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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워터

  • 작성일 2025-07-01

   헝가리 워터


홍성구


   은수는 자신을 대학주보 기자라고 소개하였다. 나와 동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걸로 봐서는 한국적 정서에 기대는 MZ인 듯했다. 속단하는 부류에 드는 건 꺼림칙하지만, 곤란할 때는 한국식 정을 부르짖다가 느긋할 때는 서양식 합리를 따져 보는 MZ를 몇몇 봐 온 탓에 스마트폰 너머에서 이제 막 알게 된 후배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른 것은 오히려 경계심이 들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성사되었다. 은수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남자 조향사라서 관심이 생겼어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향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일까. 남자가 조향사라는 게 관심이 생길 만한 일인가.

   인터뷰하러 온 은수는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았다. 그녀의 나신(裸身)에 미간이 찌푸려졌을 것이다. 향수는커녕 화장수조차 뿌리지 않았다니. 매일 밤 샤넬 No. 5를 입고 잠든 마릴린 먼로가 알았다면 야만적이네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얀 치맛자락을 바람에 날리면서. 어떠한 향도 느끼지 못했다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은수의 반소매 니트 티에서 플로랄 계열의 향이 풍겼다. 흔한 싸구려 섬유유연제 냄새. 합성 향료의 조악한 외피를 두르고 있으니 누더기 정도는 걸치고 있는 건가. 나와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는 은수의 말이 진심인지 의심이 들었다. 은수는 향수에는 문외한인 데다 향수를 뿌리는 문화적 행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야생의 신입생처럼 보였다.

   인터뷰는 지루하고 단조로웠다. 은수는 예상이 가능한 질문의 목록을 들추었고, 나는 잡지인지 유튜브인지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인터뷰 답변을 하나둘 꺼내서 내놨다. 하품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그러나 은수가 노트북 화면을 덮자 드러난 그녀의 오른손 때문에 졸음기가 싹 사라졌다. 저런 손으로 타이핑한 건가. 은수의 오른 손목 부근에서 검지에 이르는 데까지 초록뱀 한 마리가 몸을 펼치고 있었다. 은수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려다가 뭔가 잊은 게 있는지 화면을 다시 열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화면은 바닥에서 15° 정도 위로 펼친 탓에 초록뱀이 키보드를 누비며 꿈틀거리는 게 여실히 보였다. 은수가 검지를 까닥일 때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아닌지 움찔 몸서리가 났다.

   마을에서 독수리 삼촌, 용 삼촌, 호랑이 삼촌으로 불리던, 혈연이 아닌 삼촌들이 떠올랐다. 친숙함의 범위에서 한껏 벗어나 있지만, 두려움의 실체를 덮으려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정반대의 호칭을 얻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독수리,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당장 달려들 듯 노려보는 호랑이가 등에 새겨진 삼촌들. 대중목욕탕의 온탕에서 독수리, 용, 호랑이가 물 파편을 튀기며 솟구치면 따뜻한 물속인데도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유독 샅이 근질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삼촌이라고 부르라 하고 정작 그네들은 육시랄 놈, 벼락 맞을 놈, 급살 맞을 놈, 욕했다. 호랑이 삼촌이면서 육시랄 놈이 나를 불러 세운 기억이 난다. 다섯 살 연상인 그는 한참 어른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에게 그가 물었다. 요새 너 괴롭히는 놈 있냐. 나는 눈에 보일락 말락 도리질했다. 괴롭히는 놈 있으면 언제든 말해. 그는 호랑이처럼 기세를 올리려고 했지만, 그의 눈은 산군처럼 매섭기는커녕 알코올에 푹 담긴 듯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그의 눈이 왜 그런지는 바닷바람이 알려 주었다. 지독한 본드 냄새.

   정리가 끝났는지 노트북이 닫혔다. 차 한 잔 내어놓지 않았다는 뒤늦은 생각이 따랐지만, 사소하고 의례적인 미안함은 금세 취소되었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은 은수는 내 눈치를 살피는 듯 뭐 하나 사적인 걸 물어봐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럴 때는 질문을 안 받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마흔을 지나면서 사람들한테 매정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사람한테는 더더욱. 나는 다시 볼 일 없으리라는 마음으로 허락의 눈빛을 보냈다.

   “혹시, 교동 출신이세요?”

   은수의 입에서 서해 NLL에 접경한 작은 섬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학연에 이어 지연이라니, 정말 최악이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구독 설정한 채널을 훑었다. 주식, 코인, 지식, 인테리어, 야구 채널들이 좌르륵 왼쪽으로 밀려 나갔다. 잡(job)위키. ‘ㅈ’과 ‘ㅟ’의 곡률을 부각한 폰트가 눈에 들어왔다. 채널에는 다양한 직종이 소개되어 있고, 3개월 전에 업로드된 조향사 편에 내 얼굴이 섬네일로 박제돼 있다. 당시 유튜버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40대의 남자 조향사라서 특별해 보인다고. 그는 향수로 목욕한 듯한 사람이었다. 향수를 냉수 마찰하듯 뿌려서 엘리베이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타인의 숨구멍을 막는. 그가 뿌린 향수 베이스에는 비버가 들어 있는데, 비버는 누군가에게는 친숙한 살냄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비릿한 동물원 축사 냄새이다. 물론 다른 향료와 적절히 배합되면 매력적인 향이 되지만 호불호가 심한 향수로 목욕하는 것이 특히 별스러운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던 것 같다.

   탑노트는 거울 속의 나예요. 코끝에 가장 먼저 닿지만 휘발성이 강해서 탑노트는 사람들은 모르고 나만 느끼는 향기로 남기도 해요. 거울 속에는 사람들이 아는 나와 모르는 나가 있는 것처럼. 시트러스, 허브, 그린이 탑노트로 쓰입니다. 미들노트는 사람들에게 내미는 악수예요. 사회생활에서 사람들이 내게서 느끼는 향기죠. 타인이 나를 보며 떠올리는 이미지인 셈이에요. 미들노트에는 플로랄, 스파이시, 푸르티가 있어요. 라스트노트는 오래된 기억이에요. 휘발성이 낮아 가장 오래 풍기는 향이죠. 잊은 듯 잠잠해도 어느덧 떠오르는 기억처럼 은근히 감도는 게 특징입니다. 우디, 머스크, 발삼이 라스트노트를 장식합니다. 조향은 악보를 그리는 일 같다고 화면 속의 나는 말한다.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조향과 작곡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탑, 미들, 라스트가 나뉘지 않고 어우러지는 게 하나의 장엄한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지네요. 특히 별스러운 유튜버는 흥분한 톤으로 아는 척했다. 향수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 게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나에게 물었다. 그럼, 결국 창작을 하시는 건데, 조향사님 창작의 뿌리는 뭘까요? 화면에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나는 분명 당황했었다. 생태적이든 환경적이든 나에게 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교동이요. 어이없게도 대한민국 지도에서 없어졌을지 모를 섬 이름을 내뱉고 말았다. 유튜브 화면을 껐다. 뒷부분에는 교동이 어디에 박혀 있는 섬인지 거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맡은 냄새들은 어떠했는지, 설명이 이어진다. 설명의 끄트머리에서 말했던 듯하다. 교동은 내 향수의 뿌리라고.

   교동에 관한 내 말은 거짓이다. 순도 100%의 거짓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유튜브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라고 해도 저렇듯 뻔뻔하게 거짓을 늘어놓는 게 가능하니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순도 100%의 거짓일까. 아주 오랜만에, 똥물처럼 누래서 황해라고 불린 서해를 건넌다. 강화도 선착장에서 벙커시유 냄새가 두개골을 두드리는 여객선을 타야 닿을 수 있는 교동도. 교동은 비렸다. 여느 섬이나 마찬가지로. 섬 전체에 비릿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둥둥 부표처럼 떠다녔다. 그런 냄새가 뒤덮인 생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생선의 결말이었다. 나는 서서히 썩어 갈까 봐 두려웠다. 썩지 않는다면 해풍에 고요히 건조된 삶이 기다릴 터였다. 바다에서 난 것들은 모두 썩거나 마르거나 비릿한 냄새가 났다. 비릿해서 비루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발버둥을 쳤다. 그 덕분에 조향사가 되었으므로 교동이 내 향수의 뿌리라는 말이 100% 거짓은 아닐 수 있겠다.

   내 몸에서 날지 모를 비린내를 지우려고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향수를 뿌리는 행위는 내 삶의 기반을 뒤집는 저비용 고효율의 방식이었다. 지워야 할 냄새는 많았다. 좁은 방에서 건조되던 퀴퀴한 메주 냄새. 마당에 펼쳐져 졸아들던 매운 고추 냄새. 계사에 들붙어 있던 닭 누린내와 고릿한 똥 냄새. 논을 둘러싸고 펼쳐진 길의 메마르거나 축축한 흙냄새. 영농철을 앞두고 태워지던 매캐한 지푸라기 냄새. 높게 쌓인 더미에서 밀려들던 구린 두엄 냄새. 급수 장치가 없는 재래식 변소의 묵은 암모니아 냄새. 외할머니의 조끼와 왜바지에 들러붙어 있던 쿰쿰한 노인 냄새. 볕이 좋은 날에도 춥고 건조한 날에도 외할머니와 내가 살던 집에 늘 살고 있던 꿉꿉한 가난의 냄새. 그 지긋지긋한 냄새들이 없었어도 나는 조향사가 되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향수로 신분을 세탁한 셈이다. 이제는 나에게서 교동의 냄새를 맡는 사람은 없다. 신분 세탁이 꽤 훌륭했는지 반대편으로 오해를 사기는 한다. 조향사님은 파리 어디 대학 나오셨어요? 와인 동호회에 개근 도장을 찍는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소르본에 있었을 때가 내 인생의 베스트였잖아. 나, 매일 아침 바게트를 샀는데 바게트가 길쭉해서 들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바게트만 넣을 수 있는 바게트 가방을 샀다니까. 그 가방 메고 소르본 대학교까지 자전거 타고 갔어요. 사람들이 정말이냐며, 그런 가방이 진짜 있는 거냐며 뜨거워졌다. 진짜 그런 가방 있었고요. 그게 파리지앵 사이에서 유행이었다니까. 안 그래요, 조향사님? 여자는 사람들의 반응에 고무되었는지 오른 손목에 스냅을 주면서 나에게 검증을 요청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주목받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터라 명쾌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매일 아침 바게트를 사는데요. 합정동에 있는 파리 제과점 바게트만 먹어 봐서··· 바게트 가방은 본 적이 없네요. 향수의 본고장은 프랑스인데, 그러면 어디 유학···? 여자는 오지랖이 바게트처럼 길었다. 어찌 됐든 또 한 번 주목받았으므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대한민국 민간기관에서 자격증 딴 순수 국내팝니다.

   와인 동호회는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생활의 놀이터였다. 향수 공방을 운영하면서 향료 업체 관계자와 향수 구매자를 접하지만, 조향 작업은 혼자만의 일이라 나에게는 사회생활이랄 게 없는 편이다. 물론, 나는 관계 지향적이지 않아서 조제실에서의 시간은 오래 입은 옷처럼 편했다. 그러나 가끔 너무 편한 옷만 입고 생활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야구의 투수처럼 한쪽 어깨만 사용해서 다른 한쪽은 퇴화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균형 감각을 조금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 라는 심정으로 와인 동호회에 가입한 것이다. 하지만 동호회 모임에 한두 번 참석했을 때부터 상대적으로 근육이 빠진 쪽의 어깨를 혼자서 돌려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단체는 와인 동호회라는 집단에 피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인상이 결코 편견이 아님을 증명하는 곳이었다. 허세를 부리는 자, 과시하는 자, 자존심을 앞세우는 자, 내용은 빈곤한데 형식만 요란한 자, 자화자찬에 빠진 자 들이 종합 선물 세트로 포장돼 있었다. 나는 일찌감치 와인의 향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와인 품평은 사람들과 나누되 혼자서 속으로 사람들을 품평하기로 작정하였다.

   동호회장은 종합 선물 세트를 종합한 듯한 자였다. 요란하게 허세와 과시를 떨었고 번드르르한 말주변으로 모임을 주름잡는 걸 즐겼다. 와인을 호로로록 시끄럽게 넘기며 치즈 플래터에서 치즈 한 조각을 집어삼키며 동호회장은 말했다. 발효에도 격이 있어. 치즈는 맛이 고상하고 우아하잖아. (쩝쩝거리면서 고상은 뭐고 우아는 무슨) 요새 K-팝이다 K-푸드다 떠들썩한데 너무 웃기지 않아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할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뜻은 알고 쓰는 말이냐) 청국장 따위 왜 먹나 몰라. (서양인들이 쌈장에 환장하는 거 몰라) 냄새가 웁스! (네가 찬양하는 치즈 중에 똥냄새 나는 거 많아) 냄새가 나왔으니까 우리 조향사님한테 물어봐야겠다. (나를 너와 우리로 묶지 마 그건 네가 혐오하는 K-컬처라고) 향수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악취 나는 것들 너무 싫지 않아요? (난 네가 싫어) 글쎄요. 청국장 냄새를 악취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악취가 있어서 향수가 생겨났으니 싫다고 말 못 하죠. 아니, 그런 유래를 따지지 말고 미적인 관점에서 말해 봐요.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아름다움이 별건가요. 청국장 냄새도 향기일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구수하고 힐링이 되니까. 에이, 그건 아니다. 아름다움은 누구나 지지하는 절대성이 있어야지, 나처럼. 동호회장은 유머로 받아들여 달라는 건지 제 말에 호응해 달라는 건지 옆에 앉은 회원들을 유혹하듯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깔깔거렸다. (너, 제정신이냐)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고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절대적인 추함 아닐까요. (어때, 타격감이 좀 있지)

   나의 유사 사회생활은 한 달 만에 끝났다. 삶은 다시 먼지 낀 고서가 놓인 책장처럼 고요해져 갔다. 그런데 은수가 나타난 것이다, 다시.

   “신문 배달왔습니다.”

   우편으로 올 거라는 신문이 인편으로 도착해 있었다.

   “신문 배달은 택배랑 달라서 이렇게 직접 주지 않는데···.”

   은수의 얼굴이 푹 꺼져 버렸다. 동문이자 동향인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신문을 고이 접어서 가방에 넣고 직접 건네는 순간을 떠올리며 부풀렸을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은수의 실망하는 낯빛을 보고 이번에는 차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서야 은수의 표정이 풀렸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보며 은수는 말했다.

   “저는 한겨울에도 뜨거운 커피는 잘 못 마시겠어요.”

   “아, 얼죽아. 그러면 이가 시리지 않나.”

   “설마 이가 시리세요?”

   은수의 톤이 올라갔다.

   “사실 내 이빨 다 임플란트야.”

   살짝 입을 벌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쯤 되면 은수가 그만두리라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정말요? 벌써 그렇게 되셨구나. 근데 감쪽같아요. 말씀 안 하셨으면 몰랐을 거예요.”

   갑자기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때의 내 표정은 계단을 오르다가 무릎이 시려 그만 주저앉아 버린 사람의 그것이지 않았을까. 잠시 정적이 찾아왔고 뜨뜻미지근해지는 커피의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나는 눈빛으로 그 용건을 물었다.

   “엄마 냄새가 필요해요.”

   냄새를 기억하겠다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다르게 말하면 냄새로 기억하겠다는 것이려나.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의 정수리에서 맡았던 꼬순내. 전입한 첫날 낯설고 어색한 공기에 번지던, 새 짝꿍이 내민 사탕의 민트 향. 오랜 고백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잡은 손에서 얼핏 풍긴 연인의 비누 냄새. 내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내놓은 사람들은 내게서 라벨링된 기억을 받아들고 돌아갔다. 라벨이 붙은 향수를 뿌리면 과거로 부메랑이 날아간다. 부메랑이 기억을 찾아 돌아오는지 돌아오지 못하는지 여부는 조향사의 몫이라고, 사람들은 여긴다. 그러나 과거의 냄새를 정확히 묘사해 내야, 묘사된 향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야 기억은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기억을 부르려면 냄새를 정확히 기억해 내야 한다.

   “엄마한테서 어떤 냄새가 났는데?”

   내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은수는 무척 당황한 낯빛이었다. 잠시 뒤에 간신히 내놓은 대답이 이랬다.

   “그냥‧‧‧ 뭐‧‧‧ 보통 엄마한테서 나는 냄새?”

   “보통의 엄마들한테서 어떤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음, 따뜻하고··· 포근하고 또···.”

   은수는 횡설수설하듯 말을 더듬었다.

   “모성의 향은 공통적이어도 엄마의 향은 개별적이야. 그렇게 추상적인 말로는 엄마의 냄새를 찾을 수 없어. 디테일을 얘기해야지. 그래야 어떤지 알 거 아냐.”

   내 말에 은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마음에 얹힌 짐이 무거워 어쩔 수 없이 내려놓는다는 듯 말했다.

   “엄마 냄새 몰라요. 맡아 본 적 없으니까.”

  

   한 아이의 엄마가 공방을 찾은 일이 있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애착 인형에서 나던 냄새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아이는 놀이공원에서 애착하는 곰 인형을 잃어버렸고, 아이 엄마가 거의 똑같이 생긴 곰 인형을 들이밀어도 자기 인형이 아니라며 밀어냈다. 하도 쓰다듬고 만지작거려서 인형 털이 까끌까끌해진 데가 많았어요. 그런 털의 결까지 비슷하게 해서 갖다줘도 소용없더라고요. 아쉽게도 아이 엄마는 인형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물었으나 아이는 그저 좋은 냄새라고만 답했다. 어쩔 수 없이 오래된 섬유에서 나는, 손의 기름기가 응고된, 아이의 젖내가 밴 냄새를 상상해서 조향하였다. 향수를 들고 간 아이 엄마에게서 일주일 뒤 연락이 왔다. 향수가 뿌려진 인형을 건네면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아이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지만, 냄새를 맡은 아이는 자기 인형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이 엄마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아이는 엄마가 찾았다고 한 인형이 자기가 애착하던 인형이 아닌 것을 알고 나서 인형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다음 달에 유치원 입학인데 유치원 갈 때도 인형을 들고 가겠다고 해서 고민이었거든요. 성장의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아이 엄마는 금쪽이 상담사 같은 말로 훈훈하게 마무리했지만, 나에게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작업이 아무런 감흥도 불러내지 못한 실패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곰 인형 냄새도 못 만들었는데 맡아 본 적 없는 엄마 냄새라니. 정말 말이 안 되는 요구였다. 내 거절에 은수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은 아이처럼 단단해진 물기를 참고 있는 듯했다. 마음이 쓰였지만 어설픈 마음을 낼 수는 없었다. 장인 정신 어쩌고저쩌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상도덕을 따르는 것이다. 만들지 못하는 것에 대가를 받을 수는 없다. 은수는 공방을 나서며 물기를 조금 보인 것 같다.

   홍대 거리에는 내 공방 말고도 향수를 만드는 공방이 여럿 있다. 범위를 마포구, 마포구에서 서울로, 더 넓혀 전국으로 확대하면 꽤 많은 수의 공방이 있다. 좋은 향수를 만드는 곳은 많다고 말했지만, 은수의 얼굴은 별로 밝아지지 않았다. 다만 작게 속삭일 뿐이었다. 선배님이 만든 향수면 좋겠다고. 나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싫었다. 선후배라는 관계에 얽힌 학연과 지연의 얽힘이 거슬렸다. 뭐든 인연의 고리가 연쇄되는 게 꺼림칙했다. 그러나 나는 일찌감치 예감했던 것 같다. 은수가 통화하면서 대학 후배임을 밝힐 때부터, 자신도 교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반가워할 때부터 은수와는 이미 얽혀 버렸고 그 관계는 어쩌면 생각보다 깊어지리라는 것을.

   은수의 목소리가 후크송처럼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일상의 평온을 침범하는 반복적인 가락은 엄마 냄새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조차 묻지 않은 나를 자책하도록 만들었다. 나에게는 은수의 연락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두 달이 넘도록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는 게 보통인 사람이므로 먼저 연락하는 엄두를 내는 일이 도통 없었다. 그런 식의 태도로 떠나보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나이 오십을 얼마 남기지 않고 여전히 혼자인 삶을 영위하면서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다분히 생래적인 것이었다. 바꾸려고 해도 바꿔지지 않는.

   그러므로 은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은수의 음성이 떨렸다.

   -좋아. 만들어 볼게.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이요? 뭔데요?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대표님? 조향사님?

   -아니, 아무것으로도 부르지 마. 그게 조건이야.

  

   저기요.

   은수가 나를 부른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나 쓰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자발적으로 함정을 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예 부르지 않으면 될 것을, 은수는 자주 나를 불렀다. 내가 저기라면 여기와 거기는 누구일까.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면서 자주 못 들은 척했다. 은수가 나를 빈번하게 부르는 이유는 물어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건을 걸자 은수도 이에 질세라 조건을 하나 내세웠다. 향수가 다 만들어질 때까지 내 공방에서 일을 돕겠다고 했다. 무임금 알바생으로. 이래 놓고 나중에 노동청에 신고하는 거 아냐? 내 농담에 은수는 그건 봐서요, 라며 웃었다.

   은수가 다니는 대학에서 내 공방이 있는 홍대까지는 지하철로 40분 정도 소요된다. 수업이 끝나면 정문까지 걸어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회기역에 내려서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홍대입구역에 내리고 나서 도보로 5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이다. 은수는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4시, 늦게 끝나는 날에는 5시 30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출근해서 고객이 없을 때는 시약병과 향수병에 묻은 먼지를 털고 테이블과 진열장에 놓인 화분들의 잎사귀를 닦고 물을 주었다. 고객이 공방에 들어서면 웰컴 드링크를 대접하고 고객의 시향을 도와 선호하는 향을 체크리스트에 작성하였다. 일과 일의 중간에는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문의에 대한 답글을 달고 예약 날짜를 조정하고 컨펌하였다. 게다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활용하여 공방과 향수를 홍보하였다. 처음 하는 일인데도 막힘이 없었고 좀처럼 서두르거나 느슨해지는 법이 없었다. 외할머니가 홀로 키웠다고 하는데 외할머니를 보고 자란 습성인지 어려서부터 눈칫밥을 먹고 고생한 흔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은수는 내가 겪어 본 MZ 중에서 가장 MZ스럽지 않았다. 알바로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수가 공방에서 일하게 된 시기는 여러모로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었다. 향수를 커스터마이징하는 유행이 퍼져 방문 고객이 급속도로 늘었고 공방의 인지도가 높아져-잡지 인터뷰 덕분인지 유튜브 출연 덕분인지 알 수 없으나-개인이 아닌 법인에 향수를 판매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특히 당시는 뮤지컬 극단에서 제안한 뮤지컬 굿즈 제작 건으로 밤새 시향과 조향을 거듭해야 하는 시기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 관객들에게 뮤지컬의 여운을 남기는 향수여야 한다는 극단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뮤지컬 대본을 읽고, 연습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뮤지컬 넘버에 펼쳐지는 감정들에 이입하고, 공연장의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그러고 나서 수백 회가 넘는 시향과 조향을 거쳐 하나의 향수를 만들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은수와의 약속은 맷돌 같은 소리를 내며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약속 이행의 시간을 먼저 유예한 것은 은수였다. 은수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은수의 주객이 전도된 듯한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으나 마침 잘됐다 싶어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뮤지컬 극단의 초대로 마지막 공연을 관람한 다음 날이었다. 은수가 공방에서 일한 지 이십여 일이 지나고 있었다.

   “은수야, 여기 오르간으로 와 봐.”

   나는 조제실에 앉아 아치형 출입구 너머에서 등을 돌린 상태로 PC 작업을 하는 은수를 불렀다. 은수는 바쁜지 컴퓨터 화면을 향한 채 말했다.

   “네? 어디요? 오르간?”

   “뒤돌아봐.”

   내 말에 은수는 의자를 돌려 뒤돌아봤고, 나는 그런 은수를 향해 검지를 까닥거렸다.

   “이게 오르간이에요?”

   내 앞에 선 은수에게 대답 대신 조향대를 소개하는 손짓을 했다. 원목 테이블 상판에 다섯 층의 진열장이 삼면으로 둘러싼 조향대는 전면에 건반이 가지런하고 측면에 음색 버튼 격의 동그란 스탑이 달린 오르간을 빼닮았다.

   “그럼, 선··· (은수는 실수했다는 듯 손으로 입을 잠깐 가렸다) 음··· 님은 오르간 연주자이시네요.”

   나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서 이제는 호부호형을 허락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냥 들었다.

   “나한테 숙제 내줬잖아.”

   “아···.”

   은수의 탄식은 길었다. 마치 감탄사를 처음 배워서 그 말의 감탄이 그려 내는 파동의 모양이 어떠하고 몇 회의 주기로 진동하는지 실제 측정하는 것처럼. 하지만 마음에 밀려드는 파장이 거대한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은수에게 내주었다.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어요.”

   한참 뒤에 은수가 꺼낸 말은 거두절미돼 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은수의 이야기에 서두가 갖춰졌고 원인과 결과가 뒤따라 이어졌다.

   지난 삼 주 내내 주말 시간을 이용하여 은수는 교동에 갔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발병한 이후 외할머니는 은수의 이모할머니가 돌보고 있었다. 자매는 열 살 터울이 나서 이모할머니는 뒤치다꺼리할 만하다고 했지만, 이모할머니는 시골 사람답게 환갑에 벌써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 은수는 죄짓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자주 외할머니를 들여다봤는데 그렇다고 해서 삼 주 내내 찾아뵙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삼 주 연속 방문의 목적은 확실했다. 엄마의 냄새를 찾는 것.

   “손녀인 저도 잘 못 알아보는 지경이 되셨어요. 그러니 딸 냄새를 기억이나 하시겠어요. 딸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시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이모할머니한테 여쭤봤는데··· 조카의 냄새를 기억하는 이모가 몇이나 되겠어요.”

   은수의 낯빛이 어두웠다. 은수는 살결이 해사해서 젊음이 더 돋보이는데 그런 탓에 그녀의 얼굴이 굳으니 맑은 날에 갑자기 먹구름이 낀 것처럼 더 어두워 보였다.

   “그런데 엄마 냄새는 왜 필요한 거야?”

   어쩌면 향수가 은수를 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점점 잊고 있어요. 외할머니한테 딸을 다시 찾아 주고 싶어요.”

  

   결론적으로, 은수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냄새가 어떤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냄새를 구현할 수 있을까. 냄새가 어떨 것이라는 추상적인 짐작으로 어떻게 실체적인 기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향의 대가라고 하는 어네스트 보, 자크 겔랑이어도 못 할 일이 분명했다. 선택지는 둘이었다. 어찌저찌 정성 들여 실패하거나 어찌저찌 슬렁슬렁해서 실패하거나.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치매에 걸렸다는 은수의 외할머니. 교동도 대룡리에서 동생과 살고 있다는 은수의 외할머니. 내 외할머니는 양갑리 사람이고 두 사람은 어쩌면 꽤 친분이 있는 사이일지 모른다. 양갑리에서 대룡리는 차로 십 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니까. 누구네 외손자는 어미가 자식 버리고 재취 자리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온 섬사람에게 퍼질 정도로 교동은 좁아터진 곳이니까.

   외할머니의 손은 얼고 부르터 있었다. 한겨울은 물론이고 한여름에도. 찬물이 외할머니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민물이든 바닷물이든 물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외할머니에게서는 차가운 물비린내가 났다. 그 냄새는 바깥에서 일하고 온 외할머니에게서 훅 끼치는 바람 냄새와 비슷했다. 나는 외할머니가 문지방을 넘어서면 외할머니의 고단함이 무엇 때문인지 단박에 알아내었다. 외할머니가 젓새우를 물에 씻고 왔구나. 외할머니가 밭에서 감자를 캐고 왔구나. 외할머니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 여러 냄새의 입자는 나를 위로하였다. 외할머니가 일을 한다. 외할머니가 나를 버리지 않고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한다. 나는 고작 아홉 살이었다. 외할머니가 나를 돌볼 것이라는 근거 있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집에 돌아오면 냄새를 맡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서 나를 키우려는지 매번 알아내려고 했다.

   외할머니는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났다. 발인하기에 앞서 염보를 살짝 걷어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얼었다 녹았다 다시 얼기를 반복하여 터지고 갈라진 손은 비닐하우스에 쓰는 비닐 같았다. 손끝으로 누르면 푹 꺼지고 힘을 주면 질긴 듯 팽팽해지다 곧 여러 갈래로 찢길 것 같은 손등을 내 손바닥으로 덮었다. 망자의 안식을 기원할 때 눈을 감겨 주듯이. 외할머니의 체온이 잔불처럼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열도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며 상복 주머니에서 향수를 꺼냈다. 외할머니는 여느 할머니처럼 꽃이 무수히 피어난 옷을 자주 입었다. 외할머니가 소싯적에 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외할머니의 손목에 외할머니가 분명 좋아했을 꽃들을 놓아주었다. 외할머니는 한 번도 본 적 없을 로즈마리, 린덴 블로섬, 아이리스가 외할머니의 손목에서 피어났다. 정금순 여사 많이 예쁘네. 생전에 들려주지 못한 말이 나왔다. 72세의 헝가리 여왕은 젊은 폴란드 왕에게서 청혼을 받았다는데. 젊음의 묘약인 헝가리 워터는 그녀의 지병도 낫게 했다는데. 정금순 여사는 묵묵히 누워 있었다. 남자가 숭하게 무슨 향수라는 걸 만든다고. 외할머니는 손자가 만든 향수를 저만치 밀어 버렸다. 발인이 끝나고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옷감을 보관하는 상자에 찢어진 두 페이지의 잡지가 고이 접혀 있는 걸 발견했다. 손자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잡지였다. 낡은 화장대에는 향수가 있었다. 용량은 거의 그대로였다. 향수병을 만지작거리다 깨달았다. 외할머니는 남세스러워 안 쓴 게 아니라 아까워서 못 썼다는 것을.

  

   주말을 거친 월요일의 은수는 울적해 보였다. 치매는 하루가 다른 병환이다. 은수가 마음을 졸이는 만큼 나는 다급하였다. 그러나 작업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이라도 있어야 대강이라도 스케치할 것 아닌가.

   교동 방문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일주일 뒤의 토요일이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향수는 완성될 것이라고, 조약을 선포하듯 장담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근거 없는 확약이지만 날짜를 늦추기보다는 오히려 당기는 게 작업에 도움이 될 때가 많아서 무작정 질러 본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향료를 이것저것 섞어서 시향지에 묻혀 냄새를 맡고 시향지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을 수백 번 반복했다.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에 바늘이 있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시시포스처럼 언제 끝날 줄 모르며 돌을 밀어 올렸고 그러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이 일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바늘은 그 실체를 알 수 있지만, 냄새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기에.

   결국 대충 따뜻하고 포근한 모성의 향을 만들어야 하나. 아니다. 은수의 외할머니에게 은수의 엄마는 딸이니까 은수의 외할머니는 은수의 엄마에게서 모성의 향을 맡을 리 없다. 몸을 이루는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했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은수는 내게 아메리카노가 담긴 길쭉한 유리컵을 내밀었다.

   “왜 하필 아이스야?”

   “임플란트 아니잖아요. 얼음으로 정신 차리시라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젠장, 이가 시렸다.

   “아무 얘기나 해 봐. 엄마랑 관련된 얘기면 더 좋고.”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는 테이블 위에 올렸다.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고 싶었다. 은수는 잠깐 목소리를 다듬었다. 그런데 첫음절이 목멘 소리여서 다시 음성을 조율했다.

   “월선포 아시죠?”

   “나한테 말하듯이 하지 마. 그냥 들려줘.”

   나는 눈 감은 채 말했고 은수는 잠시 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할머니는 물론이고 이모할머니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두 분은 내가 알 턱이 없다고 여겼지만, 아이가 몰라야 하는 비밀을 기어코 수군대는 어른들은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어른들이 없었대도 나는 알았을 거예요. 그런 건 그냥 알게 되는 거예요. 엄마는 죽음으로써 나를 살렸대요. 살 수 있는데 죽은 거죠. 한 번도 본 적 없는 딸을 살리려고. 아무리 어려도 그런 일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하지만 나는 엄마한테 하나도 고맙지 않았어요.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엄마는··· 내가 엄마를 죽게 했잖아요. 엄마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태어난 내가 어떤 마음을 견뎌야 할지 생각하지 않은 걸까요. 엄마는 죽고 내가 태어나면 나는 다행스럽고 기뻐서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걸까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부풀면 월선포에 갔어요. 거무죽죽한 개흙이 볼품없어서, 바다의 빛깔이 곱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주위의 풍경 어디에도 마음을 뺏기지 않고 내 마음만 바라볼 수 있었거든요. 갈 때는 늘 화난 상태였어요. 모든 걸 팽개치고 던져 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다에 하나둘씩 던지는데, 가라앉으리라고 생각한 것들이 그러지 않았어요. 미움, 분노, 원망은 밀물이 되어 기어이 내게 돌아왔어요. 내 마음에 미움, 분노, 원망의 물결이 넘실댔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소용돌이가 너무 거세서. 그런데 물에 빠져드니까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물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고 내 마음을 받아들였어요. 엄마를 그리워했어요. 그리운 만큼 충분히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내가 흘려보낸 그리움은 밀물이 되어 다시 내게 돌아왔어요. 하지만 괴롭지 않았어요. 물살이 잔잔했으니까. 내가 보낸 그리움의 물결이 그대로 돌아와도 나를 삼킬 듯이 덮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는 내가 바다에 갔다 온 걸 귀신같이 알았어요. 바다에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리는데 또 갔다면서 니 년이 바다에 홀려서 니 할멈도 바닷속으로 끌고 가 죽게 만들 거냐며 욕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외할머니가 엄마 때문에 줄곧 저를 원망했다는 것을요.

  

   은수 엄마의 냄새를 만드는 건 포기하였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작업이었으므로 포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다른 콘셉트의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은수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향수로 구현해 내면 그 그리움이 은수 엄마를 불러내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인 줄 알면서 은수의 그리움과 기다림을 향수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은수를 위한 향수를 만드는 일은 어쩌면 나를 위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은수와 같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흑돌처럼 새까만 바탕에 무지개처럼 영롱한 자개장.

  

   외할머니집 안방에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자개장이 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꽃과 나비, 사슴과 소나무, 당초 문양이 새겨진 자개장이 바짝 마르면 엄마가 너를 데리러 올 거라고 말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는 제일 먼저 무릎걸음으로 자개장에 바투 앉아 코를 들이댔다. 그러면서 나한테 속삭여 주었다. 괜찮아. 아직도 마르고 있어. 자개장에서는 설핏 고릿한 냄새가 났다. 엄마가 옻칠이 된 장에 유산지를 덮고 그 위에 인두로 자개를 붙일 때 열렬한 열기로 피어오르던 냄새. 엄마는 자신이 직접 만든 자개장을 유산처럼 남겼고 나는 오래된 왕조의 보물처럼 자개장을 아꼈다. 거듭된 옻칠의 층이 속에서 경화되며 풍기는 고릿하고 달큰한 냄새는 엄마가 떠난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맡을 수 없었다. 자개장이 마르는 일 년은 나의 그리움과 기다림이 말라 버린 시간이었다. 내 삶은 그 시간만큼 말라 버렸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자개장에서 피어오르던 고릿하고 알싸한 냄새가 그리움과 기다림의 고통을 위로해 준 것을. 냄새에 대한 기억이, 기억을 부르는 냄새가 슬픔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은수 엄마를 불러낼 수 없다면 은수의 기억을 위로하고 싶었다. 나는 은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은수의 그리움을 조향했다.

  

   교동도에 가려면 더 이상 배를 탈 필요가 없었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다리가 십여 년 전에 생겼기 때문이다. 교동도는 민통선 위에 있어서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필요했다. 은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표지판에 있는 큐알 코드를 찍어 전자출입증을 발급받았다. 핑크색 유도선을 따라 교동대교에 진입하였다. 외할머니가 별세한 이후 교동은 처음이어서 교동대교도 처음이었다. 내륙과 섬을 잇는 곳에 흔히 있을 법한 다리를 건너면서 차창을 조금 열었다. 서해의 눅진하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실내에 금세 들어찼다.

   “그렇게 괴로워하시더니 향수를 어떻게 하루 만에 만드셨어요?”

   “영업 비밀.”

   조수석에 앉은 은수가 입술을 심술궂게 내밀었다.

   “향수 냄새가 비릿하면서 구수하고‧‧‧ 그러니까 바다 냄새 같은데‧‧‧ 살짝 알싸하면서 달큰하고 신 냄새도 있었던 것 같고‧‧‧ 맞다. 우디하기도 했어요.”

   냄새를 너무 잘 들춰내서 속으로 꽤 놀랐다. 향수의 문외한이던 은수는 직접 조향해서 향수를 뿌리는 수준이 되었다. 향수에 대한 생각이 더 나아가지 않도록 나는 딴소리를 했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왜 하필 초록뱀이야?”

   은수는 선뜻 이해하지 못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윽고 깨달았는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이 문신이요. 혹시 이것 땜에 놀라셨어요?”

   “무슨··· 나 어렸을 때는 교동에 독수리‧용‧호랑이 문신한 어깨들이 득시글거렸어.”

   “아, 그 형님들 볼 때처럼 많이 놀라셨구나. 엄마가 뱀띠래요. 뱀이 날 지켜 줄 것 같아서 새겼어요. 근데 이 뱀 귀엽지 않아요?”

   나는 긍정의 뉘앙스를 내포한 듯 은수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지만, 실은 그런 몹쓸 말 하지 말라는 만류의 손짓이었다.

   “와, 월선포다.”

   은수의 왼손이 운전석 쪽으로 넘어왔다. 차와 승객을 부려 놓던 여객선이 자취를 감춘 월선포는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내륙에서 점점 섬으로 가까워졌다. 나와 은수, 그리고 초록뱀이 교동에 들어서고 있었다. 여전히 문신은 꺼림칙했지만 초록뱀이 적어도 은수는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의 외할머니가 사는 집은 대룡리의 초입에 있었다. 은수의 이모할머니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자신의 언니와 살림을 합쳤다고 한다. 집 앞에 도착하자 은수는 차 안에서 향수를 뿌렸다. 손목 바깥쪽, 귀 뒤쪽, 목덜미 부근. 체온이 높고 맥박이 뛰는 곳.

   “어때요? 괜찮아요?”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행운을 빌어.”

   내 대답을 듣고도 은수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손가락으로 은수의 초록뱀을 가리켰다. 그제야 은수는 긴장이 풀리는지 소리 없이 웃었다. 은수는 붉은색 인조 기와를 얹은 집으로 멀어졌다. 은수의 뒷모습은 소녀처럼 여렸다.

   대룡리는 기억 속의 예전과 너무 달라져 있었다. 기껏해야 구멍가게와 식당 두셋이 전부였던 곳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어엿한 시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철근 구조물을 엇갈려 놓고 조롱박과 알전구를 매달아 놓은 골목 양옆으로 가게들이 늘어섰고 사람들은 손에 뭔가 들고서 다른 손에 쥘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룡리는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 같았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러나 지금의 대룡리는 실제의 느낌을 더 살리기 위해 섭외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 같았다. 유적처럼 고즈넉한 곳에 사람들이 흥성해져서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 버린 듯했다.

   관광객처럼 시장을 거닐었다. 화공이 그린 옛날 영화 간판 같은 광고판이 나를 맞이하였다. 공중에 매달린 소주병과 주스병이 햇빛을 반사하는 조명판처럼 반짝였다. 좌판에 참기름, 그루터기를 얇게 잘라 낸 형태의 도마, 알록달록한 팔찌와 목걸이, 지푸라기로 엮은 달걀 꾸러미, 국자에 졸여져 갖가지 모양으로 찍힌 뽑기, 이북식 수제 만두 들이 벌여 있었다. 만두와 떡을 같이 파는 가게 앞에 멈췄다. 입간판에 머릿수건을 쓴 여인이 강아지떡을 들고 인정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본이 찹쌀을 수탈하기 위해 찹쌀떡을 못 빚게 했는데 배고픈 아이를 위해 찹쌀떡을 빚은 어머니가 단속하는 일본군에게 “이건 찹쌀떡이 아니라 강아지 새끼 먹일 떡이오.”라고 말해 위기를 넘겼다는 떡의 유래가 적혀 있었다. 강아지떡을 시식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틈바구니에 껴서 강아지떡 한 덩이를 입에 넣었다. 떡은 말랑말랑 씹혔고 속에 든 팥은 달콤했다. 고소한 인절미 가루 냄새가 먹는 내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인절미 냄새의 끝자락에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동수 형. 교동에서는 호랑이 삼촌이면서 육시랄 놈이었지만 나에게는 옆집에 살던 따뜻한 동수 형. 동수 형이 무심히 내밀었던 인절미가 내 손에 놓여 있는 듯했다. 50대로 보이는 여자 주인은 바쁘게 떡을 썰었다. 여자가 손님의 말을 듣고 만두 다 됐냐고 가게 안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가게 안에서 거의 다 됐다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얼핏 보인 그 남자가 동수 형 같아서 나는 한참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동수 형일지 모른다는 희망에 차서.

   시장을 빠져나오는데 뱃머리처럼 생긴 것 같은, 안테나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한 화개산 전망대가 보였다. 전망대 아래로 화사한 색깔의 모노레일이 줄지어 다녔다. 교동도가 TV 프로그램에서 가 볼 만한 관광지로 소개됐다는 게 그제야 실감 났다. 화개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관광객으로 이 섬에 온 게 아니니까. 바다의 수평선은 내 눈높이로 바라봐야 더 막막해지니까. 교동에 살 때도 화개산에 오른 일이 없었다. 화개산은 이제 관광지의 중심이 되었으므로 앞으로도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가지 않게 되는 곳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화개산이 그랬다.

   월선포는 이제 포구가 아니다. 더는 쓰이지 않는 선착장 대합실이 고요히 낡고 있었다. 대합실 옆의 가게들이 사람들 왕래의 흔적을 간직한 듯 쓸쓸했다. 기타 공방과 커피숍, 부동산 중개소가 한 가게인 것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다른 두 곳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기타 공방은 새로 생긴 곳이 분명해 가까이 가 봤다. 주인과 손님은 보이지 않는데 처마 밑 전깃줄에 망둑어를 꿴 옷걸이가 걸려 있었다. 먹을 게 별로 없는 망둑어는 교동의 별미이다. 선착장으로 쓰인 콘크리트 포장길 끝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길 끝으로 내려가 수평선을 바라봤다.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수평선은 아득하고 막막했다.

   은수는 월선포로 걸어왔다. 인기척 없이 다가와 바닷물이 넘실대는 자리에 나와 나란히 섰다. 우리는 한동안 해가 저무는 무렵에 만들어지는 수면의 형태를 바라봤다.

   “어떻게 됐어?”

   내 물음에 은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마음이 허전해졌다. 다시 바다를 바라보는데 은수가 말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오랜만에 내 이름을 기억해 줬어요. 은수야, 오늘도 바다에 갔다 왔냐. 바람도 찬데 왜 매일 가서 차가운 바닷바람 맞고 있어. 그러지 마라. 니 어미는 니가 생겨 행복하댔다. 니 어미는 니가 태어나는 게 젤루다 큰 행복이랬다. 바다에 가서 그리워 마라. 바다에 가서 아프지 마라. 그러지 마라, 아가야.”

  

   서해는 해가 지는 서쪽의 바다여서 일몰이 아름답다. 교동대교를 은수와 함께 건너 내륙으로 간다.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큐알 코드가 필요 없었다. 내륙으로 돌아가는 방향에는 검문소도 없다. 교동대교를 건너버리면 다시 외지인이 돼서 검문소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큐알 코드로 출입하는 일은 간편하니까. 차창을 내려서 교동의 냄새를 차에 들였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은수는 심각한 말을 한다는 듯 톤을 낮췄다.

   “뭔데?”

   “삼촌이라고 불러도 돼요?”

   은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라고? 삼촌? 교동의 삼촌? 안 돼. 절대 안 돼.”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 몰라. 난 모르니까 묻지 마.”

   은수는 투정을 부렸다. 나는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하면서 룸미러로 뒤편을 봤다. 차가 막 교동대교를 건너온 참이었다. 지금쯤 낙조는 교동의 바다를 찬란하게 물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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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사과 박솔뫼 어느 날 아침 애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시간을 보내왔음을 알았다. 일을 하러 가는 길이었고 이곳에 이사와 이 열차를 탄 것은 1년 7개월째였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일 때 모든 것이 멈춰 서 있고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던 때부터 탈 것에 올라타 멀어지는 집과 나무들을 보아 왔다고 느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왜 그제야 그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 것일까. 어딘가로 향하는 감각과 함께 창 너머 공터와 집들과 골목들을 실제로 걷는 일은 왜인지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지고 언제까지나 좌석에 앉아 멀어지는 사람과 집들과 빨래와 커튼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애리는 사원 숙소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그만두고 나와 집을 구해 살다 사회복지와 개호 관련 자격증을 따고 이후에는 자격증과 상관없는 일을 몇 년을 하였다. 그러다 역시나 숙소를 제공하는 지금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회사는 큰 항구가 있는 대도시와 인접한 소도시에 있었고 숙소는 회사 직원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기 때문에 회사와는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예전 회사는 숙소에서 회사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서 다시 20분가량 열차를 타야 했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었고 버스를 타는 것이 여러모로 더 편했지만 버스는 늘 같은 회사 사람들로 붐볐고 앉아 가기가 힘들어서 애리는 보통 열차를 탔다.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자 곧이어 오랜 시간 기숙사에서 공동 부엌에서 공용 생활공간에서 얼굴만 익숙한 사람들과 살아왔다는 사실이 마치 연결된 문제처럼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둘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마음을 먹자면 살 곳을 구해서 혼자 사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같지만 애리는 왜인지 그럴 마음을 쉽게 먹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공동 숙소에서 사는 것이 부끄럽거나 괴롭지는 않고 돈을 아낄 수 있고 여러모로 편리한 점도 많았지만 혼자 살 집을 찾아 오래 쓸 가구를 사는 일에 겁을 먹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창은 여전히 흔들리고 창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가 보인다. 공터 구석에서는 무언가 야채 같은 것을 심는 것도 같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 도시 어느 한구석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는 드물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누군가의 넓은 방과 책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가도 애리는 동시에 이것저것 모든 것을 한 번에 버리고 어딘가로 금세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것이 실제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지금 생활은 지금 생활대로 좋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텅 빈 방 (떠올려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것을 원하는 마음은 원하는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곳에 확실하게 붙여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텅 빈 방의 모습이

  • 관리자
  • 2025-07-01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최재영 가끔 인생이 내게 애벌레가 파먹는 중인 사과를 베어 물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선 오늘도 전 세계 기아들이 굶고 있고 남미 쿠데타 정부의 진압 몽둥이에 시민들이 맞고 있으며 전장의 포탄은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 집 안방엔 세 살 연상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비록 내일이면 공룡 박사 딸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흉내 내며 내 턱에 박치기를 날릴 것이고 아내는 원시인 사냥꾼처럼 괴성을 지르며 딸을 쫓을 것이지만··· 서른여섯 살의 나는 대한민국 성남시의 아파트에, 지금 여기에, 우리 세 가족과 잘 있고, 그것참, 다행이다. 내가 베어 문 사과 반쪽에 벌레가 없어서. 뉴스에 어느 북한군이 등장한 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장이었다. 한 북한군이 부상 때문에 낙오했는지 홀로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러시아 것인지 우크라이나 것인지 모를 드론이 공중에서 그를 촬영하고 있었다. 곧 드론은 부드럽게 수직 하강하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쓰으윽- 줌인 됐다. 뉴스 진행자와 패널들이 호들갑 떨었다. “너무나 리얼합니다!” 무슨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오바하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코웃음 치며 손에 든 캔맥주를 쓰으윽- 들이키려다, 멈칫했다. 아는 사람 같았다. 낯이 익었다. * 약 15년 전 여름, 나는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 6여단 영창에 15일간 구금되어 있었다. 죄명은 후임 폭행이었다. 막 상병이 됐을 때 생긴 일이었다. 영창의 개인 감방에 들어서자 정말이지 감옥처럼 생겨서(정말 감옥이긴 했지만)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커덩 자물쇠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스물한 살에 인생이 망해 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감방 철창 너머론 건물의 입구와 헌병 하나가 근무하며 감시하는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을 기준으로 네 개의 감방들이 반원을 그리며 각각 1호 창, 2호 창, 3호 창, 5호 창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4호 창은 없었다, 해병대에선 숫자 4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3호 창에 수감됐다. 감방 안에 앉아 있으면 보이는 건 꾹 닫힌 건물 문, 그리고 중앙의 그 헌병밖에 없었다. 양옆의 다른 감방들은 시야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1호 창과 5호 창에도 수감자가 한 명씩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단 2호 창만은 비어 있다고 했는데 폭행 사건이 일상적이라 항상 미어터지던 백령도 해병대의 영창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듣기론 당시 북쪽 상황이 심상치 않아 각 부대들의 징계 절차가 보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방 안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했다. 폭은 누워서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안쪽으로 세 걸음 가면 구석에 수도꼭지를 비롯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일명 고무신 변기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의 아담한 담만이 가림막을 해 주었다. 큰 것이든 작은

  • 관리자
  • 2025-07-01
프레살레

프레살레 반수연 홍은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솜씨 좋게 빠져나갔다. 홍을 놓칠세라 일행들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공항은 번잡했다. 챙이 넓은 홍의 검은색 모자는 인파 사이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다. 모자가 사라질 때마다 짧은 불안이 스쳤다. 우리 중 누구도 파리에 처음 오는 이는 없었다. 정아는 작년 패션 위크에도 왔다고 했다. 하지만 출구로 빠져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홍을 만난 순간, 홍이 웰컴 투 패리스, 라며 환하게 웃던 순간,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라며 농담과 카리스마가 뒤섞인 환영 인사를 건네는 순간, 홍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깃발이 되었다. 몇 개의 건물과 긴 복도를 통과해 홍이 예약해 둔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미리 맡겨 두었다는 홍의 짐이 사무실 모퉁이에 쌓여 있었다. 각지고 거대한 두 개의 캐리어, 명품 마크가 선명한 가죽 배낭과 보스턴백, 두 개의 쇼핑백도 포개져 있었다. 캐리어 계의 에르메스라는 바로 그 리모와 아닌가요? 색깔 너무 이쁘다. 이삿짐을 떠올리게 하는 홍의 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나와는 달리 정아는 레몬색 캐리어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자기야,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에르메스야 버킨 말고는 뭐가 있나. 홍과 정아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며칠 전 정아가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를 떠올렸다. 유럽 항공은 수하물 분실이 잦으니 위탁 수하물 없이 기내용 캐리어와 작은 손가방으로 짐을 제한해요! 정아는 해당 항공사의 기내 반입 수하물 규정을 캡처해서 올리며 당부했다. 같은 옷을 이틀 연달아 입거나, 옷과 콘셉트가 맞지 않는 신발이나 가방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정아가 분실이 두려워 그런 제안을 한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정아는 홍의 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아가 홍을 위해 우리 짐을 단속했다는 사실보다 진실의 내막을 뒤틀었다는 것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독일제 7인용 SUV 차량의 마지막 3열을 접어 트렁크의 공간을 넓혔다. 홍의 캐리어를 먼저 싣고 그사이에 네 개의 기내용 캐리어를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뺐다 씨름하느라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어찌어찌 짐을 욱여넣고 나니 트렁크는 룸미러로 후방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찼다. 배낭이나 손가방은 발아래에 두거나 안고 타면 될 거라고 홍이 운전석으로 올라타며 말했다. 나는 노트북과 파우치와 책이 담긴 배낭을 가슴에 안고 뒷좌석에 올라 안전띠를 당겨 맸다. 짐과 사람이 뒤엉켜 숨 쉴 공간마저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답답함이 불안으로 바뀌며 숨이 가빠 왔다. 다른 일행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프로작을 한 알 꺼내 입에 물고 창을 조금 열었다. 약기운이 신경을 눌러 주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파리는 오전 열한 시, 한국은 오후 여섯 시였다. 지금쯤이면 윤수는 일어났을 것이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김치찌개 있어. 냉동실에 육개장도 얼려 두었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신발을 신다 말고 식탁에 앉아 짧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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