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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 작성일 2025-06-01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주어진 취잿거리였다. 

   인터뷰는 활기찬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내가 질문을 던지면 인터뷰이 중 하나가 말꼬리를 낚아채서는 장황한 대답을 늘어놓았고, 한 사람이 발언을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자주 주제 밖으로 뻗어 나갔다. 나는 녹음기를 켜 놓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것을 듣다가도 한 번씩 끼어들어 원래의 질문을 상기시켰다. 그러다 문득 맞은편 자리의 남학생이 그때껏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가 바로 히데오였다. 준비 중인 연극에 대해서 질문한 다음 모두에게 답변을 청했을 때도 히데오는 가장 늦게 대답했다. 이번 작품은 평범한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교훈적인 내용은 아니고, 입시 제도나 한국의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도 아니며, 그렇다고 『데미안』 같은 소설을 떠올리는 것도 곤란하다고. 그렇게 말한 뒤 히데오가 입을 다물었으므로 나는 그래서요, 하고 다시 물었다. 히데오는 참여 중인 연극과 관련 없는 사실에 대해 말했을 뿐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내놓진 않았으니까.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히데오는 잠시 강의실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골랐고, 그러다 옆자리에 앉은 극작과 학생이 그래도 『데미안』과는 겹치는 지점이 있다고 말을 보태면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바뀌어 버렸다. 이후로도 히데오는 토론회를 구경하러 온 방청객처럼 동기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봤다. 두 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동안 나는 히데오에 대해 ‘수줍음, 자기 확신 ×’라는 낙서를 적어 두었다. 


   히데오를 다시 만난 것은 2학기가 개강하는 8월의 마지막 날, 영상원 지하의 어둑한 강의실에서였다. 강의를 맡은 교수는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벽면 쪽 자리의 학생에게 불을 모두 끄라고 시킨 뒤 빔프로젝터를 켰다. 히데오가 뒷문을 열고 들어온 건 빔프로젝터가 작동하며 푸르스름한 빛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을 때였다. 그는 내 옆자리로 다가와 큼직한 백팩을 내려놓았다. 빈자리가 많지 않았으니 나를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곧바로 히데오를 알아봤고, 히데오 역시 그랬다. 강의가 시작된 지 10분쯤 지나서 히데오는 책상 위로 줄 없는 노트를 펼쳐 두고 “기사 잘 봤어요, 늦었지만” 하고 필담을 건넸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봄날의 인터뷰와 학보에 난 기사, 히데오가 출연한 짤막극에 대한 이야기로 한 페이지를 다 채우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필담을 마무리할 겸, 농담처럼 적었다. 

   - 언젠가 슈퍼스타가 되면 저를 잊지 마세요.

   - 선배가 보기엔 제가 배우가 될 것 같아요?

   - 네 그럴 거 같아요. 

   - 고맙습니다.ㅋㅋ

   - 연기과 학생 같지 않아요. 

   - 그게 좋은 뜻인가요?

   - 당연히 좋은 뜻 아닐까요?ㅋㅋ

   나는 그렇게 적으며 실제로 킬킬댔는데, 복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극 대사를 읊어 대는 연기과 남학생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애들이 멋있어 보인 적이 없었다. 잠시 뒤 히데오가 답을 적었다. 

   - 그렇다면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그다음 시간에도 교수는 수업 시간 내내 강의실을 어두컴컴하게 해 두고 고전영화를 틀어 주었다. 틈틈이 설명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경청하는 학생은 소수였고, 교수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히데오와 나는 스크린 위로 상영되는 고전영화를 흘끗거리며 필담을 이어 갔다. 각자의 학교생활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 히데오는 인터뷰 내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사람답지 않게 제 이야기를 술술 써 내려갔다. 몸을 활용하는 연기과 수업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몸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히데오는 전했다. 나는 나대로 희곡을 쓰는 일과 학보사 기자로서의 고충에 대해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희곡들, 극작과 학생들은 좋아하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들, 새롭게 알게 된 해외의 젊은 극작가들, 그리고 그들을 소개하는 칼럼을 학보사에 기고한 일에 대해 나는 썼다. 토요일에 있었던 어느 보강 수업에서는 전 남자 친구 영도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적고 있었다. 히데오는 ‘헐’이나 ‘ㅜㅜ’ 하고 추임새를 곁들이며 내 이야기를 따라 읽었고, 내 이야기가 다 끝난 뒤에는 여러 페이지를 한꺼번에 넘겼다. 

   - 자, 이제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요. 

   히데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를 쓸었다. 내내 틀어져 있던 영화의 음향 때문에 히데오의 손과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을 리 없는데, 나는 어째선지 그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고 기억한다. 


   히데오의 진짜 이름이 더는 히데오가 아닌 것처럼, 영도 역시 실제로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영도는 영도의 별명이다. 수업 중에 발언할 때마다 스스로를 영화학도라고 강조하여 붙여진 조롱조의 별명. 나는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를 직접 영도라고 부른 적은 없다. 다만 헤어진 뒤로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영도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됐다. 

   영도는 그 수업을 듣는 유일한 타과생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수업, 극작과 전공 기초인 콩트 창작 수업은 원래 타과생이 수강할 수 없는 과목이었다. 다만 영도는 개강 첫날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교수에게 사정사정하여 수강을 허락받았다. 이후 영도는 강의실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다. 적절한 순간에 적당한 농담을 던져 모두를 웃겼고,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고 있으면 어김없이 나서서 발언하곤 했다. 자기 글의 단점을 낱낱이 지적받았을 때도 영도는 기가 죽는 법이 없어서, 쉬는 시간이면 자신의 글이나 의견에 날카롭게 공세를 퍼붓던 학생들에게 다가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였다. 어릴 적에 특별한 백신을 맞아서, 미움받거나 홀대받아도 그다지 상처 입지 않는 사람 같았다. 물론 미움받는 일도 내가 아는 한은 많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영도는 수업이 끝난 뒤 맥주를 마시러 가는 극작과 학생들 무리에 끼어 있었다. 동기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말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주당에, 언제나 술자리의 중심이 되는 사람인 듯했다. 

   물론 수업을 듣던 학생들 중엔 영도를 불편해하는 이들도 몇 있었다. 그들은 영도가 관심을 받으려 애쓴다고, 모두에게 친한 척을 한다고 평가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중간쯤에 있었던 것 같다. 영도 덕분에 날 서 있던 합평 수업의 분위기가 유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행동이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쓴 글들을 읽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수업에선 매시간 2,000자 분량의 콩트를 제출하고 함께 평하도록 했는데, 영도의 글은 늘 레퍼토리가 똑같았다. 젊은 남자가 예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끝내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다는 이야기였다. 내 눈에는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은 영도로, 나머지 인물들 전부는 영도에게 상처나 위로를 주기 위해 등장하는 소품으로 보였다. 영도가 그 레퍼토리에서 벗어난 건 수업이 종강할 즘이었다. 그때껏 한 번도 수정한 글을 가져오는 법이 없던 영도는 서너 편의 글을 고쳐서 제출했고, 처음으로 모두에게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나 역시 그의 글을 칭찬했는데, 놀랍게도 영도는 이 변화는 모두 나의 피드백 덕분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지난 수업에서 수진 학우가 해 준 말이 큰 도움이 됐어요.” 영도는 그렇게 말하고는 좌중의 눈치를 살피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번 글에 대해선 수진 학우님께 박수를 양보하겠습니다.”

   합평이 끝난 뒤 글을 제출한 사람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그 수업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내가 쓰지도 않은 글로 박수를 받다니, 좀 요상하지만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거기서 그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 나는 이 상황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자기 밖의 세계를 상상하지 못했던 남자가 나로 인해 변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사실 영도가 한 일은 쪽글 몇 편을 고치는 것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수업이 끝난 뒤 영도는 내게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칵테일바에 함께 가자고 했고, 나는 영도를 따라나섰다. 나중에 영도와 나는 그 일을 우리의 첫 데이트라고 부르게 됐다. 


   히데오와 함께 처음으로 영상원 건물을 벗어난 건 추석 연휴 바로 직전의 수업을 마치고서였다. 그날 수업은 교수의 사정으로 원래 마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한낮에 끝났다.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서는 동안 나는 바로 지금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제안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도서관 건물 1층에서 열리는 미술원 학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볼 생각인데 같이 가겠느냐고 히데오에게 물었고, 히데오는 좋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햇볕이 환하게 들이치는 영상원 복도를 지나 도서관으로 넘어갔고, 설치미술작품 몇 점을 감상했다. 그런 다음엔 자연스럽게 후문 근처의 쌀국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도를 마주친 것이 거기서였다. 주문한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 밖에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 영도가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남자가 진짜 영도인가 생각하는 사이 후드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던 영도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짧은 순간이지만 나와 영도의 시선이 분명하게 맞부딪쳤다. 사실 나는 그 비슷한 상황, 그러니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영도에게 보여 주는 일을 자주 상상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이 진짜로 닥치자 적잖게 당황스러웠고,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내 상상을 한참 벗어났다. 히데오가 창 너머의 영도 무리 중 하나에게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 잠시 뒤에 히데오에게 인사를 받은 남자애가 가게로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전에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예전에 영도가 나를 소개했던 후배들 중 하나이지 싶었다. 

   “데이트해?”

   그 남자애가 히데오에게 물었다. 만약 그 순간에 히데오가 나에게 눈길을 줬다면, 그 눈길 속에 아주 작은 질문이라도 들어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물론 더 마음 깊은 곳에서 바랐던 건 히데오가 나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데오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무슨. 그냥 밥 먹는 거지.”

   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였고 히데오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유리문을 밀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나는 그 일을 여러 번 되돌아 봤다. 히데오가 이 상황은 데이트가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 순간의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마음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남자애가 영도에게 전했을 말, 그 말을 들은 영도의 반응 같은 걸 끝도 없이 상상하게 됐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는, 놀랍게도 영도와의 첫 데이트를 떠올리고 있었다. 영도와 칵테일바에 갔던 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바텐더가 나에게 옆에 앉은 남자가 남자 친구냐고 물었던 것이다. 

   “노력 중이죠.”

   나와 바텐더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도는 망설임 없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바텐더는 그를 응원한다면서, 말린 오렌지를 한 조각 얹은 공짜 칵테일을 만들어 내 앞에 밀어 주었다. 생각해 보면 영도는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지 알았고, 그 상황이 닥치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영도의 후배가 돌아가자 히데오는 기역 자로 꺾인 비좁은 가게 내부를 요령 있게 오가며 물과 단무지를 담아 왔다. 우리는 필담으로 나누던 대화를 이어 갔지만, 나는 방금 전의 상황에 마음이 붙들려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히데오가 내가 쓴 희곡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였다. 

   “누나네 팀에서 배우 구한다며?” 히데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 연극 지원해 보려고.” 


   히데오가 말한 연극의 제목은 ‘따귀 게임’이었다. 그건 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쓴 여섯 번째 희곡이자 2학년 2학기 전공 수업의 과제였다. 내가 그때껏 쓴 글 중 가장 좋은 작품이기도 했다. 학기 말이면 이 희곡을 낭독극 형태로 공연에 올려야 했는데, 그 공연에 대한 평가가 곧 학교에서 보낸 2년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었다. 연출을 맡은 지윤도 나와 상황이 똑같았다. 우리는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 공연 준비에 대해 의논하곤 했는데 대체로는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 채 잡담만 나누다 헤어졌다. 인물들이 맞고 때리는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지윤의 골칫거리였고, 나는 사소한 뉘앙스를 바꾼답시고 대사를 고치고 또 고쳤다. 무엇보다, 주연 배역 중 하나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는 에브리타임과 학교 홈페이지에 구인 공고를 올려 두었지만 히데오를 만나기 전까지 적당한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 

   그날 나와 지윤, 그리고 히데오는 조촐한 오디션을 치를 예정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도착해 묵직한 자주색 커튼을 걷고 창을 열었다. 그 순간에 밀려들던 가을 공기와 선명하게 보이던 창밖 풍경이 기억난다. 

   히데오는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강의실에 들어섰다. 무릎이 반들반들한 회색 슬랙스에 흰 셔츠,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난 니트조끼를 입고 진흙이 말라붙은 반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작품 속 불량소년과 비슷했다. 히데오는 강의실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뒤 곁에 앉아 있던 지윤이 가볍게 내 허벅지를 두드렸고, 나는 곧 지윤도 나와 같은 생각임을, 우리는 히데오와 함께 낭독극을 올리게 될 것임을 알았다. 

   〈따귀 게임〉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위원회 회의에서 시작되어 거기서 끝난다. 등장인물은 모두 넷인데, 학폭위의 내부 위원인 교사 둘과 학폭위를 요청한 모범 소년, 그리고 학폭위에 회부된 불량소년이다. 모범 소년은 불량소년에게 매일 따귀를 맞았다고 신고했으며 이 혐의는 불량소년도 인정하는 바다. 다만 불량소년은 이 모든 건 모범 소년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작가 지망생인 모범 소년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고, 모범소년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불량소년은 말한다. 그래서 불량소년은 모범 소년에게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기 이야기에 값을 매겨 매일 저녁 모범 소년을 때려주었다는 것이다. 히데오는 불량소년이 되어 자신이 학대받은 이야기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옆에 앉아 있을 가상의 모범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섯 대 반이야. 동의하지?” 

   히데오는 고갯짓을 해서 확인을 받은 다음 의자 밑에 놓여 있던 바람 빠진 농구공을 집어 들고 손바닥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농구공을 잡고 있던 왼손이 공을 때리는 오른손에 힘없이 밀려나고, 히데오는 의자 위에서 휘청거렸다. 오디션용 대본은 거기까지였다. 히데오가 혼자 괴상한 춤을 추는 것 같은 동작으로 정확히 여섯 대 반을 다 때렸을 때 오디션이 끝났다. 히데오가 강의실을 떠난 뒤 지윤은 신이 나서 말했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잠시 뒤 나는 히데오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 사실을 알렸고, 히데오는 괜찮다면 잠시 뒤 저녁을 함께 먹겠냐고 내게 물었다. 

   “그러고 싶은데 영화학도가 볼일이 있대서.” 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재빨리 덧붙였다. “너 한 시잔 정도 기다릴 수 있어?”


   영도는 기숙사 로비에 서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가을이면 자주 입던 무릎까지 내려오는 야상 재킷을 걸치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덥고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그는 어젯밤 늦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내게 빌려준 책을 가져가고 싶다고 전했다. 얼마 전 시작한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에 꼭 필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이참에 그의 물건들을 정리할 작정으로 밤늦게까지 그의 물건들을 추렸다. 혹시라도 물건이 망가져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박스 아래에 다 쓴 이면지를 깔아 두고 우리가 연인이던 시절에 영도가 내게 떠안기듯 건네준 영화 잡지와 책 몇 권, 기숙사에서는 들을 수도 없었던 관상용 음반들을 전부 담았다. 그것들을 모두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상자를 떠안기는 일을 상상하는 동안엔 내심 통쾌하기도 했는데, 내 기대와 달리 영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상자 속에서 자기가 말한 책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영도는 말했다.

   “아 근데, 저번에 너랑 같이 있던 애 있잖아. 걔 일본인이었다가 귀화했다며?”

   “일본 사람이라고? 아니야.”

   나는 히데오가 히데오인 것을 까마득히 모른 채 대꾸했다. 영도는 손에 들린 상자를 한번 추어올리곤 자신 있게 말했다.

   “몰랐나 보네. 연극원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야. 입학 서류 관리하는 교직원한테서 나온 말인데.”

   나는 곧 영도가 이 얘기를 하려고 나를 불러냈다는 것을, 그런 만큼 영도는 자기 말이 진짜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수다스러운 동기들 사이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히데오가 떠올랐는데, 어쩌면 방금 들은 얘기가 그날의 풍경에 대해 무언가를 설명해 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영도는 박스를 뒤적거린 다음 책 한 권을 내게 건넸다. 표지에 저자이자 내가 특별히 좋아하던 영화감독의 사진이 들어간 에세이집이었다. 그 감독이 미투 고발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잠시 뒤, 히데오와 함께 식당을 향해 걷는 동안 듣게 됐다. 우리는 영화와 연극과 그즈음 여러 분야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영도가 말한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히데오의 연기를 거듭 칭찬했다. 내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히데오는 어느 대목에서 진심으로 분노해야 하는지, 어느 대목에서 진심을 숨기고 모범 소년과 교사들을 조롱해야 하는지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히데오는 조금 전 펼쳐 보인 연기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들뜬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본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꼭 하고 싶었어. 나는 항상··· 억울했거든.”

   “억울했다고?”

   나는 저녁 내내 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만지작대던 영도의 이야기를 한 번 더 곱씹으면서 히데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 어릴 때 일본에서 살았거든. 그때 일본 애들한테 맞아서 코뼈가 부러진 적이 있어.”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고?”

   나는 조금 놀란 채로 히데오를 바라봤다. 히데오는 조금 멋쩍다는 듯 고개를 살짝 틀어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한번 부서졌다는 그의 날렵한 콧대가 더 잘 보였다. 그러고 보니 코가 왼쪽으로 조금 휘어진 것 같기도 했다. 히데오가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일본인이었다고, 일본인인 아버지는 여전히 교토에서 지내고 있다고 털어놓은 건 잠시 뒤, 우리가 찾아간 식당이 영업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다른 식당이 나올 때까지 조금 더 걸으면서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이야기를 끝까지 해야겠다는 듯이, 히데오는 제법 긴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했다. 그사이 해가 저물었고, 불그스름한 가로등 빛이 길 위로 드리워졌다. 우리는 소음방지벽으로 가로막힌 1호선 철길을 따라 외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그 배역도 꼭 하고 싶었어. 나도 사람들을 좀··· 때려 주고 싶었어.”

   히데오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때려 주고 싶었다는 것이 이 야이기의 결말이자 〈따귀 게임〉의 불량소년 역에 지원하게 된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 말은 그때껏 내가 어렴풋이 알던 히데오가 할 법한 말이 아닌 듯해서 나는 좀 당황했다. 물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괴롭힘당했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다는 히데오의 얘기를 방금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히데오의 억울함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의 내게 히데오의 억울함은 너무나 멀리 있는 감정이었던 데다, 다소 낭만적으로 들리는 면까지 있었다. 내가 조금 당황하고 놀란 채로 애꿎은 지도 앱을 들여다보며 적당한 식당을 찾고 있을 때, 히데오가 이것 좀 보라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에 힘차게 농구공을 때린 탓에 히데오의 손바닥이 발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피부가 아직도 오돌토돌해.”

   히데오는 그렇게 말하며 한번 만져 보라는 듯 손바닥을 내 쪽으로 미세하게 돌려 주었다. 나는 히데오의 손바닥을 검지로 쓸었다. 과연 농구공 표면의 자잘한 돌기가 히데오의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히데오가 〈따귀 게임〉에 캐스팅되고 며칠 뒤, 처음으로 팀원 전원이 모인 대본 리딩이 있었다. 연출자와 작가, 네 명의 배우가 연극원 1층 연습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연습에 앞서, 지윤은 학기 말 공연에서는 발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중식당 같은 데서 현관에 걸어두는 발이요. 모범소년, 불량소년 사이에 놔둘 거예요. 두 분이 손이나 어깨로 발을 건드리면 발에 걸린 대나무나 유리가 부딪치면서 소리를 낼 수 있게요. 그 순간에 타격음 효과도 줄 거고요.”

   곧 교사1 역을 맡은 배우가 초기 지문부터 낭독을 시작했다. 지문이 대사로 넘어가고 대사들이 대화로 바뀌었다. 교사들이 모범 소년과 불량소년이 벌여온 따귀 게임을 설명한 다음 마침내 불량소년 히데오가 등장했다. 

   “모든 것은 모범 소년의 요청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희는 거래를 한 거예요. 저는 제 고통을 모범 소년에게 나누어주고 모범 소년은 뺨을 내주는 거죠.” 

   히데오가 말했고, 곧바로 모범 소년이 반박했다. 

   “하지만 그 거래는 신뢰와 정직을 바탕으로 합니다. 불량소년은 이 약속을 깨뜨렸어요. 불량소년은 매일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일을 따귀로 환산해서 저를 때리기로 했지만, 그 애 아버지는 5년 전에 죽었더군요.”

   “아버지는 없지만, 제가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건 없던 일이 되지 않아요. 저는 정확하게 제가 당한 만큼만, 그 고통을 따귀로 환산하여 모범 소년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저는 고통을 엄청나게 덜어 냈어요. 제가 당한 그대로 저 약해빠진 애한테 했으면···.” 

   히데오는 맞은편에 앉은 모범 소년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즈음엔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히데오에게 푹 빠져 있었다. 몸에 비해 조금 커 보이는 체크남방을 입고 연습실의 나무 바닥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히데오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는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때도 히데오가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히데오는 나를 좋아했지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그의 감정이 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한 주에 두 번씩, 팀원 전원이 참석하는 대본 연습이 끝나면 히데오는 정해진 순서처럼 나에게 함께 걷기를 청했고, 걷는 동안엔 그때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주곤 했다. 한국의 초등학교로 온 뒤 얼마나 열심히 한국어 발음을 연습했는지, 일본인 아버지에 대해 어떤 거짓말들을 지어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어찌나 피곤했는지.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나도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마음이 됐다. 돌이켜 봐도 그 대화에는 분명 지나치게 내밀한 구석이 있었다. 히데오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마주했던 여러 일들도 들려주곤 했다. 학창 시절 내내, 역사 시간이나 국어 시간에 들려오던 일본에 대한 말들, 혐오나 경멸로 범벅이 된 말들을 히데오는 자주 들었고 모두 기억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히데오는 한국인 어머니를 모욕하며 자신을 괴롭히던 어린이들과 교내 일본어 강사를 쪽바리라고 부르던 고등학생들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일을 똑같이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도 인종차별이 맞지. 아니면 그걸 뭐라고 해?”

   나는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대꾸했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혐오하는 일, “쪽바리”니 “섬숭이”니 하는 말들은 당연히 인종차별이 맞겠지만 한국인이 일본과 일본인을 싫어하는 걸, 그저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히데오 역시 그런 점을 모르지 않았다. 

   “한국이랑 일본 사이엔 과거가 있잖아.”

   히데오의 이야기는 늘 그렇게 끝났고, 그러면 우리는 연극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곤 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과거가 있고 그것은 전혀 청산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죄를 히데오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고등학교 일어 교사가 공공연하게 쪽바리란 말을 들었던 것은 인종차별이고 제노포비아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의 히데오에게는 그런 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겠지만. 


   리허설 날 무대에는 비즈로 만든 발이 설치됐다. 나와 지윤은 리허설 며칠 전부터 남대문 시장을 돌며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을 가진 비즈들을 사 모았고, 이틀 밤을 새워 가며 배낭 가득 담아 온 비즈를 여러 조합으로 꿰었다가 풀었다. 마침내 완성된 발은 불량소년과 모범 소년 사이에 놓였다. 불량소년이 손을 뻗어 모범 소년을 때릴 때 관객들에게 급작스러운 빛을 반사하는 효과를 줄 수 있도록. 지윤은 그렇게 해서 관객들이 산란하는 빛에, 지윤의 표현에 따르면 빛의 폭력에 노출되길 원했다. 

   히데오와 모범 소년은 같은 교복을 입고 무대 중앙에 앉았고, 교사1, 2 역을 맡은 배우들이 그 양옆에 앉았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지윤은 발과 조명의 위치를 여러 번 조정했다. 지윤과 그날 하루 우리를 도와주기로 한 무대미술과 선배가 비즈발과 조명의 위치를 미묘하게 바꾸며 조명을 껐다 켜는 동안, 나는 거의 텅 비어 있는 객석 한가운데에 앉아 어떻게 했을 때 찰랑거리는 비즈발이 가장 눈부시게 빛을 반사하는지를 알려주었다. 

   “환한데 그냥 예쁘게 보여!”

   “잠깐 반짝거리기만 해!”

   “아주 환해!”

   마침내 환한 빛이 어둑한 소극장에 번쩍이고 저절로 눈이 감기고 눈꺼풀 안쪽에 박힌 빛의 파편이 눈을 파고들었을 때, 나는 머리 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그리고 환한 빛 속에서 히데오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 언젠가 히데오가 내게 말해 준 또 다른 히데오였다. 

   

   히데오가 또 다른 히데오에 대해 들려준 건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저녁, 오래 걷는 대신 연극원 건물 앞 평상에 앉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이 나와 히데오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빛이 사라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히데오는 샛별이 보이겠다고 중얼거리고는,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밤하늘을 찰칵찰칵 찍었다. 잠시 뒤에는 급작스럽게 진로를 바꿔 경기도 안양에서 강남의 연기학원을 오가던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의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잠들어서 내릴 역을 한참 지나쳤던 적이 있었는데.” 히데오는 말했다. “일어나 보니까 창밖이 새카매서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리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이혼 안 하고 다 같이 나고야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나고야. 히데오와 히데오의 부모가 완전한 일본인이 되기로 약속했던 곳. 나는 히데오의 이야기에 뭐라 답하지 못한 채 히데오를 바라봤다. 이윽고 히데오가 내게 물었다. 

   “누나는 내가 만약에 나고야에서 살았으면 어땠을 것 같아?”

   “나고야에서 살았으면··· 지금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넌 그때도 비밀을 갖고 있겠지.”

   히데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겠지? 근데 나는 계속 생각했어. 엄마 아빠가 다 일본 사람이면 내가 어땠을지. 한국 사람이면 어땠을지. 누나 생각엔 어땠을 것 같아?”

   “그러면 너는 지금의 히데오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얼마 전 봤던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 양자경 나오는 영화 있잖아. 거기 나오는 여러 가지 자아들처럼 약간 다르고 비슷하고, 그렇지 않을까?”

   히데오는 자기도 그 영화를 봤다면서 밤하늘을 찍던 휴대전화로 영화 이미지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영화 속 양자경의 이미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있잖아, 누나,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히데오는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이 내게는 상처받지 않은 자신, 따돌림도 비밀도 없는 성장기를 가지고 싶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리고 나는 거의 직관적으로 영도를 떠올리게 됐다. “그런 사람은 좀… 끔찍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영도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페미니즘 영화를 둘러싼 기이한 토론이 있었다고 나는 말했다. 영도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 영도는 어떤 단편 영화제의 수상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어떤 남자 감독들은 비평가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페미 영화”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럼 페미니즘 영화는 여자 감독들만 만들어야 해? 그건 아니지.”

   내가 그렇게 묻자 영도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여자 감독들이야 피해의식에 찌들었으니까 페미 영화 같은 걸 만들지.” 

   영도는 누군가가 페미니즘에 진지한 관심을 갖거나 페미니즘을 통해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도와 사귀는 내내 나는 영도에게 그 가능성을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영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사실 영도와의 이런 일화는 끝이 없었다. 영도와의 반년 남짓한 연애는 이런 대화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히데오는 내가 말한 영도가 끔찍하다는 데에 동의했지만, 내가 왜 자신과 영도를 연결시키는지, 어째서 또 다른 자신이 영도 같은 사람이 되었으리라고 짐작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상처받지 않은 자신, 따돌림도 비밀도 없는 성장기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어떤 이유에서 두 사람을 이어 붙이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대화는 잠깐 중단됐고, 잠시 뒤 히데오가 중얼거렸다. 

   “진짜 별 보이겠다.”

   몇 분 뒤에 정말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연 당일, 히데오는 누구보다 빛을 발했다. 우리 팀의 다른 배우들은 물론이고, 연극원 학기말 공연 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배우라고 해도 좋았다. 그때 그가 겨우 스무 살이었고 연기과에서 이제 막 두 학기를 보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따귀 게임〉 공연 이후 히데오는 연극원에서 제작되는 몇몇 작품에 불려 다니며 연기과에서 가장 바쁜 학생이 됐다. 영상원 학생의 졸업작품에도 출연했는데 그 영화가 국내 영화제들에서 주목받으며 스크린 데뷔에도 성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히데오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고 몇 번의 긴 통화를 했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연락 횟수도 서서히 줄어 갔다. 내가 히데오를 다시 본 것은 히데오가 긴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였는데, 그때 나는 졸업을 보류한 채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졸업작품을 쓰고 있었다. 개강하고도 거의 한 달이 다 지났을 무렵, 히데오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는 일 년 넘게 히데오와 아무런 왕래가 없었던 때였으므로 나는 꽤 오랫동안 휴대전화 화면에 뜬 히데오의 이름을 바라봤다. 

   “누나. 잘 지냈어?”

   마침내 휴대전화 화면을 밀자 히데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히데오는 예전에 우리가 가려다가 가지 못했던 식당 이름을 기억이 나느냐고 내게 물었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히데오와 함께한 거의 모든 것을 나는 소중하게 간직했으니까. 

   “거기 가 볼래?”

   히데오는 그렇게 물었고, 잠시 뒤 도서관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예전처럼 걸었고, 나는 히데오에 대한 마음이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씁쓸하게 깨달으면서 히데오의 안부를 물었다. 히데오는 최근에 치른 몇 번의 오디션 이야기를 들려줬고, 요즘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어제 학보사와 인터뷰를 했다고, 이제는 학보사 일을 하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만둔 지 한참 됐지.” 나는 말했다. “인터뷰에서 무슨 얘기 했는데?”

   “이런저런 얘기. 〈따귀 게임〉 얘기도 했고. 아, 그리고 나 어렸을 때 얘기도 해 줬지.” 히데오가 대답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

   나는 조금 놀란 채로 히데오를 바라봤다. 히데오는 심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나는 히데오의 비밀이 더는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의 동기들이며 함께 일한 연극원 사람들 대부분이 그가 한때 일본인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히데오는 설명했다. 

   “너 되게 편해졌구나.”

   내가 말하자 히데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일에 집착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좀 웃겨. 그땐 무슨 대단한 비밀처럼 생각했는데.”

   나는 조금 놀란 채 히데오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바라봤다. 

   “그럼 넌 이제 비밀이 없어?”

   히데오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새로 생긴 비밀이 아주 많지.”

   히데오는 새로운 비밀들을 말해 줄 용의가 있어 보였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히데오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졸업 후에 나는 공연예술 소식을 전하는 잡지사에서 반년쯤 기자로 일했고, 그런 뒤에는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자로 여태까지 일하기 시작했다. 지윤도 소규모 영상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다. 한때 우리는 〈따귀 게임〉을 수정해 낭독극이 아닌 정식 공연으로 올리는 일을 골몰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연극인 〈따귀 게임〉에 참여했던 사람 중 전공과 관련된 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히데오가 유일하다. 얼마 전에 그는 촉망받는 신인 감독의 영화에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이제 히데오는 그를 찾는 인터뷰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하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심각한 이지메를 당했다고 고백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보낸 학창 시절이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제 더는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를 히데오라고 부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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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7-01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최재영 가끔 인생이 내게 애벌레가 파먹는 중인 사과를 베어 물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선 오늘도 전 세계 기아들이 굶고 있고 남미 쿠데타 정부의 진압 몽둥이에 시민들이 맞고 있으며 전장의 포탄은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 집 안방엔 세 살 연상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비록 내일이면 공룡 박사 딸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흉내 내며 내 턱에 박치기를 날릴 것이고 아내는 원시인 사냥꾼처럼 괴성을 지르며 딸을 쫓을 것이지만··· 서른여섯 살의 나는 대한민국 성남시의 아파트에, 지금 여기에, 우리 세 가족과 잘 있고, 그것참, 다행이다. 내가 베어 문 사과 반쪽에 벌레가 없어서. 뉴스에 어느 북한군이 등장한 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장이었다. 한 북한군이 부상 때문에 낙오했는지 홀로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러시아 것인지 우크라이나 것인지 모를 드론이 공중에서 그를 촬영하고 있었다. 곧 드론은 부드럽게 수직 하강하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쓰으윽- 줌인 됐다. 뉴스 진행자와 패널들이 호들갑 떨었다. “너무나 리얼합니다!” 무슨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오바하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코웃음 치며 손에 든 캔맥주를 쓰으윽- 들이키려다, 멈칫했다. 아는 사람 같았다. 낯이 익었다. * 약 15년 전 여름, 나는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 6여단 영창에 15일간 구금되어 있었다. 죄명은 후임 폭행이었다. 막 상병이 됐을 때 생긴 일이었다. 영창의 개인 감방에 들어서자 정말이지 감옥처럼 생겨서(정말 감옥이긴 했지만)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커덩 자물쇠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스물한 살에 인생이 망해 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감방 철창 너머론 건물의 입구와 헌병 하나가 근무하며 감시하는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을 기준으로 네 개의 감방들이 반원을 그리며 각각 1호 창, 2호 창, 3호 창, 5호 창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4호 창은 없었다, 해병대에선 숫자 4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3호 창에 수감됐다. 감방 안에 앉아 있으면 보이는 건 꾹 닫힌 건물 문, 그리고 중앙의 그 헌병밖에 없었다. 양옆의 다른 감방들은 시야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1호 창과 5호 창에도 수감자가 한 명씩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단 2호 창만은 비어 있다고 했는데 폭행 사건이 일상적이라 항상 미어터지던 백령도 해병대의 영창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듣기론 당시 북쪽 상황이 심상치 않아 각 부대들의 징계 절차가 보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방 안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했다. 폭은 누워서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안쪽으로 세 걸음 가면 구석에 수도꼭지를 비롯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일명 고무신 변기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의 아담한 담만이 가림막을 해 주었다. 큰 것이든 작은

  • 관리자
  • 2025-07-01
프레살레

프레살레 반수연 홍은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솜씨 좋게 빠져나갔다. 홍을 놓칠세라 일행들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공항은 번잡했다. 챙이 넓은 홍의 검은색 모자는 인파 사이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다. 모자가 사라질 때마다 짧은 불안이 스쳤다. 우리 중 누구도 파리에 처음 오는 이는 없었다. 정아는 작년 패션 위크에도 왔다고 했다. 하지만 출구로 빠져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홍을 만난 순간, 홍이 웰컴 투 패리스, 라며 환하게 웃던 순간,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라며 농담과 카리스마가 뒤섞인 환영 인사를 건네는 순간, 홍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깃발이 되었다. 몇 개의 건물과 긴 복도를 통과해 홍이 예약해 둔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미리 맡겨 두었다는 홍의 짐이 사무실 모퉁이에 쌓여 있었다. 각지고 거대한 두 개의 캐리어, 명품 마크가 선명한 가죽 배낭과 보스턴백, 두 개의 쇼핑백도 포개져 있었다. 캐리어 계의 에르메스라는 바로 그 리모와 아닌가요? 색깔 너무 이쁘다. 이삿짐을 떠올리게 하는 홍의 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나와는 달리 정아는 레몬색 캐리어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자기야,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에르메스야 버킨 말고는 뭐가 있나. 홍과 정아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며칠 전 정아가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를 떠올렸다. 유럽 항공은 수하물 분실이 잦으니 위탁 수하물 없이 기내용 캐리어와 작은 손가방으로 짐을 제한해요! 정아는 해당 항공사의 기내 반입 수하물 규정을 캡처해서 올리며 당부했다. 같은 옷을 이틀 연달아 입거나, 옷과 콘셉트가 맞지 않는 신발이나 가방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정아가 분실이 두려워 그런 제안을 한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정아는 홍의 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아가 홍을 위해 우리 짐을 단속했다는 사실보다 진실의 내막을 뒤틀었다는 것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독일제 7인용 SUV 차량의 마지막 3열을 접어 트렁크의 공간을 넓혔다. 홍의 캐리어를 먼저 싣고 그사이에 네 개의 기내용 캐리어를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뺐다 씨름하느라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어찌어찌 짐을 욱여넣고 나니 트렁크는 룸미러로 후방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찼다. 배낭이나 손가방은 발아래에 두거나 안고 타면 될 거라고 홍이 운전석으로 올라타며 말했다. 나는 노트북과 파우치와 책이 담긴 배낭을 가슴에 안고 뒷좌석에 올라 안전띠를 당겨 맸다. 짐과 사람이 뒤엉켜 숨 쉴 공간마저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답답함이 불안으로 바뀌며 숨이 가빠 왔다. 다른 일행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프로작을 한 알 꺼내 입에 물고 창을 조금 열었다. 약기운이 신경을 눌러 주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파리는 오전 열한 시, 한국은 오후 여섯 시였다. 지금쯤이면 윤수는 일어났을 것이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김치찌개 있어. 냉동실에 육개장도 얼려 두었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신발을 신다 말고 식탁에 앉아 짧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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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조이

    인물에 관해 느끼는 깊이는 그 사람의 개인적 서사에서 유래하기보다는 관찰자의 느낌과 감정 상황에 좌우된다?!

    • 2025-06-09 23:08:21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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