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울 시간
- 작성일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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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태울 시간
장은진
고모 집 마당에는 나무가 많았다. 3년 전 돌아가신 고모부가 심고 가꾼 나무들이었다. 고모부는 멀리까지 산책 나갈 필요 없이 마당에 한 발만 내디뎌도 숲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서 좋다고 말했다. 은퇴 전까지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던 고모부는 힐링을 위해 그 ‘착각’이 몹시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닌 게 고모 집 마당은 진짜 숲 같아서, 누구라도 바라보면 숲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고, 숲이라 말하고 생각할수록 진짜 숲이 되어 갔다. 그러니까 고모부는 마당이 진짜 자신의 숲이 되어 주지 않아서, 그 착각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일찍 돌아가신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넘어섰다면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었을 거라고. 나 또한 숲의 놀라운 힘을 어느 정도는 믿으니까.
숲 때문인지, 고모 집으로 내려온 지 나흘 만에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맑아졌다. 내 발로 문을 박차고 나온 망할 회사도, 말싸움 끝에 토라진 여자 친구도 숲을 보고 있으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재취업을 준비 중인 내게 고모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아버지를 통해 침울한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고모는 나한테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자기 집으로 내려와 머리도 식히면서 취업 준비를 천천히 하라는 것이었다. 공기도 좋고 조용해서 몸과 마음이 금방 건강하고 편안해질 거라는데, 통화가 길어질수록 힐링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정작 고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마칠 즈음 나는 고모가 집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전화를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모는 스페인 코스타 블랑카에 사는 여고 동창생을 만나러 일주일 후 출국한다고 했다. 동창생도 사별 후 혼자 지내고 있어서 며칠 쉬다 올 거라고 했지만, 뉘앙스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푹 눌러앉을 계획인 것 같았다. 고모는 벌써 여고생으로 돌아간 듯 흥분된 목소리였다. 나는 재취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데다, 마침 월셋집 계약 기간도 끝나 가서 그러겠다고 했다. 살고 있는 원룸이 풀 빌트인이라 짐 때문에 번거로울 일도 없었고, 월세를 몇 달분이라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결정은 쉬웠다. 고모 말대로 조용한 곳에서 지내며 힐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모는 전화를 끊으며 마당으로 들락거리는 독수리 5형제 밥도 좀 챙겨 주고, 라고 말했다.
눈을 뜨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금처럼 마당을 마주 보고 서서 숲이라 말하고 숲이라고 생각하는 것. 진짜 숲이 되어 가게 입속에서 바람을 불며 숲, 하고 발음한 뒤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며 숲이다, 하고 여기는 것. 이어서 그 기운을 받아 가슴에 덕지덕지 묻은 답답함을 빡빡 지워 내는 것. 얼마간 투명해졌다 싶으면 빽빽한 나무 사이를 지나 돌담 밑에 독수리 5형제가 하루 동안 먹을 물과 사료를 세 개의 그릇에 나누어 부어주는 것. 그러고 돌아서면 숲은 마루에서 보던 것과 다른 모습과 빛깔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늘 보던 곳도 등을 지고 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그 낯선 장소의 느낌이 좋아서 나는 걷던 길을 종종 뒤돌아 뒷걸음으로 걸어 보곤 했다. 뒤로 걸으면 쫓아가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도망치는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잠깐의 그 새로운 기분은 뒷걸음으로도 세상을 봐야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딱 이 순간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역시나 아침 10시였다. 내 힐링을 파괴하는 시간. 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데 나흘째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것이었다. 고모가 말한 대로 이곳이 조용한 건 맞지만 연기 냄새 때문에 현재의 공기 질은 매우 좋지 않았다. 옆집에서 나는 연기 냄새였다. 매일 이 시간 마당에서 뭔가를 태우는 것 같았다. 문득 고모가 왜 공기 좋고 마당에 숲도 있는 집을 떠났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한테는 여기서 지내면 건강하고 편안해질 거라더니 고모는 왜 그러지 못해서 스페인으로 갔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물푸레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고모한테 장문의 카톡을 조각조각 나눠서 보냈다. 노란 숫자 1들은 한참 만에 한꺼번에 사라졌고, 내 의혹에 고모는 꾸물대다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관절염이 있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고모는 관절염 때문에 약을 먹고 있었고, 날씨가 추워지면 통증이 심해져서 고생을 했다. 어디서 유럽 국가 중 스페인 코스타 블랑카가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고 습도가 낮아서 관절염 환자들에게 꿈의 요양지로 불린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코스타 블랑카의 햇볕 아래 있으면 관절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나, 관절염 환자에게는 천국이라나. 단지 그 이유 때문이냐며 내가 계속 의심을 거두지 않자, 고모는 그래, 여차저차해서 토끼게 됐다고 실토했다. 아침마다 연기를 피워 대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담 너머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성질머리가 어찌나 좆 같은지 안 들어 처먹는다고, 자기는 이웃 복도 오지게 없다고. 그러더니 고모가 말했다.
―그렇게 똑똑하고 사리 분별 잘하는 애가 회사에서는 왜 쫓겨났을까?
―갑자기 얘기가 왜 거기로 튀어요? 그리고 쫓겨난 게 아니라 내 발로 박차고 나온 거라니까요.
―말은 다들 그렇게 하더라.
―진짜 아니라니까요!
―그게 그거지 뭘.
―고모!
―톡 그만하자. 나 지금 나가 봐야 돼.
―스페인은 지금 새벽인 거 다 알거든요.
―다 알면서 이 새벽에 문자 보낸 거니? 잠 다 깨우고.
―여긴 아침이에요.
―너도 융통성 없는 니 아빠를 닮아서 참.
―아버지는 고모 닮아서 그렇다던데요.
―야, 지은호!
―주무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담벼락 너머로 옆집을 쳐다봤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잿빛 연기가 투명한 아침 공기를 탁하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
깨끗한 싹이 싱그럽게 돋아나는 봄이나 하늘을 뒤덮을 만큼 잎사귀가 무성해지는 여름이라면 더 좋겠는데 낙엽 지는 가을 숲을 바라보는 일은 허허롭기가 그지없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뚫린 대신 그 자리로 시큰거림이 들어앉자 다른 통증에 시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이파리들이 하나둘 떨어진 자리로 볕이 들고는 있지만 그 역시 차고 시려 보이는 볕이었다. 떨어진 낙엽이 차곡차곡 쌓이면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해진 땅바닥을 푹신하고 따뜻하게 녹여 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참 착하고 똑똑하다. 사람들이 여름에 원하는 건 응달이고, 겨울에 필요로 하는 건 양지라는 걸 알아서 제 몸을 계절에 맞춰 다루는 것이. 비슷한 이유로 고모부는 상록수보다 낙엽수와 유실수를 좋아해서 그 종을 많이 심었다. 사시장철 잎이 푸른 상록수는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빙 둘러 심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전부 낙엽수로 채웠다.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면역력을 길러주는 데 탁월하다는,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내는 편백과 소나무, 삼나무, 율마 같은 종은 따로 한쪽에 심어서 산림욕을 즐겼다. 마당에 같은 종류의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고, 나무 목에는 아크릴 명찰이 걸려 있었다.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사람들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나무를 가리키며 이름이 뭐냐고 하도 물어서 귀찮아 명찰을 달았다고 했다. 명찰 덕에 이제는 나무 이름을 물을 일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묻는다고 대답해 줄 고모부도 없었다.
고모부가 마당에 나무를 심은 이유는 단순했다. 나무와 함께 살며 봄꽃이 필 때는 향기에 취하고, 여름에는 그늘 밑에서 쉬고, 가을에 열매가 맺으면 따먹고, 낙엽이 지면 쓸고, 겨울이 되면 나뭇가지에 핀 하얀 눈꽃을 녹이고, 그러다 나무 등에 기대기도 하며 남은 세월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나무와 더불어 나이 먹고, 나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알아채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고모부는 어느 나라의 전설처럼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진 나무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옆집도 고모 집만큼이나 나무가 많았다. 오늘은 마루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10시가 되자 어김없이 담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낙엽을 태우나. 멈추게 할 수는 없는 일인가. 낙엽이라면 나무가 완전히 헐벗을 때까지 계속 태울 거라는 것인데. 옆집도 상록수보다 낙엽수가 많았고, 나무마다 명찰이 달려 있었다. 나는 창고에서 조경용 관절 사다리를 가져다 담에 걸치고 차근차근 밟고 올라갔다. 담 너머로 얼굴을 내밀자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태우고 있던 옆집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그를 사람이 아니라 나무로 착각할 뻔했다. 고목처럼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모습으로 불 앞에 등을 구부리고 서 있는 남자는 영락없이 병든 나무였다. 이파리 한 장 틔우지 못한 채 절벽 아래로 옹이 박힌 나뭇가지를 지친 듯 뻗어 내린, 오래된 나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면, 바람에 은빛 머리카락이 나부끼지 않았다면 수많은 나무 사이에서 보호색으로 위장한 듯한 그 사람을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나를 쏘아보며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또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눈빛만이 살아 있다는 걸 말해 주었는데, 등골이 오싹해져서 허겁지겁 사다리를 내려오다 그만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마루에 앉아 고모에게 다급히 카톡을 보냈다. 오싹한 등골은 찬바람에 더 오그라들었고,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은 괜히 부들거렸다. 10분 있다 카톡이 울렸다.
―은호야, 여긴 새벽이다.
―여긴 아침이에요.
―니가 그러니까 회사에서 쫓겨난 거야.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뭐가?
―도대체 옆집 아저씨는 뭘 태우는 거예요?
―몰라. 나도 궁금하니까 니가 알아보고 좀 알려 줄래? 나 잔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나 다시 사다리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고양이처럼 소리 내지 않고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눈만 빼꼼히 내밀었다. 그런데 또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라서 내려가려고 하자 쉰 목소리가 연기처럼 고요하게 건너왔다.
“궁금하면 넘어오던가.”
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타오르는 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막상 넘어오라는 허락을 받았지만 궁금하다기보다 나무 사이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적적해 보여서 다가가고 싶었다. 나는 담을 넘어 장독대 항아리를 딛고 옆집으로 내려갔다. 낙엽을 푹신푹신 밟으며 나무 사이를 걷자 여기가 옆집인지 고모 집인지 잠시 헷갈려서 뒤돌아봤다. 담장이 없다면 두 집은 하나처럼 보였을 것이다. 담 하나를 경계로 나무가 다른 계절을 사는 건 아니니까. 나는 다시 걸었다. 낙엽은 바싹 말라 둥글게 말려 있었고, 밟을 때마다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비스킷처럼 고소하게 들렸다. 낙엽을 긁어모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에 가까워질수록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있는 듯했던 아저씨의 모습이 나무와 분리되어 선명해졌다. 어깨까지 닿는 푸석한 은발은 자르기 귀찮아서 기른 것 같았고, 잠옷 위에는 나무 몸피 색을 닮은 두터운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앞이 터진 고무 슬리퍼로 살비듬이 하얗게 일어난 발가락이 보였다.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딱딱한 피부 군데군데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여러모로 좀, 더러웠다. 나는 주춤거리다 아저씨 옆에 앉았다. 아저씨가 태우고 있는 건 낙엽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저씨가 불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고모 집에서 잠시 지내고 있습니다. 고모는 스페인에 가셨고요. 친구가 거기 살거든요.”
“김 형 처조카군.”
고모부와 형 동생 하는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비쩍 말라서 주름이 깊기는 했지만 고모부보다는 어려 보였다. 무서운 사람이라거나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안심이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쫙 펴서 불을 쬈다. 아저씨가 태우고 있는 건 책이었다. 아저씨 옆에 찢어진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꽤 두꺼운 서양철학사였다.
“나이는.”
“서른넷입니다.”
“직장에 있을 나이고 시간이네만.”
“관뒀습니다.”
6년을 근무한 증권사였고, 첫 직장이라 애정도 많았다. 그러나 직속 상사의 금품수수 비리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여기서 뒷걸음치면 다른 세상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내부고발을 감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누구 한 사람 나를 보호해 준다거나 지지해 주기는커녕 회사는 오히려 조직적으로 보복을 시도했다. 과중한 업무를 떠넘겨서 하루하루 지치게 만들다가, 그들의 계획과 다르게 업무를 충실히 해내자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들이 내 발로 회사를 떠나게끔 했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아저씨는 회사를 관둔 이유 따위는 묻지 않았다. 물어 주길 바랐던 건지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여기도 나무가 많네요.”
나무를 둘러보며 내가 말했다.
“김 형을 따라 하나둘 심었던 게 이렇게 됐지.”
“나무를 좋아하시나 봐요. 고모부도 애착이 많았는데.”
“진리를 깨닫는 장소는 나무 밑인 경우가 많지.”
아저씨는 나무 밑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저렇게 많은 나무를 곁에 둔 자의 깨달음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나무를 가지면 저절로 깨닫게 되기도 할까. 어려운 책을 읽거나 위대한 스승을 따르지 않더라도. 불꽃이 잦아들려고 하자 아저씨가 책을 찢어서 넣었다. 페이지마다 밑줄이 정성스럽게 그어져 있었고, 여백에는 메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남이 읽었던 책 같지는 않았다. 낡은 걸로 보아 오랫동안 간직했던 것도 같았다. 본인이 열심히 읽고 애정도 했을 책을 왜 태우는지 알 수 없었다. 불이, 따뜻한 기운이 필요해서 피우는 거라면 낙엽이나 나뭇조각이 훨씬 나았다. 종이는 금방 타서 불꽃을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하고 바로 꺼졌다.
“왜 책을···.”
“헛소리라.”
“아저씨가 읽은 책이에요?”
“읽었으니 헛소리란 걸 알지.”
새까맣게 타 버린 책은 그럼에도 읽으려고 하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아저씨는 끄트머리가 검게 그을린 대나무를 집어 들고 재를 휘저어 그조차도 부숴 버렸다. 그러자 가루가 되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굳이 힘을 더하지 않아도, 바람이 살짝만 스쳐도, 낙엽이 한 장만 떨어져 내려도 무너질 거였다.
*
추워서 눈을 떴다. 분명 보일러를 틀고 잤는데 일어나 보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집에 누가 왔다 갔나 싶어서 잠깐 소름이 돋았지만 보일러 전원 버튼을 다시 누르고 욕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았다. 예열될 동안 머리에 샴푸를 뿌리고 빡빡 문질러 거품을 냈는데도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거품을 뚝뚝 흘리며 전원을 확인한 뒤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고장이 났는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거품을 수건으로 닦아 내며 고모한테 카톡을 보냈다.
―은호야, 새벽이라니까.
―아침부터 따뜻한 물이 안 나오잖아요.
―그럴 때는 서비스센터로 전화를 해야지 스페인에 있는 나한테 문자를 보내면 어떡하니.
―고모 닮아 그래요.
―이게!
―보일러에 문제 있다고 미리 말씀 좀 해 주시지.
―너 고생 좀 해 보라고 그랬다.
―왜요?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그 좋은 회사를 왜 기어 나오냐, 기어 나오길.
―재취직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까 제 발로 나온 거죠. 기어 나온 게 아니라요.
―말은 나불나불.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고, 으슬으슬 춥더니 기침이 나왔다. 눈도 따가웠다.
―참, 고모. 옆집 아저씨가 아침마다 태우는 게 뭔지 알아냈어요.
―뭐든?
―책이요.
―책? 아깝게 왜? 태울 거면 폐지 줍는 동네 노인한테나 주지. 남 좋은 꼴은 죽어도 못 보는 괴팍한 늙은이라니까.
―그렇게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던데요.
―니가 몰라서 그래. 욕심은 미어터지고, 남한테 지고는 못 사는 인간이야.
―그래서 고모부 따라 마당에 나무도 심은 거예요?
―따라 심었다고? 그래, 죽일 듯 따라 심었지. 니 고모부가 벚나무 심으면 벚나무 심고, 녹나무 사면 녹나무 사고. 니 고모부보다 한 그루라도 더 심으려고 어찌나 발악을 했는지. 나중에는 심을 데가 없으니까 옆 땅뙈기까지 사서 심더라. 그 인간 때문에 니 고모부가 스트레스받아서 병난 거야. 니 고모부 죽고 나니까 경쟁자가 없어져서 그런가 안 심대. 그런 말종이랑 사는 여자도 불쌍하지. 안 봐도 평생 속 끓이며 살았을 거야.
고모와의 문자가 길어진 사이 샴푸 거품은 사라지고 물기도 말라 갔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머리를 대충 헹구었다. 머리통이 깨질 것처럼 차가워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모네는 방 두 개짜리 집과 비교하면 마당이 꽤 넓었다. 고모부는 은퇴 이후의 삶을 염두에 두고 살던 아파트를 처분해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철부지 고모는 반대가 심했다. 고모부는 퇴직금을 받으면 15년 동안 굴린 자동차를 외제 차로 바꿔 주겠다며 고모를 설득했다. 그러나 은퇴하고 3개월 만에 고모부가 돌아가셔서 결국 차는 바꾸지 못했다. 고모부는 대형 공장 전기부서에서 일했다. 전기뿐만 아니라 공장 기계를 점검하고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다.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서 은퇴할 때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마당에 조성한 숲이 고모부의 기운을 돋아 준 것 같았다. 나무 사는 데 들어가는 큰 비용은 고모부가 회사를 끝까지 다녀야 하는 동기부여도 되어 주었다. 나무는 고모부가 용돈을 모아 주말마다 한 그루씩 사다 심은 것들이었고, 나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조경 책으로 공부해 가며 기르고 관리했다. 고모부가 나무에 빠져든 건 그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기르고 돌보는 데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묘목을 사다 땅에 심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다 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열심히 배워야 했고, 배운 지식으로 병충해 입은 나무를 살려냈을 때는 어떤 희열을 맛봤을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전지가위로 가지치기하는 고모부는 마치 전문 조경사 같았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고모부가 은퇴 후 조경사나 정원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는 재미도, 마땅한 취미도 없이 일개미처럼 회사만 다니다 말년에야 나무 가꾸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은 고모부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우아하고 여유로운 은퇴 생활자의 꿈은 병마에 좌절되었고 불에 태워져 유골함에 담겼다.
찬물로 머리를 감았더니 오늘은 내가 먼저 담 쪽을 쳐다보며 연기가 피어오르길 기다렸다. 이번에는 무슨 책을 태울지 궁금했고, 추워서 그 불에 몸을 좀 녹이고 싶었다. 10시, 아저씨가 봉화를 올리자 나는 담을 넘어 불 앞에 자연스럽게 다가가 앉았다. 어제와 똑같은 차림새의 아저씨는 회색빛 벽돌을 ‘ㄷ’자 모양으로 높게 쌓아 놓은 곳에 책을 찢어 넣었다. 벽돌이 바람막이가 되어 주어서 재가 날리지 않았다. 아저씨가 태우는 책은 다섯 권짜리 소설이었다.
“그 책은 왜 태우세요?”
책을 읽었던 이유가 있다면 없애고 싶은 이유 또한 있을 거라서 물었다. 아저씨는 연기 때문에 기침을 심하게 한 뒤 대답했다.
“다섯 줄짜리 이야기를 다섯 권으로 길게도 떠들어 대서. 양심도 없지.”
나는 타오르는 불꽃에 찰나적으로 흔들리는 아저씨의 눈빛을 보았다. 그것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저씨는 실패한 작가이거나 한때 작가의 꿈을 품었으나 이루지 못한 사람인가.
“책은 언제부터 읽으셨어요?”
두꺼운 책을 찢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책을 끌어다 대신 찢으며 물었다.
“스무 살.”
아저씨는 내가 찢어 놓은 책장을 동그랗게 구겨서 불에 던져 넣었다.
“작가가 꿈이었나요?”
“아니, 전혀. 그런 직업을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책을 찢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데 쓰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다섯 줄짜리 이상의 가치는 있지 않을까. 불에 타서 사라지는 시간은 찰나만큼이나 짧지만.
“스무 살 때 만났던 여자의 꿈이 작가였지. 그 여자와 헤어진 후부터 읽기 시작했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읽어 댔는지 모르겠어. 집에 쌓인 저 수많은 책이 지금은 골칫덩이지. 결국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야.”
아저씨는 모든 것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홀가분함은 아니었다.
“그 여자는 꿈을 이루었나요?”
“몰라. 내가 읽은 책에는 없었어.”
아저씨는 그녀의 꿈을 읽고 싶어서, 찾고 싶어서, 확인하고 싶어서,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몰라서 다른 책을 읽으며 기다리다가 세월을 먹어 버렸나. 그사이에 책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이게 됐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다섯 권의 책이 타는 시간은 짧고 불꽃은 뜨거워서 얼었던 몸이 조금은 녹았다는 것이었다.
*
―보일러 고쳤니?
아침부터 고모가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자느라 대답이 없자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보내서 깨웠다. 복수인가.
―거기는 새벽이라면서요.
뜬 듯 만 듯한 눈으로 답장을 보냈다.
―니가 새벽마다 문자를 보낸 통에 이젠 이 시간에 잠이 통 안 와.
내가 고모를 길들인 것인가.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갔다.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어서 나뭇가지에 달려 있던 단풍들이 힘없이 우수수 떨어졌다. 올가을은 날씨가 따뜻해서 단풍 드는 시기가 조금 늦어졌지만 자연은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해내고 있었다. 너무 많이 떨어져서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낙엽이 부는 것 같았고, 바람 속은 알록달록한 낙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낙엽은 누구의 의지일까. 나무일까, 바람일까. 바람이 아니라면 나무는 그저 바람을 기다리는 것일까. 기다리는 동안 의지로 단풍을 붙들고 있다가 의지로 놓아서 바람에 실려 보내나. 그것은 빙글빙글 돌다 담 너머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의 어깨에 닿을 것이고, 누군가는 날아오는 낙엽을 손으로 잡는 행운을 누릴 것이다. 덤으로 사랑도 이룰 것이다.
―보일러는 고쳤어?
―아직이요.
―왜?
글쎄 왜일까. 당분간 그대로 두고 싶은 건. 독수리 5형제는 나란히 앉아서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을 따라 고개를 일제히 돌렸다. 그러다 한 놈이 나서서 공놀이하듯 낙엽을 두 발로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잎들이 떨어지고 있어요. 바람이 계속 불면 오늘 중으로 다 떨어질 것 같아요.
고모부가 낙엽수를 많이 심은 건 사람의 생과 그것의 변화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서툴지만 푸른 청춘을 지나 그 푸름을 성숙과 완성으로 키워 낸 뒤 원숙에 이르면 어느새 기운을 다해 가졌던 걸 모두 떨구고 죽음과 비슷한 형태로 접어드는 생의 축소. 고모부는 나무란 자고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계절 내내 푸르기만 하는 건 왠지 비현실적이라고. 한겨울 눈 속에서도 푸른빛으로 살아 낸다는 것이 어쩐지 거짓말 같고 재미도 없다고. 비록 인간은 나무가 해마다 몸소 보여 주는 것들을 보려고 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가까이 사람 곁에 두어야 한다고. 반면 고모는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신경 쓸 게 별로 없다는 이유로 상록수를 좋아했다. 내내 푸른빛으로 살아 내는 게 거짓말 같고 재미도 없다는 고모부 말에는 무슨 소리냐며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거짓말이라고 했다. 정말 재밌었는지 고모는 고모부한테 가장 많은 거짓말을 한 사람이었다. 고모부 말대로라면 낙엽수는 거짓말 같지 않고 재미도 있는 나무지만 고모는 낙엽수가 넓은 마당에 떨군 낙엽을 치우는 걸 무척 싫어했다.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낙엽 청소를 아예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이젠 지긋지긋한 낙엽 청소 안 해도 돼서 좋다.
고모부가 돌아가신 게 좋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했더니 고모가 말했다.
―솔직히 니 고모부가 날 좀 성가시게 했니. 그것뿐인가. 고집불통에 짠돌이. 계란프라이 한 장 올린 김치볶음밥 좋아한 것 말고는 식성도 안 맞아 드라마 취향도 달라.
고모는 로코물을 좋아했고, 고모부는 사극과 시대극만 봤다. 근데 왜 다들 결혼하고 다르다는 걸 알까.
―도대체가 맞는 게 없었잖아. 남편이란 자들은 60대 초반에 떠나 주면 딱 좋단다.
―왜요?
―애들 다 키워서 시집 장가 보내고 은퇴할 나이. 내 나이대 여자들 생각이 다 그래. 그 인간 평생을 힘들게 하더니 말년이라도 편하라고, 나 좋으라고 일찍 떠난 거야. 그래서 즐기려고. 이 자유를. 사별한 여자들이 수명도 는댄다.
이런 대화를 고모와 아까 나눴다고 했더니 옆집 아저씨가 책을 북북 찢으며 말했다.
“내 마누라 생각도 그럴까.”
아저씨는 책장을 불에 던져 넣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애인은··· 콜록··· 있나?”
아저씨가 잔기침을 하며 물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무릎에 턱을 괴고 불꽃을 응시했다.
“냉전 중이군. 왜 싸웠나?”
“여자 친구가 욕을 했어요.”
“뭐라고.”
나는 무릎에서 턱을 떼며 대답했다.
“개새끼요.”
“욕먹을 짓을 한 건 아니고?”
내가 한참 꾸물대자 아저씨가 내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데이트 통장에 손을 댔어요. 근데 나중에 두 배로 넣어 뒀어요. 화 풀어 주려고 입술에 기습 뽀뽀를 했더니··· 뺨을 때리면서 개새끼라고 하잖아요.”
바람을 타고 우리 쪽으로 날아온 낙엽이 성질부리듯 내 얼굴을 할퀴었다. 꼭 여자 친구한테 뺨을 맞았을 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얼굴로 손을 갖다 댔다.
“여자들의 화는 말초적인 방법으로 풀리지 않아. 그건 수준 낮은 남자들 생각이고. 그녀들은 이성적인 말과 대화로 끝장을 보려고 하지.”
공기가 차서 아저씨와 내가 동시에 불 앞으로 당겨 앉았다. 붉은 치맛자락 같은 낙엽은 바람의 리듬을 타고 바닥을 둥그렇게 휘돌다가 허공으로 솟구쳐서 거친 춤을 추었다.
“그깟 말다툼으로 허비하기엔 인생은 생각보다 짧아. 사랑만 하기도 바쁘지. 맘껏 사랑하라고.”
아저씨는 사랑으로 바쁘게 지내지 않은 지난 세월을 후회하는 눈으로 불꽃을 바라봤다. 우리의 침묵은 책 한 권이 다 타들어 가도록 이어졌다. 불꽃이 사그라들자 금세 추워져서 몸이 떨렸다. 그런데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고, 못다 한 말이 남아 있는 것처럼 뭔가 좀 아쉬웠다. 이래서 한 번 불을 피우면 꺼뜨리기가 싫어서 뭐든 계속 태우고 싶어지는 모양이었다. 불이 꺼지면 무언가가 끝나 버리는 것 같아서. 아저씨도 그러했는지 집으로 들어가 책을 세 권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세 권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불을 붙였다. 통째 넣으니 장작 같았고, 좀 더 오래 타는 것도 같았다. 불꽃도 크게 출렁거려서 금방 따뜻해졌다.
“아저씨는 언제부터 책을 태웠어요?”
불을 켰으니 이야기도 다시 시작돼야 해서 물었다.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흐린 하늘을 올려다봤다.
“김 형 떠나고 나무 심는 것도 돌보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어. 그러다 언제부턴가 매일 책을 태우게 됐지.”
마음이 불안한 시기에 우연히 시작된 습관이었으나 이젠 매일 태워야만 안정되는 지경에 이른 걸까. 안정이 될 거라고 불꽃을 보며 최면을 거는 중일까. 아침 10시에 그 불안이 찾아오나. 그렇다면 아저씨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태우는 건 재밌나요?”
책이 태우기에 좋긴 하지. 잘 찢어지고, 불도 잘 붙고, 가볍고, 많이 읽었다면 많이 갖고도 있을 테고, 그런데 좀 비싸지.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매일 태워야 하는 것으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책이 가장 많이 선택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태울 만한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불꽃이 약해지며 연기가 많이 나자 아저씨는 대나무로 책을 살짝 뒤적였다.
“그나마.”
“뭐가요?”
“이유가 있으니까.”
“저 책들은 어떤 이유에요?”
“지적 허영이라, 베스트셀러라, 작가가 변절자라.”
이유가 어떻게 되든 나는 타들어 가는 책을 아깝다는 듯 쳐다봤다. 태울 거면 나한테 줄 수 없냐고 말하고 싶었으나 지켜보기만 했다. 우선은 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따뜻했기 때문이었고, 책이 다 타자 무언가가 끝난 것처럼 몸이 다시 식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이틀 내내 바람이 멈추지 않더니 단풍잎이 떨어진 마당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푹신하고 아름다웠다. 몇 장 골라 아끼는 책갈피에 꽂아 두고 말려 볼까 싶었지만 나한테는 책이 없었다. 대신 모양도 크기도 빛깔도 가지각색인 가을 보석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낙엽이란 게 한 시기를 태우고 떨어지는 붉은 재 같기도 했다. 나만 보기 아까워서 고모한테 사진을 몇 장 보내 줬더니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치워라. 깨끗이.
해마다 봐서 무감각한 걸까. 아니면 역시나 지겨운 걸까.
―고모는 낭만을 몰라.
―낭만은 사흘뿐이고 치우느라 무릎이랑 허리 작살나면 삼 개월 간다. 쓸데없는 낭만 찾다 비가 와서 바닥에 눌어붙으면 더 골치니까 서둘러.
―당분간 비 소식 없다는데요.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너 젖은 낙엽이 얼마나 질긴지 아니? 바람 불어도 안 날아가, 빗자루로도 안 쓸려, 밟으면 된죽처럼 질컥질컥해져, 오래 두면 썩은 내도 올라와. 마당이 얼마나 지저분해지는데. 일본 말로 젖은 낙엽을 오치누레바라고 하는데 은퇴하고 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 늙은 남편을 일본 여자들이 그렇게 부른댄다.
―왜요?
―집 밖으로 아무리 쓸어 내려고 해도 방바닥에 끈질기게 들러붙어서 안 떨어진다고.
은퇴한 남자는 정말 쓸모가 없나. 고모부는 젖은 낙엽 신세가 되기 전에 떠나서 다행인 건가. 고모부가 일찍 떠나 줘서 고모는 진정 좋은 걸까.
―그러니까 젖은 낙엽 꼴 보기 싫으면 수월하게 바삭바삭할 때 해치워. 니가 낭만이니 뭐니 하니까 회사에서도 쫓겨난 거야.
―고모 주무세요.
나는 독수리 5형제의 밥을 챙겨 준 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낙엽을 밟으며 마당을 오래 거닐었다. 명찰을 보고 나무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주며 나무를 하나하나 지나갔다. 고모부는 마당을 정원이라 불리지 않고 숲이라고 봐줄 만한 장소로 만들고 싶어 했다. 고모부는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할 테지만 지금 나는 숲을 걷고 있다. 그런데 숲은 죽어 가고 있었다.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잎이 무성해진 상록수는 가지가 바닥까지 휘어 버렸고, 부목을 대 주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도 다섯 그루나 되었다. 잎마름병에 걸린 은행나무는 잎이 샛노랗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타들어 가듯 끝부분부터 갈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윤기를 잃고 회색빛으로 바싹 말라 가는 나무도 몇 그루 되었다. 숲은 주인 없는 티를 내며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무란 게 자연이 알아서 다 키워 주는 것 같아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 고모는 마당을 넓게 쓰고 싶다며 병든 나무는 뽑아 버릴 거라고 했다. 가을에는 낙엽 때문에, 여름에는 온갖 벌레와 곤충들이 마당으로 들어와서 나무 많은 걸 늘 못마땅해했다. 고모는 특히 집 안에서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애벌레와 마주칠 때마다 기겁하고 비명을 질렀다. 고모부는 나이 먹어서도 벌레를 무서워하는 고모가 귀여운지 허허 웃으며 맨손으로 벌레를 잡아다 나뭇잎으로 옮겨 주었다. 고모는 벌레가 머리로 떨어질까 봐 나무 밑으로 잘 다니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거나 나무 아래 오래 머물러야 할 때는 꼭 양산을 썼다. ‘다 뽑아 버릴 거야!’는 이사 오고 고모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나는 산책을 끝낸 뒤 젖은 낙엽 신세가 되지 말라고 낙엽을 긁어서 군데군데 모아 두었다. 낙엽은 태우거나 쓰레기 봉지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고모 말대로 낙엽은 바삭해서 수월하게 잘 쓸렸지만 양이 많은 탓에 겉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땀이 났다. 겉옷을 벗고도 한참 더 청소를 했는데 날씨가 쌀쌀해서 땀이 마르자 금방 또 추워졌다. 무릎과 허리를 펴고 일어나 맑은 공기로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담 너머로 연기가 올라왔다. 10시인가. 이제는 저 매캐한 연기 냄새가 불쾌하지 않았고, 건너와도 좋다는 허락 같아서 나는 잠시 쉴 겸 플라스틱 갈쿠리를 놓고 옆집으로 넘어갔다. 아저씨네 마당도 나무가 붉게 태운 재들로 가득했다.
아저씨는 내가 온 줄도 모른 채, 책을 태우다 말고 상수리나무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불이 곧 꺼질 것 같아서 나는 아저씨 옆에 앉아 대신 책을 찢어서 넣었다. 불꽃이 크게 되살아나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아저씨가 눈을 깜빡거리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마지막 잎새네.”
나는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 상수리나무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말대로 잎이 모두 떨어지고 상수리나무에는 딱 한 장의 나뭇잎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잎이 다 떨어졌는데도 혼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누구의 의지일까. 그것은 바람도, 나무도 아닌 나뭇잎 자신의 의지라고 해야 할까. 왠지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았고, 마지막 잎새만은 자기 몸을 언제 떨어뜨릴 것인지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도록 나무와 바람은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나는 아저씨가 저 잎새만큼은 오래 머물러 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걸 느꼈다. 아저씨는 책을 태우면서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아련한 표정으로 그것을 한 번씩 힐끗 쳐다봤다.
“오늘은 책이 많네요.”
아저씨 옆에 쌓여 있는 책이 다른 날보다 많아서 물었다. 태우는 이유를 물으면 아저씨는 책을 한 권 한 권 짚으며 고유한 이유를 댈 것이다. 그러나 나를 납득시키기 위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아까운가?”
“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책이? 돈이? 지식이?”
“다요.”
“처음부터 자기 것도 아닌데 뭘. 세상만사가 다 그래.”
“그렇다고 없앨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태울 거면 달라는 건가?”
나는 갖고 싶다고 말했다. 책갈피에 낙엽을 꽂아 두고 싶다고도. 오래전부터 나는 책을 많이 읽고 소장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 친구한테 교양이 부족하다며 책 좀 읽으라는 말을 들은 후로 열망은 더 커졌다. 나는 종종 상상하곤 했다. 커다란 방의 사면을 책장으로 둘러 세우고 그 안에 책을 빼곡하게 꽂아 두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그것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중구난방 포개놓고 먼지 쌓이게 두다가 한번씩 청소를 하며 책을 들춰 보는 일상에 대해. 그러고는 내가 이런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이런 책도 갖고 있었나 시간과 기억을 야속해하면서도 금방 잊고 새로운 책을 놓지 않으려 하는 욕망에 대해. 내 얘기를 잠자코 듣던 아저씨가 그것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게는 몹시 갖고 싶은 미래의 것이 이미 가져 본 아저씨한테는 고통과 절망을 안겨 주었다는 표정이었다. 짐스럽게 무겁고,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점 때문일까. 아무리 읽어도 금세 잊어버린다는 속성이 힘들었을까. 어떤 책도 자신이 던진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을까. 3년 동안 매일 태웠는데 아직도 태울 게 남았을 만큼 많은 책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 절망을 내가 이해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 고통스럽게 하는지 가져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을 테니까.
“무용해. 읽고 알려고 했고, 알았던 것들이. 안다고 믿었던 것조차.”
그렇게 열심히 읽고 알게 된 것들이 결국에는 다 소용없더라는 것일까. 그래서 태우는 것인가. 내 생각보다 한 차원 고양된 고통과 절망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줄 만큼 좋은 책도 분명 있을 텐데 지금까지 아저씨는 없는 단점을 책에서 일부러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태워 없애야 할 구실 혹은 명분을 찾기 위해 죄 없는 책에 애써 허물을 씌우려는 것도 같았다. 그것은 질투의 다른 형태로도, 벗어나기 위해 찾아낸 유일한 방법으로도 보였다.
“그래도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요?”
내 물음에 대답하듯 아저씨가 책을 통째 던져 넣었다. 검은 재가 허공으로 흩날리자 아저씨가 소맷부리에 입을 대고 기침을 했다. 한 가지 부정하기 힘든 건 아저씨는 책을 많이, 그리고 부지런히 읽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찢을 때마다 살폈지만 밑줄 그어지지 않은 책이 없었고, 별 표시, 물결 표시, 길쭉한 동그라미와 네모, 페이지 접어두기로도 부족해 중요 페이지에는 포스트잇까지 알록달록 붙어 있었다.
“비싼 불이야. 책에 들었던 시간, 세월을 태우는 거니까. 지금 따뜻하잖아. 짧지만 그것도 가치라면 가치겠지만, 남는 건 지식도 돈도 권력이나 명예도 아니고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마음뿐이야.”
“방금 저한테 해 주신 말도요.”
아저씨가 얼굴을 옆으로 돌려 공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짧겠지. 그것도.”
12월로 들어서는 바람이 매섭게 불자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상수리나무의 마지막 잎을 이윽히 올려다봤다. 그것은 몸부림치고 있지만 쉽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잎이 가진 힘이었고, 마지막까지 남았을 때는 어떤 의지보다 자신의 의지가 클 거라는 생각은 옳아 보였다.
*
눈이 되려다 만 무거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숲을 적셨다. 젖은 낙엽 신세가 되지 않게 낙엽을 미리 청소해 두길 잘한 것 같았다. 가 닿을 잎이 없어서 숲에 내리는 비는 고요했고, 처마 두드리는 소리만 내 귀에 울렸다. 요란할 정도로 시끄러운 여름 숲과 달리 겨울 숲은 적막하구나. 다 떠나고, 어쩌다 찾아오는 것들도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흐르는구나. 바람이 불어도 바람이 온 줄 모르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조차 구애할 짝이 없어서 울지 않고 가 버리는구나. 시리게 젖어 드는 가슴을 점퍼로 여미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한국은 비 온다며? 낙엽은 다 치웠지?
이상하게 그 문장이 ‘쓸모없는 남편은 치웠지’로 읽혔다.
―아주 깨끗이 치웠어요.
―고생했다.
―코스타 블랑카는 어때요?
―빨리도 물어본다.
―고모랑 매일 카톡 하다 보니까 자꾸 까먹어서요. 스페인이 아니라 여기 어디 가까운데 계신 것 같아요. 관절염은 좀 어때요?
―이 정도면 정말 살 것 같다. 어쩜 도착하자마자 감쪽같이 안 아프니. 천국이 따로 없어. 그냥 여기 아예 눌러앉을까 봐. 한국 가면 도로 아플까 겁나서 못 가겠어. 너는 지낼 만하니?
―좋아요.
나는 숲을 한 번 쳐다봤다.
―니가 그 집 살래? 세컨드 하우스로 쓰면 좋을 텐데.
―백수가 돈이 어딨어서요. 그냥 주시면 안 돼요? 증여세는 낼게요.
―세정이가 가만 안 있을걸. 하나 있는 딸 놔두고 왜 조카한테 물려주냐고 난리 칠 거야. 목구멍까지 욕심으로 찬 애가 눈 뜨고 코 베일 리 없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참.
―고모 닮아 그래요.
―안 좋은 건 다 나 닮았지.
고모는 집을 팔더라도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팔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고모 또한 별장처럼 한 번씩 내려와 지내고 싶은 걸까.
―나무 많은 거 싫어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스페인 가신 거.
고모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잠이 든 걸까 싶어서 휴대폰을 마루에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우유 한 잔을 뜨겁게 데웠다. 천천히 불어 마시며 마루로 나오자 다소 긴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니 고모부 살아 있을 때는 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급하게 가 버리니까 그 자리가 시려워. 낙엽 지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 보면 더 그렇고. 관절염만 추운 걸 싫어하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떠난 마음도 그래. 낙엽수는 왜 그리도 많이 심어서는. 이럴 거면 상록수만 심고 갈 것이지. 아무리 밉고 지지고 볶고 살았어도 그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는 그 사람만의 자리더라. 그 인간 가고 계란프라이 얹은 김치볶음밥도 안 먹게 되네. 혼자 먹으니까 맛도 없어.
좋아하는 음식이 한 가지만 되어도 부부는 같이 살 수 있는 걸까. 세상에서 거짓말이 제일 재밌다는 고모가 고모부한테 자주 했던 거짓말은 당신과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는 말과 다시 태어나면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고모, 돌아오시면 김치볶음밥 같이 먹어요. 계란프라이 한 장 올려서요.
―그러자. 나는 그만 자야겠다. 굿나잇.
―여긴 굿모닝이에요.
―으이그.
―고모 닮아 그래요.
고모와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아저씨는 비 오는 날에도 책을 태우나. 나는 마루에 앉아 팔을 뻗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받아 내며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겨울비라 손이 시렸다. 그래도 계속 빗물을 받으며 손을 시리게 만들었다. 추울 때 불을 쬐면 더 따뜻하니까. 10시가 되자 어김없이 하얀 연기가 너울너울 올라왔다. 비가 와도 아저씨는 책을 태우고, 비가 와도 연기는 하늘로 훨훨 올라갔다. 나는 손이 시려서 얼른 담을 넘었다.
아저씨는 폭이 큰 골프 우산을 쓰고 앉아 책을 태우고 있었다. 빗방울에 불이 꺼질까 봐 태우는 곳도 우산으로 가렸다. 나는 우산 속으로 들어가 아저씨 옆에 앉으며 시린 손을 불에 대고 쬈다. 곱은 손이 부드러워지자 아저씨가 건네준 책을 찢어서 태웠다. 아저씨는 우산을 뒤로 젖혀서 상수리나무를 올려다봤다. 기특한 건지 대단한 건지 마지막 잎새는 아직도 건재하게 매달려 있었다. 저 마지막 잎새는 매달려 있기에 그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낙엽이 깔린 바닥으로 낙하해 섞이는 순간 그것은 그 이름을 잃게 될 것이다. 제때 치우지 않아서 아저씨 숲의 낙엽은 젖은 신세가 되어 있었다. 대신 숲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낙엽에 닿을 때마다 툭툭 소리가 났다. 고모가 해 준 젖은 낙엽 얘기를 들려줬더니 아저씨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먹고 병 들면 쓸모가 없어져.”
“씁쓸하네요.”
“자연스러운 거야.”
“그렇지만 당사자한테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일 거예요.”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애착이 아니라 집착이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야. 때 되면 내려놔야지. 집착을. 고통스럽지 않게.”
아저씨는 빗방울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말을 듣고 보니 나무는 겨울이 되면 나뭇잎이란 집착을 내려놓고 사는 존재 같았다.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 상수리나무의 저 마지막 잎새는 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을까. 내려놓지 못해서 빗방울에 흔들리는 잎새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사람의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어. 티베트 사람들은 죽을 때 바람에 앉아 있는 의식이 아홉 개 구멍 중에서 하나를 통해 빠져나간다고 생각해. 어떤 틈을 통해 의식이 빠져나가느냐에 따라 환생의 영역이 결정된다고 보지.”
“가장 좋은 틈은 어디예요?”
“여기.”
아저씨가 자신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눌렀다.
“천문(泉門)이라고 하지.”
나 또한 그 자리를 손으로 만졌다.
“저 연기 같지 않을까. 의식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영혼이란 것도,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다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도.”
나는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책에서 빠져나온 영혼 같은, 의식 같은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
오늘은 웬일로 고모가 카톡이 없었다. 허전해서 먼저 카톡을 해 볼까 하다 스페인 시차에 고모가 적응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고모의 시간은 새벽이었고, 나의 시간은 아침이었다. 대신 온풍기를 틀어 놓고 마루에 앉아 아저씨가 책을 태우는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내년 별자리 운세를 유튜브로 보고 있는데 누군가 유리창을 노크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었다. 소리도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떨어질 나뭇잎이 없어서 눈이 내리나. 나는 문을 열고 나가 숲을 향해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송이가 빙그르르 돌다가 얼굴로 떨어져 녹았다. 그것은 저 먼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엽 같기도, 재 같기도 했다. 집착하지 않기 위해 하늘에서도 뭔가를 태우는가. 첫눈이 여자 친구를 생각나게 해서 문자라도 보내 볼까 하다 관두었다. 눈이 오면 아저씨는 책을 태우나. 비가 올 때도 태웠으니 태울 것이다.
그러나 10시가 넘었는데도 연기는 나지 않았다. 눈이 올 때는 안 태우나. 눈송이가 떨어진 얼굴이 시려서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었다. 아저씨의 집은 고요했다. 현관문만 활짝 열려 있을 뿐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아저씨가 책을 태웠던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제까지도 꿋꿋하게 매달려 있었는데 상수리나무의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고 보이지 않았다. 때가 되어 마지막 잎새란 이름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고 떨어진 것이다.
얌전하게 내리던 눈은 바람이 거칠어지자 사선을 그으며 내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추워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저씨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 신발장 위에 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되는대로 집어 들고나와 책을 북북 찢었다. 그러고는 벽돌 구멍에서 라이터를 꺼내 책장에 대고 불을 당겼다. 손이 떨려서 세 번 만에 라이터에서 불꽃이 올라왔다. 태우는 이유는 책이기 때문이었고, 잘 탔다. 하얀 연기가 하얀 눈송이 사이로 퍼져 나갔고, 몸은 금방 따뜻해졌다.
정수리로 눈이 소복하게 쌓일 만큼 계속 태우다 보니 아저씨는 누구보다 책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연기를 통해 책을 마시고 연기의 형태로 책을 간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저씨는 책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과 감정과 집착을 태웠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소유한 게 소유한 게 아니듯이 버리는 게 버리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눈송이를 품은 바람 때문에 연기가 자꾸 내 쪽으로 날아와서 눈물이 났다. 그저 연기가 매웠을 뿐이다. 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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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황새 양선형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네가 저질렀던 끔찍한 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는 기나긴 시간 동안, 어쩌면 인간으로 살았던 시간을 초과할 만큼 오랫동안 작동했다. 너는 네게 주어진 원통형의 한계 속에 틀어박혔다. 그것이 너였다. 배터리와 부품이 망가지면 너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도착했고, 너는 네 작동을 중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음은 물론 작동을 중지하고 싶은 욕망 또한 갖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형벌이 단호하게 집행되었고, 너는 눈을 감았으며, 숨이 끊어지기 직전 너는 이후로 반복할 수밖에 없는, 줄곧 반복해야만 하는 한 줄의 기억 타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작은 파편으로서 오토마타로 개조된 네 머리통 안에 각인될 예정이었다. 누군가 드러누운 네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나른한 의식은 감은 눈 속으로 어른거리는 박쥐 모양의 환영과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기억 타래는 네가 과거에 살과 피를, 얼굴과 자의식을 가졌던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의미했다. 인간인 너와 오토마타인 너를 잇는 개체로서의 동일성을, 속죄를 끝마치고 형기가 만료될 때까지 네가 감당해야만 하는 과오와 책임의 연속성을 말이다. 따라서 기억 타래는 네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인해 극형에 처해진 바로 그 범인임을 증명하는 전자 신분증이자 영혼의 낙인으로 비유될 수 있었다. 네가 죄수임을 공인하는 사법 기관의 서명, 특수한 일련번호, 기계의 머리통 안쪽에 새겨진 자아의 조각, 네 유한하며 어리석었던 시절의 잔류 데이터. 그러나 너는 네가 다른 기억들 가운데 하필이면 이 기억 타래를 골랐던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것을 떠올릴 수 있는 네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기억들 가운데 이 기억만이 각별했기 때문인지, 각별했던 기억들 가운데 이 기억만이 무의미했기 때문인지. 너는 카메라처럼 무감하게 눈을 떴으며,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딸깍거리는, 앵앵거리고 번쩍거리는 전자 신호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네 머리통 안에는 한 줄의 기억 타래만이 남아 있었다. 너는 기계, 껍데기가 회색인 오토마타. 너는 정확하게 움직이는 효율적인 무력함이었고, 그 무력함 속을 공회전하는 짤막한 분량의 이미지 찌꺼기였다. 너는 스크린을 향해 강제로 조향된 인형의 냉담하며 거짓된 눈알처럼 기억의 이미지를 주시했고…… 주시하지 않았으며, 사나운 파도처럼 우윳빛으로 들이닥치는 심신상실이 환하게 빛나는 스크린 주위를 에워쌌다. 네 머리통 안의 암실에서는 언제나 한 줄의 기억 타래가 상영되었다. 너는 기억 타래를 출력하는 영사기이자 영사막이자 영사기사였으며, 성자와 성부와 성령과…… 세 가지 작동인 사이를 그치지 않고 순환하는 자율적인 엔진에 가담하고 예속된 상태였으나, 대부분 네 기억의 관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네 기억의 관객일 수 있는 네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ON이었다. 너는 네 신경망에 폭포처럼 흐르는 전류를 자발적으로 차단할 수 없
- 관리자
- 2026-02-01
도래의 얼굴 최정나 한 남자가 길을 걷는다. 남자의 이름은 웅현이다. 웅현은 은행나무길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노랗게 물든 황금 터널 안에서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본다. 바람이 일자 은행잎들이 햇살을 따라 휘돌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웅현은 꽃잎처럼 흩날리는 노란 잎사귀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위로도 햇살이 부서진다. 바람을 받은 잎사귀들이 다시 허공으로 번져 오르다가 방향을 살짝 틀어 다른 데로 이동한다. 웅현은 눈에 비친 풍경을 화면에 담아보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웅현은 얼마 전 도래와 이별했다. 그래서 길에서 스치는 사람이 모두 도래로 보인다. 도래가 홀로 걷고, 도래가 누군가와 함께 걷고,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내려다보고···. 도래는 출몰하듯 나타나 웅현 곁을 스쳐 지난다. 옆에 있는데도 먼 얼굴, 도래가 자신을 불러내는 건지 자신이 도래를 불러내는 건지 웅현은 알 수 없다. 이윽고 수많은 도래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로 변한다. 도래와 함께 떠난 얼굴들, 이름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웅현은 하늘을 본다. 사랑을 놓쳤니? 황금빛 사이로 겹쳐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 있다. 왜 웃는 거지? 웅현은 누군가 보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놀림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웅현은 그들이 남겨진 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렇더라도 역시 함께 있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을 바꾸고, 곧이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 먹먹해진다. 나를 이해해 줘···, 도래의 마지막 말은 웅현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변형되다가 서서히 형태를 찾는다. 빛은 따뜻하고 세상은 노랗게 물들었지. 황금빛 계절이거든. 웅현이 말을 건넨다. 빛의 터널을 나오는 웅현의 눈에 그들이 비쳐 든다. 도래가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웅현의 발걸음은 더디다. 노란빛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거리는 붉은빛에 휩싸인다. 사랑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웅현의 귓가에 닿는다. 여자는 붉게 물든 나무 아래 붉은 낙엽을 밟고 서 있다. 이어 들려오는 맞은편 남자의 웃음소리, 여자가 낙엽을 그러모아 허공에 뿌린다. 그러고는 다시 외친다. 사랑한다고! 붉은색이 그들 주위로 날아올라 빛처럼 흩어진다. 여자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소리칠 기세지만 남자는 계속 웃기만 한다. 웅현은 그들이 붉은 구체 안에 있는 듯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나도 사랑해!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번져온다. 연인이 낯선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웅현도 소리 나는 데로 시선을 돌리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고 조금 전까지 머물러 있던 은행나무길이 보일 뿐이다. 웅현은 가벼운 듯 장난스러운 남자의 목소리를 아는 듯하다. 웅현은 도래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걸으며 그녀와 함께였던 어느 날을 떠올린다. 그러자
- 관리자
- 2026-02-01
아직 이른 마음 박하신 섬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성했다. 초여름을 맞는 버드나무 녹음이 무성했고, 고속도로에 바닷가 갯강구들처럼 달라붙은 자동차 정체 행렬이 무성했고, 하늘에 모둠 지은 뭉게구름 떼가 켜켜이 무성했다. 구름으로 말하자면 경부 고속도로 운전자들의 한숨이 한데 모인 것 같은 풍성함이었고 눅진함이었다. 사이사이 파고드는 여름 볕은 쨍쨍하기만 해서 자동차 갯강구들이 아지랑이 같은 김을 뿜어내며 느릿느릿 익어 가고 있었다. 올여름 재해에 가까운 폭염이 찾아온다고 했다. 창문을 내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끊어야 할 텐데. 지난 건강검진에서 의사는 금연을 강한 어조로 권고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라디오에선 올해 메탄가스와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다시 한번 고점을 돌파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고속도로 솥단지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을 보니 이해가 안 갈 바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차도 노후 경유차라며 폐차를 권고하던데··· 때마침 창밖에서 도로변 축사 냄새가 매연에 엉킨 채 훅 끼쳤다. 과연 오존을 뚫어 버릴 것 같은 유독함이다. 이게 다 나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앞차 배기의 색깔도 심상치 않다. 그래, 어차피 다 같이 찜 쪄지는 마당에 잘잘못은 논하지 말기로 하자. 이미 벌어진 일과 잃어버린 것. 재해에는 고민한들 거스를 수 없는 면이 있고 그렇기에 말 그대로 재해인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건 암 같은 거다. 분명한 업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건 받아들이는 편이 낫지. 그래, 평일 오전부터 고속도로에 갇혀 소들 방귀나 맡고 있게 된 것도 말하자면 재해 같은, 암 같은 소식 때문이었다. 그건 폭발에 대한 것이었다. 동선의 묘지가 폭발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건 이른 열대야에 허덕이던 어제저녁이었다. 낯선 번호로 수차례 전화가 걸려 온 것인데 상대방은 대뜸, 동선 씨 친구분 되십니까?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을 매봉도 수호행동위원장이라고 간략히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틀림없이 폭발합니다··· 땅속에 매설된 니트로글리세린과 질산암모늄 수천 킬로그램이··· 당신 친구의 묘지를 박살 내 버릴 거라구요···. 상대방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거대한 세력이 묘지를 파괴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호소했다. 그것도 폭약을 심고 아주 섬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고 했다. 그는 동선의 묘소를 지키고 싶다면 나더러 당장 매봉도로 달려오라고 촉구했다. 여기··· 당신처럼 무언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가능하면 내일까지 와 주십시오···. 불가능해도 내일까지 오십시오. 체념하지 않는다면··· 지킬 수 있습니다. 모
- 관리자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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