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감기
- 작성일 2024-12-01
- 좋아요 1
- 댓글수 0
- 조회수 2,407
반감기
이기호
1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현명한 내 제자가 불쑥 이런 말을 건네왔다.
“교수님, 혹시 여유자금 좀 있으세요?”
“여유자금?”
“1300만 원쯤······ 더 있으면 더 좋구요.”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연구실 원목 테이블 등고선 무늬를 제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고 있었다.
얘가 진짜 문제가 있네.
나는 제자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속으로 단정지었다.
“돈은 뭐하게?”
“교수님, 자유롭게 해 드리고 싶어서요.”
하아.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 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제야 제자가 내 눈을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때문인가, 유독 흰자위가 깊어 보이는 눈이었다.
성우정.
그게 그 친구의 이름이었다. 검정고시를 본 후 22살이 되던 해 대학에 입학했고, 주민등록상 거주지인 서울 목동을 떠나 학교 앞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던 3학년 친구. 1학년 땐 학과 행사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고, 따로 스터디나 소설 동인 활동에도 참여하는 듯했으나, 2학년 1학기 때부터는 영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강의 시간은 물론 기말고사 기간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학사경고를 받았고, 그건 2학년 2학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둔의 랜선 종결자
과 친구들은 성우정을 그렇게 불렀다. 줄여서 ‘은랜종’. 학교에선 잘 볼 수 없었지만, 랜선에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동기, 가끔 게임 아이템도 쏴 주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전자책이나 영화 파일을 후배들 커뮤니티에 공유해 준 뒤 바람처럼 사라지는 선배, 학과 홈페이지가 모바일 버전과 PC 버전 사이에 버그를 일으켰을 때도 말없이 자취방에서 말끔하게 해결해 준 학과 조교의 구원자.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아무나 랜선 종결자라는 호칭을 얻을 순 없는 법. 성우정이 ‘은랜종’으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학년 2학기 때 있었던 압수수색의 영향이 컸다.
“교수님, 우정 선배 압수수색 당한 거 아세요?”
나는 그 소식을 강의 쉬는 시간, 학생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듣게 되었다.
“압수수색? 뭐 그것도 무슨 은어야?”
“아니요. 진짜 압수수색.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된.”
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좀 놀랐다. 이건 내 경험 밖의 일이었으니까. 갑자기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니, 걔가 무슨 일 때문에······?”
내가 그렇게 묻자, 바로 난리가 났다. 누구는 불법 동영상 유포죄인 거 같다고 했고, 또 누구는 아무래도 대출 알바와 관련된 일인 듯하다고 말했다. 대출 알바? 왜 거 소액 대출 권유하는 이메일이나 게시물 있잖아요? 그런 거 대행하는 알바 뛴 거 같아요. 한데 그런 거 했다고 압수수색까지 하나? 그거는 압수수색 안 해도 증거가 명백하잖아? 그 말에 다들 잠시 침묵. 그러다가 그게 아니라고, 성우정과 같은 원룸(그 원룸은 학교 근처에서 월세가 가장 비싼 원룸이었다. 약간 르네상스 스타일의 필로티 기둥이 있는 신축 건물이었다. 그래서 우리 과에서는 성우정 말고는 아무도 그 원룸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에 살고 있는 경영학과 친구를 둔 제자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압수수색 당할 때 그 건물 사는 사람들이 다 나와서 봤는데······ 그 박스 있잖아요? 압수된 물품 담아서 나오는 박스. 거기에 국정원 마크가 찍혀 있더래요.”
“오우 씨, 그럼 이거······”
그다음부터 또 난리가 났다. 아무래도 북한 쪽과 관련이 있는 거 같다, 그 선배가 전자책이나 영화 파일을 공유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거 다 우리 같은 무산계급을 향한 동지애적 발현이었다, 남한 자본주의 시장을 교란시키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술의 일환이다, 야 그러면 토렌트는 무슨 레닌이 만든 거냐? 거기서 레닌이 왜 나오냐? 지난번에 교수님하고 함께 본 영화가 그거 아니냐? 토렌트의 말. 미친. 그건 토리노의 말이고······ 그거 레닌 아니었어? 그건 니체고!
“한데, 교수님. 제 친구가 그러는데 그 선배 원룸에 PC만 일곱 대가 있었대요.”
“일곱 대나? 아니, 우리처럼 한글만 쓰는 학과에서 뭐 한다고······.”
“저는 가끔 엑셀도 공부하는데요?”
한 제자가 그렇게 대꾸하자, 이번엔 또 다른 쪽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너, 엑셀 같은 거 하면 소설 못 쓴다, 교수님도 워드로 표 같은 거 못 만들어서 자 대고 직접 그리신다고 하더라. 역시! 제자들은 나를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다.
후에 나는 성우정에게 그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직접 듣게 되었다.
“별거 아니었어요.”
“국정원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아니지?”
“맞아요. 국정원.”
나는 멀거니 성우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즐겨 먹는 삼각김밥 이름을 대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정말 국정원에서 나왔다고? 아니, 국정원이 왜?”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냥 생쇼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명예훼손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난 좀 이해가 안 되는데······ 명예훼손 때문에 국정원이 압수수색을 한다는 게······.”
“상대가 국정원장이었으니까요.”
성우정은 그러면서 피식, 웃기까지 했다.
그때는 MB정부의 마지막 임기가 도래한 해였다.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문에 봄부터, 아니 그 이전 해부터, 온라인상에선 온갖 비난과 혐오와 모욕이 난무하고 있었다. 마치 새로운 온라인게임이라도 출시된 듯 사람들은 거기에 열중했고, 즐거워했다. 사랑은 조금만 탐닉해도 무관심으로 변하지만 혐오만은 죽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의외로 자기 비난에 약하거든요.”
성우정은 당시 한 스포츠 커뮤니티에 국정원장을 ‘두리원장’으로 호명하는 글을 반복해서 올렸다. 그해 국정원장이 베트남 출장을 나갔다가 아내가 좋아하는 두리안 3박스를 밀반입했고, 그게 세관에서 적발된 일을 두고 쓴 글이었다. 실제로 국정원 측에서는 ‘공항에서 반입 불가 물품이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바로 폐기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게 뭐가 뭔지······”
나는 계속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국정원장이 무슨 신무기 설계도가 아닌 두리안을 밀반입했다는 것도 그랬고,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건 것도 도통 납득되지 않았다.
“그냥 괴롭히는 거예요. 어차피 불기소될 거 뻔히 알면서······.”
성우정은 나를 다독거리듯 말했다.
그로부터 12년 후, 나는 광주광역시 남부 경찰서 정문 앞에서 성우정에게 그와 엇비슷한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1300만 원으로 어떻게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데?”
나는 소파 등받이에 느슨하게 기대앉으며 물었다.
“비트코인이라는 게 있어요, 교수님.”
“비트······ 뭐? 세제야?”
그때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얘가 무슨 세제 다단계 같은 걸 하나?
“아니요. 이게 암호화폐라는 건데······.”
성우정은 그러면서 블록체인과 p2p, 채굴에 대해서 길게 설명했다. 생성용 노드와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단지 얘가 이렇게 말이 많았나, 계속 그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이걸 지금 사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일단 500개만. 그 500개를 사는 데 드는 돈이 1300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나 보고 사이버머니 같은 걸 사 두라는 거지? 도토리 같은 거?”
성우정은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면서 무슨 말인가 더 하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너 밥은 먹었니?”
“네······ 아니요······.”
“나가서 밥이나 먹자. 나 또 야간 강의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렇게 말했고, 성우정은 그런 나를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주춤거리며 따라 일어섰다. 생각보다 성우정의 키가 작아서, 나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돌솥비빔밥 먹으면서 나는 물었다.
“근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네?”
“왜 나를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는데?”
성우정은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곤 물을 한 잔 마시고 그냥요, 교수님은 작가이시니까요, 라고 말했다.
“나 학교 그만두게 해 주고 싶어서?”
“네.”
성우정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엉망인 선생이냐?”
그 말엔 슬쩍 웃기만 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그와 나는 별다른 대화 없이 식사를 끝냈고, 분식점 옆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마신 후 서둘러 헤어졌다. 당시 나는 주 5일 내내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 이틀은 밤 10시까지 야간 강의를 해야만 했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의 작은 사립대여서 교원 채용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만큼 일은 많았다. 강의를 끝내고 집안일까지 모두 마친 후, 다시 원고를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마치 귓바퀴에 팽팽한 고무줄이 친친 감긴 듯 관자놀이 부위가 아려왔다. 그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또 쓰긴 썼는데, 그게 참······ 다음날 다시 읽어 보면 차마 눈 뜨고 못 볼 수준의, 무슨 말라리아 병원균 같은 문장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장되어 있곤 했다. 그걸 바로 지워 버려야 했는데, 또 미련이 남아서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낑낑거리다가 결국은 애꿎은 딜리트(delete)키에 화풀이하는 상황,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상,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학생들 앞에선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하차 알바를 하면서 강의에 들어오는 친구도 있었고, 주말마다 이삿짐센터에 나가 양문형 냉장고를 등에 짊어진 채 계단을 오른다는 만학도의 얘기도 들었다. 그 앞에서 내가 어떻게 엄살을 떠나? 엄살떨 사람들이 따로 있지. 나는 강의에 들어가서는 마치 시험 전날 드라마 볼 거 다 보고, 잠잘 거 다 잤다고 허세 부리는 중학생처럼 ‘각자의 환경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다. 소설의 미학은 거기에서 나오는 거야’라고, 알맹이 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얘가 뭘 봤네, 얘가 뭘 봤어.
나는 성우정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계속 그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 그에게 마음이 갔다.
“너, 혹시 그거 갖고 있는 거야? 그 비트 뭐라는 거?”
내가 물었고, 성우정은 자신은 이제 겨우 200개쯤 모았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이것 참.
나는 성우정과 카페에서 나오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그거 하지 마.”
성우정은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았다.
“야, 자유로워지는 게 어디 그런 거로 되냐? 도토리가 많아 봤자 다람쥐가 그냥 다람쥐지.”
나는 그 말을 한 후, 그에게 짧게 손을 흔들었다. 야간 강의 시작 10분 전이었다.
그게 벌써 12년 전의 일이었다.
2
세월이 흘러 올해, 2024년 6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2시 무렵, 나는 광주광역시 남부 경찰서 민원실 차양 아래에서 스마트폰 연락처 목록을 반복해서 열어 보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망설였다.
습하고 더운 바람이 계속 그늘 안으로 불어왔고, 그때마다 쇠 비린내 같은 것이 밀려들어 왔다. 주차장 입구 경비 초소에 서 있는 의경은 계속 힐끔힐끔 곁눈질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민원실 안으로 들어가면 그는 아마도 잠시 그 자리를 뜰 작정인 듯싶었다.
용서를 빈다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그러면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 이곳을 떠날 작정이었다. 경찰서라니, 그것도 제자와 선생 사이에······. 하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또 다른 버전의 일들을 떠올리고 궁리하고 있었다. 고소장을 쓰고, 고소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법정에서 진술하는 내 모습. 지속적으로 저를 모욕하고 괴롭혔습니다. 제 모든 일상이 깨져 버렸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니지, 아니지. 맨 마지막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아직 병원까진 가지 않았으니까······. 그즈음 나는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 그렇게 되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뒤섞여 더 언짢아지고 더 불편해지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시간들.
하아.
나는 오래된 버릇처럼 한숨을 길게 내쉬고 다시 애초의 결심으로 되돌아갔다. 그러곤 마치 큰 아량이라도 베풀 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통화 연결음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자는 종종 주고받았지만, 음성을 듣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음의 높낮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침착한 목소리. 성우정이었다. 그 목소리 때문인지 나는 당황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다시 사나운 심정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침착할 수가 있지? 이거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이것도 일종의 모욕이 아닌가?
나는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통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
그 이상한 일은 올해 3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늦은 아침 일어나서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나, 카톡 메시지가 200개 이상 도착해 있었다(그즈음 나는 퇴근하면서 늘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전환하곤 했다). 발신번호표시제한이 뜬 부재중 전화는 40통 이상.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건 또 뭐지?
아버지가 또······.
나는 자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빚 같은 것.
그러니까 그 이전 해부터 나는 갑자기 생겨 버린 빚 때문에 매달 아슬아슬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인해 떠안게 된 빚이었는데, 금액을 합쳐 보니 모두 4억 3천만 원에 달했다. 매달 내야 하는 이자만 260만 원, 원금까지 더하면 480만 원 가까이 되었다. 은행 창구에 찾아가 그 액수가 적힌 메모지를 받아 들고 나는 다시 고객 대기용 소파에 돌아가 앉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어린 시절 살았던 우리 옛집 정원에 있던 대추나무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여름날의 무성한 대추나무가 아닌,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하고 뾰족한 붉은 가지만 남은 대추나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그 대추나무가 무서워 그 앞을 제대로 지나가지도 바라보지도 못했다. 누군가 꼭 거기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상상 때문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대추나무 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내 방 창문을 넘어 들려왔고, 그 소리는 뭐랄까, 마치 어떤 사람이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우는 소리, 그때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닮아 있었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몇 번씩 창문 가까이 귀를 대보던 시절. 나는 창구 직원에게서 받은, 숫자가 적힌 메모지에 조심스럽게 그 대추나무 가지들을 그려 보았다. 4억 3천만 원을 배경으로 길게 휘어진 대추나무 가지를,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닮은 가지를······. 그래도 마음은 계속 가라앉기만 했다. 무서워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10년 전, 살고 있던 고향 아파트를 담보로 2억에 가까운 돈을 대출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일대의 야산을 매입했는데, 그곳에 숲속 캠핑장을 열 작정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사이엔 중개인이 한 명 있었다. 아버지와 종친회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된, 우리와 먼 친척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이 선생이라는 분. 그 이 선생이라는 사람이 일흔셋이 된 아버지를 모시고 영월을 다녀오고, 농협과 신협, 그리고 법무사 사무실까지 바쁘게 들락거리는 사이,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원도 원주에, 나는 광주광역시에 있었으니까, 라는 말은 변명이 되질 못했다. 나는 애당초 그 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 명의로 그 산의 매매계약서를 썼으니까. 너 나중에 퇴직하고 나면 거기에 와서 자유롭게 글 쓰라고. 작가들은 원래 그런 곳이 필요하다며? 아버지는 그러면서 내게 신분증 사본과 인감증명서, 위임장 등을 서둘러 보내라고 말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산이에요, 아버지? 그런 곳엔 자연인이나 사는 거예요, 요즘 작가들은 다 도시에 살아요.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서류 일체를 보내 드렸다. 이젠 다 이렇게 증여를 한다고 하더라. 그래야 상속세나 증여세를 피할 수 있대. 후에 알고 보니 그 말 역시 이 선생이 아버지에게 코치해 준 내용이었다.
그 산이, 2억을 조금 넘게 주고 계약한 산이, 10년이 지난 후 4억 3천만 원의 빚으로 내게 넘어온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카톡 메시지 200개가, 부재중 전화 40통이, 모두 그 빚과 관련된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었다. 또 다른 대출과 누락된 세금 같은 것, 혹은 드러나지 않은 사채.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쁜이, 지금 뭐 입고 있어?
-연락 달라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야 이 겉절이 같은 년아! 오빠라고, 오빠! 짤 하나 얼른 투척하라고!
카톡의 내용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더 심한 말들이 많았다). 나를 젊은 여성으로 여기고 보내온 쓰레기 같은 문장과 욕들. 그러면서도 지금 당장 만나러 가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들.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걸려 온 전화들 역시 같은 치들의 소행 같았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집중적으로 쏟아 낸 연락들.
나는 뚱한 표정으로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욕설도 있었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은어들(하지만 결국 욕설인)도 다수였지만, 그것들을 읽어 가면 읽어 갈수록 되레 마음은 편안해졌다. 이건 명백히 잘못 전달된 모욕이니까, 내 연락처였지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닌 것은 확실했으니까, 어쨌든 또 다른 빚이 아닌 게 분명했으니까······. 이런 혐오의 말은 주변에 널리고 널려 있었다. 나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고, 카톡의 내용도 이내 잊어버렸다. 그저 작은 해프닝과 오해, 장난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참 나, 요즘 애들이란······ 그렇게 공허한 세상을 탓했다.
그게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
“선생님이야. 잘 지냈니?”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목에 자꾸 간질간질한 것들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교수님은요?”
성우정은 계속 무표정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어. 나는 늘 그렇지 뭐.”
우리 둘은 그러곤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 짧은 순간이 나는 좀 버거웠지만, 그냥 버텨 보기로 했다. 어쨌든 더 긴장되는 쪽은 성우정일 테니까. 그 생각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성우정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그 말에도 바로 답하지 않고, 조금 더 참았다. 그러곤 말했다.
“너 혹시 나한테 무슨 할 말 없니?”
이번엔 성우정이 입을 닫았다. 나는 그것 또한 비겁하게 여겨졌다. 보름 전쯤이었나, 나는 성우정에게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낸 적 있었다. 나한테 뭐 말할 거 없니? 그때도 성우정은 아무런 답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끝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지금 경찰서 앞이거든. 마지막으로 너한테 확인할 게 있어서.”
“네. 말씀하세요.”
“아니 아니, 내가 말하는 게 아니고, 네가 나한테 말을 해야지.”
나는 그러면서 잠시 귀에서 스마트폰을 떼고 녹음이 잘 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쯤 되니까 나는 기회니, 용서니 하는 것들이 다 쓸모없다고 여겨졌다. 지금 필요한 건 증거나 실토 같은 것이지.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원했는지도 몰랐다.
“교수님.”
“그래.”
“저한테 말씀하지 마시고, 그냥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
“······”
“이건 그냥 저 괴롭히려는 거잖아요? 어차피 그러실 거면······.”
“따로 할 말 없다는 거지?”
나는 좀 다그치는 듯한 어투로 성우정의 말을 끊었다.
“네.”
“그래. 알았다.”
우리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잠시 경비 초소의 의경을 노려보다가 짧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러곤 민원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진짜 두 번째 버전의 시작이었다. 나는 최대한 흥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관대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썼으나 더는 어쩔 수 없어 경찰서를 찾아온 선생, 그 자세를 유지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
3월 초순부터 시작된 한밤의 카톡 메시지와 발신번호표시제한 전화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한 달 내내 이어졌다. 어떤 날은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20개 미만으로 온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은 100개 이상씩 도착해 있었다. 내용도 ‘자기야’나 ‘헬로우, 베이비’로 시작해서, ‘관둬라, 씨발년아!’ ‘너, 내가 끝까지 연락한다!’로 끝났고, 시간대도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로 일정했다. 한번은 그 시간대에 자지 않고 깨어 걸려오는 전화를 모두 받은 적도 있었다. 상대방은 내가 “여보세요”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에이, 씨발 남자네. 또 낚였네!”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중 몇 명은 내 목소리와는 상관없이 계속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5분 이상 통화를 이어 가기도 했다(그 경우,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고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그래, 이 한심한 놈들아. 마음껏 떠들어 봐라. 겨우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이거 어디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네. 뭐야, 이거. 은행에서 새어 나간 거 아닌가? 아버지가 제3금융권도 알아보셨다고 하더니······.
하지만 4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새벽이 아닌 대낮에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학교 취업 대책회의에 들어가 있을 때도, 대학원생들과 따로 창작 스터디를 진행할 때도, 학과 교수들과 늦은 점심을 같이 하고 있을 때도, 쉴 새 없이, 마치 비바람에 흔들리는 오래된 창문처럼, 스마트폰이 울려댔다.
“교수님, 급하신 전화 아니에요?”
제자들이 그렇게 물을 때마다 나는 내 스마트폰을 직접 건네주기도 했다.
“이거 봐라, 이거. 내가 아주 살 수가 없다.”
제자들은 내 스마트폰 주위로 둥그렇게 몰려들었다.
“교수님을······ 왜 베이비라고 부르는 거죠?”
“이건 완전 해킹당한 거 같은데요?”
“교수님, 혹시······ 이상한 사이트 들어가신 적 있으세요?”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대학원생 제자 한 명이 그래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교수님. 카톡 프로필을 한번 바꿔 보시죠.”
“카톡 프로필?”
그때까지 내 카톡 프로필엔 아무런 사진도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름도 따로 적지 않고 그저 물음표 부호 하나만 달랑 띄어 놓았을 뿐이었다.
“교수님 사진도 넣으시고, 이름도 정확하게 기재하시고······ 그래야 여자라고 오해받지 않아요.”
아하. 그러자 제자들이 또다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등산복 입은 사진으로 넣으시라, 난 지난번에 교수님이 링거 맞으면서 찍은 사진이 좋을 거 같다(그건 내가 창작 스터디에 불참하면서 사정 설명과 함께 보낸 사진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지금 우리가 찍어 드리겠다, 저기 난 화분 옆에서 찍으면 직방일 듯싶다, 등등. 나는 그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나마 가장 무난하게 나온 사진 한 장을 카톡 프로필에 등록했다.
“그나저나 정말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좀 우울한 목소리로 말하자, 갑자기 모두 침묵을 지켰다.
“아무리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야······.”
그러자 한 대학원생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간 대한민국 남자 새끼들이 문제예요. 이 새끼들은 혐오가 디폴트라니까!”
그 친구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해서, 나는 다시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생들의 조언 덕분인지, 정말 그날부터 카톡 메시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매일 낮밤 가리지 않고 100개 이상 오던 메시지가 서너 개 수준으로 확 떨어진 것이다(그 서너 개는 대부분 ‘너 남자 아니지? 맞지?’ ‘너희 아빠 사진이니?’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건 그나마 고무적인 일이었는데······ 문제는 발신번호표시제한이 뜬 전화였다. 그 전화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줄어들긴커녕 체감상으론 오히려 더 늘어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번은 내 차에 동료 교수 C를 태우고 단과대 교수 워크숍이 열리는 전남 신안군에 있는 한 리조트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내 차 내비게이션은 이미 오래전 고장이 나 주로 스마트폰 티맵을 이용하는데, 전화가 그치질 않으니······ 결국 함께 타고 있던 C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며 조심스럽게 이런 말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교수님, 그 문제 때문이죠?”
C가 말한 그 문제란, 나의 빚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개강을 앞둔 지난 2월 말, 나는 C와 학교 앞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만 툭 그 얘기를 꺼내 놓고 말았다. 매달 들어가야 하는 돈은 뻔한데, 거기에 갑자기 480만 원을 더 마련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거예요. 대출에 대출을 더했는데······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C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래도 교수님, 교수님은 소설가이시니까, 이럴수록 더 부지런히 작품을 쓰셔야죠”라고 말했다. 나는 C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건넸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또 견딜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도 있었다.
“C교수님. 불안이라는 게 말이에요, 이게 짙어지면······ 그게 혐오로 가는 건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상태로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그때 쓰는 글들은 다 쓰레기다, 운운. 나는 그 뒤로도 무슨 말인가를 더 했는데 기억에 남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호프집을 나서기 직전, C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 “이 교수님, 하지만 혐오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를 때 찾아오기도 하는 거거든요”라고 했던 말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날 나는 리조트에 도착할 때까지 C교수에게 그 문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슬쩍 웃고 말았을 뿐이었다. 불현듯 이게 단순히 개인정보 유출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그 문제’ 때문에, 누군가 앙심을 품고 내 전화번호를 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처음 아버지에게 산을 사라고 부추긴 이 선생 같은 사람(이 선생은 2년 전, 아버지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소된 상태였다. 알고 보니 산 주인과 법무사, 이 선생이 모두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것, 아버지에게 판 산 말고도 다른 기획부동산 문제로 이런저런 소송에 휘말려 있다는 것)······ 왜 미처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거의 그쪽으로 확신이 굳어져 갔다.
그 후로도 전화는 계속 왔다. 나는 아예 전화번호를 바꿀까 고민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바꿀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 또 내겐 있었다······. 그러니 계속 이 선생과 그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화를 내며 증거가 잡히기만을 기다렸을 뿐.
그러다가 정말 꼬리를 잡는 일이 생겨 버렸다.
오월 어린이날 새벽 1시 무렵에 걸려 온 전화, 전화를 건 그 친구는 마음이 급했는지, 그도 아니면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거는 법을 잘 몰랐는지, 고스란히 제 번호를 노출한 채 나에게 연락을 하고 말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통화 녹음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어? 어? 에이, 씨발······.”
그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저기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지금 그쪽 번호 다 노출됐거든요. 2832 맞죠? 이대로 끊으면 나도 똑같이 계속 전화할 겁니다.”
다행히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계속 작은 목소리로 “아이, 진짜 미치겠네”라고 웅얼거렸을 뿐이었다.
“자자,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요.”
나는 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이 번호를 어떻게 알게 된 거죠?”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알게 된 거라구요.”
변성기를 갓 지난 듯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목소리.
“아니, 그러니까 누구한테 이 번호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2832가 말했다.
“저도 억울하다구요. 자기가 먼저 만나 보고 싶다고, 번호를 주면서 연락 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튀어나오니까······.”
“어디에서요? 누가?”
“게임에서요······. 쪽지로.”
“게임이요?”
스타크래프트라고 했다.
아니, 아직도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
“그럼 이제 된 거죠? 전 사실대로 다 말한 거예요.”
그 친구는 또다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니 아니, 잠깐만, 잠깐만.”
나는 애원하듯 말했다.
“혹시 그 사람 아이디 좀 알려줄 수 있어요? 이게 나한텐 정말 중요한 문제라서 그래요.”
남자아이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나는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디가요······ 이걸 뭐라고 읽어야 하는 거야? 토, 토린 홀스······? 그러니까 철자가 turin horse예요.”
“turin horse요? 그게 확실해요?”
“네.”
그와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turin horse.
토리노의 말.
나는 그 아이디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말을 듣고 그 영화를 스무 번 넘게 본 친구.
성우정의 아이디였다.
3
“거 참, 별일이 다 있죠?”
박도영 형사라고 했다. 남부 경찰서 형사과 내 피싱 전담팀. 그는 내 스마트폰에 보관된 카톡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말고 그렇게 말했다.
“요즘은 부고장 피싱이라는 게 유행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속나 봐요.”
박도영 형사는 내게 자신의 모니터 화면을 돌려 보여 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사랑하는 모친께서 별세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장례식장 위치’라는 문자와 함께 링크 주소가 따로 적혀 있었다.
“이 링크 타고 들어가는 순간 바로 좀비폰이 되는 거예요. 이번 달만 관내에서 벌써 열여섯 명이 당했어요.”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원실에서 연결해 준 박도영 형사는 나보다는 열 살 가까이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뿔테 안경에 흰색 슬림핏 와이셔츠 차림이었는데, 그래서 형사라기보단 어쩐지 교회 전도사나 세일즈맨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선의를 이렇게 이용하면, 선의가 어디 남아나겠습니까?”
그는 내게 다시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선생님은······ 그러니까 이게 다 제자가 벌인 일이다,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거지요?”
나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그에게 그간 내게 벌어진 일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알아 낸 아이디, 그 아이디를 쓰던 제자의 이야기를 모두 꺼내 놓은 처지였다. 그 말은 분명 내가 한 것이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입을 통해서 다시 들으니 어쩐지 내가 어떤 문제가 있는 선생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자를 고발하고 있는 비정한 선생. 자꾸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확실한 건 아니고요, 그걸 좀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2832와 통화한 다음다음 날, 나는 스타크래프트 제작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한국 지사 고객지원실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그 전화를 하는 와중에도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몇 단계 과정을 거쳐 그쪽 팀장과 통화하게 된 나는, 장황하게, 또 조금 과장해서, 내 사정을 설명했다. 그 일 때문에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간단하다, turin horse란 아이디를 쓰는 사람의 정확한 정보이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우, 고객님. 저희 유저님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저희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팀장은 나보다 더 과장된 억양으로 말했다.
“한데요, 고객님. 저희는 알려 드릴 수가 없어요.”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들은 개인정보유출을 할 수 없다는 말.
“아니, 제가 지금 도무지 생활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니깐요.”
나는 괜스레 팀장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네네. 고객님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범법이거든요.”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고객님.”
팀장은 완강했다. 나는 허무하게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끊기 직전 나는 “내가 왜 그쪽 고객입니까? 난 그런 게임, 해 본 적도 없어요!”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 제자라는 사람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박도영 형사가 양손을 키보드에 올리며 물었다.
안 좋은 일이라, 안 좋은 일이라······.
글쎄 말이다. 나 또한 2832로부터 turin horse란 아이디를 듣고 난 뒤부터 계속 그 생각을 해 왔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딱히 그런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성우정과 제법 잘 지내 왔다고 믿었고,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같이 책 읽고, 글 쓰고, 밥 먹고, 이야기하고. 교수와 학생 사이에 무엇이 더 있단 말인가. 나는 좀 답답했다.
혹시, 그것 때문인가······?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나는 불현듯 어느 한 장면을, 마치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든 그림책의 한 페이지처럼 떠올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어떤 식으로든 원인을 찾고자 애쓰다가 만들어 낸 풍경일 수도 있고, 그래서 왜곡되고 과장된 기억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한 번 마음속에 들어온 그날 그때 성우정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고, 선명해져갔다. 성우정의 등이 유난히 굽었다고, 무언가 뒤틀려 있다고 마음속에서 느꼈던 순간.
하지만 그 기억이 사실이라고 할지언정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일이었다. 성우정은 그런 일 자체를 아예 기억하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무지 맥락이 없었다, 맥락이······.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를 해야지 용서를 할 텐데······.
*
학교 앞 분식집에서 함께 돌솥비빔밥을 먹고 난 이후, 성우정은 종종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와 보면, 그가 테이블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나는 학교에 있는 동안엔 늘 연구실 문을 잠그지 않은 채 돌아다녔다).
“뭐야? 뭐가 그렇게 심각해? 또 고소당한 거야?”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그렇게 농담했고, 그때마다 성우정은 관자놀이 근처를 긁적거리며 작게 웃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에, 나는 책상에 앉아(파티션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각자의 일을 했다. 학교 서류니 학생들 작품이니, 한참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그제야 그가 가방을 챙겨 자리를 뜬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인사도 안 하고 갔네.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기도 했지만, 섭섭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게 나를 챙겨 주는 그 친구만의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성우정이 뜨악한 표정으로 내게 묻기도 했다.
“교수님, 이 영화가 왜 좋은 거죠?”
그는 노트북으로 〈토리노의 말〉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예의 또 농담으로 “흑백영화잖아? 흑백영화는 다 좋은 거야”라고 말한 후, “너무 무섭지 않니?”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나는 그 영화가,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집안에서 말(馬)도, 부녀도, 움직이지 않은 채 죽어 가는 그 이야기가, 두렵고 또 공포스럽기만 했다. 나만 무서울 순 없어서 제자들에게도 자주 그 영화를 권하곤 했다.
“무서운 게 좋은 건가요?”
성우정은 계속 물었다.
“아무래도 예술 쪽에선······ 그런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여기 나오는 딸이 너무 바보 같아요.”
성우정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 후로도 성우정이 그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후에 물어보니 스무 번 이상 봤다고 말했다). 아이디도 아예 그 영화 제목으로 바꾸고, 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정하기도 했다.
“다시 보니까 딸이 바보 같은 게 아니고······ 갇혀 있었네요. 딸이 곧 말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다.
12월엔 학과 동인 친구들과 함께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근처 펜션으로 1박 2일 MT를 떠났다. 신춘문예에 우수수 떨어진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말 정례 행사 같은 MT였는데, 그해엔 동인 활동에 그리 열심이지 않았던 성우정도 동행했다. 나를 포함해 모두 여덟 명이었다. 잎이 모두 적갈색으로 변해 버린 관방제림을 띄엄띄엄 떨어져 걷다가 국수거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펜션으로 돌아와 바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야, 나는 너희들이 당선될지도 몰라서 해마다 신춘문예 심사를 거절하는데, 이게 응? 이게 벌써 몇 해째냐? 분위기가 자꾸 가라앉아서 나는 계속 농담을 해댔고, 그래도 영 동인 친구들의 얼굴이 펴지지 않아서 빠르게 술잔만 비워댔다. 결국 내가 가장 먼저 취해서 방으로 들어갔고(복층형 펜션이어서 계단을 거의 네 발로 기어오른 기억이 있다), 곧장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을 자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교수님, 잠깐 내려가 봐야 하실 거 같은데요.”
동인 중 가장 막내 격인 2학년 친구였다.
“왜?”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물었다.
“그게 좀······ 문제가 생길 거 같아서요.”
문제가 생길 거 같다는 건 또 뭘까? 얘네들이 싸웠나? 나는 안경을 찾아 쓰고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올렸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아이들은 여전한 모습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새벽 3시 무렵이었다. 소주병과 종이컵이 어지럽게 늘어선 소파 테이블. 누군가 챙겨온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둘씩 셋씩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들은 가끔씩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충혈된 눈과 어딘가에서 나는 연한 박하 냄새, 새벽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창밖 가로등, 따뜻함과 차가움, 느슨한 마음과 그 안에 감추고 있는 불안함······ 그리고 거기 구석에서, 펜션에서 인테리어용으로 만들어 놓은 벽난로 근처에서, 혼자 백팩을 끌어안은 채 울고 있는 성우정의 등이 보였다. 그의 주변에 떨어진 하얀 알갱이들도.
“쟤는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나는 옆에 서 있는 2학년 친구에게 물었다.
“벌써 한 시간째 저러고 있어요.”
2학년 친구는 그게 불안해서,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아서, 나를 깨웠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성우정 주변의 하얀 알갱이들은 모두 팝콘이었다. 누군가, 아니면 여러 명이 던진 듯한 팝콘, 내가 거실로 내려온 그 순간에도 4학년 남자아이 한 명이 그쪽으로 팝콘을 던졌다.
“아, 씨발. 내 가방 내놓으라고! 왜 남의 가방을 끌어안고 지랄인데!”
나는 의식적으로 성우정 쪽으로 먼저 다가갔다. 그는 내가 다가가 옆에 앉을 때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내가 묻자, 성우정이 잠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그의 눈두덩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고, 이마는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성우정은 다시 가방에 얼굴을 묻고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얘네들은 모두 바보예요.”
4학년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좀 하라고!”
성우정은 계속 울먹이면서 말했다.
“자기들이 바보인지도 모르고······ 바보 같은 짓만 계속하고 있어요······.”
“아이, 씨발 진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 모든 게 좀 짜증이 났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숨길 줄 모르는 미숙함, 생각 없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골몰해 있는 마음 같은 것. 그런 판단들이 내 안에 섰다.
나는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4학년 남자아이가 아닌 성우정을 향해,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지금 바보 같은 건 너야. 그러니 그만해.”
성우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당혹스러운, 그러다가 이내 원망스럽게 바뀐 눈길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않았다. 나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
“선생님, 이런 말씀 드리긴 좀 뭐하지만······.”
박도영 형사는 말끝을 흐렸다.
“이게 좀······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왜 그렇죠?”
나는 허리를 조금 더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딱히 금전적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다면 선생님 전화번호를 다른 사람들에게 건넸다는 건데, 그것만으론 좀······.”
“그것 때문에 제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데도요?”
박도영 형사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가 건네는 말은 전혀 달랐다.
“그건 전화번호를 뿌린 사람보다도 전화를 건 사람들이 더 문제인 거라······.”
그 사람들을 고발하는 게 더 나을 듯한데, 그것 또한 애매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쨌든 그 사람들은 단지 전화를 걸었을 뿐이라는 것.
내가 이상한 적의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애매하긴 뭐가 애매하다는 거지? 단지 전화를 걸었다니? 그 더러운 마음을 정말 모른다는 것인가? 나는 계속 종아리에 힘을 주면서 화를 억눌렀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무력해지는 마음과 그러면서도 또 끝내 전화번호를 바꿀 수 없는 사정들. 그 속내를 이 사람이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빚이 있을까?
작년 가을, 병원에서 수두증과 파킨슨, 알츠하이머 복합 진단을 받은 아버지는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아홉 번, 열 번씩. 아버지는 통화가 연결될 때마다 늘 같은 말을 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없니?”
처음에 나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아버지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병이 건네는 인사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계속 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거 허가 점수를 53점 받았잖니. 50점만 받으면 통과라서 그게 원래 다 된 거였다구. 이 선생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영월군청이 아니라 계속 도청 산림과 찾아다니고, 산림조합중앙회도 가고. 갈 때마다 돈이 드는 걸 어떡해. 이 선생이 너 신경 쓰지 않게 하려구 그 땅 담보로 대출도 알아봐 주고······ 근데, 있잖냐, 네가 임업인으로 따로 등록을 해야 한다는데, 그거 내가 더 알아볼까?
나는 아버지의 그 말들을 듣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고 퇴근할 땐 일부러 무음 모드로 설정해 놓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엔 어머니한테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얘야, 나 좀 살려주면 안 되겠니?”
어머니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와 통화가 안 되면 계속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차고 있던 기저귀도 벗어던지고, 침대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오줌을 눈다고 했다. 요양원에 보내지 않으려고, 네 아버지 불쌍해서 내가 그럴 순 없다고 말했던 어머니는, 내게 간절하게 애원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딱 한 번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 제발 그만 좀 하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니, 나는 네가 작가라서······ 나는 네가 작가라서 정말 좋거든.”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나는 결국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가만히 내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아버지는 애처로운 듯 이렇게 말했다.
“왜 우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러니? 에구, 이 불쌍한 것······.”
아버지의 병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죠?”
나는 목소리를 낮춰 박도영 형사에게 물었다.
“글쎄요. 정식으로 고발 접수를 진행하신다고 해도······ 이게 우선순위라는 게 있어서.”
그는 좀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는 그 순간 노련하게 나의 적의를 눈치챘는지도 몰랐다. 적의를 대하는 방어기제 같은 것.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런 건 관심 없다는 뜻이군요.”
박도영 형사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의 같은 마음 편한 소리나 하고 앉아 계시니.”
그가 내 얼굴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4
성우정은 4학년까지 모두 다녔으나 제때 졸업하지 못했고, 그 상태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하기 사흘 전쯤이었나, 성우정은 연구실로 나를 찾아왔다.
“어쩌냐? 나이 들어서 군대 가면 고생할 텐데.”
나는 좀 의례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MT를 다녀온 이후, 그와 나 사이엔 무언가 빠져나가 버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나는 제대로 고민하거나 마음 쓰지 않았다.
“교수님.”
성우정이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교수님이 예전에 각자의 환경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소설의 미학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나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한데요, 교수님······ 그게 정말 맞나요? 그게 정말 소설의 미학인가요?”
그 무렵 성우정은 살고 있던 학교 앞 원룸에서 나와 방림동에 있는 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들었다. 그거 때문에 또 과 친구들 사이에선 말들이 많았는데, 누구는 성우정의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그렇게 됐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구는 그냥 원룸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나온 거라고, 어차피 입대 때문에 잠시 고시원에 머무르는 것뿐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MT 이후 성우정과 친하게 지내게 된 2학년 친구의 말이었다. 그게 아니고, 원래 선배가 다 알아서 한 거래요. 학교 앞 원룸도 선배가 돈을 벌어서 들어간 거고, 지금은 돈을 벌지 않으니까 최대한 아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거고.
“야, 입대하는 마당에 무슨 소설 이야기를 하고 그래?”
나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아니, 나는 그가 좀 불편했다.
“그러면······ 소설을 왜 쓰는 거죠······?”
성우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 감정이 전부인가요?”
그날, 나는 남부 경찰서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내 차 안에서 성우정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성우정은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나는 더 집요하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그래, 받지 마라, 제발 받지 마라. 나는 한편으론 그런 심정이었다. 등 뒤로 서늘한 땀이 흘러내렸고, 손이 저절로 덜덜 떨리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화가 나 있었다. 성우정은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전화 받아. 나는 그렇게 메시지를 작성한 후 발송 버튼을 누르려다가······ 그러다가······ 작년 성탄절 무렵 그와 나눈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나에게 그 이상한 전화가 오지 않던 시절, 내가 갑자기 생겨 버린 빚 때문에 늘 이자 생각만 하던 시절, 그때 둘이 나눈 문자였다.
-너 그때 그거 다 팔았니? 비트코인 말이야.
-네.
-정말? 하나도 남김없이?
-그때 교수님이 다 팔라고 하셔서······.
-야, 선생이 팔라고 했다고 그걸 진짜로 팔면 어떡하냐? ㅋㅋㅋ
성우정은 그 문자엔 따로 답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 메시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ㅋㅋㅋ.
그 아무 생각 없는 자음의 연속에, 어떤 진실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깨닫게 되었다.
*
최근까지 나는 줄곧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왔는데, 그것들은 주로 분노나 수치, 혐오와 죄책감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어렵고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고 또 그런 글들을 써 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때때로 그것들이 그저 내 안에서만 해결되고 마는 감정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불쾌와 부끄러움을 그저 이해하고 헤아리는 일.
헤아리고 나면 무엇이 변하는가?
마음만 흘러넘치면 그다음엔 무엇이 오는가?
나는 그게 더 큰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다.
나는 여전히 매달 은행 이자를 내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마냥 신경만 쓰고 있을 순 없어서 오랫동안 살고 있던 집도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았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빠른 시간 안에 팔리길 소망하고 있다. 그게 요즘 나의 주된 감정이다. 아버지는 지난달 초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내게 전화를 걸어오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리고 그 이상한 전화와 카톡 메시지는······ 내가 경찰서를 다녀오고 난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된 사정인지 대충 짐작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늦은 밤, 간혹 성우정과 오래전에 나눈 메시지를 다시 읽어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마구간에 갇힌 말 한 마리를 떠올리곤 한다. 인정사정없이 채찍질을 당한 말 한 마리.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말 한 마리를.
어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 윌리엄 해즐릿,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아티초크 2024.
추천 콘텐츠
여름 손님입니까 이주혜 호텔 출입구에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향은 호텔 안과 밖의 경계인 회전문 안에서 온종일 흰 연기를 피워 올렸다. 향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하고 맨 마지막으로 손님을 배웅했다. 문이 돌고 돌면 향도 돌고 돌았다. 시작과 끝이, 손님과 주인이 향과 함께 돌고 도는 어지러운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9층 방에 올라가 암막 커튼을 열어젖히자 저 아래 묘지가 보였다. 회색 묘비가 빽빽이 들어찬 작은 묘지였다. 호텔이 자리한 골목에는 묘지를 품은 절과 숙박업소들과 카페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호텔 바로 옆에도 절이 있었는데 호텔 방에서 묘지가 내려다보일 줄은 몰랐다. 산 자들의 세계와 망자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포개진 도시였다. 어쩌면 호텔 입구에 피워 놓은 향은 투숙객들만을 위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호텔에 예약해 둔 저녁 식사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외출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꼭대기 층의 온천탕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옷장에 비치된 유카타로 갈아입고 수건을 챙기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에 외시경이 따로 없어 큰 소리로 누구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뜻밖에 한국어가 들려왔다. 손님입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더니 큼직한 나팔꽃 무늬 유카타를 입은 백발의 노부인이 서 있었다. 부인은 묘하게 낯이 익으면서 기이하게 낯선 인상이었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 사랑하는 맏아들을 사고로 잃고 둘째 아들과 조용히 불화 중인 엄마 역의 배우와도 닮았고 어떤 드라마에서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을 지극히 사랑해 전남편 곁에 두고 온 첫째 딸을 외면하는 엄마 역 배우와도 비슷했다. 사실 두 배우는 주로 맡아 온 캐릭터도 풍기는 인상도 달랐는데, 왜 문 앞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노부인을 보고 두 배우를 동시에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부인이 한국어로 말했다. 그만 갈까요? 투숙객을 온천탕까지 안내하는 직원인가 보다 생각하며 부인을 따라갔다. 그런데 호텔은 내가 지금 온천탕에 가려고 준비 중인 걸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모르는 사이 안내 서비스를 신청했던가? 체크인 때 데스크 직원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는 했다. 주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그가 사용하는 영어와 내 영어는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부인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는데 종종걸음 같으면서도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독특했다. 보폭은 아주 좁은데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부인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부인은 내가 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천천히 12층 버튼을 눌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서든 서두르는 법이 없군. 버스든 엘리베이터든 나만 못 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없나 봐.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인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가려고 하면 가게 됩니다. 온천탕은 아담했다. 탈의실에 로커가 따로 없어 비치된 대바구니에 옷을 벗어 두어야 했다. 부인은 탈의실까지 따라와 내
- 최고관리자
- 2024-08-01
미싱링크 지혜 네 동생을 데려와. 엄마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 동생이 될 뻔한 존재는 오래전 엄마의 뱃속에서 사산했고 그 사실에 나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데. 이름도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건 본능일까 재능일까? 엄마는 사랑의 능력을 타고난 걸까 단지 사랑할 존재가 필요했던 걸까? 나는 엄마가 시게루,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잠시 머물뻔했던 아빠의 이복형제의 아들에 대해 종종 말하고 싶어했던 마음에 대해 알고 있다. 정작 엄마는 시게루를 만난 적도, 그가 사는 곳에 가본 적도 없었으면서. 나는 엄마가 만난 적 없는 아이를 그리워하듯 시게루라는 실존 인물 ― 그는 나고야의 한 전자상가 사장이 되었고 얼마 전 결혼을 했다 ― 을 주기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를 끝끝내 묻지 않았다. 세상에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엄마는 모르고 나만 아는 기억에 대해 언젠가 발설하고 싶은 마음을 영원히 억누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빠가 회사에서 승진하며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셋집 ― 아빠 쪽 먼 친척의 소유였던 ― 을 떠나 도시 외곽의 넓고 큰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은 지 오 년쯤 된 아파트는 당시 손에 꼽게 비싼 집이었고 고급 자재와 세련된 인테리어, 빌트인 가구 ― 요즘 말로 ‘옵션’이라 불리는 ― 가 놓인 점을 자랑하며 요란하게 광고를 해댔다. 세 개의 방과 거실, 기역 자 싱크대가 놓인 부엌과 두 개의 베란다가 있는 정남향의 아파트에는 오래된 피아노와 십자 장롱, 족보가 놓인 커다란 장식장이 제 자리인 듯 거실과 방 한구석을 장승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재건축을 앞두고 철거를 기다리는 와중에 호러 유튜브를 찍거나 퇴마를 한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컬트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때 아빠에게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로 이사 갈 이유가 있었다. 오랜 노력 끝에 엄마는 임신 사 개월에 접어들었고 산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마른 몸은 난산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절대 안정. 그게 당시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납작한 배를 문지르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분명 아들일 거야.” 엄마는 커다란 거북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꿈을 꿨다고, 그건 분명 아들을 낳는 꿈이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나는 줄곧 궁금했던 나의 태몽 ― 물을 때마다 답이 바뀌던 ― 에 대해 다시금 물었다. “넌 향긋한 과일 밭에서 온갖 열매를 따 먹는 꿈이었지.” 과일? 고작 열매 먹는 꿈이라고? 나는 엄마의 빈약한 상상력과 취향에 비웃음이 났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곤 했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게 불법이었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파란 옷을 준비하시면 좋겠네요”라든가 &ldquo
- 최고관리자
- 2024-08-01
마샬 민병훈 너는 물에 젖은 곰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너는 동물원에 가자고 갑작스럽게 말했다. 너는 배를 잡고 크게, 오래 웃는다. 곰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 너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곰이 웃겨, 라고 물어 보는 대신 네 바지에 묻은 흙을 닦았다. 너는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곰에게 손을 흔든다. 너는 동물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곰을 본다. 너는 평소 그런 식으로 하나의 대상을, 하나의 풍경을, 하나의 장면을 오래 응시하는 습관이 있다. 나는 그사이 매점과 화장실과 흡연구역과 식물관에 다녀왔다. 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눈을 깜빡이고 있다. 곰은 두 마리였다가, 한 마리가 철문을 통해 어딘가로 향하고, 너는 아쉬운 듯 쩝 소리를 내면서, 다시 물웅덩이에 들어가는 곰을 지켜본다. 너는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입으로 소리를 낸다. 나는 네가 어떤 기분일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전부 알고 있다. 곰이었다니까. 좀체 흥분하지 않던 네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귀에서 잠시 삐, 이명이 들렸다. 휴대폰을 떼고 앞을 보자, 앞으로 넘어질 듯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잠실대교가 보였다. 언젠가 너는 시에서 대여하는 자전거를 타고 대교를 건넜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오도가도 못 하겠다고 전화한 적이 있다. 휴대폰 너머로,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너의 몸에 부딪혔다가 흩어지는 소리. 너는 가까운 곳에서 곰이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배달음식. 너는 그때 상반신만 겨우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을 열고 봉지에 손을 뻗었다. 옆집 문이 열렸다. 너는 곰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곰은 자기가 음식을 주문한 것처럼, 하얀 봉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는 종일 밥을 먹지 않았고, 몸이 아픈 건 아니지만 기운이 없었다. 퇴근길에 내게 아무 음식이나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혹시 곰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시켰는지 떠올렸다가, 그보다는 곰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네게 놀라 가슴이 뛰었다. 어땠어, 묻자 곰이었지, 너는 말했다. 너는 동물원 폐장을 알리는 방송이 울리자 그제야 자리에서 벗어난다. 너는 뛰다시피 걷는다. 새로 산 운동화 끈이 풀린다. 허리를 숙여 끈을 묶는 동안, 너는 네가 본 그것이 저 곰만큼 크진 않았다고 말한다. 가면을 썼던 건 아닌지, 인형 알바 옷을 입었던 건 아닌지, 나는 묻지 않는다. 네가 등을 두드릴 때, 나는 다른 신발끈도 풀었다가 다시 묶는다.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오르고, 너는 어깨에 기대 곯아떨어진다. 나는 버스가 운행 노선을 한 바퀴 더 돌 때까지 너를 깨우지 않는다. 수중에 있는 돈은 삼십오만 원. 너는 휴대폰 액정에 은행 어플을 켜고 내게 보여줬다. 이게 다야. 이게 다지만, 첫 인사에 빈손은 싫으니까. 너는 두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식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마침 겨울이었고, 동면에 든 동물처럼, 하루의 반 이상을 침대에서 잠만 잤다. 네가 하던 일은, 네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 최고관리자
- 2023-05-0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