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그 해 겨울은 내게

  • 작성일 2026-03-01

   그해 겨울은 내게


백가흠


   방안에 어둠이 번지며 축축한 기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차며 퍼진다. 가스가 끊긴 지 두 달 전이다. 조금만 견디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이다. 내게는 겨울이 ‘가혹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겨울을 내 생에서 다시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나는 혹독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매일 나는 마음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마흔다섯 번째 겨울을 나는 강원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원룸 안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웬만한 추위를 견디는 데 불편이 없었지만, 며칠 전부터 엄청난 한파가 시작된 뒤로는 소름 끼치는 한기가 등에 붙어 나를 괴롭힌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별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서관은 따뜻하고 읽는다는 일거리가 있어서 좋다.

   나는 휴대용 버너에 물을 올린다. 텐트 안에 습기가 차며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누워 밤이 시작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지루한 삶의 권태와 살이 갈라지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 사이 내 밤이 놓여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와 생의 존속을 위한 고통 사이 내 하루가 있다.1) 핸드폰은 정지된 지 몇 주가 지났다. 내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친구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는 일 빼면 전화기는 내게 불필요한 물건이었다. 평생 내가 맺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한동안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곰곰 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세 주전자가 울기 시작한다. 고요함이 물러간다. 가끔 이는 소란스러움이 내게는 퍽 소중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신다. 추위가 잠시 녹는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담아 꼭 껴안는다. 다른 하나는 침낭 안에 넣어 둔다. 얼어붙었던 하루의 고뇌가 녹는 것 같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배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허기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제는 한 끼라도 먹었으니, 어제, 오늘은 굶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굶었다. 끼니를 때우는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남은 돈으로 소주 두 병과 담배를 샀다. 마지막까지 나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견디기로 했다. 소주와 담배만큼은 쉬이 참을 수 없었다. 술이 없으면 한잠도 잘 수가 없고 담배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담배는 허기를 채워 주는 묘약이다. 소주는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삶의 욕구를 잠재우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술은 삶의 욕망을 잊게 만드는 명약이다. 나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술을 마신다. 술은 헛된 욕망을 가라앉힌다.

   나는 소주 한 병을 천천히 쉬지 않고 들이켠다. 소주가 목을 타고 텅 빈 내 마음속으로 떨어진다. 금세 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빈속을, 내 온몸을 소주 한 병이면 다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엉망인 내 삶을 채우는 데 소주 한 병으로 족하다. 나는 빈 병들을 한쪽 벽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뉘어서 쌓은 병들이 이제 허리 높이까지 올라왔으니 몇백 병은 될 것이다. 아니, 천 개쯤 될 것이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수많은 눈이 나를 지켜보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 영혼이 슬금슬금 빠져나가 깃든 구멍들이 나를 바라본다. 빈 병으로 채워지는 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 삶의 흔적이라곤 그것이 전부인 듯 허전한 마음이 든다. 잊어버린 쓸쓸함이 되살아난다. 술이 서둘러 그런 마음을 밀어낸다.

   누추한 텐트 안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소주와 담배와 소설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중 한 권을 펼친다. 책을 펼치자, 취기가 돈다. 아무 데나 펼친 곳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먹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돌이킬 수 있다. 우리는 죽음으로 파괴된 것을 섭취함으로 살아간다. 실은 죽음이 유일한 영양분이다.’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되뇐다. 책을 권해 준 도서관에서 일하는 양순영 씨가 떠오른다. 몇 달 전 나는 그녀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가 거절 당한 적이 있었다. 뒤로 도서관엘 가지 않다가 얼마 전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장수영 씨, 그 일 때문에 안 오시는 거예요?”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생긋생긋 웃었다. 내 이름을 또렷이 기억해서 나는 좀 당황했다.

   “바빴어요. 다시 일을 하거든요.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때 못한 저녁 오늘 먹을래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녀와 어떤 관계나 특별한 사연을 만들어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사랑했던 그녀, 노순영과 이름이 같아서였다. 하지만 밥 먹자는 말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나만 몰랐다.

   “오늘이요? 싫은데요.”

   나는 말하고선 좀 당황했다. 얼떨결에 말이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녀에게 계속 오해를 남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무엇보다 나는 돈이 없었다. 그녀에게 밥을 사 줄 여유가 없었다. 그게 다였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하죠, 뭐. 그래도 도서관에 다시 나오세요. 재밌는 책 많이 들어왔어요. 벌써 두 계절이 지났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구나, 깨달았다. 나는 이 작은 도시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일할 때는 동료들과 매일 소주도 마시고 하루하루 있었던 일과를 나누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들과 나눈 대화 중 무엇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공허한 시간이 남았다. 양순영 씨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녀와의 짧은 대화는 내게 하루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나는 많은 것을 애써 부정하고 모르는 척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다시 나오실 거죠?”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그녀가 다시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 분은 아니신 것 같고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나는 그만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냥 이것저것 해요. 인테리어도 하고 작은 공사도 하고요.”

   “어머, 손재주 좋으신가 보다.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시는 것 보면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중에 우리 도서관 일도 좀 해 주세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뭐.”

   나는 말끝을 흐렸다. 일이 완전히 끊겨 버리는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근근이 버티던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원도에 온 지 두 해가 지나고 있었다. 일감이 계속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일이 들어올 때마다 수익을 따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공사를 한번 시작하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렸다. 나는 그때그때 일이 있는 곳에 숙소를 얻어 공사 기간 내 지내곤 했다. 그렇게 이십 년 넘게 떠돌며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순영을 만난 것이야말로 어쩌면 이런 생활을 접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가장 잘못한 일은 사랑했던 그녀를 붙잡지 않은 것이다. 아니,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그녀가 떠나도록 내버려둔 일이다. 그녀를 붙잡았다면 지금 나는 내가 겪는 모든 일보다 훨씬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도 내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독서는 내겐 생존의 필요조건 같은 것이다. 나는 요즘 책을 읽으며 밤을 보낸다. 너무 추워서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밤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나는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한다. 그러나 소설이 아주 먼 옛날에 밤새며 읽었던 것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내가 변한 것처럼 세상이 바뀐 것처럼 소설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신경질이 좀 나기도 해서 책을 읽어 내는 것에 오기를 부렸다. 이해되지 않으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소설이나 세상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고 바뀐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 사실에 나는 좀 흥분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로가 찾아왔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미대에 진학했다. 글을 썼다면 지금의 나는 뭔가 달라졌을까. 더 일찍 삶의 일부분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림을 그렸지만, 회화과는 가지 못했고, 금속공예과를 전공했다. 졸업하고서는 일꾼으로 살아왔다. 어렸을 적에, 그러니까 맨 처음에 원래 내가 뭘 하며 살고 싶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듯싶다. 글 쓰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좀 나았던가, 회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 만한 성적이 되지 않아서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내 고민은 짧았다. 그러니 이런 어려움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 후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인생을 허비하거나 사치를 부리는 일 같았다. 나는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취기가 오르자, 곰곰 해진다. 정말이지 그런 생각은 무용한 일이다. 그런 생각에 몰두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틈만 나면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을 멀리 밀어내려고 해도 자꾸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자문한다. 자책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소주를 다시 병째 들이켠다. 얼음보다 더 차디찬 소주가 온몸에 퍼져 나간다. 아마도 나는 곧 곯아떨어질 것이다. 멍청한 생각들을 저 멀리 밀어내며 잠시 취기를 빌어 추위를 잊은 것에 행복해하며 잠들 것이다. 의미 없는 하루가 곧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죽지 않고 견딘 하루가 곧 잠들게 될 것이다.

 

   술기운을 빌어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25℃나 24℃, 내 몸은 뱀의 차가운 피부와 같다. 침낭 안 발밑에 두었던 뜨거웠던 물통은 이미 온기를 잃은 지 오래 전이다. 차갑게 식어 버린 물통 때문에 침낭 안은 침낭 밖보다 더 냉골이다. 나는 침낭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물통을 꺼내려면 앉아야만 했는데 그게 쉽지 않다. 추위에 굳은 내 몸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나는 물통을 꺼내 아무렇게나 밀어 둔다. 아침이면 물통은 꽝꽝 얼어 있을 것이다. 이런 추위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완벽한 어둠 속에 나는 다시 웅크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몸을 우그려 아주 작게 만드는 것. 삶의 마지막 의지이다.

   나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용 버너에 불을 댕긴다. 그러자, 금세 텐트 안에 온기가 퍼진다. 나는 옆으로 누워 파란 불꽃을 바라본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가늠해 본다. 우리의 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 우리의 시간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천천히 흐른다.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아침을 기다린다. 날이 밝으면 이 흉악한 추위가 물러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해 본다. 배가 고프다. 배고픔을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배고프다.

   날이 밝으면 김 소장을 찾아갈 것이다. 나는 왜 그리 똑똑하지 못하고 약지 못한가 자책한다. 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날을 생각하면 굴욕적이며 자존심이 상했다. 화를 내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일부러 내게 모질 게 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새 나는 모욕감을 잊는다. 나는 그에게 생긴 연민을 서둘러 마음속에서 밀어낸다. ‘김 소장, 이 개새끼’ 나는 일부러 소리 내 상욕을 뱉는다. 지난달 공사비를 받으러 갔던 일을 상기하며 모멸감을 불러낸다. 그러자 그에게 미안하다. 그저 받지 못한 돈인데 상욕까지 한 나를 스스로 나무란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 마음의 어떤 선이 무너진 느낌이다. 결국 그에게 받은 굴욕은 나를 책망함으로 마무리된다. 그날도 나는 연락을 피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 공사장으로 향했다.

   “아이 웬일이야, 재수 없게.”

   그가 나를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는 나를 본체만체했다. 그의 처지에서 내가 참 불편하겠다, 싶었다. 화장실로 향하는 그를 겨우 붙잡았다.

   “소장님, 제 사정 뻔히 아시면서 그러세요.”

   나도 그처럼 뻔뻔할 수만 있었으면 내 인생이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소장님, 이번에는 꼭 대금 상환 좀 해 주세요. 저 이러다가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나는 그가 심기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 사장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 내 사정도 좀 봐주라.”

   그는 내 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답했다.

   “변제가 안 되니까 일감을 물 수가 없잖아요. 재료상에서도 외상으로 자재를 안 내어주고요. 소장님, 이거 해결해야 저도 다른 곳으로 가지요. 사정 뻔히 아시면서 이러면 어떡해요, 정말.”

   그를 알게 된 것은 평택의 한 공사장에서였다. 제법 큰 규모의 공사였는데 그도 나도 밑도급의 밑도급을 받아 얼마 안 되는 수익이라도 챙기기 위해 몇 달째 고생 중이었다. 서로 비슷한 처지여서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공사장 한쪽 컨테이너에서 함께 생활하며 동고동락한 세월이 반년이었다. 공사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던 내게 그가 연락해 왔다. 그가 강원도에서 작은 일을 맡았는데 마지막 마무리 공사를 나보고 맡아 달라고 했다.

   “소장님, 저 진짜 죽어요. 첫 번째 공사비라도 먼저 해 주세요. 진짜 이제 못 버티겠어요.”

   나는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까 봐 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공사를 마쳤지만, 공사 비용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자재비, 인건비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는 내게 두 번째 공사마저 해 주면 한 번에 대금을 해결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를 믿고 또 빚을 내어 공사를 마쳤다. 그 돈도 받지 못했다.

   “장 사장, 그냥 나 고소해. 내가 감옥 갈게. 미안하지만, 정말 갚을 능력이 없어. 알잖아. 나도 공사대금 다 떼인 거.”

   그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소문에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소장님, 공사대금 모두 강원랜드 가서 잃은 거 제가 모를 줄 아세요?”

   나는 어떻게든 그가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하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가 빙긋이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걸 다 알면서 왜 물어. 그럼 내가 한 푼도 없는 거 알겠네. 그러니까 그냥 고소해. 내가 잘못했으니, 죗값을 치른다잖아.”

   나는 그의 말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여유 있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 사정하고 애원했지만, 그는 여느 때처럼 냉정했다.

   “그런다고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잖아요. 그러지 말고, 인부들 밀린 일당이라도 주게 좀 해 주세요.”

   그에게 반나절을 매달려 백만 원을 받아 냈다. 이제 받을 돈이 일억 팔천구백 만원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다. 인부들에게 밀린 임금만이라도 해결할 만큼 사정을 봐주면 좋을 텐데, 낭패였다.

   그날 받은 돈으로 어제까지 한 달 넘게 버텨 냈다. 어떻게든 그에게 돈을 받아 내기 위해 매일 찾아가 사정을 해 보겠다 마음먹었지만, 아침이 되면 내 결심은 무너졌다. 나는 겁이 났고, 그런 상황이 귀찮고 불편했다. 일부라도 송금하겠다는 그를 그저 믿고 싶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갔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어떻게든 사정해 봐야지, 다짐해 본다. 이렇게 추운 날 온기도 없는 방에서 지내는 나를 좀 가엽게 여겨 주기를 기대해 본다. 아침이 오려면 멀었을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버너를 계속 켜 놓을 수만은 없어서 불을 끈다. 순식간에 온기가 사라졌다. 썰렁한 기운에 소름이 한꺼번에 돋아난다.

   나는 스스로 죽지 않을 것이다, 몸을 동그랗게 말며 다짐했다. 나는 얼어 죽지도 않을 것이다, 중얼거린다.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을 것이다,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소리를 내어 말하면 그게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근래 부쩍 혼잣말이 많아진 이유다. 잠은 이미 멀리 도망쳤고, 책을 읽고 싶었지만, 좀체 추위에 굳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나는 침낭 안에서 몸을 더욱 조그맣게 말았다. 나는 먼저 죽어 버린 형일이가 생각날 때마다 이 텐트 안에서 죽은 나를 상상한다. 누가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인가. 봄이 와야겠지, 아니 여름에 이르러서야 내 몸은 구더기들로 꽉 차게 될지 몰라, 나는 죽은 친구가 옆에 있는 듯 말한다. 작년 겨울에 형일이는 쓸쓸하게 죽었다.

   “언제,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다네.”

   형일의 죽음을 알려온 이는 선우였다. 선우는 여행사에서 단체여행객 인솔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일을 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새해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군청에서 쏘아 올린 폭죽을 나는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풍경 안에 서 있었다. 폭죽이 터지자, 군청 앞에 모인 사람들 모두 환호했다. 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불쌍하게 죽어 버린 친구를 생각했다. 형일은 추측건대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어디쯤에서 숨을 놓은 듯했다. 그는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조그맣게 말고 죽어 있었다고 했다.

   “올 거지?”

   선우가 말했다. 엄청 화려한 폭죽 무리가 우주를 향해 나아가다 곧 사라져 버렸다. 시신은 미라화가 진행되었는데 몸 안에 혈액이며 수분이 모두 빠져나와 꼭 조각상 같았다고 했다.

   “가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장례식 경비며 오가는 여비가 걱정이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죽은 친구 몸 안의 수분을 천천히 빨아들였다고 했다. 밀폐된 집은 건조했으며 시신이 썩는 것을 막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냐. 그나저나 너무 웅크리고 죽어서 관에도 넣을 수가 없다는데 걱정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차라리 가족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다. 어쨌든 수영아, 빨리 좀 출발해라.”

   선우는 친구의 죽음을 모두 떠안은 듯 난감해했다. 10대, 20대를 늘 붙어살던 우리는 하나를 잃게 되었다. 팡팡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연이어 소리를 질렀고 나는 멀뚱히 겨울 하늘을 쳐다보았다.

   형일은 죽은 뒤 천천히 아주 서서히 말라 갔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시신은 정말 바짝 마른 나무토막 같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생의 곡선과 죽음의 멈춤, 그저 물컹거림과 딱딱함의 차이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꼭 내 장례식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딱딱해진 나를 상상했다. 친구의 죽음에 동화되는 것을 넘어 그의 죽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일까, 슬픔이 크지 않고 덤덤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스스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죽음이 곧 안식이라는 말을 이해했다고나 할까.


   밖으로 나오니 사위가 깜깜했다. 엄청난 추위로 내 몸은 진정되지 않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정없이 몸이 떨렸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나는 휘청였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공사 현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그곳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칼바람이 내 앞을 막아설 때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느꼈다. 인제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한 걸음 뛸 때마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친다. 수영아, 이제 포기하자. 버티는 거 그만하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나는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고 어지러워서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나는 진정되지 않는 숨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둔다. 호흡이 되지 않으며 자꾸 쇳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런 나를 몇몇 일꾼들이 쳐다보았다. 공사장 입구, 정기적인 일을 받지 못한 일꾼들이 하루 일을 얻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겨울엔 공사 현장이 적어서 일감 경쟁이 치열했다. 그들은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근처에 모여 있었다. 땀이 식으며 엄청난 한기가 몰려온다.

   나는 숨을 가라앉히며 불 가까이 다가간다. 한 사내가 내게 따뜻한 보리차를 건넨다. 낯이 익어서 보니 내가 예전에 고용했던 인부였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그에게 주지 못한 임금이 떠오른다. 나는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붙었다. 나는 보리차를 홀짝거리며 어쩌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죄송해요. 어떻게든 올해 넘기기 전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내 말을 막는다. 불을 쬐던 사내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몰린다.

   “사정 들었어, 장 사장. 마음이라도 알았으니 됐어.”

   사내들이 무슨 사연인가 싶어 내 말을 기다린다.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굳게 입을 다문다.

   “알고 있어. 알았으니 됐어.”

   그 말은 내게 한 말이라기보다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인다.

   “장 사장, 마음 독하게 먹어. 아직도 젊은 사람이 그렇게 물러서 어떡해.”

   아마 기억이 맞다면 그는 미장이 김 씨일 것이다. 아니, 손 씨이던가,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일한 날이 꽤 됐을 텐데, 내게 받아야 할 돈이 몇백만 원은 될 것인데 그는 내게 그간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잊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요구하지 않으면 잊게 된다.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김 소장을 만나야 하는데 민망함에 나는 그 시간까지 버티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나는 속으로 갈등한다.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작업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하루 일감을 찾는 사람들이 불 주위로 몰려든다. 나는 사람들에 밀려 점점 불에서 멀어진다. 얼어 버린 발엔 이미 아무 감각이 없었다.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김 소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내 다짐은 추위에 맥없이 물러서려 한다. 김 소장을 만나기 전 추위가 모든 것을 단념시키고자 한다. 나는 어떻게든 불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보려 해 보지만 틈이 없다. 인부들은 불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친 것처럼 견고하다. 일과를 준비하는 그들의 표정은 결의가 넘쳤고 완고해 보인다. 나는 발을 구르며 김 소장을 다시 기다리기 시작한다. 나는 담배를 피운다. 담배는 추위도 잠시 잊게 만드는 신통한 약이다. 오늘 김 소장이 돈을 주지 않는다면 담배를 살 돈도 내겐 없었다. 정말이지 나는 삶에 아무런 계획도 가능성도 없다. 그를 기다리며 남은 담배를 모두 피웠다. 그 사실이 내 성정에 없는 결기를 만든다. 담뱃값도 없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미래, 내일은커녕 한 시간 후도 내겐 없다.

   김 소장은 공사가 시작되는 일곱 시 정각에 나타났다. 나는 점잖고 조용히 그에게 돈을 달라고 말한다.

   “장 사장,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이렇게 갑자기 새벽에 찾아오면 내가 돈이 있나.”

   그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한다. 그의 말은 그저 숨을 뱉는 듯 휘발되어 버리는 공기와 같다. 물론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그는 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른 척 현실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나는 그에게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그게 문제다.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으니, 그는 주지 않는 것이다. 그와 매번 반복되는 대화가 한동안 이어진다. 나는 사정하고 그는 내 존재를 잊는다. 그는 현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를 따라다닌다. 그는 인부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그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식당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차마 이틀을 굶었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배가 고프다, 잠시 잊었던, 내겐 너무나 치명적인 그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다. 빚을 진 그는 당당하고 나는 비굴하다. 모욕감이 기어 나온다. 배고픔이 용기를 준다. 나는 식당에서 나오는 그의 멱살을 가만히 잡았다.

   “김 소장님, 난 곧 죽을 거예요.”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말하면서 이미 울고 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그 말이 서글펐다. 내 안에 숨기고 숨겨 두었던 그 말이 나를 울린다. 흐릿해지는 시야 저 멀리 김 씨인지, 손 씨인지 기억나지 않는 그가 내 쪽을 힐끔거린다. 그는 여전히 불을 쬐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일을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나를 못 본 척 슬그머니 등지고 돌아선다.

   “배가 너무 고파요. 김 소장님, 정말, 나한테 이러지 마요.”

   나는 멱살을 쥔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주저앉아 그냥 엉엉 울고 싶다.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아 보려 애쓰지만, 자꾸 울음이 새어 나온다. 나는 그냥 돌아서 집에 가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면, 내게 안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말하지, 그랬어. 뭘 배고프다고 울고 그래, 무섭게.”

   김 소장이 나를 이끌고 식당으로 들어가 순댓국을 시켜 준다. 나는 울어 버린 것이 창피해서 자존심을 들킨 게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눈물을 훔치고 앉아 있다.

   “누가 밥 사 달래요? 돈 줘요, 빨리. 약속한 한 달 됐잖아요.”

   나는 코 먹은 소리로 겨우 말하고 코를 푼다.

   “일단 밥 먹고 있어, 장 사장.”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도 따라 일어난다.

   “어디 안 가, 나. 내가 어디 가?”

   그때 보글보글 끓는 순댓국이 내 앞에 놓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다시 앉았고 김 소장은 식당을 나갔다. 나는 앞에 놓인 순댓국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나 자신이 싫어 죽을 것만 같다. 하지만 자꾸 시선이 떨어지며 침이 고인다.

   “장 사장님, 소주 줄까?”

   식당 주인이 아는 체를 해 왔다.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주인은 내 앞에 소주를 내려놓는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나는 찬 소주를 물컵에 가득 따라 마신다. 꽝꽝 얼어 버린 온몸에 찬 소주가 퍼진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 그러자 허기가 몰려온다. 나는 천천히 순댓국을 먹기 시작한다. 뜨거운 음식이 몸에 들어가자, 나는 모든 것을 잊는다. 나는 그게 문제다. 나는 남은 소주를 마저 마신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모든 것이, 정신이 또렷해진다.

   나는 식당 주인에게 빚이 있다. 인부들이 몇 달 동안 달아 놓고 먹은 식대가 꽤 되었다. 얼마를 계산했고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전혀 기억 못 한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김 소장을 기다린다. 나는 밥값이 없어서 안절부절못한다. 가게를 나가고 싶은데 나는 어쩌지를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고 나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어느새 식당엔 나와 주인 둘뿐이다.

   “국물이랑 소주 더 줄까?”

   주인도 민망했는지 내게 묻는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며 손사래를 친다. 주인이 주방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속으로 고민한다. 그냥 슬쩍 일어나서 나가고 싶다. 그런데 참 염치가 없어서 일어서지를 못한다. 나는 그렇게 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저기 사장님.”

   나는 주방 쪽으로 가서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멀뚱히 서 있었다.

   “왜, 뭐 더 드려?”

   막 돌아서는데 주인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사장님, 저기 밥값 이따가 와서 드릴게요.”

   나는 기약 없는 말을 뱉는다. 나는 돈이 없다. 도리가 없으니 이런 상황을 견뎌야만 한다.

   “아니야. 그냥 가. 김 소장 쪽으로 달아 놓으면 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젠 해결하지 못한 식대가 신경 쓰여서 쉬이 돌아서지 못한다.

   “장 사장님, 가끔 들러서 밥 먹고 가. 안 그래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그랬어. 가끔 사람들 하는 말 들으니까 좀 걱정되고 그랬다니까.”

   “아, 네.”

   그녀가 내 사정을 아는 듯했다. 아니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 받을 돈이 있는 사람은 나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몇 명인지 나는 기억 못 한다. 벌써 이 년이나 흘렀으니 잊었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니다. 새삼 나는 식당 주인에게 미안해져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잘 좀 먹고 다녀. 못 본 새 얼굴이 많이 상했네.”

   나는 고개를 허리까지 숙이고 식당을 나온다. 기분이 더럽다. 김 소장, 이 개새끼를 정말. 상욕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나를 자책하지 않는다. 나는 정말, 아주 오랜만에 화가 났다. 나는 씩씩거리며 현장 사무실로 향한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사무실 문을 열어젖히는데 김 소장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뒤로 물러서며 깜짝 놀란다.

   “벌써 다 먹었어? 막 가려던 참인데.”

   내가 그를 밀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정말, 당신···.”

   내가 그에게 한발 다가서자, 그가 당황하며 나를 막아선다.

   “왜 그래, 장 사장. 내가 돈 찾아왔어.”

   나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런 상황, 그에게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내겐 없었던 모양이다.

   “진짜요?”

   그가 오만 원권 뭉치 하나를 내게 내민다.

   “오백인데, 이게 내 최선이야. 어쨌든 미안해, 장 사장.”

   눈물이 또 와락 쏟아져 나온다. 그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봄 다 지나갈 때쯤에 또 마련해 볼 테니, 좀 견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 강원랜드 가서 돈 잃은 거 아니야, 믿어 줘.”

   돌아서는 내 등 뒤로 그의 말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죽지 마, 장 사장. 내 돈 다 받아야지. 오늘은 좀 겁났네.”

   나는 그에게 재차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소장님.”

   그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일자리 하나 주세요. 잡부라도 괜찮으니.”

   “노가다라도 뛰려고? 되겠어?”

   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 말고요. 저기 밖에 미장이 아저씨 있잖아요.”

   “이 씨? 나이가 너무 많아.”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세요, 소장님. 제가 그분에게 진 빚이 많아서 그래요.”

   김 소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온다. 나는 불을 쬐고 있는 이 씨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가 나를 보더니 모른 척 옆으로 비켜선다.

   “오늘 일 없대요? 추운데 여기 계속 계세요.”

   내가 말하자 그가 눈길을 피하며 장작 하나를 불 속으로 던졌다.

   “집에 가면 또 그렇잖아. 부인 눈치도 보이고.”

   “아까 보리차 감사했어요. 그리고 저기 이거···.”

   나는 김 소장에게 받은 돈을 대충 반으로 가른 다음 한쪽을 그에게 건넨다.

   “일단 이거라도 받으세요.”

   그가 돈을 받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게 얼마야.”

   “25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안 될 수도 있고, 좀 넘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한테 받으실 게 얼마예요?”

   나는 멋쩍어서 그를 보며 억지로 웃는다. 그에게 건네고 남은 돈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는다.

   “500만 원 정도 되는데 이거면 됐어. 고마워, 장 사장.”

   그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마 내일부터 일감 있을 거예요. 제가 부탁해 놓았어요.”

   “아, 정말이야? 잘됐네. 잘 됐어. 너무, 고마워, 장 사장.”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나는 허릴 숙이고 돌아선다. 그런데 그가 내 손을 붙든다.

   “장 사장, 이거 한 번에 너무 많은 거 같아. 힘들 텐데. 내 건 천천히 해.”

   그는 내가 주었던 돈을 나누어 내게 내민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손사래를 친다. 그가 얼른 내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는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돈을 돌려주고 돌아서 뛰기 시작한다.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 따라붙는다.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집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순댓국집으로 향한다.

   “왜 순댓국 좀 싸 줘?”

   식당 주인이 나를 보자마자 묻는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저기 이거···.”

   나는 남은 돈을 나누어 그녀에게 건넨다.

   “이게 뭐야?”

   “죄송해요. 그간 연락도 못 드리고.”

   “아냐, 됐어. 천천히 줘도 돼. 그거 없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식당 주인은 받은 돈을 도로 내게 내밀었다.

   “아니에요. 이거라도 일단 받아 주세요.”

   그녀의 얼굴에 조금 전 보았던 이 씨 아저씨의 표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런데 저 얼마나 갚아야 해요?”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다 주게?”

   식당 주인이 활짝 웃는다.

   “꽤 되겠지? 반년 치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일단 장 사장 먼저 살아. 빚은 그다음 챙기고.”

   자꾸 돈을 내 손에 쥐여 주는 그녀를 뿌리치며 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내일부터는 아마 책을 읽지 못할 것이다. 내 밤은 점점 짧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노순영과의 인연은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결국 그녀의 남편과 사내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와 부산에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나는 차 트렁크에 태워져 한적한 야산으로 끌려갔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나는 몇 주를 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살아 돌아온 게 다행이었다. 경찰이 누가 한 짓인지 물었지만 나는 함구했다. 식당을 차리려고 모아 둔 돈 전부를 그녀 남편에게 빼앗겼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일도 분명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 일 말고도 어떤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엔 종종 있었다.

   “돈 다 가져도 좋으니 순영 씨하고 이혼해 주세요.”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남편에게 사정했다. 사내 중 하나가 들고 있던 삽으로 내 머리를 내려쳤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피가 주르륵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가 구원해 주겠다고 했다며. 어떻게 구원해 줄 건데?”

   그녀의 남편이 피범벅 된 내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주며 말했다.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순영 씨는 그쪽 사랑 안 해요.”

   피가 자꾸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쇠 맛이 났다.

   “그러니까, 내가 묻잖아. 네가 뭔데? 도대체 니 존재가 뭔데 누가 누굴 구원해 주냐고. 네가 하나님이야?”

   남편이 말하자 누군가 피식 웃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남편은 더 화가 나서 나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순영 씨는 가만히 둬요. 진짜 그땐 안 참아요.”

   나는 맞으면서 악을 썼다. 사내 중 누군가 또 웃었다.

   “넌 내가 보니 그게 문제인 거 같네. 너 주제 파악을 못 하네. 넌 그게 안 되는 놈이구나. 진짜 순영이 말대로야. 너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거야, 도대체. 너는 지금 너 자신을 걱정해야지. 아, 이 새끼 답답하네, 정말.”

   나는 맞다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야만 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몰라서 걱정됐다. 하지만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한 얘기가 자꾸 생각났다. 그녀가 나에 대해 그렇게 말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나는 뒤로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만날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로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서로에게 우리의 관계를, 미래를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자주 들르던 작은 카페의 사장이었다. 식당 자리를 알아보다 알게 된 곳이었다. 고향 근처에서 일을 맡아 나는 꽤 오래 머물고 있었다. 모처럼 엄마 근처에 사는 것이 좋았다. 다른 형제와 달리 엄마는 늘 내 걱정뿐이었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가정을 못 꾸리고 전국을 떠돌며 사는 내가 안쓰러웠을 것이다. 고향에 남은 친구들도 몇 있어서 나는 꼭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내가 살던 그곳은 사람들도 동네도 오래전 그대로였다. 그간 모은 돈으로 작은 식당을 열어 볼까 궁리 중이었다. 공사를 마치면 엄마 옆에서 살아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걱정이 많은 늙은 엄마가 그렇게 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활은 달라진 것 없이 즉흥적이고 불안정하다. 그때 나는 그곳에서 그대로 멈추어야만 했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 깨닫는 중이다. 노순영 씨를 포기하지 말아야 했다. 그녀 남편의 말을 믿지 말아야 했다. 아니,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일 것이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온 것이다.

   도서관은 아직 오픈 전이었다.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다른 순영 씨를 기다린다. 그냥 집으로 갈까, 고민한다. 나는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돈을 세어 본다. 115만 원. 이 돈으로 봄까지 나는 견뎌야만 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부터 해결해야 하는지 머릿속은 다시 뒤죽박죽이다.

   나는 출근하는 양순영 씨에게 다짜고짜 저녁을 먹자고 말한다.

   “오늘요? 싫은데요.”

   나는 금방 머쓱해져서 돌아선다.

   “뭐예요. 자기도 그렇게 말해 놓고선.”

   “아마 내일부터 도서관에 못 나올 거 같아요. 제가 다시 일을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한다.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돈을 만지작거린다. 그 말은 그저 나에게 하는 다짐일 뿐이다. 인제 그만 책을 읽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

   “일은 계속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이 동네 작잖아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이웃사촌.”

   그녀가 웃는다. 그녀가 내 사정을 이미 아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이가 아파요. 오늘은 집에 일찍 가야 해요. 저녁은 나중에.”

   나는 많이 당황했다.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나는 왜 하지 못한 것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다.

   “아, 아이가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묻고는 이게 무슨 대화인가, 말이 말인가, 속으로 나를 꾸짖는다.

   “혼자 키워요. 아이 아빠하고는 헤어진 지 좀 됐어요.”

   그녀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인가 보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내 표정을 보고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그녀가 하는가 보았다. 나는 그게 미안해서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도서관에 안 가고 그냥 가시는 거예요?”

   “아, 네. 그러게, 그러니까 할 일이 있어요.”

   나는 획 돌아선다. 무거웠던 내 마음이 어느새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심박이 빨라진다.

   “장수영 씨 잠깐만요.”

   그녀가 나를 불러세운다. 나는 속마음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란다.

   “저기 그 할 일 목욕탕 가는 거죠? 운동? 일 열심히 하셨나 봐요.”

   그녀가 말하더니 웃는다. 코를 움켜쥔다. 그녀의 말에 나는 킁킁 옷 안을 들추며 냄새를 맡는다. 나는 창피하고 부끄럽고 멋쩍어서 그녀를 바라보며 헤벌쭉 웃는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그녀는 한참 그런 나를 바라본다. 순간, 손을 흔들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지만, 나는 주머니 안에 돈을 꽉 움켜쥔다.

   나는 목욕탕으로 향한다. 때를 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내일을 살아야겠다. 이제 벽에 쌓은 병을 치워야지. 공병값은 얼마나 될까. 그 돈으로 가스비를 내면 좋겠다, 바라며 목욕하러 간다.



1) 쇼펜하우어의 ‘우리의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갈 뿐이다’의 문장 인용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소설

감귤모텔 부흥회

[단편소설] 감귤모텔 부흥회 백가흠 1. 57회 기도회는 제주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른 아침, 나는 제주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렌터카를 찾고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석윤 형, 그럼, 이번 모임에 참석자가 우리 둘뿐이라는 거예요?” 원희가 조수석에 앉으며 씩씩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신앙심이 없어서야.” 내가 차에 시동을 걸며 답했다. “우리처럼 모임에 간절하지 않은 거죠.” 그렇게 57회 모임은 열리지 못했다. 나와 원희를 빼고는 아무도 제주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 그럼 연락책인 나한테 먼저 얘길 했어야지, 일정을 취소하고 알려주지도 않으면 어떡해?” 찬일 형과 통화를 하다가 나는 버럭 화를 냈다. “흥식이가 얘기한 줄 알았지. 경수, 훈이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야. 이번에는 그렇게 됐으니까 둘이 잘 놀다 와. 그리고 네 말대로 연락책인 네가 미리 연락하고 챙겼어야지, 형한테 뭐라고 그러면 어떡해?” 찬일 형이 점잖게 나를 나무랐다. 찬일 형은 우리 중에서 가장 연장자였고 멤버들의 구심점이었다. 의료기기 사업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었는데, 근래 영역을 서비스업까지 확장해서 사업을 더 키우고 있었다. “……그러게 형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흥식이가 연락을 나한테 해야 했는데, ……어쨌든 알았어요. 여기까지 헛걸음한 거 같아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세요, 형.” 나는 어느새 풀이 죽어 찬일 형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통화한 내용을 원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번 모임이 무산된 게 내 탓 같았다. 다행이라면 급할 일이 나도 원희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거 우리 둘은 제주에서 예정되어 있던 사흘을 함께 지내기로 했다. 회비로 예약한 스위트룸은 취소한다고 환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정이 쉬웠다. “사람들이 약속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 그러다 큰 화가 내릴 거야. 우리는 복을 받을 거고.” 원희가 말하며 ‘커커컥’ 하고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독특했다. 웃을 때마다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 웃음소리가 웅장했는데 웃음의 마무리가 언제나 확실했다. 그는 키가 190cm, 몸무게는 110kg을 훌쩍 넘는 거구였다. 그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땀을 흘렸다. 겨울에도 반소매만 입고 다닐 만큼 열이 많았다. 생김새는 우락부락했지만 성정이 순한 사람이었다. 아니, 나는 그를 그렇게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모임이 있을 때만 가끔 보았고 따로 단둘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그를 십여 년 동안 56회 만났지만, 개인적인 얘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해안가를 뒤로 하고 우리는 숙소까지 가장 빠른 길을 택했다. 중산간 도로를 타고 한라산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 속력을 내자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흥분이 나도 모르게 일었다. “그런

  • 백가흠
  • 2022-03-01

문장웹진 소설

얘들아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백가흠 1 방 안에 서서히 검푸른 빛이 돌기 시작했다. 십 센티쯤 열려 있는 창틈으로 순식간에 환한 빛이 빠져나갔다. 검푸른빛. 그것은 어둠이 방 안에 내려앉기 직전에 아주 잠깐, 아이의 성장을 확인하는 희망의 빛이었다.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시간이었다. 천장과 맞닿아 있는 창문은 아이의 머리가 겨우 빠져나갈 만큼 열려 있었다. 아이는 빈 과자봉지를 더 꽉 움켜쥐었다. 침대에 서서 발끝을 세우면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이 겨우 보였다. 아이는 발끝을 세우고 창밖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이는 빨리 자라야 했다. 창문에 손이 닿을 만큼, 창문으로 반지하방을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빨리 자라나야 했다. 아이가 반지하방을 스스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문이 잠겨 있기 때문이었다. 방 안에서는 쉽게 문이 열렸지만 아이는 어떻게 해야 문이 열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아이는 빈 봉지 안에 은밀하게 손을 집어넣었다. 봉지 안에 손을 넣었다가 조심스럽게 아무것도 없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이는 진짜 과자라도 먹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비어버린 과자봉지 안을 아이는 아쉬운 듯 한참 들여다봤다. 아이는 빈 과자봉지를 작은 손으로 움켜쥐었다. 다시 열면 그곳엔 맛있는 과자가 꽉 차 있을 것만 같은, 벌써 그런 것을 믿어버릴 만큼 아이는 컸다. 그러나 아이는 적당히 남겨서 다음 끼니를 해결할 줄을 몰랐다. 그러니 굶을 수밖에. 이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굶어야 했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며 배고픔을 참았다. 그런 기다림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이는 자랐다. 방안은 금세 어둠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이는 큰 눈을 천천히 껌벅이며 방 안을 멍하니 둘러봤다. 이때 아이의 눈은 세 살 혹은 네 살짜리 다른 집 또래와는 확실히 달랐다. 방 안이 금세 깜깜해졌다. 아이가 좁은 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가만히 어둠을 응시한다. 곧 아이는 방 안의 쓰레기와 뒤섞여 잠이 들었다. 불 꺼진 반지하방의 어둠은 무엇이 쓰레기이고, 살아 있는 아이인지 구별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아이는 침대와 벽 사이 좁은 틈에서 쓰레기처럼 구겨져 잠이 들었다. 아이는 자신이 왜 홀로 이곳에 남겨져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무서움을 달래려 아무리 악을 쓰고 울어봐야, 아무도 자기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만큼 아이는 커버렸다. 아이의 엄마도 이제 다 컸으니, 빈집을 홀로 지키라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떻게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지 알지 못했다. 한밤중에 깨게 되면 어둠과 놀고, 날이 환할 때 깨면 창밖으로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의 발을 보며 놀았다. 가끔 널려져 있는 쓰레기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아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갇혀 있을 수밖에. 창에 대고 갇혀 있다고 소리치면 될 것을. 아이는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빨리 자라나야만 했다. 아이는 자기가 얼마나 혼자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니

  • 백가흠
  • 2005-11-1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