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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祭)

  • 작성일 2026-06-01

  제()

김정우

 

  한밤에 아버지의 부고를 전한 이는 여동생이었다. 연락이 끊긴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으나 안부는 서로 건네지 않았다. 아버지가 위암 4기로 투병했다는 사실과 날이 밝으면 발인한다는 것. 내 연락처를 수소문하느라 삼일장 중 이틀이 지났다는 것. 그래도 장남이니 이제라도 내려와 보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녀는 그런 말을 장례식장의 소음 속에서 이어갔다. 나는 주소를 제대로 듣지 못했음에도 전화를 끊었다. 어느 도시로 가야 할는지는 아무래도 알 수 있었다.

  장례식장이 있을 만한 곳은 남쪽 끄트머리의 신도시였다. 광역시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쯤 이동한 뒤 기나긴 터널을 통과해야 나타나는 그곳은 도시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면서 언덕 지형이었다. 소각장과 원자력발전소와 농공단지가 신도시의 입구에 모여 탄내나 분진 냄새를 게워냈다. 몇 되지 않는 아파트 단지는 농공단지와 공동묘지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곧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명문 대학교의 분교가 이전해올 것이라는 말은 노인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경전철이 들어선다는 소문만 십수 년째 무성할 뿐. 실상은 버스 배차 간격마저 멀어서 젊은이들은 취업과 동시에 그 고인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십오 년 전에 그곳을 떠나왔고 젊은 사기꾼 소리를 듣다 전과가 몇 개 생겼으며 카지노에서 일하고 도박판에서 구르다가 부동산 투기로 운 좋게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러는 동안 한 번도 그 도시에 돌아간 적 없었다. 그 도시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냄새가 배어 있는 곳.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로 자주 하늘이 때 타고 콧구멍에 까만 먼지가 끼는 곳. 원자력발전소가 언제 터져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법하며 송전선로가 사방을 꺼멓게 두르고 있어서 투기꾼들도 들어가지 않는 곳. 공장을 닫고 파산한 뒤 대리운전 혹은 일용직 노동이나 전전하며 살았을 아버지에게나 어울릴 만한 곳이었다.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간략히 짐을 꾸렸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 도시가 장례를 치르기에 꽤나 편리한 곳이라고 여겼다. 병원과 장례식장은 물론이고 화장장과 공동묘지 심지어 절간까지도 차를 타고 움직이면 십여 분 안에 닿을 수 있었다. 도시의 슬로건은 기억이 가물거리긴 해도 미사여구가 잔뜩 붙은 희망적인 문장이었다. 차라리 죽음이 쉬운 곳.’ 정도가 도시의 입구에 걸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관 뚜껑을 덮듯 트렁크를 닫았다.

 

  날이 밝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네 시간 넘게 차를 몰아야 했다. 그렇게까지 장거리 운전을 해본 적은 없었다. 차 안이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회전 진입로를 통해 올라갔다. ‘환영합니다.’라고 벽에 프린팅된 글자들이 거꾸로 감기고 새벽빛이 주차장 입구로 틈입해왔다. 눈에 빛이 닿으니 시야는 잠시 암전되고 미시감이 들었다. 이 순간 나는 스무 살 같기도 하고 서른다섯 살 같기도 하며 불혹을 넘어선 것 같기도 했다. 앞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아이 같았다가 청년 같았다가 노인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실제로 보지 않았던 것을 볼 때가 가끔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무렵에 화마로 돌아가셨다는 어머니가 어떤 기이한 자세를 취한 채 바짝 타서 소방관들에게 발견되었는지 보았다. 부모가 나를 잉태하던 날 어느 체위로 잠자리를 가졌는지 보았다. 흔히들 상상할 수 없을 법한 이상한 자세로 부모는 낮과 밤이 섞인 시간에 나를 점지했다. 그리고 어릴 적 앨범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 인형이 아나바다 운동을 통해 팔려 나간 뒤 여러 가정집을 전전하던 모습을 일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은 팔다리가 절단되어 솜뭉치가 튀어나온 채 아직도 소각되지 않고 어느 폐기물 처리장의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채였다.

  발인은 오전 아홉 시경이라고 했다. 쉬지 않고 운전하면 얼추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화장하기에 참으로 적합한 시간일 듯했다. 아버지가 살아온 수많은 오전 아홉 시의 환영이 눈앞에 보였다. 정체 모를 철제 기기들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 영세하나마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 특유의 고집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공장의 열기에도 잿빛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물품 대금 완납일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하는 표정. 지나간 접대 자리를 생각하며 이마에 주름을 만드는 표정. 은행의 대출 한도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표정. 공장 경매 처분을 받고 욕설을 웅얼거리는 표정. 그런 상들이 얼굴에 공존했다.

  속도를 올리고 고속도로를 탔다. 페달을 밟아 차선을 넘나들었다. 아직 어둑한 하늘 저편으로 누군가의 상여가 돌아 나가는 듯하여 자꾸만 허공을 보았다. 운전을 막무가내로 해도 여태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온갖 차량을 추월했다. 인간은 쉽게 죽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무력감이 들었다. 속도를 준수하며 서행했다. 이 도로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사실을 신물 나도록 느끼다가 작은 점처럼 질려버리는 일일지도 몰랐다. 나는 몇 분 사이에 나이를 몇 살 더 먹어 버린 것 같았다. 한 손으로 검은 넥타이를 쥐고 숨이 막히도록 꽉 조였다.

  도로는 어둠이 걷히지 않아 한산했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상 시간이 몇 분씩 줄어들거나 늘어났다. 누군가 자꾸 경적을 울렸다. 색색의 꽃과 리본으로 촌스럽게 장식한 웨딩카였다. 웨딩카는 차체를 바짝 밀어붙이더니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중 무엇을 밟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웨딩카는 앞으로 완전히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겨우 사고를 피했다. 꼭 말없이 작년에 집을 나갔다가 막 돌아온 가족에게 다녀오셨습니까, 무심히 인사하듯 죽음과 가까워진 때에도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기분이 강하게 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웨딩카는 곧 옆 차선으로 비껴갔다. 그대로 각자 가교를 건너고 커브를 돌았다. 내가 슬쩍 속도를 올리자 웨딩카는 다시 앞으로 들어왔다. 마지못해 속도를 늦추고 차량 간의 거리를 띄웠다. 내가 항복 깃발을 들어 올린 셈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웨딩카는 옆 차선으로 이동하며 잠시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운전자를 관찰했다. 그는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엄숙함이라고는 없는 자세였다. 죽음이 도래하는 순간인데도. 나는 그런 이들을 경멸했다. 더는 웨딩카를 상대해 줄 필요가 없겠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물속으로 사실은 누구보다 깊게 들어가고 싶으면서도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이는 온전히 행동하는 인간이라 할 만할까. 잠을 자고 싶으면서도 하루가 아쉬워 밤늦게 커피를 마시는 나 자신이라든가 아버지의 도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음에도 차를 멈춤 없이 몰고 가는 이 행동을 거대한 내가 내려다보면 어떠할까. 임종을 앞둔 환자 앞에서 죽지 마시라고 진심으로 곡소리를 내면서도 저승사자가 다녀가기를 기도하는 이는 나를 이해할지도 몰랐다. 나는 또한 우중충한 하늘이나 도로에 흩어지는 경적에서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만일 내가 살아나지 않았더라면웨딩카에 부딪혀 가드레일 너머로 추락한 뒤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이한 자세를 취한 채 구급요원들에게 발견되었다면 많은 감상이 달라졌을 것이었다.

 

  휴게소 팻말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웨딩카는 여전히 훼방을 놓는 중이었다. 내가 페달을 더 밟으려 하면 먼저 속도를 올린 뒤 앞을 가로막았다. 천천히 운전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차에 자신의 차체를 바짝 맞붙이다시피 하고 경적을 울려댔다. 웨딩카를 먼저 보내려고 휴게소 입구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이유 모를 의무감에 꼬박 경조사를 챙겼던 지인들은 서른 중반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연락이 드문드문해졌다. 부친상의 마지막 날에 대뜸 연락을 넣는다면 꼭 부조금을 회수하려는 것처럼 비칠 터였다. 부고를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 올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른 시간인 것을 제쳐두더라도 전화가 올 일은 거의 없었다. 수신 버튼을 터치하느라 휴게소 입구를 놓쳐버렸다.

  부고를 전해 들었다는 말로 누군가가 운을 뗐다. 오래전에 연이 끊겼던 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십여 년이 넘는 공백에도 그와의 통화가 어색하지 않았다. 웨딩카가 나를 들이받으려던 일화를 말한 뒤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건 형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기 때문이야, 라며 그가 응수했다. 웨딩카는 그러는 짓이 시들해져서 이 전화가 끊길 무렵이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도 예언했다. 그가 내 차종과 색상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가 벌써 삼십 대 중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실없이 뱉었다. 그는 그답지 않게 빠른 말투로 답했다. 우리는 각자 스물한 살과 스무 살 때 이후로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고. 그러니 우리는 아직 스물한 살과 스무 살인 채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묘하게 설득이 되어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발인 때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이제 경적은 들리지 않았다. 웨딩카는 정말로 속도를 올려 사라져 버린 뒤였다.

  유리창에 습기가 서렸다. 온도를 너무 낮춘 탓이었다. 25도가 차량 에어컨의 적정한 온도라고 딜러가 알려준 적 있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낮은 온도를 선호했다. 시신을 잠시 보관할 수 있을 정도로 서늘한 온도. 에어컨 설정을 조절하는 대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전면에 생겨난 반쪽짜리 원 안으로 시야가 확보되었다. 엇비슷하게 생긴 도로가 안개를 머금은 채 이어졌다. 그 광경을 들여다보니 최면에 걸리듯 의식이 희미해졌다. 졸음을 쫓아주기라도 하려는지 전화가 계속 울렸다. 내키지 않았음에도 수신 버튼을 눌렀다. 내가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새 조문객들을 받느라 깨어 있었더니 정신이 없네. 방금 선잠이 들었어. 꿈속에서 오빠는 검고 높은 장의차를 운전하고 있었지. 어느 웨딩카가 덮치려고 하더라. 나는 검고 높은 장의차가 아니라 나지막한 스포츠카를 몰고 있다는 말을 해주려다 그만두었다. 꿈이란 으레 그런 것이지,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연세가 어떻게 되었지? 전화를 끊으려는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오빠보다 서른 살이 많으셨으니까 만 나이로 올해 64세지. 나는 그녀의 대답을 곱씹다가 불쑥 물었다. 내가 몇 살인지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이가 삼십사 년을 살았다고 해서 나 역시 삼십사 년을 산 것일까? 하루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십 년과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은 십 년을 같은 시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여동생은 내가 몇 살인지 대번에 정의해버릴 것만 같았다. 대답이 오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동생은 아버지가 올해 만으로 예순네 살이라고 했지만 나이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아버지가 50세일 때 나는 그와 절연했으므로 내 기억 속의 부친은 여전히 50세이지 64세는 아니었다. 64세인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운전하는 동안 한쪽 눈을 질끈 감고 그려보았다. 감은 눈에 시각이 열리고 이미 죽었다던 아버지는 살아 있는 상태로 꿈틀거렸다. 털을 바짝 민 애완 강아지처럼 뼈를 훤히 드러낸 채 병상에 누운 그. 낯선 젊은이가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온 힘을 짜내서 목을 비쭉 내밀었다가 자신을 찾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돌아누웠다. 근처에 세워져 있는 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을 향해 욕설을 뱉었다. 아무리 봐도 그것은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풍채 건장한 중년이었고 갈비뼈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야 했고 혐오 시설이 건강에 무해하다고 믿어야 했으므로. 아무래도 그는 나의 세계에서 여전히 50세였다. 그렇다면 나의 나이는 또 어떠할까.

  나는 빠른년생이었다. 성인이 되고 일 년이나 지났을 때도 내가 스무 살인지 스물한 살인지 헷갈렸다. 당시의 나는 스무 살의 나와 스물한 살의 내가 공존한다고 믿었다. 가족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어느 날은 스무 살로 또 어느 날은 스물한 살로 나이를 말했다. 혼란은 그 도시를 떠나오고 나이를 더 먹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상 서른네 살 혹은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살고 있을 뿐. 사실은 본가를 떠나오던 그해부터 한 살도 먹지 않았거나 남들보다 곱절 빠른 속도로 나이를 먹어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출생신고 때 기재한 나의 생년월일이 애초에 오류투성이여서 내가 나이를 무의식적으로 불신하는지도 몰랐다. 혹은 원자력발전소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탓에 머리가 이미 병든 것인지도. 지난 시절 동안 나는 이 순간을 내심 기다려왔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내가 나이를 헷갈리는 순간을.

 

  아랫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시야가 흐릿했다. 눈을 감고 차를 몰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른 운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두 눈을 온전히 뜬 채 어떻게 그리 태연히 차를 몰 수 있는 것일까. 나를 제외한 여타의 인간들이란 본래 그런 법이야, 라고 해묵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문어체로 중얼거렸다. 전조등에 의지하며 조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을 둘러싼 희끄무레한 것들은 안개가 아니라 무언가가 타고 난 직후의 연기 같았다. 화장장의 소각로 안에 드러눕는다면 아마도 이런 광경이 가장 먼저 보일 것이었다. 뼈와 살이 타고 평생 잠겨 있다시피 했던 육신이 열리는 순간. 그때 아버지와 나는 연결이 될지도 몰랐다.

  옅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분기점이 근처인지 차량이 많아지면서 정체가 시작되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이 뒤늦게 나온 탓에 진작 탔어야 할 우회로를 놓쳐버렸다. 이를 알아채자마자 급히 핸들을 돌렸다. 그때 내가 본 것은 중형차 뒷면에 부착된 ‘Dreams Come True.’라는 문구였다. 그 의미를 떠올리는 순간 브레이크 밟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대로 중형차와 충돌했고 탄내 같은 것을 맡으며 콜록거렸다. 안전띠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이게 끝일 리 없었다. 뒤따르던 소형 트럭이 꽁무니를 박았고 나는 그 충격으로 핸들에 얼굴을 찧었다. 코뼈가 부러지기라도 한 것인지 통증이 몰려왔다. 가래가 입안에 잔뜩 고였다. 안전띠를 매고 있던 왼쪽 쇄골이 욱신거렸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죽을 뻔했으며 아버지는 살아나려다 말았다는 것이었다.

  도로의 갓길에 내려 잘게 떨어지는 비를 맞았다. 차를 살 때 받은 우산이 트렁크에 몇 년째 잠들어 있는 것이 기억났다. 힘껏 트렁크를 들어도 헛수고였다. 스포일러가 깨지며 후면이 찌그러져서 트렁크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검은 정장이 젖었다. 바지 밑단과 소매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앞차와 뒤차에서 운전자들이 내렸다.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던 중이라고 말했더니 그들은 욕설을 멈췄다. 바람이 불고 비가 가로로 내리는 듯했다. 나는 세상이 사선으로 눕는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보험사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문자와 이메일을 한참 뒤졌다. 앳된 티가 나는 경찰 두 사람이 다가왔다. 이놈의 소나기가 극성이라니까요. 이런 날에는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그들 중 연장자로 보이는 이가 운을 떼더니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을 건넸다. 나는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고 나이는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아 헷갈린다고 답했다.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검은 세단을 렌트했다. 잠시 뒤 앞이 긁히고 뒤가 부서진 스포츠카가 견인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더 기다린 끝에 렌트한 구형 세단에 탈 수 있었다. 의외로 엔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승차감이 영 좋지 못했다. 에어컨 바람에서도 공장에서나 날 것 같은 케케묵은 냄새가 났다. 그건 꼭 아버지의 도시에 고여 있던 냄새 같았다. 흠뻑 젖은 채로 앉았더니 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할 시간은 없었다. 발인을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깜빡거렸다. 시간을 보지 않으려 핸드폰을 엎어두었다. 쇄골에 안전띠가 닿을 때마다 통증이 배가되었다. 띠를 매지 않고 운전했다.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허리와 엉덩이 아래로 의자 속 싸구려 스프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차의 모든 것이 엉망이었지만 안전띠를 매라는 경고음만큼은 삼사 초 단위로 반복되었다.

  톨게이트를 지나 남쪽의 광역시로 접어들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갑작스러운 수신음에 하마터면 또 앞차와 충돌할 뻔했다.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그의 전화일 것이라고 직감했는데 예상대로였다. 그는 이미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하늘이 너무 시커멓고 비가 많이 온다고도. 여기도 마찬가지라고 응수하며 창밖을 보았다. 두꺼운 안개 사이로 검은 하늘이 드러났다. 그 드넓은 어둠에 비하면 내가 렌트한 차는 너무 작고 하찮은 점이었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는 고인을 추모하는 날에 나란히 검은 정장을 입고 각자 검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같은 곳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고인 역시 검은 하늘 속에서 쉬고 계실 거라고. 그러니 우리는 모두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그가 사투리를 언제 그렇게 말끔히 고쳤는지 궁금했다. 내가 발인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짐작했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도로가 빗물로 흥건했다. 이로써 소나기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허름한 식당이 보여 차를 세웠다. 딱히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장례식장에서 삼십여 분 정도 떨어진 이면 도로였다. 전속력으로 가봐야 빈소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시간상 다들 화장장으로 이동하여 아버지의 육신이 뼛가루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운이 좋으면 유골함을 건네받아 직접 봉안당에 아버지를 올려놓을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뼛가루를 아버지라 할 수 있을까. 차에서 내리자 옷이 다시 젖었다. 그의 말대로 아버지와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함께 있는 것과 같았다. 그가 나를 대신해서 빈소에 다녀왔으므로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일 오전의 식당은 한가했다. 나를 제외하면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주인은 뭐가 그리 분주한지 주방에서 뒤척이다 뒤늦게 메뉴판을 들고 왔다. 홀의 형광등은 불이 나가기 직전처럼 어둑했다. 중환자실의 전기 신호처럼 간간이 점멸하기도 했다. 내 시선을 좇던 식당 주인은 근처 병원에서 전기를 너무 끌어다 쓰는 탓에 불이 자주 깜빡거린다며 배시시 웃었다. 주문한 음식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카드를 건네 값을 결제한 후 식사를 기다리지 않고 다른 식당으로 가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근처에 옮겨갈 만한 곳은 없었다. 운전하던 동안 석상을 깎아다 파는 이름 모를 가게와 거대한 화원과 가구 도매점 그리고 몇몇 교회가 창밖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이 부근은 인구가 제법 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를 먹거나 쉬어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졸음이 몰려왔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고 나는 의식이 또 한 번 잠기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만났던 여자들이나 심란한 돈 문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침대 옆에 부적처럼 세워둔 산소호흡기도 그리고 아버지도 나오지 않았다. 식당 주인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의자 위에 가부좌를 튼 채로 수인을 맺는 양 기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주인은 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보고 그제야 에어컨을 틀었다. 장마철일수록 잘 먹어야 살지, 라는 말과 함께 음식을 놓고 갔다.

  갓 나온 음식이 식기를 기다렸다. 공깃밥 위에 숟가락을 세로로 꽂아두었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은 방전되어 있었다. 식당에서 충전 케이블을 빌려 전원을 켰다. 같은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여럿 찍혀 있었다. 그가 아니라면 여동생일 터였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시절 동안 왕래가 끊겼으므로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여동생의 전화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였더라면 굳이 전화로 뭔가 묻지 않더라도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익히 알 수 있었으리라.

  부재중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유골함을 안치해 드리는 중이며 곧 아버지가 다니던 절에 가서 제를 지낼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도 같이 이동하느냐고 물었다. 생김새를 듣고도 여동생은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조문을 왔었나, 하고 혼잣말을 할 따름이었다. 여동생이 연락을 넣었던 것이 아니라면 누가 그에게 부고를 알렸던 것일까. 내가 콜록거리자 여름에 그것도 이렇게 좋은 날씨에 웬 감기냐며 그녀가 핀잔을 주었다. 절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여동생은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음식 냄새만 오래 맡고 있을 뿐 한술도 뜨지 않았다. 여동생이 보내준 주소를 내비게이션 어플에 찍어보았다. 절은 아버지가 살던 아파트의 바로 뒷산에 있었다. 아버지가 절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알던 그는 제단에 촛불을 밝히고 뭔가를 염원하는 것. 신 앞에서 탄원하고 눈을 질끈 감는 것. 그런 것을 죽음보다 불신했고 장삿속이라 믿었다. 죽고 나면 무()의 세계만이 존재할 것이라며 겪은 적도 없던 죽음의 세계를 단언하던 그. 그는 절에 드나들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그런 곳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모양이었다.

 

  검은 터널을 지나 십오 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산에 빙 둘러싸인 땅이었다. 이 도시는 신도시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죽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낡은 종합병원과 화장장의 네온사인 그리고 노인대학 캠퍼스가 눈에 들어왔다. 뒤쪽으로는 쇠퇴한 상권이 펼쳐졌다. 허름한 건물들이 꼭 병실에 설치된 병상들처럼 구획별로 놓여 있었다. 창을 내리자 거리에 깔린 꿉꿉한 냄새와 하천에서 올라오는 물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과거에 신축이었던 육교는 땟국이 흐를 것처럼 노쇠했고 그 아래로 구식 차량만 지나다녔다. ‘푸르른 상상이 이뤄지는 꿈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슬로건이 인쇄된 현수막은 빗물에 흠뻑 젖은 누더기 꼴로 육교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 것들 외에는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였다. 마을을 둘러치고 있는 검은 송전선까지도. 이곳에서는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그대로 고이는 듯했다. 어쩌면 이 땅이 의식을 지닌 채 나를 기다려온 것도 같았다.

  빗소리 때문에 내비게이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았다. 화면에 뜨는 유턴 표시를 보고 핸들을 돌렸다. 그러나 산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설 수는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이동하려면 유턴한 후 일이 미터 남짓 역주행해야 했다. 이 도시는 아무래도 죽음을 겪기에 최적화된 곳. 장례 시설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도 모자라 도로는 사고가 나기 적당했다. 유턴을 반복하며 타이밍을 살폈다. 역주행하려는 때마다 다른 차가 지나왔다. 차에 기름이 부족하다는 알림이 떴다. 나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절에 도착해야 했다. 발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아버지의 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고 내가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숭고한 순간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 산으로 이어지는 듯한 샛길로 무작정 방향을 꺾었다.

  내비게이션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위치를 잡지 못하고 사방으로 회전하는 화면만을 보여주었다. 내비게이션을 꺼버리고 감각에 의지하여 길을 찾았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느라 차는 거의 사십오 도 각도로 누워 움직였다. 좌측에 쓰레기 소각장의 굴뚝이 비딱하게 꽂혀 있고 사선으로 누운 듯한 비닐하우스들이 장맛비에 젖어 너덜거렸다. 우측에는 건강이나 보신이나 영양따위의 글자가 박힌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공장지대에서 나온 이들이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 아래로 들어갔다. 나는 그중 아버지의 얼굴을 본 듯하여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다리를 질질 끌며 낡은 지갑을 꺼내는 중년의 인부. 그가 아버지일 리는 없었다.

  텔레파시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그대로 우측으로 꺾으라고 그가 알려주었다. 나는 핸들을 돌렸다. 차량이 수풀과 부딪치더니 가려졌던 길이 드러났다. 이제야 어딘가 익숙했다. 이곳이 어디쯤인지 알 것 같았다. 시야가 트이며 물에 젖은 거대한 산이 드러났다. 내가 탄 고물차는 빗방울처럼 보잘것없었다. 길 밖으로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넌지시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서른 중반까지 발버둥 치며 겨우 쌓아온 평정이 깨졌다. 내가 그때 고향을 떠나 어떻게 먹고살았는지 알아? 만만하게 보이기 싫어서 나이를 몇 살 올려 이십 대 중반이라며 일을 시작했지. 어린 나는 그대로 고향에 버려두고 말이야. 푼돈 받고 전단지를 돌렸던 일부터 카지노에서 셔플을 섞다가 호모 사장한테 분풀이로 뺨을 맞은 일에, 건달한테 여자를 뺏겼던 일, 경찰이 구치소에 나를 처넣으며 내 얼굴에 가래를 뱉었던 일에, 형을 살고 나왔던 때 두부를 주는 이가 없어서 혼자 사 와서 씹어 먹었던 일, 셀 수 없이 수모를 겪었지. 내가 말하자 그가 그래 알아, 했다. 장례가 끝나면 빌어먹을 돈은 개나 줘버리고 두부 장사나 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이번에도 그래 알아, 했다. 담배 장사도 좋겠다고 내가 말할 때부터는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졌다. 기름통 눈금에 빨간 불이 깜빡거렸다. 점심도 되지 않은 때인데 하늘이 캄캄했다. 그가 말했던 검은 하늘이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가끔 나는 그때 고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고향을 떠났더라도 다른 일을 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나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부질없었을 것 같았다. 어떤 세계로 도망치더라도 귀결되고 마는 일이 있었다. 과거의 무수한 내가 수많은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다 하더라도 결국 지금 내 머리 위는 검은 하늘이지 않았을까.

  비가 더욱 퍼부었다. 와이퍼가 탁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고장 났다. 유리창이 순식간에 빗물로 가득해졌다. 아무래도 이곳 날씨는 이 도시의 영향을 받는 듯했다. 건너편 오르막길에서 전조등 빛이 흘러왔다. 지나가던 택시인가 싶어 나는 차를 세웠다. 장의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봉안당이나 절을 향해 가는 것이리라. 스스럼없이 장의차를 뒤따랐다. 비포장도로는 빗물과 진흙으로 질척이고 버려진 수도원과 요양병원은 십몇 년 전과 다름없었다. 곧 커브만 돌면 잘 닦인 도로가 나올 것이었다. 그곳에서 절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제 장의차와 나는 나란히 달렸다. 차체의 색상은 물론이고 차종까지 똑같았다. 나는 거울을 보는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커브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간 지형이 바뀐 모양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시공간을 이동하여 또 다른 지점에 도달했는지도 몰랐다. 조수석의 유리창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장의차도 창을 내렸다. 운전석에 앉은 이는 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마중 나온 그일 수도 있었다. 일순간 장의차가 흙길 바깥으로 추락했다. 내가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굉음이 멎더니 검고 가느다란 연기가 향처럼 피어올랐다. 곧이어 내 차도 운전석 쪽 바퀴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퀴가 빗물 속에서 헛돌고 차는 서서히 고꾸라졌다. 고장 났던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고 엔진에서 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이제는 익숙한 탄내가 풍겼다.

  조수석 바닥에서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급히 여동생에게 걸었다. 차가 점점 호수 속으로 미끄러지고 주위는 암전되었다. 꼭 검은 하늘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차 안으로 흙탕물이 들어와 발과 무릎이 순서대로 잠겼다. 여동생은 뒤늦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목탁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백팔 배 같은 동작을 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그런 말들을 뱉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이 도시에 와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고 장례식장과 공동묘지와 봉안당과 사찰이 한데 모여 있으며 송전탑들이 검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이 도시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며 지나가는 인부나 택시를 보면 혹시나 아버지가 아닌가 싶어 멈칫해야 하고 빨간 스포츠카를 타든 구형 세단을 타든 장의차를 타든 중요하지 않은 도시에 제 발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동생은 그런 게 다 무슨 소리냐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나바다 운동으로 팔아버렸던 인형을 기억하느냐고 질문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차는 경사면을 따라 기울어졌다. 내가 이대로 죽어 아버지의 세계로 간다면 아버지는 살아 있을 것이었다. 핸드폰이 다시 켜지지 않을까 싶어 기다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흙탕물이 머리끝까지 들어차자 나는 영면에 들듯 잠잠해질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하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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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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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병훈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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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두더지왕

    .

    • 2026-06-01 21:51:55
    두더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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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watermelon

    속력을 줄이지 않고 곡선 도로를 무리하게 돌던 트럭이 김의 시선에 놀란 듯 갑자기 사선으로 기울어지더니 노면을 타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트럭은 순식간에 가드레일에 부딪혀 옆으로 기울어졌고, 놀란 김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기도 전에 불길이 치솟더니 이내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 김은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경찰이나 구급대원, 병원의 응급센터에 거는 대신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은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하는 것은 순전히 김이 검은 밤의 국도변에 홀로 서 있으며 근처에 빛을 내는 것이라고는 장례식장의 간판과 불타는 트럭뿐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어쩌면 모든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지진에 대비한 훈련을 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지진 발생 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도를 부적처럼 품고 다니는 도시에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재난에 대비한 운동과 어떤 곳에서 팔리고 있는 불분명한 재난의 위협 속에서 누군가는 단지 노환으로 죽을 듯 죽지 않으며 계속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여자가 입을 열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 김은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여자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면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저녁의 구애, 편혜영>

    • 2026-06-01 23:50:29
    waterme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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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유니진
    최고에요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

    • 2026-06-03 01:10:31
    유니진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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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니진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네요. 처음에는 장례를 치르러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보니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특히 원전 때문에 머리가 이상하다는 부분이나 마지막 인형 질문이 마음에 오래 남네요.마지막 문장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읽어봤습니다. 좋은 글 적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026-06-03 01:13:27
    유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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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