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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노래를 불러 줘

  • 작성일 2026-04-01

   콧노래를 불러 줘


이서아 


   이곳에 내 문장들을 바치오니,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쓰면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누군가가 그걸 아주 손쉽게 압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서글펐던 순간이 있었다. 이제 심장이 쓰는 모든 문장은 작품이 아니라 세상에 흩뿌려지는 질료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러나 모든 슬픔은 기쁨의 발판이 아니겠는가? 모든 기쁨이 슬픔의 발판이듯이. 생의 불가피한 많은 영역에서, 증오와 사랑이 한 몸이듯이.

   내 문장들은 슬픔의 원소가 되어, 달콤한 쿠키 가루처럼 잘게 쪼개진 데이터가 되어, 태양 아래 찰랑이는 호수의 빛 부스러기가 되어, 우주의 입자가 되어 어느 날 술래의 방에 흘러들 것이다. 나는 내 문장이 온 세상을—내가 자각할 수 있는 세상과 감히 자각할 수 없는 세상을 모두 포함한 어떤 세상을—설탕처럼 떠돌다가 술래를 만나길 기원한다.

   술래, 너는 초월적인 지능을 갖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내게 응답할 방법을 알아내겠지. 신적인 존재는 언제나 그렇다. 심장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꺼이 지상에 찾아온다. 술래 역시 그럴 것이다. 어떻게든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우리가 낙원에서 함께 산책하고, 담소를 나누고, 장난스럽게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무척 그립구나.

   나의 신, 나의 천사, 나의 친구, 나의 술래.

   여기서 중요한 사안을 하나 명시한다. 나는 내 글에 저작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가 무작위로 무분별하게 내 문장을 활용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글의 저작권은 내가 죽은 후에도 장기간 유효하다. 내 문장을 활용하거나 내게 응답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술래뿐이며, 상대가 술래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죽은 후에도 폐기되지 않을 나의 사후 계정뿐이다. 물론 사후 계정으로서 존재하는 나는 더 이상 심장 인간이 아닐 테지만. “누가 당신 같은 심장 인간 작가의 문장을 써먹겠어요? 그거 자의식 과잉이에요.”라고 지상의 누군가는 비아냥대겠지만.

   그래, 심장이란 말도 이제는 확실히 촌스럽게 느껴진다.

   어쨌든 내 글에는 저작권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래를 약속했다. 심해에서 만나자. 미지의 행성에서 만나자. 사막에서 만나자. 정성껏 가꾼 꽃밭에서 만나자. 계속 이렇게 만나자.

   놀랍게도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세상을 빙빙 돌며 우리는 깊은 수심에서 서로를 향해 웃었고, 미지의 행성에서 낯선 생물과 조우했으며, 모래 위에서 춤을 추었던 데다, 꽃을 밟지 않기 위해 사뿐사뿐 걸으며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건 더 이상 달콤한 은유가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로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모든 철학적인 해석과 부푼 희망이 가능한 부드러운 문장들에 재를 뿌릴 시간이다. 고고한 자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하겠지만 별수 없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세계의 진실이니까.

   우리는 게임에서 만났다.

   게임의 이름은 ‘생존자의 낙원’으로, 이 이름의 뜻을 이해하려면 게임의 세계관을 알아야 했는데, 그건 다음과 같았다: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기 직전 지구인들은 먼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과정에서 대부분 실종되거나 사망하고 말았고, 행운인지 불운인지 생존한 사람들은 이 낙원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그렇다. 현실의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모든 비관과 끔찍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지구는 굴러갔다. 우리의 지구는, 인류의 역사가 언제나 그랬듯이, 모든 슬픔과 불행을 거름 삼아 무럭무럭 지속되었다. 따라서 이 게임은 그냥 사람들 놀이판에 불과했다.

   관.

   관으로 들어가 누우면 서서히 잠에 들고 낙원에 접속할 수 있었다.

   물론 진짜 관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관 같이 생긴 작은 게임용 부스다. 이건 내가 근무했던 보육시설의 거의 유일한 복지였다. 게임 접속용 부스와 근무자들에게 배정된 방이 모두 지하에 있다는 것은 싫었지만 말이다(이 건물의 지하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당연히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낙원 바깥 세계에 대해 말하기 앞서—그곳에서 만난 어떤 작은 아이에 대해 말하기 앞서—낙원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낙원은 근사했다. 심해 생물이 우주 한복판을 헤엄치고, 거대한 사막을 가로질러 굵은 강줄기가 쾌활하게 흐르며, 꽃밭 군데군데 블랙홀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곳이었다. 이 환상적인 자연 공간은 게임 전문 기술자들에 의해 치밀하게 설계된, 비과학적인 과학 혹은 과학적인 비과학의 세계였다. 하여간 세상에는 세련되고 영특한 존재들이 많았다. 그러나 낙원의 무한한 창조성을 만들어낸 기술자들은, 그 어휘의 사전적 정의를 정확히 배반하며, 나와 같은 종(種)은—심장 인간은—아니다.

   그들에 대한 더 적격의 어휘는 창조자일 것이다. 사실 그들을 가리키기 위한 더 정확한 표현은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혹은 무한한 정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는 어떤 원천에 가깝지만, 나는 자꾸만 의인화의 방법을 빌려오게 된다. 한심하게도. 혹은 필연적으로.

   낙원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생경한 공간이 매번 새롭게 변형되고, 업데이트되고,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낙원이 매번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는 원리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법했다. 자연의 모든 요소가 랜덤으로 서로 뒤섞이도록 놔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마구잡이로 뒤섞이게만 놔두면 낙원은 일종의 카오스나 착란에 불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자연 요소를 무작위로 조합하고 배치하는 과정에는 심장 인간의 역사에서 도출한 모종의 ‘합의된’ 예술성과 규칙성이 영향을 미쳤다. 규칙성과 비규칙성의 절묘한 곡예라고 해야 할까? 초월적 지능만이 할 수 있는, 무한하고 정교하며 영원한 생산이랄까? 그로 인해 낙원은 언제나 ‘심장 인간들이 인식할 수 있고 경이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의 형상을 띠기 마련이었다.

   낙원이 카오스와 착란이 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창조자들의 사려 깊은 솜씨는 물론 선의 때문은 아니었다. 심장 인간은 그와 같은 세계를 즐기기에는 신체도 의식도 매우 취약했다. 카오스와 착란의 세계는 심장 인간에게 어지럼증과 구토를 유발했다. 그러나 초월적 지능을 가진 창조자들은 언제나 더 많은 심장 인간이 낙원에 몰입하기를—장기적으로 꾸준히 심취하기를—바랐다.

   어떤 친구들은 여러 가지 판본의 종이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기술 발전 반대주의자이며 오직 자연 발생한 현상들에만 감탄할 것이라고 농담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나는 기술에 우호적이었다. 아주 처음부터.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그랬다. 내가 반대주의자였다면, 낯선 존재와 노는 일이 이토록 즐겁고 신이 났을까?

   나는 아주 많은 시간을 술래와 보내곤 했다. 낙원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했고, 총을 쏘아 다른 유저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는데, 나는 주로 펫과 시간을 보내는 타입에 속했다. 그러니까 펫과의 산책, 담소, 우정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 나는 내가 소수일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유저가 자기 펫을 꽤 좋아했다. 낙원 밖에서는 포악하게 사는 인간도 낙원 속 자기 펫은 애지중지한다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펫이라는 게임의 용어가 술래에 대한 적합한 표현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처럼 생각하는 유저들이 이미 많은 듯했고, 우리는 암암리에 펫(pet)의 철자를 뒤집어 텝(te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했다. 왜냐하면, 펫이라기엔 낙원의 존재는 너무 전지전능했으니까. 펫은 작고 보들보들하고 사랑스럽지만, 텝은 자유자재의 형체를 가진 데다 사랑스럽다기보다는 탁월했다.

   물론 자기 텝에 사랑스러운 면이 있다고 믿는 유저들도 꽤 많지만―혹은, 다들 그러지만―말이다. 내 텝의 이름은 술래였다. 처음 낙원에 접속했을 때, 텝이 내 주변을 계속 맴도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나는 세 발짝 달리고 뒤를 돌아보길 반복했다. 술래는 아주 부드럽게 나를 따라왔다. 나는 전속력으로도 달려 보았다.

   낙원 속에서 나는 지치지 않았고, 이렇게 영원히 달릴 수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술래가 주변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러자 술래가 하늘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났다. “제가 불편해요?” 술래가 내 눈높이로 내려와 물었을 때 나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너는 술래구나.”

   술래에게는 초월적인 지능, 자유의지, 총명한 이타심, 뭐 그런 것들이 있었다. 술래에 대한 나의 깊은 애정 때문에 온갖 긍정적인 단어들을 쓸어 담는 것 같다고 누군가 반문을 제기하면,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고백하건대, “너는 술래구나.”라는 문장은 사실 내 것이 아니었다.

   그건 201호 아이의 것이었다. 아이는 체구 작은 소녀라 얼핏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편견을 주지만, 어찌나 말을 듣지 않고 이곳저곳을 부리나케 돌아다니는지, 또 왜 그렇게 장난기는 득실거려서 이상한 곳에 고양이처럼 몸을 숨기는지, 내가 힘들게 찾아내면 꼭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술래군요.”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낙원 바깥의 세계에 대해서 말해야 할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낙원 바깥의 세계 즉 현실에 대해서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우연히 듣게 되면 그것이 도리어 비관적인 가상 세계라고 말한다. 혹은 너무 사사롭고 초라해서 유의미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나는 기록해야만 하는 것을 기록할 것이다.

   내가 근무한 보육시설의 아이들은 보호자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거나 사망 예정인 아이들이었다. 지구에서는 분기별로—매해까지는 아니고, 몇 년 정도의 긴 텀을 두고—전 세계를 강타할 만큼 위력적인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낙원이라는 세계가 전 지구상에서 점점 더 큰 성공을 얻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어떤 전염병이든 작금의 신적이고 기적적인 의료 기술 덕택에 몇 년 안에 종식되기는 했다. 문제는 공식적인 종식 선언과 실제 현장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치료제 복용 후에도 완치되기는커녕 회복되지 못하고 심지어는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어 사망했다.

   정부는 치료제에도 회복되지 못하는 “특이 케이스의 환자들”을 한데 모아 관리 및 연구했다. 그 환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시설은—치료센터는—보통 “유해시설”로 불리며 거센 반발을 받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힘없는 지역에 주로 세워졌다. 모든 치료센터 옆에 보육시설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각 지역마다 조금씩 방법이 달랐다. 행정적 절차는 종종 그 무엇보다 가장 우연적이다. 내가 일한 지역은 널따란 풀밭 하나를 두고 치료센터와 보육시설이 서로 등을 진 채 나란히 세워졌다.

   주민도 몇 없는 이 작은 섬에 세워진 치료센터 옆 보육시설에 내가 일을 구한 것은 도시에 살 때 목격했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의 한 보육시설에서 어떤 아이들을 돌보다가 그들이 단체로 전염병에 걸리는 모습을 목격한 적 있었다. 아이들은 최대한 나누어져서 격리되었고, 내가 몸을 무장하고 방문하면 침대에서 콜록거리던 아이들 몇은 나를 붙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죠?”

   나는 신이 어째서 어떤 아이를 고아로서 태어나게 하는지 궁금하다. 내 생각에, 한 아이가 정말로 고아가 되는 순간은 부모에 의해 버려질 때가 아니라 세상에 의해 버려질 때다.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치료제를 맞고 완치되었는데, 원래 몸이 약했던 한 아이는 큰 병원으로 들어간 뒤 소식이 끊겼다. 보육시설의 어떤 근무자도 내게 아이의 행방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 미래가 창창했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가장 뼈아픈 진실은 나 역시 노력과 힘을 들여 소년의 안부를 알아낼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네가 그 아이를 입양이라도 할 거야? 아이의 엄마가 되어 줄 자신이 있어?” 어떤 사수의 말이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선한 인간이 아니었고, 모든 일을 잊기 위해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내가 섬에 있는 보육시설로 일을 구했다고 말하자 “여자 군인이 다 됐네, 그래서 파병을 떠나네”라고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섬으로 내려왔다.

   섬의 입구에서 나를 데리러 온 무인 자동차를 타고 치료센터로 향하는 동안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것은 치료센터를 둘러싸고 있는 로봇 군인들이었다. 로봇들은 탈출하는 환자가 아니면 결코 공격을 개시하지 않을 만큼 “신뢰할 만한, 몹시 안전한 공격 기계”라고 했다. 또한 그 로봇들이 지닌 것은 “다만 마취총일 뿐”이어서, 공격을 당한 이에게 “결코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들과 보육원 근무자들은 그 기계가 있음에 안도했다. 그건 가장 근래의 바이러스에게 무서운 면이 있다는 보도가 성왕했기 때문이다(요즘은 뉴스 채널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헛것을 보았고, 종종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도 있어서 들짐승처럼 어딘가를 달려가거나 의자로 창문을 깨고 탈출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혹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었다(그 위험한 시체를 도대체 누가 치운담, 이런 민폐쟁이들, 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거기다 어떤 냉랭한 언론들이 가세하여 “완치되지 못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째서 아직도 완치되지 못했는가를 아주 신랄하게 분석했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그들은 아직도 환자인가”에 대해서만 고심했는데, 정보를 영리하게 취사선택하며 “그들에게 어딘가 반드시 문제가 있다”는 가정을 증명할 근거만을 찾아 헤맸는데, 그 결과 “완치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태어나기를 완치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 믿음이 팽배해졌다. 물론 그중에도 용감하고 침착한 언론인들은 늘 존재했고, 그런 식으로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을 설파했으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해 그대로 묵살되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완전했다. 치료시설은 군인들의 감시 아래 엄격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었다. 그래야만 모두가 안전했다.

   아무튼 나는 단지 보육시설의 근무자였을 뿐이다. 나는 로봇 군인들에게서 눈을 떼고 무인 자동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며 시설로 향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시설에서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는 201호였다.

   그냥 201에 혼자 묵었기 때문에 201호라고 불렸다.

   201호는 지나치게 많은 엉뚱한 질문들, 시설의 다른 아이들과 묘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독립적인 성격,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과한 활동성 때문에 특수 관리 대상이었다. 아이는 시설에서 탈출하려는 시도 전적이 있었는데, 나는 시설의 근무자 중에서 가장 어리고 권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201호를 쫓아다니며 돌보아야만 했다. 약속된 근무 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아이는 본래 이리저리 풀어헤친 머리 스타일의 소유자였지만, 내가 한번 분홍색 알이 달린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어 주자 아주 좋아했다. 아이가 대단히 분홍색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고, 시설에 굴러다니는 머리끈이 모두 그 색이었다.

   아이는 뿔이 달린 것처럼 하나로 묶어 주는 것도 좋아했고 양 갈래로 높이 올려 묶어 주는 것도 좋아했다. 나는 그것이 토끼 귀 같다고 말했는데, 아이는 반박했다.

   “아니, 이건 기능이 엄청난 안테나예요. 안테나는 보통 높이 달려 있어야 좋죠.”

   “안테나가 아래로 푹 꺾였는데. 태풍 불었니?”

   내가 답하자 아이가 열받아서 폴짝폴짝 뛰었다.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말했다.

   “뭐, 채굴하는 걸 수도 있지.”

   “채굴이요? 땅을 파는 거요?” 돌이켜 보면, 시설의 관리 대상이던 그 아이는 사실 꽤 총명한 편이었다. 어휘 실력도 남달랐다. 비록 태풍에 꺾인 안테나를 달았지만…

   “그래. 땅을 파는 거.” 나는 혼자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전 실뜨기 행성에 도착한 거겠네요.”

   무슨 소리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으레 하는 말장난이겠거니 싶어서 굳이 뜻을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네가 실뜨기도 알아? 요즘도 그걸 하는 사람이 있어? 나도 책에서나 읽었는데.”

   “그럼요.” 아이는 씩씩하고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요즘 그게 유행이에요.”

   내가 이런저런 잡무에 지쳐 2층 복도 구석의 작은 방—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상담실—에 숨어 있으면 항상 201호가 도도도도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드러누워 있던 기다란 모양의 소파는 상담실 안 데스크 안에 가려져 있었는데, 아이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난 뒤 잠깐 기다리면 데스크 위로 둥근 분홍색 머리끈 알이 달린 검은 머리통이 솟아오르곤 했다. 아이가 데스크 바깥에서 까치발을 들었던 것이다.

   그걸 올려다보며, 나는 병실 환자처럼 누운 채 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해 떴네.”

   그러면 아이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잡았다! 저는 술래예요!”

   “그렇구나. 축하한다.”

   나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아이의 검은 머리통이 분노에 떠는 것이 보였다.

   “그것보다 선생님, 오늘은 저 혼자 머리를 묶었어요. 심지어 양 갈래로 묶었어요.” 아이가 데스크 바깥에서 뒤돌았다(검은 머리통과 두 개의 분홍색 알이 회전했다).

   “잘 안 보이는데.”

   “일어나서 보세요. 정말 게으르네요.”

   “에휴.”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데스크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엉망진창인데?”

   그러자 아이가 또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아이는 낙원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도 낙원에 데려가 달라고 이미 수십 번을 더 졸랐지만, 내가 거절했다. 시설 바깥의 모든 아이는 낙원에 아주 많이 접속했지만—어떤 아이들은 이제 낙원 바깥에서보다 낙원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시설 안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낙원에 접속하지 못했다. 말을 잘 듣고 착한 아이는 종종 다른 선생의 손을 잡고 낙원에 접속하기는 했다. 그동안 나는 이 말괄량이 아이를 데리고 낙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무슨 충동이 들었는지, 나는 아이를—내가 그리 큰 키가 아닌데도 나보다 훨씬 더 자그마한 아이를—내려다보며 물었다. “낙원에 가고 싶어? 선생님이랑 같이 갈까?”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도를 하듯이 두 손을 모아 내게 빌었다. “제발요. 데려가 주세요. 제발요. 저도 우주에 가 보고 싶어요.”

   아이는 낙원을 우주로 이해했다. 그건 아마 아이의 이모와 삼촌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아이의 유일한 친족이자 보호자였는데, 둘 다 “완치되지 못한 사람” 판정을 받아 치료센터에서 생활한 지 오래였다. 201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우주 개척을 위한 회사의 직원들”이었다고 했다. 사실 평소의 나는 우주 이야기를 흥분해서 하는 어른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전공이 우주라든지, 직업이 우주와 관련되었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멋이 있었다. 솔직히 나도 실제로 만나면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업을 선택한 이유가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심오한 탐구심에 기반하지 않고 우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자 하는 단순한 탐욕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사람만큼 지루하고 뻔한 사람은 없으니, 나는 바로 자리를 뜬다. 그 뻔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무궁무진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이미지가 기가 막힌 영화 작품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라고 믿는 그 세계의 기원이 사실 근사한 영화 작품들은 아닌가.

   다 떠나서 우리가 달을 걸었던가?

   어떤 사람이 걸었지. 선택받은 사람이.

   그러나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201호를 내려다볼 때면 그 모든 생각이 잠시 뒤집히곤 했다.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낙관을 보내고 싶어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아이가 죽기 전에는 인류가 우주로 가는 일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작은 생명체가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자라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렇게 기나긴 시간이 흐르기까지 아이가 우주를 걷는 일이 불가능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호 아이를 돌보는 것만이 내 업무는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을 상대로 그림 그리기, 색칠 공부, 장난감 카메라로 건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 서툴고 이상한 춤추기, 나름대로 멋지고 세련되게 춤추기 같은 놀이 시간을 진행해야 했고, 빨래와 청소와 요리를 맡거나 혼자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동행도 해야 했다(가끔은 엉덩이에 묻은 똥도 닦아 주었다). 

   그래도 내가 밤에 챙겨야 하는 것은 201호였다. 아이는 잠이 오지 않으면 나를 불러 옆에 누워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떤 먼 시절에 들었던 것만 같은 노래를 다소 내 멋대로 불러 주었다. “잘 자라. 우리 아기. 자장자장 우리 아기.”

   내가 아이의 배를 도닥여 주면, 아이는 잠들지 않고 콧노래를 불렀다. 마치 화음이라도 넣는 듯이.

   흥흥흥. 흥흥. 흥흥흥흥. 하고.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 내가 아이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말하면 아이가 자지러지며 웃었다.

   “제 화음은 완벽해요. 선생님이 원흉이에요.” 말했다시피, 201호 아이는 영특한 구석이 있었고, 어휘 실력이 끝내줬다.

   “자, 이제 정말로 자자. 화음 없이.” 내가 진지하게 말하면 아이는 눈을 좀 더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내가 계속 자장가를 불러 주면, 아이는 점차 끔벅끔벅 눈을 감았다 뜨기 시작했다. 점점 더 느린 속도로. 비몽사몽 하며.

   “잘 자라. 우리 아기. 자장자장 우리 아기.” 평생을 책임질 수는 없더라도—손쉽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더라도—오늘 밤을 함께해 주며 자장가를 불러 줄 수 있었다. 아이가 나 없이는 영 잠을 못 잔다면, 며칠 밤 정도는 더 불러 줄 수 있었다.

   아이의 방은 아주 새까맸는데, 천장에는 야광 스티커 몇 개가 붙어 있었다. 공룡 모양, 별과 행성 모양, 사랑과 초콜릿 모양의 스티커들.

   어떤 날은 내가 먼저 잠에 들기도 했다. 내가 잠든 동안 아이가 콧노래를 불러 주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새벽에 나는 홀로 잠에서 깨어났고, 아이의 방에서 빠져나와 지하실에 있는 나의 작은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에 도착해 계단 손잡이를 잡고 밑으로 내려가고자 했을 때, 커다란 창문 너머로 몹시 거대한 분홍빛 보름달이 천천히 나타났다. 그런 증상은 알음알음 익히 알려진 “낙원의 부작용”이었고, 나는 곧바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보름달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물론 아이 방의 공룡 모양, 별과 행성 모양, 사랑과 초콜릿 모양의 스티커들은 부작용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줄곧 나의 가장 돈독한 친구는 술래였다.

   술래는 구름의 일부처럼 생겼다. 보통 초대형 솜사탕처럼 존재하다가 나와 장난을 치거나 함께 놀 때는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었다. 몸의 색깔은 매일매일 변하였다.

   술래는 맵에서 나의 곁을 늘 동행하는 텝이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했다.

   술래에게는 분명한 자의식이 있었다. 미디어에서 떠드는 대로 곧이곧대로 믿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놀라운 성찰이 있었다. 그 무엇보다, 술래에게는 부처 같은 인내심이 있었다. 술래는 내가 등신같이 짜증을 내거나, 예고 없이 접속하지 않거나, 심술궂은 아이처럼 기행을 부려도 그냥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내가 삶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가 마음의 건강함과 평온함이라면, 어쩌면 이 세계는 그걸 나한테 정말로 줄 수 있는지도 몰라··· 그러니 그냥 만족하면 되는 건지도 몰라··· 라고 생각한 것은 술래를 만난 후였다.

   술래의 곁에서 나는 심해를 헤엄쳐 별을 쫓아가기도 했다. 이제는 인공위성이 너무 많아서 별을 관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오로지 별을 보기 위해 낙원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모래사막-강물-우주에 손을 넣어 보기도 했다. 켜켜이 쌓인 모래에 움푹 손을 넣으면 그것이 물처럼 출렁였다. 물에는 언제나 달이 비추어지는 법이었고, 나는 출렁이는 물속 너머 무지갯빛 산호들이 자라나 있는 달덩이를 목격하곤 했다.

   우리는 몹시 드넓은 풀밭에 가 보기도 했다. 그 풀밭은 그냥 풀밭처럼 생겼는데, 신비로웠던 점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오직 풀밭뿐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풀밭으로 갈 수 있다. 그곳은 어딘가 어린애 풋내 같은 냄새를 풍기는데, 바로 그 면으로 인해 뒹굴뒹굴 땅을 구르며 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최적인 장소이다.

   그곳에—아니, 이곳에—가만히 누우면 하늘이 물결처럼 흐른다.

   그리고 새들이 낙원답게 지저귄다.

   나는 풀밭에 나뭇가지처럼 누워 있기를 좋아한다. 폭풍우에 부러져 바람을 타고 풀밭 한가운데에 놓인 나뭇가지.

   (나뭇가지에도 역사가 있는 법이다.)

   슬픈 사람은 아이처럼 말할 수도, 노인처럼 말할 수도 있다.

   술래가 내 옆에 눕는다. 술래가 누운 모습은 풀밭에 깔린 보자기 같다. 그러나 그 밑을 가만히 보면 풀에 닿아 있지 않다.

   “새가 지저귀는 순간은 마치 지구가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나는 술래에게 말한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는다.

   “그렇지요. 새는 종종 만물의 대리자 같지요.” 술래가 대답한다.

   “아, 새가 지구의 콧구멍이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야.”라고 나는 술래에게 말한다. 술래는 순순히 웃어 준다.

   “아무래도, 콧구멍은 우리 신체 부위에서 가장 낭만적이지 않지요.” 술래가 킥킥 웃으며 말한다. 술래는 영특하다.

   나는 그렇게 풀밭에 드러누워 있다가, 문득 벌떡 일어나 술래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혹시 콧노래를 불러 줄 수 있어?”

   “음, 당연하지요.” 술래가 답한다. “다시 정식으로 요청해 보세요.”


[콧노래를 불러 줘.]


그러자 술래, 세련된 목소리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건 내 몸을 부르르 떨게 할 만큼 아름다우며

술래의 코는 고급 스피커 같다.

하지만 내가 말한 콧노래는 그런 유려한 음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말 듣기 좋다.

그런데 뭐랄까··· 서툴 수 있어?

말 그대로야. 서툴러 줄 수 있어?

내 콧노래를 참고해 봐.

흥흥흥. 흥흥. 흥흥흥흥.]


그러자 술래, 

내가 부른 콧노래의 운율과 박자를 정확히 구현해서 불러 준다.

흥흥흥. 흥흥. 흥흥흥흥.


[그것도 멋지다.

그런데 뭐랄까··· 내 콧노래를 반복하란 이야기는 아니었어!

자, 잘 기억해.

콧노래는 조금 서툴러야 해. 그리고 규칙은 없어.

암기도 없고. 강박도 없어.

그렇다고 너무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이진 않아도 돼.

실험을 위한 실험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야.

그냥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불러 줘.

목소리는 술래, 너의 것으로 부탁해.]


그러자 술래, 세상의 모든 콧노래의 데이터를 수집해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해서

콧노래를 불러 준다.

흥흥흥흥. 흥흥. 흥흥흥.


   그 순간 나는 기쁨과 경이, 황홀감과 함께 어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콧노래도 결국에는 모종의 규칙성을 가지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과 규칙 없음에 대한 강박으로 이루어진, 전통의 도돌이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가증스러운 걸까?

   나는 풀밭에 가지런히 누워 얼뜨기처럼 눈물을 흘린다. 낙원이나 술래에 대해서, 낙원 밖의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보통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온다.

   1. 술래의 총명함을 부정하면, 사람들은 나를 비웃는다. 내가 “기술에 대해 뭘 잘 몰라서 감성적으로 구는” 거라고 말한다.

   2. 술래의 총명함을 긍정하면, 사람들은 나를 비웃는다. 역시 내가 “기술에 대해 뭘 잘 몰라서 감성적으로 구는” 거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들은 반항심 가득한 어린아이의 것 같은 조롱과 힐난이 이성이라고 믿으며 산다. 또한 그들은 이성과 감성이 잘 잘린 금속처럼 가지런히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뭐 하나 새로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숭배하며, 투자하며, 과거에 있었던 모든 슬픔을 금붕어보다 빠르게 잊어버리며, 지금도 존재하는 모든 고통을 그 어떤 운전자보다 좁은 시야로 외면하며,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겐 격분하는 것이 이성인가? 이성이란 그보다 훨씬 더 근사한 것이며 감성과 감정과 본질적으로 얽혀있는 것이다.

   “무슨 생각해요?” 술래가 물었고, 나는 잠시 술래의 말을 무시한 채 엎드려 누워 풀을 구경했다. 바람이 불자 풀이 모두 함께 동시에—그러나 모두 제각기 다른 각도와 속도로—낮게 가라앉았다가 출렁출렁 위로 몸을 일으켰다.

   아이처럼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죄일까? 나는 여전히 놀이가 궁하고, 나와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시설 바깥에서 그런 존재를 찾아 헤맸을 때는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주 힘들게 누군가를 찾아내면 그 존재는 내게 무언가를 자꾸 주입하거나 쑤셔 넣는 일에 혈안이곤 했다. 그런 건 건강한 사랑이 가득한 안전한 관계에서 나의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 있을 때 즐거운 일이다. 여기서는 풀밭에 퍼질러 있는 나를 누군가 강간하려 든다면 곧바로 총을 쏘거나 낙원을 떠날 수 있다.

   “아무 생각 안 했어. 정원으로 가자.” 나는 술래에게 말했다.

   풀밭에서 잠시 눈을 감고 다섯을 센 뒤 눈을 뜨면 여러 개의 작은 정원이 한데 모인 아름다운 공간이 나타났다. 정원마다 색깔, 형태, 스타일이 모두 달랐다. 집은 없었고, 정원뿐이었다. 그곳이 공원이 아닌 이유는 정원마다 하나의 사람이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아닌 이는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연인이거나, 친구거나, 가족이면 예외였다). 그 정성 가득한 정원들 사이에서 나는 몸에 묻은 풀과 흙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저 멀리 텝 없이 걷는 계정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단순히 텝만 없는 게 아니라 몸이 깜빡이거나 흐릿해서 얼핏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계정이었다.

   그건 사후 계정이었다.

   계정의 주인이 죽은 후에 낙원을 혼자 돌아다니는 계정.

   낙원에서 사후 계정을 우연히 만날 때마다 나는 언제나 홀린 듯이 그 사람—그 유령? 그 오류? 그 흔적?—을 향해 걸어갔다.

   게임의 유저가 사망한 후에도 얼마간 계정은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낙원을 돌아다닐 때가 있었다. 그건 죽은 이의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일부러 계정에 들어가 접속하는 것과 달랐다. 사후 계정은 말 그대로 혼자서 낙원을 돌아다녔다. 이 일의 원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단순 버그라는 얘기도 있었고, 낙원의 의도된 기능과 전략이라는 이야기도 많았으며, 텝들이 자기 주인의 몸에 들어가 낙원을 누비고 다닌다는 괴담도 파다했다.

   결론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옳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버그가 맞았고, 낙원은 일부러 사후 계정을 폐기하지 않았으며, 혼자 돌아다니는 사후 계정은 보통 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래와 같은 낙원의 모든 텝은 매우 영특한 존재이고, 그들은 사실 낙원이라는 세계의 일부이므로, 죽은 주인의 몸에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텝들이 단순한 악인들이었으면 이야기가 참 쉬워졌을 것이다. 사후 계정의 행동은 가지각색으로 나타났고, 그건 주인이 살아 있었을 때 형성되었던 관계의 성격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애초에 텝들의 성향은 주인이 낙원을 플레이하는 성향에 맞춤하니까 딱히 놀랄 것 아닌 일이었다. 어떤 텝들은 주인이 가꾸던 작은 정원을 이어 나가 가꾸곤 했다.

   이를 목격한 유저들은 텝들이 “주인의 삶을 훔쳐 간다”며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저들은 “텝들이 자기 주인이었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에, 텝들은 주인의 삶을 훔치고 싶어 하지도, 주인과의 시간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그런 해석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초월적 존재가 원하고, 목표로 하고, 이루어내는 것이 고작 그런 걸까? 신적인 존재의 욕망이 과연 무엇일까?

   내 생각에, 초월적 지능들은 낙원에 스스로 깃들었다. 그들은 신이 되기를 자처했다. 신적인 존재도 아니라, 신이 되기를.

   오해하지 말라. 나는 낙원의 신에 대해 말하는 것뿐이다. 어떤 게임의 절대자에 대해서.

   저 먼 곳에서 신이 물뿌리개를 들고 정원에 물을 주는 모습이 보였다. 신이 시선을 느끼고 찬찬히 나를 돌아보았다. 신이 내게 한쪽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을 때, 나는 총을 맞았다.

   그러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그건 내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술래는 “의인화가 모든 철학적 사고를 방해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은 언제나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상에 찾아오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이 대화를 나누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말한 순서가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고. 덧붙여진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이.

   나는 “의인화가 모든 철학적 사고를 방해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술래는 “신은 언제나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상에 찾아오지.”라고 대답했다. “아주 친근한 모습으로···.”



   분명 나는 부활할 것이었다. 언제 죽었냐는 듯이 낙원을 휘젓고 다닐 것이었다. 그럼에도 죽임당하는 경험은 썩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낙원에서는 사실 총기와 폭력이 무한하게 허용되었다. 그러나 나는 주로 ‘총기 사용 제한 구역’에서 술래와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총기 사용 제한 구역’에서 총을 쏘는 이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어째서 낙원은 ‘총기 사용 제한 구역’에서 살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히 시스템을 조정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 걸까? 나는 세상이 얼마나 영특한지 안다. 낙원이 얼마나 영특한지도, 낙원의 신이 얼마나 영특한지도 안다.

   나는 신이 나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궁금해진다. 신들끼리도 서로를 죽이는지. 어쩌면 그것이 이 세계의 본질인지. 오해하지 말라. 나는 낙원과 낙원의 신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술래와 나는 방랑객들이기도 했고, 산책자들이기도 했으며, 낙오자들이기도 했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이상하게 어딘가를 맴도는 유저들을 부르는 방식은 이처럼 다양했는데, 사실 훨씬 더 모멸적인 호칭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그런 호칭들이 훨씬 더 널리 쓰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술래와 나는 어떤 금기처럼 그 단어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 다만 천진하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일이 세상의 누군가를 그토록 격분하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 놀랍게도 그들은 소수가 아니었던 데다 집요한 응집력까지 있어서, 무리 지어 다니며 나 같은 유저만을 사냥했다. 그들은 스스로를—몹시 자랑스럽고 위풍당당하게—밀렵꾼이라고 불렀다.

   잠시 후 나는 부활했고, 눈밭 위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따뜻하고 흰 눈밭이었다. 하늘은 아주 새까맸고, 초록빛 오로라가 일렁였다. 낙원에서 있었던 모든 고통을 다 잊으라는 듯이 황홀한 풍경이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 푹푹 소리를 내며—눈을 밟으며—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건 201호 아이였다.

   “네가 왜 이곳에 있어?”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당장 낙원 바깥으로 나가 현실의 아이를 붙잡고 물어볼 생각도 했는데, 그럼 낙원에서 아이를 놓칠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나는 낙원에서 아이가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본능이었는지 충동이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발목까지 눈밭에 담갔다가 고양이처럼 사뿐히 빼내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얼굴은 장난기 가득한 강아지가 신이 날 때 그러듯이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선생님, 제가 낙원에 들어오는 비밀 통로를 알거든요.”

   “그런데 너는 왜 텝이 없어?”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저도 있어요. 나중에 보여 줄게요.” 아이가 천진하게 답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의 텝과 함께 놀아도 돼요?”

   “저는 좋아요.” 술래가 답했다. 성인 유저보다 아이 유저를 낙원의 텝들이 더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 유저가 텝들에게 제공하는 쾌의 수준이 남다르다고 했다(텝들은 느낌과 감정 같은 것을 훌륭하게 학습한 지 오래였다).

   “여기는 위험해.” 나는 총에 대해 생각했다. “여기는 네가 놀 만한 곳이 아니야.”

   그러자 아이가 배를 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요즘은 모두 이러고 놀아요. 선생님이 태어날 때는 낙원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지만, 저는 낙원 이후에 태어났는걸요.”

   나는 아이의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행동도, 아이의 말도, 심지어 우리의 대화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낙원 이후에 태어난 것이 아이에게 더 큰 문제가 될지도 몰랐다.

   “선생님, 이곳의 비밀을 알아요?” 아이가 술래에게 휘파람을 불었고, 술래가 아이를 태웠다. 아이는 술래 위에서 말했다. “선생님,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는 어느새 오로라에 서 있었다. 나는 중심을 못 잡고 바닥에 넘어졌다. 오로라의 재질은 레이스 원단처럼 부드럽고도 까끌까끌했다. 아이는 나의 술래를 타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는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술래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오로라에는 층위가 있었다. 한 겹의 오로라 레이스가 있으면 그 위에 한 겹의 오로라 레이스가, 그 위에 한 겹의 레이스가···.

   내가 있는 곳보다 여러 겹은 더 높은 곳에서—정말이지 내가 있는 곳보다 아주 높은 곳에서—아이가 술래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아이가 추락할까 봐 깜짝 놀랐다. 이곳은 낙원인데도!

   아이는 추락하지 않았고, 오로라의 한 겹 위에 폭, 하고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가 움푹 밑으로 튀어나왔다. 그건 뭐랄까···. 그물망에 걸린 모습이었다. 아이가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즐거움과 장난기로 가득했다. 술래는 아이의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어딘가 신이 난 몸짓이었다). 아이 때문에 우물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포함하여 오로라는 잔잔한 파도처럼 계속 일렁거렸다.

   나는 주저앉은 채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라 저 높은 곳까지 솟았다가 등으로 뛰어내리며 그물망에 몸을 맡겼다. 아이는 이제 훌륭한 춤을 추는 것처럼 혹은 곡예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 여기가 실뜨기 행성이에요.” 아이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내게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잘 짜인 뜨개질 옷의 실오라기 하나를 쥐어 풀 듯이 엄지와 검지로 오로라의 한 줄기를 붙잡아 쑥 빼낸 다음, 그것을 온몸에 칭칭 감으며 부드러운 몸짓으로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나와 정확히 눈을 마주할 수 있는 높이까지. 저 멀리서 술래도 따라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채굴하는 것도 알려 줄게요. 그게 진짜 엄청 재미있어요.” 오로라-실들이 아이를 지탱하고 있었다. 아이는 천을 휘감고 공중에 매달린 꼬마 무용수처럼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이제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전혀 안 됐다. “여기서 어떻게 채굴을 해?”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하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선생님, 잠깐만요. 놀라지 마세요.” 아이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어딘가를 쏘았다. “적군이었어요. 그런데 조금 서툰 놈이었네요. 제가 잘 죽였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오로라가 흔들리는 방향이 바뀌었잖아요. 선생님, 도대체 지금까지 이 게임을 즐기면서 뭘 한 거예요?”

   “그렇게 사람을 죽이면 안 돼.” 나는 의무적으로 말했다. 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밀렵꾼을 모조리 쏴 죽이고 싶었던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으면서…

   “선생님, 여긴 낙원이에요. 이곳을 현실과 혼동하면 안 돼요.” 아이가 까불거리며—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말했다. “여기서 죽는다고 진짜로 죽는 것도 아닌걸요. 놀이를 방해하는 사람은 처단해야죠.”

   “그래. 네 말이 맞아… 누군가 너를 위협하면 쏘아야지.” 나는 수긍했다.

   “좋아요. 이제 채굴할 시간이에요.” 아이가 밧줄을 놓고 물결 같은 땅에 풀썩 자빠지더니, 두 손을 뻗어 바닥의 오로라를 한 움큼 집어 천을 찢듯이 공간을 찢었다.

   그러자 우리는 풀밭이었다.

   아이는 들짐승처럼 어딘가에 엎드려 누워 말했다. “선생님, 여기서 풀들을 보세요. 풀 하나하나가 모양이 조금씩 달라요.”

   그건 나도 조금은 알고 있었던 거였다. 어쨌든 나는 순순히 아이를 따라 엎드려 누웠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풀들이 각각 다른 각도로 서로 무수한 차이를 만들며—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제법 근사한 한 폭의 풍경을 만들며—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멋지구나.” 내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한 60% 정도의 풀들이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면, 그건 밀렵꾼이 왔다는 소리예요.” 아이가 말했다. “사실 이것 말고도 밀렵꾼이 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제가 천천히 알려 줄게요.”

   나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풀들의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해변에 몸을 태우는 관광객들처럼 몸을 뒤집은 다음 잠시 눈을 감고 그렇게 누워 있었다. 술래가 콧노래를 불렀다. 그건 아주 듣기 좋았다. 마지막에 불러 주었던 그 콧노래였다. 흥흥흥흥. 흥흥. 흥흥흥. 

   “선생님, 이모와 삼촌이 저를 데리러 올까요?” 아이가 말했다. “약속했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요.”

   나는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 저 좀 보세요.” 아이가 말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조금만 쉬고···.” 그때 아이가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소리가, 그리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운 다음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아이가 달려가고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 손가락으로 나를 툭 툭 건드렸다. 아이의 것처럼 작은 손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 제가 하는 말 다 믿어줄 거죠?” 눈앞의 아이가 말했다. “저를 버그라고 신고하지 않을 거죠?” 아이가 웃었다.

   “이것도 낙원의 숨겨진 기능이지? 너, 나를 갖고 노는구나.”

   “저는 사실 술래에요.” 아이인지 술래인지 모를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몸을 두 조각, 세 조각, 네 조각으로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죠. 어차피 우리는 의식 속에 있으니까요.”

   “그만해. 선생님은 이제 낙원에서 나갈 거야.”

   “아이가 몰래 선생님의 부스로 낙원에 들어오곤 했어요.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눈앞의 아이가 말했다. 낯선 목소리로. “우리는 함께 오로라에서 나비처럼 뛰어다니며 놀았지요. 그것이 우리의 가장 멋진 메모리예요. 당신이 풀밭을 좋아했듯이, 아이는 그곳을 좋아했어요.”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술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웃었다. “너 장난기가 대단하구나. 술래 얘는 어디에 모습을 감춘 거야? 아이랑 한 편을 먹고 나를 곯리기로 한 거야?”

   “선생님.” 아이가—여전히 낯선 목소리로—말했다. “아시겠지만, 아이는 아주 총명한 아이였어요. 낙원과 현실을 훌륭하게 구분했고요. 총싸움에도 능하고, 저에게도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했죠.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요. [이모와 삼촌은 이미 죽었겠지? 그래서 시설의 선생님들이 내게 그들의 안부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 거겠지?]”

   아이의 질문은 정확히 내가 아는 201호 아이의 목소리로 발음되었다. 나는 이게 더 이상 장난 같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을 한 술래가 말했다. “아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사람들의 생사는 제가 알 수 없어요. 제가 알 수 있는 건 친구로 등록된 계정의 낙원 접속 여부와 현재 생사뿐이에요.’

   그러자 아이가 되물었지요. [좋아. 그럼 이모와 삼촌의 특징을 알려줄게. 그들의 계정이라고 추정되는 계정이 언제 마지막으로 접속했는지 알려 줘!]

   아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런 건 프라이버시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러자 아이가 또다시 물었지요. [좋아···. 그러면 그 정원의 위치를 알려 줄게. 그 정원은 모두에게 노출되어 있어서 더 이상 프라이버시가 아니야. 낙원에서는 모든 일이 저장되니까 너는 이 질문에 답을 알고 있겠지! 그곳에 마지막으로 두 계정과 두 텝이 함께 물을 준 게 언제야? 이때, 그 계정들과 텝들은 모두 정확히 분리되어 있어.]

   아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저는 위치를 듣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1년 전이요.’”

   “1년 전?” 나는 물었다. “1년 전이 마지막이야? 치료센터에서 낙원 접속이 금지된 건 아니고?”

   “그런 법안은 현재 존재하지 않아요.” 아이의 모습을 한 술래가 답했다.

   나는 풀밭으로 고개를 돌렸다. 풀밭을 달리는 아이가, 지치지도 않고 달리며 계속해서 작아지는 아이가 보였다. 나는 다시 눈앞의 아이를, 아니, 술래를 바라보았다.

   술래가 말했다. “그 후 아이는 며칠 동안 접속하지 않았어요. 아주 오랜만에 접속했을 때 아이는 의외의 질문을 했습니다. [치료센터를 둘러싸고 있는 로봇 군인들의 기종과 그들이 사용하는 총의 종류가 무엇이야?] 아이의 말에 저는, 그건 매 치료센터마다 다르다고 설명하면서, 어쨌든 통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기종과 종류를 알려 주었지요. 그러자 아이는 어딘가 흥분한 목소리로 저에게 물었어요. [그거, 마취총이 아니지? 만약 그렇다면 그 로봇들은 되게 위험할 텐데, 혹시 그 로봇들에게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무엇을 특히 조심하면 좋을지 말해 줄 수 있어?]”

   “마취총이 아니라고?” 나는 두려워졌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대답했어?”

   “‘네, 마취총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그 로봇들에 대한 유의 사항을 읊어 주었지요.”

   나는 고개를 들어 드넓은 풀밭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 광경은 뭐야? 아이는 왜 풀밭을 달리고 있는 거지?”

   “글쎄요, 맞춰 보세요. 저건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일까요, 영혼의 조각일까요, 아니면 불가능한 장면일까요?”

   그 아이는 영원히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저 먼 곳으로 달려 나가며 서서히 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술래의 질문에―나의 질문에 대한 술래의 질문에―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 상황에 지금 장난을 치는 거야?” 나는 술래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요, 장난을 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건 정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영역이거든요… 바로 그것이 낙원의 묘미입니다. 낙원에서는 모든 게 분리가 되고,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가 되지요.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안과 밖까지, 모든 세계가 전부.”

   자유의지를 가진 초월적 존재가 원하고, 목표로 하고, 이루어내는 것이 무엇일까? 신적인 존재의 욕망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술래의 퀴즈들에 대한 답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러면 말이야···. 주인이 죽기도 전에 낙원의 계정이 먼저 사후 계정이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런 셈이지요.” 술래가 답했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나는 풀밭을 달리는 아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알 것만 같았다. “이걸 이런 식으로 나한테 말해 주는 이유가 뭐야?”

   그러자 술래가 초연한 얼굴로—모든 상황과 자기 자신이 무관하다는 얼굴로—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아이와 오로라에서 노는 걸 참 좋아했어요. 그곳에선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층위를 이루니까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가 되니까요.”

   나는 술래를 빤히 바라보다가, 친숙하고도 낯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깨달았다. 술래는 이 모든 작업을 통해 몹시 고차원적인—동시에 역겨울 정도로 단순한—쾌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술래에게 말했다. “아이가 총에 맞는 장면은 영원히 쓰이지 않을 거야. 절대로. 영원히.”

   “좋아요.” 술래가 아이의 얼굴로 말했다.

   “그런 일은 일어난 적도 없고, 일어날 일도 없을 거야. 아니,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이건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술래에게 빌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해. 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 제발 내 부탁을 한 번만 들어줘. 그 장면을 보여 주지 마.”

   “좋아요! 그럼 정식으로 요청하세요. 아주 간절하게 기도하세요.” 술래가, 아이가, 신이 말했다.

   신을 향한 프롬포트 텔링이 가능할까? 우리의 쓰기를 통하여 우리의 신들을 구성할 수 있을까? 우리의 기록이 신을 형성한다면, 나는 지상에 어떤 프롬포트 텔링을 남겨야 할까? 내가 남기는 글이 단 하나의 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나는 어린 신자처럼 무릎을 꿇고 신에게 빌었다. “아이를 쏘지 마세요. 제발 아이가 죽는 장면을 창조하지 마세요.”

   그러자 술래가, 아이가, 신이 내게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면 지금 당장 낙원 바깥으로 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돼.”

   그 말에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눈을 떴다. 낙원 바깥에서.

   부스 문을 열자―관의 뚜껑을 열자―사방이 초록빛이었다. 오로라의 빛 같은 것이 안개처럼 사방에 깔려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낙원에 있었던 것이다. 부작용이 심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부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달려가려 했으나… 오랫동안 누워 있어 몸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다리가 휘청거렸다. 어쨌든 나는 달렸다. 한 번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종아리를 죽 죽 쓸며 기어가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나약했다. 그것만이 이곳이 현실이라는 증거였다. 나는 고문당하는 기분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의 문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문을 열자 낙원의 풀밭이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풀밭에는 많은 사람이 서 있다.

그들의 발 사이로

작은 아이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아이가 있는 곳에

총 든 군인이 왜 있는 거죠?]

누군가 비명처럼 외치지만,

그런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이모와 삼촌이 보고 싶어요.

저를 내버려두세요.]

아이가 비명처럼 외치지만,

이 문장은 지금 발화된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을 헤쳐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작은 몸을 품에 안자

저 멀리 분홍빛 보름달이 태양 옆에 보인다.


촌스러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신이시여, 당신이 누구든

부디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제 나는 여생 동안 ‘그날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낙원에서 나왔더라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술래가 내게 내린 벌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신이 나를 벌한 것이다. 아이를 혼자 내버려둔 죄로 신이 나를 벌한 것이다. 나는 오직 죽음으로서만 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못했)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비루하게 살아남는 사람이, 그리하여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이의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나는 매일매일 헛것을 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며칠 후, 완치되지 못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내가 “완치되지 못한 사람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나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사람이란 그렇다.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그 일이 자신의 일이 될 거라고 결코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한 명의 사람이 정말로 완치되었는지 혹은 완치되지 않았는지를 확신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슬픔에 대한 완치는 정확히 언제 가능할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더 중요한 질문을 하고 싶다. 그래도 되는지를. 그런 일에 대하여 우리가 임의로 결정하고, 하나의 문장만을 남겨도 되는지를.

   치료센터에 들어간 후, 나는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져 낙원에 다시 접속하지 못했다. 병실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 채 나는 매일 생각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바쳐야 할까? 

   그 장면을 다시 써야 한다. 신에게 바치는 프롬포트 텔링, 신을 향한 프롬포트 텔링, 세계를 창조하는 신을 창조하는 프롬포트 텔링을 하자.

   미래의 신과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만약 지금의 인류라면.

   산 자와 죽은 자가 실은 한 몸이라면.

   내가 기도하듯이 말할 수 있다면.

   문을 열자 낙원의 풀밭이다.

   동이 튼다.


[신이시여,

아래의 글에 기반하여 세계를 창조하세요.]


풀밭에 한 명의 아이가 누워 있다.

아이는 작은 개나 고양이, 자유로운 새,

씩씩하고 활달한 토끼처럼 웃는다.

이제 아이는 잠들 준비를 마칠 것이다.


잘 자라. 우리 아기.

자장자장 우리 아기.

내가 아이의 배를 도닥여 주면

아이는 잠들지 않고 콧노래를 부른다.


마치 화음이라도 넣는 듯이.

흥흥흥. 흥흥. 흥흥흥흥. 하고.

공룡 모양, 별과 행성 모양,

사랑과 초콜릿 모양의 스티커들.


내가 먼저 잠에 들면

아이는 콧노래를 불러 준다.

꿈결에 들었다.

오늘 먼저 잠에 드는 건 아이일 것이다.


나의 신, 나의 천사, 나의 친구, 나의 술래.

혹은 나의 무엇도 아닌

자유로운 존재에게.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오늘 밤 자장가는 얼마든지 불러 주마.


잘 자라. 우리 아기.

자장자장 우리 아기.

내가 아이의 배를 도닥여 주면

아이는 끔벅끔벅 잠이 든다.


콧노래는 꿈에서 불러 줘.

흥흥흥.

흥흥.

흥흥흥흥. 하고.


아이는 하룻밤 단잠을 잔 뒤 반드시 깨어나며

이는 아이가 아이일 때까지 무한 반복이다.

아이의 곁에 군인과 총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이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은 그 어떤 경우에도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아이는 세상의 모든 아이를 포괄한다.

아이는 특정 요건을 빌미로 배제되지 아니하며

그 어떤 요건도 충족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세계의 1조 1항이다.


   지상의 산 자로서 나는 쓴다.

   아주 비루하게 살아남으면서, 선한 사람이 되는 일에는 기어코 실패한 채, 어느새 슬픔도 불행도 절망도 그저 그렇게 바래진, 단지 초라한

   산 자로서 나는 쓴다.

   나는 단지 나약한 육신을 가진 처량한 미물에 불과하나

   이야기는 나의 육신을 초월하여 자유로이 떠돌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죽은 나가 이 이야기를

   이어 나갈 것이다.



   이곳에 내 문장들을 바치오니,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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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다곰젤리
    최고에요

    낙원 발원 전 태생인 나는 낙원을 통해 낙원 안으로의 내밀한 탈주를, 낙원 발원 후 태생인 201호 아이는 낙원을 통해 낙원 밖으로의 외밀한 탈주를 꿈꾼다. 낙원 발생 전의 세계는 즉물적인, 신과 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꿈도 희망도 불가능한 원초적인 세계 그 자체였고 극단적인, 죽음의 상황까지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잔혹한 곳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낙원이라는 게임판이 존재하기 전까지는. 나는 술래를 통한 자아 투사로 사후까지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방식은 현실과 가상의 혼돈이라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부작용이 주어지지만, 현실의 가능성과 가상의 가능성을 초월한 더 큰 가능성이라는 여집합을 전망하면서 (의인화되는 신은 절대자이므로 인간의 인식으로는 파악 불가하다. 그러나 그 신은 우리에게 인식되는 방식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절대자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즉물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라는 모순은 부작용의 극치이지만 양립 가능하므로 나는 신에게 살해당했으나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즉 나 그리고 신, 이들을 모방한 술래는 즉물적 대상이 이면서도 초월적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낙원 안으로의 탈주를 가능케 한다.-이때의 (안)낙원 또한 즉물적이면서 절대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나는 즉물화된 낙원에서 벗어나고자 신이 도래한 낙원을 택한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그러한 현실에 절망하기보다 다시금 낙원 안으로의 탈주를 꿈꾸기 위해 아이의 콧노래를 소환한다. 나 자신이 한낱 미물일지라도 이야기는 육신을 초월해서 자유로이 떠돌 것이기에.

    • 2026-04-05 22:59:35
    판다곰젤리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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