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살레
- 작성일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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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살레
반수연
홍은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솜씨 좋게 빠져나갔다. 홍을 놓칠세라 일행들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공항은 번잡했다. 챙이 넓은 홍의 검은색 모자는 인파 사이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다. 모자가 사라질 때마다 짧은 불안이 스쳤다. 우리 중 누구도 파리에 처음 오는 이는 없었다. 정아는 작년 패션 위크에도 왔다고 했다. 하지만 출구로 빠져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홍을 만난 순간, 홍이 웰컴 투 패리스, 라며 환하게 웃던 순간,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라며 농담과 카리스마가 뒤섞인 환영 인사를 건네는 순간, 홍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깃발이 되었다.
몇 개의 건물과 긴 복도를 통과해 홍이 예약해 둔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미리 맡겨 두었다는 홍의 짐이 사무실 모퉁이에 쌓여 있었다. 각지고 거대한 두 개의 캐리어, 명품 마크가 선명한 가죽 배낭과 보스턴백, 두 개의 쇼핑백도 포개져 있었다.
캐리어 계의 에르메스라는 바로 그 리모와 아닌가요? 색깔 너무 이쁘다.
이삿짐을 떠올리게 하는 홍의 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나와는 달리 정아는 레몬색 캐리어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자기야,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에르메스야 버킨 말고는 뭐가 있나.
홍과 정아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며칠 전 정아가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를 떠올렸다. 유럽 항공은 수하물 분실이 잦으니 위탁 수하물 없이 기내용 캐리어와 작은 손가방으로 짐을 제한해요! 정아는 해당 항공사의 기내 반입 수하물 규정을 캡처해서 올리며 당부했다. 같은 옷을 이틀 연달아 입거나, 옷과 콘셉트가 맞지 않는 신발이나 가방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정아가 분실이 두려워 그런 제안을 한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정아는 홍의 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아가 홍을 위해 우리 짐을 단속했다는 사실보다 진실의 내막을 뒤틀었다는 것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독일제 7인용 SUV 차량의 마지막 3열을 접어 트렁크의 공간을 넓혔다. 홍의 캐리어를 먼저 싣고 그사이에 네 개의 기내용 캐리어를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뺐다 씨름하느라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어찌어찌 짐을 욱여넣고 나니 트렁크는 룸미러로 후방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찼다. 배낭이나 손가방은 발아래에 두거나 안고 타면 될 거라고 홍이 운전석으로 올라타며 말했다. 나는 노트북과 파우치와 책이 담긴 배낭을 가슴에 안고 뒷좌석에 올라 안전띠를 당겨 맸다. 짐과 사람이 뒤엉켜 숨 쉴 공간마저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답답함이 불안으로 바뀌며 숨이 가빠 왔다. 다른 일행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프로작을 한 알 꺼내 입에 물고 창을 조금 열었다. 약기운이 신경을 눌러 주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파리는 오전 열한 시, 한국은 오후 여섯 시였다. 지금쯤이면 윤수는 일어났을 것이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김치찌개 있어. 냉동실에 육개장도 얼려 두었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신발을 신다 말고 식탁에 앉아 짧은 메모를 썼다. 어쩌면 나의 메모 때문에 윤수는 먹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들었다.
차가 속도를 높이자 습기 없는 청량한 바람이 들어왔다. 드디어 파리구나. 대학 2학년 때 배낭여행을 오고는 처음이니 삼십 년이 훌쩍 지났다. 변화가 거의 없는 파리 시내 거리의 풍경을 보니 대학생이던 그 시절과 지금이 딱 맞닿아 그사이 수십 년의 시간이 증발해 버린 느낌이 들었다. 비현실적이고 분열적인 감정 사이로 미세한 떨림과 행복감이 스쳤다.
홍은 구 개월 전에 혼자 유럽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스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에서 석 달을 보냈다. 가끔 사진을 보내왔다. 홍은 이탈리아 남부의 비탈진 포도밭에서 치즈에 와인을 마시거나 포시타노 해안의 푸르게 투병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아시시 수도원 입구 올리브 나무에는 진짜 올리브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시간이면 끊임없이 윤수 방으로 향하는 신경이 잠시 느슨해졌다. 주눅 들지 않는 그녀의 표정과 알이 큰 선글라스와 끈이 얇은 샌들과 바람에 슬쩍 휘날리는 원피스의 끝자락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그녀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홍이 정아와 민지와 나를 콕 집어 함께 자동차 여행을 하자고 제안한 게 두 달 전이었다. 그녀는 도슨트를 자청하며 자신의 최애 미술관인 파리의 오르세와 마드리드의 프라도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 회사를 비워 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윤수를 두고 떠난다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망설였다. 홍은 파리에서 오랑주리와 오르세를 보고 노르망디를 돌아서 서부 해안을 타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나오는 삼 주의 일정을 보내왔다. 그걸 보자 심장이 요동쳤다. 마침 방학이니 윤희도 함께 가면 어떨까, 제안한 건 나였다. 두 달 동안 우리는 단톡방에 불이 나게 여행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여행을 위해 쇼핑한 옷과 화장품을 실시간으로 공유했고, 여행지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나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꼭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나는 개선문과 몽생미셸을 꼽았다. 윤희는 게르니카가 보고 싶다며 마드리드의 소피아 미술관을, 정아는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를 꼽았다. 의견이 나올 때마다 민지는 찬성! 찬성! 이라며 하트 이모티콘을 날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자주 빙그레 웃었고, 그 일이 실제로 내게 일어날 리 없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에 불안해지기도 했다. 설렘과 불안의 교차 속에서도 어쩌면 이번 여행이 내 삶에 어떤 전환을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엷은 기대가 생겨났다. 어떤 순간에는 막연한 기대가 확고한 믿음이 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믿을 수 없이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파동이었다.
그즈음 나는 실체도 없는 죄책감을 견디느라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퇴근하고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 아파트 주차장에서 다시 차를 돌려 나가기도 했다. 일 년이 넘도록 윤수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윤수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고, 윤수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윤수나 남편을 원망하는 것보다 나를 원망하는 게 쉬웠다. 어떤 일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어난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이유를 찾느라 골몰했다. 이유를 알면 결과를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는지도 몰랐다. 방 저편 흐리게 들리는 윤수의 걸음 소리와 아무리 애를 써도 들리지 않는 숨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이를 서운하게 했던 일들을 끝도 없이 생각해 내곤 했다. 다섯 살 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떼를 쓰며 길바닥에 드러누워 우는 아이를 두고 나무 뒤에 숨었던 날 아이는 잠을 자다가 경기를 했다. 열한 살 때 피아노 학원을 빼먹었다고 아이의 등짝을 때렸다. 아이의 등에 불도장처럼 붉게 새겨졌던 손바닥 자국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싫다는 수학 과외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아이의 열등감을 자극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부풀어 오른 생각은 이상한 방식으로 터졌다. 윤수의 방문을 두드리며 내가 잘못했다고 강박적으로 말했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했다. 내가 더 많이 아파야, 더 망가져야 윤수가 그 방을 걸어 나올까.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다가 사나흘 꼼짝없이 누워 있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 윤수가 냉장고 문을 열고 뭔가를 꺼내거나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거나 현관문을 열고 배달 음식을 받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윤수는 끝내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여기는 지겹게 왔어. 자기들끼리 올라가. 나는 10구에 커피잔 주문한 거 픽업해서 돌아올게. 두 시간 후에 만나면 되겠지?
홍은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고 가파른 계단 앞에 차를 세우고 말했다. 우리는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미사를 보기로 했으므로 줄지어 계단을 올라갔다. 무성한 여름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어른거렸고 우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소를 머금고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신부님의 프랑스어 설교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독특한 리듬 때문에 느리고 평온한 노래처럼 들렸다. 둥글고 아름다운 천장과 고개 숙여 무언가를 비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미사를 마치고 윤수를 생각하며 붉은 초에 불을 밝혔다. 윤희는 동료 교수와 지인에게 나눠 줄 묵주를 고르겠다며 기념품점으로 들어갔다. 정아와 민지와 나는 성당을 빠져나왔다. 성당 앞 계단에는 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거나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성당 외벽을 따라 걷는 게 나는 왜 이리 좋은지 몰라.
정아가 말했다. 성당 건물의 바깥 테두리를 따라 걷는 건 나도 좋아했다. 민지는 태어나서 처음 참석한 미사였지만 뭔가 환하고 뜨거운 게 훅 올라오더라며 두 팔로 제 가슴을 끌어안았다. 성령이 임했구먼. 나는 선이 고운 석회암 돔을 올려다보며 농담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입구 쪽에 왔을 때 걸어 내려오는 윤희가 보였다. 윤희야! 여기! 나는 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때 정아가 휴대폰을 꺼냈다.
아악, 어떡해. 싹 다 사라졌어!
울음 섞인 비명과 함께 쏟아진 말이 휴대폰 너머 내게까지 들렸다. 그 순간 몸이 해삼처럼 쪼그라들며 힘이 쑥 빠졌다. 남편으로 추정되는 분이 응급실에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요가를 마치고 센터를 나서며 전화를 받았을 때 나도 저런 비명을 질렀을 것이었다. 젖꼭지와 위장의 끝. 손끝과 머리끝. 자궁의 끝. 몸의 말단마다 핀으로 찌르는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두려운 눈으로 정아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관장님?
정아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하얗게 질렸다. 홍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뭔가를 말했지만 더 이상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 털렸대요. 누가 우리 짐을 다 털어 갔대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정아가 말했다.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관장님이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누가 우릴 놀리려고 어디 숨겨둔 건 아닐까? 몰래카메라 같은 걸지도 몰라.
손을 떨며 우버 앱을 켜고 위치를 입력하는 정아 옆에서 민지는 의미도 없고 논리도 없는 말을 성가시게 반복했다. 일단 차로 가 보자. 가면 상황을 알 수 있을 거야. 윤희는 울고 있는 정아와 현실을 부정하는 민지를 다독였다. 노트북 컴퓨터와 몇 벌의 옷, 화장품, 책 두 권··· 나는 짐가방에 든 것들을 떠올리다 대각선으로 멘 슬링백을 뒤적였다. 없었다. 슬링백을 탈탈 털었다. 립밤과 콤팩트, 여권과 지갑 그리고 휴대폰. 세 장의 카드와 현금 오백 유로. 그게 전부였다. 용각산 알루미늄 캔과 탯줄을 넣어 둔 파우치를 배낭에서 꺼낼까 말까 잠시 망설였던 것까지만 기억났다. 생각 끝에 정말 옮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우버가 10구의 한 골목에 닿았을 때, 인도와 차도 사이에 걸터앉은 홍이 보였다. 산호색 테두리에 푸른빛이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 우아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던 몇 시간 전의 홍의 모습은 아니었다. 모자는 구겨진 채 손에 들려 있었고, 선글라스는 엉망이 된 머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었다. 눈 화장은 볼에까지 검게 번졌다. 피렌체 여행 중에 샀다는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의 검은색 원피스는 희멀건 얼룩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윤희가 다가가 홍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홍은 윤희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정아가 홍의 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2열과 3열 사이 손바닥만 한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거기로 팔을 넣어 잠금장치를 푼 듯했다. 구슬처럼 반짝이고 잘게 쪼개진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차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좌석 아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까지 손을 넣어 더듬었다. 유리 조각이 손에 스치는 듯하더니 붉은 피가 맺혔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피를 쪽쪽 빨았다. 유리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용각산 캔도 파우치도 없었다. 정말 싹 다 사라졌다. 이 상태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힘으로 여행한단 말인가. 나는 깨진 유리 위에 앉아 터질 듯 벌렁거리는 심장을 손으로 눌렀다.
일단 경찰서에 신고하고 공항 렌터카 업체에 다시 가 봐요. 차를 바꿔야죠. 이미 벌어진 일 때문에 앞일을 망칠 순 없잖아요. 수습하죠, 우리.
차를 한 바퀴 빙 둘러본 후 윤희가 말했다. 너무 능숙하고 노련한 말투여서 이런 일을 몇 번이고 겪어 본 사람 같았다. 윤희는 어른이 되었구나. 수줍고 여려서 존재감이라고는 없던 대학 시절 윤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경찰을 부를까요?
정아가 말했다.
자기는 파리를 그렇게 여러 번 왔다면서도 몰라? 경찰이 이런 일로 여기까지 오겠니?
홍이 느닷없이 정아에게 짜증을 냈다.
너무 무서워요. 아까 성당에서 가슴이 훅 뜨거워지던 바로 그 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더 무서워요. 그게 암시였는데.
민지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가던 흑인 청년이 멈춰서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노, 땡큐. 나는 슬링백을 움켜쥐며 말했다. 차로 십 분 정도네요. 정아는 구글 지도로 경찰서의 위치를 파악했다.
여권이랑 휴대폰은 다 있지? 그건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내가 말했었잖아. 그것까지 없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홍이 말했다. 휴대폰과 여권만 빼고 모두 차에 두고 가라고, 노트북 배낭을 메는 나를 굳이 말렸던 이도 홍이었다. 조금 무거워도 메고 가겠다는 내게 모두 두고 가는데 굳이 왜 그러냐며 재차 말했던 이도 홍이었다. 나의 까다로움을 질책하는 말이라고 느껴졌으므로 의자 아래로 배낭을 밀어 넣으며 스멀거리는 불안을 외면했다. 아, 도대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홍은 어디서 무얼 했던 걸까.
오래된 석조 건물에 작은 국기가 달린 경찰서로 들어섰다. 그곳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관광객으로 이미 북적였다. 한국 사람도 더러 보였다.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담당 경찰을 만났다. 프랑스 남부 어디에서 잠시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다는 정아가 더듬거리며 홍의 말을 통역했다.
커피를 사러 가느라 고작 오 분쯤 자리를 비웠다고요. 그 사이에 캐리어 여섯 개가 모두, 아니 덩어리로 치면 열네 개나 되는 짐이 싹 다 사라졌어요. 그게 가능한가요? 트럭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죠. 의심이 가는 이들이 있어요. 아니, 거의 확실해요. 아랍인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눈빛이 정말 소름 끼쳤어요. 아, 저를 때리거나 위협한 건 아니에요. 깨진 유리를 보고 너무 놀라 다리를 헛딛는 바람에 라테를 쏟았죠.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어요. 싹 다 사라졌다니까요. 아, 씨, 어떻게 이러고 다녀.
홍의 말은 짜증으로 끝났다. 정아는 마지막 몇 문장은 통역하지 않았다. 경찰관은 마트 캐셔처럼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 컴퓨터 자판을 다닥다닥 두드렸다. 홍의 분실물 목록에 디올 백이 나오고, 에르메스 스카프가 나오고, 구찌 셔츠가 나왔다. 백 년도 더 되었다는 오르골과 자신이 태어난 해에 제작되었다는 접시를 설명할 때는 팬으로 모양을 그려서 보여 주었다. 홍의 화려한 분실 목록에도 담당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정아의 분실물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패드와 아이패드보다 비싼 명품 커버가 나왔고, 같은 브랜드의 하이힐도 나왔다. 분실 목록은 보험회사에 청구할 서류이기도 했으므로 대략의 가격도 서류에 적었다. 남편의 뼛가루와 아이의 탯줄에 생각이 멈췄다. 어쩌면 반입한 것만으로 죄가 될지도 몰랐다. 노트북 속의 사진 파일을 백업해 두지 않은 것도 생각났다. 칠 년을 사용하던 노트북을 얼마라고 해야 할까. 남편이 사용하던 물건이라 내게는 특별히 소중하다고 말하는 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몇 주를 심사숙고하며 꾸린 여행 가방 속엔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타인을 설득할 만큼 값나가는 물건은 없었다.
자기는 별로 잃어버린 게 없나 봐.
경찰 앞에서 복잡한 생각으로 머뭇거리느라 말을 더듬는 내게 홍이 말했다.
찾을 수는 있겠죠?
조사가 끝났을 때 정아가 모두를 대신해 경찰에게 물었다.
찾게 되면 연락드리죠.
담당 경찰은 피해자에게 섣부른 희망을 주거나, 대놓고 절망을 안기지 않으려 섬세한 무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무표정을 본 누구라도 여기까지라는 걸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파리가 이리 천박한 도시가 된 거지? 이게 다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난민 때문이야. 파리지앵은 절대 이런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는 거 자기들도 알지? 담당자가 출력된 서류에 사인을 해서 나눠 줄 때까지 홍은 잠시도 쉬지 않고 성토했다. 누구라도 저 입을 틀어막아 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정아도, 민지도, 윤희도 모두 입을 꾹 닫았다.
우리는 모두 ‘벽돌과 책’이라는 추천제 북 클럽에서 만났다. 정아와 민지와 나는 북 클럽이 없는 휴일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도성길이나 궁을 산책했고, 해방촌에서 뇨끼를 먹으며 백포도주를 마셨다. 커피가 좋은 집을 찾아 성북동과 후암동 산길을 걸었다. 예가체프는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고, 약배전 에티오피아와 중배전 과테말라를 좋아하는 공통의 취향이 있었다. 우리는 최근 읽은 책이나 영화에 대해, 각자 하는 일에 대해, 일터의 빌런에 대해, 요즘 유행하는 향에 대해, 육지에서 5,000킬로미터나 떨어진 태평양의 섬들에 대해, 그 섬에서만 평생을 사는 새에 대해 말했다. 그런 말들은 뒤탈 없이 무해하면서도 취향을 적절히 드러냈다. 취향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니까요. 정아가 말했고, 우리는 그 말속에 숨겨 둔 우월감을 즐겼다. 가끔 영화나 연극을 보았다. 민지는 북적이는 복합 상영관 대신 독립 영화관을 선호했고, 동유럽 영화를 좋아하는 정아의 취향과 중동 영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고려해 영화표를 예매했다. 관람 전에는 거북한 냄새가 남지 않는 가벼운 식사를 했고, 관람 후에는 경박하거나 무겁지 않은 음악이 흐르는 와인 바에 앉아 밤이 늦도록 여운을 나누었다. 정아와 민지는 나보다 일곱 살이 어렸지만, 사람을 대할 때 유능하고 경쾌했으며 닿지 말아야 할 곳을 건드리는 법 없는 정확한 거리 감각을 소유했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사람들의 부주의한 친밀감에 부담을 느끼던 내게 그런 감각은 소중했다.
작년 여름 윤희가 회장의 초대로 북 클럽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윤희를 알아보지 못했다. P대학 국문과 성윤희 교수님이십니다. 그날 발제자가 윤희를 소개했을 때 나는 돋보기를 빼고 단발머리에 얼굴이 해사한 여자를 자세히 봤다. 몇 년 전 소설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찾아온 동창에게서 윤희가 P대학에서 정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학 때만 해도 통통했던 얼굴이 가냘파지고 몸도 홀쭉해져 긴가민가하는데,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던 윤희가 수정아, 오랜만이야, 하고 내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한 후, 우리는 늦은 밤에 통화하거나 채소 요리가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오래된 친구가 주는 편안함을 긍정했다. 그해 겨울 첫눈이 오던 날이었다. 퇴근 후 인사동에서 만나 곤드레밥을 먹는데 윤희가 갑자기 수정아, 하고 은근하게 불렀다. 나는 식초 물에 살짝 데쳐 흑임자 소스를 뿌린 연근을 아삭아삭 씹다가 윤희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윤희가 말을 거두어들였다. 윤희가 뭘 들은 걸까. 그걸 확인하려다 마는 걸까. 조마조마한 심정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한옥 카페에서 생강차를 마실 때 윤희에게 남편이 죽었다고 털어놓았다. 북 클럽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일 때는 조금 구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차량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서요. 사용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차를 바꿔 줄 수는 없어요. 지금 반납하고 다른 차를 빌리든지, 그냥 쓰다가 약속된 날짜에 반납하든지. 규정이 그래요.
렌터카 직원은 공격의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굳건한 방어 태세로 일관했다.
누굴 호구로 보는 거야? 그건 안 돼. 보험 다 들었는데 뭐 이런 미친 규정이 있나.
홍이 기겁했고 정아가 통역했다. 나머지 일행도 부당하다고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직원은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삼 주치의 렌터카 비용을 그냥 날릴 수는 없었다. 구멍만 막으면 되는 거 아냐? 윤희는 직원에게 비닐봉지와 테이프를 얻어 와 구멍을 막고 테두리를 둘렀다. 그사이 날은 이미 어둑해졌다. 파리에 만정이 떨어져서 한시도 못 있겠다며 홍은 파리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개선문은요? 거긴 꼭 가야 하는데.
자기는 별로 잃은 게 없어서 덤덤한 건가? 볼 것도 없는 거길 왜 가.
내 말을 홍이 단박에 잘랐다. 일행들은 모두 지친 얼굴로 의자에 깊이 몸을 파묻고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창을 막은 비닐이 앞뒤로 맹렬히 흔들리더니 떨어져 나갔다. 뚫린 창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쳤다. 머리는 엉망으로 날렸고, 날카로운 소음에 귀가 아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시간엔 개선문에 올라가 있어야 했다. 도시의 끝을 붉게 태우는 노을을 거기서 봐야 했다. 마침내 어둠이 내리고 방사형의 도시가 노란 전등으로 환해질 때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 걸 상상하며 윤수를 두고, 자리를 비우고 와 볼 엄두를 냈다. 이게 어디 쉬운 결정이었던가.
윤수가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았을 때 남편은 애당초 우리 부부가 가기로 했던 파리 여행을 윤수에게 선물했다. 건축을 공부한다는 녀석이 파리는 봐야지. 남편은 아쉬워하는 나를 설득했다. 윤수는 개선문 옥상에서 어색하게 웃는 셀카를 보내왔다. 숫기 없는 녀석이라 누구에게 찍어 달라는 말도 못 했을 거야. 나는 윤수의 등 뒤로 도시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멋지다고 생각했고, 남편은 아이가 혼자 밥은 사 먹고 다니는지 걱정했다. 엄마, 아빠도 여기 꼭 와 봐! 정말 정말 멋져!! 윤수는 평소답지 않게 단톡방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의심 없이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윤수는 그해 겨울 군대엘 갔고 남편은 이듬해 늦봄 인쇄 공장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상대는 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던 음주 운전자였는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버티다가 한 번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철원 철책 부근에서 근무하던 윤수는 자정이 지나 장례식장에 당도했다. 군복을 상복으로 갈아입을 때도, 조문을 받을 때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울지도 웃지도 않고 서 있었다는 걸 뒤늦게 기억해 냈다. 그때도 그 모습을 보았겠으나 나는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상을 치르는 동안 남편을 대신해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했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미역국이냐 육개장이냐 찰밥이냐 흰쌀밥이냐를 결정해야 했고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를 결정해야 했고 상복을 고르고 머리핀도 선택해야 했다. 조문객들에게 어떻게 남편이 죽었는지를 설명해야 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손을 잡으며 근황도 물어야 했다. 슬픔이나 애도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윤수는 군대로 돌아갔다.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군대가 있어서 윤수를 돌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것도 같다.
오늘 당장 갈아입을 속옷이 없네. 땀이 흘러 엉망인데.
파리를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한창 달리고 있을 때 민지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 말의 어디가 거슬렸는지 홍이 속도를 더 높였다.
휴대폰 충전은 어떡하지?
정아가 덧붙였다.
사자. 필요한 건 최소한으로 사요. 쓰다가 버리고 갈 것으로.
뚫린 창의 소음 때문인지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윤희는 소리를 질렀다. 홍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갓길에 차를 세웠다. 급정거로 빗장뼈가 안전띠에 부딪혔다.
아이씨. 정말 이게 뭐냐고!
어머, 죄송해요, 관장님.
정아가 까닭 모를 사과를 했다. 홍이 핸들에 머리를 박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뭘 잃어버린 줄 알아? 수천만 원을 잃어버렸다고. 내 여행의 컬렉션이 모조리 날아갔다고.
알죠, 샘. 속상해서 어떡해.
윤희가 홍을 달랬다. 나도 운전석으로 손을 뻗어 홍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홍은 울었다가, 화를 냈다가, 다시 울었다. 홍의 분실 목록이 제일 길었으므로 최대의 피해자였고,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홍의 눈치를 살폈다.
지베르니로 이동하며 차 안에서 급히 예약한 숙소는 방 두 개의 작은 아파트였다. 더블 침대가 방마다 있었고 거실에는 소파 베드가 있었다. 조도가 낮은 스탠드가 구석마다 놓여 있었지만 천장 조명이 없어 집은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관장님은 저 방에서 혼자 편히 주무세요. 저희는 둘씩 쓰면 되니까.
정아는 홍에게 욕실이 딸린 방을 권했다. 그게 좋겠다며 윤희도 거들었다. 나까지 나설 틈이 없었다. 정아와 민지가 거실 소파 베드를, 윤희와 내가 방 하나를 나눠 쓰기로 했다. 방을 정했지만 정리할 짐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식탁 의자와 소파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 민지가 에코백에서 손가락 길이의 나무토막을 꺼내 불을 붙였다.
미쳤어? 뭐 하는 거야!
정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팔로산토야. 이 집 냄새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이게 냄새는 물론이고 나쁜 기운도 없애거든.
민지는 불꽃을 후 불어 끄고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연기가 스며들게 했다. 향이 좋네. 홍이 말했다. 민지는 구마 의식을 행하는 영매처럼 나무토막으로 S자를 그리며 뭔가 중얼거렸다. 민지의 주술적인 몸짓은 겨우 누르고 있던 불안을 들쑤셨다. 연기와 향이 좁은 공간에 번졌다. 남편의 유해가 섞인 용각산의 향과도 닮아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주말, 나는 남편의 유해가 있는 의왕의 납골당에 갔다. 항아리 앞에 놓인 가족사진 속 윤수는 중학생이었다. 연말에 일본 온천 여행을 갔을 때였나. 나 여기 한 스푼만 뿌려 줘.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걸으며 남편은 말했었다. 남해안의 작은 섬에 갔을 때도,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을 때도 남편은 일상적인 어투로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불길하지도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이 얼마나 완벽하게 평화로운지를 말한다고 여겼다. 나는 가방에서 용각산 캔을 꺼냈다. 유해 항아리에서 한 스푼을 덜어 내 용각산 가루에 섞었다. 남편이 좋아했던 몽생미셸의 바닷가에 뿌려 주고 싶었다.
이 정도면 되겠죠?
정아와 민지가 마트에서 장 본 물건들을 식탁 위에 올렸다. 칫솔 다섯 개와 치약 하나. 중저가의 샴푸와 린스. 평균적인 선택이었고, 치우치지 않는 선택이었다. 고생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박스에 열 개가 든 팬티를 두 개씩 나눠 가졌다. 로션도 하나로 나눠 쓰기로 했다. 어떤 순간에도 취향을 거스르는 선택을 허용하지 않던 이들이었다. 여행 가방이 사라지면서 그 속에 구겨 넣은 취향도 힘없이 사라졌다. 너무 쉽게. 아무도 아쉽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모네가 사십삼 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지베르니의 집 거실에는 그림이 빽빽이 걸려 있었다. 그림과 그림의 대상을 동시에 바라보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죽어 가는 카미유를 그린 청회색의 그림 앞에 멈춰 섰다. 엉망으로 찢기고 깨져서 죽어 가던 남편이 겹쳤다. 무서워서 뒷걸음치고 싶었던 순간. 정말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런 마음이었던 것만으로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모네는 저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견뎠을까. 삶과 죽음이 마주 보고 있던 그 시간을. 평생을 사랑했던 여자를 죽음 저편으로 영영 떠나보내는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처연하지?
홍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네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글쎄. 나는 카미유가 죽기 전부터 모네는 앨리스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봐. 앨리스가 옆에 있었기에 죽어 가는 아내에게 연민을 느낄 여유도 있지 않았을까. 뭐랄까, 너무 계산된 행동 같지 않아? 이걸 지고지순한 사랑이라 불러도 되나 몰라.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는 건 인정.
카미유에 대한 모네의 사랑이 믿을 만하지 않다는 건가요? 그게 없다면 이 그림은 뭘까요?
자기 순진하다 정말. 그거 알아? 여기 걸린 그림 다 가짜라는 거. 모작이야. 그걸 아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지.
나는 홍 앞에서 놀란 표정을 지어 그녀를 기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작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으므로 몹시 당황했다. 홍은 내 반응을 즐기듯 은근한 말투로 모네의 이중생활을 덧붙였다. 더 이상 모네의 그림을 예전처럼 볼 수 없을 거라는 저주도 잊지 않았다.
모네의 정원은 햇살을 피할 데가 별로 없는 낮은 꽃밭이었다. 잃어버린 선글라스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정아와 민지는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뜨거운 햇살 아래를 앞서 걸었다. 또 유리가 깨질지 모르니 차에 아무것도 두지 말라는 홍의 경고에 세면도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중이었다.
영감이 욕심이 너무 많지 않아? 수련만 이백오십 점이라니, 말 다했지. 크긴 또 얼마나 크냐. 덕분에 미술관, 박물관마다 다 있는 흔하디흔한 그림이 되어 버린 거야. 그러니 눈이 먼저 맛이 간 거 아니겠어. 그쯤이면 재능이라기보다는 성실이지. 살롱전에도 떨어지고, 떨어진 사림끼리 만든 낙선전에서 겨우 살아남았잖아. 근데 솔직히 말해, 예술이 성실로 되는 거니?
홍은 젊은 시절 맨해튼의 이름난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성북동의 한 갤러리에 스카우트되어 여러 전시를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꽤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사견이 잔뜩 실린, 근거를 알 수 없는 홍의 설명은 들어주기 힘들었다. 자꾸만 눈살이 찌푸려져 서둘러 표정을 지워야 했다. 홍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다른 일행들의 반응이었다. 어머, 어머 감탄을 내지르는 정아와 민지가 내가 알던 그 친구들이 맞나 싶었다. 윤희마저, 관장님이 아니면 어디서 그런 흥미로운 뒷얘기를 듣겠어요, 라며 홍을 은근히 부추겼다. 이렇게 말귀 딱딱 알아듣는 친구들이랑 여행하니 정말 좋다며 홍은 윤희의 팔짱을 꼈다.
모네가 그토록 사랑했다던 일본식 정원의 초록 다리에 올랐다. 연못에 떠 있는 분홍 수련은 너무 완벽해서 가짜 같았다. 모네는 자신이 심고 가꾼 수련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한때 홍수로 엉망이 된 모네의 정원은 그의 그림에 근거하여 다시 꾸며졌다. 이제 정원의 아름다움보다 정원이 얼마나 모네의 그림과 닮았는지가 더 관심거리가 되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모네의 정원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었어.
그 밤 윤희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가 말했다.
너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아.
윤희는 돌아누우며 말했다.
잃어서는 안 되는 걸 잃어서 그런 건가.
우리 모두 그랬지.
윤희의 말에 냉기가 돌았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켰다. 윤수가 돈가스와 떡볶이를 주문했다는 카드 알람이 화면에 떴다. 뜻밖에 카드 알람은 윤수의 무탈을 알려 주는 유일한 신호가 되었다.
여행 전날 여권을 찾다가 붉은 비단 주머니를 발견했다. 곱게 한지에 쌓인 뭔가가 딱딱하게 만져졌다. 한참 들여다보고서야 그 낯선 물건이 탯줄임을 알았다. 이십오 년 전 아이의 몸과 나를 잇던 탯줄은 한때 생명의 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무슨 생각에서 그걸 윤수에게 보여 주고 싶었을까. 윤수와 내가 한때 이렇듯 이어져 있었다는 걸, 여기 그 명백한 증거가 있다는 걸 보여 주면 뭐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을까. 아니, 때마침 윤수의 웃음소리가 닫힌 방문을 뚫고 흘러나와서였을까. 나는 그걸 손에 들고 윤수의 방문을 두드렸다. 윤수야! 이것 좀 봐! 대답이 없었다. 나는 방문을 열었다. 윤수는 힐긋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맹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게임은 멈추지 않았고 윤수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졌다. 엄마 내일 파리에 가.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 썩히지 말고 먹어. 윤수는 헤드폰을 빼지 않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뭔가가 폭발하고 죽어 나가는 화면을 쏘아보며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도 그 화면을 망연히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넌 내가 영영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지. 죽어 버렸으면 좋겠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멈춰지지 않았다. 윤수가 신경질적으로 헤드폰을 빼서 내동댕이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붉게 변한 아이의 눈이 두려웠다. 윤수는 나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손길이 억셌다. 나는 쉽게 밀려났다.
엄마는 아빠가 죽어서 좋죠? 여행도 가고 좋으시겠어요.
독기 가득한 음성이었다. 윤수는 문을 꽝 닫았다.
게임에 중독된 쓰레기! 너는 그냥 쓰레기야! 부모도 몰라보는 쓰레기! 나는 닫힌 문에 탯줄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소파 아래로 굴러간 탯줄을 주워 티슈로 감싸고 파우치의 화장솜 사이에 넣었다. 무슨 작정을 한 건 아니지만 이걸 집안에 굴러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집안에 굴러다녀 윤수가 저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장례를 마치고 나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출판사를 혼자 떠맡았다. 남편의 사고 보상금은 대부분 출판사 빚을 갚느라 쓰였다. 남편의 목숨값이 들어간 출판사를 망하게 할 수 없어 밤낮 일에 매달렸다. 복학한 윤수는 처음에는 내가 모르게 수업에 빠졌고, 나중에는 내가 아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짜증이 많아지다가 말이 없어졌다. 잠자는 시간이 달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사정을 들은 편집부장이 의사를 소개했다. 윤수는 상담을 완강히 거부했다. 윤수 대신 내가 상담을 받았다. 애도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의사는 말했다. 군대는 애도하기 적당한 곳이 아니잖아요. 그는 덧붙였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에 나는 얼마간 안심도 했다. 어쩌면 그 말이 듣고 싶어 의사를 만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아무 생각 없이 윤수의 닫힌 방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의사는 내게 약을 처방했다. 윤수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에도 열렬히 반응하던 감각이 조금 무디어졌다. 거실과 부엌을 벗어나 내 방문을 닫아걸 수 있을 만큼 무디어지는 밤도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는 무력감도 함께였다.
안방 창을 연 다음 허리를 접어 쭉 빼고 주차장과 인도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의 개수를 마흔두 개까지 세거나, 맞은편 아파트의 방마다 같은 위치에 놓인 티브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빠 같이 가. 아버지와 아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양복 차림의 아버지는 아들의 책가방을 대신 메고 걸었다. 당신이 왜 그걸 들고 와? 그러고 싶어서. 남편은 멋쩍게 웃었다. 모든 다정했던 것들은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책임지지도 못할 다정. 그 다정에 균열을 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11층에서 떨어진 내 몸이 바닥에서 박살 나는 상상을 했다.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고 살점이 사방에 튀기를. 분절되기를. 부디 윤수가 슬퍼하기를. 슬픔조차 모르기를.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쳤다. 극단적인 상상이 머리카락처럼 성가시게 가슴에 달라붙은 불안마저 삼키길 바라며 나는 밤마다 죽었다.
민지는 숙소를 옮길 때마다 연기를 피워 올렸다. 향이 좋네. 홍의 말도 여전했다. 그러게, 자꾸 맡으니까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도 같고요. 정아가 말했다. 빨랫감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노르망디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산 고무줄 바지와 소매가 없는 티셔츠를 세숫비누로 비벼 빠는데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윤수는 내 문자에 답하지 않았고 나는 기다리는 걸 멈추지 못했다. 손에 비눗물을 묻힌 채로 변기에 앉았다. 수돗물의 압력에 세면대의 빨래가 부풀어 올랐다. 수돗물을 잠그니 문밖의 웃음소리가 화장실 문을 통과 했다. 나는 손목이 아프도록 빨래를 비틀어 짰다.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치즈와 햄과 포도로 차린 치즈 플레이트를 앞에 두고 비옥한 토양이 만든 풀과 그 풀이 키운 소와 그 소에서 짜낸 우유와 그 우유로 만든 치즈가 이렇게 맛있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 옆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맴돌았다. 언니, 어서 와요. 앉아요. 민지가 말했다. 윤희는 나를 힐끗 보며 엷은 미소를 짓더니, 몸을 기울여 술을 좀 더 따랐다. 정아는 내가 막 빠져나온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늘도 정아는 홍의 속옷을 제 손으로 정성껏 빨아 줄 것이었다. 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생트카트린 성당은 잘 늙은 노신사처럼 섹시하더라고 윤희가 말했다. 교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아세요? 민지가 손뼉 치며 웃었다. 윤희의 얼굴은 취기로 붉어졌다. 홍이 잔을 빙빙 돌리자, 그 속에 든 붉은 와인이 물결쳤다. 민지는 입에 넣은 올리브를 씹지 않고 굴리며 유튜브에서 달리다의 노래를 찾아 틀었다. 슬픈 곡조마저 감미로운 밤이었다.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다음 목적지는 몽마르트르 언덕 내 달리다의 집이었다는 게 떠올랐지만 아무도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따뜻한 조명 아래서 커다란 포도주 잔을 손에 들고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의 밤은 다만 완벽해 보였다.
침대 끝에 누웠다. 천장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슬프지 않은 것 같아요. 오랜 업계 친구의 농담에 폭소를 터뜨리며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날 윤수는 내 방문을 닫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요? 능이버섯을 넣고 오리백숙을 끓였던 날, 몸에 좋으니 많이 먹으라는 내 말에 윤수는 말했다. 나는 윤수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깨진 창을 막는 법은 나날이 발전했다. 비닐을 다시 붙여도, 쇼핑백을 잘라 붙여도 얼마 안 가 다시 뜯어지자, 정아가 디자이너의 솜씨를 발휘해 딱딱한 박스에 창 모양을 본뜨고 앞뒤 양면 모두 검정 덕트 테이프를 빈틈없이 촘촘히 붙였다. 이제 창은 얼핏 보면 유리가 깨졌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중에도 짐은 늘어나 각자의 쇼핑백이 생겼다. 홍이 뭐라든 나는 쇼핑백을 차에 두고 다녔다. 정아는 매일 아침 선크림을 일행들의 손등에 조금씩 짜서 나눠 줬다. 모두 민지의 립스틱을 나눠 발랐지만 같은 걸 발라도 입술 색은 묘하게 달랐다. 매일 숙소를 옮겨 다녔다. 짐이 거의 없었으므로 크게 성가시지는 않았다. 가끔은 짐이 없는 이대로가 자유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아는 홍의 채근에 매일 경찰서에 전화했다. 모두 숨죽이며 정아를 바라봤지만, 담당자와 연결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전화가 불발되면 홍의 레퍼토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이번에 잃어버린 게 자기들 넷 다 모은 것보다 많다는 거 알지?
홍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값을 매기며 내가 잃어버린 것을 하찮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홍이 그럴 때마다 잃어버린 것의 목록을 떠올려야 하는 일도 고역이었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아요.
나는 더 이상 참고 싶지가 않았다. 쉬잇. 윤희가 고개를 흔들며 말렸다. 홍은 또 속도를 높였다. 속도를 장악한 자의 쾌감이 어깨 너머로 보였다. 나는 차가 곧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속도 좀 줄여요!
그만해, 수정아. 왜 자꾸 그래?
윤희야, 너야말로 왜 그래? 너는 이게 이해가 돼? 잃어버린 것의 무게를 누가 잴 수 있을까?
자기, 내게 뭐 불만 있어? 자기 때문에 여행 분위기가 이게 뭐야! 남편이 죽어 그런가 보다 하고 불쌍히 여겼더니.
홍은 차를 갓길에 세우고 몸을 돌려 말했다. 정아는 한숨을 쉬었고, 민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윤희를 노려보았다. 미안. 네 상태를 설명하려니까. 윤희의 대답은 더 끔찍했다.
해안으로 펼쳐진 푸른 초원의 끝자락에, 물안개에 싸인 몽생미셸이 보였다. 몽생미셸은 섬처럼 망망하고 성처럼 우뚝했다. 흙을 돋우어 도로를 만들기 전, 수도원에 이르는 길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에 잠기기도 하고 걸을 수 있는 뻘밭이 되기도 했다. 먼 길을 걸어 온 많은 순례자들이 몽생미셸을 눈앞에 두고 뻘밭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홍이 몽생미셸을 건너뛰고 스페인 남부로 가기로 했다며 바뀐 계획을 통보했을 때 나는 혼자 떨어져 나오기로 했다. 유난을 떠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두려움 때문에 혼자 남고 싶어졌다. 두려움을 견디는 건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었고,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바꿔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도처럼 느껴졌으니까. 홍은 열차역에 나를 내려 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지는 차에서 내려 나를 안아 주었다. 민지의 포근한 품에 안긴 순간 왈칵 서러운 마음이 들어 서둘러 몸을 돌렸다.
역으로 들어가자마자 검정 배낭을 사서 쇼핑백의 짐을 옮겨 담았다. 물 두 병과 초코바와 밀감 두 개도 샀다. 몽생미셸로 향하는 열차의 창가 좌석에 기대앉았다. 나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백인 여성이 커다란 배낭을 머리 위 짐칸에 올리고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몽생미셸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어서 순례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잠깐이나마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내 앞에 놓인 게 뭐든 아무래도 좋아. 나는 그녀의 낡은 등산화를 내려다보았다.
수도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서 내리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쳤다. 원피스가 훅 날아올랐다. 그걸 잡으니, 이번에는 모자가 날아갔다. 바람이 몸을 이리저리 밀었다. 머리카락이 눈을 가렸다. 마침내 모자를 움켜쥐자 웃음이 났다. 따스한 햇살이 들어찬 열차 안에서는 예상치 못한 바람이었다. 나는 모자를 단단히 쥐고 수도원을 둘러싼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도 멀리 갯벌에서는 사람들이 거닐었다. 남편의 유해를 뿌려 주고 싶었던 곳이 저기 어디였겠다. 수도원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 나갔다. 몽생미셸의 좁은 돌계단에 닿으니 바람이 어느새 잦아들었다.
그림이 그려진 앙증맞은 간판을 단 우체국과 빵집과 식당과 옷 가게가 비탈진 골목 양쪽에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통과해 줄을 서듯 차례로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계단이 가팔라 속도를 유지하기가 힘들었지만 뒤에서 사람들이 밀고 올라오니 혼자 멈출 수는 없었다. 다리는 무겁고 숨이 찼다. 한 걸음만. 제발, 딱 한 걸음만. 발아래 돌계단만을 바라보며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심장이 뻐근했다. 주저앉지 않고 수도원에 꼭 닿고 싶었다. 문득 고개를 드니 어느새 수도원 입구였다. 무너지고 새로 짓기를 천 년이나 반복해서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는 곳이었다. 수도원 내부에 요란한 장식은 없었지만 깊고 신비로운 공기가 감돌았다.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지나자 회랑이 나왔다. 회랑의 돌기둥에 손바닥을 대고 눈을 감았다. 윤수가 눈 안 가득 들어찼다.
수도원 꼭대기에 앉아 드넓은 갯벌과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건너편 망슈 해안에 펼쳐진 풀밭에 풀을 뜯는 양들을 발견했다. 바닷가 짭짤한 풀을 먹고 자란다는 프레살레인 모양이었다. 까맣다는 얼굴은 너무 멀어서인지 보이지 않고 그저 하얀 솜뭉치처럼 보였다. 짭짤한 풀을 먹어서 머리가 검어졌다고 했나. 머리가 검은 양이 짭짤한 풀을 먹는다고 했나. 남편의 말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해변의 프레살레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머리카락은 바람의 방향 따라 한쪽으로 쏠리고 어떤 표정을 지어도 어색했다. 전화기를 위로 아래로 움직여 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 장을 골라 윤수에게 보냈다. 수도원의 미로 같은 계단을 내려와 뻘밭을 향해 걸었다. 뻘밭은 질퍽하지 않고 얼마간 단단해서 걷기 나쁘지 않았다. 발에 바닷물이 찰랑거리게 닿았을 때 프레살레의 검은 얼굴이 보였다.
나는 뻘밭에 쪼그리고 앉아 맨손으로 땅을 팠다. 웅덩이가 얼만큼 깊어졌을 때 물이 조금씩 고였다. 웅덩이에 손을 넣고 흙으로 덮었다. 뜻밖에 따뜻한 기운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옆으로 웅덩이 하나를 더 팠다. 웅덩이 속 물이 빠져나오게 하려고 물길을 냈다.
윤수야, 이 길을 따라 걸어 나와. 한 걸음씩만, 딱 한 걸음씩만 걸어 나와.
몽생미셸이 멀지 않은 마을, 중정이 아름다운 작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파리로 돌아가는 열차를 탔다. 열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오르세 미술관의 입장권을 예매했다. 아무래도 모네의 방에는 꼭 가 봐야겠다. 출판사에서 새 소설 표지 시안을 보내왔다. 나는 이대로 좋다는 말과 함께 고생했다고 간단히 답을 했다. 어제 윤수에게 보낸 사진을 다시 열어보다가 카톡의 1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여행을 떠나온 이후 윤수가 내 카톡 메시지를 읽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배낭을 가슴에 꼭 안았다.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린 가방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가방과 함께 떠내려간 것들이 이제 그리 아쉽지도 않았다. 어떤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생겨나고 어떤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되려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잃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것들을 잃고도 살아진다는 건 생의 비정이 아니라 생의 비밀인지도 몰라. 창밖으로 노르망디의 푸른 초원이 지나갔다. 풀을 뜯는 한 무리의 양들이 초원에 내려앉은 구름처럼 몽글몽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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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박솔뫼 어느 날 아침 애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시간을 보내왔음을 알았다. 일을 하러 가는 길이었고 이곳에 이사와 이 열차를 탄 것은 1년 7개월째였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일 때 모든 것이 멈춰 서 있고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던 때부터 탈 것에 올라타 멀어지는 집과 나무들을 보아 왔다고 느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왜 그제야 그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 것일까. 어딘가로 향하는 감각과 함께 창 너머 공터와 집들과 골목들을 실제로 걷는 일은 왜인지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지고 언제까지나 좌석에 앉아 멀어지는 사람과 집들과 빨래와 커튼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애리는 사원 숙소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그만두고 나와 집을 구해 살다 사회복지와 개호 관련 자격증을 따고 이후에는 자격증과 상관없는 일을 몇 년을 하였다. 그러다 역시나 숙소를 제공하는 지금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회사는 큰 항구가 있는 대도시와 인접한 소도시에 있었고 숙소는 회사 직원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기 때문에 회사와는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예전 회사는 숙소에서 회사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서 다시 20분가량 열차를 타야 했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었고 버스를 타는 것이 여러모로 더 편했지만 버스는 늘 같은 회사 사람들로 붐볐고 앉아 가기가 힘들어서 애리는 보통 열차를 탔다.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자 곧이어 오랜 시간 기숙사에서 공동 부엌에서 공용 생활공간에서 얼굴만 익숙한 사람들과 살아왔다는 사실이 마치 연결된 문제처럼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둘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마음을 먹자면 살 곳을 구해서 혼자 사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같지만 애리는 왜인지 그럴 마음을 쉽게 먹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공동 숙소에서 사는 것이 부끄럽거나 괴롭지는 않고 돈을 아낄 수 있고 여러모로 편리한 점도 많았지만 혼자 살 집을 찾아 오래 쓸 가구를 사는 일에 겁을 먹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창은 여전히 흔들리고 창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가 보인다. 공터 구석에서는 무언가 야채 같은 것을 심는 것도 같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 도시 어느 한구석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는 드물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누군가의 넓은 방과 책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가도 애리는 동시에 이것저것 모든 것을 한 번에 버리고 어딘가로 금세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것이 실제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지금 생활은 지금 생활대로 좋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텅 빈 방 (떠올려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것을 원하는 마음은 원하는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곳에 확실하게 붙여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텅 빈 방의 모습이
- 관리자
- 2025-07-01
알고 싶습니다 최재영 가끔 인생이 내게 애벌레가 파먹는 중인 사과를 베어 물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선 오늘도 전 세계 기아들이 굶고 있고 남미 쿠데타 정부의 진압 몽둥이에 시민들이 맞고 있으며 전장의 포탄은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 집 안방엔 세 살 연상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비록 내일이면 공룡 박사 딸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흉내 내며 내 턱에 박치기를 날릴 것이고 아내는 원시인 사냥꾼처럼 괴성을 지르며 딸을 쫓을 것이지만··· 서른여섯 살의 나는 대한민국 성남시의 아파트에, 지금 여기에, 우리 세 가족과 잘 있고, 그것참, 다행이다. 내가 베어 문 사과 반쪽에 벌레가 없어서. 뉴스에 어느 북한군이 등장한 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장이었다. 한 북한군이 부상 때문에 낙오했는지 홀로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러시아 것인지 우크라이나 것인지 모를 드론이 공중에서 그를 촬영하고 있었다. 곧 드론은 부드럽게 수직 하강하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쓰으윽- 줌인 됐다. 뉴스 진행자와 패널들이 호들갑 떨었다. “너무나 리얼합니다!” 무슨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오바하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코웃음 치며 손에 든 캔맥주를 쓰으윽- 들이키려다, 멈칫했다. 아는 사람 같았다. 낯이 익었다. * 약 15년 전 여름, 나는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 6여단 영창에 15일간 구금되어 있었다. 죄명은 후임 폭행이었다. 막 상병이 됐을 때 생긴 일이었다. 영창의 개인 감방에 들어서자 정말이지 감옥처럼 생겨서(정말 감옥이긴 했지만)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커덩 자물쇠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스물한 살에 인생이 망해 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감방 철창 너머론 건물의 입구와 헌병 하나가 근무하며 감시하는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을 기준으로 네 개의 감방들이 반원을 그리며 각각 1호 창, 2호 창, 3호 창, 5호 창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4호 창은 없었다, 해병대에선 숫자 4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3호 창에 수감됐다. 감방 안에 앉아 있으면 보이는 건 꾹 닫힌 건물 문, 그리고 중앙의 그 헌병밖에 없었다. 양옆의 다른 감방들은 시야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1호 창과 5호 창에도 수감자가 한 명씩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단 2호 창만은 비어 있다고 했는데 폭행 사건이 일상적이라 항상 미어터지던 백령도 해병대의 영창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듣기론 당시 북쪽 상황이 심상치 않아 각 부대들의 징계 절차가 보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방 안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했다. 폭은 누워서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안쪽으로 세 걸음 가면 구석에 수도꼭지를 비롯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일명 고무신 변기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의 아담한 담만이 가림막을 해 주었다. 큰 것이든 작은
- 관리자
- 2025-07-01
헝가리 워터 홍성구 은수는 자신을 대학주보 기자라고 소개하였다. 나와 동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걸로 봐서는 한국적 정서에 기대는 MZ인 듯했다. 속단하는 부류에 드는 건 꺼림칙하지만, 곤란할 때는 한국식 정을 부르짖다가 느긋할 때는 서양식 합리를 따져 보는 MZ를 몇몇 봐 온 탓에 스마트폰 너머에서 이제 막 알게 된 후배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른 것은 오히려 경계심이 들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성사되었다. 은수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남자 조향사라서 관심이 생겼어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향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일까. 남자가 조향사라는 게 관심이 생길 만한 일인가. 인터뷰하러 온 은수는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았다. 그녀의 나신(裸身)에 미간이 찌푸려졌을 것이다. 향수는커녕 화장수조차 뿌리지 않았다니. 매일 밤 샤넬 No. 5를 입고 잠든 마릴린 먼로가 알았다면 야만적이네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얀 치맛자락을 바람에 날리면서. 어떠한 향도 느끼지 못했다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은수의 반소매 니트 티에서 플로랄 계열의 향이 풍겼다. 흔한 싸구려 섬유유연제 냄새. 합성 향료의 조악한 외피를 두르고 있으니 누더기 정도는 걸치고 있는 건가. 나와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는 은수의 말이 진심인지 의심이 들었다. 은수는 향수에는 문외한인 데다 향수를 뿌리는 문화적 행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야생의 신입생처럼 보였다. 인터뷰는 지루하고 단조로웠다. 은수는 예상이 가능한 질문의 목록을 들추었고, 나는 잡지인지 유튜브인지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인터뷰 답변을 하나둘 꺼내서 내놨다. 하품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그러나 은수가 노트북 화면을 덮자 드러난 그녀의 오른손 때문에 졸음기가 싹 사라졌다. 저런 손으로 타이핑한 건가. 은수의 오른 손목 부근에서 검지에 이르는 데까지 초록뱀 한 마리가 몸을 펼치고 있었다. 은수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려다가 뭔가 잊은 게 있는지 화면을 다시 열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화면은 바닥에서 15° 정도 위로 펼친 탓에 초록뱀이 키보드를 누비며 꿈틀거리는 게 여실히 보였다. 은수가 검지를 까닥일 때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아닌지 움찔 몸서리가 났다. 마을에서 독수리 삼촌, 용 삼촌, 호랑이 삼촌으로 불리던, 혈연이 아닌 삼촌들이 떠올랐다. 친숙함의 범위에서 한껏 벗어나 있지만, 두려움의 실체를 덮으려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정반대의 호칭을 얻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독수리,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당장 달려들 듯 노려보는 호랑이가 등에 새겨진 삼촌들. 대중목욕탕의 온탕에서 독수리, 용, 호랑이가 물 파편을 튀기며 솟구치면 따뜻한 물속인데도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유독 샅이 근질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삼촌이라고 부르라 하고 정작 그네들은 육시랄 놈, 벼락 맞을 놈, 급살 맞을 놈, 욕했다. 호랑이 삼촌이면서 육시랄 놈이 나를 불러 세운 기억이 난다. 다섯 살 연상인 그는 한참 어른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에게 그가 물었다. 요새 너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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