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손님입니까
- 작성일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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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입니까
이주혜
호텔 출입구에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향은 호텔 안과 밖의 경계인 회전문 안에서 온종일 흰 연기를 피워 올렸다. 향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하고 맨 마지막으로 손님을 배웅했다. 문이 돌고 돌면 향도 돌고 돌았다. 시작과 끝이, 손님과 주인이 향과 함께 돌고 도는 어지러운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9층 방에 올라가 암막 커튼을 열어젖히자 저 아래 묘지가 보였다. 회색 묘비가 빽빽이 들어찬 작은 묘지였다. 호텔이 자리한 골목에는 묘지를 품은 절과 숙박업소들과 카페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호텔 바로 옆에도 절이 있었는데 호텔 방에서 묘지가 내려다보일 줄은 몰랐다. 산 자들의 세계와 망자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포개진 도시였다. 어쩌면 호텔 입구에 피워 놓은 향은 투숙객들만을 위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호텔에 예약해 둔 저녁 식사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외출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꼭대기 층의 온천탕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옷장에 비치된 유카타로 갈아입고 수건을 챙기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에 외시경이 따로 없어 큰 소리로 누구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뜻밖에 한국어가 들려왔다.
손님입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더니 큼직한 나팔꽃 무늬 유카타를 입은 백발의 노부인이 서 있었다. 부인은 묘하게 낯이 익으면서 기이하게 낯선 인상이었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 사랑하는 맏아들을 사고로 잃고 둘째 아들과 조용히 불화 중인 엄마 역의 배우와도 닮았고 어떤 드라마에서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을 지극히 사랑해 전남편 곁에 두고 온 첫째 딸을 외면하는 엄마 역 배우와도 비슷했다. 사실 두 배우는 주로 맡아 온 캐릭터도 풍기는 인상도 달랐는데, 왜 문 앞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노부인을 보고 두 배우를 동시에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부인이 한국어로 말했다.
그만 갈까요?
투숙객을 온천탕까지 안내하는 직원인가 보다 생각하며 부인을 따라갔다. 그런데 호텔은 내가 지금 온천탕에 가려고 준비 중인 걸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모르는 사이 안내 서비스를 신청했던가? 체크인 때 데스크 직원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는 했다. 주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그가 사용하는 영어와 내 영어는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부인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는데 종종걸음 같으면서도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독특했다. 보폭은 아주 좁은데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부인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부인은 내가 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천천히 12층 버튼을 눌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서든 서두르는 법이 없군. 버스든 엘리베이터든 나만 못 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없나 봐.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인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가려고 하면 가게 됩니다.
온천탕은 아담했다. 탈의실에 로커가 따로 없어 비치된 대바구니에 옷을 벗어 두어야 했다. 부인은 탈의실까지 따라와 내가 옷을 벗어 대바구니에 담고 수건만 챙겨 들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거참, 민망한 서비스였다.
저녁 식사 시간 직전이라 그런지 목욕탕에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평소 버릇대로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머리부터 감고 몸에 비누칠을 했다. 등만 남았을 때 김 서린 유리문이 열리며 부인이 들어왔다. 부인은 유카타 차림 그대로였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부인이 내 손에서 수건을 가져가 내 등을 닦기 시작했다.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는데 등에 느껴지는 시원함이 너무 커서 처음의 민망함이 점점 사그라졌다. 부인은 귀 뒤쪽부터 어깨와 날갯죽지를 거쳐 꼬리뼈 바로 위까지 꼼꼼하게 비누칠했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샤워기를 들고 왼손으로 내 등을 문지르며 비눗물을 헹구기 시작했다. 등 곳곳에 닿는 부인의 손바닥이 서늘했다. 그 시원한 느낌을 오래 감각하고 싶은 마음과 젊은이가 노인에게 신세 지고 있다는 죄책감이 싸웠다. 집요할 만큼 열심히 등을 닦던 부인이 다 됐다는 신호로 내 등을 가볍게 한 번 두드리더니 샤워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말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지요.
부인이 탈의실로 돌아가는 걸 보고 탕에 들어갔다. 물은 예상대로 뜨거웠고 예상 밖으로 미끌미끌했다. 코끝에 유황 냄새가 어른거렸다.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곁들인 그림으로 추측하자면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것과 이 온천물로 씻으면 예뻐진다는 말로 보였다. 다시 보니 글자 중에 아름다울 미 자와 사람 인 자가 도드라졌다. 온천욕이 피부와 건강에 좋다는 말은 그럭저럭 수긍할 만했지만 한 번 씻었다고 미인이 된다는 말은 좀 과대포장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잠시 후 노천탕으로 나갔다. 작은 베란다 같은 그곳에는 가장자리에 돌을 쌓은 초승달 모양 탕과 도자기로 만든 일인용 탕이 있었다. 한여름이었지만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다가 실외로 나왔더니 한기가 끼쳐 왔다. 뜻밖에도 초승달 모양 탕에 사람이 있었다. 몸집이 왜소하고 백발이라는 걸 빼면 누군지 알 수 없게 벽면을 향해 돌아앉아 있었다. 백발 때문에 노인인가 했지만 앉은 자세가 꼿꼿하고 물 밖에 드러난 어깨와 등의 피부가 매끄러운 걸 보면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 사람은 눈을 감고 명상하거나 물속에서 요가 중일 것만 같았다. 나는 방해가 되기 싫어 일인용 탕으로 들어갔다. 도자기 탕은 그 모양이 찻잔이나 밥공기 같았는데 그 안에 오도카니 앉아 있으려니 누군가의 녹차나 밥이 되어 먹히길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탈의실로 돌아갔을 때 노부인은 화장대 앞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선풍기 바람에 부인의 옷 앞섶이 펄럭펄럭 나부끼는데 곱게 빗어 올린 백발은 한 가닥도 흔들리지 않았다. 머리카락마저 꼿꼿한 사람이었다. 바구니에 벗어 둔 옷을 꿰어 입고 화장대 위에 있는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들자 부인이 눈을 떴다. 그러곤 말릴 틈도 없이 내 손에서 드라이어를 가져가 내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무슨 서비스를 신청한 걸까? 이번에는 편하다, 시원하다는 느낌보다 젊은이가 제 머리 하나 못 말려서 노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부끄러움이 훨씬 더 강렬했는데, 요란한 드라이어 소리 사이로 부인의 말이 띄엄띄엄 들려왔다.
혼자. 있는. 도. 둘. 면. 지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둘이 하면 어쨌다는 말일까? 둘이 하면 편하지요? 둘이 하면 빠르지요? 둘이 하면 이상하지요? 둘이 해서 미안하지요?
드라이어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부인이 화장대에 비치된 로션을 손바닥에 대고 짜더니 내 얼굴에 발라 주기 시작했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부인의 서늘한 손바닥을 만나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로션에서 산뜻한 여름 과일 향이 풍겼다. 부인이 코언저리와 눈 밑을 한 번 더 꼼꼼하게 매만지더니 다 됐다는 듯 내 양쪽 뺨을 톡톡 두드렸다.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수십 년 전 엄마랑 언니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갔을 때의 풍경이 맺혔다. 어린 내 몸에 너무 뜨거웠던 열탕의 온도와 숨이 턱턱 막혔던 공기, 그리고 온갖 세제 향기 아래 묵직하게 깔린 물비린내까지. 늘 피로해 보였던 엄마의 처진 어깨와 그런 엄마의 등을 꼼꼼하게 닦아 주느라 정작 자신은 맨 마지막에 씻었던 언니의 새하얀 살결도 생각났다. 뜻밖의 기억에 뒷덜미를 채일까 두려워 얼른 눈을 떴다. 부인의 얼굴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거기 혼자서 탈의실에 나와 제 손으로 로션을 발라 보다가 온 얼굴이 허옇게 번들거렸던 여섯 살 여자 아이가 눈부처로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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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은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메뉴판에 구운 생선과 밥과 된장국, 약간의 회가 나오는 오차즈케, 그리고 토스트와 달걀, 햄, 샐러드로 이루어진 양식 메뉴 사진이 나란히 보였다. 3박 4일 숙박이었으므로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 되겠다 싶었지만, 어떤 것부터 먹을지 결정하기까지 애를 먹었다. 메뉴판을 심하다 싶을 만큼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짜증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식당 직원은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뚫을 기세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오차즈케 사진을 가리켰다가 직원이 알겠다고 응대하자마자 다시 아니, 아니, 고개를 저으며 구운 생선과 밥과 된장국 사진을 가리키고 디스 원 플리즈라고 말했다. 직원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알겠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주방 쪽으로 돌아갔다.
사소한 일로 타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하지만 여행지 호텔 조식 메뉴를 선택하는 게 정말로 사소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두서없이 떠오르자 시끄러운 속을 들키고 싶지 않아 괜히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여유 있는 척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당 통유리창 너머가 온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활엽수 아래 중간 키의 관목들이 있고 그 아래 작은 풀과 꽃이 옹기종기 자라고 있었다.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한여름 야외에서 진한 녹색으로 자라는 식물들에 비해 빛깔이 좀 더 연하고 보드라워 보였다. 보살핌 받는 존재의 보드라움을 생각하자 명치가 찌르르 울리며 숨쉬기가 살짝 버거워졌지만, 식물을 정성껏 돌보는 사람은 음식도 깔끔하고 맛있게 잘 만든다는 평소 선입견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낯선 동네에서 식당을 찾아갈 때도 가게 앞 좁은 턱에나마 잘 가꾼 화분을 촘촘히 늘어놓은 곳을 발견하면 무조건 들어갔다. 그러므로 보드라우면서도 생생한 녹색을 뿜어내는 베란다를 보면 오늘의 조식은 백 퍼센트 성공일 것이다. 그때 주문을 받았던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다가왔다. 그가 사과로 들릴 수도 해명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을 건넸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 앱을 켰다. 나는 번역기 앱의 마이크 그림을 누르며 여기에 대고 다시 말해 달라고 몸짓했다. 직원은 잠시 흠칫하는 기색이더니 곧 내 핸드폰을 향해 상체를 숙이고 무슨 말을 했다. 인공지능이 남자 대신 말했다.
죄송합니다. 물고기가 없다. 다시 주문을 부탁하지만 나는 수치스럽게 죽는다.
나는 이렇게 사소한 일로 친절한 직원이 죽음을 선택할까 두려워 얼른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오차즈케 쪽을 고르려다가 생각해 보니 이 메뉴에도 생선회가 있으므로 이걸 주문하면 직원은 또 한 차례 물고기 없음을 수치스러워할 것이다. 결국 메뉴판의 세 번째 사진인 양식 메뉴를 골랐다. 직원이 생명의 은인에게나 할 법한 지나치게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직원이 돌아가고 식당 안에 나 혼자 남자(아무래도 이 호텔 조식은 내 예측과 달리 영 인기가 없는 모양이었다) 급격히 쓸쓸해졌다. 나는 좀 더 매끄러운 통번역을 위해 번역기 앱을 바꿔야 하나, 생각했다가 창밖의 식물을 쳐다보며 여름이구나, 했다가 한여름이면 이곳은 비수기인가, 생각했다. 그렇지. 한여름에 누가 이렇게 덥고 습한 곳에 오겠어. 온천탕에도 식당에도 손님이 나뿐인 게 당연하고 손님이 나뿐이니 물고기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푹푹 찌는 한여름 섬나라에 와서 아무도 찾지 않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물고기를 꼭 집어 주문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나는 한심한 손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름 손님.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단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이 한여름에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하지만 당신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손님이 되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내가 대신 여름 손님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엄마의 말은 부탁이 아니었다. 엄마의 지붕 밑에서 자란 내게 엄마의 말은 전부 외면할 수 없는 보드라운 명령이자 색이 연한 협박이었다. 영란 언니가 자신의 딸 결혼식에 엄마를 초대했다. 이 한마디만 듣고도 나는 너무 놀라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언니는 30년도 더 전에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엄마를 버리고 일본으로 떠났고 그 후 소식 한 줄 보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었던 언니가 불쑥 자신의 딸 결혼식에 엄마를 초대했다는 것이다. 언니가 결혼을 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언제 낳아 키웠는지 당연히 모를 딸이 벌써 결혼한다고? 언니는 30년이라는 단절의 세월을 가볍게 무시하고 천연덕스럽게 엄마를 초대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언니가 떠난 후 세상을 다 잃은 듯(단순한 관용 표현이 아니다) 절망했던 엄마까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감쪽같은 얼굴로 한여름에 열리는 남의 잔치에 내가 대신 가줘야겠다고 말한 것이다. 엄마는 30년 전 언니의 돌연했던 일방적 절연이나 그사이 연락 한 번 없었던 무심함은 다 잊었고 오직 더운 계절에 손님이 되는 처지만이 호랑이보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라는 듯 굴었다. 언니도 엄마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내가 거길 왜 가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이틀 후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 한껏 기가 죽은 목소리로 여행 비용도 축의금도 넉넉히 챙겨 줄 테니 제발 엄마 대신 결혼식에 다녀와 달라고 진심 어린(그렇게 들렸다) 부탁을 해오자 내 마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뭘까?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이 되는 것말고 진짜 무서운 게 뭐지? 칠순이 넘은 엄마는 아무리 옆 나라라고 해도 정말로 비행기까지 타고 외국에 갈 체력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마는 30년 전 자신에게 큰 상처를 입힌 언니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대신 나를 보내 언니에게 자신의 마음속 앙금을 은근히 내비칠 속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덟 살에 헤어져 현재의 언니를 알아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고 나눌 대화도 풀어야 할 묵은 감정도 없는 내게 30년 만의 해후를 떠넘기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제 손으로 야멸치게 연을 끊어 놓고 천연덕스럽게 가족의 결혼식 초대장을 보낸 언니나 언니와의 복잡한 감정을 내게 떠넘기는 엄마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비겁하다. 언니도 비겁하다. 두 사람은 내게 늘 비겁했다.
우리 공주가 참아. 언니는 손님이잖아!
아빠는 숨이 넘어가게 우는 나를 안고 이렇게 속삭였다. 울음 끝에 딸꾹질이 찾아와 목이 조여들게 아팠고 머리도 지끈거렸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니에게 화가 났고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는 엄마에게 또 화가 나서 곱절로 서러웠다. 엄마는 늘 나보다 언니 편을 들었지만, 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그랬는데 그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언니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마루에 드러누워 발버둥까지 치며 꼴사납게 악을 쓰며 우는데 엄마도 언니도 모른 척했다. 얼마 후 퇴근한 아빠가 사태를 파악하곤 나를 덥석 안아 안방으로 데려갔다. 아빠는 흐느끼는 나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목이 아팠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엄마가 아닌 언니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언니는 마귀할멈이라고. 언니는 계모라고. 언니는 돼지 새끼라고. 여섯 살에 배운 극악무도한 말들을 전부 언니에게 쏟아 부었다. 그때 아빠가 속삭였다. 언니는 손님이라고. 손님이니까 공주인 내가 참아 주어야 한다고. 겨우 여섯 살이었지만 그동안 삐죽이 고개를 쳐들었던 크고 작은 의문들이 일제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미묘하게 짝이 맞지 않았던 조각들이 순식간에 정렬하며 꼴을 이루었다. 언니는 손님이었다! 그 말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었다. 언니는 남이었다! 엄마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첫정, 첫사랑, 첫딸이었던 언니가! 언제나 내 편을 들어 주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확신을 주었지만 엄마의 애정 때문에 어린 내 마음에 감당하기 버거운 질투심을 피워 올렸던 언니가! 나는 너무 놀라 딸꾹질도 멈추었다. 비밀이 풀렸다. 부주의한 아빠의 입을 통해 새어 나온 진실이 나를 덥석 끌어안고 아득한 곳으로 흘러갔다.
하 씨는 하 씨끼리 양 씨는 양 씨끼리!
엄마는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할 때도, 기차나 버스 좌석에 나눠 앉아야 할 때도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네 식구는 프라이드치킨은 하 씨끼리 먹고 양념치킨은 양 씨끼리 먹었다.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갈 때도 하 씨끼리 앉고 양 씨끼리 앉았다. 아빠와 함께 하 씨였던 나는 다정하게 이마를 마주하고 삶은 달걀을 나눠 먹는 통로 건너편의 두 양 씨를 흘낏거렸다. ‘하 씨는 하 씨끼리 양 씨는 양 씨끼리’의 율법에 익숙했던 나는 다른 집도 엄마 성과 아빠 성을 골라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다. 첫째 딸인 영란 언니는 엄마의 성을 따라 양영란이 되었고 둘째 딸인 나는 아빠의 성을 따라 하민지가 되었다고. 성이 같으면 유난히 친한 것도 당연해 엄마와 언니가 짬뽕 그릇을 가운데 두고 사이좋게 매운 면발을 후루룩 빨아올리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고 그런 날에는 아빠가 숟가락에 올려 먹여 주는 짜장면이 조금도 맛이 없었다. 내 질투심이나 소외감이 복잡했던 건 나를 향한 언니의 애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른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언니였다. 나보다 열두 살 많은 띠동갑 언니는 내게 최초의 숭배 대상이었다. 그러니 다정하게 이마를 포갠 엄마와 언니를 보았을 때 배 속 깊은 곳에서 부글거렸던 나의 불쾌감은 엄마 때문인지 언니 때문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언니와 경쟁하고 있는지 아니면 언니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경쟁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꼭 집어 말할 수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언니는 감색 세일러복을 입고 마당에 내놓은 고리버들 의자에 앉아 문고본 책을 읽는 모습이다. 마루에 앉은 내가 장난감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마당에 휙 내던지면 언니는 책을 내려놓고 얼른 일어나 인형을 주워 주었다. 그 반사적인 행동이 어느 장난보다 재미가 있어 나는 계속 인형을 마당에 던지며 언니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 기억에 엄마나 아빠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형을 주워 건넬 때마다 내 쪽을 가볍게 흘기는 언니의 반달 모양 눈이, 언니의 가슴 위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세일러 칼라가, 엄마가 늘 ‘참머리’라고 칭찬했던 언니의 단발머리가 내 쪽으로 확 쏠리던 순간이 내 안 어딘가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영란 언니가 엄마가 낳은 딸이 아니라 엄마가 ‘달고 시집온’ 조카라는 사실은 조금 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귀가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하는 어른들이 함부로 뱉은 말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모아 어렵사리 완성한 정보였다. 영란 언니는 엄마의 오빠였다는 사람의 딸이었다. 내게 외삼촌일 그 사람은 집안의 기둥으로 일본에 유학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고 학위를 따자마자 그 여자와 함께 귀국해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영란 언니가 태어나고 몇 달 안 돼 외삼촌은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감옥 안에서 알 수 없는 연유로 죽었다. 누구는 고문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누구는 억울한 마음이 지극하면 사람을 속부터 태워 죽인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올렸다. 외삼촌이 죽고 난 후 소식을 듣고 찾아온 외숙모의 가족은 타지에서 졸지에 남편을 잃고 얼빠진 채 지내는 외숙모만 일본으로 데려갔다. 부모를 잃은 영란 언니는 당시 막 여고를 졸업한 스무 살 엄마와 단둘이 남겨졌다. 집안 재산은 외삼촌의 유학 뒷바라지 때부터 야금야금 사라지기 시작해 영란 언니와 엄마만 남았을 때는 거의 다 거덜이 난 상태였다. 엄마는 집을 포함해 남은 자투리 전답을 정리하고 가까운 도시로 나왔다. 그곳에서 단칸방 딸린 작은 가게를 얻어 아기였던 영란 언니를 옆에 눕혀 놓고 옷을 팔았다. 엄마의 가게는 요즘 말로 편집숍이라고 할 만하게 여성복과 남성복을 같이 취급하면서 엄마가 직접 수놓은 손수건이나 뜨개질로 만든 모자와 가방 등을 곁들여 팔아 단기간에 충성도 높은 단골들을 확보했다. 아빠는 그중 가장 충실한 단골이었다. 엄마의 가게는 도청 뒤쪽의 오래된 상점가에 있었는데, 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무원이 된 아빠는 엄마의 가게에서 계절마다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새로 샀고 환절기에는 쓰지도 않을 손수건을 샀다. 엄마가 수놓은 꽃무늬 손수건이 수십 장 쌓여 더는 서랍에 넣어 둘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빠는 엄마에게 청혼했다. 그때 영란 언니는 벌써 열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빠보다 세 살 많은 엄마는 다시는 셔츠도 손수건도 팔지 않을 테니 앞으로 가게에 오지 말라는 말로 아빠의 청혼을 거절했다. 하지만 아빠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식구들의 애간장을 태웠고 결국 아빠를 목숨보다 사랑했던 할머니가 직접 엄마를 찾아가 제발 당신의 아들을 거두어 달라고 사정하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열 살 영란 언니를 앞세우고 이 아이를 친손녀처럼 대할 수 있겠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이상한 거래이자 협상이었지만 어쨌든 아빠와 엄마는 결혼했다. 당시 결혼식 사진에는 엄마가 직접 만든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인조 함박꽃을 꽂은 단발머리 언니가 찍혀 있고 그 바로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할머니도 보인다. 아빠는 득의양양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엄마의 표정은 어떤 감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신부 측 하객들은 아마도 상점가 사람들인 것 같고 신랑 측 하객들은 거의 친척이다. 아빠의 누나들인 고모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이상해지는 건 평소 엄마를 좋아하지 않아 나의 미움을 샀던 고모들과 지금의 내 얼굴이 너무나 비슷한데 내가 깊이 사랑하고 욕망했던 언니와 엄마는 나를 따돌리고 두 사람만 똑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주와도 같은 엄마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 씨는 하 씨끼리, 양 씨는 양 씨끼리!
어른들은 간혹 조심성 없이 굴었지만 어쨌든 결혼 전 엄마와의 약속을 적절히 지켰고 덕분에 나는 영란 언니와 내가 성이 다름에도 둘이 친자매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고모들은 영란 언니를 살갑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게 차별하지도 않았다. 언니와 내가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어른들이 나는 인형처럼 공주처럼 예뻐하면서 언니는 데면데면하게 대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정하고 싹싹한 언니의 성격이 늦게 만난 친척들의 마음을 끌어당겼을 수도 있다.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을 자연스럽게 제 쪽으로 끌어들이고 편안하게 보살피는 사람. 언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늘 편하고 안전했다. 언니는 나의 지붕이었다. 그랬던 언니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일본으로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엄마가 느꼈을 상처와 배신감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그사이 어떻게 일본행을 준비했는지, 일본의 어디로 간다는 말인지 알 수도 없었다. 아빠와 친척들은 이제 와서 생모를 찾아간 게 아니겠냐고,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수군댔지만, 엄마는 가족들 앞에서 다시는 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무너지는 마음까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는지 언니가 떠나고 한동안 엄마는 빈방에서 혼자 흐느껴 우는 모습을 자주 들켰다. 돌이켜보면 언니가 떠난 후 엄마는 딸 하나를 잃었고 나는 두 엄마를 잃었다. 여덟 살부터 나는 심정적으로 엄마 없는 딸이 되어 혼자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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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여관 주인이 되었다고 했다. 언니가 또래의 일본인 여성과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여관은 오래된 전통 가옥을 개조한 것으로 예스러움과 현대성이 독특하게 섞인 곳이라고 했다. 전철역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게 흠이었지만 깔끔한 실내장식과 여관에서 내는 현대식 조식과 전통식 석식이 훌륭해 그 정도의 불편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도 했다. 특히 언니의 한국어가 유창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전부 언니가 보내온 결혼식 초대장에 있는 여관 이름을 검색해 알아낸 정보들이었다. 언니의 여관은 일본어보다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 검색 결과가 훨씬 더 많이 나올 만큼 한국인들에게 이미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SNS에 올린 사진이 많았다. 관광객들이 올린 사진에 언니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손님의 식사 시중을 드는 손이나 손님 곁을 바쁘게 지나가는 발로만 존재했다. 사실 그 손이나 발이 언니의 것이라고 확신할 증거는 없었다. 한국어가 유창한 중년의 여관 주인이 반드시 언니라는 법도 없었다. 관광객들은 언니의 한국어가 유창하다고 했지 언니가 한국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직접 만나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겠지만 30년도 더 전인 내 나이 여덟 살에 헤어진 형편에 중년이 된 언니를 정확히 알아볼 자신은 없었다.
엄마는 정말로 넉넉한 축의금과 여행비용을 보내 주었다. 내가 화를 냈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결혼식에는 얼굴만 비추고 간 김에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데도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엄마는 숙제하기 싫다고 떼쓰는 막내딸을 살살 구슬리듯 나를 대하고 있었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수법이었는데,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정말로 떼를 쓰는 나를 엄마나 언니가 이렇게 달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도 언니도 나를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어딘가 부족한 어린애로만 취급했다는 생각이 들자 일본행이 더 싫어졌지만, 나는 앙갚음하는 심정으로 비싼 항공권을 끊고 비싼 호텔을 예약했다. 일본에서도 몹시 귀해 일찍부터 줄을 서야 겨우 살 수 있다는 고급 화과자나 차를 사다 엄마 품에 안기겠다는 다짐도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사다 안겨 늦둥이 딸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리라고. 문화센터나 노인대학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엄마에게 또 다른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영영 모르게 하리라고. 이번 나의 일본행이 언니와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엄마와 나만의 일이 되게 하겠다고. 나는 언니에게 시위하듯 내 몫의 축의금 봉투도 따로 만들어 갔다. 언니가 사라졌어도 엄마에겐 이렇게 든든한 딸이 남았다고, 그 애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버젓한 딸로 자랐다고 언니에게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결혼식 당일은 조식을 포기하고 늦게까지 잤다. 물고기가 없는 양식 메뉴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고 결혼식 피로연에서 언니가 내놓을 음식이 궁금해 미리 배를 비워 놓고 싶기도 했다. 또 최대한 갸름하게 붓지 않은 얼굴로 언니를 만나고 싶었다. 엄마를 쏙 빼닮았던 언니는 아름다운 중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빠의 판박이인 나는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예전의 쌀쌀맞은 고모들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쓴 모습으로 언니와 대면해야 했다. 늦게 일어나 냉동실에 넣어 둔 생수병을 꺼내 수건으로 둘둘 말아 눈두덩 위에 올렸다. 그 상태로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천장 쪽으로 바짝 치켜들고 덜덜 털었다. 그렇게 하면 혈액순환이 빨라지면서 부기가 잘 빠진다고 했다. 언니의 초대장에 따르면 결혼식장은 내가 묵는 호텔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그 말은 부기를 빼고 화장하고 옷을 갖춰 입을 시간이 한 시간 남았다는 뜻이었다. 팔다리를 흔드는 속도가 저절로 빨라졌다. 누가 보면 접신 직전의 영매라고 할 것이다. 숨이 가빴다. 종아리가 뻐근했다. 조금만 더 참아! 조금만 더! 절박하게 팔다리를 흔드는데 호텔 방 초인종이 울렸다.
문간에는 감색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나 중학교 3학년쯤 되었을까? 일본 학원물에서 많이 본 인상의 소녀였다. 있지도 않은 첫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청순한 소녀말고 조용히 걸어가다가도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큰 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는 거침없고 씩씩한 소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소녀가 왜 나를 찾아온 거지? 누구냐고 조심스럽게 영어로 묻자 학생이 한국어로 대답했다.
손님입니다.
첫날 찾아온 노부인도 똑같이 대답했었다. 그렇다면 이 학생 역시 나도 모르게 신청해 버린 어떤 서비스 때문에 온 걸까? 이렇게 어린 학생이?
안내를 맡았습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학생이 덧붙였다. 나는 혹시나 해서 학생의 얼굴에서 영란 언니와 닮은 구석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영란 언니가 내가 묵는 호텔을 알 리가 없었다. 영란 언니와 엄마가 나 몰래 연락을 주고받고 있을지 몰라도 엄마도 내가 어느 호텔에 묵는지, 심지어 언제 일본으로 출발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학생은 내가 기억하는 영란 언니와 전혀 닮지 않았다. 짧은 커트 머리와 주근깨가 촘촘히 박힌 그은 얼굴, 뼈대가 굵은 몸집 등은 영란 언니보다 차라리 나와 더 비슷했다. 나는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언니의 결혼식 초대장을 가져와 학생에게 보여주며 이곳까지 안내를 해줄 거냐고 물었다. 학생은 말없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언니보다 나를 더 닮은 씩씩한 학생을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게다가 학생은 한국어도 유창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학생은 내가 단장을 마칠 때까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 주었다. 나는 학생과 함께 호텔 로비 층으로 내려갔다. 출입문을 열고 호텔 밖으로 나가는데 학생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피어오르는 향 연기를 흐읍 하고 들이켰다가 기침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었다. 학생은 이쪽이다, 저쪽이다, 일일이 말하지 않고 그저 몇 걸음 앞장서 걷는 식으로 안내했다. 나는 학생을 놓칠까 봐 학생의 어깨를 덮은 넓적한 세일러 칼라의 흰색 테두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따라갔다. 학생은 키가 나보다 훌쩍 크지도 않고 다리가 유난히 길지도 않았는데 보폭이 넓었다. 학생은 절과 호텔과 카페가 비슷한 비율로 섞인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들어섰다. 거리에는 자동차도 사람도 많았다. 대로를 따라 한참 걷던 학생이 어느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내가 묵는 호텔 골목과 비슷하게 카페와 절과 호텔이 비슷하게 섞여 있었다. 어느 절 앞을 지나가는데 둥둥둥둥 북소리가 들렸다. 어느 카페 앞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안쪽에서 원두 볶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오늘의 커피를 아직 마시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러는 사이 학생과의 거리가 확 벌어졌다. 나는 뛰다시피 해 학생을 따라잡았다. 어느새 골목이 끝나고 또 다른 대로가 나왔다. 오전 시간이었지만 벌써 날이 뜨겁게 더웠고 이마에서 목덜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상태라면 공들여 화장한 보람도 없겠다 싶어 학생에게 택시를 타고 가면 어떨까요, 물었지만 학생은 내 말을 전혀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앞만 보고 계속 걸었다. 첫날의 노부인도 이 학생도 참 일방적으로 친절하군, 이런 생각을 하며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러다 우연히 학생의 목덜미를 보았는데 땀 한 방울 없이 보송보송해 보였다. 역시 어리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학생은 택시뿐만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도 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계속 골목과 대로변을 번갈아 누비고 다녔다. 이러다가 결혼식에 지각하는 건 아닐까, 혹시 학생은 처음부터 나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을 때 다소 한적한 거리에 들어섰다. 길은 넓어지고 양쪽 건물도 큼직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시내에서 교외로 순간 이동한 것만 같았다. 새로 산 구두가 뻣뻣해 발뒤꿈치가 쓰라렸다. 학생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학생이 가리킨 곳은 언뜻 봐도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사찰이었다. 여기가 결혼식장이라고? 이런 문화재급 사찰에서? 학생이 먼저 사찰 입구를 통과했다. 안쪽 풍경은 목조 기와 건물이나 불당 등이 우리나라 절과 비슷했지만, 건물의 배치와 곳곳에 들어선 독특한 정원이 달랐다. 또 절 구석에 묘비가 빼곡하게 들어선 묘지가 있는 점도 달랐다. 경내에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불당 앞을 지나갈 때마다 흘낏거렸지만 승려들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사람이 없는 시간인가? 아니면 전부 결혼식장에 갔나? 그런데 정말로 여기가 결혼식장이 맞는단 말인가? 의문들이 삐죽 고개를 쳐들었지만, 학생 뒤를 따라가는 것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가방 안에 손을 넣어 엄마가 보낸 축의금과 내가 따로 준비한 축의금 봉투가 제자리에 있는지 더듬어 보았다. 봉투 옆에 축축한 손수건이 만져져 화들짝 놀라 가방에서 손을 뺐다.
본당으로 보이는 커다란 목조건물의 모퉁이를 돌자 뜻밖에 큰 연못이 나왔다. 연못은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첫눈에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아마 수면의 4분의 3 가까이 차지하고 피어 있는 분홍색 연꽃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꽃은 부처님 오신 날에 절마다 내거는 연등처럼 인공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크기와 빛깔과 비율이 완벽했다. 꽃잎이 활짝 벌어지며 효녀 심청이든 엄지공주든 하다못해 영란 언니가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연꽃 밑으로 검붉은 그림자가 쓱 움직였다. 비단잉어일 것이다. 물과 연꽃과 잉어의 그림자는 한 폭의 수채화였다. 그때 그 기억이 찾아왔다. 기억은 물리적인 폭력성을 갖추고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언니!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영란 언니가 있다는 듯이. 언니가 겁에 질린 어린 나를 힘껏 안아 달래 줄 거라고 확신하면서.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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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옆은 연못이었다. 공원 입구 안내판에는 후백제 시절 만들어진 동양 최대의 인공연못이라고 씌어 있었다. 언니는 입구를 통과할 때마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내게 안내판을 읽어 주었다.
연못은 크기보다 연꽃으로 유명했다. 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수면 곳곳에 분홍색 연꽃이 피어났다. 연꽃은 진흙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텐데 나는 연꽃이 자유롭게 수면 위를 떠다닌다고 생각했다. 물속에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비단잉어들처럼 사람들 눈을 피해 가고 싶은 자리를 찾아 떠다닌다고. 그러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만 몰래 꽃잎을 활짝 열고 속을 보여줄 거라고. 언니와 함께 수영장에 다녀온 날 밤에는 연꽃이 열리며 그 안에서 작은 사람이 나오는 꿈을 꿨다. 그 작은 이는 인형극에서 본 효녀 심청일 때도 있었고 그림책에서 본 엄지공주일 때도 있었으며 엄마가 만들어 준 하얀 드레스 차림의 영란 언니일 때도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언니는 나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고무 튜브에 공기를 넣어 주고 자기 무릎밖에 안 오는 유아용 풀장의 지루함을 견뎌 주었다.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열어 나를 먹였고 졸려 하면 파라솔 아래서 나를 안고 재워 주었다. 기억 속의 그날은 우리에게 동행이 있었다. 내 시야로는 목 아래쪽만 주로 보이게 키가 훌쩍 큰 언니 또래의 여학생이었다. 머리가 짧았고 동작이 큼직큼직했다. 언젠가 엄마가 ‘영 선머슴애 같다’라고 말한 언니의 동급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언니는 종종 부주의했다. 그 사람과 대화하느라 자꾸 나를 시야에서 놓쳤다. 오줌이 마렵다는 내 호소를 단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언니는 평소와 달리 높은 소리로 웃었다. 언니와 그 사람의 웃음은 시끌벅적한 실외수영장에서도 도드라지게 울렸다. 나는 어쩐지 심술이 났다. 내 것인 언니가 자꾸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싫었다. 튜브 안에 있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얕은 유아용 풀은 시시하다고 했다. 언니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끌어안고 깊은 풀로 옮겨갔다. 수위는 언니와 언니의 동행에겐 가슴에 닿는 높이였지만 내 키보다는 훨씬 높았다. 언니는 나를 품에 안은 채 물속을 걸으며 그 사람과 대화했다. 두 사람의 음성이 높고 낮게 화음을 이루었다. 언니는 점점 더 부주의해졌다. 나는 심술이 나서 언니를 시험에 들게 했다. 나를 안은 언니의 손길이 점점 느슨해지는 참이라 내가 거머리처럼 언니에게 매달린 상태였는데 일부러 팔 힘을 풀어버렸다. 내겐 언니가 곧바로 나를 붙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팔 힘을 풀었고 곧장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곧 언니와 동행의 배와 다리가 보였다. 주변에 온통 공기 방울이 보였다. 너무나 사랑해서 스스로 공기 방울이 되어버린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그러나 실외수영장 물속은 언니가 읽어 준 인어공주 그림책 삽화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뿌옇고 더러웠다. 압도적이고 무서웠다. 언니와 동행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제 품에서 떨어져 나온 것도 몰랐다. 나는 공포로 입을 크게 벌렸다. 내 입에서 큼직한 공기 덩어리가 나왔고 나는 곧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언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수영장 옆 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언니를 밀쳐냈다.
그날 집에 돌아갔을 때 언니도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는 그때부터 집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던 게 아니었을까? 어린 내가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언니와 나만의 비밀로 만들어버렸을 때부터? 아니면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언니를 밀쳐버렸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내 손으로 언니 품에서 떨어져 나와 언니를 무서운 실험에 들게 했을 때부터? 설마 선머슴애 같았던 언니의 동행에게 정신이 팔려 내게 부주의해지기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사찰 어디에선가 종이 울렸다. 종소리는 세 번 연달아 들려왔다. 무엇인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무언가 끝을 향해 나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확실한 것은 종소리가 들려오는 한 이곳에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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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입구에서 택시를 불렀다. 결혼식 초대장을 보여주니 택시 기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택시는 10분도 안 되어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결혼식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기사는 어느 골목 앞에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 화면에 붉은 세모로 표시된 최종 목적지를 가리켰다. 골목이 좁아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이만큼만 걸어가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택시 요금을 지불했다.
결혼식까지 7분이 남았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이 골목 역시 내가 묵는 호텔 골목과 비슷했다. 묘지 딸린 절이 있고 관광객들이 줄을 선 카페가 있고 산 사람들이 묵고 가는 호텔이 있었다. 언니의 결혼식장은 어디일까? 저 앞에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어디론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절과 호텔이 마주 보고 있고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입장하고 있었다. 장례식과 결혼식이 한날한시에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언니의 초대장에 적힌 번지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절과 호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입장 중인 사람들의 복장만으로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사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골목 한가운데 서서 양쪽을 두리번거렸다. 결혼식까지 3분이 남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목덜미에 땀이 줄줄 흐르고 등이 흠뻑 젖은 게 느껴졌다. 그때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건넸다. 말끝을 올리는 것으로 보아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행사 안내인일까?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 앱을 켰다. 남자가 내가 내민 전화기를 향해 뭐라 뭐라 말했다. 잠시 후 인공지능이 젊은 남성의 목소리로 물었다.
유령을 찾아왔는가? 아니면 당신은 손님입니까?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이 되느니 차라리 유령을 만나고 싶었다. 그날 나는 물에 빠져 죽었어야 했다. 나 때문에 나를 죽일 뻔했던 언니는 자신을 죽였다. 언니는 엄마의 착하고 귀한 첫딸을 제 손으로 죽였다. 아니, 언니를 죽인 건 나였을까? 검은 정장 남자가 다시 물었다.
손님입니까?
나는 얼른 뒤돌아 골목을 빠져나왔다. 결혼식 시간이 다 되었다. 등 뒤에서 종소리가 이중으로 들렸다. 높은음과 낮은음의 종소리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다. 나는 골목 입구에 대기 중인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가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어디든, 여기가 아닌 곳으로 갑니다. 기사는 아무 말 없이 택시를 출발시켰다. 손님이었던 것들이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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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링크 지혜 네 동생을 데려와. 엄마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 동생이 될 뻔한 존재는 오래전 엄마의 뱃속에서 사산했고 그 사실에 나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데. 이름도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건 본능일까 재능일까? 엄마는 사랑의 능력을 타고난 걸까 단지 사랑할 존재가 필요했던 걸까? 나는 엄마가 시게루,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잠시 머물뻔했던 아빠의 이복형제의 아들에 대해 종종 말하고 싶어했던 마음에 대해 알고 있다. 정작 엄마는 시게루를 만난 적도, 그가 사는 곳에 가본 적도 없었으면서. 나는 엄마가 만난 적 없는 아이를 그리워하듯 시게루라는 실존 인물 ― 그는 나고야의 한 전자상가 사장이 되었고 얼마 전 결혼을 했다 ― 을 주기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를 끝끝내 묻지 않았다. 세상에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엄마는 모르고 나만 아는 기억에 대해 언젠가 발설하고 싶은 마음을 영원히 억누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빠가 회사에서 승진하며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셋집 ― 아빠 쪽 먼 친척의 소유였던 ― 을 떠나 도시 외곽의 넓고 큰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은 지 오 년쯤 된 아파트는 당시 손에 꼽게 비싼 집이었고 고급 자재와 세련된 인테리어, 빌트인 가구 ― 요즘 말로 ‘옵션’이라 불리는 ― 가 놓인 점을 자랑하며 요란하게 광고를 해댔다. 세 개의 방과 거실, 기역 자 싱크대가 놓인 부엌과 두 개의 베란다가 있는 정남향의 아파트에는 오래된 피아노와 십자 장롱, 족보가 놓인 커다란 장식장이 제 자리인 듯 거실과 방 한구석을 장승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재건축을 앞두고 철거를 기다리는 와중에 호러 유튜브를 찍거나 퇴마를 한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컬트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때 아빠에게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로 이사 갈 이유가 있었다. 오랜 노력 끝에 엄마는 임신 사 개월에 접어들었고 산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마른 몸은 난산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절대 안정. 그게 당시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납작한 배를 문지르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분명 아들일 거야.” 엄마는 커다란 거북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꿈을 꿨다고, 그건 분명 아들을 낳는 꿈이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나는 줄곧 궁금했던 나의 태몽 ― 물을 때마다 답이 바뀌던 ― 에 대해 다시금 물었다. “넌 향긋한 과일 밭에서 온갖 열매를 따 먹는 꿈이었지.” 과일? 고작 열매 먹는 꿈이라고? 나는 엄마의 빈약한 상상력과 취향에 비웃음이 났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곤 했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게 불법이었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파란 옷을 준비하시면 좋겠네요”라든가 &ldquo
- 최고관리자
- 2024-08-01
마샬 민병훈 너는 물에 젖은 곰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너는 동물원에 가자고 갑작스럽게 말했다. 너는 배를 잡고 크게, 오래 웃는다. 곰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 너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곰이 웃겨, 라고 물어 보는 대신 네 바지에 묻은 흙을 닦았다. 너는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곰에게 손을 흔든다. 너는 동물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곰을 본다. 너는 평소 그런 식으로 하나의 대상을, 하나의 풍경을, 하나의 장면을 오래 응시하는 습관이 있다. 나는 그사이 매점과 화장실과 흡연구역과 식물관에 다녀왔다. 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눈을 깜빡이고 있다. 곰은 두 마리였다가, 한 마리가 철문을 통해 어딘가로 향하고, 너는 아쉬운 듯 쩝 소리를 내면서, 다시 물웅덩이에 들어가는 곰을 지켜본다. 너는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입으로 소리를 낸다. 나는 네가 어떤 기분일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전부 알고 있다. 곰이었다니까. 좀체 흥분하지 않던 네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귀에서 잠시 삐, 이명이 들렸다. 휴대폰을 떼고 앞을 보자, 앞으로 넘어질 듯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잠실대교가 보였다. 언젠가 너는 시에서 대여하는 자전거를 타고 대교를 건넜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오도가도 못 하겠다고 전화한 적이 있다. 휴대폰 너머로,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너의 몸에 부딪혔다가 흩어지는 소리. 너는 가까운 곳에서 곰이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배달음식. 너는 그때 상반신만 겨우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을 열고 봉지에 손을 뻗었다. 옆집 문이 열렸다. 너는 곰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곰은 자기가 음식을 주문한 것처럼, 하얀 봉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는 종일 밥을 먹지 않았고, 몸이 아픈 건 아니지만 기운이 없었다. 퇴근길에 내게 아무 음식이나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혹시 곰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시켰는지 떠올렸다가, 그보다는 곰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네게 놀라 가슴이 뛰었다. 어땠어, 묻자 곰이었지, 너는 말했다. 너는 동물원 폐장을 알리는 방송이 울리자 그제야 자리에서 벗어난다. 너는 뛰다시피 걷는다. 새로 산 운동화 끈이 풀린다. 허리를 숙여 끈을 묶는 동안, 너는 네가 본 그것이 저 곰만큼 크진 않았다고 말한다. 가면을 썼던 건 아닌지, 인형 알바 옷을 입었던 건 아닌지, 나는 묻지 않는다. 네가 등을 두드릴 때, 나는 다른 신발끈도 풀었다가 다시 묶는다.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오르고, 너는 어깨에 기대 곯아떨어진다. 나는 버스가 운행 노선을 한 바퀴 더 돌 때까지 너를 깨우지 않는다. 수중에 있는 돈은 삼십오만 원. 너는 휴대폰 액정에 은행 어플을 켜고 내게 보여줬다. 이게 다야. 이게 다지만, 첫 인사에 빈손은 싫으니까. 너는 두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식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마침 겨울이었고, 동면에 든 동물처럼, 하루의 반 이상을 침대에서 잠만 잤다. 네가 하던 일은, 네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 최고관리자
- 2023-05-04
일러두기 조경란 모른다고도 잘 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재서에게 생겼다. 미용은 평소에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는 편은 아니지만 며칠 전에는 검은색 복면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손님이 텔레비전을 틀어 달라고 해서 채널을 돌리다가 여자 주인공이 눈과 입만 빼고 얼굴을 다 가리는 복면을 쓰곤 인질처럼 잡고 있던 아이들을 어떤 단체에서 구출해 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게 멋있어 보이기도 한 데다 주인공이 쓴 검정 니트 복면이 그 순간 못 견디게 갖고 싶었다고. 재서는 그 말을 하는 미용을 처음 보는 눈으로 봤다. 성인 여성 평균 키에서도 한참 모자라고 목소리도 작고 앳되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수줍어하는 마흔아홉 살의 미용. 그녀와 검은색 복면은 아무래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숨 쉬는 데 편하고 시야도 가리지 않는데요. 미용은 에코백에서 검은색 복면을 꺼내더니 무릎에 올려놓고 반듯하게 폈다. 방한용 안면 마스크인가 본데 구멍 세 개가 뚫린 조금 긴 털모자 같았고 재서의 눈에도 영화에서 도둑들이 쓰는 것과 엇비슷해 보였다. 이걸 쓰고 다니실 건 아니겠지요? 재서는 자신이 잘 모르는 지점의 미용에게 물었다. 사람 일은 모르죠. 미용은 소리 없이 웃었다. 소리 없이 움직이고 소리 없이 먹고 마시고 심지어 노래할 때도 미용은 그래 보였다. 그래서 다른 가게 사장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의식하고 있지 않다간 미용의 존재를 까맣게 잊기 십상이었다. 그게 미용의 남다른 점이라면 점인데 얼마 전부터인가 재서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되었다. 재서는 인쇄․복사를 전문으로 하는 ‘대학사’의 오래되고 쿠션이 푹 꺼진 소파에 미용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 가게였고 지금은 재서가 꾸려 가고 있는데 밖에서 보면 ‘♜대학사 COPY’라는, 한때는 눈에 띄었고 쓸모가 있었으나 최근엔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문 간판이 무겁게 걸려 있을 것이다. 한 차례 장맛비가 지나가 후텁지근한 6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였다. 미용의 가게는 토요일이 휴무, 대학사의 휴무는 내일이다. 재서가 오른쪽 팔에 반 깁스를 하지 않았다면 미용이 쉬는 날 여기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미용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제일 먼저 왔다가 정작 고맙다는 말도 못 듣고 돌아가는 사람. 미용이 이 동네에 처음 나타날 때부터 재서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런 사람과는 더 거리를 두고 싶어서 재서는 미용을 더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도와주러 왔다는 말 대신에 미용은 정 사장님이 우리 집 단골이시니까요, 라고 얼버무렸다. 재서의 아버지가 미용의 우엉 전문 반찬가게의 조림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재서는 평소보다 풀이 죽어 있는 상태였다. 나흘 전 밤중에 장롱 한 짝이 방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재서의 뒤로 쓰러졌다. 무슨 소리가 들려 순간적으로 피하긴 했는데 장롱 모서리가 오른팔 팔꿈치를 스치듯 쳤다. 아버지 말대로 만약 장롱이 머리로 무너졌다면. 집에서도 죽을 수 있다는 상상은 한
- 최고관리자
- 2023-05-0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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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돌고 도는 게 향뿐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여름 손님은 속수무책으로 돌아오는 기억이네요. 가만가만 장면들을 떠올리다 서늘해집니다. 인물들의 안녕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