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야기
- 작성일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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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야기
박진호
푹푹 찌는 날씨 탓에 간이 화장실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가 더 지독했다. 화장실 옆 연병장 구석에는 이미 본부 인원 사십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행보관 얼굴은 평소보다 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부대 전 인원을 집합시킨 걸 보면 또 무슨 심기가 꼬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빠릿하지 못한 이등병 소리를 들을까 싶어 티 나지 않게 슬쩍 무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위병소에서는 아침마다 식당의 잔반을 수거해 가는 트랙터의 모터 소리가 들렸다. 잔반통의 누린내를 맡은 건지 아니면 이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 건지 청산이와 계백이가 군견 철장 안에서 짖어 댔다.
“범인은 알아서 튀어나와.”
행보관이 손가락으로 간이 화장실 옆을 지나는 콘크리트 배수로를 가리켰다. 거기엔 손바닥 크기만 한 거뭇한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덫에 걸린 쥐나 두더지 같기도 했다. 햇빛을 받은 표면이 몸을 뒤틀 때마다 청록색으로 반짝였다.
행보관이 팔을 한 번 휘젓자 유려하게 움직이던 덩어리가 일시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수십의 파리 떼에 엉겨 있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작게 욕이 터져 나왔다. 모양이며 크기며 주위에 널브러진 휴지 조각이며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의 똥이었다. 날아올랐던 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쳤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배수로는 깨끗했으니 모두가 잠든 밤사이 누군가 싸지른 게 틀림없었다.
“안 나오면 오전 내내 전부 군장 메고 연병장 뺑뺑이다. 좋은 말 할 때 빨리 나와.”
7월 한여름, 그것도 일요일 오전부터 군장을 돌고 나면 오늘은 물론이고 다음 주 내내 근육통과 몸살로 고생할 게 뻔했다. 하필 오늘따라 주간 근무도 잡혀 있지 않아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다들 정체 모를 범인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켕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도와 시기의 문제였을 뿐 부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언젠가는 터질 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선 사람들은 우리 부대를 지방 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정도로 오해하곤 했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도시였고 인근 기차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해수욕장을 검색하면 서너 번째 추천 경로로 부대 근처 비포장도로가 뜬다고 했다. 호기심에 후순위 경로를 택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길을 헤매다 부대로 연결되는 막다른 길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골 학교의 정취에 취해 담장 너머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이를 저지하는 게 위병소 앞을 지키는 경계 근무자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옆으로는 논과 슬레이트 지붕을 덧씌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부대였다. 철망을 얹은 담장 안에 연병장과 2층짜리 적갈색 벽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골의 작은 분교로 착각할 만했다. 외부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 대대에 있는 오십여 명 모두는 해안 초소에 파견 나간 다른 중대들을 지원하는 행정병들이었으므로 가끔은 군대가 아니라 소도시 기업의 기숙사에서 지내는 기분이 들었다. 이 후방 부대에서 생기는 시끄러운 일이라곤 정화조 하수구에 수건 뭉치가 막혀 오수가 역류한다든가 식자재 냉장실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재료가 상한다든가 군견 철장을 탈출한 개를 잡기 위해 연병장을 헤집고 다닌다든가 하는, 군대 에피소드로 꺼내기도 민망한 사건들이 전부였다.
부대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건 늦은 5월이었다. 내가 신병 교육을 마치고 이곳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직후였다. 배관까지 뜯어고치는 큰 공사라 식당을 제외한 공간이 모두 폐쇄됐다. 대신 커다란 컨테이너 열두 개가 연병장에 들어섰는데 크기에 따라 생활관과 사무실, 샤워실로 꾸며졌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건물이 폐쇄되던 날, 연병장 한쪽 구석에 연두색 간이 화장실 세 개가 설치됐다. 문을 열면 휴지걸이와 변기 구멍이 보이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오래도록 앉을 수 있게 허리 높이에 손잡이까지 달려 있었지만 사용할 일은 많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선 냄새가 진동했고 우리는 소변인지 대변인지 분간도 못 할 만큼 재빠르게 일을 마치고 빠져나와야만 했다. 변비에 걸렸다간 배가 터져 죽을지 질식사를 할지 선택해야 할 거란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여름이 되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는데 달궈진 화장실 안에서 숨을 들이쉬었다간 펄펄 끓는 냄새가 머릿속까지 찔러 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변기 구멍 아래로 보이는 오물통에는 새하얗게 구더기가 꼈고 쉴 틈 없이 울리는 파리 날갯짓 소리는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고 옆에 있는 배수로에 몰래 오줌을 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배변만큼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변비로 배가 터져 죽을 거란 예전의 우스갯소리가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배수로에 싸지른 똥을 보고 누군가는 해방감을, 누군가는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범인은 단체 기합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줄 의리까지는 없었는지 행보관의 엄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 바로 군장 챙겨서 전부 다시 집합해.”
행보관의 말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주고받는 와중에 나도 잠깐 머리를 굴려 봤지만 용의자에서 제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수로에 오줌을 한 번도 갈겨 본 적 없는 사람이 여기서 몇이나 될까.
“행보관님, 오늘만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역시나 한 병장이 먼저 나섰다. 모든 일마다 해결사를 자처하는 오지랖은 이 더위에도 한결같았다. 하긴 이런 상황에 행보관에게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 또 없었으니까.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행보관과 한 병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새끼야, 넌 주말 잔업해야 하니까 군장 빠져도 돼.”
행보관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엑셀 숫자 몇 개만 바꾸면 될 일을 굳이 잔업으로 포장하는 걸 보니 한 병장에게 뭔가 또 켕기는 부탁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추가 근로 시간을 정정해 달라거나 이미 사용한 하루짜리 연차를 외박으로 바꿔 달라거나 하는.
“일은 금방 끝낼 수 있으니 저도 같이 군장 돌겠습니다.”
“전역도 몇 주 안 남은 놈이 몸조심할 생각은 안 하고. 허튼소리 말고 인사과로 들어가 있어.”
“다들 얼마나 힘들면 이랬겠습니까. 저도 화장실 갈 때마다 진짜 죽겠습니다.”
한 병장이 평소답지 않게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어 가자 행보관의 눈가 잔주름들이 더 깊게 갈라졌다. 융통성 없는 새끼. 행보관이 말을 내뱉고 돌아섰다.
“다음 초소 근무자가 이거 치우고 투입해. 넌 빨리 인사과로 따라오고.”
행보관이 인사과 방향으로 걸어가자 철장에 매달려 요란한 소리를 내던 개 두 마리도 금세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한 병장을 둘러싸고 덕분에 살았다며 한참 시시덕대더니 이내 뜨거워지는 해를 피해 컨테이너 생활관으로 숨어 들어갔다.
“뭐해? 더운데 안 들어가고.”
한 병장이 씩 웃으며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나긋하지만 단단한 목소리. 러닝셔츠 아래로 드러난 왜소한 어깨에는 도무지 가까이하기 힘든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저 태도는 한 병장을 처음 만났던 석 달 전부터 줄곧 한결같았다.
“학교가 나쁘지 않은데, 혹시 인사과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
‘요’로 끝나는 사근한 말투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졌다. 신병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사단과 연대를 거치는 동안 내게 존댓말을 써 주는 사람은 한 병장이 처음이었다. 4월의 건조한 공기 탓인지 목이 메어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사무실에서는 오래 묵은 책의 매캐한 냄새가 났다. 한 병장은 내 병영생활기록부 사이에서 신상 요약 카드를 꺼내 빠르게 훑었다.
“무난하네요.”
그는 병기부는 펼쳐 보지도 않고 옆에 있는 캐비닛에 바로 꽂아 넣었다. 뒤이어 학력과 전공, 집 주소, 주민번호, 부모님 생사와 이혼 여부, 이성 관계, 취미에 이르기까지 자잘한 질문들을 쏟아 냈다. 내가 털어놓은 정보들은 곧바로 엑셀 표에 입력됐다.
“뭘 그렇게 얼어 있어요.”
한 병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는 내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왼쪽 손목을 쳐다봤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피가 통하지 않아 손가락 모양으로 새하얀 자국이 번져 있었다.
“제가 7월 말 전역이라 인사과 후임을 찾고 있었거든요. 행정병 자리는 대대급이 마지막이기도 하고, 여기서 자대배치 못 받으면 해안 초소에 있는 중대로 넘어가게 될 텐데··· 대학이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제안하는 거니까 한번 고민해 봐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행정병으로 빠져야 군 생활이 쉬워진다는 말은 입대 전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다. 다만 지금껏 사단과 연대를 거치며 수차례 행정병 후보에 올랐다가도 번번이 탈락했던 터라 마지막 순간에 들어온 제의가 얼떨떨할 뿐이었다.
한 병장은 사무실 구석에 비스듬히 앉아 졸고 있는 인사장교를 깨웠다. 인사장교는 내 신상 카드와 결재판을 들고 대대장실로 들어갔다.
“오늘부터 바로 인수인계 들어가면 되겠네.”
잠시 후 대대장실에서 나온 인사장교가 하품하며 내게 얼굴을 돌렸다. 일 잘 배워 봐, 신병.
인사과 후임이 뽑혔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처음 며칠간은 병사와 간부 가릴 것 없이 내게 몰려와 질문들을 늘어놨다.
“한 뱀이 직접 뽑았다며?”
이들의 호기심은 내가 아닌 한 병장에게서 시작해 한 병장으로 끝이 났다. 저들끼리 은연중에 주고받는 눈빛은 내가 한 병장의 뒤를 이을 자격이 있는지 재 보는 것 같았다. 그가 이곳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알 수 있었다. 맞선임의 말을 빌리자면 한 병장은 조용히 행동하는 혁명가였다.
그가 상병으로 진급하던 날, 상병 이상의 선임들은 생활관 청소에서 빠진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빗자루를 쥐었던 게 시작이라고 했다. 샤워실 욕탕은 일병부터 사용할 수 있다든가 사제 속옷은 일병이 꺾인 후부터 입을 수 있다든가 하는 사소한 제약들뿐만 아니라 기수 열외나 따돌림 같은 폐습까지 한 병장은 차례로 지워 나갔다. 간부들이 먹고 남긴 식판을 병사들이 정리해야 했던 불합리함을 대대장에게 직접 건의해 없앤 일화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었다.
그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는 간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을 시켜도 유쾌하게 나서는 싹싹함도 한몫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퇴역을 앞둔 인사장교를 대신해 인사과의 모든 일을 전담하고 있는 그의 자리였다. 휴가와 수당은 간부들 모두의 관심사였고 인사과 사무실 앞은 자신들의 정보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편법으로 무언가를 바꿔 줄 순 없는지 문의하는 간부들로 매번 정신이 없었다. 한 병장은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며 넉살 좋은 소리 몇 번 던지고는 엑셀 표의 숫자들을 슬쩍 고쳐 주곤 했다.
반면 나는 인사계원이 된 지 세 달이 지나도록 사무실 청소나 문서 정리 같은 허드렛일만 하고 있는 처지였다. 어깨너머로 파악한 인사과 업무라는 게 사실 복잡한 체계랄 것도 없이 주먹구구식이었다. 대부분의 일이 엑셀에 적힌 신상 정보를 복사해 붙여 넣거나 편집하는 수준이었음에도 한 병장은 본인의 역할을 쉽사리 넘겨주지 않았다. 간혹 한 병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 일을 대신해 보려 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아는 한정적인 정보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거 그냥 짝퉁이잖아.”
사람들은 아쉬워하는 자세로 다가왔다가도 내가 말을 얼버무리며 석연찮은 대답을 내놓으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처음 들어보는 짝퉁이란 말은 당혹스러웠다.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문득 한 병장이 가진 배경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사람들에게 한 병장의 과거에 대해 물을 때면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군대 밖 한 병장에 대해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가 법학을 전공했다든가 꽤 괜찮은 서울권 대학의 출신이라든가 하는 소문뿐이었다. 내 호기심은 한 병장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과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이어졌다. 포장을 하나씩 걷어 내다 보면 결국 남는 건 엑셀의 정보 몇 개를 바꾸는 초보적인 기술뿐이지 않을까, 우연히 독점한 저 자리가 전부인 건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는 혁명가라기보다는 정치에 능한 처세가에 가까웠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저 서글함은 그의 입지만큼이나 견고해서 그 뒤에 숨겨 두었을 법한 진짜 얼굴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 병장의 말처럼 나는 눈에 띌 기회조차 없이 무난해졌고 몇 달째 짝퉁 한 병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오전의 짧은 소동만 빼면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주말이었다. 새벽 두 시 불침번 근무가 잡힌 바람에 선잠을 자다 깨긴 했어도 더위가 한풀 꺾인 새벽은 화장실 가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오전의 그 일 덕분에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던 똥차가 들어와 화장실을 깨끗하게 비워 둔 상태였다. 당장 신호가 없더라도 미리 화장실을 들르는 편이 두고두고 나은 선택이었다.
불침번 근무를 마치자마자 손전등을 켜고 간이 화장실이 있는 연병장 구석으로 향했다. 새벽의 습한 공기 사이로 풀벌레 소리와 내 발소리만 교차해 들렸다. 나무에 달아 놓은 조명등 빛에 연두색 화장실 문이 드러났다. 똥차가 다녀갔다 해도 악취는 여전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입을 꽉 다물었다. 문손잡이를 잡고 당기려는데 건너편 배수로에서 거무스름한 형체가 움직였다.
“거기 누구십니까?”
깜짝 놀라 손전등을 배수로 쪽으로 돌렸다. 누군가 허둥대는 실루엣이 비쳤다. 손전등을 위아래로 훑자 러닝셔츠를 입고 쭈그려 앉은 뒷모습이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러닝셔츠 아래로 새하얀 허벅지와 엉덩이가 드러났다. 발목까지 내린 반바지 옆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 있었다. 씨-발. 러닝셔츠가 작게 욕을 뱉었다.
“넌 왜 이 시간에 화장실을 와서.”
바지를 추슬러 입고 일어난 그가 얼굴을 돌려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조명등 빛에 왜소한 어깨가 선명히 드러났다. 휴지를 챙겨 다가오는 한 병장에게선 당황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입만 벙긋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왜 여기 계시는 겁니까?”
못 본 척하는 게 나았을까,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말을 버벅이며 내가 그 현장의 목격자임을 시인하고 말았다. 한 병장이 내 등에 손을 얹었다.
“늦었는데 내일 이야기하자. 저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고.”
느긋한 말투와 달리 등을 떠미는 손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엉거주춤 생활관 방향으로 걸어가자 뒤에서 삽으로 배수로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생활관에 돌아와 문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한 병장은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문밖의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 잠이 오지 않았다. 여러 장면을 천천히 복기했다. 화장실 옆 배수로. 두루마리 휴지. 발목까지 내린 바지와 새하얀 허벅지. 물론 오늘 아침의 범인도 그였을 것이다. 쭈그려 앉아 욕을 뱉던 조금 전 모습과 행보관에게 반발하던 아침의 모습이 나란히 떠올랐다.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숨기고 있던 인간적인 빈틈과 의외의 허술함에 친밀감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이걸 빌미로 지지부진한 인수인계 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관계의 벽은 치부를 공유하며 허물어지기도 하는 법이었으니까.
한 병장을 다시 마주친 건 다음 날 아침 점호를 마친 후였다. 은근한 눈빛이라도 오갈 줄 알았지만 그는 평소처럼 가벼운 인사만 던지고 인사과 사무실로 먼저 들어갔다. 예상외로 태연한 태도에 김이 샜지만 선수는 내가 쥐고 있었으므로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느긋하게 아침까지 먹고 들어간 사무실 공기는 햇빛에 달궈져 후텁지근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벽걸이형 에어컨에선 시원찮은 바람이 나왔다. 자리엔 한 병장뿐이었고 항상 닫혀 있던 캐비닛 한쪽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기분 나쁘게 쿰쿰한 종이 곰팡이 냄새가 났다.
“어제는 별일 없이 들어가셨습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던지며 옆자리에 앉았다. 한 병장은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대꾸하지 않았다. 못 들은 건가 싶어 몸을 돌려 다시 말을 건넸다.
“혹시 어제는 제가-”
“의외로 숨기고 있는 게 많았잖아?”
책상 위로 그가 읽고 있는 책자가 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따돌림으로 인한 우울증. 거기에 두 차례 자살 시도 이력까지.”
커터 칼로 손목을 그었지만 다행히 미수에 그친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자살 시도. 정신적인 방황과 트라우마. 그 이후 만족스럽지 못한 대학에 입학해야 했지만 천천히 극복해 나간 시간까지. 그가 읽고 있는 건 그를 처음 만났던 날, 펼쳐 보지도 않은 채 캐비닛에 곧바로 넣었던 내 병기부였다.
“상투적이긴 해도 나쁘지 않네.”
내가 쓴 단어들의 조합이었지만 또다시 타인의 입을 통해 납작해진 문장은 견딜 수 없이 낯설었다. 결코 그렇게 단순히 요약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바로 A등급 관심 병사 되는 거 알고 있지?”
그가 본심을 드러냈다.
인사과에서는 병사들마다 등급을 매긴 명단을 대외비로 관리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군 생활 부적응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중 가장 높은 A등급은 자살 징후가 보이거나 자살 경험이 있는 병사들에게 매겨졌다. 이들을 관리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스트레스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모든 훈련과 일과에서 열외 할 것. 덕분에 대외비라는 게 무색할 만큼 누가 관심 병사인지 쉽게 알 수 있었고 그렇게 드러난 A등급의 꼬리표는 보통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혹은 편한 군 생활을 위해 꾀병을 부리는 폐급 취급. 어찌 됐든 이들의 종착지는 철저한 따돌림과 무시였으니 한 병장은 지금 내게 직접적인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내가 병기부에 적어 둔 내밀한 일기는 타이핑 몇 번만으로 ‘자살 시도가 우려되므로 관심 요망’,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제 일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지난밤 일을 염두에 둔 것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의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좀 이상하네. 연대 인사과에서 실수가 있었나?”
그는 책상 위에 올려둔 병기부와 신상 카드를 번갈아 뒤적거렸다.
“중요한 내용이 신상 카드에는 전부 빠져 있는데···”
그가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한 병장의 눈을 피하지 않고 한참을 바라봤다. 설명하자면 복잡한 이야기였다. 이곳으로 자대배치 받기 전, 연대 인사과에서의 일과 입대 첫날의 기억까지 끄집어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죽여 지내라던 말. 굴욕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일. 그걸 전부 한 병장에게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
“학교 후배라길래 관심 있게 봤더니 이거 문제가 많은 놈이네.”
연대 주임원사가 쏘아붙이며 말했다. 4월 초치고는 더운 날씨였고 밀폐된 주임원사실 공기는 숨이 막혔다. 그는 유리 탁자 위로 내가 신병교육대에서 열심히 써냈던 병기부를 펼쳐 보였다. 내 글씨체로 적힌 문장들이 빼곡했고 그 중 ‘자살’과 ‘우울증’, ‘커터 칼’이라는 단어들에 노란색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주임원사는 눈을 흘기며 병기부 옆에 놓여 있던 또 다른 서류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신병교육대에서 조교 후보생으로 추천받았지만 병기부에 쓴 자살 시도 기록이 발견돼서 후보생 탈락. 사단에서도 행정병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다가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돼서 탈락하고 연대로 이관. 그리고 여기에서도 행정병으로 지원하고 실격. 이거 전부 네가 병기부에 쓴 자살 내용 때문인 거 알고 있어?”
그제야 사단 보충대에서 대기했던 지난 일주일간의 일들이 이해가 됐다. 행정병 차출을 위해 보충대로 모인 사단 각 부처의 간부들은 내가 다니던 학교 이름을 대면 곧바로 관심을 보였다. 수도권의 조그만 4년제 대학도 군대에선 흔치 않은 스펙이었으니까. 하지만 저들끼리 회의를 하고 돌아온 후엔 매번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뽑아 갔다. 병기부가 이런 용도로 쓰일 거라는 걸 진작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입대 첫날, 담당 교관은 생활관을 돌아다니며 표지에 ‘병영생활기록부’라고 적힌 얇은 책자를 나눠 줬다. 신병교육대에 들어가기 전 이틀 동안 책자의 내용을 빠짐없이 적어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간단한 신상 정보를 적는 페이지를 넘기자 서술형 문항들이 나왔다. 연애에 대한 가치관에서부터 인생의 난관, 자살 경험 따위를 묻는 질문들.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다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나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사춘기로 방황했던 시간과 몰아세우기만 했던 부모님. 나의 쓸모에 대해 의심하며 커터 칼로 왼쪽 손목을 그었던 순간들. 우울증과 따돌림에 시달리다 대학 입시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았지만 지금은 얼마나 단단해졌고 또 스스로에게 얼마나 떳떳하게 되었는가. 내가 익명의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그 지난한 우울과 자기부정의 늪에서 빠져나온 과정이었다. 일과를 마치자마자 모포를 뒤집어쓰고 손목시계의 불빛에 의지한 채 페이지를 빼곡히 채워 나갔다. 건너편 침상에서 누군가의 훌쩍임이 코골이로 바뀌었을 때쯤, 고양된 감정을 추스르고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니 시계는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정성스럽게 적어 놨어.”
하지만 군대에서 문학적 상상력과 인내심을 가진 독자를 기대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모든 걸 극복한 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고 있음을 써 내려간 문장들에는 형광펜의 덧칠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내가 손목을 두 번이나 그었다는 사실, 그리고 떠안지 말아야 할 잠재적 골칫거리라는 결론뿐이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설명해 보려 했지만 일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말이 두서없이 꼬였다. 어쨌든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주임원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내 방에 들어온 신병, 신상 카드 폐기하고 새로 적어. 자살 관련 내용은 다 빼고.”
수화기 너머로 뭐라 반론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주임원사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대대로 내려가면 병기부까진 일일이 확인 안 할 테니까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
눈에 띄지 않게 숨죽여 지내면 관심 병사 낙인은 피할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그는 나가 보라는 손짓을 하며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워서 그래. 군 생활 꼬일 뻔한 거, 너 사람 잘 만난 줄 알아.”
*
땀에 젖은 채 사무실로 들어온 한 병장이 욕을 내뱉었다. 내게만 겨우 들릴 만큼 나지막한 소리였다.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라 사무실의 공기가 끈적했다.
행보관은 오후 일과가 끝나자마자 연병장 청소를 지시했다. 최근 하수구가 수건 뭉치에 막혀 두어 차례 역류한 이후로 비만 왔다 하면 예민하게 굴었다. 한 병장은 이번에도 가장 먼저 장대 빗자루를 들고 연병장으로 나섰다. 눈치껏 빠져나가려던 다른 선임들은 투덜대다가도 결국은 그를 뒤따라 나갔다.
“이 짓도 며칠 안 남았네.”
한 병장이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청소하던 내내 쾌활했던 표정이 뭉개졌다. 이제 그는 내 앞에서만큼은 흐트러진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미간을 좁히며 내뱉는 한숨과 독백들에선 깊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날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한 병장은 병기부의 내용을 인사장교에게 알리지도, 신상 카드가 부실했던 이유를 파내려 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배수로에서의 그의 범행도 함께 묻어야 했다. 이건 서로의 기폭장치를 쥔 채 상대의 동태를 살피는 일종의 휴전이었다. 사실 이 폭탄이 터졌을 때 전역이 며칠 남지 않은 한 병장과 군 생활이 까마득한 나 사이에서 누가 더 타격을 입게 될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보루를 사수하려는 듯 그는 캐비닛 앞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그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 위태롭고 지쳐 보였다. 내게만 보이는 그 이중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한껏 좋은 사람을 연기하고 들어와 쏟아 내는 혼잣말들은 종종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넘어 공감을 갈구하는 미숙한 넋두리처럼 들렸고, 나는 때때로 그게 우스웠다.
“다음 주면 전역이신데 이제는 그만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한 병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모니터에 띄운 인사 기록 엑셀 파일에선 누군가의 정보가 새롭게 덧대어 쓰이고 있었다. 복사해 붙여 넣기. 편집. 지우고 다시 쓴 후 붙여 넣기. 정말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기라도 한 걸까. 그의 가장 취약한 지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은 묘한 배덕감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가 놓지 못하는 것. 끝까지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것. 역한 냄새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킁킁거리게 되는 것처럼, 그의 가장 내밀한 곳을 들춰 보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전부 별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별게 아니라고?”
타이핑하던 손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그의 입술이 옴짝거렸다.
“어차피 전역하고 나면 전부 의미 없는 일들 아닙니까.”
한 병장이 내게 얼굴을 돌렸다. 답답하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짧은 정적 후에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캐비닛 앞으로 걸어갔다.
“이건 어떻게 생각해?”
캐비닛을 열어 병기부 사이를 뒤적거리던 그의 손에 주먹 크기만 한 금속 덩어리가 들려 나왔다. 고리 부분이 절단기로 깨끗하게 잘려 나간 자물쇠였다. 묵직한 몸통에는 까만 진흙이 달라붙어 있었다.
“네가 기억할진 모르지만.”
모를 수 없었다. 공사 중인 건물 뒤편, 한낮에도 응달이 지는 진흙 바닥. 지난달 이유 없이 사라졌던 군견 철장의 자물쇠였다.
계백이와 청산이는 작년에 은퇴한 군견 셰퍼드였다. 열 살을 훌쩍 넘기면서 통제가 잘되지 않아 지금은 군견 철장에서 사료만 축내는 애물단지였다. 그래도 식탐과 체력만큼은 여전해서 아침마다 잔반을 수거하러 들어오는 트랙터 소리만 들었다 하면 철장이 뜯어질 듯 날뛰었고 누릿한 냄새가 걷히고 나서야 안정을 찾았다. 지난달에는 갑자기 철장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잔반통으로 내달리는 개들을 잡겠다고 부대원 전부가 연병장을 뒹굴어야 했다. 부대 한구석에서 토막 난 자물쇠의 고리 조각을 발견한 건 한 병장이었다. 자물쇠를 자른 범인은 묘연했고 행보관은 분을 삭이며 절단기로도 잘리지 않을 만큼 두꺼운 자물쇠를 새로 달 수밖에 없었다.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들이었으니까.”
‘일들’이라면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되짚어 보면 이 작은 부대엔 원인불명의, 하지만 트집 잡기엔 사소한 사건들이 너무 잦았고 그때마다 한 병장은 사람들을 격려하거나 앞장서 문제해결에 나서곤 했다. 얼마 전 배수로에서의 일도 이 기행의 연장이었을까. 갑작스럽게 까 버린 그의 패에 혼란스러워졌다. 내게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저 표정 앞에서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조금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왜 이러는 거냐고?”
그가 되물었다. 실망한 투였다. 그는 자물쇠를 캐비닛에 다시 올려 두었다.
“네가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아?”
선반 위 자물쇠는 대충 찢어 붙인 콜라주 조각처럼 병기부들 사이에 섞이지 못한 채 혼자 들떠 보였다. 그가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내 왼쪽 손목을 흘긋거렸다. 의도를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저 불쾌한 시선만큼은 익숙했다. 오래전부터 지겹도록 따라붙었던 시기 어린 눈빛.
긴장만 하면 손이 잘려 나갈 것처럼 아려요. 자꾸 그날이 떠올라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어요.
고등학교 시절, 내 성적표를 앞에 두고 시큰둥하게 앉아 있는 선생님들과 면담할 때면 나는 커터 칼의 통증과 온통 검붉었던 방 안의 기억을 꺼내야만 했다. 내가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들은 그제야 숙연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한테 없는 걸 가진 사람들을 불편해해.
면담이 끝날 때마다 학교생활에 겉돌기만 하던 내게 돌아왔던 조심스러운 위로. 상황은 대학에 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딱히 내세울 특기랄 것도 없이, 그럭저럭한 성적으로 떠밀리듯 입학한 스무 살들에겐 늘 대홧거리가 부족했다. 술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학교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딴 서열표를 외며 우리의 위치를 경쟁적으로 가늠해 보곤 했는데, 스무 곳이 넘는 이름을 나열해 봐도 우리가 낄 틈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는 금방 힘을 잃고 침묵에 빠졌다. 그건 학교 이름을 새기지 않고 맞춰 입은 과 단체복 때문이기도, 지난 이십 년이 그랬듯 앞으로의 날들도 그리 특별한 인상을 만들지 못한 채 흘러갈 거란 예상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넌 다르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질투와 동정이 뒤엉킨 동기들의 눈. 공감이나 위로를 바란 건 아니었다. 내가 겪은 강렬한 경험에 대해, 이곳까지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픈 손가락처럼 안고 가야 할 과거이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한 병장의 기이한 위선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이야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 병장의 눈이 내 왼손을 끈질기게 훑었다.
“우리가 꽤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무언가 갈구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그는 서슴없이 나를 모욕하고 있었다. 겨드랑이 사이에 미지근한 땀이 흘렀다. 나는 손을 책상 밑으로 내렸다.
*
그날 이후로 한 병장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의 관계가 그랬듯 찝찝하게 끝나 버린 대화 역시 일방적이었다. 그의 전역을 며칠 앞두고부터는 업무 인수인계가 빠르게 진행됐다. 나는 부대에 또 다른 원인 불명의 사건이 터지지는 않을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그가 우리의 비밀을 까발리지는 않을지 은근한 조바심을 안고 한 병장을 살펴야 했다. 부대는 그가 전역하는 날이 되도록 잠잠했다.
전역 신고를 마치고 연병장에 나온 한 병장을 사람들이 둘러쌌다. 그의 존재감이 어떠했는지 모두가 한마디씩 보태는 탓에 여느 전역자들의 축하 자리와 달리 좀 유난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 병장은 돌아가며 모두와 악수했다. 내 차례에 와 맞잡은 그의 손에선 아무 의중도 신호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사를 마친 그는 미련이 남은 듯 인사과 사무실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내 환송하는 대여섯 명 무리에 둘러싸여 엉거주춤 발걸음을 뗐다. 나는 그가 위병소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 병장의 짐이 빠진 사무실에서 캐비닛은 유독 더 눈에 띄었다. 나는 캐비닛 앞으로 걸어갔다. 캐비닛을 열자 쌉싸름한 종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지런히 꽂힌 병기부들 사이로 고리가 잘린 자물쇠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허술하다 못해 오만함에 가까운 전시였다. 나는 행보관에게 자물쇠를 가져갈 생각이었다. 한 병장은 자신의 허위가 폭로되었다는 사실도, 그가 쌓은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영영 잊힐 거란 사실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새로 시작하기 위해선 그의 자리를 지워야 했다.
자물쇠를 집어 들자 옆에 세워져 있던 병기부 한 권이 넘어졌다. 얼룩 하나 없는 표지 위에 한 병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자물쇠를 쥔 채로 그의 병기부를 펼쳤다.
서울 거주. 4년제 대학 재학. 법학 전공. 맞벌이 부모와 동생 하나. 담배는 피우지 않으며 주량은 소주 한 병 반. 정신과 질환 없음. 앞부분은 특별할 것 없는 인적 사항들로 채워져 있었다. 몇 페이지를 더 넘기자 서술형 문항들이 나왔다. 내 것만큼이나 촘촘하게 눌러쓴 문장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문장들 어디에도 형광펜이 그어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흠잡을 데 없이 평범한 내용들. 어떤 파동도, 자극도 없는 무취함. 에어컨의 식어 빠진 바람에 남은 페이지들이 맥없이 날렸다.
“그걸로 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한 병장이 전역모를 쓴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여럿을 뿌리치고 왔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구겨져 있었다.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언제라도 무너질 것처럼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수치심이나 모욕감이라기엔 딱 떨어지지 않는, 배수로에서 내게 엉덩이를 까 보였을 때도 느낄 수 없었던 낯선 분위기였다. 그가 돌아와야만 했던 이유라면 하나뿐이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자물쇠를 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한 병장이 잠시 멈칫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성큼 다가와 손을 뻗었다.
“나한테 그건 별로 의미가 없어.”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병기부가 팽팽히 당겨졌다. 병기부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한 번 더 힘을 주자 병기부가 내 손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그는 안도했다. 흐트러지지도, 그리 치밀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의 얼굴로. 아무렇게나 쥔 병기부엔 선명한 굴곡이 생겨 있었다.
“그게 있다고 사람들이 널 믿을 이유가 없잖아.”
그의 눈이 여전히 내 왼손에 들린 자물쇠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와 손목에서 멈췄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온 힘을 다해 나를 안쓰러워하고 있던 게.
“자신이 없으면 치밀하기라도 했어야지.”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그는 병기부를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은 후 뒤돌아섰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뜨거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캐비닛의 퀴퀴한 냄새가 뒤섞였다.
왼쪽 손목이 참을 수 없이 가려웠다.
가끔은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는지 헷갈렸다.
공통분모 없이 몰려다니던 대학 동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각자의 무리를 찾아 흩어졌다. 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섞이지 못했고 학년 말이 되어 입대를 신청했다.
치밀하지 못할 거면 깡이라도 있든가.
우울증은 다 극복했다고 횡설수설하는 내게 연대 주임원사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내 손목을 뚫어지게 보던 그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팼다.
두 번이나 그었다는 새끼가 손목이 그렇게 깨끗한 게 말이 돼? 너 같은 애들 괜히 관심 병사로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문제만 더 일으키는 꼴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그럴 줄 알았다는 말. 기대할 거 없다는 태도. 내 이야기가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면 달랐을까.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림자처럼 배경에 녹아드는 게 익숙했고 그런 무력함이 역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평생 누구에게도 제대로 각인되지 못할 거란 자괴감과 함께. 그러다 책상 위에 놓인 커터 칼이 눈에 띄었다. 칼을 집어 손잡이를 밀어 올렸다. 차가운 날붙이가 살갗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칼을 바닥에 던져 버린 후엔 온통 날카로운 기억뿐이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가족들이 얼어붙은 듯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온통 집중된 시선. 내가 이룬 최초의 성취. 내가 느낀 건 소름이 아니라 전율이었다.
관심 병사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군 생활 꼬일 뻔한 거, 너 사람 잘 만난 줄 알아.
하지만 관심 병사의 꼬리표 앞에서 전부 과장이었다고, 어떤 것들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처절하게 부정해야 했다. 상처가 남지 않은 손목. 간헐적으로 가려운 손목. 상처는 방을 피로 물들일 만큼 충분히 깊었을까. 정말로 긋긴 했던 걸까.
위병소 밖으로 멀어지는 한 병장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병기부를 숨긴 바지 주머니가 불룩했다. 왜소한 어깨는 홀가분하고 또 외로워 보였다. 그가 도망가고 있었다.
잠시 후,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잔반 수거통을 실은 트랙터가 부대로 들어왔다. 누린내를 맡은 청산이와 계백이가 짖어 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연쇄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철장과 느슨하게 풀려 있는 새 자물쇠.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지고 문을 빠져나온 개들은 또다시··· 나는 고리가 잘린 자물쇠를 캐비닛 깊숙한 곳에 넣고 문을 닫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새로운 사건이 아니었다.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손톱을 세워 손목을 벅벅 긁었다. 땀에 짓무른 살갗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가려움은 가신 지 오래였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명한 자국은 쉽게 새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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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 없는 비밀은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덧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완벽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자기 서사는 늘 엄존하기 때문이다. 한병장이 평범한 기록으로 점철된 병기부를 가져간 반면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자물쇠를 두고간 건 이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마찬가지로 결말에서의 나의 긁는 행위는 비밀의 덧없는 반복을, 별 다른 변화없음을 말하면서 이야기의 침해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밀을 은폐하려는 자(한병장)와 공개하려는 자(나)의 갈등은 첨예해지기 보다 점차 해소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이는 서로 간에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비밀 또한 결국 누구도 믿지 못하는, 침해할 수 없는 완벽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고리가 파손된 자물쇠를 다시 캐비닛에 넣고는 자신만의 비밀로 침참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