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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동 터미널

  • 작성일 2019-12-01

[단편소설]



이남동 터미널



김혜진




그녀는 터미널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그 전화를 받았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고 주변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팔차선 도로는 고속버스와 시내버스, 택시와 자가용이 뿜어내는 불빛과 소음으로 빼곡했다. 눈을 찌르는 듯한 환한 전조등 탓에 그녀는 자주 눈을 비볐고 그때마다 눈앞의 풍경이 울긋불긋하게 뭉개졌다.
사거리 한가운데 서 있던 경찰이 수신호를 했다. 한꺼번에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 틈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향을 가늠하고 걷기 시작했다. 호루라기 소리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초겨울의 차고 날선 공기가 주변의 아주 가느다란 소음들까지 모두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지율동 사모님이죠?
잘 안 들려요. 크게 말해요.
그녀는 상대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휴대폰 너머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으므로 전화가 끊어졌나 싶었지만 길을 다 건너왔을 때쯤 상대방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율동, 지율동 남우빌라, 남우 사모님 아니에요?
남우빌라는 그녀가 이십 년 전도 더 전에 샀고 십 년도 더 전에 누군가에게 팔아버린 다세대 건물이었다. 그럼에도 남우라는 말을 듣자마자 오래전 그 다세대 건물 외관이 눈에 보일 정도로 생생했다. 내려앉은 듯 지하로 푹 꺼진 주차장과 도무지 햇빛이라고는 들지 않던 좁은 골목, 떼어내고 또 떼어내도 끈질기게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담쟁이 넝쿨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그런 기억들이 여전히 자신 안에 이토록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상대가 말했다.
나 장성엽이요. 지율동 집 보러 다닐 적에 홍 사장이랑 몇 번 만난 적 있죠. 저기 어디냐, 나 군인아파트 살 때요. 왜 남우빌라 샀던 날 우리 동네 고깃집에서 뒤풀이했잖아요. 기억나요?
그녀가 대답이 없자 상대는 조금 더 말했다. 남우빌라, 하나빌라, 트윈빌, 파크빌 같은 건물 이름이 이어졌고, 건축업자와 수리업자 몇 사람의 이름이 더 나왔다. 법원등기소 위치와 몹시 까탈스럽게 굴던 담당 직원의 이름이 나오고 나서야 그녀는 상대방의 존재를 기억해 냈다. 장 사장은 등기소 직원의 이름을 모두 외고 다닐 정도로 등기소 업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법원등기소를 드나들 때마다 그녀도 이런저런 도움을 받은 기억이 났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도움이었는지 이젠 가물가물했다.
아, 장 사장님. 장 사장님 기억하고말고요. 오랜만이네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녀는 장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한 층에 네 가구가 살던 삼층짜리 건물. 폭과 높이가 들쑥날쑥했던 계단, 칠이 벗겨진 복도와 여닫을 때마다 끽끽 소리가 나던 현관문 같은 남우빌라의 모습들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데도 장 사장의 얼굴만은 숨바꼭질하듯 계속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우리 멤버들 장례식장에 다 와 있는데, 언제 오시나 해서 전화했어요. 오늘 저녁에 오시지요?
저녁엔 가봐야죠. 잠깐 들러야 할 데가 있어서 나와 있어요.
주변의 소음을 이기려고 그녀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사모님은 요즘도 많이 바쁘신가 보네. 하기야 나이 들수록 바빠야죠. 아무튼 그럼 우리 기다립니다. 홍 사장 마지막 가는 길인데 다 같이 인사는 해야지요. 있다 봅시다.
장 사장은 호기롭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한 손에 휴대폰을 쥔 채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계속 걸었다. 지난해 가벼운 폐렴 증상으로 홍 사장이 서너 차례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건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 달 전 마지막 통화를 할 때 홍 사장의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느닷없이 홍 사장 부고 소식을 듣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예상한 적이 없었다.
그 집이 홍 사장을 말려 죽인 거야. 사람 잡고도 남지.
터미널 정문 앞에 멈춰 서고 나서야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붙은 전단지와 현수막을 둘러보는 동안엔 잠깐씩 홍 사장의 죽음을 잊었다. 며칠 사이 현수막은 더 늘어나 있었다. 터미널 이전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느니, 사업시행이 미뤄지며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느니 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녀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현수막들을 올려다보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현수막에 적힌 저런 일방적인 내용들이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모조리 떼어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터미널 로비를 가로지르고 후문을 빠져나온 다음에야 그녀는 다시 홍 사장과 홍 사장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던 그 청목주택을 떠올렸다.
홍 사장은 이십여 년 전 그녀가 지역주택조합에서 만난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십대 초반의 두 사람은 만난 지 두 번 만에 서로가 똑같은 목적을 품고 이곳에 왔다는 걸 알아보았고, 그 주택조합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걸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런 사람들은 더 있었다. 몇 년간 그녀는 홍 사장을 비롯한 서너 사람과 함께 구도심과 변두리 주변을 돌며 돈이 될 만한 낡은 집들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오전 여덟 시가 되기 전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홍 사장의 차를 타고 미리 정해 둔 동네로 이동하는 거였다. 이동하는 동안 서로 수집해 온 정보를 공유했고, 그 주변 부동산을 충분하다 싶을 만큼 들른 다음 짧게 회의를 거친 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건물을 매입하는 식이었다.
회의라고는 했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홍 사장의 의견이었다.
여기 관리하려면 애 먹어요. 지금은 그럴듯해 보이죠? 이런 집들은 세입자 찾기 어려워. 금방 사고 나지. 요 뒤편에 바로 군부대 있죠? 그런 게 하나 있으면 동네가 잘 안 움직여요.
홍 사장은 느리게 말하는 편이었다. 늘 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 하며 입을 열었고 읊조리듯 말을 끝마쳤다. 그에겐 돈이 되는 주택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 홍 사장의 만류로 몇 번 매매 계약을 미루고, 그게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다음부터 그녀는 홍사장이 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홍 선생님 어디 가셨어?
어느 날은 자신도 모르게 홍 사장을 홍 선생이라고 불러 주변 사람들의 핀잔을 살 정도로 그녀는 홍 사장을 깊이 신뢰했다. 홍 사장은 그녀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무엇이었고 어쨌든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 하는 홍 사장의 손바닥 안에 자신이 원하는 세계가 모두 들어 있다고 그녀는 믿었다.
비슷비슷한 골목을 돌고 별다를 게 없는 집들을 살피느라 자주 끼니를 놓치고 옆에 사람 입에서 허기진 구취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릴 즈음에야 종일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그녀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그곳에서 그녀가 배운 건 배고픔을 잊을 정도의 그런 절박함이었고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그녀를 있게 한 전부인지도 몰랐다.
홍 사장이 가장 먼저 삼층 주택을 샀고, 나머지 두 사람이 적당한 다세대 건물을 매입한 뒤에야 그녀의 차례가 왔다. 은행에서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받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처음 집을 샀던 날. 홍 사장은 현관 출입구에 남우빌라라는 은색 현판을 달아 주며 이렇게 말했다.
건물에 이름이 없으면 되나요.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하나 붙여 줘야지. 걱정 말아요. 잘 될 겁니다.
그날 밤, 자신을 밤새 잠 못 들게 했던 감정들을 그녀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기대였고 우려였고 가능성이었으며 두려움이었다. 아니, 어쨌든 그때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던 자신의 미래였는지도 몰랐다.
허름하고 오래된 집들. 그래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가지려고 하지 않는 집들. 그러나 길고 긴 세월을 견디고 이기며 살아남은 집들.
그녀에게 쇠락한 그런 집들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런 숨은 주택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준 건 홍 사장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고, 일이라면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준 것도. 그렇게만 하면 틀림없이 그만한 보상과 대가가 뒤따를 거라는 사실도, 그녀는 홍 사장으로부터 배웠다.
그러니까 홍 사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임은 틀림없었다.
진작 팔아버렸으면 좋았지. 뭐 좋은 집이라고 그걸 끼고 있다가. 마음에 병이 생긴 거야. 생기고도 남지. 그 집이 홍 사장을 죽인 거야.
그녀는 혼잣말을 하며 터미널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어둑어둑한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공사 가림막을 쳐놓은 건물들 탓에 그곳은 터미널 정문이 있는 큰길 쪽과는 완전히 다른 동네 같았다. 상가들은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빌딩 앞은 아무렇게나 내놓은 가구들로 엉망이었다.
그녀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하나씩 떼어내며 퍼스트오피스텔 앞까지 갔다. 오피스텔 건물 앞 담벼락에도 똑같은 전단지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녀가 가방을 뒤지며 전단지를 떼어낼 만한 도구를 찾고 있을 때 경비가 나와 알은체를 했다.
오셨어요? 아무리 붙이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네. 말을 안 듣는다니까요. 오늘도 세 명이나 붙잡고 말했는데 언제 또 왔다 갔네.
그녀는 터미널 이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전단지 끄트머리를 떼어내며 중얼거렸다.
아니, 멀쩡한 터미널을 왜 이전한다는 건지 모르겠네. 주차장 넓겠다, 버스 잘 다니겠다. 사람들이야 대합실에서 잠깐씩 있다가 가는 게 다인데, 옮기고 말고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언제는 터미널 새로 짓는다고 난리더니, 이젠 터미널 하나 보고 집 산 사람들만 다 죽으라는 거지, 안 그래요?
그녀는 신용카드 모서리로 전단지 끄트머리를 긁어내며 중얼거렸다. 주변 도로 정체, 보존지역 훼손, 건물 노후화, 안전 불감증 따위의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전단지는 약 올리듯 한 글자씩 두 글자씩 떼내어지다가 말다가 했다.
901호 아직 집에 있죠?
그녀가 15층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고 경비가 답했다.
그럼요. 나갔으면 사모님한테 바로 전화했죠. 차는 그대로 있던데요?
들어가는 거 봤어요?
못 봤어요. 언제 왔는지 주차장에 차가 들어왔더라고요. 그래도 우편물은 꼬박꼬박 챙겨가던데요. 관리비 연체 됐다고 고지서 붙여 놨는데 그것도 가져가고 없어요.
그녀는 손톱을 세워 종이를 뜯기 시작했다, 뭉툭한 손끝이 담벼락에 닿을 때마다 차고 거친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11월 초순이었지만 겨울은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온이 곧 영하로 떨어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이미 그런 기색이 뚜렷했다. 여름밤엔 작정하고 한 시간씩 두 시간씩 돌며 이 일대 전단지를 다 떼어내고 다녔지만 한파가 닥칠 앞으로 몇 달간은 그럴 자신도 없었다. 어쩌면 이번 겨울이 고비가 될지도 몰랐다. 겨울이 지나면 터미널 이전이 본격화되고 이 오피스텔도 이 일대 흔한 건물들처럼 드나드는 사람 없이 흉물스럽게 변해버릴지도 몰랐다.
이거 마저 좀 떼줘요. 얼른 다녀올게.
그녀는 경비에게 그렇게 이른 뒤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우편함에 붙은 광고지들을 뜯어냈고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나서는 얼룩덜룩한 거울을 닦아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지저분하고 볼품없는 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건물의 흠을 찾는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피게 됐다. 그러니까 팔 년 전 901호를 분양받던 날, 이 오피스텔 건물이 그녀에게 주던 벅찬 감동의 흔적들은 이제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는 곧장 901호로 갔다. 벨을 세 번 누르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복도 쪽으로 난 창문을 들여다보면 거실 쪽에 분명 불빛이 어른거리는데도 그랬다.
최경환 씨! 안에 있어요? 나예요. 집주인이에요. 문 좀 열어 봐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란을 피울 마음은 없었다. 화를 내거나 싸움을 벌일 기운도 없었다. 어쨌든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었다. 뭐든 알고 나면 두 달째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월세도 내지 않고 자신을 피해 다니기만 하는 세입자에 대한 괘씸함과 저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조금은 가실 것 같아서였다.
경환 씨. 듣고 있어요? 내가 따지려고 온 게 아니에요.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일 다 있는 거지. 내가 그걸 모르겠어요. 그래도 말은 해야지. 말도 안 하고 사람을 피해 다니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내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그렇잖아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는 기척이 들릴 때마다 그녀는 잠깐씩 문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목소리를 조금씩 더 낮추었다.
내가 지난주에만 여길 몇 번이나 왔다 갔는지 알아요? 네 번이나 왔다 갔어요. 내가 붙여 놓은 메모 봤죠? 관리비가 두 달이나 밀렸잖아요. 월세야 그렇다 쳐도 관리비는 내야지. 다음 달이면 전기고 수도고 다 끊긴다는데, 듣고 있어요?
그녀는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내내 열리지 않는 철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기다려야지. 꼭 얼굴을 봐야지, 설명을 들어야지 했지만 그렇게 이십여 분이 지나자 다시금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뭐 하러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싶었지만 그녀는 옷깃을 여미며 숨을 골랐다.
월세야 한두 달씩 밀릴 수도 있는 거지. 나도 월세 내고 살아 봤어요. 언제 주겠다고 약속만 하면 내가 기다리지 뭘 어쩌겠어요. 아님 언제 나가겠다고 말이라도 해주든가. 이 달 안에 나간다고만 하면 두 달 치 월세는 안 받아도 돼요.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고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이 문이 열릴까. 이 문을 열고 저 사람을 내보내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사람을 내보내는 게 간단히 물건을 옮기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그녀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절차는 매년 조금씩 더 복잡해졌고 내야 하는 서류는 늘어났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내쫓는 사람이 된다는 게 점점 더 꺼림칙하게 여겨졌다. 내쫓기는 사람들의 분노와 원망 섞인 말을 듣는 것도, 그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하는 것도, 그들이 버리고 간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을 처분하는 것도 점점 내키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나라고 별수가 있나요? 자꾸 피해 다니면 나도 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내 말 듣고 있어요?
그녀는 한참만에 목소리를 구겨 넣듯 문 앞에 대고 그렇게 이른 다음 난간 쪽으로 돌아섰다. 고개를 들자 멀리 붐비는 사거리가 내다보였고 터미널 간판이 보였다가 말다가 했다. 그녀는 전조등과 붉은 미등이 드나드는 터미널 주차장 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보면 터미널을 중심으로 희끄무레한 불빛들이 모여 있는 듯했고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다. 아니, 터미널 주변을 둘러싼 외곽의 풍경들이 너무나 크고 캄캄한 탓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저 터미널이 이전하고 나면 이곳은 암흑이 되는 거였다. 터미널 증축이니, 경전철이니 쇼핑몰이니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도시 계획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였고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건물과 주택을 처분하고 이곳을 떠났다는 말들이 파다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계속 이곳을 빠져나가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때 처분했어야 했어. 진작 팔아버렸어야 했는데.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그때가 십 년 전 오피스텔 가격이 치솟던 무렵이었는지, 오 년 전 터미널 증축 공사를 한다는 말이 돌 즈음이었는지, 이 년 전 오피스텔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일 년 전 끈질기게 보증금을 깎으려 들던 저 사람을 세입자로 들인 때였는지 알 수 없었다.
경환 씨, 나 너무 추워서 더는 못 있겠네. 나 이만 가요. 언제라도 좋으니 전화 한 통 해요. 문자 해도 좋고. 뭐든 이야기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잖아요. 나 갑니다.
그녀는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을 견디며 한참 더 서 있다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하면 문제가 아닌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게 문제였나 싶으면 저게 문제인 것 같았고, 그런 자그마한 문제들이 쌓여 지금에 이른 것 같았다. 아니, 이 오피스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기회를 모두 흘려보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단을 미루고 있는 자신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지도 몰랐다.
방법이 있나요? 명도소송해서 내보내는 수밖에 없지.
세입자를 만나 보았느냐는 경비의 질문에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멀찌감치 올려다보면 901호 거실 창이 환했다. 그녀는 결심하듯 몇 번이고 불 켜진 901호의 창을 확인한 다음 돌아섰다.
장례식장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그녀는 다시 터미널 쪽으로 걸어 나왔다. 주차장 터미널 앞에 이르자 이남동 터미널이라는 간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대합실로 들어섰고. 빈자리를 찾은 다음 한동안 그곳에 앉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과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였다.
그녀가 장례식에 도착했을 땐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삼층짜리 장례식 건물은 버스 종점에서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야 했다. 가등이 거의 없는 비포장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도대체 이런 곳에 무슨 장례식장이 있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쯤 멀리 장례식장이라고 적힌 붉은 간판이 보였다. 홍 사장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건물이 저렇게 초라하고 볼품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쨌든 저런 곳에서 홍 사장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홍 사장의 죽음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어떤 경고나 교훈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녀는 자신을 따라붙는 불길한 생각들을 물리치며 걸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새어 나왔고 장례식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엔 등줄기로 더운 땀이 흘러내렸다.
저기 오시네. 남우 사모님, 사모님! 이쪽이요, 이쪽!
좁은 로비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이층 복도에서 누군가 알은체를 했다. 몇 사람이 더 나왔다. 그녀는 묘하게 낯이 익지만 정확히 이름을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짤막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뒤섞이는데도 건물 내부에 고인 적막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문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홍 사장의 영정사진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늘 말로만 전해 듣던 홍 사장의 남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뒤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둘러앉은 접객실로 갔다.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금방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권하는 대로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접객실은 한산했다.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섯 명 남짓 둘러앉은 그 테이블을 제외하면 접객실은 텅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홍 사장이 그 주택 사고 고생 많이 했지.
누군가 말하면,
아니, 그거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면서요? 왜 안 팔았대? 남의 일은 컴퓨터처럼 딱딱 잘 맞추는 양반이 뭐 좋은 집이라고 그걸 그렇게 쥐고 있었대요?
누군가 말을 보탰고,
왜 그 동네 차량기지 나간 부지에 테마파크 들어온다고 말 많았잖아요. 그거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 뭐. 테마파크 무산되고는 대학병원 들어온다고 했다가 그것도 흐지부지됐지. 계속 공터로 버려져 있는데 뭐가 되겠어요. 가망 없어. 이제 죽은 동네예요. 거기.
그녀가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녀는 내내 매끄러운 종이로 덮인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종이그릇에 담긴 육개장엔 허연 기름이 떠 있었고, 종이접시에 담긴 수육과 김치, 부침개와 콩나물 같은 반찬들은 물기 없이 말라 있었다. 그녀는 방울토마토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창가 쪽을 내다보았다. 뭔가를 입에 넣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거기 모인 사람들과 홍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난 시절을 더듬거릴 자신도 없었다. 그녀는 어둔 창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서로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번쩍이는 눈빛들을 보는 동안에는 어떤 말도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사모님은 홍 사장이랑 그래도 꽤 자주 연락했잖아요?
그리고 한참만에 대각선에 앉은 사람이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토마토가 떨어졌고 그녀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뭐 사는 게 마음처럼 되나요. 나도 사는 데 바빠서 요 몇 년간은 전화도 뜸했어요. 자주 연락도 하고 안부도 듣고 해야 하는데 이제 와서 말하면 뭘 해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오 년 전 홍 사장이 청목주택을 매입할 때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홍 사장을 비롯한 서너 사람과 청목주택을 직접 살펴보고, 그 일대를 함께 둘러본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예상들이 빗나가고, 계획들이 어그러지면서 홍 사장은 그녀가 아는 홍 사장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다.
어느 날엔 골치 아픈 주택들을 처분하고 싶다며 한 시간씩 두 시간씩 하소연을 해댔고, 대출이자가 오른 탓에 빌라 서너 개를 터무니없는 헐값에 팔 수밖에 없다며 억울해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엔 좋은 물건이 있다며 목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했고, 몇 달만 명의를 빌려달라고 애원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녀는 매번 홍 사장의 부탁을 거절했다.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틀림없이 진행될 거라고 여겼던 일들이 무산되고, 정부니 구청이니 하는 곳에서도 이렇다 할 말이 없는 동안 무섭게 자라나는 불안을 그녀 역시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화가 났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가 이 모든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게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를 때 즈음이면 절망감이 엄습했다. 한번 보자, 언제 보자, 하는 홍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또 거절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방울토마토는 테이블 아래 사람들의 발에 치여 이리저리 굴러가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의 대화는 홍 사장을 지나 각자 소유하고 있는 주택과 빌라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 있었다. 가격과 조건, 개발호재와 위험인자 같은 것들을 조목조목 늘어놓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의심이나 두려움의 기색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했고 그러니 어떤 상황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그 사람들을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각을 확인했다. 901호 세입자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절대로 열리지 않던 철문과 오피스텔을 둘러싼 스산한 골목의 풍경이 되살아났고, 당장 처분할 수도 없는 그 오피스텔이 몰고 올지도 모를 불행이나 불운 같은 것을 짐작하는 동안엔 더는 그곳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그곳을 나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접객실 입구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푸르스름한 빛깔의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신발장에 구두를 가지런하게 넣은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곧장 그녀와 사람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 모여 계시네요.
남자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겠거니 했고 그녀는 재킷을 챙겨들었다.
아, 사모님도 계셨네요. 일어나세요? 잠깐 앉았다가 가세요. 차 안 갖고 오셨으면 있다가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그녀가 고개를 들자 남자가 한 마디 더 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효원동 살 때 홍 사장님이랑 저 쫓아내려고 몇 번 같이 오셨잖아요. 나가라고 저 엄청 야단쳤던 거 정말 기억 안 나세요? 그새 다 잊어버리셨나 보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장마철마다 지하실에 물이 차오르고 이따금씩 하수구가 역류했던 이층 주택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그 남자를 기억해 냈다. 그러니까 남자는 홍 사장이 헐값에 산 어느 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이었다. 전 주인으로부터 두 달째 월세가 밀렸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고, 자신도 그 세입자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상황은 훨씬 더 복잡했다. 지하에 살던 그 남자는 몇 해간 침수피해를 입은 살림살이들을 제대로 보상해 줄 때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고 정말 그렇게 했다.
한번 봅시다. 뭐가 얼마나 침수가 됐는지 봐야 물어 주든 할 거 아닙니까.
처음에 홍 사장은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했다. 밤늦게 퇴근하는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한밤에 그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그 사람의 주장을 참을성 있게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만류하는데도 홍 사장은 몇 달간 고집스럽게 그 남자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게 그녀가 아는 홍 사장이었다. 어쨌거나 누군가의 원성을 사는 일만은 피하려고 했고, 요구하는 것을 가능한 들어주는 것으로 그런 원망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보기엔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이런 일을 하는 동안엔 누군가의 원망과 저주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이봐요. 이게 어딜 봐서 물에 젖은 자국이에요. 오래돼서 삭은 거구만. 아니, 말은 바로 해야지. 거짓말을 하면 되나요. 다 부서져 가는 이런 집들 사서 겨우겨우 수리하고 세놓는 우리 같은 사람도 생각해 줘야지.
결국 어느 날 보다 못한 그녀가 한 마디 했다. 한 마디만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우물쭈물 서 있는 홍 사장을 그대로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서른 중반이 겨우 넘었을까 싶은 남자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는가 싶다가도 하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상대방의 말은 듣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왜 저 이사하는 날에도 오셨잖아요. 점심도 사주시고 이사비도 따로 챙겨 주시고. 쫓아내시긴 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안 잊어버렸습니다.
남자는 아무도 권하지 않는데도 코트를 벗고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오래전에 비해 제법 살이 붙은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느긋한 인상을 풍겼지만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났다.
쫓아내다니 말을 그렇게 하면 되나요. 홍 사장이나 나나 다 어쩔 수 없어 한 일이지. 사람 쫓아내는 일을 누가 하고 싶어서 해요.
그 남자에게 어떤 말을 얼마나 더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녀도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 남자가 이제는 죽고 없는 홍 사장에 대해 무슨 말을 어떻게 떠들어댈지 몰라서였다.
한동안 남자는 미지근한 육개장에 밥을 말아 정신없이 떠먹기만 했다. 반찬과 전을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음식물로 가득 찬 남자의 허기진 입안이 그대로 내다보였다. 도대체 누가 이 사람을 불렀을까. 홍 사장 마지막 가는 길을 왜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고 차가운 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옛날 주인 장례식에도 들러 주고 고맙네. 요즘은 어디에 있어요?
남자는 일회용 그릇을 들고 남은 육개장 국물을 마신 뒤 코트를 뒤져 명함을 꺼냈고, 그곳에 앉은 사람들에게 한 장씩 건넸다.
요즘 저도 집 보러 다닙니다. 괜찮은 정보 있으시면 저한테도 좀 나눠주시죠. 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해보니까 이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더라고요.
남자의 입가에 울긋불긋한 양념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명함에 적힌 글자들을 내려다보았다. 한글로 적힌 이름을 제외하곤 모두 영어여서 정확히 어떤 회사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는 없었다. 다만 어떤 위험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늘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위험을 떠안거나, 상대에게 위험을 떠안기거나,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건 매한가지였다.
사람들의 대화는 다시금 홍 사장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는 데에 열중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자 홍 사장이 소유했던 집들을 차례로 열거하기 시작했고, 각자 짐작하는 구체적인 액수를 떠들어댔다. 집을 소유하고 유지하고 그러는 동안 홍 사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무너져 가는 허름한 집들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결국 그런 집들이 몰고 온 불운에 깔려 죽다시피 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홍 사장은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였고 피해야 할 좋지 않은 선례에 불과했다.
에이, 다 지난 일인데요. 전 홍 사장님 다 용서했어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죠, 뭐. 괜찮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남의 일처럼 남자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사람들도, 홍 사장이 겪은 불운들을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의 자신감도, 눈덩이 굴리듯 힘을 합쳐 허황된 꿈을 더 크게 만드는 데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더는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뭘 용서해요? 누굴 용서해요?
그녀는 남자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차분하게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악착같이 돈 모아서 집 사고 대출 내고 세금 주고 관리하고 그게 용서 받을 일이에요? 내 집 하나 가져 보겠다고 굶어 가며 이 동네 저 동네 집 보러 다니고, 은행에 이자 갖다 주고, 빚 갚는다고 일은 일대로 하고 그게 뭐가 나쁜 일이에요? 기가 막히네. 홍 사장이 도대체 뭘 잘못했어요?
그녀는 재킷을 챙겨 일어났다. 누군가 만류하듯 그녀의 팔을 잡았고 그녀는 그 손을 뿌리쳤다. 홍 사장을 죽인 게 그 낡아 빠진 집들이라는 말만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일 당장 허물어진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그런 집들을 둘러싼 호재니, 기회니 하는 소문들에 휩쓸리지 않았더라면 홍 사장이 이렇게 어이없이 죽지 않았을 거라는 말만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일처럼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요. 물론 사모님 말씀도 맞죠. 맞는데요. 어쨌든 주인 바뀔 때마다 우리 세입자들만 피해를 보잖아요. 아시잖아요.
남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같은 집주인은 아무 피해도 안 보는 줄 알아요? 집만 팔아먹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에요? 팔기만 하면 그만이지. 다들 피해 봤다, 손해 봤다, 우는소리나 하고. 너도 피해를 보고 나도 피해를 보는데 그럼 나는 누구 탓을 해야 돼요? 나는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요?
어쨌든 사모님이 집을 사신 거잖아요. 사셨으면 그만한 각오는 하셨어야죠. 준비도 제대로 하시고요.
그리고 남자가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그녀가 처음 가졌던 건 내 집 하나를 갖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허름한 동네를 필사적으로 헤매 다니게 했고, 남우빌라를 소유하게 했고, 어느 순간 이보다 조금 더 나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런저런 손해가 거듭되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계속 밀어붙였던 건 점점 자라나고 계속 자라나서 스스로 물리칠 수 없게 된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몰랐다.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오피스텔을 분양받고, 이제 제때 월세도 나오지 않고, 제대로 세입자도 구해지지 않는 골칫덩이 집의 허울 좋은 주인이 된 것도 어쩌면 그런 마음이 가져다준 비극인지도 몰랐다.
뭐든 각오하고 준비해서 할 수 있으면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그쪽은 나처럼 되지 말고 잘 해봐요.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없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자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속사정을 다 내보였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장례식장 건물을 빠져나와 어두운 비포장길에 접어들자 들끓던 마음이 잦아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살아났고, 다시금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불빛이 거의 없는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버스 종점까지 갔다.
시동이 걸리지 않은 버스 안에 승객은 그녀 혼자였다.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게 분명한 차 몇 대가 느리게 비탈길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최경환 씨, 나 집주인이에요. 오늘 연락도 없이 찾아가서 놀랐지요? 아무리 연락을 해도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을 해줘요. 언제까지라고 말이라도 해주면 내가 준비할 수가 있잖아요.
그녀는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열고 문자메시지를 쓰고 고치고 지우며 버스 기사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계속 찬바람이 새어들었고 손끝이 시렸다. 기사는 한참만에 왔다. 그녀가 장문의 메시지를 거의 다 작성했을 때였다.
어디까지 가세요?
기사가 룸미러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막차라서 종점까지 안 가요. 어디까지 가시냐고요?
기사가 한 번 더 묻고 나서야 그녀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운전석 쪽을 바라보며 답했다.
이남동 터미널까지는 가죠? 거기서 내릴게요.
사람 없는 정류장은 그냥 통과합니다.
마침내 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크게 한 바퀴 돌아 공터를 빠져나오는 버스 차창 너머로 멀리 장례식장의 간판이 보였다가 말다가 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공들여 쓴 문자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만 하면 됐다 싶었지만 끝내 전송 버튼은 누르진 못했다.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닫고 눈을 감아버렸다. 버스가 도로로 진입한 모양인지 어느 순간 덜컹거리던 차체가 잠잠해졌다.
주말까지는 기다려 봐야지.
한참만에 그녀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러고 나자 또 얼마간 더 기다릴 자신이 생겼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낡고 허름한 집들을 통해 배웠고 계속 배우게 될 전부인지도 몰랐다.















김혜진ⓒ이해수

작가소개 / 김혜진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어비』,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이 있다.


《문장웹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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