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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 작성일 2025-05-01
  • 조회수 905

   주황


신민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는 여름 해변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양손에 모래를 담아 내 몸을 덮어 주었다. 바람 없는 날이어서 파도 소리는 한 음밖에 내지 못하는 악기처럼 단조로웠다. 유령 게가 집게발로 귓불을 건드리더니, 안쪽의 깊은 어둠을 훔쳐보곤 슬금 물러났다. 나른했다. 모래로 만든 이불 아래에서 심장이 느슨하게 뛰었다. 피는 천천히 헤엄쳤고, 뼈는 나보다 먼저 졸았다.

   이것들이 다 유리가 된단다.

   아버지가 말할 때 나는 거의 잠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유리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상상을 했다. 그 드레스는 크고 작은 천 개의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각각의 조각들이 금세 표정을 바꾸므로 누구도 이 드레스의 온전한 생김새를 모를 것이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새 드레스가 태어날 테니까.

   깨어났을 땐 모래 이불이 헤집어져 있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배와 발가락들. 잠든 동안 아버지가 이불을 고쳐 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 아버지는 내게 등지고 앉아 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을 돌아보기를 바라며 몇 차례 콜록거리고, 끙끙거리는 소리도 내보았는데 아버지의 등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유리 공장의 공장장이자 제조공이었다. 술병과 비커, 램프, 접시들, 뭐든 만들었다. 작업 도중 불에 데거나 파편에 베이면서 그의 팔에는 우둘우둘한 자국이 남았다. 이쪽의 가죽과 저쪽의 가죽이 다시 만나기 위해 환부의 강 너머 서로를 잡아당기며 생긴 상처. 땀에 절어 번쩍거리는 데다가 흉으로 얼룩진 아버지의 피부는 탈피를 여러 번 거친 도마뱀 같았다.

   우리 집은 유리 공장에서 십 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담벼락 없이 적색 벽돌로 쌓아 올린 빌라의 맨 아래층이었다. 낮에는 공장 쪽에서 쉼 없이 불량품을 깨부수는 파열음이 들렸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깨진 조각들은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모래, 실리카와 함께 가마로 들어가 또 유리물이 되었다. 어떻게 부서지든 다시 태어날 가능성을 영원히 지닌 것이다.

   제조공들이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에 나는 쥐새끼처럼 공장으로 숨어 들어가 가마 근처를 얼씬거렸다. 이글루 형태의 가마는 철판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정수리부터 땀이 비질비질 흐르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가마는 열을 내는 도가니를 몇 개 품고서 종일 끈적한 유리물을 끓였다. 제조공들이 파이프를 찔러 넣어 유리물을 퍼 올리는 창문 모양의 구멍, 거기에 태양이 갇혀 있었다. 이글거리는 주황.

   일렬종대로 놓인 취관, 오목하거나 불룩한 금형들, 매서운 그라인더, 평평한 집게, 토치와 에어건, 걸쭉한 상태일 때의 유리를 자르는 플라이어, 다이아몬드 가위, 왁스를 묻혀 머리통이 번들거리는 잭, 끝이 고깔 모양으로 꺾인 퍼퍼, 나무 패들, 테그리올과 클램프, 온갖 호스, 물을 채운 양동이들, 검게 젖은 신문지 뭉치를 살폈다. 곳곳에 파유리를 모아 둔 드럼통과 수레도 보았다. 언젠가 한 몸이었던 그 조각들은 서로를 비추며 자기들만의 미로에 들어가 노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의 짝짓기를 상상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골똘히 쳐다보다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너 누구니? 스무 번 물으면 미친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미친다는 게 뭘까?

   나는 그 뜻을 사전에서도 찾아보고,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어른들에게도 물어보았는데 어째 다들 머뭇거렸다. 결국엔 좋지 않게 변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변하기 전이 그보다 낫다는 거다. 그걸 누가 알 수 있을까?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쳤다는 걸 알까?

   아버지는 내 물음에 킬킬 웃더니만 너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하지는 말라고 했다. 나 같은 애는 뭘 알면 알수록 미치기 딱 좋다는 거다.

   공부 안 하면 뭘 해요?

   아버지처럼 기술자가 되어도 좋지.


   열네 살, 아버지가 나를 위해 만든 우리 집 베란다의 작은 작업실로 그를 데려갔다.

   금속 상판을 덧댄 마리버 테이블, 프로판 산소 가스통, 토치 버너, 성형 도구들, 온갖 색 유리봉, 세라믹 패드, 새시가 들뜬 창문. 나는 학교에 가거나 잘 때 빼곤 대체로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튤립을 만들 거예요.

   붉은색 유리봉을 토치로 녹였다. 취관 끝에 유리물을 묻혀 쭙, 하고 짧은 숨을 뱉자 유리가 부풀었다. 부푼 유리를 마리버 테이블에서 굴리며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그새 조금 굳어서 토치질을 했다. 푸른 불꽃이 붉게 변하는 순간 토치를 뗐다. 다시 말랑하게 녹인 유리의 끝부분을 핀셋으로 눌러 네 갈래로 나눈 뒤, 가위로 살짝 잘라, 갈라진 꽃잎을 표현했다. 아직 정교한 작업이 어려웠다. 마땅히 내 손가락을 사용했다. 유리가 굳기 전에 조물조물 만졌다. 네 갈래의 꽃잎이 안쪽으로 예쁘게 오므라들도록. 다음으로 초록색 유리봉을 녹여 길쭉한 줄기를 만들고 꽃받침에 이어 붙였다.

   겨울의 초입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음에도 온몸이 땀에 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해 볼 수 있겠니?

   나는 그렇게 했다. 녹이고, 불고, 굴리고, 주물렀다. 이번엔 망칠까 무서웠지만, 처음과 다르지 않은 두 번째 튤립을 만들었다. 난 들뜨기 시작했다.

   또 해 볼까요?

   아니. 됐다. 훌륭하구나.

   아버지는 뜨거운 나의 손을 가져가 자기 귀에 댔다. 나는 다친 새를 쥐듯 아버지의 귀를 감싸안았다. 요령이 없어 수차례 부풀고 아물며 두꺼워진 피부, 내 도마뱀 손끝이 아버지의 귀를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났다.

   뜨겁지 않았니?

   참을 만했어요.

   그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유리 공장에 남아 밤새 가마와 사랑에 빠졌다. 챙그랑챙그랑. 아버지가 끝까지 가지 못하고 실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가는 소리를. 부러웠다. 나도 유리를 만지고 싶었다. 토치로 유리봉을 녹이는 시시한 방법 말고, 가마를 쓰고 싶었다. 1,300℃ 용해로에서 물처럼 녹인 유리와 놀고 싶었다. 제조공처럼, 진짜 기술자처럼 말이다.

   아직 입술과 손끝에 열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에 나는 어른들처럼 많은 걸 알고, 그래서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는 반 친구에게 배웠던 일을 해 보았다. 처음으로 의도를 가지고 내 몸을 만진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문질렀다.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 행위는 아버지가 지휘하는 파유리들의 연주 속에서 이루어졌다. 일을 마친 순간에 잠 귀신이 내 귀를 쓰다듬었다. 며칠 뒤 내 책상에는 샐쭉하니 목이 길고, 어깨가 부드럽게 떨어지는, 완벽한 우윳빛 화병이 올라가 있었다. 정말이지 뻔뻔할 정도의 우아함이었다. 설령 깨진다고 해도 그 조각들에 먼지 한 점도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먼지도 실례를 피할 테니까.

   그 화병은 내 숨으로 만든 튤립 두 송이를 안고 있었다. 화병의 미끄러운 어깨를 만져 보았다. 밤새 한기로 굽었던 허리가 펴졌다. 내 등뼈를 따라 길게 가로지른 강, 거기서 물고기 떼가 튀어 올랐다. 말려있던 신경들이 깨어나 팽팽한 기지개를 켰다. 그때 나는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알았다. 이미 다 겪고 늙은 것처럼. 지난 기억을 더듬어 조용히 다시 살아 보는 노인처럼. 흥분은 곧바로 서글픔으로 바뀌었고, 또 한 번 몸을 뒤집어 들뜬 얼굴을 드러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내게 제대로 유리를 가르쳤다. 나는 덜 다치게 되었다. 간절한 바람대로, 공장에서 도가니를 다섯 개 품은 진짜 가마도 썼다. 제조공들은 나를 귀여워했다. 나는 그들의 옆구리에 들러붙어 유리와 노는 방법을 배웠다. 어른들이 쓰는 길고 무거운 취관으로 황금빛 꿀물을 퍼 올렸다. 파이프를 비비는 손에서 열이 태어났다. 내 숨을 받아먹은 유리가 가르랑거리며 몸을 부풀렸다. 아버지는 내가 수월하게 일하도록 조수 역할을 해 주었다.

   

*


   올해 마지막 수업을 마친 뒤 공방에서 수강생들과 샴페인을 마셨다. 창밖으로 힘없는 눈송이가 흩날렸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삼십 대 초중반으로 나보다 조금 어린 여자들이었다. 한적한 동네에서 우정을 찾느라 온갖 공예 클래스를 거친, 머릿속에 각자의 마인드맵을 가지고 있는 자들. 그들은 서로가 아는 정보, 이를테면 어느 가정의 경제력과 사람들의 소문을 맞춰 보기를 즐겼다. 그 소통은 때로는 노골적이었지만 대체로 저들만 아는 눈빛을 주고받는 엉큼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해가람은 약사의 아내였다. 공방 맞은편 약국에서 조제실과 데스크를 오가며 일했는데 다섯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초여름에 내 공방에 나타난 후 세 계절 동안 쫓아왔다. 가십에 어울리는 걸 즐기지는 않는 듯했고, 창업 생각은 더욱 없어 보였다. 관찰력이 좋고 손끝이 야무진 편이었지만, 창의적이거나 대담하지는 못했다. 내가 진열장에 둔 전시품 중 하나를 들고 와서 자기 자리에 두고 따라 만드는 식이었다. 그런 능청스러움과 더불어 종종 내게 반말하는 것으로 수강생들 앞에서 나와의 친밀감을 과시했다.

   실제로 우리는 가깝기도 했다. 친구라기엔 입맞춤이 몇 번 오갔고, 연인이라기엔 다소 긴장감이 모자랐다. 미적지근한 애정과 우정 사이 어딘가. 몸의 끌림은 없었다. 만약 무언가 시작된다면, 그건 방심이 부른 사고가 아닌 의도적인 선택일 테고, 그 선택이란 치명성을 담보하기보단, 목적지에 닿기 전 한 정거장을 이르게 내려 조금 더 걷는 일처럼 싱거운 일상의 변주일 것이다.

   해가람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가지 않고, 아이의 하원까지 두어 시간 정도 머무르며 나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처음엔 성가셨는데 어느새 나도 그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곧잘 나를 챙겨 주었다. 수업이 없을 때도 잠깐 들러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던져두고 간다거나, 잔기침을 했을 뿐인데 약과 자양강장제, 가슴께에 붙이는 패치까지 하루 분량씩 지퍼백에 담아 건넸다. 공방에도 신경을 써 주었는데 벽시계가 멈춘 걸 나보다 빨리 눈치채 약을 갈아 끼우는 식이었다. 내 진짜 자랑거리는 말이야. 동생들 아침을 굶긴 적이 없다는 거야. 해가람은 그런 말도 했었다. 밑으로 동생이 셋인데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같이 아침을 차려 먹였다고.

   그녀는 누군가를 살피고 돌보는 일로 자신의 영향력을 손쉽게 확인하는 성향이면서, 막상 지난 연애담을 들어 보면 대상을 고르는 특별한 기준은 없어 보였다. 얼치기만 사귄 것 같지도 않았다. 깊이 들어가야만 우거지기 시작하는 숲처럼 멀리서는 빤하지만 실상 복잡한 여자였다. 해가람이 가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거나 까닭 없이 조용해질 때면 숲의 중심에 놓인 우물을 떠올렸다. 그 우물은 오래전에 말라 버려서 더는 두레에 이끼도 생기지 않았다. 빽빽한 수목 틈으로 보이는 우물가의 초라한 정경은 사람을 부르는 듯도 쫓는 듯도 했다.

   해가람은 하기 싫은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은근히 내성도 강하고 사회적 기술도 좋았다. 거리감을 좁혀 올 때 내가 밀어내면 얼른 물러났다가 얼마 뒤엔 다시 살갑게 굴었다. 함박눈이 아닌 싸락눈처럼 몰래 코트에 녹아든다고나 할까. 방어적인 사람 특유의 거리 감각이 좋았다.

   마지막 잔을 비운 수강생들이 일어났다. 그들과 악수하거나 가볍게 안으며 인사했다. 새해에 정규 클래스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이들과는 가벼운 웃음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했다. 해가람은 자신은 다른 좌표에 서 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가 그들이 나가도록 문을 잡아 주었다. 친절하고도 샘 많은 추방이었다. 나는 공방 안쪽으로 들어가 가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쪽문을 열었다. 해가람과 문가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웠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뭉근한 취기를 밀어냈다. 천장에서 환풍용 팬이 사납게 돌았다.

   안 가?

   늦어도 돼.

   아이가 친정에 있다고 했다. 저번 주에 지나가듯 약사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인 그 여자는 해가람이 출근하지 않는 날에만 약국에 오는데 CCTV 앱을 켜 보면 내내 손님용 스툴에 앉아 제조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데스크에 양팔을 괴고 선 남편의 표정만 볼 수 있었는데, 시종일관 웃거나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터미널에서 그 여자를 봤어.

   수수했지. 얼굴도 차림새도. 너무 평범해서 몇 번이나 만나야 겨우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그런 타입 말이야. 조심성은 있어 보이더라. 선로에서 멀리 떨어져 서 있었지. 콱 밀어 버릴 걸 그랬나. 가방은 싸구려 같았어. 각이 다 죽어 있었고 가죽도 흐물흐물. 구두는 밑창이 헤져 있었다. 현관에 부스러기가 남을 텐데 그런 건 신경 안 쓰나 보지. 한 마디로 목소리가 쥐처럼 작을 것 같은 인상이랄까. 영업직인 걸 보면 실상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고.

   과연 해가람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해가람은 이마부터 목까지 빈틈없이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매주 손톱 색이 바뀌며, 내가 기억하기로 같은 옷을 입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긴 머리카락엔 아침마다 정성 들여 손질한 컬이 풍성하게 들어가 있었다. 차림이 단정하면 귀걸이가 화려하다던가 그 반대였다. 단발 길이 기장을 유지하고, 간단한 화장만 하는 나로서는 그녀가 매일 같이 이런 꾸밈새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남자들은 그런 거 좋아하나.

   나야 모르지. 알 수가 없지.

   내 대답에 해가람은 제 어깨를 내 쪽으로 부딪히며 웃었다. 나는 기분 좋게 기우뚱거렸다. 그렇지, 네가 알 리가 없지. 그다음 담배를 다 태울 수 없을 정도로, 주체할 수 없이 해가람의 웃음이 커졌다. 그녀의 긴 담뱃재가 내 바지 위로 톡 떨어졌다. 그걸 보고 해가람은 더 웃어댔고, 나 역시 속절없이 웃었지만, 사실 그리 웃기지는 않았다. 심각한 상황이고 심란한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애를 친정에 보낸 거야? 해가람은 눈꼬리에 작게 매달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없애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둘째네가 잠깐 한국에 들어왔거든. 애가 사촌 형아랑 놀고 싶어 해.

   청승 떨기 싫다. 처음도 아닌데. 종종 놀거든. 그렇게 잠깐씩. 그 사람, 멍청이는 아니야. 무모하지 않아. 차라리 겁쟁이지. 잘 숨기지도 못해. 아이를 사랑하거든. 물고, 빨고, 아주 좋아 죽어. 누가 보면 제가 낳은 줄 알겠어. 그냥. 음. 알잖아.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듣는 목소리. 매일 맡는 냄새. 정말 이대로 끝일까? 한 사람과 영원히, 그 말의 실상이 이렇게나 보잘것없을 줄이야. 하루하루 늙어 가는 서로의 잠든 얼굴을 보는 게 다라고? 고작? 무엇을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그런 물음들. 마음들. 이해해. 다 이해한다고. 나도 똑같이 느낀다니까. 바란 적도 없다. 진짜로. 늙어 죽기 전까지 붙어살아야 할 텐데. 매일 나만 본다고 생각해 봐. 그런 거 싫어. 오히려 이상하고 무섭지. 뉴스 봐. 아내를 의심하고, 때리고, 죽이고. 미친 거지. 이게 자연스러운 거잖아. 다들 말하지 않지. 진짜 자연스러운 게 뭔지. 마땅히 그렇게 되는 게 뭔지. 쪽팔리니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무서워지니까. 알아. 다 알아. 내가 제일 싫은 게 그거야. 기다리는 여자. 죽어도 그거 하기 싫다. 딴청 피우는 여자. 난 그러려고. 애만 모르면 되니까. 나도 좀 놀지 뭐. 기력 있을 때 말이야. 어때. 지금처럼. 너랑 나. 난 내가 여자랑 키스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그렇게 말하는 해가람은 도무지 딴청 피우는 여자 같지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위해 태어난 여자 같았다. 상처받지 않은 척, 원한 적 없던 척, 애잔한 시치미 떼기. 아버지가 이쪽을 돌아보기를 바라면서, 모래 이불을 덮고 끙끙거리던 내 모습 같았다.

   너는 나구나.

   

   역겨울 정도로 달콤한 방향제 냄새. 컨트리 포크송. 쿨럭거리는 코란도. 열한 살쯤의 기억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멀미가 났다. 이미 차 안에서 몇 번 토한 적 있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화내지 않았지만, 방향제를 없앤다거나, 봉투를 준비해 놓는 세심함은 없었다. 그쯤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직접 요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알아채 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 아버지가 겨우 눈치채면, 나는 한 번 더 모른 체를 하면서, 과장하며 기뻐했다. 내가 만든 새로운 규칙 때문에 아버지는 예전보다 나를 더 신경 써야만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조수석 창문을 열었다. 맹렬한 바람 소리가 났다. 눈을 뜨기 어려웠다. 내 긴 머리카락이 아버지 쪽으로 흩날렸다. 바깥 냄새를 맡았다. 풀과 거름 냄새. 태양이 아스팔트를 굽는 냄새. 아버지는 운전하면서 제조공의 전화를 받았다. 휴일에 호출이 와도 군말 없이 나가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했다. 아버지는 “다섯 시.”라고 답했다. 그건 제조공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다섯 시까지 아버지의 시간을 빼앗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내 쪽에서 먼저 헤어질 시간을 말했다. 아버지가 가 봐야겠다고 하기 전에 그를 먼저 보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남겨진 입장이 되는 게 싫었다. 아버지가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거나,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건네거나, 하느작하느작 함께 공원을 걷거나, 같이 저녁을 먹을 때, 내가 먼저 말했다. 이제 가 보셔도 된다고. 다 되었다고. 아버지는 항상 미안해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머무르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 저녁에, 주말에, 다음에. 나중을 기약하는 말들은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졌다.

   

   해가람을 안아 주었다. 내가 나를 안는 기분이 들었다. 좀스럽고, 은근히 짜증나면서도, 긴장을 다 풀고 싶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해가람은 심통을 부릴 줄 알았는데 가만히 안겨 있었다. 힘이 빠진 채 나이 든 동물 같았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이 층의 내 방으로 함께 갈까 했지만, 이제 와 멋쩍기도 하고 기운도 없어 관뒀다. 오늘 밤을 보내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까 겁나기도 했다. 대신 장갑을 낀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옷감과 마찰하며 정전기 이는 소리가 났다. 다시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해가람의 택시를 잡아 주고 돌아오는 길목엔 어느샌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괜히 적적했다. 장갑을 벗었다. 담장에 쌓인 눈밭에 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손끝에서부터 골고루 퍼지는 선연한 감각. 놀라서 손을 떼었다. 아직은. 서둘러 두 손을 다시 장갑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사이 먼지 같은 눈송이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중 몇은 장갑 위로 앉았다가 기척도 감촉도 없이 녹아 버렸다.

   매가리가 없네.

   혼자 툴툴거렸다.


*


   홋카이도의 서부에는 늘 기운찬 눈송이가 내렸다. 물기가 적고 오동통한 눈. 땅을 더럽히려는 게 아닌 올라타려고 내리는 눈. 오래 머물다 가는 눈. 어디에나 허리께까지 눈더미가 쌓여 있었다. 지붕들은 흰 지붕을 하나 더 얹었다. 상점 주인들이 눈을 치워 만든 좁은 길목으로 사람들이 총총 걸어 다녔다. 신호등 불이 바뀌면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발을 미끄러뜨리며 달렸다. 바람은 거세지 않았다. 서늘하기보단 찬란한 풍광. 짧은 운하 끝에 우뚝 선 시계탑. 밤 기차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은 주로 거기에 모여 있었다.

   차갑고 조용한 곳이어서 유리와 놀기에 좋았다. 지역 박물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세 달간 머물렀다. 주에 몇 번, 교대로 관광객들 앞에서 공예 시연을 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저녁에는 개인 작업을 했다. 기한에 맞춰 작품을 내놓는 게 이 프로그램의 참여 조건이었다. 우수작으로 선정되면 상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상당히 높은 금액이었다.

   학부생 조수가 하나 붙었다. 부모 중 어느 쪽인가 한국인이어서 소통이 쉽다는 이유였다. 외국어에 능하지 않아 선택지가 달리 없었다. 별다른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주로 듣기만 했다. 말할 때 낭비하는 숨을 아껴 두었다가 유리에게 주고 싶었다. 그는 열성적이었다. 곁눈질로 뭐든 배우고 싶어 했다. 하도 조르는 바람에 몇 번 작업을 봐주기도 했다. 솜씨가 괜찮았다. 정신력도 좋았다. 유리가 깨지면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가마 앞으로 돌아갔다. 조수 역할에도 충실했다. 내 땀을 닦아 주고, 서냉 가마나 글로리홀의 문을 열어 주고, 펀티 작업을 도왔다. 성실함의 전형이라 괜히 거북했다. 성실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 위에 매끈한 도자 껍데기를 하나 더 쓴 듯한 느낌을 주는데, 나는 늘 그것이 불편했다.

   여기 북해도 사람들과 저는 달라요. 저는 남부 출신이거든요. 열정이 없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가업인 주류점을 물려받을 수도 있었어요. 동생에게 양보했죠. 돌아갈 길이 없으니 저는 예술가가 되어야만 해요. 제 정체성이요. 어릴 때는 힘들었죠. 어머니는 그걸 숨길 필요는 없지만, 굳이 나서서 말하지는 말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이걸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의 특수한 무엇이랄까요. 두 나라, 두 뿌리. 근사하지 않습니까. 제게 계획도 있습니다. 아마추어 경연은 해 볼 만하겠더군요. 기업에서 막 지원을 받기 시작한, 유명하지 않은 곳부터 두드려보는 거죠. 이미 몇 곳 찾았습니다. 아직 경쟁률도 낮고, 상금도 제법 좋더군요. 닥치는 대로 해 봐야죠. 언제 어디서 좋은 제안이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커리어는 늘 처음이 중요하다던데요. 사실, 작가님 데뷔 작품도 찾아보았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굉장하더군요. 최연소 우승자셨죠. 그 나이에 그런 정교함이라니.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제 스타일 대로 가야죠. 제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요.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 겁니다.

   예술가, 정체성, 그런 단어들에 담긴 비장함이 짜증 났다. 자산, 브랜드와 같은 말의 천박한 냄새도 싫었다. 그가 특별해 보이려고 애쓰는 만큼 평범함이 두드러졌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는 유리를 사랑하기보단, 유리가 벌어다 줄 것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꿈 깨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고정 수입이 없는 삶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내게는 비장한 단어가 하나도 필요 없었다. 항상 월초가 두려웠다. 공용 작업실에 내 몫의 임대료를 내야 했으니까. 월세뿐만 아니라 함께 사용하는 재료와 가마 유지 비용도 생각해야 했다. 세 달간 일거리가 아예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었고, 제때 납품했으나 정산이 늦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정산을 재촉하면 재주문이 없을까 봐 참고 견뎠다. 대형마트에 딸린 문화센터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공예 수업도 했었다. 연장 제안을 받으면서 길게 일해 볼까 싶었는데, 출품 시즌이 다가와서 응하지 못했다. 그 후로는 행사 스태프나 시험 감독관처럼 단기로만 일했다.

   북해도에 올 때 내 마음은 간절했다. 상금을 받으면 적어도 반년은 작업만 해도 되고, 좋은 원료도 살 수 있을 테니까. 저렴한 걸 써야 할 때가 괴로웠다. 연인에게 후줄근한 옷을 사 입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속물성이란, 기술자보다도 아티스트에게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공용 작업실의 대화 주제는 대체로 돈 얘기였다. 한 사람이 체면을 내려놓자 줄지어 따랐다. 다들 없어, 없어, 앓는 소리를 해댔고, 어디의 누가 호텔 갤러리와 계약했다더라, 코닝에서 오퍼가 들어왔다더라, 얼마를 받았다더라 했다. 한 작품에 매겨진 결과는 유리와 나 사이를 이간질했다. 우리의 심지를 흔들었고, 때로는 어색하게 만들었다. 천진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시간을 헐어 버렸다. 눈앞의 상대를 두고서 다른 생각을 하게 했다. 예전에 만들었던 평가가 좋았던 작품, 가장 비싸게 팔았던 작품. 재룟값이 제일 많이 들어간 작품을 떠올렸다. 아버지에게는 손을 빌리지 않았다. 먼저 눈치채 주기를 기다렸다. 나는 더는 아이가 아니었고, 아버지는 이미 우리의 규칙을 잊었을 테지만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나자빠질 지경이 되면, 어딘가에서 상금이나 지원금이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유리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유리가 나를 갖기 위해,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유리가 나를 탐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 밤엔 그를 부르지 않았다.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 가격을 줄줄 꿰고 있는 놈이었다. 그는 유리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놈에게 우리의 침대를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대각선 테이블에 다른 작업자가 보였다. 베니스의 도공 아래에서 오래 배웠다는데 나만큼 늦게 작업실에 남아있는 유일한 공예가였다. 그는 나와 달리 항상 조수를 데려왔고, 벌써 친해진 것 같았다. 그의 테이블을 지날 때마다 작품을 흘겨보았다. 대충 보기에도 훌륭했다. 무라노 식으로, 전통적인 밀레피오리 공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그 밀도가 높았다. 불룩한 민자 항아리에 겹겹이 쌓은 색유리 꽃을 붙였다. 입구 안쪽에 꽃의 패턴이 밑으로 늘어지도록 연출해 공간감을 주었는데, 마치 투명한 폭포 줄기가 꽃잎을 안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아득할 정도의 화려함. 나는 그 작품을 잊으려 했다. 내 것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했다. 조잡해. 절제를 모르지. 아는 거, 배운 거 다 가져다 쓰는 타입. 이봐, 과잉은 개성이 아니야. 속으로 그의 작품을 헐뜯으며 마음을 비우려 애썼다.

   나는 후키가라스(吹きガラス)식으로 잔을 만들었다. 공처럼 둥근 잔. 겉면은 나선형 회오리가 잔을 감싸안은 듯 보이도록 양감을 표현했다. 밑으로 갈수록 푸른 계열의 색유리를 과하지 않게 사용해서 북해도의 수상하고도 깊은 바닷빛을 띠게 했다. 표면에 부러 기포를 남겨 파도의 포말을 연출했다. 그 위에 가볍게 내려앉은 얼음 결정들까지. 이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유리의 본질, 아스라한 투명함과 고상함을 최대한 살렸다. 설녀(雪女)의 뺨처럼, 닿는 즉시 서로가 깨져 버릴 테지만, 만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고혹함. 그게 유리가 가진 고결함이고, 진실한 민낯이었다. 겨울의 나라에는 꽃보라가 필요 없다. 

   마지막 단계였다. 냉각시킨 잔의 입구를 매끄럽게 다듬는 연마 작업만 남았다. 서냉 가마에서 집게로 잔을 꺼내든 순간,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면서, 집게와 잔이 동시에 떨어졌다. 급히 양손을 뻗어 잔을 잡았지만, 너무 뜨거워 놓쳐 버렸다. 서냉 가마라고 해도 500℃는 되었다. 파열음. 너무나 익숙한 소리. 그러나 지금 여기서 나서는 안 되는 그 소리. 출품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냉각을 고려하면 하루 남짓. 실내가 조용해졌다. 뒤에서 무라노 아티스트가 괜찮은지 묻는 말소리가 들렸다.

   가죽 타는 냄새. 한들거리며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 튀어 오르는 폭죽을 두 손으로 막아 낸 것 같았다. 오른손에서 굵직하고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요의를 참은 것처럼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양 손바닥을 살폈다. 그새 피부가 붉어졌고, 살점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곳곳에 꽂힌 크고 작은 유리 조각들. 가장 큰 조각은 오른쪽 손바닥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박혔다. 벌어진 살 틈으로 피가 송골송골 새빨간 머리통을 내밀었다. 이제 양손 전체가 뜨거웠다. 열이 끓는 곳이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알 수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끔찍하게 아파서 숨을 짧게 끊어 쉬었다. 처음 겪는 통증. 처음 겪는 거부. 무라노 아티스트가 달려와 내 손에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그의 조수가 함께 오가며 물 양동이를 날랐다. 통증이 둔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이상한 점은 계속 찬물을 붓고 있는데도 피부 안쪽의 작열감은 여전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 타고 있었다. 거기에는 물이 닿지 않았다. 곧, 가장 크게 베인 오른쪽 손바닥에서 흉포한 통증이 느껴졌는데, 총알이 지나가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환부 안쪽에서 커다란 북이 울리는 것 같았고, 팔꿈치까지 저렸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어깨가 떨렸고, 무릎이 흔들렸다. 이제 양손은 완전히 부어서 피부 주름이 옅어졌다. 오므라든 오른손을 펼쳐 보려 했는데 어째 움직이지 않았다. 깊게 박힌 조각을 빼내어 바닥으로 던졌다. 벌어진 환부에서 울컥 피가 쏟아졌다.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났다. 허리를 수그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모든 소리가 까마득하게 멀어지면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의사는 자신의 팔과 손을 내 쪽에 보여 주면서 정중신경의 위치를 설명했다. 엄지부터 아래팔까지 이어지는 긴 신경인데, 손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맡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그게 손상된 겁니다. 의사가 엄지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아마 재활하는 동안 이 엄지 부위가 제일 말썽일 것이며, 치료를 마쳐도 손끝의 미세한 촉각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텐데, 물건을 쥘 때만 주의한다면 일상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듣는 내내 손바닥이 욱신거렸다. 봉합 수술을 마친 후 감각은 둔해졌는데 이따금 뾰족한 통증이 느껴졌다. 신경이 취한 것 같았다. 술독에 절어 있다가 한 번씩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부푼 물집을 만지작거리며, 내 직업을 말했다. 의사는 탄식을 뱉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보고 두려워했다. 아이처럼 떨었다. 전에 없이 안전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우스운 보안경도 쓰고, 특수섬유로 만든 장갑을 샀다. 열기에서 피부를 지켜 준다는 기름과 크림을 발랐다. 꼴같잖은 짓이었다. 여태 그런 적이 없었으므로 한 시절 그러고 말기는 했다. 

   더는 아버지와 대결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먹고 살도록 도와달라 말했다. 아버지는 지류 통장을 내밀었다. 놀라웠다. 보증금 정도나 얻을까 했는데, 그간 아버지가 요령 없이 쌓아 둔 돈이 꽤 큰 금액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돈을 쓸 줄 모른다는 사실에 슬퍼졌고, 월초에 절절매던 내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났다. 그러고는 쓸쓸해졌다. 내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을 구했더라면. 아니, 아버지가 먼저 딸을 챙겼더라면. 나는 북해도에 가지 않았을 테고, 손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얼마나 써요? 원하는 만큼. 다 써 버리면 어쩌려고요? 또 벌면 된다.

   부동산에 갔다. 은행에 갔다. 이 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아래층은 공방으로 꾸리고, 값비싼 소형 가마를 마련했다. 나는 위층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재활치료사의 조언대로, 주머니에 작은 고무공을 넣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그것을 쥐고 놓는 연습을 했다. 손바닥 전체에 갈색빛의 화상 흉터가 생겼고, 절상 부위는 흰 기찻길 같은 봉합 자국이 남았다. 오른손은 여전히 둔하고 더뎠다. 미세한 동작이 어려웠다. 손끝을 움직이려고 하면, 손가락 전체가 구부러졌다. 파이프를 비비는 힘도 균일하지 못했다. 알맞게 바람을 불어 넣어도 유리물이 한쪽으로 쏠렸다. 파이프를 놓치면 유리도 떨어져 깨졌다. 리듬을 잃은 호흡. 악보를 잊은 지휘자. 무너지는 선율. 엉킨 음표. 토막 난 숨들만 배회하는 망한 무대. 야유조차 하지 않고 뒤돌아 나가는 관객들. 턱 끝을 타고 비굴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헐떡거렸다.

   그다음엔 따분함이었다. 몇 번의 연애, 몇 번의 동정, 몇 번의 포기가 이어졌다. 흥분을 느끼는 감각이 차단된 것 같았다. 이제 애쓰고 싶지 않았다. 굳이. 그런 모습을 들키기는 더더욱 싫었다. 더는 어디에도 출품하지 않았다. 메일함을 열지 않고, 번호를 바꿨다. 다른 공예가의 소식을 찾아보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냥 죽지. 왜 살아?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사람이 물었다. 화내거나 경멸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해 보였고, 그래서 상처받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런 목적도 욕심도 없다면 버틸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모르겠어.

   죽는 게 무서워?

   아니.

   다시 작업할 거야?

   아니.

   웃기는 소리. 너는 아직 못 버렸어. 그 미련. 됐다. 대답 들었으니 됐어. 난 말이야······. 네가 불쌍해. 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야. 속이 텅 빈 동굴 같아. 처음엔 들어가 보자 싶었지. 그런데 가면 갈수록 어째 끝이 안 보여. 바람은 계속 불고, 춥고, 나는 널 부르는데 대답은 안 돌아와. 더 들어갈 수 없으니까, 뒤돌아 나왔지. 그때 기분은 진짜 거지 같았어. 나는 쫓겨났는데, 왜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지?

   그렇게 말하고는, 그 사람은 나를 안아 주었다.

   공방에서는 수강생들에게 시범을 보일 때가 아니면 취관을 잡지 않았다. 곧 블로잉 수업도 없애 버렸다. 단순한 공정과 보조만을 필요로 하는 일반인 수준의 클래스만 진행했다. 유리는 토치로 녹였다. 가마는 치우지 않았다. 종일 유리를 끓였다. 때가 되면, 쓰지 않은 탓에 지저분해진 유리물을 내다 버리고, 가마 안에 내화벽돌을 쌓고, 도가니를 교체하고, 새 원료를 넣어 다시 끓였다. 돈과 힘과 시간을 버리는 바보짓을 계속했다. 불현듯 깨어나 가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돌아가 잠드는 새벽, 내가 어쩌자고 이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깨닫고 싶지 않았고, 변하고 싶지 않았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반원형 데스크에 둘러앉은 간호사들의 정수리가 보였다. 지겹도록 왔던 재활치료 병동이었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그제야 방금 층의 버튼을 누른 게 나라는 걸 깨달았다. 호흡기 내과로 가는 칠 층 버튼을 다시 눌렀다.

   아버지는 벌써 퇴원할 짐을 부려 놓고 있었다. 병실에 들어선 내게 손을 흔들었다. 환자복의 소맷자락이 내려가면서 팔이 드러났다. 도마뱀 피부. 그는 아직 투명한 산소 콧줄을 달았다. 수술 후 겨우 이 주 만인데 그간 심하게 말라 있었다. 얼마 뒤 간호사가 와서 아버지의 콧줄을 빼 주었다. 그때 작은 핏방울이 환자복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아버지는 손등으로 코피를 대충 훔치고는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온 쇼핑백에서 감색 상의를 꺼내 입었다. 분주한 가운데 들뜬 듯한 기분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아버지가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자 갈비뼈 아래에서 등까지 이어지는 긴 수술 자국이 보였다. 족히 이십 센티는 되는 것 같았다. 저곳을 벌려 오른쪽 폐의 상엽을 떼어 냈다 들었다. 병변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고무공처럼 딱딱하고, 위치가 묘해서 흉강경으로 제거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그게 유리가 아버지에게 한 짓이었다.

   

   본가로 차를 몰았다. 이제 그 집엔 아버지 혼자 살았다. 돌아가는 내내 아버지는 기침했다. 중간중간 큰 기침도 있었다. 좁은 구멍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소리. 그 소리에서 두려움 말고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가게에 손님들은 좀 오니. 딱히요. 뭐 살 게 있나요. 돈은 어떻게. 수강료요. 배우겠다는 사람이 제법 있어요. 다행이구나. 공장은요. 주문 좀 들어와요? 예전 같지 않죠? 무슨. 말도 마라. 가서 할 일이 산더미야. 요즘은 말이다. 베트남이 돈이 된단다. 다 수출이야. 내수는 죽었어. 병원에서 당분간 쉬라던데요. 그럼 어쩌니. 젊은 사람들이 어디 일하려고 하니. 다 늙은 우리끼리 쳐내야 해.

   신호를 받고 차를 멈췄다. 나는 대답 없이 아버지의 가슴팍을 쳐다보았다.

   별거 아니다. 운도 좋지. 규폐증은 말기엔 손도 못 쓴단다. 공장 가면 다 골골거리지. 기침 안 하는 사람이 없다고. 실리카 때문만은 아니야. 우리가 늙어서 그래. 너도 알잖니. 

   나도 안다. 내가 정말로 아는 건 아버지가 공장으로 돌아가는 이유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도, 주문이 밀려서도 아니다. 아버지는 그냥 유리를 만지고 싶다. 유리와 놀고 싶다. 미쳤기 때문이다. 남은 폐도 다 내어 주려고 다시 가려는 것이다. 내가 손을 다치지 않았더라면 그 미래는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 홀로 병들어 죽는 미래. 그걸 상상하자 섬찟함에 몸이 떨렸다.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계속 몸을 가르고, 열고, 망가진 부위를 조금씩 긁어내 가면서, 누구의 부축도 없이, 부서지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과 원망으로 매일 밤 내 이마에 애틋하게 입 맞춰 주는 사람 없이, 그따위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선이 장갑을 낀 내 손에 잠깐 머물렀다. 우리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공연히 미안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내 온도를 높이고 아버지의 병원 짐을 풀었다. 수건과 속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쌀을 끓여 말간 미음을 만들었다. 

   며칠 지내다가 갈까요?

   뭐 하러?

   도울까 해서요.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절을 표했다. 좀 쉬세요. 내가 빌 듯이 말했다. 언제까지? 아버지가 답했다. 그 뒤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거실 창가에 서 있었다. 예전에는 거기서 유리 공장이 보였다. 이제 길마다 여러 건물이 들어서 공장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거기 서 있었다.

   멀리서 제조공들의 연주가 들렸다.


*


   새해 정규 클래스 첫 수업을 시작했다. 수강생들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기 위해 색유리를 고르는 중이었다. 해가람이 다가와 아버지는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괜찮냐는 두 번째 물음에도 똑같이 끄덕거렸다. 그야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무엇도 온전치 못했고,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수강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며 잠시 도안을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공방 안쪽으로 들어가 가림막 커튼을 닫았다. 통로에 서서 주황빛으로 들끓는 가마를 보았다. 답답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했다. 숨을 골라 보려고 애썼다. 들이마시고 내쉬기.

   등에서 옆구리로 이어지는 긴 흉터, 고통에 찬 기침 소리, 연인에게 낭만적인 상처라도 얻은 듯이 묘하게 우쭐거리던 그 모습. 다 준비되었다는 듯이. 기다리기까지 했다는 듯이. 창가에 선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언제까지? 그 말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았다. 장갑을 낀 두 손. 뒤에서 커튼을 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가람이었다.

   통로는 좁았다. 각자 벽에 등을 붙이고 마주 보았다. 해가람은 평소와 다른 차림이었다. 밋밋한 검은색 목폴라. 골반 윤곽을 가리는 일자 청바지. 흰 스니커즈. 결혼반지를 제외하곤 액세서리도 없었다. 때로는 끼지도 않던 그 반지. 네일 아트가 없는 맨손톱. 종종 벗은 손이 부끄러운 듯 손바닥을 비비거나 깍지를 끼는 행동. 긴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내려 묶었다. 인조 속눈썹을 붙이지 않은 눈은 이전보다 짧고 작아 보였다. 눈은 약간 충혈되어 붉은 실금이 가 있었다. 제 나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뒤돌아 다시 한번 쳐다볼 정도는 아닌 여자.

   창피하지. 몸부림치는 거. 남들한테 보여 주기는 끔찍이도 싫겠지. 그런데 도무지 어쩔 줄 모르겠지. 애잔한 모습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한심해 보이지 않았다. 괜히 짠해서 안아 주고 싶었다. 버둥거리고, 또 버둥거리고. 너나 나나 그저 애쓰는 거겠지.

   내 목 안쪽에서 여전히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났다. 해가람은 양손으로 벽면을 밀며 무게 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땀에 젖어 뭉친 내 머리카락을 손빗으로 살살 풀어주었다. 호흡이 어려웠다. 숨이 필요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해가람의 목덜미를 당겨 와 입을 맞췄다. 해가람은 곧바로 입술을 벌려 숨을 넣어 주었다. 씹을 수 없는 환자에게 영양을 밀어 넣듯. 나는 어린 새처럼 얌전히 그녀의 숨을 받아먹었다. 딱딱했던 혀가 점점 풀렸다. 가림막 커튼 너머로 수강생들이 사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으로 굳은 몸이 녹고 있었다.

   돌봐 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해가람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세면대 물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접시를 떠올렸다. 지름이 십육 센티 정도 되는 낮고 판판한 유리 접시. 식전 빵 따위를 가볍게 올려놓기 좋았다. 내가 북해도로 떠나기 전에 우리 부녀는 양식집에 갔다. 큰 짐을 부치고 오던 길이었다. 그 양식집은 내 아홉 살 생일쯤에 오픈했는데 아직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특별한 날마다 거기서 저녁을 먹었다. 앉자마자 먼지 냄새가 이는 자줏빛 벨벳 소파, 칼질이 서툰 어린 시절엔 아버지와 함께 거기에 나란히 앉곤 했다.

   비행 일정을 말하며 내가 치아바타를 집어 들자 아버지는 양손으로 그 접시를 끌어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그는 제 몫의 빵을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얹어 두고 접시를 들어 이곳저곳 살폈다. 중장년의 사내가 보이는 소년 같은 행동에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음. 아버지는 곧 만족스러운 탄식을 내며 그릇을 제자리에 두었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버리듯 내려 둔 빵을 집어 먹었다.

   왜요?

   우리 거야.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럼. 내가 만들었으니까.

   아버지처럼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나도 눈으로 접시를 살폈다. 단정한 유리 접시였다. 평범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여 납품하는 그런 접시. 일말의 개성도 주장도 놀라움도 없었다. 내가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작업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일상적이고 시시한 공산품.

   다음 요리를 내온 직원은 빵이 놓여있던 빈 접시를 들어 올렸다. 그는 그것을 반대편 팔에 쌓아 둔 지저분한 접시 더미에 얹었다. 그러고는 옆 테이블로 가서 더러운 식기를 그러모아 다시 아버지의 접시 위에 올리고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그때 아버지는, 엿보기를 들킨 소년처럼 불안하게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짧은 숨을 뱉었다. 놀라웠다. 그 접시를 천 개도 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직접 주물러 형태를 잡은 게 아니라 금형을 사용했을 테고, 그 일은 여러 제조공이 함께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접시가 나타났을 때 아버지는 환해졌고, 더럽혀져 퇴장한 순간에는 낙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어느 곳에 출품하더라도 그 경연의 특성과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일단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지난 작업은 잊으려 애썼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나면 더는 내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미흡한 부분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타율이 좋은 공예가였다. 정교한 기술력, 넓은 작업 범위, 현명한 전략으로 호평을 들었다. 그러나 가끔 걸고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목소리가 없다. 젊은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는 건 완숙함이 아니다. 당신의 스타일을 알고 싶다. 내 또래 중 소위 말하는 스타일을 가진 자들, 어딘가 엉성하고 해괴하나,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걸 자꾸만 만들어 내는, 치기 어린 공예가들을 보면 속이 끓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순간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기술자. 규격에 맞춰 실용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사람. 표준화된 방식, 균일한 품질, 매일 똑같은 공정의 반복. 아버지가 왜 기술자가 되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는 결과에 대한 근심도, 평가를 받는 자의 수치심도, 앞으로 더 나은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자기 파괴적인 망상도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완벽한 우윳빛 화병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예술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술자가 되었다. 인정과 평가가 아버지와 유리 둘 사이를 해치도록 두지 않았다. 유일성에 대한 욕망, 나와 같은 그 마음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을 텐데도, 아버지는 그것을 전부 없애고는, 가증스럽게도, 늘 처음 겪는 듯 천진하게, 유리와 노는 시간만을 확보한 것이다. 그것이 기술자의 탐욕이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부당하다니.

   저도 기술자가 되어야 했을까요? 아버지처럼요.

   왜 그런 생각을?

   그냥요.

   처음에 네가 나한테 보여 줬을 때 말이야. 튤립 두 송이. 기억나니?

   그럼요. 잊을 리가 없잖아요. 

   그걸 만드는 동안 네 눈은 반짝거렸지. 푹 빠졌더구나. 안심했어.

   안심했다고요?

   음. 나는 이것보다 좋은 걸 알지 못하거든.

   그 말은 아버지 그 자신이 부모로서 해야만 하는 역할을 유리에게 떠맡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유리가 아버지에게 주는 만큼의 기쁨을 나는 그에게 줄 수 없다는 것으로도 들렸다. 내가 튤립을 만들고, 아버지가 화병으로 응답하던 날 이후로, 아버지는 더는 나와 겨루지 않았다. 기술자와 아티스트. 그중 무엇이 낫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내 작품 사진을 보여 주거나 받았던 상금의 액수를 말하면 놀라기도 했지만, 그 감상은 재빨리 사라질뿐더러 그에게 아무런 파동도 남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멀리 있었다. 누구와도 가까이 있지 않았다. 자신의 딸, 동료인 제조공들마저도. 그는 독단적인 연주자였다. 화음도 관객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내게 아버지는 맨 뒷줄에 앉은 관객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제일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 곡의 구성이나 연주자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금세 자기 연주를 하러 가는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 그는 초대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가지 않았으며, 어딘가에 가더라도 그의 영혼은 거기 없었다. 내가 모객을 하려 애쓰는 동안, 아버지는 한 곡이라도 더 연주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유리와 무엇을 하는지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다. 그사이에 나를 끼워 준 적도 없다. 미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고유함을 누구하고도 나누지 않는 것.

   새 접시가 나타날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다. 어린애 같았다.

   식당은 조도가 낮았다. 밖은 어둠이었다. 유리창에는 마주 앉은 두 사람의 형상만 일렁거렸는데, 너무 어두운 나머지 둘 중 누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


   해가람과 나는 내 침대 끝에 나란히 앉았다.

   가라든가 가겠다든가는 말도 없었다. 우리를 마다하지 않지만, 우리 자신만큼 사랑해 주지 않는 대상에 대한 갈망으로, 해가람과 나는 말라 가고 있었다. 같은 행에 놓였으나, 다른 열에 서 있는 두 사람. 수치심으로 연결되면서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해가람은 올해가 뱀의 해라느니, 대운이 바뀐다느니, 해풍을 맞은 대파를 잔뜩 받았는데 그렇게 달 수가 없다느니, 시시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이렇게 웃풍이 드는데 방에 커튼을 달지 않은 내게 정신이 나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겨울나무의 생태에 대해 떠들었고, 복자기나무 끝이 고양이 발톱처럼 생겼다는 걸 말해 주었다. 내친김에 구글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 주었는데 해가람이 와, 탄성을 뱉었다. 아무런 주제도 맥락도 없는 이 수다가 바로 지금 내 안의 수많은 방으로 들어가 각자의 명패를 달았다.

   잊지 않겠지. 올해는 해가람과 나의 대운이 바뀌는 뱀의 해이고, 해풍을 맞은 대파는 놀랍도록 달큼하다. 수다가 끝난 후 우리는 창밖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뼈만 남은 나뭇가지들 위로 쌓여 가는 것.

   어떤 불은 기척이 없다. 냄새도 없다. 눈처럼. 그림자처럼. 

   해가람이 내 손을 감싼 직물 장갑을 더듬었다. 나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그러지 마.

   내가 말했다. 나는 비굴하게 웃었다. 두려움과 기대로 온몸이 진동했다.

   하지 말라고.

   내가 다시 말했다. 몸을 뒤로 빼는 시늉을 했다. 하찮은 움직임이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원했다.

   해가람은 내 손목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장갑을 말아 내렸다. 실내등은 꺼져 있었다. 창으로 새어 들어온 달무리의 기운 없는 중얼거림, 그것이 빛의 전부였다.

   장갑을 벗은 내 손은 누더기 같았다.

   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거뭇했다. 갈색에 가까운 어두움이었는데, 물집이 잡혔다가 제각각 터지면서, 그보다 짙은 색 얼룩들이 군데군데 남았다. 손날과 가까운 부위는 심하게 데서 꼬집힌 듯 오그라들었다. 베인 흉터들은 울퉁불퉁했다. 깊게 찢어진 곳은 움푹하게 패였다. 중신경이 있던 곳, 큰 유리 조각이 박혔던 자리는 봉합선을 따라 새살이 차올라서 희고, 살짝 볼록했으며, 길쭉한 호를 그리고 있어 물고기의 등뼈처럼 보였다. 왼손 새끼손가락 끝은 잿빛으로 변했는데, 기질까지 손상되어 더는 손톱이 자라지 않았다. 살점 사이로 어렴풋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상 때문에 구축성 흉터가 생기면서 마디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 손가락을 제외하면, 나머지도 마찬가지로 끔찍한 꼴이었지만, 동작에는 문제가 없었다. 손바닥의 흉터는 대체로 화상과 절상 때문이었다면, 손등은 장갑을 끼기 시작하면서 생긴 만성 습진으로 엉망이 되었다. 긁고, 비비고, 딱지를 떼어 내면서 생긴 탁한 반점이 손등을 덮었다. 살가죽은 거칠고 두꺼웠다. 투박하게 갈라진 피부는 코끼리의 것처럼 딱딱했고, 이전처럼 반짝거리지 않았다. 더는 아름다운 도마뱀 피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누더기 손. 냉소 뒤에 숨겨둔 간절함. 완치 판정. 버려 둔 기적. 언제까지? 

   해가람은 내 손바닥, 손가락, 갈퀴 사이까지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돌아오는 길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소심한 아이처럼. 그녀는 누더기 손을 잡아끌어 자기 얼굴에 가져다 댔다. 거기에 뺨을 비볐다. 나는 온 힘과 정신을 집중해서 손가락 끝을 살짝 구부리는 데 성공했다. 해가람의 뺨을 쓸었다. 엄지로 눈썹뼈를 만지고, 낮은 언덕 같은 관자놀이께에 머물렀다. 미끄러져 내려가 귀를 쓰다듬었다. 목덜미 부근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있어 해가람도 긴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놀랍도록 부드러운 피부. 밤새 쌓인 눈길을 처음으로 지나가는 차의 타이어 자국처럼, 내 누더기 손이 닿는 곳마다 해가람의 피부에 실금이 남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반대편 손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절망스러운 덩치 큰 동물처럼 그저 웅크리고 있었다. 해가람은 나의 왼손이 자신을 만지도록 두고, 나머지 오른손을 끌어 왔다. 자신의 양손에 내 주먹을 가두었다. 땀마저 뜨거웠다. 열과 어둠에 갇힌 누더기 손이 녹아내렸다. 이제 내 두 손은 해빙되었다. 질질 녹아내리는 열 개의 손가락들이 일하기 시작했다. 악보를 만지고 선율을 읽었다. 우리는 동시에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이불은 조바심을 끝냈다.

   서로의 손을 빌렸다. 나는 해가람의 손을 가져와 썼다. 자신을 위로하듯이. 그 손은 내 것보다 더 내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실타래들이 서로의 신경을 연결한 것처럼, 약속한 듯 모든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손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어딘가에서는, 힘을 빼고 달래듯 쓰다듬어 주었다. 내 손 또한 그녀의 바람대로 일렁거렸다. 네가 원한다면 집요해졌고, 밀어낼 때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으며, 조심스럽게 비집고 들어간 다음엔, 뜨겁고 쿵쿵거리는 벽을 훑으며 내가 왔다는 걸 알렸고, 벽을 이루는 불규칙한 주름들을 빠짐없이 쓰다듬고, 누르고, 긁어냈다. 젖은 손끝이 부풀자, 그녀의 안쪽은 터뜨릴 것처럼 나를 안아 주었다. 

   대합실에서의 사랑. 위로가 전부인 사랑. 각자의 열차가 올 때까지, 몸이 얼어붙기 전에 잠깐 덥히는 용도. 강렬하고 짧은 교감. 일시적인 스파크. 다음을 기대하지 않으므로 가장 높은 화력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순간.

   


*


   네 시.

   곁에는 아무도 없다. 멀끔히 정돈한 베개와 이불. 싸늘하고 건조한 공기. 창밖은 아침을 잊은 듯 어두웠다. 손가락은 다시 굳어 가고 있었다.

   북해도에서 잔을 버린 건 나였다. 유리가 거부한 게 아니다. 집게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마련된 세계가 아직 더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아버지가 내게 기술자가 되라고 말하면 나는 그럴 생각이었다. 어쩌면 늘 그 말을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우리만의 악단을 꾸리는 미래. 천 개의 유리 조각으로 만든 드레스처럼 매번 다른 선율과 리듬으로 이루어진, 연주를 마침과 동시에 악보가 사라지기 때문에 제아무리 끝내주는 곡이었어도 앵콜이 불가능한, 다음 곡으로 넘어가지 않고서야 도리가 없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연주를.

   이불을 걷고, 아래층으로 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손이 완전히 굳을까 계속 마주 비비고 주물렀다. 불이 꺼진 화장실로 들어갔다. 온수를 틀었다. 어둠 속에서 오래도록 손을 녹였다. 마지막으로 차가운 물을 짧게 끼얹어 열기를 식혔다.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 깨어남. 수도를 잠글 때 세면대에 놓인 무언가가 손등에 닿았다.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여행용 칫솔 세트였다. 해가람은 이걸 종종 두고 가곤 했다. 마른 칫솔을 꺼냈다. 뻣뻣한 솔 끝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아직 달고 상쾌한 치약 냄새가 났다.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 냄새를 내 폐의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예전에, 아버지의 칫솔로도 그렇게 한 적이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내가 어떻게 될지 알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알았다. 다 겪고 늙은 것처럼. 동전의 앞면은 서글픔, 뒷면은 고양감. 나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병든 채 늙어 죽을 텐데, 실리카가 폐를 전부 집어삼키는 순간에도 내가 혼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미칠 테니까.

   어떤 사랑은 단 한 번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전부 끼얹어 버리고 싶은 느낌이다. 다른 누군가와 조금도 나눌 수 없으며, 설령 일부를 베푼다고 하더라도, 내가 건넨 빛은 그의 손에 닿자마자 평범한 돌 조각이 되어 버린다. 사랑은 오로지 둘만 아는 언어로 나누는 끝없는 만담이며 모든 형태의 번역을 거부한다. 둘만의 세계에서는 시간도 없다. 무수히 펼친 순간들, 그것들을 각각 고정한 무수한 핀들만이 존재한다. 핀은 영원히 반짝거린다.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 거기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다른 제조공들도 없었다. 애타지 않은 척, 딴청을 피우면서 주인을 기다리던 유리물과 나만 있었다. 유리는 가마 안에서 이미 나체였다. 들끓으며, 지글거리며, 질겅대며 나를 불렀다. 그 주황은 육감적이고, 매혹적이었으며, 그런가 하면 한 번의 커다란 울음으로 원하는 모든 걸 얻어 내는 고집쟁이 어린아이 같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처음으로 파이프를 쥐었다. 나는 너무 작았고, 파이프는 너무 무거웠다. 파이프 끝을 내 어깨에 걸쳤다. 양 손바닥으로 파이프의 중간 부분을 감싸며 들어 올렸다. 무게를 나눈 것이다. 내 몸은 이미 그것을 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비틀비틀 걸었다. 가마 앞으로 갔다. 대단한 열기. 황홀한 숨 막힘. 파이프를 안쪽으로 찔러 넣었다. 유리물을 감아올렸다.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유리와 나. 가마 안은 여전히 주황빛이었다. 유리물이 끓었다. 외벽으로 쓰는 철판을 밀어젖혔다. 퍼져 나오는 열기로 잠깐 숨이 막혔지만, 호흡은 곧 제자리를 찾았다. 취관 중 제일 가벼운 걸 집었다. 나머지 파이프들이 서로 부딪히며 쩔그럭거리는 쇳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가마 안쪽으로 취관을 넣었다. 유리물을 퍼 올리기 전에 가마의 열로 파이프를 충분히 달궜다. 그동안에 나를 기다리는 유리물은 잠투정을 부리듯 보글거렸다. 불 속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를 탐색했다. 양쪽 모두 뜨거워졌을 때, 유리물에 파이프를 찔러 넣었다. 반 바퀴 돌렸다. 뱀이 사냥감을 감싸듯 유리물이 파이프를 휘감으며 빙글빙글 올라왔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타오르는 주황빛. 오늘 그 빛에는 예전과 같은 우아함도 신비스러움도 없었다. 오로지 탐욕만 있었다. 포식자의 으르렁거림. 핥는 듯한 시선. 온전히 혼자서 독차지하려는 마음. 문이 열리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는, 길들지 않은 동물의 몸짓. 유리가 다시 나를 가지려 했다. 그때 뒤에 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느낌을 알았다. 거기엔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파이프 끝에 입술을 댔다. 안쪽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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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1
미시적 동물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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