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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 작성일 2025-12-01

   우리는


심윤경


   “남양주에 가셨다고요?”

   전화기 속에서 딸이 물었다. 

   “아버지 내가 정말! (딸깍딸깍) 오늘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못 들으셨어요? (딸깍딸깍) 환절기에 가장 많이 쓰러지는데 (딸깍딸깍) 하라는 것도 아니고. 제가 지금 (딸깍딸깍) 하는 거예요?”

   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겹쳐 딸의 목소리는 자꾸 뚝뚝 끊어졌다. 마음이 급해지면 종종 그러듯 눈앞이 하얗게 아득해졌다. 친구들이 전화하고 있을 것이다. 딸이 전화를 끊어야 걸려 오는 전화를 받을 텐데, 딸은 거센 잔소리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 알았어. 일찍 들어갈 거야. 조심할게. 걱정 말아라.”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딸의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딸의 전화를 중간에 끊어 버린 것은, 그의 기억에는 한 번도 없었다. 딸이 마음 상하지 않고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친구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하나하나 무사히 모여서 택시를 타야 한다. 이전에 와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에서 여기저기 부실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조급해질 것이다. 

   구십 세가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고, 구순 생일에 찾아온 조카들이 물었다. 딸이 예약해 놓은 한정식집은 유명세가 있는 곳이었지만 시장바닥처럼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오래 담아 놓은 나물 윗부분이 말라 가고 있었다. 그의 자식들은 예약했던 것과 메뉴가 다르고 방도 원하던 곳이 아니었다고 한정식집에 항의했다. 자식들의 밝지 않은 얼굴을 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는 여태까지 살아도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이라고 답하고 말았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더 화창하게 대답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딸이 화를 내고 있지만 (큰소리로 “제발 자식 말 좀 들으세요!”라고 했다) 하필 모이기로 한 날의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내려갈 줄을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옥희는 골반이 아팠고 신성이는 방향감각이 깜빡깜빡했다. 옥희보다는 신성이가 좀 더 걱정이라서, 딸의 전화를 끊고 신성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드디어 안도했다. 신성이는 오십 대 남자의 도움을 받아 나타났고 옥희는 누구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옥희와 신성이는 지팡이를 짚었고 성훈은 아직 두 발로 다닐 만했다. 세 친구 모두 한 대뿐인 엘리베이터를 잘 찾아 고생 없이 나타났으니, 일단 모험의 첫 단계는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지하철로 오니까 참 쉽다. 여기까지 지하철이 닿는구나.”

   요새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지하철이 닿았다. 지하철 4호선이 진접역까지 닿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안양, 용인, 일산에 사는 구십 대의 세 친구가 누구 도움 없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남양주 은혜와 평화 요양원에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사릉역이었지만 친구들이 경춘선을 갈아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멀어도 익숙한 지하철이 좋았다. 어차피 택시를 탈 것이니, 택시비를 조금 더 내면 된다. 이만한 계획을 세우기까지, 성훈은 오래된 나무 책상에 놓인 PC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긴 시간 지도를 연구했다.

   “거, 꺼먼 안경 쓰고 다니지 마라. 안 보여서 넘어지겠다.”

   “이게 안에서는 밝아지고, 밖에 나오면 꺼메진다고. 딸이 사다 준 거여.”

   “그래도 밝은 걸 쓰는 게 좋아.”

   평생 멋쟁이였던 옥희는 모직 모자에 화려한 큰 꽃무늬가 놓인 실크 스카프를 둘렀다. 선글라스가 좀 그랬다. 옥희는 흥, 하는 얼굴이었다. 

   “성훈이 말 들어. 늙어서 건방지면 죽어.”

   넋이 있는지 없는지 눈만 껌벅이던 신성이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늙어서 건방지면 죽는다는 건, 그들 사이에서 팔십이 다가올 무렵서부터 내내 유행했던 농담이었다. 성훈이는 이름에 훈 자가 들어가서 평생 훈장질이라는, 칠십 년 묵은 농담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신성이는 언젠가부터 표정이 없어졌다. 쟤가 저러다‧‧‧ 내심으로 늘 걱정이었지만 신성이는 그렇게 표정이 없어지고 방향이 깜빡깜빡하는 채로 십여 년을 잘 버티고 있었다. 

   그는 택시 호출 앱에 은혜와 평화 요양원을 목적지로 입력했다. 잠시 후 예약된 택시가 그들 앞에서 멈추어 섰는데, 그들이 타려 하자 택시 운전사의 눈빛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예약하셨어요? 어르신, 택시 부르신 거 맞아요? 하고 기사는 여러 번 다시 확인했다. 그가 택시 예약 화면을 보여 주자 신기한 일이 다 있다는 듯이 웃었다. 성훈은 젊어서부터 기계와 신문물에 밝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내내 과학주임을 도맡았다. 컴퓨터니 인터넷이니 하는 것들이 정신없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이미 그가 은퇴를 앞둔 무렵이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그런 것들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들을 익혔다. 은퇴한 뒤에도 여행을 떠나면 액셀에 계획표를 정리했고, 카페에 일부러 들어가 키오스크의 화면을 용감하게 꾹꾹 눌렀다. 

   “여기 지하철이 열린 지 삼 년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 열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사근사근하게 말을 붙였다. 

   “어르신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가 개띠. 34년 개띠.”

   기사는 자기가 그 유명한 58년 개띠인데, 부모님을 여읜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따져 보자면 그들은 기사의 부모 연배가 되었다. 두 번 돌아간 띠동갑, 개들로 가득 찬 택시였다. 요양원에 친구를 보러 간다는 말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찾아오면 친구분이 반가워하시겠다고도 했다. 병수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할지, 알아보기나 할지, 그 점을 완전히 자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 보는 거였다. 일단은 택시 기사가 물색없이 가장 기뻐해 주었다.

   “그러면 세 분은 학교 동창이세요?”

   그들은 꼭 어떤 친구라고 말할 수 없는 사이였다. 용인 남쪽 끝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드문드문한 인연이 생겼다. 젊어서는 대충 아는 사이로 지내다가 육십 대에 암으로 죽은 한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부쩍 가까워졌다. 하나둘 은퇴를 맞이하던 그 무렵부터 느슨한 향우회랄까, 일 년에 두세 번쯤 모이는 사이가 되었다. 

   모임이 가장 북적였던 칠십 대 중반 즈음엔 한 번에 열 명 넘게 모이기도 했다. 서로 돈 문제로 낯을 붉히기도 하고, 배필을 잃은 후 외로운 사정을 나누다가 뒤늦게 살 닿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런 폭풍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모임에 반짝 불온한 활기가 돌았다가 몇 년 후 한두 명 인원이 줄어든 채로 좀 더 아늑해졌다. 팔십 대 이후로는 별다른 격동 없이, 지속적으로 인원이 줄었다. 그들은 성실하게 장례식에 참석해 친구를 애도하고, 다시 모였다. 

   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친구들끼리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끈끈한 결속이 생겨서 줄어드는 체력과 반대로 점점 더 자주 모였다. 일곱 명인 채로 5년쯤 시간이 흘렀고 매달 한 번씩 모였다. 그때부터 지금 모이는 종로3가 일호집이 고정적인 아지트가 되었다. 예닐곱 명이 미국산 근고기를 구워 먹고 소주 몇 잔을 나누고 만 몇천 원 회비를 냈다. 

   모임의 기둥과 같았던 중석이가 죽었을 때, 친구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남았다.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되었고, 팔십이 넘어서도 싱글을 친다고 자랑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덧없이 가 버릴 줄은 몰랐다. 시간이 중석이도 이길 줄은, 그것도 그렇게 간단히 이겨 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남은 친구들은 중석이가 있던 날들을 종종 회상했다. 멀리 갈 때면 기사가 모는 차를 타기도 했고 중석이가 예약한 근사한 리조트에서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중석이가 거둔 성공을 아주 조금은 나누어 누렸다. 잘난 체한다고,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서로 고함을 지르는 일도 일어났지만, 그것조차 젊고 기운이 있을 때 하던 일들이었다. 중석이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도 종로3가역에서 모여서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은혜와 사랑 요양원에 갔을 것이다. 

   중석이가 떠난 뒤로 누구의 제안이랄 것도 없이 여섯 명의 친구는 매주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쯤은 누구나 별다른 일정이랄 것도 없어서 꼬박꼬박 매주 목요일 오후 한 시 종로3가 일호집이었다. 정순이와 두원이가 차례로 모임에 얼굴을 비치지 못하게 되었다. 정순이는 고관절을 다쳐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두원이는 치매로 정신을 놓쳤다. 그들은 바깥 걸음을 못 하게 된 채로 요양원에 2~3년씩 머물다가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 기간이라서 마지막 가는 길도 함께하지 못했다. 부고 문자를 보고, 조의금을 부치고, 집에 혼자 앉아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그런 이별은 낯선 방식이었고, 인간이 세상을 떠나는 길이 좀 더 마구잡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사람이 죽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화장을 치르는 것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어느덧 적응이 되었다. 코로나가 물러난 이후 일호집의 한 테이블을 넘어가지 않는 넷이 된 채로 이 년 동안, 친구들은 매주 모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달 전쯤부터 병수가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셋이 일호집에 모여 앉아서, 끈기와 의지를 가지고 병수의 전화번호를 거듭 고쳐 눌렀다. 하지만 병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죽었다면 부고가 날아왔을 텐데, 많은 이별을 겪었고 어떤 이별도 쉬운 것은 없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것은 더 마음이 힘들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만 알아도 좋을 것 같았다. 

   어느 날 휴대폰 화면에 병수의 이름이 뜬 것을 보고 성훈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병수의 자식들이 그의 부음을 알리는 전화일지도 모른다고, 짧게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성훈아.”

   다행스럽게도 전화를 건 사람은 병수 본인이었다. 

   “병수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지냈어. 지금 어디야.”

   마음이 급해서 한꺼번에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병수는 대답이 없었다. 성훈은 정신을 가다듬고 제일 중요한 질문을 추렸다.

   “병수야, 지금 어디야.”

   “몰라.”

   전화기의 반대쪽 끝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전화를 왜 안 받았어.”

   “전화기를 보호자가 가지고 있어.”

   “보호자? 보호자가 누군데?”

   “몰라.”

   다시 한번 아득했다.

   “전화를 바꿔 줘. 보호자한테 전화를 바꿔 줘봐.”

   “보호자, 안 받아.”

   병수는 금방이라도 다시 사라질 듯 위태로웠다. 생과 사의 가름이 예 있으매, 지금 병수를 잡아야 한다. 지금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는 마지막 연락인 것을, 성훈은 경험과 직관으로 깨달았다. 그런데 모른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병수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성훈은 눈앞에서 희뜩희뜩 보이다 말다 하는 얇은 실을 어떻게든 잡으려 애썼다. 

   “애들, 애들은 연락이 되나?”

   “재승이가 주말에 와.”

   “아들 연락처가 어떻게 돼?”

   “몰라.”

   병수의 휴대폰에는 아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겠지만, 그것을 성훈에게 보내 줄 능력은 지금 병수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볼에 닿은 휴대폰이 더 따뜻해졌다. 성훈은 애타는 심정으로 휴대폰만 더 힘주어 움켜쥐었다. 병수에게 닿기 위해 그가 짜낼 수 있는 생각들은, 이제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성훈아. 나 산보하고 싶다.”

   “그래, 병수야. 산보시켜 줄게.”

   “보호자가 바빠. 산보하고 싶다.”

   “그래, 병수야. 산보하자. 조금만 있어. 우리가 갈게.”

   거기까지 하고 전화는 끊어졌다. 병수가 어디 있는지 묻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성훈은 딸이 가져다 놓은 된장죽이 식도록 멀거니 바라보며 병수가 지금 어떤 상태일지 생각했다. 

   노인에게 어느 날 일어나는 흔한 일일 뿐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비틀하게라도 매주 목요일 일호집에 나타나던 병수는, 어느 날 아침 더 이상 걷기 힘들어진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병수의 자식들은 의논한 끝에 병수를 요양원에 보내었을 것이다. 병수가 말하는 ‘보호자’는 아마도 간병인일 것이다. 간병인이 병수의 휴대폰을 맡아 두었을 것이다. 병수에게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고, 가끔씩 그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 줄 것이다. 병수의 가물가물한 정신에 기적적으로 성훈에게 연락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그렇게 닿은 병수의 전화가 우주의 숨결이거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기적 같기도 하고 덧없기도 했다. 

   그다음 주 일호집에서 모인 세 친구는 병수의 소식에 고무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했다. 성훈아, 산보하고 싶다. 옥희야, 신성아. 산보하고 싶다. 병수의 목소리가 세 친구의 귀에 똑같이 들렸다. 그들은 간병하는 시늉만 하다 마는 게으른 간병인들을 헐뜯었다. 부모를 요양원에 넣어 놓고 찾지 않는 자식들을 한탄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당장 찾아올 가까운 미래일지 몰랐다. 병수를 휠체어에 태워서 후딱 요양원 마당 한 바퀴라도 데리고 돌아 줄 수 있다면. 아니, 그들의 전화를 받아 주기만 한다면. 어느 요양원인지 알려 주기만 해도, 찾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만 있으면 더 바랄 일이 없을 텐데. 병수의 전화가 마지막 인사였다고, 친구들은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신성이가 중얼거렸다.

   “재승이. 전재승이다. 병수 아들이.”

   병수 큰아들이 재승이였다. 그 이름이 맞다, 전재승이다. 병수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걔가 사시 패스했잖아. 변호사.”

   잊고 있던 기억의 실마리가 번쩍 떠올랐다. 병수 아들이 사시 패스했다는 자랑을 여러 번 들었는데, 어느 결에 잊고 있었다. 당일의 일들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데 오래된 기억들은 그들을 떠나지 않고 곁에 머물렀다. 

   “그래 맞다. 아들이 변호사라고 했지.”

   “잠실. 잠실에 사무실이 있다고 한 거 같은데.”

   신성이는 급장을 도맡던 친구였다. 작은 몸집에 인물도 초라했지만 총명하고 우스개를 잘했다. 대기업에서 정년까지 일하고 은퇴했다. 어디라도 대학 졸업장만 있었으면 분명 임원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성훈은 그에게 은근한 경쟁심을 가지기도 했다. 중석이는 넘보지 못할 나무라도 신성이는 요것쯤, 하는 기분이 있었다. 질병으로 표정과 말이 없어지고 걸음이 휘청거리게 되었지만, 한평생 신성이와 함께한 총기는 그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거, 검색을 해 봐. 잠실에 전재승 변호사가 있을 거 아니야. 너는 폰도 잘 쓰는 애가.”

   그 생각을 왜 진작 못 했지. 혀를 차면서 성훈은 휴대폰으로 잠실에 전재승 변호사를 검색했다. 잠실은 아니었지만 강동구 문정동에 전재승 변호사가 검색되어 나왔다. 사진 속 변호사의 얼굴은 병수의 젊은 날과 그대로 판박이라서 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가뭇없이 사라지려던 우주의 숨결이 기적처럼 그들에게 다시 닿았다. 그들은 사진을 최대한 확대해 코가 닿도록 들여다보며 탄식하고, 전재승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에 전화를 걸었다. 

   “전재승 변호사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은 여자는 친절했지만 쉽게 전화를 바꿔 주지 않고 누구냐고 거듭해 물었다. 전재승 변호사의 아버지인 전병수의 백암초등학교 동창, 오성훈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면서 자꾸만 떳떳잖게 주눅 드는 기분이 들었다. 애비 친군데, 주눅 들 것이 무엇이 있나. 하지만 늙은 것은 떳떳잖은 거였다. 서두르거나 매달리거나 화내는 기색이 없게, 위엄있고 담담하게 말하려 애를 썼지만 결국 직원은 변호사님이 외근 중이시니 돌아오시면 메모 전달하겠다는 상투적인 대답만 남기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성훈은 통화를 마치고 마른 입에 맨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외근이라는데, 핑계 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애비를 요양원에 넣어 놓고 전화 받기가 싫은가 보지.”

   “병수가 아들들한테 섭섭잖게 해 줬잖아.”

   “벌써 오래전에 다 정리해서 줬지. 세금 오르기 전에.”

   “그러길래 자식들한테 재산을 미리 다 주면 안 된다니까. 우리 말 안 듣더니.”

   병수는 잘 키운 아들들이 평생 자랑이었다. 변호사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병수는 부동산에 일찌감치 눈을 떠서 아들들에게 아파트 한 채씩을 해 주었다. 당시엔 병수가 무리한 빚을 내가며 잠실 언저리에 연탄보일러 때는 낡은 집들을 사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으나 지나고 보니 이제는 꿈도 꿀 수 없는 큰 재산이 되었다. 친구들은 그런 병수를 부러워했다. 자식들에게 집을 한 채씩 물려줄 수 있었다면, 세상 더없이 떳떳한 인생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큰 재산을 물려받아 놓고서도, 결국 자식들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 지인들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동안 많은 형제와 친구들을 앞세웠고 그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친구들은 재산을 장남에게, 큰딸에게, 끝까지 그를 모시던 막내에게, 또는 법대로 골고루, 각자의 여건과 견해에서 합당하다고 여기었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려주었다. 일찍 정리해 주기도 하고 죽고 나서야 상속되기도 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 자녀에게 몰아 주면 나머지 자녀의 반발이 컸다. 골고루 물려받으면 누군가의 기여가 더 크거나 적다고 여겨서 사이가 틀어졌다. 문상객들이 보는 눈앞에서 형제와 부모에게 사나운 언사를 내뱉는 호래자식도 여럿이었다. 몇 푼 모으지도 못했는데, 가려니 나눌 일이 큰일이었다. 차라리 외동이면 나았을까? 그들 세대에는 외동을 두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러하든 아름답지 않은 모양새로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나면, 그들은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그러길래 미리 물려주면 안 된다고. 받은 놈은 고마움이 없어지고 못 받은 놈은 원한을 품게 된다. 답이 없는 일이다 보니 그런 서글픈 주문이나 외게 되었다. 

   “딸이 있어야 해. 병수가 딸이 없어서 말년에 이런다.”

   딸이 많은 옥희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딸이 있었던들 저 상태의 병수를 어찌 더 보살필 수 있었을까 싶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소리도 주문처럼 되풀이했다. 그들이 젊을 때는 딸을 많이 낳으면 흠이 되던 시절이었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딸들의 수만큼 위세가 되었다. 옥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딸들이 챙긴 물건들을 바르고 먹고 입으며 세상 더없이 위세가 당당했다. 

딸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성훈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 병원에 동행하는 것도, 냉장고에 반찬을 채워 넣는 것도 딸이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집은 이미 오래전에 아들 이름으로 넘겨주었다. 마지막으로 이사하면서 집을 아들 명의로 해 주자고 한 것은 아내였다. 성훈은 반대했지만 나중에 일이 복잡해지지 않게 하려면 그게 최선이라고, 아들이 제 여동생을 챙겨 줄 거라고, 아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들 부부는 수시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낡은 아파트에 입주해 살면서 기쁜 얼굴을 하지도 않았다.

   투자나 부동산을 잘 모르던 그들 부부가 오십을 넘기면서 겨우 장만한 서울 동쪽 끄트머리 헐한 아파트가 재개발 광풍을 몇 번 거치면서 깜짝 놀랄 만한 재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게 그렇게 되고 나니까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어느새 딸도 환갑을 넘겼다. 세금을 아꼈을지 모르지만 딸에게는 평생 죄지은 기분이 되었다. 이젠 완전히 아들의 집이 되어 버린 마당에 이제 와서 딸에게 뭘 챙겨 줄 방법도 모호해졌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2년이 되었고, 이 어색함을 성훈 혼자만의 몫으로 남겨 두고 가 버린 것이 그는 못내 원망스러웠다. 

   늙으니 서럽다는 게 그런 거였다. 젊어서는 이런 일들이 없었으니까. 그들은 유능했고 억세었고 끈기 있게 자식들을 키웠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인생의 복무려니 여겼다. 그런데 그들의 생애 중간에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계약이 부당하게 중도해지 되고 새로운 규약이 선포되었다. 자식들은 그들이 자녀를 키운 방식이 우악스러웠고 무엇 하나 공평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저희들도 손자 손녀를 볼 나이에 이르도록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는 게 말이 되나, 성훈은 그것이 정말이지 눈이 둥그레지도록 놀라웠다. 그들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곤 없었어도 부모를 원망하는 법은 알지도 못하고 살았던 세대였다. 

   “괜찮아. 아들놈이 어딨는지 알았으니까. 전화 안 받으면 찾아가면 되지.”

   성훈은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옥희와 신성이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세 친구가 함께 찾아가서 전재승 변호사 사무실 앞에 누워 버리면 아주 장관일 것이다. 제깟 놈이 세상 더없는 외근을 나갔더라도 돌아오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친구들은 약간이나마 병수 곁에 가까워진 듯 기분이 좋아져서 헤헤거리고 불 위에서 뻣뻣해진 마지막 고기를 입에 털어 넣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문정동에 누워 버릴 결심이 무색하게, 다음 날 아침 전재승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르신, 어제 제가 전화를 받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전화 주셨다고요.”

   “응응, 그래. 나는 오성훈이라고, 자네 부친의 초등학교 동창인데‧‧‧.”

   예상하지 못한 공손한 목소리에 성훈은 꿀밤을 한 대 맞은 기분이 되었다. 어제 세 친구가 한껏 미워했던 변호사는 더없이 정중하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정신이 어두워지고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급히 남양주의 한 요양원으로 모셨다. 간병인을 구했으나 한국어가 어눌해서 아버지께 걸려 오는 전화를 받지 않으려 한다. 다행히 아버지를 씻기고 돌보는 것은 아주 잘 해내고 있다. 자식들이 최대한 자주 찾아뵙고 산책이라도 시켜드리려 애쓰고 있기는 하다. 친구분들이 찾아가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라면 사릉역일 텐데, 걸어갈 만한 거리는 아니다. 요양원이 외진 숲속이라서 어르신들이 찾아오시기 힘들 터이니 날짜를 말씀해 주시면 자신이 휴가를 내어 모시고 가도록 하겠다. 아버지와 동갑 친구분께서 이렇게 건강한 목소리로 전화를 주시니 불과 얼마 전까지 정정하던 아버지를 다시 뵙는 것 같아서‧‧‧.

   전재승 변호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친구들과 헐뜯었던 것이 미안할 따름인 착한 아들이었다. 

   “자네도 바쁠 텐데 굳이 우리를 데리고 갈 필요는 없어. 우린 지하철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되니까. 시간이 나거든 아버지를 한 번 더 찾아뵙도록 하구. 전화 줘서 고마워. 자네와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좋아졌네.”

   성훈은 지도를 뒤져 은혜와 평화 요양원의 위치를 확인했다. 변호사의 말처럼 경춘선 사릉역이 가장 가까웠지만 익숙한 4호선이 닿는 진접역에서 모이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역에서 요양원까지는 택시를 타면 되니까 적당한 거리이기만 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 

   달리는 택시의 창밖으로 보이는 추위가 위협적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더웠는데 갑자기 영하로 떨어졌다. 이런 날 노인들은 흔히 뇌혈관이나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는 이유로, 딸은 화를 냈다. 자동차 어딘가에서 외기가 새는지 무릎 근처에 꼬집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성훈은 꾹 참았다. 곧 요양원에 도착할 것이다. 

   요양원은 야트막한 야산을 등지고 숲속에 아늑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맵짠 추위에도 아직 숲에 초록이 남아 있었다. 정문 앞에서 그들을 내려 주면서 기사는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어르신들.”

   “늙으면 춥고 더운 걸 몰라. 그냥 죽지.”

   신성이는 젊어부터 능숙하게 농을 쳤다. 이제 병들어 표정을 잃은 얼굴로도 뜻밖에 그럴 때가 있었다. 농담이나 얼굴이나 바싹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건조해서 그럴듯하게 잘 어울리기도 했다. 죽음은 그들 곁에 아주 바짝 붙어 서기도 했지만 가끔은 웃으며 바라볼 만큼 조금 떨어져 있기도 했다. 병수에게 가는 이 순간은 이상하게 그것이 병수의 안부를 물으러 함께 온 오래된 친구 같았다. 그들은 마음으로만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두 다리를 펴고 중심을 잡느라 애를 쓰기 분주해서 몸까지 웃을 겨를이 없었다. 

   “죽는 건 나쁘지가 않아. 다른 게 고약하지.”

   “다 고약해. 다 고약해.”

   성훈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래 중에서 드물게 혼자 지팡이를 짚지 않는 것이 자랑이었지만, 그렇다고 움직이기 늘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따뜻한 1층 로비 접견실에 놓인 둥근 소파에 앉아 병수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병수를 만나 얼마나 고약한 모습을 보게 될지 가늠되지 않아서 그들은 갑자기 비관주의자들이 되었다. 

   ‘보호자’는 뜻밖에 덩치가 우람한 남자였다. 동남아 쪽으로 보이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하얀 앞니에서 광채를 발하며 나타났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실내라도 서늘했는데 헐렁한 홑겹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들과 병수를 번갈아 손짓하며 프렌, 프렌이라고 외치고 병수가 탄 휠체어를 면회실의 테이블 앞에 고정시켰다. 보호자는 친구들에게 병수를 맡기고 더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두어 칸 떨어진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엉덩이가 소파에 닿기도 전에 이미 눈은 휴대폰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덩치와 활기에 친구들은 사뭇 놀랐다.

   병수의 짧은 머리칼에서 신선한 향기가 풍겼다. 명랑한 보호자가 굵은 팔뚝으로 힘들지 않게 병수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을 것이다. 누군가 의지를 가지고 섬세하게 근육과 지방을 발라낸 것처럼, 사람이 아니라 볏짚으로 엮은 허수아비처럼 야윈 모습은 아무래도 마음이 아팠다. 친구들과 눈을 맞추지도 않고 시선이 두서없이 여러 곳을 향했다. 병수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도 열흘이 넘었다. 그 사이 상태가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성훈은 병수에게 말을 걸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지 기억나냐고 묻자 병수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성훈이, 라고 대답했다. 

   “내가 전화했잖아. 한번 오라고.”

   긴장했던 친구들에게 모두 숨이 돌아왔다. 그들은 병수의 큰아들 전재승 변호사를 생각해 내고 그에게 연락이 닿아 요양원까지 오게 된 기적 같은 과정들을 기쁘게 반추했다. 병수가 성훈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으면, 신성이가 재승이를 생각해 내지 않았으면, 아흔이 넘어서도 친구들이 정신이 맑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을 지키지 않았으면 이렇게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하나 장하고 기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병수가 부드러운 눈으로 성훈을 보면서 성훈이잖아, 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신성이는, 신성이 알아보겠어?”

   병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이, 알지. 라고도 했다. 

   “옥희는?”

   병수의 시선이 애매한 지점에 머물었다. 

   “옥희? 걔는 연락이 없어.”

   옥희의 입술이 떨렸다. 

   “거, 꺼먼 안경 때문에 그런다. 그거 좀 벗어 봐라.”

   신성이 말에 옥희가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옥희는 연락이 없어. 아주 끊어져 버렸어.”

   옥희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뜻밖에, 병수는 중석이를 기억해 냈다.

   “중석이가 얼마 전에 왔다 갔지.”

   “중석이를 보았어?”

   “부산에서. 다녀갔지.”

   중석이가 죽은 지 10년이었다. 그가 부산에서 살았던 적도 없었다. 병수의 혼란한 기억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 엉키었는지 모른다. 

   “망헐 놈. 중석이는 왔다 갔고 옥희는 연락이 끊어졌구나.”

   옥희가 한탄했다. 속상했지만 맥락이 이어졌다가 끊어졌다가 하는 채로라도 그럭저럭 이야기를 나눌 만했다. 병수는 신성이와 옥희 뒤편에 서 있는 종려나무 화분에 주로 시선을 두고 있다가 이야기를 알아듣겠다 싶으면 드문드문 말을 보탰다. 마치 종려나무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중석이가 종려나무 곁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죽어서 떠난 가족들, 요양원에서 말을 잃은 친구들, 그들은 느릿느릿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면 넷 중에 누군가 각주처럼 소식을 붙였다. 

   종진이. 딸이 지금도 하지, 그 보리밥집을. 

   대규. 술이 과했지. 더 살았을 텐데.

   영동이. 사변에 갔지. 덩치가 커서. 

   사변이 났을 때 그들은 열일곱 살이었고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징집의 기로이기도 했다. 가난했고 못 먹던 시절이라 그들은 대체로 올망졸망했으므로 전쟁을 피했다. 영동이나 몇몇 친구들이 전쟁 막바지에 전선에 나갔고 그중 몇몇은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온 친구들은 평생 훈장처럼 6.25 참전용사증을 품에 넣고 다녔지만 그걸 부럽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순철이. 눈이 안 보여서 고생했지. 마지막에.

   대원이. 한 이십 년 앓았지, 그 마누라가.

   기덕이. 기덕이처럼 놀던 애가 없었지. 암 없었지.

   기덕이 이야기가 나오자 친구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기덕이는 날래고 재주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윷놀이에 따를 자가 없었다. 그들은 윷을 놀 때 말판을 쓰지 않았다. 세동 업은 대원이 말이 뒷모개에 있어서 원방을 뜬 기덕이한테 개낀이라는 식으로, 말판 위에 모든 말의 위치가 모두의 머릿속에 있었고 정연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기덕이에게 걸렸다 하면, 볼 것도 없었다. 그들이 젊어 놀던 시절에는 아무도 말판을 쓰지 않았으므로, 훗날 명절에 모인 자손들이 달력 뒷면에 말판을 그리고 동전으로 말을 놓을 때면 언제나 속으로 가볍게 비웃곤 했다. 윷을 놀 때면 언제나 옛 친구들이, 이른 봄 추위 속에서 하늘로 올리던 윷가락이 생각났다. 기덕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윷판에서 누구보다도 멋스럽게 윷을 던졌고 능숙하게 수를 읽었다. 

   고은이. 서산 어디로 시집갔다고 했지.

   정순이. 그 서방이 참 속을 썩였지. 그래도 애들이 잘 컸지.

   옥희. 옥희는.

   친구들은 말을 멈추고 병수를 보았다. 병수가 말했다. 

   “인물이 좋았지.”

   “옥희가 인물이 좋았어?”

   “그럼. 옥희가 제일 훤했지.”

   옥희는 테이블에 놓아 두었던 안경을 다시 썼다. 실내에서 빛이 연해진 렌즈 너머로 껌벅이는 우묵한 눈이 보였다. 몇 년 전에 문신한 눈썹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옥희는 총각, 이리 와 봐, 하고 보호자를 불렀다. 휴대폰을 내밀고 검지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보이는 행동만으로도 보호자는 재빠르게 말귀를 알아들었다. 그들은 병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보호자는 화면의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뷰티풀, 뷰티풀, 그렇게 말했다. 다 늙어 쭈그러졌는데 뭘. 말은 그렇게 해도 듣기 싫지 않았다. 

   그들은 요양원에 찾아온 목적을 상기했다. 병수는 산보를 하고 싶다고 했다. 휠체어를 밀고 밖에 나가 볼까 몇 마디 나눠 보다가 얼른 포기했다. 찬바람이 맹렬해서 밖에 나갔다가는 진짜로 죽는 줄도 모르게 죽을 것 같았다. 병수는 산보하고 싶다던 생각을 잊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보호자는 싱글거리며 병수의 휠체어를 넘겨받았다.

   “겨울 지나고 또 올게.”

   병수는 여전히 아물아물한 눈으로 종려나무만 바라보고 있었다. 휠체어 손잡이에 얹힌 나뭇가지처럼 꺼칠한 손을 두드리자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채로라도 성훈과 잠시 눈을 맞추고 성훈아, 또 와, 또 와, 라고 했다. 친구들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았다. 보호자의 큰 몸집에 가려 휠체어와 병수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앙상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로비 벤치에 앉아서 다시 택시를 호출하고 기다렸다. 

   “병수가 성훈이 너만 제대로 기억하는 것 같더라.”

   “느이 연애하냐. 너만 간절하게 보더구나.”

   신성이와 옥희가 비웃었다. 헛웃음이 났으나 그가 생각하기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엇이 그를 병수의 기억 속에 마지막까지 남게 했을까. 고백하건대 젊어 한때 병수에게 심술을 부린 적이 있었다. 한때라고 하기에는 좀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수는 시내에서 의류점, 메이커 운동화 판매점, 노래방을 하면서 호경기에 요령 있게 올라탔다. 친구들이 노래방에 몰려가면 병수는 비용을 알뜰하게 챙겨 받으며 사이다 몇 병을 서비스하는 것으로 생색을 냈다. 친구들 사이에서 ‘카수’라고 불렸던 성훈은 우렁찬 성량으로 송창식의 〈우리는〉을 부르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 병수에게 꽁한 생각들을 곱씹었다. 그런 옹졸한 것들도, 누군가의 기억에 마지막까지 남게 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었을까?

   “병수가 젊어서부터 인물을 밝히더니, 늙어서도 그런다. 성훈이랑 옥희. 둘이 얼마나 훤해.”

   성훈과 옥희는 서로를 보았다. 시야에 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옥희는 카톡방에 병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무심결에 사진을 눌러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늙어도 참 대단하게도 늙었다. 그래도 구십 대인 걸로는, 훤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거 봐라. 나는 이걸 프로필 사진으로 했다.”

   옥희가 자랑했다. 옥희의 얼굴은 어느새 병수와 넷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옥희는 성훈과 신성의 프로필도 그 사진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의욕을 보이다가, 휴대폰 기종이 달라서 도통 모르겠다고 포기했다. 옥희의 딸들이 쪼르르 전화해서 어머니 사진을 바꾸셨네, 좋은 데 가셨네, 우리 어머니 똑똑하신 거 봐라, 하고 칭찬을 했다.

   “이것들이 아주 대놓고 애 취급을 해.”

   그래도 옥희는 아주 흐뭇한 얼굴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안경을 벗었다 썼다 열을 올리더니 지나가던 직원에게 손짓해서 대뜸 신성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걸 이걸루 나처럼 이렇게 해 줘요 총각. 그런 정도의 말로도 젊은 직원은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고 옥희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이거 봐라. 신성이도 바꿨다.”

   옥희가 신성이의 프로필 사진도 바꾸어 놓고 만족스러워했다. 아, 다 늙은 걸 무슨 자랑을 해. 핀잔을 주었지만 옥희는 성훈의 휴대폰도 빼앗아서 기어이 사진을 바꾸어 놓았다. 

   “이거 봐라. 이제 우리 셋이 다 똑같아졌다. 어떠냐.”

   “그래, 참 좋구나. 옥희 인물이 훤하구.”

   택시가 도착했다. 아까 그들을 태워 주었던 그 기사였다. 기사는 일부러 신경을 써서 그들의 콜을 챙겼다고 했다. 

   “친구분은 만나셨어요? 잘 계시던가요?”

   “응. 신수가 훤하게 잘 있더구먼.”

   카톡방에는 다섯 명의 구성원이 있었다. 2년 전 죽은 두원이가 유령이 된 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두원이가 꽃다발을 들고 자손들과 함께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종종 안부를 삼았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빈칸이 되었다. 

   옥희는 전재승 변호사에게 함께 찍은 사진을 전송하라고 했다. 그걸로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게 하라고, 전장의 장수처럼 명령을 했다. 

   “즈이 식구들이랑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뭘 바꾸라고 해.”

   “아흔둘에 친구 찾아오는 사람이 어디 흔한 줄 아니? 우리가 기네스북이다. 우리 다 맞췄으니까, 병수도 꼭 맞추라고 해.”

   옥희는 참 극성이지, 어린 애들이나 하는 짓을. 하지만 옥희 말이 맞았다. 네 친구가 함께한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이 똑같아진 모습을 생각하니 어린애처럼 우쭐하기도 했다.

   택시는 진접역을 향해 달렸다.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닿은 무릎이 다시 시렸다. 택시 안에서 성훈은 다시 딸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집에 안 들어가고 밖에 다니는 거냐고, 제발 자식이 하는 말 좀 들으라고 고함을 지르다시피 했다. 그래, 들어가는 중이다, 미안해, 미안해, 라고 하고 얼른 끊었다. 듣기 싫었다. 

   “부모랑 자식이 바뀌어서. 서슬이 퍼래가지구.”

   딸이 성화하는 소리가 남들의 귀에도 다 들렸을 것 같아 성훈은 중얼중얼 변명을 했다. 친구들이야 귀가 어둡다지만 오팔 년 개띠라는 택시 기사는 민망했을 것이다. 딸이 어릴 때, 그렇게 밖에 다니는 걸로 성화를 부렸던 갚음을 당하는 중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그러울 걸 그랬다. 딸을 좀 더 챙겨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이대로인 수밖에 없었다. 

   뒷자리에서 신성이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자 창밖을 손가락질하며 목청을 좀 더 높였다. 

   “뷰티풀, 뷰티풀.” 

   창밖에는 예쁜 풍경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먼 불암산에 단풍도 옳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때아니게 푸른 잎이 많이 남아 계절과 날씨를 비웃었다. 거리에는 걷는 사람이 없었다. 초겨울임을 주장하는 찬바람만이 사람 없는 창밖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신성이 말이 옳았다.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내년 봄 날씨가 풀리면 세 친구가 병수를 다시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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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1
내일의 국화

내일의 국화 임솔아 씨발년이었나, 썅년이었나. 그때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마냥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에는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러고는 그랬구나 했다. 국화가 처음으로 전한 진심이었다. 몇 번인가 궁금한 적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씨발년이나 썅년 같은 거라고 여겨 온 것은. 비로소 진심을 전하기로 한 계기가 뭐였을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내게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지금 나는 왜 굳이 국화를 만나러 가는가. 오후 두 시에 기차에서 내렸다. 약속은 내일 오후 세 시였다. 내가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게 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국화만을 위해 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것이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국화도 만나는 것이어야 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막상 갈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한 건 빵집뿐이었다. 이 도시는 볼 것 없고 놀 것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주공아파트나 지금은 없는 개와 함께 산책을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 삥을 뜯기는 것으로 유명했던 팬시용품점 뒷골목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기는 싫었다. 이미 다 가 봤으니까. 이 도시를 떠난 지 십 년째가 되었던 일월 일일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분주히 존재하던 나의 동네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기억을 가볍게 만들고서 다시 기차를 타고 내 원룸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굣길마다 찾아갔던 비닐 천막 떡볶이집이 거기 계속 있다는 것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여전히 떡볶이를 푸짐하게 퍼서 접시에 담고 있었다는 것에 나는 반가워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섰을 때 한눈에도 위생 상태가 처참해 보였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천막 안에 기름 쩐 내가 떠다녔다. 떡볶이 맛도 형편없었다. 씹자마자 어떤 냄새가 코끝을 쏘았다. 옆에서 아이들이 컵떡볶이를 냠냠 먹고 있었다. 남아 있는 국물을 먹기 위해 종이컵 속에 혓바닥을 밀어 넣고 있었다. 이토록 맛이 없는 떡볶이를 그토록 맛있게 먹었던 건지, 시간이 지나 떡볶이의 맛이 변해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입안에 있는 것만 삼키고 천막을 나왔다. 간판이 유난히 깨끗한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개업을 축하하는 화분들이 가게 입구에 쪼르륵 놓여 있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였다. 그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 동안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방 카운터에 앉아 있는 주인 할머니, 주방 안쪽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젊은 여자, 그리고 카운터와 주방을 오가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아이. 창가에 다육이를 놓는 건 어때. 깔끔한 게 낫지 않니. 할머니 나 이 다육이가 뭔지 알아. 같은 말이 오갔다. 어른들의 대화는 아이 때문에 자주 끊겼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아이의 말이 끼어들면 어른들은 대꾸를 하느라 대화가 띄엄띄엄 흘러갔다. 그 점이 나는 편안했다. 국수를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주방에 있던 여자가 나왔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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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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