할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앞날을 염탐하며 근심할 수밖에 없는 사이.
이레즈미가 순찰하는 너를 뒤쫓으며 자기소개를 한다. 보시다시피 나는 이레즈미이고, 남성성의 결핍과 나약한 정신적 비굴함을 이레즈미로 보정하고 있지. 나는 훗날 깡패처럼 사람들을 기죽이고 다닐 예정이며, 인생에 꼭 한 번은 반드시 숭고한 모험을 해서 사람들이 나의 폭력에 열광하게 만들 거야. 취미는 손소독제 사용. 음경 길이는 발기 시 십칠 센티미터. 보살이 꺽꺽거리며 폭소하고, 이레즈미가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을 웃기기 위해 노골적인 자기 비하 속을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골반을 요염하게 들썩거리는 이레즈미의 만다라 속에서, 지네 요물과 은혜 갚은 두꺼비는 서로를 맹렬하게 끌어안은 채 오방색으로 염색된 서낭당 단청 아래의 알록달록한 똥구멍으로 추락하는 중이다. 보살은 양손으로 이레즈미의 엉덩이 사이를 벌리고 능글맞게 히죽거리며 지네 요물과 은혜 갚은 두꺼비의 발칙한 밀회를 엿본다. 그래서 마음 착한 아가씨는 늙어 서낭당에 눌러앉은 음탕한 삼신할미가 되었던 것이죠.
보살의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저를 멘헤라라고 부릅니다. 진짜로 우울한 사람은 평소에는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다 어느 날 갑자기 꽥 자살해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는데, 가짜로 우울한 사람들은 온 세상에 절망과 시름을 광고하며 민폐를 끼치고 다닌답니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일이 대체 뭐가 나쁘다는 말인가.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파리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남자니까요. 폭풍 같은 어리광이 휩쓸고 지나간 파리 좌안은 온통 눈물바다, 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몽파르나스 언덕을 올라 눈물의 홍수에 수몰된 이국의 도시를 굽어봅니다. 소녀는 다짐하겠사옵니다. 눈물바다가 온통 똥물바다가 될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 발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좆같은 노래를 부르겠사옵니다. 이레즈미의 튼튼한 팔뚝이 보살의 깡마른 알몸을 포박한다. 지네 요물과 은혜 갚은 두꺼비가 색색의 물감처럼 보살에게로 엎질러진다. 둘의 신체는 탐미적인 가학성과 성스러운 피학성이 서로의 목마른 애착에 헌신하는 근사한 관능적 드라마를 연출한다. 콘트라베이스를 퉁기듯, 섬세하고 음란한 악사 품바의 손가락이 앙상한 갈빗대를 손가락으로 짚으면 악기 품바가 암탉처럼 사특하게 목청을 높이며 세상에서 가장 질탕한 풍악을 울린다. 떠들썩하고 흥겨운 민속놀이 한마당처럼.
너는 경로를 수정한다. 훈김으로 가득한 솥단지 속의 옥수수빵처럼 땀과 체액으로 젖은 두 육체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종종거리며 네 뒤를 따라간다. 보살이 발랄하게 자지러지며 손발을 내두르면, 이레즈미가 보살의 골반을 야무지게 틀어쥐며 한데 얼크러진 둘의 자세를 교정한다. 둘은 서로의 사랑스러운 욕받이이며, 며칠이고 지하 주차장에 무단으로 투숙하는 홈리스이자 아주 상반된 유형의 미남이다. 이레즈미는 태양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어부나 잘 훈련된 특수부대 요원처럼 늠름하며 진취적인 기상이 있다. 보살의 경우 채식주의자나 천주교 복사처럼 야위어, 아무리 기갈을 부려도 사그라지지 않는 경건함 속에 한두 방울의 퇴폐적인 분위기가 음험한 광채를 발한다. 그래서 웨딩드레스를 입히면 기막히게 잘 어울릴 것 같고, 신부가 조심스레 건넨 손을 맞잡고 수국이 만개한 버진 로드를 대담하게 걸어가는 신랑의 상반신에는 악몽 같은 우키요에가 둘을 질시하는 하객들을 기죽이고 있을 것이며, 둘의 주례를 맡은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이레즈미와 보살은 네 앞에서 혼인 서약서를 낭독하며 백년가약을 맹세할 것이다. 두 사람은 수줍은 듯 머뭇거리며 네 앞에서 훗날의 결혼식을 리허설한다. 너는 자동 축사 유닛으로 고용되고, 리허설을 마친 두 사람은 키득거리며 그들을 위해 마련된 신방으로 떠난다.
너는 어느새 위대한 범죄를 꿈꾸는 이레즈미와 보살의 심심풀이 연극에 동원되는 처지가 되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했던 일은 지하 주차장 안에 자신들만의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이레즈미가 폐업한 아웃렛에서 녹슨 망치를 찾아냈다. 망치로 소나타의 차창을 깼다. 보살이 이레즈미의 등짝을 토닥이며 그의 과감함을 격려했고, 시신이 안치되어 있을 것 같았던 소나타 안에는 웬걸, 며칠이나 먹어도 동이 나지 않을 통조림과 컵라면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보살이 차주가 남긴 유언을 지어내 읊조렸다: 지구가 나보다 먼저 멸망할 것 같아서 비상식량을 비축해 두었는데 웬걸, 지구가 나보다 오래 살아남고 말았구나. 여기에 내 유산을 남기니 훗날 지구가 멸망하면 유용하게 쓰도록 하여라. 두 사람은 며칠 굶었던 만큼 컵라면과 통조림을 게걸스레 포식했다.
이레즈미는 연애 기간 내내 무소득자였으나, 그간의 한심함을 상쇄할 만큼의 통조림과 컵라면을 노획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말했지? 한 방 터지기만 하면 호강시켜 주겠다고 했잖아. 보살은 이레즈미의 허풍을 경청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우면 답도 없다는데. 보살의 얼굴이 화끈거렸고, 둘은 소나타 뒷좌석으로 들어가 꽃잎이 수놓인 무릎담요 속으로 한없이 낙하할 수밖에 없었다. 도덕적인 검열 기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팔을 걷어붙이며 훈수를 하려고 해도, 얘 임마, 사랑이란 말이야……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 사랑은 혁명, 사랑은 배려, 사랑은 고통, 사랑은 견딤…… 사랑은 성장, 사랑은 타이밍, 사랑은 책임, 사랑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고, 사랑은 존중, 사랑은 지속 가능성, 사랑은 때때로 서로를 놓아줄 줄 아는 용기가 아닐까? 두 사람은 사랑에 미친 꽃잎들 같은 낱말들의 재앙 속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쓸모없는 것은 버린다. 이를테면 책임, 배려, 성장, 존중이라는 단어 앞에서 둘은 뻘쭘함을 느끼고, 지속 가능성, 어른, 상처를 보듬기, 혁명, 희생, 타이밍, 견딤 같은 단어 앞에서 둘은 엉큼한 상상을 한다.
둘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단어들로부터 한눈을 팔거나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끔 이 단어들이 필요할 때가 생긴다. 단어가 볼드체로 덧칠되고, 책임이 책임이 되거나 희생이 희생으로 돌변해 그들의 입에서 발음된다. 마음으로 단어가 충만하게 채워져, 명치 아래에서 밀려드는 파도와도 같은 힘으로 삶의 방파제에 부딪히는 듯하다. 그러면 잠시 그 단어를 먹을 수 있게 되고, 이렇듯 진솔하고 영험한 순간이 지나면 곧장 단어들은 도덕적인 검열 기계들의 종알거림 속으로 환원될 뿐이다. 오늘도 그랬다. 남성성의 결여와 정신적인 비굴함을 반영하는 이레즈미의 이레즈미처럼 이레즈미는 끈적끈적한 늪지대 같은 자기연민 속으로 함몰되었고, 보살이 흥얼거리던 위로와 구제의 노래가 공염불로 산산조각이 났으며, 신경과민과 가면성 우울증이 도진 보살은 짜증을 내며 무기한 각방을 선언했다. 보살은 로디우스의 차창을 깼다. 그리고 안쪽에 들어앉아 버렸다. 두 사람은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을 서로에게 투척했고, 이레즈미는 오해를 풀기 위해 잠긴 로디우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만 했다. 둘은 한 시간 정도의 대치 끝에 화해했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의 ON이 밤새 속닥거리는 두 사람의 침실 옆을 지난다. 이레즈미와 보살은 너를 사랑의 방해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레즈미가 차창 밖에서 꺼드럭거리는 너의 실루엣을 심란한 눈빛으로 응시한다. 우리가 혹시 헤어지게 되더라도 저 머리통 녀석이 우리의 미련한 사랑을 기리고 있을 거야. 늘 푸른 소나무처럼. 너는 두 사람만의 타임캡슐이 되고,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너의 ON은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주차장에 정착했던 초기 며칠 동안까지만 해도, 그들은 네 감시 범위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려 했다. 네가 C구역에서 너의 ON에 정진하고 있을 때는 D구역으로 은둔했고, 너의 ON이 F구역의 전수조사를 담당하고 있을 때는 A구역으로 재빨리 피난하는 등 일종의 술래잡기 게임 같은 규칙을 적용하며 나름대로 심장이 쫄깃하고 박진감 넘치는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소외감과 위기감에 더해, 하늘 아래 두 사람이 전부라는 취약성의 화분 위로 놀라우리만큼 강인한 연결감이 열매를 맺었다. 너는 간수 역할을 도맡았다. 네가 실내를 표류하며 둘의 사적 공간을 약탈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배척과 추방의 유희 속에서, 바닥의 하얀 선분들과 주차 구획을 가르는 기둥의 팻말들은 잔혹하게 생과 사를 분할하는 행정적 장치들이 되었다. 선분들 사이를 월담하고, 여백과 맹점과 가장자리로 망명하며 그들은 네 통제와 관측이 닿지 않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은신처를 욕망했다. 너와 두 사람이 엇갈린 선로처럼 서로 만나지 않는 동안 회피와 도주의 기술도 진화하여, 두 사람은 네 움직임의 패턴ㅡ즉시 출발, 조금 더디게 정지, 조금 더디게 출발, 즉시 정지ㅡ을 예측하고, 속력과 방향, 절룩거림과 헛발질에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다. 네가 자신들의 생각대로 움직일 때마다 금지된 신뢰감이, 이른바 탐정과 범인 사이의 기묘한 호혜성이 자라났고, 너의 ON은 궤적의 음화로서 둘의 궁지와 피난처를 점지하는 스포트라이트이자 무대 장치로서의 항행을 계속했다. 둘은 캄캄한 등잔 밑으로 숨어들었다.
네모난 공란이 즐비한 지하 주차장을 원고지로 비유할 수 있다면, 지하 주차장에서는 톰과 제리처럼 짝패인 두 명의 작가가 동시에 글을 쓰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너의 ON이 죽은 형식을 작동시키는 너의 죄에 결박된 채 실내 공간을 주유했다. 일지는 늘 그대로였다. 너는 때때로 취객처럼 들쑥날쑥하고 뒤틀린 보법으로, 때로는 전방으로 직진하는 단일 경로의 명확함을 통해 불변하는 주차장의 공허를 조직화했다. 네게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숙명처럼 맡겨져 있었다. 너는 매일의 일지로 흐르지 않는 너의 시간을 분류하며 체계화하고 파쇄했으며, 앞면의 도상과 상징이 남김없이 증발한 텅 빈 타로 카드 더미를 쌓거나 무너뜨리고, 무너뜨리거나 다시 쌓는 일을 연상시키는 허망한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발단도 절정도 대단원도 없는 평평한 되풀이를 통해 이를테면 너는 불멸과 무한을 지시하는, 상징들 가운데 가장 지고하며 심오한 상징의 운동을 시늉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운 8자 모양의 고리처럼, 뒤집힌 항아리 모양의 오메가처럼, 무감하게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의 손가락처럼.
다른 한쪽에는 이레즈미와 보살이 있었다. 시시껄렁한 멜로일 수도 있고 낭만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일 수도 있는, 금지와 위기, 도피와 생존, 빈곤과 탈주, 위반과 저항의 드라마를 통해 그들은 둘의 사랑을 닥치는 대로 미화하는 각본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각본 속에서 둘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내기 위해 순찰하는 너를 수십 차례나 따돌려야 했다. 사선을 넘나들었고, 주차장 기둥 뒤에 숨어 다급하게 서로를 끌어안으며 그들이 동시에 죽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상상했다. 간곡하게 휘갈긴 필체로 말미암아 글쓰기의 조건인 원고지 자체가 찢어지고, 원고지 너머로 가물거리는 문학과 현실의 바깥이 두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안전한 은신처를 제공하는 순간을 갈망했던 것이다. 누운 8자 모양의 고리가 끊어지고, 뒤집힌 항아리 모양의 오메가가 오뚝이처럼 일어서며, 주사위 놀이를 하던 신의 손가락이 부러지는 순간 그들은 마치 저급한 콩트처럼 희화화된 자신의 모습에서 해방되어 그들을 위한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너는 그들을 사로잡고 적발하기 위해 지하 주차장을 들쑤시는 무서운 행정적 권력의 하수인처럼 보였다. 너는 두 사람을 겁박하는 살아 있는 형식이었는데, 이레즈미와 보살의 공포가 죽은 형식의 내용을 살찌웠기 때문이다.
술래잡기에 먼저 지쳐버린 쪽은 이레즈미와 보살이었다. 꼬리가 밟힌 뒤 만사가 귀찮아진 두 사람은 네게 항복했으며, 그들을 체포하거나 주차장 밖으로 내쫓을 사람을 기다리길 며칠, 또 며칠……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두 작가가 합심해 집필한 소설은 발표할 지면이 없었던 셈이고, 교활한 침묵과 일상적 피로가 모든 이를 순치했을 뿐,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이 그들이 나른하게 체류하기에 최적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너의 ON은 여전히 그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보살이 하품하는 이레즈미에게 주차장 구석에서 발견한 죽은 쥐를 던졌다. 이레즈미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스라쳤고, 보살은 유쾌하게 키득거리며 이레즈미의 근육이 맥동하는 모습을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지네 요물과 은혜 갚은 두꺼비가 이레즈미의 상반신에서 경쾌하게 넘실거렸다. 몸집은 황소 같은데 사소한 것에 놀라는 모습이 너무 망측하고 귀여워. 나 어떡해? 보살은 손가락을 쪽쪽 빨았으며, 자존심을 다친 이레즈미는 그때부터 종일 단 하나의 생각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내 여편네는 겁이 없는 걸까. 육체의 테스토스테론은 정신의 에스트로젠에 관여하지 않는 걸까. 이성은 감성의 언감생심인가. 탐이 난다…… 보살의 뇌하수체에 샘물처럼 흐르는 테스토스테론이.
*
이레즈미는 아침마다 네 곁을 얼쩡거리며 시비를 건다. 너는 이레즈미의 샌드백으로, 혹은 레슬링 파트너로 고용된다. 이레즈미가 네게서 민첩하게 뒷걸음질하며 가드를 올린다. 네게 정권을 내지른다. 이레즈미는 너를 넘어뜨리기 위해 유도 기술을 걸기 시작하는데, 너는 완강하며 간단하게 쓰러지지 않는다. 이레즈미는 네게 이름을 붙인다. 때로는 타이슨, 때로는 코뿔소, 때로는 무타구치 렌야, 때로는 김두한, 때로는 성원숭. 너를 제압하지 못한 이레즈미가 합장을 하고 물러난다. 네 이름들이 소멸하고, 보살이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이레즈미에게 묻는다. 무슨 멍청한 짓을 하는 거야? 이레즈미는 열심히 육체를 단련하고 있으며, 그것이 훗날 저지를 위대한 범죄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이나 엔지니어 관료들에 쫓겨 달아나다 보살이 쫓아오지 못하면 보살을 안고 마라톤 경주를 뛰어야 하니까. 이레즈미의 덧니가 반짝 빛나고, 이레즈미가 어쩐지 듬직해 보이는 보살은 촌스러운 야수에 미혹된 자신의 모습에 코웃음이 터진다.
보살은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 때문인데, 한밤이면 관자놀이가 두근거리고 머릿속의 검은 칠판에 빼곡하게 지렁이 모양의 글씨가 적힌다. 메시지들이 하나같이 보살을 책망하는 듯 머리가 지끈거린다. 보살은 코를 골며 짐승처럼 퍼질러 잠든 이레즈미 곁을 떠나 랜턴을 들고 정처 없이 지하 주차장을 거닌다. 가끔은 주차장 밖으로 나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청승맞은 탄식의 오페라를 공연하곤 했는데, 구름이 우중충하게 끼어 첨탑에 갇힌 왕비 마마 같은 보살의 마음이 기댈 곳을 잃어버린 밤, 너는 심령 현상처럼 보살 옆을 스친다. 보살은 네 회색 껍데기를 다감하게 매만진다. 너와 자신의 처지가 다르지 않음을 칭찬하는 듯,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나 하소연할 깊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당신은 참 친절하시군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두 가지예요.
(1) 새장 이야기: 시커먼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저는 제가 새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뼈로 된 새장이요. 언젠가 제가 새랑 닮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새 한 마리도 입주한 적 없는 처량한 새장이었던 거죠. 새는 잘 몰라요. 촘촘한 창살은 새를 가두기 위한 것이죠. 찌그러지지 않은 어여쁜 새장이 새를 기다리기 하루 이틀인가, 새장은 새와의 관계에서 항상 욕을 먹기 마련인데, 아무튼 정신이 나간 모양인지 자신이 새인 줄 착각하는 새장이 되었던 거죠. 언젠가 새를 잡아서 꼼짝 못 하게 만들 거야. 새에게서 하늘을 빼앗고 구슬픈 노래만 부르게 만들 거야. 사람들이 새장 앞에서 정형행동을 하는 새를 바라보며 새장을 원망해도 새장은 새장의 본분에 충실하고, 세상을 거대한 새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 날개를 몽상하며 저처럼 당신 앞에서 뭔지 모를 넋두리를 하더라도 저는 새장이겠죠. 그러니까 새도 새장인데,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포크로 새의 배를 가르면 갈비뼈가 새장 모양으로 이렇게…… 새는 가슴이 허전한 동물이잖아요. 새를 질투하던 새장이 자신이 새인 줄 아는 새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고, 베란다에 걸려 있는 새장이 구슬프게 지저귀기 시작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새장에 새 귀신이 들린 게로구나. 새가 새장에 복수하는 게로구나. 그러나 새장은 말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새를 가둔 적이 없어요. 저는 새를 가둔 적이 없어요. 그래서 새가 되었어요. 그래서 새가 되었어요. 며칠 망연자실하게 노래를 불렀더니, 드디어 새장의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던 거죠. 창살이 보드라운 깃털로 뒤덮이고, 새장은 드디어 기다란 날개를 펼치고 창공으로 도약할 수 있었답니다. 거대한 세상이었던 새장이 새가 되어 허공을 비행하는 순간, 다른 새장들도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고 하더라고요.
(2) 엄마 이야기: 이레즈미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실연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던 차였죠. 아픔에 중독되어, 뭐랄까, 몽롱한 과몰입 상태 속에서 증오와 환멸의 절굿공이로 슬픔의 독풀을 빻고 또 빻으며…… 독약을 우릴 거야, 석탄처럼 쓰고 향이 진해 마시면 아무도 나를 잊을 수 없는 독약을 우릴 거라고 되뇌었던 거죠. 독약을 한달음에 마시고 다음 생에서 깨어나고 싶었던 건 바로 저였는데 말이에요. 제게 구애하기 위해 뚝딱거리며 뭔가 어설픈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이레즈미를 쏘아보면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괴물이야. 그것도 아주 뇌쇄적인. 그때 엄마가 떠올랐어요. 엄마는 공작새처럼 공들여 화장한 다음 불 꺼진 소파 위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곤 했는데, 제가 엄마를 불러도 요지부동이라서,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까불거리며 뇌전증이나 신병에 걸린 척을 하거나 욕쟁이 할머니처럼 비속어를 질펀하게 짹짹거려도 공작새로 타락한 엄마를 되돌릴 수는 없었죠. 외할머니는 엄마가 감자탕을 먹다가 뼈다귀가 가슴에 얹혀서 저렇게 된 거라며 혀를 끌끌 찼고, 엄마는 자주 가슴이 답답하다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곤 했거든요. 그런 엄마가 섬찟하면서도, 저는 어떤 반응도 대답도 없이, 마치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저를 방임하며 싸늘하고 잔인한 비애의 왕관을 쓰고 있는 듯한 엄마를 동경하는 불손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거예요. 저는 엄마를 숭배했고, 낯설고 파리한 엄마를 곁눈질할 때마다 눈두덩이 시큰거리며 정전기가 오르는 듯한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니 이레즈미에게 제가 뇌쇄적인 괴물이라고 뇌까리면서 저는 제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건 엄마의 옷깃에 농염하게 배어 있던 향수 냄새 때문이기도 했는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지독한 백합 냄새였습니다. 엄마의 지저분한 화장대 위에는 반투명한 살구색 향수병이 놓여 있었어요. 어느 날 저는 플라스틱 채집통에 잠자리를 잡아 귀가했는데, 팔랑거리며 제게 약을 올리던 잠자리가 몇 시간 만에 배를 까뒤집고 죽어 있었죠. 저는 젓가락으로 잠자리를 꺼내 엄마의 향수병 안에 담근 뒤, 마치 포르말린 용액 속의 죽음을 관찰하듯 까만 그을음처럼 말라붙은 잠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건 죽은 잠자리를 위한 호화로운 장례 의식이기도 했겠죠. 저는 이레즈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은 잠자리야. 독약에 푹 절은. 그때 이레즈미가 제게 고백 멘트를 날렸어요. 앞으로 자기 엄마가 되어 달라고요. 진짜 최악, 참 사랑스러운 최악이죠?
보살은 소나타로 돌아가 이레즈미 곁에 눕는다. 선잠에서 깨어난 이레즈미는 눈물로 척척한 보살의 얼굴을 눈치챈 뒤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황망하게 쩔쩔맨다. 그래서 혼자 푸닥거리를 한다. 씩씩거리며 보살에게 물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왜 그래. 어떤 자식 때문이야. 혹시 나 때문이야? 보살은 성을 내는 이레즈미를 내버려두고 조용히 침면에 빠진다. 냉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쨍한 이레즈미는 승용차 천장을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이레즈미는 생각한다. 이레즈미에게 세상은 이레즈미가 전부인데, 이레즈미가 이레즈미를 하느라 이레즈미가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게 되면 어떡하지. 이레즈미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면 이레즈미는 유죄이며, 이레즈미가 이와 같은 재귀적인 공상들 속을 서성거리는 이유 또한 그가 이레즈미이기 때문이다. 이레즈미는 더욱 진정되고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한다. 내가 나였다는 사실에 일단 사과해야 할 거야. 이레즈미가 누구였는지를 종일 수소문하고 다녀야 할 거야. 밤하늘도 없는, 비좁은 소나타 안에서 이레즈미의 고민이 돌림노래로 번지는 동안 보살은 아득한 꿈속을 더듬는다. 기계 붓다가 새장 안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마치 태몽처럼, 비애의 왕관을 벗고 좌선한 채 비구니가 된 엄마의 머리맡으로 황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두 번째 기억 가닥 속에서 너는 어른이 되어 P시를 산책한다. 예전에 다리 위에서 한 남자가 자살하는 걸 봤지. 너는 생각한다. P시는 생전에 명성을 누리지 못하다 임종한 다음에야 유명세를 얻은 한 죽은 작가의 도시다. 죽은 작가는 P시를 안개에 휩싸인 혹한의 성과 성을 에두른 으스스한 마을로 묘사했으며, 자신을 날개가 꺾여 바닥을 기어다니는 까마귀라고 생각했다. 측량 기사인 주인공은 마을을 거닐며 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두 명의 얼간이 조수가 주인공을 희롱하며 장난질을 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인공은 성에 모호하게 압도된 채 저절로 휘어지는 길들 사이를 헛디딘다. 너는 네가 자살한 남자를 목격했던 다리 위를 지난다. 난간 바깥으로 머리를 내민다. 물결이 파르스름하게 굽이친다.
보살이 이레즈미에게 말한다. 저 머리통 녀석이 옛날에 끔찍한 죄를 지었다는 거지? 그러면 머리통 녀석이 아니라 머리통 선배, 머리통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좋겠네. 우리 꿈을 먼저 이뤘으니 말이야. 죄목이 뭘까. 존경할 수 있는 죄였으면 좋겠는데. 어디다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을 죄. 인간은 심문할 수는 없고 신만이 재판할 수 있는 그런 죄도 있잖아. 이레즈미가 네 전자 패널을 꾹꾹 누르며 패스워드 여덟 자리를 입력한다. 패스워드를 틀린 횟수가 누적되면 전자 패널이 먹통이 된다. 네 머리통에서 빽빽거리는 사이렌이 울린다. 이레즈미와 보살은 네 머리통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다. 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러 주차장의 자동 순찰 유닛이 되었는지, 둘의 미래에 비춰 참고하거나 귀감으로 삼을 지점은 없겠는지. 두 사람은 네 패스워드에 무지하지만, 만악의 소용돌이가 담긴 항아리 앞의 판도라나 개방해서는 안 될 저택의 지하실에 유혹되는 푸른 수염의 아내에 자신들을 이입한다. 제발 잡범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 속에서. 머리통 선배, 실망시키지 마세요.
거북아, 거북아.
龜何龜何
정체성을 내밀어라.
首其現也
정체성을 내밀지 않으면
若不現也
구워서 먹으리.
燔灼而喫也
어쨌든 그런 신의 재판정은 형이상학 속에나 있고, 일개미 같은 우리 무고한 시민들은 얌전하게 투표나 하는 거지. 보살이 말한다. 소비자나 유권자나 주식 투자자나 그게 그거니까. 죄인과 죄인이 경합하면 한 명이 당선되고 한 명이 낙선되는 것이고, 요즘엔 심지어 좌판에서 양말을 사는 일에까지 선거 운동으로 야단법석이잖아. 줄무늬 양말은 다득표, 발가락 양말은 역사의 의사당 바깥으로 퇴장해야 하는 거지. 줄무늬 양말 님, 저를 대의해 주세요. 제가 줄무늬 양말을 신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요. 그런데 발가락 양말이 발바닥에 달라붙어 도무지 벗겨지지를 않는 거야. 그러면 발에 땀띠가 나도록 줄무늬 양말 안에 발가락 양말을 감추고 살아가다 이게 다 건강을 해치는 일이구나 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가락 양말의 시대가 올 거야. 너는 석굴 아래로 들어가 유대교 회당을 구경한다. 아치형 창문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빛무리가 석면 바닥에 웅덩이처럼 고인다. 너는 찰랑거리는 웅덩이에 발을 올려놓는다.
구시가지의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단장했다. 너는 서점 쇼윈도 앞에서 산타 모자를 쓴 죽은 작가의 캐리커처를 바라본다. P시의 거리는 중세 이후 여러 시대의 양식들이 혼재된다. 평온하며 느린 호흡의 브이로그 영상 같은, 가끔은 세로로 창문이 길쭉한 성당의 첨두를 올려다보고 파사드에 부조된 입상을 무던히도 응시하는 너의 여정. 너는 환호하는 사람들에 합류해 길거리에서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남매를 바라본다. 뒤집힌 모자에 동전을 떨어뜨린다. 바람이 사납게 분다. 시간이 일러 장식용 홀로그램 그물에 불이 들어오지 않은 나무들이 가늘게 떨고 있다. 너는 실내를 고풍스럽게 꾸민 유서 깊은 카페에서 포크로 조각 케이크를 자른다. 푸드덕거리는 비둘기들이 성상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자갈을 쪼고 있다. 후광을 표현한, 머리 부분을 둘러싼 다섯 개의 황금별 아래로 입을 다물고 비뚤어진 자세로 서 있는 순교자. 너는 P시의 주요 관광 포인트인 성상에 재현된 순교자의 일화를 휴대폰으로 검색한다. 이름은 얀 네포무스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왕비의 고해 신부였고, 왕비가 고백한 내용을 털어놓으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해 익사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너는 교각을 지나는 무수한 행인들을 바라본다. 너는 네 눈에 비친, 결함 없이 명료하고 이채로운 시각적인 현상들을 바라본다. 투명하고 순수한 현상들. 자살한 남자만이 제외된. 이 투명하고 순수한 현상들 저편에 네가 다가설 수 없는 캄캄한 불가해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 캄캄한 불가해함이 네 눈앞에 베일도 없이 환하게 노출된 시각적인 표면과 동일하다는 사실도. 너는 호주머니를 뒤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구입한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를 꺼낸다. 이것은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다. 그런데 네가 만약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라면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 안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네가 기필코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듯이, 세계에서 인간이 절멸한 백만 년 후의 지상에서도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가 낯선 유물처럼 지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면 그때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는 무엇일까. 응시와 관념, 사용과 감각의 바깥에서 잔류하는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는. 얀 네포무스키의 죽음 속에 온존되었던 왕비의 비밀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너는 어떤 존재를 심문하고 또 추궁한 끝에, 더는 감추거나 숨길 것도, 털어놓거나 고백할 것도, 의미나 무의미 또한 소거된 결백한 침묵의 형상을 상상한다. 무엇도 담지하지 않는 그 특성 없는 침묵의 형상이야말로 온갖 비밀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비밀일 것, 비밀조차 없는 비밀로서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최후의 불가해함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결백한 침묵이란 까마귀 모양의 브로치에서도,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하던 남매에게도, 죽은 작가에게도, 비둘기에게도, 돌멩이나 천왕성의 빙하에서도, 얀 네포무스키 성상에서도, 이슬이나 구름에서도, 심지어 너의 ON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그것만이 모두에게 분배된 존재의 가장 낮은 발판일 수밖에 없다고 짐작할 뿐이다.
두 사람은 네 패스워드를 맞추는 일에 금세 시큰둥해진다. 네 결백한 침묵의 표면이 비밀을 싣고 착실하게 멀어진다. 아까 머리통 선배라고 말한 거 취소야. 그냥 망치로 깨버리고 싶다. 다 지겨워서 뭐든지 패버리고 싶어. 이게 잘못된 거야? 이레즈미가 말한다. 여보, 그런데 있잖아. 나중에 위대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나는 저 머리통 녀석이 되고 싶지는 않아. 실패자인 거지. 짭새한테 잡혀서 머리통 녀석으로 개조되었으니까. 위대한 범죄를 저질렀으면 멋지게 세상에서 탈옥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지. 그게, 우리가 정말 세상을 경악과 분노로 뒤엎을 위대한 범죄에 성공해도 처벌을 모면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를 기억할 수도 없게 되는 거잖아. 나는 상상하곤 하거든. 내가 저 머리통 녀석으로 트랜지션해서, 여보를 껴안을 수도 사랑을 속삭일 수도 없으면서 오로지 머리통 안에서만, 마스터베이션 기계처럼, 과거의 사랑을 기념비처럼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여보의 홀쭉한 엉덩이에 방약무인한 세자 저하처럼 올라타 준마를 몰고 백만 대군을 호령했던 그 대범한 섹스를 연산했다가 회수하고, 다시 연산했다가 회수하면서 살아가는 무료하고 얼빠진 나날을 말이야. 말을 마친 이레즈미가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쳐 딱 소리를 낸다. 보살이 청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동짓날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다가
머리통 이불 아래 서리서리 접었다가
보살님 오시는 날에 굽이굽이 펴리라
이레즈미가 말한다. 그리고 그건 내 오해일 거야. 왜냐하면 그때 나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일 테니까. 위대한 범죄만큼 우리가 헤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소리야. 여보, 위대한 범죄를 저지른 다음엔 성난 경주마처럼 전속력으로 내달려야 해. 우리를 수배하는 전단지가 뒤쫓을 수 없을 만큼, 한 지구 반 바퀴 정도를 초고속 질주한 다음 이미 사전답사를 마친, 아늑하게 꾸민 어느 산골 마을의 오두막에 도착하는 거야.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도 우리의 진짜 모습을 유추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거야. 정겨운 구린내를 따라 시골길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헛간의 훈훈한 암퇘지 두 마리처럼. 우리가 감행했던 범죄가 우리의 사랑을 순도 높게 지켜줄 것이고, 우리는 우리를 들키지 않도록 겸허하게 변장한 채, 물론 침실 안에서는 매일 싱글벙글하며, 우리를 검거하지 못한 엔지니어 관료들의 멍청한 집단지성을 요란하게 빈정거리면서 말이야. 때로 쌔근거리는 가슴을 영웅적인 범죄의 결실이자 맥박처럼 보전한 채, 즐겁고 황홀하게, 계속될 여생이라는 것을 서로에게 콸콸 쏟아부으며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는 거야. 이레즈미가 울먹거린다. 아흔 살 먹은 보살이 노환으로 죽어가는 환상을 훔쳐본 듯하다.
보살이 이레즈미의 허점을 지적하며 유려하게 가락을 받는다. 그렇게 은밀히 살아가고 싶었으면 몸에 이레즈미를 했으면 안 됐지. 암퇘지 한 마리의 살갗에 험악한 문신이 시뻘겋게 있으면 누구나 우리 마을에 범죄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자기, 나는 자기의 이레즈미가 참 좋거든. 괜히 자기를 탓하지 말라는 소리야. 히잡 같은 걸로 이레즈미를 가리고 다니는 걸 원치 않거든? 나는 자기가 당당하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이 좋아. 그게 나랑 닮은 부분이기도 하거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있잖아. 뭔가 쎄한 기분으로, 위화감에 감염된 사람들 사이로 남모르게 시선이 교환되는 거야. 물밑에서 내 상태를 정탐하는 쪽지를 주고받는 거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공모자로 변하고, 제정신들이 나로 인해 제정신이라는 평등한 시민권을 발급받는 거지.
병자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런데 나는 위엄과 카리스마가 좋아. 나는 태생부터 약자나 병자가 아니라 귀족 영애이고 양반 가문의 여식이거든. 나는 내 위화감을 위엄으로 반전시키기 위해 노래 실력을 연마했던 셈이지. 그래도 저 머리통 녀석이 불쌍하기는 해. 벌이라는 개념도 없이 양순하게 벌을 받고 있는 꼴이. 이런 생각도 인간들이나 하는 거겠지. 순박한 머리통 청년이 등짝에 벌이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고 다니는 꼬라지가 흉하고 안쓰럽잖아. 순박한 머리통 청년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싶고, 억압적인 상황을 각성하도록 돕고 싶고, 머리통을 도끼로 깨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순박한 머리통 청년을 고통과 무지에서 구원하고 싶은 거지. 부조리한 형벌에 속박되지 않도록 우리가 배려했는데 쟤는 그게 뭔지 알지도 못해.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기계는 죄에서 등을 돌렸는데, 기계에 죄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거지. 그건 문화 같은 거야. 인간에 인간이라는 혐의가 붙어 있는 것처럼. 가습기의 가습처럼, 세탁기의 세탁처럼, 심지어 내게 보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나는 보살이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보살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어?
보살이 말을 잇는다. 아마 머리통 녀석은 잡범일 확률이 높을 거야. 위대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의 혼은 자동 순찰 유닛 안에 영구히 보존되어 영적 투표의 대상이 되는 법이잖아. 운이 좋고 정치적 상황이나 증권 시장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추모비나 위령비로 트랜지션할 수도 있고, 그건 체스로 따지면 폰이 퀸으로 프로모션하는 것과 같은 거지. 아웃렛을 들르면 꼭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주차장을 표류하는 덜떨어진 신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가는 거지. 소망의 실현과 액막이를 기원하면서 향로에 담긴 모래에 향불을 꽂아. 그 김에 아웃렛은 고객들로 문전성시고, 불붙은 막대에서 실내로 퍼지는 청정하며 매캐한 냄새가 지하 주차장에 감돌지. 지하 주차장은 사당으로 탈바꿈하고, 신년이 되면 주위의 몇 킬로미터의 도로가 사당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는 거야. 화환과 축문이 지하 주차장 안에 빽빽하게 늘어서 떼창으로 잔치를 벌이지. 인간의 상상력이 사물 앞에서, 자신을 사물처럼 생각하거나 사물을 인간처럼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 사물을 하찮은 연장으로 쓰거나 애착과 신화적 내러티브를 투여해서 물신으로 섬기거나 그 양자택일을 하도록 끝없이 강요받는 거야. 첫 번째의 경우 세상은 약육강식의 검투장이고 두 번째의 경우 세상은 자비로운 가이아 어머니의 포궁이지.
물론 운이 나쁘면 역사의 폐기물이나 인간의 민낯을 까발리는 스펙터클한 민중의 오점으로 선출되어 다크 투어리즘의 관광 코스가 되겠지. 위령비와 추모비에서 낙마한 오토마타는 시름에 젖은 듯, 고객들은 오토마타에 침을 뱉거나 시원한 경멸의 가락을 구성지게 뽑아내며 온갖 적의를 분출하고는 개운한 마음으로 귀가하는 거지. 저 사악한 데스마스크 좀 봐. 무덤 위로 솟아오른 남근상 같은, 꼭 얼어 죽은 사이코패스 천사 같은 무감각한 머리통 좀 보라고. 절박한 소망이 있다면 어떤 자동 순찰 유닛을 향해 공덕을 쌓고, 다른 자동 순찰 유닛을 발로 걷어차면서 올바름과 부정의의 파도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지. 저 머리통 녀석은 둘 중에 아무것도 아닌 거겠지. 지하 주차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아니면 아직 시대가 녀석을 붙잡지 않았거나. 그날이 오면, 오랜 공백 끝에 발기한 음경처럼 죽은 형식에 피가 돌고, 충일하게 채워진 내용이 마비된 형식을 리모델링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자기, 우리가 저지를 위대한 범죄는 사실 저 머리통 녀석 안에 있을 수도 있는 거야. 우리가 아직 잡범도 되지 못한 얼간이들인 것처럼, 우리의 전무후무하고 급진적인 범죄가 저 죽은 머리통, 저 깡통 같은 아둔한 어둠 속에 버려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전에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모셔 놓고
일월성신님 모셔 놓고
산신님 모셔 놓고
칠성님 모셔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전에 비나이다
이 집 식구 만사형통
대대손손 복덕이 이어지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자손만대 우환은 멀리 가고
보살 태중에 경사가 들게 하소서
메시아를 잉태하게 하소서
천지신명 님 전에 비나이다
이 집에 들어와 비나이다
간절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두 사람이 네 앞에 무릎담요를 깔고 손바닥을 비비며 치성을 올리는 동안, 너의 ON은 기억 타래를 상영한다. 너는 죽은 작가의 이름이 붙은 박물관으로 들어가 연보를 읽는다. 생전의 사진과 메모, 초판본과 편지가 유리함에 담겨 있다. 너는 죽은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해충Ungeziefer의 독일어 단어가, 소설보다 먼저 그의 일기에 언급되었음을, 그가 친밀하게 교류했던 집시 무용단원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아버지의 입에서 최초로 발음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 뒤, 죽은 작가는 소설 속에서 해충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다.
너는 죽은 작가가 생존했을 무렵, P시의 풍경을 찍은 기록 영상을 시청한다. 흑백의 스크린 속에서 카메라가 트램을 타고 도심과 시가지를 촬영한다. 지난 세기의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서둘러 걸어간다. 명멸하는 스크린 속의 희붐한 도심은 건축물의 구조에서 비슷하나, 지금과는 어긋난 장소를 부유하는 과묵한 시선을 드러낸다. 영상 속의 얼굴들 가운데 살아 있는 자는 없고, 너는 그 광경이 네가 목격했던 익사한 남자의 시선처럼 느껴져 짤막하게 몸서리를 친다. 밖으로 나오자 가랑비가 내린다. 레스토랑 앞에서 웨이터가 테이블과 의자를 철수한다. 기온은 냉랭하다. 너는 시멘트 차양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인내하지 못하고 비가 퍼붓는 거리로 나간다. 그러다 다시 차양 아래로 피신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화면처럼 불어나는 빗발을 바라본다. 너는 잠자코 대기해야만 한다. 너는 공원에서 낡은 패딩을 입은 흑인 소년들이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용 오디오를 틀어 놓은 채 테크노를 추는 모습을 바라본다. 음악은 네가 있는 곳에서 거의 들리지 않는 꿈결 같은 선율이다. 빗소리만이 울창하다. 너는 눈을 감는다. 너는 눈을 뜨고, 그 찰나의 순간 가랑비가 새하얀 눈발로 바뀌어 너를 차양 밖으로 몰아낸다. 뭉클한 적막, 음악 소리는 가늘어지고, 테크노를 추던 흑인 소년들은 아직도 나부끼는 눈발 속에서 테크노를 추고 있다. 너는 문득 머나먼 미래의 비어 있는 공간이 되고, 세계에 기소된 자가 되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너는 눈발을 꿰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
네 앞에서 황새가 일광을 받고 있다. 강물이 졸졸거리며 흐른다. 이레즈미와 보살이 무더운 태양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다. 햇볕이 두 사람의 기진맥진한 얼굴을 탈색한다. 이레즈미와 보살은 너와 황새 사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짓을 주고받는다. 탈진해 더위를 먹은 듯하다. 황새는 유유자적하게 물결을 거스르고, 네가 황새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넉넉하며 자애로운 장소를 제공하듯 어디로도 날아가지 않는다. 물억새들이 날갯죽지로 가만하게 뒷짐을 진 황새 주위에서 삐죽빼죽하다. 씻지 않아 머리가 까치집이 된 두 사람은 네가 황새에게 매혹되었다고 상상한다. 물론 너의 ON은 태양열 아래서 너를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이레즈미와 보살이 황새를 노려본다.
두 사람은 네게 황새를 공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은 그들이 황새를 포획하고 싶기 때문으로, 천변 이편에서 달관한 너와 저편에서 초연한 황새 사이에 엄정하게 절단된 보이지 않는 선분, 불요불굴이자 요지부동인 바로 그 적요, 좁혀지지 않는 거리와 정갈하게 분리된 인식론적 구도에 싫증이 난 것인지도, 황새와 기계 사이의 고집불통이며 지긋지긋한 평형 상태를 견딜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형식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감정이다. 불당처럼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에는 인간의 숨을 틀어쥐는 기묘한 압력이, 질식할 듯 인간을 압박하는 갑갑한 힘이 실제로 작용하니까. 그래서 공기의 암벽을 무너뜨리고 싶다. 석가모니불에 낙서를 하고 싶고, 깃털로 숙연한 상제님의 발바닥을 희롱하고 싶고, 낙랑공주처럼 아군의 자명고를 찢고 싶다. 팔자가 꼬여서 더 꼬일 수 없을 때까지 개기고 싶어. 황새가 서 있는 천변 저편이 공문 안뜰, 물질계와 우주론의 삭막한 무상함이며 네가 있는 천변 이편이 세속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보살은 기계와 황새 사이의 경계에서 물억새를 헤치고 황새를 향해 다가간다. 목욕하는 선녀를 엿보는 나무꾼처럼, 낮게 포복한 채 물억새 사이로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다. 기계와 황새는 가지런하고 태연자약하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을 뿐, 둘에게는 이 소설의 초반부에서 둘 사이의 응답 없는 노출이라고 서술했던 공평한 안식이 있을 뿐이다. 설령 황새가 밀렵꾼의 총탄에 쓰러지고 과열된 기계의 머리통이 엔진 고장으로 폭발하더라도, 둘 사이에 잠잠하게 가로놓인 공평한 안식을 해칠 수는 없을 듯하다. 그것은 기계와 황새가 세속의 이편과 저편에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공평한 안식이란 인간 또한 언제나 잠재적으로 품고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마치 모든 인간이 늘 보이지 않는 날개옷을 입고 있는 것과도 같다. 날개옷을 훔치는 대신, 선녀가 된 나무꾼이 치렁치렁한 날개옷을 만들어 곱게 화장하고 선녀들이 거주하는 하늘나라로 오를 수 있는 가능성과도 같다. 황새가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구불구불한 황새의 머리가 움찔거린다. 보살은 신중한 몸짓으로 만전을 기하며 느리게 물억새를 가른다. 불안한 동태를 인지하지 못한 황새는 그저 여유만만하다.
황새는 얼마 전 보살의 꿈속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비구니인 엄마가 기계처럼 천변 이편에 서 있었고, 황새와 엄마 사이에는 빛의 자갈로 이루어진 소로가 놓여 있었다. 날갯죽지를 다친 피투성이 황새가 엄마의 품으로 다가와 안겼다.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황새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으며, 이윽고 황새의 새장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황새로 둔갑한 엄마는, 엄마로 둔갑한 황새가 담긴 보자기를 물고 있었다. 황새를 잡고 싶다는 마음. 그것은 욕심일까, 시기심일까, 고통일까, 외로움일까? 마음을 굳세게 먹은 보살이 황새에게로 그물을 던졌다. 경계가 뒤틀렸다. 그물에 걸린 황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발버둥질했다.
이레즈미가 순식간에 강물을 향해 달려갔다. 이레즈미는 수영 선수 출신이어서 헤엄치는 일에 자신이 있었으나, 강물의 수위가 무릎 아래쪽으로 낮았다. 따라서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이레즈미는 광분한 물개처럼 이레즈미로 칠갑한 온몸의 근육을 껄떡거리며 황새에게로 몸을 던졌다.
이레즈미의 머릿속에는 단순하고 간결한 생각 하나가 떠돌았다. 그것은 보살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우람한 남성성이 그저 보살의 감상용인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거머쥘 수도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원래 행동하는 동물일 뿐. 그렇게 인정을 쟁취하고 헌신에 충성하며 여편네를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레즈미의 머릿속이 남성의 전통적 의무로 가득 채워진 바로 그때, 남성성의 결여를 반영하는 이레즈미의 이레즈미 속에서 뒤엉켰던 지네 요물과 은혜 갚은 두꺼비 주위로 신통력 있는 구름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남성성의 결여가 해소되고, 기만을 극복한 이레즈미의 신체가 마법 같은 자유로움을 획득하는 순간, 보살의 욕망이 투사된 의젓한 꼭두각시 인형으로서의 영위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귀여운 남자에 불과했지. 하지만 이제부터 보살이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진짜 남자가 될 거야. 이레즈미가 담대한 사나이의 길로 진격하는 동안, 황새는 그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꽁지를 뒤채며 무시무시하게 울부짖었다. 뜨악한 이레즈미는 황새를 자신의 호적수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호적수란 투우사와 황소의 관계를 뜻한다. 사생결단 직전에 있는 두 운명적 주체의 대결. 드라마틱한 우애가 링 위에 오른 두 주체를 엄호한다. 보살도 이 피할 수 없는 싸움터에서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날 뿐이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체온이 혁혁한 에너지로 달궈져, 살아 있는 황소의 외뿔이 나를 치받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황소가 나를 죽이려 하고 나 또한 황소를 죽이려 할 때, 이 대등하고 공정한 결투 속에서 황소를 죽이는 일에 간신히 성공할 때, 이레즈미는 그제야 황소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었다. 황소의 존재를 온몸으로 긍정했기 때문에, 황소에게 승리했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긍정했던 황소에 대한 승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자긍심의 원천으로 전환될 것이었다. 스포츠 정신의 맹아란 본래 그런 것. 헐떡거리는 흥분과 황소에 대한 강렬한 연민 속에서, 죽고 죽임이라는 생명의 동맹으로 말미암은 존재론적인 동등성 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진짜 남자는 예로부터 황소를 쓰러뜨릴지언정 구워 먹거나 가죽을 벗겨 팔지는 않는 것이다. 남성적 미덕들이 일제히 고성방가를 하며 이레즈미를 승부의 한복판으로 유혹했다. 물론 이레즈미 앞에는 황소가 아닌 황새가 있었다.
이레즈미는 망설임 없이 황새에게로 돌진했다. 너를 상대로 연마했던 레슬링 기술을 전개하며 육탄전을 벌였다. 황새가 날개를 펄럭거리며 이레즈미의 뺨을 후려쳤다.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이는 두 호적수의 진지한 투쟁은, 보살이 보기에는 어쩐지 야릇한 몽상에 빠질 만큼 섹시한 구석이 있었는데, 오늘 밤, 그이를 황새로 분장시키면 어떨까 고민하게 될 정도로…… 보살은 민망하게 동요하는 진심을 보이지 않는 전서구의 발목에 아름드리 묶어 이레즈미를 향해 응원의 함성을 날렸다. 이처럼 저속한 묘사의 방법을 생략하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레즈미와 황새의 난투는 어설픈 촌극에 불과했다. 몸부림을 치는 황새가 까옥거리며 이레즈미의 쫀쫀한 살갗을 찰싹 내리치면 이레즈미가 신음하고 혼비백산한 채 전율하며, 황새의 드센 몸부림에 경황도 없는 헛손질로 화답하는 가운데 맞지 않는 박자로 곤지곤지 잼 잼이나 쌀보리 놀이를 거듭하는 격이었다. 하얀 깃털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둘 사이에서 허물어지는 욕정의 진흙탕처럼 끈적끈적하며 추접한 물보라가 서로에게 와르르 끼얹어졌다.
황새가 이레즈미의 등짝을 짚고 공중으로 비상했다. 커다란 그림자가 툭 떨어졌다. 이레즈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넘어져 있었으며, 신통력 있는 구름이 걷히고 이레즈미의 완패가 사실이 되었다. 이레즈미는 부끄러움 때문에 귀가 새빨개져 망연하게 주저앉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살에게로 주춤거리며 걸어왔다. 이레즈미를 책망할 수는 없었다. 그는 위대한 범죄를 저지를 만큼의 자질을 가진 인물은 아닌 것이다. 보살은 청새치와의 대결에서는 승리했지만 삶에는 승리하지 못한 어떤 어부 노인이,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읊조리는 광경을 기억했다. 시무룩한 이레즈미가 빈손으로 보살에게 돌아와 눈치를 보면서 아직 때가 아닌가…… 구시렁거리는 모습을 긍휼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레즈미의 덧니는 어찌하여 이리도 아름다운가.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이리도 살고 싶은가. 이레즈미와 보살이 서로를 다독이는 동안, 충전을 끝낸 너는 천변을 떠나 주차장으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광활한 날갯죽지를 펼치고 날아가던 황새 그림자가 네 머리통 위를 스쳤다.
황새의 시선에서부터 시작하자. 황새는 폐업한 아웃렛을 부감한다. 비올라 모양으로 공원을 에워싼 아웃렛 부지의 황량한 동공. 그것은 황새의 감정 없는 동공을 닮았다. 메마른 분수대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황새를 쳐다본다. 황새는 날개를 시원스럽게 펼친 채 바람의 갈피를 읽는다. 드러누운 마네킹이 황새를 쳐다본다. 창문마다 매달린, 석화된 에어컨 실외기가 황새를 쳐다본다. 주차장을 향해 이어진 달팽이 모양의 동굴이 황새를 쳐다본다. 사멸한 형식이 황새를 쳐다보고, 공중화장실 안으로 자취를 감춘 이 소설의 서술자가 황새를 쳐다본다. 전부 틀린 문장들인데, 어느 무엇도 황새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분수대, 마네킹, 에어컨 실외기, 달팽이 모양의 동굴과 사멸한 형식, 바보 같은 문장들로 지면을 먹칠한 철없는 서술자를 황새가 쳐다볼 뿐이다.
마치 존경해 마지않던 문학 선생님의 시선처럼.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던 둥지 속의 서술자에게 문학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만 좀 깝치거라. 그렇게 까불면서 시간 낭비 좀 그만하고 문학의 만신전에서 지엄하게 너를 내려다보는 반인반수 도령들의 소명을 받들어 내일부터는 위대한 범죄자가 되도록 하여라. 하느님이 역정을 내고 상제님의 얼굴이 붉어지며, 세상의 모든 탐정과 네 종의 생물학이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웅대한 범죄자가 되란 말이다.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인지 천상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인지,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인지 축문과 찬송을 암송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그런 놀라운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여라. 지치지 말고 광폭하게 쓰거라. 네가 저지를 범죄에 비하면 문학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라.
황새는 아웃렛 옥상에 착지한다. 거무스름한 시멘트 바닥 위로 풍화된 변압기가 솟아 있다. 깡마른 사다리가 변압기 아래쪽의 기단에 붙어 있다. 아래층의 계단으로 이어진 비상구 철문이 열려 있다. 황새가 내려앉은 둥지 위로 야구공 크기의 새알들이 놓여 있다. 살뜰하게 웅크리며 포란을 시작한 황새가 난간 바깥으로 모가지를 비죽 내민다. 아래쪽에는 황새를 잡으려다 장렬하게 미끄러진 두 얼간이가 툴툴거리며 아웃렛 영내로 귀가하는 중이다. 황새는 이레즈미와 보살의 잔망스러운 포획 작전을 잊어버린 듯, 그들을 심드렁하게 혹은 너그럽게 관망한다. 이레즈미와 보살은 자신들이 황새의 시선 속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다 문득 햇볕이 이글거리는 허공으로 시선을 옮긴다. 승모근이 욱신거릴 때까지 부러진 깃발을 닮은 황새의 모가지를 올려다본다. 잠시 목이 메어 서글픔을 느낀다.
고귀하다는 건 저렇게 높은 곳에 있는 존재를 뜻할 거야. 이레즈미가 말한다. 뱁새가 황새 쫓으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고. 애환에 지지 않는 이레즈미가 활기찬 말투로 황새 포획 작전에 실패한 자신을 위로하면, 쿵짝을 맞추는 보살이 이레즈미의 말을 받아친다. 학수고대라는 말 알아? 군계일학이라는 말은? 학명재천이 학골송자라, 학수운장이 학거연심이니, 백학청운이 학비어군이라. 학우선이라는 말은 알아? 제갈량이 학우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슬피 우짖으며 아들처럼 사랑했던 마속의 목을 베었다더라. 계륵이라는 말은 쉬워서 자기도 이해할 수 있지? 닭의 갈비뼈라는 뜻이야. 우리가 잡지 못한 황새는 계륵 같아. 신선 같은 계륵이 뜬구름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도다.
이레즈미가 대답한다. 여보는 참 똑똑해. 학사모를 쓰면 잘 어울리겠어.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학익진을 써서 왜구를 물리쳤을 거야. 이레즈미는 깜짝 놀라 살갗에 그려진 자신의 정체성을 가리키며 질겁한 표정을 짓는다. 여보가 나를 토벌하면 어떡하지. 보살이 이레즈미를 달랜다. 가여운 이레즈미야, 자신을 학대하지 말거라.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황새가 되었다더라. 알몸 상태로 추운 야외로 나왔을 때처럼, 이레즈미의 이레즈미 속에서 왼쪽 가슴팍에 그려진 지네와 오른쪽 가슴팍에 그려진 두꺼비의 눈망울이 각각 동그랗게 곤두선다.
두 사람의 이러쿵저러쿵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내용 없는 형식적인 지면 채우기와 다르지 않은 문장들이니 생략해도 좋을 것이다. 만약 이런 문장들로 일관했다면, 이순신은 과거에 급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백낙청과 김현은 각각 창비와 문지를 설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황새와 함께 식사를 했대요. 여우에겐 넓적한 접시, 황새에겐 오목한 접시. 둘은 어떤 교활함도 없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먹었답니다. 여우는 말했지요. 신포도밭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나는 나쁜 여우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야. 황새가 대답했죠. 내가 계륵이 아니었다면…… 분수도 모르고 자신이 오리인 줄 알고 있던 황새는 자신이 오리라고 주장하며 팻말을 들고 시위하던 오리너구리와 짝짜꿍해 오리황새가 되었고, 자신이 인간인 줄 알았던 햄릿은 거울 앞에 처연한 표정으로 앉아 좌파가 보면 토끼고 우파가 보면 오리인 자화상을 들여다보며 생각했죠. 황새냐, 너구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신이 여우인 줄 아는 이방원이 햄릿 옆에서 왕자들만 아는 한탄에 한몫 거들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에 빙의되어 마지막 킥을 헷갈린, 자신이 까마귀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는 벌레로 변신한 이직이 백로로 환생한 카프카의 탈을 쓰고 혼자 답가를 불렀답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우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나뿐인가 하노라
황새는 험준한 벼랑 위에 올라앉아, 꼬리를 물고 지저귀는 두 암탉의 화목한 음성적 택견을 생각지도 못한 듯 부리를 세로로 쭉 벌리며 하품할 뿐이다. 어쨌든 그들이 주고받는 말뿐인 말들이 황새를 향한 둘의 갈망을 온화하게 누그러뜨렸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이레즈미와 보살의 논쟁적인 사랑처럼, 이제 백낙청과 김현도 말뿐인 말들로 건축된 문학 출판사를 남긴 뒤 학자금을 갚고 학운봉에 올라 계륵이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폐업한 아웃렛에 들러 여러 종류의 폐기물을 줍는다. 삐걱거리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 그들은 버려진 운동화와 새하얀 러닝셔츠, 철제 옷걸이와 구부러진 행거, 찌그러진 종이상자 안에 무더기로 들어 있던 넝마와 헤진 방석, 널브러진 전선이나 깨진 유리 조각 같은 것들 모양을 선별해 꼼꼼히 챙긴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잖아. 이레즈미와 보살의 꿍꿍이를 짐작할 수 없다. 두 사람이 드넓은 아웃렛에서 도적 떼처럼 어떤 제지도 없이 쓰레기를 빼돌리고 있을 무렵 너는 주차장을 순찰한다. 그러니 옥상에는 황새, 지상에는 인간, 지하에는 기계가 있다. 너의 ON이 기억 타래 속에서 너를 출력하지만 그것은 네가 죄인임을 그치지 않고 시인하는 로그 덩어리에 불과하다. 너는 너를 판독하지 않는다. 너는 너를 용서하지 않는다. 너는 참회하지 않는다. 너는 변명하지 않는다. 너는 화해하지 않는다. 너는 흐느끼지 않는다. 기억의 내용과 무관하게 네가 죄인임을 그치지 않고 자백하는 너의 ON. 마치 무연고자의 묘소에 세운 부박한 십자가처럼, 그것만이 네 죄를 상실한 너의 형식일 것이며 너를 상실한 네 죄의 형식일 것이다. 너는 너의 책임에서 놓여났으나, 더는 너의 소유가 아닌 너의 책임만이 너보다 유구한 세월을 살아남아 너를 지속하는 너의 ON일 것이다.
그러니 너는 너의 가면일 것이다. 네가 뒤집어쓴 가면 뒤편에 아무도 없는 공중누각 같은 가면일 것이고, 네가 죽고 나서도 벽장 속에 네 몸뚱이 크기만큼의 공허를 적재하며 고이 보관된 외투 한 벌일 것이다. 혹은 너는 인간이었던 네가 과육을 깔끔하게 다 먹고 외투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까맣게 잊어버린 앙상한 복숭아 씨앗일 것이다. 외투 호주머니에서 무성하고 아름다운 복숭아나무가 자란다면, 벽장을 여는 일만으로도 불로장생의 열매가 맺히는 무릉도원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을 텐데. 너는 불로장생이며, 그것은 네 머리통 속에서 폐쇄회로 같은 기억 타래가 너를 집요하게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의 ON은 이름표가 뜯어진 가슴팍에서 너덜거리는 이름표의 흔적일 것이다. 액자를 치운 벽에 남은 하얀 네모일 것이다. 네 유한했던 시절의 미광이 꺼지지 않는다. 네 머리통은 말하는 듯하다: 나는 안 돌아간 적이 없다고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요? 인간이었던 너는 네가 저질렀던 끔찍한 죄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죄를 향해 너를 추동했던 사나운, 돌이킬 수 없었던 정념의 별자리들이 하나의 끔찍한 사건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변호되지 못한, 감형과 무죄 추정에 실패했던 네 범행의 전모를 너는 또렷하게 기억했을 것이다. 너는 식칼을 휘둘렀고, 아내를 계곡으로 떠밀었으며, 남편의 생식기를 잘랐고, 연인의 허벅지를 삶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범, 갱생 불가능한 무기수,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자율주행 차량처럼 윤리적인 진화와 전회를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 언젠가부터 죄로 분류되지 않는 폭압적인 시대의 희생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비인간적인 사법 권력에 놀아난 무고한 피해자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듯 죄의 별자리를 형성하던 별들은 온데간데없이 흩어졌으며, 네 머리통 속의 캄캄한 밤하늘에는 한 줄의 기억 타래만이 신비로운 상형문자처럼 빛을 발하고 있을 따름이다. 네 주검이 걸려 있는 창백한 올가미처럼.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온 이레즈미와 보살은 수거한 폐기물을 용도에 따라 분류한다. 뭔가를 골똘히 상의하며 바닥에 분필로 설계도를 그린다. 계획을 마무리한 두 사람은 일단 네 껍데기에 러닝셔츠와 와이셔츠를 여러 겹으로 입힌다. 귀부인의 꽃단장 시간이 빠듯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동들처럼, 주차장을 순찰하는 네 뒤를 달음질하며 부지런히 뒤쫓는다. 황새를 구성하는 시각적인 단서들을 정확하게 모방해야 한다. 이를테면 황새를 황새답게 만드는 것은 기다란 다리와 구부러진 목, 장대한 날갯죽지와 낭창낭창하게 뻗은 부리, 맨주먹 크기의 작은 머리와 찐빵 같은 푸짐한 꽁무니, 풍성하고 보드라운 깃털의 질감일 것이다. 분류된 폐기물들은 황새의 신체적 특징들에 대응해 네 껍데기에 부착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제작할 황새는 날짐승의 기능이 탈락된 황새일 것이다.
작품명에 황새라는 단어를 적어 놓으면, 나머지는 두뇌가 자동으로 형태를 보정해 황새라고 명명해도 대충 어울리는 조형물이 탄생할 것이다. 막연한 인칭 대명사의 그림자 속에서 한 명의 구체적인 인간이 솟아나듯이. 사람들은 동그라미만 그려도 그게 얼굴인 줄 알더라. 해괴한 허구, 고약한 농담에 지나지 않는 신화가 너를 치장할 것이다. 지하 주차장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백 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종차를 횡단한 웅녀처럼. 몇 겹으로 껴입은 의복으로 부피가 두꺼워진 가슴과 엉덩이에 인조솜이 채워진다. 울룩불룩한 표면을 수건으로 감싸 고정한다. 벨트로 허리를 살짝 조여 꽁지의 윤곽이 갖춰지기만 하면 충분하다. 머리통을 담요로 친친 동여매자 네 껍데기 전체가 호리병 모양의 특성 없는 몸통 속으로 파묻힌다. 다발로 엮어 강직성을 보강한, 호리호리한 전선 다발을 솟대처럼 몸통 위에 삽입한다. 원반형의 디스크 표면에 폐마스크를 겹겹이 감아 황새의 얼굴을 만든다. 손가락으로 안와를 파낸 뒤 중심에 단추를 붙인다. 검정색 장우산을 걸어 황새의 부리를 완성한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수평의 플라스틱 패널을 몸통 후방에 케이블타이로 고정한다. 철제 옷걸이는 가오리연의 뼈대처럼 국궁 모양으로 기다랗게 휘어져 날갯죽지의 프레임으로 사용된다. 이레즈미가 프레임에 하얀색 커튼을 내건다. 너는 황새로 조립될 것이다. 몸통 하단에 고무 튜브 두 개를 달아 앙상한 다리의 실루엣을 표현하려 했지만, 그것은 구색을 맞추는 용도에 불과한 것처럼 조악하고 형편없는 위장술이 아닌가. 보살은 생각한다.
보살이 팔짱을 끼고 작업을 감독한다. 네 주행부와 가느다란 다리로 지면을 지탱하는 황새 사이의 형태론적인 상성이 맞지 않는다. 너는 입체파 회화에서 와해된 도형들이 움막처럼 얼기설기 꿰매진 모습을 연상시킬 뿐 그것보다 조잡한 피조물이다. 결합하거나 접착된 폐기물들은 협력해 조화로운 형태의 하모니에 봉사하지 않고, 황새의 해부학적 구조 바깥으로 달아나거나 서로 반발하며 갈등하는 듯하다. 여전히 장우산은 장우산이며, 전선 다발은 전선 다발에 불과하다. 자중지란에 빠진 폐기물 각각의 세부가 황새의 형상을 분해하고, 산만하게 기워진 폐기물 각각의 사물성이 통제 불가능한 중학생들처럼 지방 방송을 켜며 시끄럽게 떠드는 형국이다.
황새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풍성한 깃털은 더욱 골칫거리다. 스티로폼 분말과 인조솜, 잘게 찢은 종이조각을 반죽해 섞은 영문 모를 물질을 접착제를 바른 몸통에 붙이면 부족한 재료로 깃털의 질감을 반영하기 위해 애쓴 자신들의 노고가 참작될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보살은 생각한다.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기계를 황새로 은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기계가 황새가 될 수 있을까? 둘은 자신들의 손에 의해 창조된 괴작 앞에서 입을 벌린 채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머리를 모으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두 사람은 창고에서 수거했던 오리털 패딩 몇 개의 등짝을 갈라 안쪽의 깃털을 조형물의 끈적끈적한 표면에 치댄다. 깃털의 양이 모자라고, 마치 피부병을 앓는 듯, 온통 깃털을 쥐어뜯긴 것마냥 조형물의 몸통이 병변으로 얼룩지기 시작한다. 흩날리는 깃털 때문에 콧방울이 간지러운 두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며 재채기를 한다. 기계에서 황새를 재현하려는 행위가 황새와 기계를, 더불어 작업에 매진하는 이레즈미와 보살을 괴롭히는 듯하다.
두 사람은 찜찜하지만 이것으로 타협해야만 한다. 첫날밤, 환웅이 설레어 웅녀의 옷고름을 풀었을 때, 떡 벌어진 웅녀의 가슴은 건장한 머슴처럼 거뭇거뭇한 털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웅녀는 머쓱하게 읊조렸다고 한다. 서방님, 소녀는 사실 소녀의 이름처럼 인간이 아니라 곰 인간이 되었사옵니다. 곰처럼 야성적인 본성을 억제하지 못한 웅녀가 환웅을 덮쳤으며, 겨울잠을 자느라 고조선을 건국하지 못한 단군 할아버지의 쓸개가 실은 웅담이었다는 이야기가 저잣거리의 음담패설로 전해진다고 한다. 황새로 둔갑한 너는 이런 이야기 속의 상황과 일치한다. 완성된 황새는 요사스럽고 기형적인, 흉물스럽고 어수선한, 졸속으로 급조해 내놓은 피규어 같은 익살스러운 우상으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이제 기계도 아니고 황새도 아니며, 어느 괴팍한 지옥에서 건너온 것만 같은 폐기물의 콜라주에 지나지 않는다.
너의 ON이 지하 주차장을 선회한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황새와 기계 사이의 교잡종, 코스프레한 천사, 극장에 배치된 무기력한 오브제, 더미 인형, 날지 못하는 죄인, 장난감, 기념비, 수호신, 그로테스크하며 유치한 폐기물 터줏대감이 되어 주차장을 행진한다. 물론 너는 네가 이 모든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너는 온갖 자아상과 역할에 통달한 듯, 네 수동성에 전적으로 항복했기 때문에 도무지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이레즈미와 보살은 너를 황새라고 부른다. 멀리에서도 가까이에서도 너는 황새와 닮지 않았고, 두 사람은 너를 황새로 둔갑시키기 위한 마지막 수법으로 즉석에서 황당무계한 설화를 짓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매일 길거리의 폐기물들을 서낭당으로 운반하던 호더 삼신할미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폐기물 황새를 만들었다는 것. 두 사람은 너를 삼신할미라고 부른다. 동양에서 활동하던 삼신할미가 서양에서는 늙은 황새로 변신해 아이를 점지하고 다닌다는 것.
이렇게 우기며 우상 제작에 성공한 둘은 주차장을 장엄한 사당으로 위조하기 위한 풍물패 공연에 착수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사당은 무엇이냐? 임금님 복장으로 갈아입은 보살이 이레즈미에게 부채를 휘두르며 타령한다. 박수무당 복장을 하고 정좌한 이레즈미가 장구를 치며 대답한다. 종묘와 사직이옵니다. 종묘는 역사의 병풍 속에 안치된 군왕의 신위를 모시는 장소이며, 사직은 현세에 존재하는 만물의 풍요를 섬기는 장소이옵니다. 종묘는 형이상학이며 사직은 형이하학이니, 달 밝은 날 종묘와 사직이 혼례를 올려 합궁에 드는 것을 바로 세계의 이치라고 하옵니다. 가마꾼을 자청하는 박수무당의 탄탄한 등짝에 업힌 임금님이 파안대소하며 종묘로 행차하고, 칸칸이 군왕의 신줏단지로 연출된 지하 주차장의 공란들 안으로 들어가 경배하며 술을 뿌린다. 폐기물 황새 앞에 차려진 제사상에는 컵라면과 통조림이 놓여 있고, 한 쌍의 원앙이 된 둘은 요가를 하듯 뒤엉켜 도발적인 자세로 맞절을 한다. 너는 제사상 앞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제단으로 사용된 쇼핑 카트 앞에서 절뚝거린다.
우주적 규모의 미신을 자신들의 혼례를 위해 전유한 이레즈미와 보살은 후련하고 홀가분한 얼굴로 예식을 마친다. 둘의 지극한 정성이 효험을 발휘했는지, 그날 밤 아웃렛 옥상의 둥지 속에서 아기 황새들이 태어난다. 노숙자처럼 구천을 떠돌던 정조대왕의 유령이 주차장으로 찾아와 침소에 누웠고, 삼신할미가 음흉하고 흡족한 시선으로 샐쭉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격렬하게 덜컹거리는 소나타 차창 안을 훔쳐보았다. 황새 분장에서 놓여나지 못한 너는 밤새 주차장을 배회했고, 괴담 같고 기적 같은 이 광경들을 일지에 기록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기 황새들은 네게 보은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채비를 한다. 엉덩이를 둥실거리며, 이 소설에 공들여 묘사된 혼잡한 폐허 속을 통과해 지하로 내려온다. 열을 맞춘 아기 황새들의 하찮으며 찬란한 순례길이 달팽이 모양의 통로를 지난다. 네 주변에서 눈송이처럼 날갯짓하는 아기 황새들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너를 엄마로 인식한다. 흥청망청에 절은 폭군처럼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임금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소나타 바깥으로 나온다. 무수리가 보살의 구겨진 곤룡포를 갈무리하며 물러서고, 둘은 황홀하게 입을 다문 채 너와 아기 황새들의 퍼레이드를 구경한다. 이레즈미가 공손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전하, 기계가 황새를 낳은 모양이옵니다. 그때, 임금님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헛구역질을 한다. 보살의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은 속절없이, 항상 너를 건드리지 않은 채로 지나간다. 아기 황새들처럼 네게 고마워하던 보살과 이레즈미가 네 머리통에 빙의된 끔찍한 죄를 퇴치하는 살풀이 혹은 위령 의식을 거행한다. 곧 식구가 불어날 가정의 미래를 도모해 다른 곳으로 살림을 옮긴다. 그들의 아이인 메시아가 장성해 세상이 혁명적인 열기에 감염되고, 메시아가 엔지니어 관료들 앞에서 인류와 오토마타를 대속하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다. 얼마 후 부활해 승천하며, 새로운 신약성서의 첫 장에는 동방박사와 천사들과 마구간 대신에 너와 아기 황새들과 지하 주차장이, 총각의 몸으로 메시아를 수태한 성스러운 보살의 일화가 언급된다. 오래되었던 중세의 암흑이 걷히고, 합리성의 시대가 도래해 이 소설에 적힌 내용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문학적 상징이자 비유적 허용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득세할 무렵이 되어서야 너의 ON은 홀연히 작동을 종료한다.
네 형기가 만료된 것이다. 지하 주차장의 어둠이 머리통을 보듬고, 불이 꺼진 머리통 안에서는 더 이상 기억 타래가 상영되지 않는다. 세 번째 기억 가닥 속에서 너는 P시의 다리 위에 있었다. 난간에 올라선 너는 모가지가 불룩하며 빳빳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를 외친다. 목젖 아래가 간질간질하다. 너는 네 속에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는 새를 토하고 싶고, 너는 정말 목구멍으로 새를 토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네 상기된 얼굴을 힐끔거리며 너를 바라보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너는 발을 구른다.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모독해 네 입술 바깥으로 솟아나는 새를 보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너는 새를 토해내지 못한 듯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으로 너를 재촉할 뿐이다. 그럴수록 네게 박혀 있는 죄가 가슴을 깊게 파고든다.
주춤거리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리 위로 진입한 네가 너를 바라본다. 너는 수만 번이나 너와의 만남을 반복했으며, 그것이 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난간의 이편과 저편에서 너는 네가 새를 토하는 모습에 붙들려 있었다. 이편에서 네가 낯선 나라의 국기를 망토처럼 뒤집어쓴 너를 바라보고, 저편에서 네가 네 조국의 국기를 망토처럼 뒤집어쓴다. 너는 네가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난간 바깥으로 몸을 던진다. 어깨의 균형이 기울고 네가 허공으로 미끄러지는 찰나의 순간 너는 너와 눈이 마주친다. 기억 타래는 세 가지의 다른 시간대를 엮은 노끈 형태이다. 기억 타래가 회전하기 시작하면 다리 위에서 함께 공존했던 두 명의 너, 동일자이면서도 타자인 너, 참혹한 두려움 때문에 커다랗게 벌어져 서로를 응시했던 두 사람의 눈동자가 공포와 슬픔에 물든 한 사람의 눈동자로 포개졌고, 네 개의 눈동자는 두 개의 눈동자가 되었으며, 기억의 이미지를 네게서 출발해 네게로 귀환하는 완전한 두 개의 원 사이의 되풀이로 환원시켰다. 한없는 폐곡선, 쌍고리 모양의 포승줄로 결박된 죄수의 양쪽 손목처럼. 그래서 무한과 불멸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노끈으로 된 올가미를 나타내는 누운 8자 형태의 기호야말로 가장 집요한 죄의 상징이자 변하지 않는 시간의 형식, ON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또한 그것은 기억 타래 속의 네가 다리 이편과 다리 저편에서 같은 인간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인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러나 너의 ON은 수명을 다했고, 너는 중단된다.
엔지니어 관료들이 오지 않는다. 엔지니어 관료들이 방문해 죄를 청산한 너를 소각해야 하는데. 머리통을 부수고 껍데기를 말소해야 하는데. 아니면 너를 수리해 너의 죄가 계속되리라는 것을 선포해야 하는데. 너는 있다. 죄 따위도 없이. 너의 ON으로부터도 해당하지 않는 장소에. 너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서 있다. 무기질의 윤곽처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가정된 존재인 네가 이곳에. 마치 지상 너머의 으스스한 낙원으로 월경하는 황새처럼. 시선을 삼켜버리는 검은 공백 속에 네가 있고, 너를 기억하는 마지막 인간이 너를 방문해야 할 때가 온다. 패스워드를 입력한 뒤 머리통 속에서 기억 타래를 제거하면 너는 사라진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이 문장은 더는 작성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묘사된 통음난무의 마당놀이 속에는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 장 주네, 미시마 유키오, 어니스트 헤밍웨이, 모리스 블랑쇼, 모니크 위티그, 캐시 애커, 황진이, 김수영, 서정주, 구지가와 비나리, 단군신화, 삼신할미 전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는 은혜 갚은 두꺼비 설화, 아이를 물어다 주는 황새 이야기 등의 문장과 테마가 방만하고 비체계적으로 변주된 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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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내게 백가흠 방안에 어둠이 번지며 축축한 기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차며 퍼진다. 가스가 끊긴 지 두 달 전이다. 조금만 견디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이다. 내게는 겨울이 ‘가혹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겨울을 내 생에서 다시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나는 혹독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매일 나는 마음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마흔다섯 번째 겨울을 나는 강원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원룸 안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웬만한 추위를 견디는 데 불편이 없었지만, 며칠 전부터 엄청난 한파가 시작된 뒤로는 소름 끼치는 한기가 등에 붙어 나를 괴롭힌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별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서관은 따뜻하고 읽는다는 일거리가 있어서 좋다. 나는 휴대용 버너에 물을 올린다. 텐트 안에 습기가 차며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누워 밤이 시작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지루한 삶의 권태와 살이 갈라지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 사이 내 밤이 놓여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와 생의 존속을 위한 고통 사이 내 하루가 있다.1) 핸드폰은 정지된 지 몇 주가 지났다. 내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친구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는 일 빼면 전화기는 내게 불필요한 물건이었다. 평생 내가 맺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한동안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곰곰 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세 주전자가 울기 시작한다. 고요함이 물러간다. 가끔 이는 소란스러움이 내게는 퍽 소중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신다. 추위가 잠시 녹는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담아 꼭 껴안는다. 다른 하나는 침낭 안에 넣어 둔다. 얼어붙었던 하루의 고뇌가 녹는 것 같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배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허기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제는 한 끼라도 먹었으니, 어제, 오늘은 굶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굶었다. 끼니를 때우는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남은 돈으로 소주 두 병과 담배를 샀다. 마지막까지 나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견디기로 했다. 소주와 담배만큼은 쉬이 참을 수 없었다. 술이 없으면 한잠도 잘 수가 없고 담배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담배는 허기를 채워 주는 묘약이다. 소주는 내 안에서 끓고 있는
- 관리자
- 2026-03-01
서브리미널 안종성 여러 대의 카트가 교차 레일 지점을 충돌 없이 지나갔다. 높은 위치를 누비면서도 질서 정연히 움직일 줄 알았다. 출로에 다다를 때쯤 천천히 감속하더니 허공에 뚫린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윤무의 눈동자는 천장 주행 장치의 행렬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 장면으로부터 슬픈 기분을 느끼고는 습관처럼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붙잡아 두는가? 그러나 기록할 도구를 찾지 못한 윤무는 걷기로 했다.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벽과 바닥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흰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소리와 냄새, 온도, 어떤 예감마저 느낄 수 없었다. 윤무는 이곳을 알 것만 같았다. 얼마 전 필경사와 무한한 흰 공간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필경사는 권면에 들기 전 미리 가서 둘러볼 것을 권했다. 깨어날 때 부분적인 기억상실이 있을 테지만 영원히 망각한 게 아니라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권면 전의 삶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필경사는 뇌의 저장 용량을 컴퓨터 저장 단위로 환산하면 2.5페타바이트에 달함에도 인간의 상상력이 쉼 없이 활동하므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보관한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인간의 신체가 권면과 죽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기억 편람의 업로드가 끝나면 직계 가족이라 할지라도 오십 년 뒤에나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필경사는···. 구축 아파트에서 볼 법한 편복도를 지날 때 윤무는 재건축 직전의 폐허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호수마다 잡동사니가 나뒹굴거나 무가지가 쑤셔 박혀 있었다. 앞바퀴 없는 자전거도 복도를 비좁게 만들었다. 윤무는 그중 현관문이 열린 곳에 서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곳에는 회색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그 역시 깨어난 게 얼마 되지 않았는지 윤무에게 여러 번이나 같은 내용을 물었고─여기 당신의 집인가요? 다른 누가 또 살고 있습니까? 식사했습니까?─결국 이들은 임장하러 온 일행처럼 나란히 집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내부는 따로 특별한 게 없는 가정집이었다. 통유리에 붙은 주먹만 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휠을 돌려 보거나 싱크대 위에 널브러진 여러 가재도구를 들춰 보던 윤무는 커피믹스를 발견하고 남성을 향해 들어 보였다. 포장 비닐이 아침의 배경 앞에서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스스로 마토메라 밝힌 남성은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를 다니고 있지만, 서울 출장 경험이 잦아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안다고 말했다. 윤무는 소파에 앉은 마토메의 다부진 체격,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 외형만큼이나 독특한 건 마토메의 상태였다. 한눈에 보더라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내려다보는데 호흡이 불규칙했으며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렸다. 윤무와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업무차 여기에 온 건가요? 윤무는 낯에 익은 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무대를 오며 가며 보았을 조
- 관리자
- 2026-03-01
우주의 영향 아래 임수지 언젠가 우주에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함께 가 보자고 말한 적 있다. 거기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방을 보게 될 거야. 팅커벨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화장실에 다녀오면 문 앞에서 두꺼비가 널 지키고 있을 거야. 두꺼비들은 착하다. 두꺼비들은 두껍두껍 울지 않아. 걔들이 울면 동그란 구슬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정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주는 그곳은 꿈과 환상의 나라네, 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 기사는 나를 미림슈퍼 앞에 내려 주었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을 잠시 바라보다 미림슈퍼 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두 번 꺾어 집 앞에 서서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바다 냄새가 몸속 깊이 들어왔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 전화를 했는데도 할머니는 정말 내가 곧장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준 할머니의 짧은 파마머리가 멋대로 눌려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짜증을 조금 부리다가 곧 이불을 내어주었다. 날 밝을 때 오지, 뭐 하러 이 늦은 시간에 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보일러를 안 틀었나? 얼굴과 손발을 대충 씻고 작은방에 깔아 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불이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안방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워 물어볼까 고민하는 동안 내 체온에 맞춰 이불이 천천히 데워졌다. 이불을 코까지 덮은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데운 이불이 다시 나를 데우며 조금씩 따뜻해졌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오늘은 우주의 기일. 오늘 나는 우주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잠들 것이다. * 우주가 내 방에 머물 때 입던 품이 큰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는 잘 개켜 종이 가방에 넣고 옷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나는 그걸 다시 꺼내 본 적 없다. 우주가 쓰던 면도기나 낡은 양말 같은 것들도 진작 정리했다. 이제 내 방에 우주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용 기한이 지난 음식점 할인 쿠폰 같은, 우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쓸고 닦아도 계속 생겨나는 먼지처럼 어딘가에서 자꾸만 하나씩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그런 것들을 찾아낸 날이면 나는 자꾸만 골똘해졌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있다니. 그런데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2년이라는 시간은 하루이틀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사실은 하루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년이 흘렀다고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매트리스와 벽 사이에서 영화 티켓을 발견했다. 어쩌다 여기에 티켓이. 영화 제목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그날 관객은 다섯 명뿐이었다. 재미가 없는 영화인가. 영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으므로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옆에 앉은 우주에게 작게 말했다. 전세 낸 것 같고 좋은데
- 관리자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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