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만의 지도
- 작성일 201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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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만의 지도
박솔뫼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해만의 지도였다. 해만에서는 한 달여간 머물렀으며 한동안 그곳의 모든 것을 금세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생생했으나 시간은 지났으며 그 때문인가 막상 지도를 그리려니 막히는 부분이 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펜을 놓고 들여다보았다. 이건 지도라기보다는 약도에 가까워 보였다. 방금 노트에 그은 선 위에 손가락을 놓고 따라가 보았다. 숙소를 지나 길을 따라 걸으면 슈퍼가 나오고 좀 더 가면 시장이 나왔다. 시장에서 그 페이지는 끝이 났다. 다음 장을 넘기면 숙소 인근의 작은 가게와 집들 골목들이 더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때쯤 전화가 왔는데 우연히도 우석이었다. 우석과 나는 이번 주말 부산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는 더 자세한 시간과 장소를 말해 주기로 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리고 있던 지도에 적었다. 중앙동역 1번 출구, 오후 3시. 우석은 확인하듯 다시 말했다. 중앙동역 1번 출구, 오후 세 시. 나는 방금 그리고 있던 지도가 기억나 우석에게 지도에서 막히기 시작한 부분을 물었다. 실내에 기타가 걸린 초록색 벽의 식당 알지? 그 식당이 어떻게 교회와 만나는 거지? 식당 뒤의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되는 건가?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으나 우석은 무슨 식당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고 나는 됐어 만나서 물어볼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석을 만난 곳은 해만에서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였다. 그는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의 친구였고 가끔 숙소로 놀러와 사람들과 고기를 구워 먹거나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거나 했다. 가끔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딱히 누군가에게 들려주려고 부른다기보다는 혼자서 연습을 했다. 우석은 숙소에 와서 연습을 하면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걸 보고 뭐야 하고 웃었는데 그때 우석은 집에서 하면 진짜 이것보다 못해요 하고 말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석은 몇 해 전에 해만의 다른 숙소에서 머물며 일했던 적이 있는데 해만에 오면 그때 알게 된 사람들의 집을 옮겨 가며 자거나 숙소에서 얼마간 일을 해준다고 했다. 처음 우석을 만났을 때도 우석은 숙소 이웃에 사는 아저씨의 집 풀을 베어 주고 오는 길이었다. 우석은 내게 냉장고에 들어 있던 보리차를 한 잔 따라서 내밀었다. 라이터 있어요? 하고 내게 물었는데 나는 잘못 알아들어 네? 네? 하고 세 번쯤 물었던 게 기억난다. 그 이후로 우석은 나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해 줄까요? 하고 놀리곤 했다. 나는 그때 한 달 이상 같은 숙소에서 머무르고 있어,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자주 가는 가게의 주인, 심지어 원그리스도교정이라는 해만에 와서 처음 듣고 해만을 떠난 이후로는 들을 수 없었던 교회의 젊은 목사까지 와도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우석은 그들 중에서도 꽤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은 아마 새로 온 손님이 없으면 종일 벽에 기대어 책을 읽던 직원이었으나 그와는 우석처럼 자주 또한 오래 연락하는 사이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다시 그리다 만 지도를 보았다. 숙소를 기준으로 동북쪽에 씌어 있다. 우석과 내가 만날 시간과 장소. 목요일부터 부산으로 출장을 가. 금요일 일정이 끝나면 토요일부터는 한가하겠지. 이주 전쯤 우석에게 온 메일의 답장으로 부산으로의 출장 일정을 말했다. 생각해 보면 우석이 딱히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무실에 앉아, 아무도 없는 내 방에서, 시끄러운 체인형 카페 안에서 확인하는 우석의 메일은 어떨 때는 인도였고 어떨 때는 한국이었지만 줄곧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해서 ‘늘 어딘가에 있는 사람’ 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어디를 가도 누군가의 집, 그 사람의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 그 식당의 맞은편에 있는 서점의 아르바이트생 그런 사람들의 집에서 며칠씩 머물며 살았다. 가장 최근 우석을 만났던 곳은 회사 근처 중국집이었는데 우석은 거기서 탕수육과 짬뽕과 볶음밥과 고추잡채와 군만두를 먹었다. 이건 도무지 같이 먹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우석은 아주 많은 음식을 먹었고 나는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한 달쯤 후에는 회사로 엽서가 왔는데 인도에서 온 엽서였다. 인도는 과일이 싸고 맛있으며 나는 지금 배탈이 나서 하루 종일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 있어요, 라는 이거 무슨 소리야? 앞의 원인이 뒤의 결과를 낳았다는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엽서였다. 주변에서 누구한테 온 엽서냐고 자꾸 물었다. 회사로 오는 우편물은 보통 누구라도 쇼핑한 물건 정도였던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보낸 메일을 보니 인도에서는 다리가 접질렸고 다리가 낫자 배탈이 났고 어느 날에는 넘어져서 상처가 났는데 그게 아물지 않아 고름이 생기고 그래서 오른쪽 이마가 늘 좀 뜨거웠고 이제 좀 괜찮나 싶을 때 감기에 걸렸는데 그게 한국에 돌아와서도 안 나아서 고생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우석이 떠나기 전에 인도에 다녀와서 몹시 인도에 심취한 사람이 될 거면 더 이상 안 만나겠다고 했고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을 거면 돌아오지 말라고도 했다. 뭐 농담이었다. 우석 역시 인도에 가기 전에는 인도에 가서 뭔가를 깨달으면 어떡해? 깨달아서 막 다른 사람이 되면 어쩌지? 도를 깨치면 안 되는데…… 그래서 가기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작 인도에 가서는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뭔가를 깨달을 순간이 없었다고 했다. 뭐야 바보 같아 정말.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잤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갈 준비를 하고 손에 두유 하나를 급히 챙겨 지하철에 올랐다. 기둥을 잡고 졸면서 그리다 만 해만의 지도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왜 갑자기 이걸 그리고 있는 거지? 원래는 해만에 가려고 한다는 사촌동생의 말을 듣고 챙겨야 할 것들을 메모해 주려다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촌동생은 제주도로 행선지를 바꿨다가 여행일정을 미루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예정보다 두 달 늦게 홍콩으로 떠났다. 나는 빈 노트에 해만이라고 쓴 게 다였는데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항구에서 숙소까지 가는 약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매일같이 지하철에 오르면 고개를 꾸벅이며 졸았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부산으로의 일정이 가까워졌다. 약간 설렜지만 대체로 피곤한 기분이 들었고 뭐 그래도 우석을 만나면 신나겠지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는 자다 깨다 영화잡지를 뒤적이다 다시 잠이 들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깨어나 보니 부산역이었다. 부산역은 처음이었다. 이전에 부산에 왔을 때는 다른 사람의 차로 가거나 버스를 탔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올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부산역에서 내려 트렁크를 밀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왔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에서 누군가 내게 전단지 같은 것을 나눠주었는데 포교를 위한 작은 책자였다. 하늘색 표지에는 동그란 원이 그려 있었다. 오른쪽 하단에 씌어 있는 이름은 원그리스도교정이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지구상의 많은 우연이 내 앞에 쏟아진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정신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으며 어딘가에서 말했다, 마이너한 종교는 의외로 여러 곳으로 교세를 뻗히고는 하지 신기한 일이 아냐 전혀 놀랍지 않아.
정신없는 하루 반이 지나갔다. 업무를 마치고 숙소 근처에 있는 생선찌개 집에서 아주 늦은 저녁으로 갈치찌개를 먹었다. 손님은 나뿐이었고 갈치찌개는 맛있었고 다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자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었고 문 밖에서 인사를 해주었다. 또 오세요. 식당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켰는데 맥주를 다 마시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새벽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끄고 잠결에 남은 몇 모금을 다 마시고 나서야 일어나 화장을 지웠다. 씻고 나자 잠이 다 깼다고 생각했는데 텔레비전을 켜자 다시 잠들어 버렸다. 이상한 텔레비전이네, 잠결에 중얼거렸다. 낮 열두 시가 넘어서야 느지막이 일어나 씻고 나와 점심으로 카레를 먹었다. 붉은 테두리가 있는 접시에 담긴 카레가 좁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아직 우석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기라도 한 듯 맛있겠지? 하고 물었다. 종업원이 빈 컵에 물을 따라줬다. 맞은편에는 주말인데도 출근을 한 모양인지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천천히 먹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15분밖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중앙동역 1번 출구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산역에서 중앙동을 따라 남포동을 지나는 큰 길은 인도가 다른 곳보다 넓은 느낌이라 왠지 부산 전체가 넓은 도시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 매번 나는 이 길을 점으로 부산 전체를 그리고 있었다. 넓은 인도를 점으로 커다란 도시 부산이라는 결과. 주말에도 이 길을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많다 해도 딱히 문제는 없을 넓은 인도 그리고 오래되고 단정한 건물들. 데파트 같은 일본어식 영어 간판 데파트는 백화점이며 데파트라는 백화점에서는 무엇을 파나 잠시 생각해 보다 보면 눈앞에 있는 것은 그리고 다시 넓은 인도와 커다란 도시 부산. 누가 뒤에서 팔을 잡았고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찍 왔네 생각하며 뒤돌아 인사했다.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응. 그래. 근데 어디 가지? 나는 아까 근처를 걷다 보아 둔 카페로 향했다.
우리는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 다시 인사했다. 잘 있었어? 응. 어때, 잘 있었어? 뭐 조금 바빴어. 우석은 짧은 머리에 여느 때처럼 조금 그을은 얼굴이었고 낡은 티셔츠 낡은 배낭 낡은 바지 모든 몸처럼 익숙한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넘기며 그래, 어제는 뭐 했어? 안 힘들었어? 넌 뭐 하고 지내니 같은 것을 묻고 조금 웃고 그랬다. 그러다가,
나, 생각났어.
뭐가?
기타 걸려 있던 식당. 거기 웃기게 맥주랑 볶음밥 같은 거 같이 파는 데 아닌가? 거기 말하는 거 맞지?
어. 가본 적 없나?
있지. 누가 저녁을 거기서 사줘서 먹은 적이 있어. 근데 뭐랬지? 거기가 어디냐고 그랬나?
아니 거기서 교회까지 그 커다란 원이 달린 교회 있잖아.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 거였지? 그거 물어봤어.
글쎄. 왜? 다시 가게?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내밀었다. 여기서 막힌다니까. 내가 내민 노트를 한참 쳐다보던 우석은 글쎄,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음, 하고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다시 노트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거 애초에 잘못 그린 거 아냐? 하고 물었다. 우석은 노트의 첫 번째 장을 펴 항구에서 숙소로 가는 길은 내가 그린 것처럼 직진하다 세 번째 골목에서 꺾어 다시 좌회전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아냐?
어, 아니지.
이거 뭔가…… 아닌데. 계속 보면 맞는 거 같은데 처음 쓱 봤을 땐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다시 정신 차리고 뭐가 틀리긴 틀렸을 거야 하고 들여다보면 분명히 뭔가 조금씩 이상한 거 같아.
무슨 말이야. 어디가?
잠깐만.
우석은 자신의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내 노트 옆에 나란히 놓았다. 우석은 다이어리와 노트를 번갈아 가며 보더니 연필로 연하게 내 지도 위에 다시 몇 개의 선을 그렸다. 우석이 펼친 다이어리에는 해만의 지도가, 그러니까 약도라고 해야 할 지도가,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잠시 봐도 되느냐고 묻고는 우석이 내게 펼쳐 준 장의 앞뒤를 넘겨보았는데 어느 장에나 지도가 그려 있었고 지도 위에는 몇 개의 별이 있었다. 내 노트 위에 뭔가를 다시 그리고 있는 우석에게 지도를 보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우석은 내 손에서 다이어리를 받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건 당연히 표시지. 표시? 무슨 표시냐고 묻자, 잠깐만 하고는 다시 내 노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우석은 자신이 새로 그린 선을 골똘히 쳐다보다 지우개로 뭔가를 지우더니 다시 아까와 같은 곳에 선을 그었다. 다이어리 안의 지도는 내가 그린 지도보다 훨씬 자세했고 정확해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우석은 나보다 더 오래 해만에 머물렀으며 나는 방향감각이 없다. 정말로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나는 다이어리 안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별표가 있었고 어떤 지도에는 작은 글씨로 적은 메모가 있었다. 이 슈퍼에서 서나는 우유를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런 것들. 창에서부터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얼굴에 손을 대면 머리카락과 눈썹과 새끼손가락을 지나 목으로 햇살이 향하고 있었다. 어지럽네 생각하며 얼음물을 가져와 마셨다. 일어났을 때는 살짝 비틀거렸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지도를 그리고 보고 아무 말 없이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우석은 내 손에서 다이어리를 가져가더니 내 노트 옆에 새로운 지도를 그렸다. 왼쪽 페이지에는 내가 그린 지도가 오른쪽 페이지에는 우석이 새로 그린 지도가 있었다. 우석이 내 노트에 새로 그린 지도에는 몇 개의 별표가 있었다. 다 그린 우석은 두 페이지를 붙였다. 약간의 간격 차가 있었고 몇 개의 선이 새로 그어져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일치하고 있었다. 기도하듯이 종이 두 장을 손바닥 안에 모으고 있는 우석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나의 손 안에는 내 손보다 큰 우석의 손이 있고 우석의 손바닥 안에는 해만의 지도와 별로 된 몇 개의 표시가 있다.
우석과 길게 이야기하게 된 계기는 해만으로 숨어든 존속살인을 한 범죄자 때문이었다. 나는 지나가듯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근데 그런 게 궁금해요? 하고 웃으며 물었다. 나는 아니 뭐 그냥요라고 머뭇거렸고 그는 숙소 주인은 알지도 모른다고 했다. 며칠 후 그는 우석이 숙소로 놀러왔을 때 이 사람이 그걸 물어봤어 하며 놀리듯 말하고는 우석에게 넌 본 적이 있지? 하고 물었고 우석은 에? 그런 걸 물어봤어? 하고 웃으며 진짜야? 하고 몇 번 더 물었다. 그러더니 몇 번 봤다고 대답했다.
저녁에 바닷가에 가면 혼자 앉아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녁에 두 번 정도 봤을 거예요. 밝을 때도 봤는데 원그리스도교정 기도실에서 몇 번 봤어요. 무릎 꿇고 기도할 때도 있었고 무릎 꿇고 자고 있을 때도 있었어요. 제가 그때 목사님 부탁으로 기도실 청소를 몇 번 했거든요. 하면 회랑 술 사준다 그래 가지고. 내 또래 아니에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왠지, 그니까 분위기가 달랐어. 그래서 왠지 막 자꾸 쳐다봤는데.
그때 우석은 지금보다 어려 보였지, 생각하며 손을 컵으로 가져갔다. 뭐 더 마실까? 묻자 물이나 더 마시자고 대답했다. 유리컵에 물을 담아 돌아왔는데 여전히 우석은 지도를 살피고 있었다. 손에 연필을 든 채로. 내가 오는 것을 보자 우석은 노트와 다이어리를 덮고는 컵을 건네받았다. 아, 맞다 하고는 우석은 이제 6개월간은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석은 2년 만에 복학을 했는데 다니는 학교가 부산에 있는 다른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이번 학기는 교환학생으로 부산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부산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교환학생으로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 아냐? 묻자 우석은 아, 그러네? 하고는 웃었다. 학교를 다니긴 다니는구나 생각하며 아 잘 됐다 하자, 잘 되었다고 하는 사람 처음 본다고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기숙사에서 온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할 때 조금 신나 보였다. 이제 갈까 묻고는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우리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8월 말, 오후였지만 아직 밝았다. 잘 익은 오후의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 문을 열었을 때 온몸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오후의 바람과 햇살,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걸었다. 걸을수록 그림자가 천천히 사라지고 해가 지고 있었다. 걷다가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갔는데 저기 왠지 맛있어 보인다 하고 말하자 우석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라고 말해 줘서 그럼 갈까 했다. 지난번에도 중국 음식 먹었는데 또 중국 음식이네? 그러니까 우리는 자주자주 봐야 해. 중국 음식 한국 음식 일본 음식 뭐 별거 별거 만날 때마다 먹어야지. 그러고 나서 좋아 하고 동시에 말하고 또 조금 웃고 메뉴판으로 눈을 돌렸다. 잡채밥과 볶음밥을 시켰다. 우리 술 마실 거니까 많이 먹지 말자고 말하자 우석은 이것도 저것도 많이 먹을 거라고 하더니 볶음밥 하나만 시켰다. 우석은 물을 마시며 다시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지도를 펴보았다. 우석은 말없이 다이어리 안의 지도를 보고 나는 그런 우석을 보다 플라스틱 구슬로 엮은 발이 쳐진 중국집 입구를 보았다.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중국집은 우리가 나가면 곧 문을 닫을 예정인지 열심히 정리 중이었다. 동파육 라조기 깐풍기 탕수육 기스면 울면 짬뽕 짜장면 볶음밥 잡채밥 송이버섯밥 짬뽕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늘어선 메뉴들은 형광색지에 매직으로 씌어 있었다.
처음 우석과 길게 이야기를 하게 된 후 나는 가끔 그 사람에 대해 물었는데, 그래서 뭔가 달라 보이는 게 어떻게 달라 보였다는 건데요? 말은 해본 적 없어요? 이런 것들을 물었다. 우석은 한참 생각하다 말을 고르고 골랐지만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떨 때는 노래 부르고 이야기해 줄게요 하고는 노래만 계속 불렀지. 그러다 며칠 뒤 생각났다는 듯이 경찰서에 가서 진술도 했어요 근데 뭐라 그랬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나네 했다. 안 무서웠어? 하고 묻자, 잘못한 게 없는데 뭐가 무서워요? 근데 좀 긴장하긴 했어요 하고 턱을 괸 채로 말했다. 내가 해만을 떠난 이후 우석은 두어 달 더 해만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때 이야기는 별로 안 하는데 생각해 보면 할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어디서나 특별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으며 해만에서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돌아갔지?
뭐가?
집에 말이야.
7월쯤이었지? 왜?
8월 말에 서나라는 애가 숙소에 왔거든. 근데 그 애가 그 아버지 죽인 그 사람 있잖아. 그 사람 여동생이라고 그랬어.
그래서?
자기 오빠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어.
다짜고짜 그냥?
아니 이야기하다가 자기 오빠가 여기서 뭐하고 지냈는지 알려고 왔다는 말을 했어.
우석은 기름진 밥을 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이거 더러워지면 안 되는데 하며 다이어리를 덮었다. 지도 위의 별표는 우석이 그 사람을 만난 곳과 서나와 함께 있었던 곳을 표시해 둔 것이라고 했다. 서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보려다 나중에 조용한 데서 물어봐야지 생각하며 관두었다. 가끔 한 번씩, 맛있네 괜찮네 같은 말을 하며 기름진 밥들을 먹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일곱 시가 지나 있었다. 시간은 많다, 그렇지? 없으면 다른 밤에서 빌려와도 돼.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될 거야. 시간은 많아. 우리가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모든 이야기를 해도 될 만큼 시간은 많다.
좀 걸을까? 말하고 광복동 길을 걸었다. 환한 간판의 상점들 웃으며 이야기하는 얼굴들 왜 이런 것들이 마음을 슬프게 하는지 알 수 없는 늦여름 저녁의 거리. 걷다 보니 오른편에 공원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고 우리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았다. 경사가 높네 생각하며 위를 올려다보니 한참이나 남은 계단들이 보였다. 아래를 보니 이미 우리는 꽤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나 빨랐다. 우리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우석은 무슨 노래인가 흥얼거렸는데 귀 기울여 들어 보니 할렐루야가 반복되는 노래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 부산 타워가 보였고 타워는 마치 이렇게 높고 환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듯 스스로 어여뻐 보였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렸던 것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부산 타워로 향했다. 입장료가 4천 원쯤이었나, 의외로 비싸네 생각했고 이건 내가 낼게 하고 우석이 만 원을 매표소에 내밀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유니폼을 입은 여자 직원이 버튼을 눌러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열심히 웃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일본 관광객 둘이 타고 문은 닫힌다. 소리 없이 스르륵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관광객들은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며 즐거워했고 직원은 무언가 설명을 하고 나는 서나라니 왠지 바람 부는 소리 같은 이름이다 뭔가 입안에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아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나와 우석은 가만히 서서 부산의 야경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바라보았다. 환하다. 이건 마치, 마치, 마치, 뭐랄까 생각하다 우석을 바라보니 우석은 홍콩 같아요 근데 홍콩이 훨씬 환하지 하고 말했다. 마치, 마치 홍콩 같은 건가? 얼굴을 창 쪽으로 바짝 붙여 눈앞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뒤에는 작은 의자를 하나씩 붙여 놓은 카페가 있었고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맛없을 게 분명한 커피를 팔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어린애가 있었는데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엄마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숙제처럼 먹고 있었다. 몇 시지? 물었는데 우석이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파는 직원을 가리켰다. 직원 왼편으로 벽시계가 보였고 여덟 시가 넘었다. 갈까? 물었지만 대답 없이도 걸음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석은 이전에 친구와 함께 갔던 가게가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자 카메라 상점 옆으로 좁은 골목이 보였고 좁은 골목을 가운데에 두고 작은 카페와 식당과 술집들이 붙어 있었다. 골목 끝은 좀 더 넓은 길과 이어져 있었고 그 너머로 호텔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배고프지? 어 조금. 배 안 고파? 고프진 않아. 우석은 여기야 하고 오른편에 있는 가게 문을 열었는데 열자마자 가게 안 사람들의 소리가 확 하고 밀려왔다. 다행히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 그리로 가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부는 사람들 붉은 얼굴을 감싸 쥔 사람들 주문을 하려고 손을 든 사람들 모두 웃는 얼굴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가져다주는 물을 마시며 메뉴판을 보았다. 우리는 구운 소시지와 맥주 두 잔을 우선 시켰다. 머릿속에서는 서나라는 서늘한 바람 같은 이름이 맴돌았고 그 애의 오빠라는 가만히 그려졌다 흐려지는 한 남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 다닌 젊은 남자를 말이다.
그래서 그 서나라는 애한테 이야기한 거야? 바닷가에서 봤던 거 그런 거 다 막 이야기한 거야?
음. 그러니까 처음부터 막 말한 건 아니고, 나도 사실 잠깐이니까. 실제로 본 건 잠깐이었거든. 그래서 말하고 또 한참 생각하고 바닷가에 같이 가보고 교회에 같이 가보고 그러다 보면 뭔가 생각나는 게 있기도 해서 또 말하고 그랬지.
어떤 애야?
그냥 열여덟 열아홉? 그 정도로 보이는 앤데. 자기 입으로는 스물셋이라 그랬어. 말이 그렇게 많진 않은데 뭔가 고집이 세보였어. 나한테 그 바닷가로 데려가 달라고 하고는 다른 이야기는 안 하고 내 앞에서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데 같이 가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 좀 무서웠어.
우석은 내게 노트를 달라고 하더니 자신의 가방에서는 다이어리를 꺼냈다. 맥주를 마시며 어두운 조명 아래 노트와 다이어리를 폈다. 우석은 잘 보이지 않는 길 위의 별표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가 서나와 처음 말한 데야 하고 말했다. 여기가 어딘데? 묻자 시장 근처 생선구이 가게라고 했다. 서나는 배낭을 메고 있었고 테이블 옆에 트렁크도 있었다고 했다. 우석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잘 걸었는데 그때도 서나에게 여행 왔어요? 생선은 맛있어요? 어디서 묵어요? 언제 왔어요? 이런 걸 물었다고 했다. 뭐야 좀 무서웠겠는데? 라고 말하자 살짝 놀라며 그런가? 하고 물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나는 잘 웃지도 않고 이렇다 할 대답도 별로 안 해 줬다고 했다. 서나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편 벽에는 아버지를 죽인 그 남자의 몽타주가 걸려 있었는데 우석은 아무 생각 없이 그 몽타주를 가리키며 저 사람 알아요? 나 저 사람 본 적 있는데 하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우석을 서나는 한참 쳐다보았다고 했다. 나는 방금 전 우석이 가리켰던 그 별표를 바라보았다. 별표와 별표 바깥의 작은 사각형과 사각형이 놓인 선과 그 선이 가리키는 길을 떠올려 보았다. 생선을 굽는 냄새와 연기 어딜 가도 이어질 것 같던 연기 그 연기가 피어나는 식당과 그 식당 안의 오래된 탁자와 의자들 무심한 주인과 그 남자의 몽타주와 원그리스도교정 달력과 그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생선 굽는 냄새와 연기. 어느새 음식 접시가 눈앞에 놓였고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우석은 그 밑에 있는 별표를 가리켰다. 내가 묵던 숙소였다. 서나와는 식당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저녁에 숙소로 놀러가니 서나가 숙소 라운지에서 우석의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서나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우석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고 했다.
다른 몇 개의 별들도 모두 차례차례 서나와 같이 간 곳들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었다. 우석이 시장 쪽 편의점에 이르렀을 때 문득 원그리스도교정의 젊은 목사가 생각났다. 그 젊은 목사와는 우연히 편의점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격주간 영화잡지와 커피를 골랐는데 뒤에서 기다리던 젊은 목사가 그걸 대신 계산해 주었다. 여러 번 사양했으나 다음번에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하더니 결국 계산해 버렸다. 그러더니 자기가 고른 캔 커피를 내게 주며 이게 더 맛있는데? 왜 그거 마셔요 하고 말했다. 편의점을 나와 파라솔 아래 앉아 목사가 고른 캔 커피를 같이 마셨다. 뭐야 맛있잖아 생각하며 맛있네요 하자 당연하지 하는 표정으로 그렇다니까요 했다. 그는 교회라든가 원그리스도교정의 교리라든가 혹은 어떻게 목사가 되었다든가 하는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고 내게도 왜 해만에 오셨어요라든가 뭐 하는 분이세요 같은 것을 묻지도 않았다. 내 손에 든 영화잡지 표지를 보며 그런 거 보면 재밌어요? 묻더니 휙 하고 손 안에서 빼갔다. 우리는 고개를 한 곳으로 향한 채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보았다. 어떤 영화배우의 인터뷰가 특집으로 실렸는데 그 사람은 드물게 슬럼프 없이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영화를 고르는 눈도 좋았고 자기 관리도 확실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가 한 말은 큰 따옴표로 처리되어 사진 위에 찍혀 있었는데 그럴 듯한 말인가?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저는 제가 몹시 연기하고 있지 않나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저는 몹시 연기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아주 잘하더라도 그것은 몹시 연기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몹시 연기하는 것, 몹시 연기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회색 카디건을 입은 배우의 왼편으로 그가 한 말들이 찍혀 있고 나는 몹시 연기하는 것이라…… 생각하다 어쩌면 나보다 어릴지도 모르겠네 싶은 젊은 목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목사는 아주 잘 만들어진 웃음을 내게 보였고 이 사람은 스스럼이 없어 목사처럼 보이지 않는 목사를 몹시 연기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우석에게 이 편의점에선 뭘 했느냐고 묻자, 서나와 같이 컵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우석은 그 애가 컵라면을 먹고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삶은 달걀을 먹고 닭다리를 데워먹고 오렌지 주스와 콜라를 마셨다고 했다. 뭔가 좀 화난 표정으로 먹고 또 먹었다니까 하고 우석은 말했다. 그리고는 메뉴판을 달라고 하더니 짬뽕을 주문했다. 나는 이 편의점에서 목사가 내게 비싼 캔 커피를 사줬다고 하자 그래? 하더니 그 사람은 뭐든 잘 사줘 했다. 나는 내 노트를 펴 지도에서 편의점으로 보이는 지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기서 목사는 커피를 사주었으며 일주일 후에는 병맥주와 데운 치킨을 사주었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쉬지 않고 마시더니 나중에는 붉어진 얼굴로 엉엉 울었으며 그리고…….
우석은 내 노트를 보더니 원그리스도교정이라 동그라미야? 하고 물었다. 나는 웃기지? 하고 대답하고는 다시 노트를 보았다. 문득 부산역에서 받은 책자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부산에 있는 원그리스도교정의 교회인지 기도원인지 알 수 없는 곳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주소로 찾아가면 왠지 웃는 얼굴로 감금시키고 하루 종일 기도만 시키다 집에 전화를 걸게 시켜 5천만 원쯤 가져오라고 협박할 것 같았다. 대충 만든 듯한 책자에서 왠지 모를 어두운 에너지가 느껴졌던 것이다. 해만에서 본 원그리스도교정은 앞으로도 자주 보자는 말이나 이전에 교회 다닌 적 있느냐 같은 것을 묻지 않는 곳이었다. 헌금이나 십일조를 하라는 말도 안 하는, 신도들에게 별 간섭을 안 하는 그런 느낌의 교회였는데 내가 받아온 책자에서는 대체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 걸까 싶게 과잉된 힘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여전히 사람들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 웃고 손뼉을 치며 사람들 다시 맥주잔으로 손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보였고 문득 부산역에서 받은 책자 속 원그리스도교정과 해만의 원그리스도교정은 이름만 같을 수도 있어 다른 종교일지도 몰라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우석은 아직 남은 몇 개의 별을 설명해 주었고 그렇게 가다 보니 마지막은 다시 숙소였다. 왜 숙소지? 궁금해하다 서나는 여기서 작별인사를 했나 생각했다. 우석은 서나가 말도 없이 숙소를 떠났다고 했다. 그 전날 같이 바다에 갔다가 숙소로 데려다준 게 마지막이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했을 때 아르바이트생이 짬뽕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너 그래서 문 앞에서 키스했지? 하고 놀리듯 다짜고짜 물었고 우석은 짬뽕을 받으며 아니야 아니야 얼굴이 벌게진 채로 아니라고 자꾸 말했다. 아니야. 진짜 아니야. 아니라니까. 나는 웃기지 마 했지? 했지? 되물었고 우석은 아니라니까 아 진짜 그만 해 하고 목소리를 바꿔 말했다.
우리는 술집 안 다른 사람들처럼 처음부터 나갈 때까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웃고 떠들고 맥주를 마시며 주문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뜨거운 얼굴을 감싸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웃으며 나오고 서로 놀리고 떠들었다. 나는 우석의 어깨를 치며 자꾸 웃었고 노트에 원그리스도교정의 젊은 목사와 함께 간 곳은 동그라미 표시를 했고 술 마시다 토한 곳에는 x 표시를 했고 언제나 책을 읽고 있던 숙소 직원이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던 바닷가는 잠깐 생각하다 그대로 두었다.
근데 사실.
야 너 얼굴 완전 빨개.
알어.
근데 뭐?
나 그 사람 본 적 없어. 그냥 그런 사람이 지나다니는 걸 보긴 했는데 나중에 잡힌 사진 보니까 다른 사람이었어.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아닐걸?
우석은 붉어진 얼굴을 차가운 맥주잔에 댔다. 나는 쓰다듬듯이 우석의 머리를 툭툭 손바닥으로 댔다 뗐다. 이런 건 쓰다듬는다고 해야 할까 쳤다고 해야 할까 만졌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내가 해만에 가게 된 계기는 아버지를 살해한 존속살인범이 해만에 숨어들었는데 수사가 해만까지 뻗치지 않아 검거가 늦어졌다는 기사를 본 이후였다. 그 사람은 거기서 뭘 했을까 생각하다 보도된 기사들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그것 때문에 도서관에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20대 남성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아 왔으며 나이 터울이 꽤 나는 그의 형은 일찍 집을 떠난 탓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사람은 그와 그의 어머니였으며 둘째 아들이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는 실신했으며 이후 몇 번의 자살시도를 했다고 알려졌으며 그의 형은 단정한 얼굴을 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의 학대를 감안하여 동생의 형을 낮춰 달라고 인터뷰하고 있었으며 읽고 또 읽었던 기사들을 떠올리고 헤집어 보아도 그에게 여동생은 없었다. 서나라는 바람 부는 소리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애는 왜 그런 이유를 대고 해만에 온 걸까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많고도 많으니 맥주잔을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생각하며 화장실로 가 토했다.
우리는 웃으며 조금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왔는데 내가 묵는 숙소는 여기서 10분만 걸으면 되니까 돌아가기 아주 쉬웠지. 우석은 취한 얼굴로 술집 앞 카페로 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서 내게 하나를 건넸고 차가운 커피를 마시다 보니 정신이 들 것도 같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웃으며 조금 비틀거렸다. 나랑 서나랑 너랑 그리고 또 누가 있지? 숙소에 있는 내 친구? 아니면 젊은 목사? 아니면 너 친구 아무나 그렇게 넷이서 살면 좋지 않을까? 우리는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을 하거나 돈을 벌거나 그렇게 살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와 넷이서 꼭 껴안고 사는 거야. 다른 거는 안 해. 껴안는 거만 하고 그렇게 껴안고 자는 거. 그러면 다음날도 행복해지고 우리는 힘들지 않을 거야 계속계속.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을 거야. 계속계속 아주 오래 행복할 거야. 우석은 얼음이 든 플라스틱 컵을 흔들며 말했다. 아 좋겠다 하고 무릎을 꿇고 벽에 기댔다. 나는 손바닥으로 우석의 머리를 툭툭 하고 쳤다. 그리고 우석이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얼굴을 자꾸만 가려서 손으로 머리를 넘겨야 했다.
우석과 나는 비틀거리며 내가 묵는 숙소까지 왔고 우석은 내게 손을 흔들며 잘 자, 라고 했다. 내가 묵는 방 앞에서 카드키를 찾느라 핸드백 안을 5분이 넘게 뒤졌고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위로 쓰러졌다. 새벽에 화장을 지우려 일어나 텔레비전을 켰고 씻고 나오니 케이블 방송에서는 3년 전 히트한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핸드백 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하루 종일 들여다본 내 노트가 있었고 나는 노트를 펴 나와 우석이 그린 선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해만에 있을 때 숙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천천히 나 자신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들 때면 비로소 멀리서 내가 보였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굉장히 좋아했지 그 사람을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지, 같은 잊어버린 감정들이 멀리서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해만의 지도를 그리게 된 계기는 해만에 가겠다고 한 사촌동생 때문이었는데 그 동생은 결국엔 행선지를 바꿨고 해만에는 가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지도 위에는 몇 가지 표시가 보였는데 누굴 만나고 어디서 무얼 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고민을 하다 표시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은데 그중 하나는 책 읽는 남자가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한 바닷가 벤치며 또 다른 하나는…… 생각하다 눈이 감겨 노트를 덮고 옷을 벗어던지고 잠이 들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는데 꿈에서 서나라는 애가 나와 우리는 함께 잠을 자기로 한 사이예요 넷이서 껴안고 자기로 한 사이예요 하고 웃으며 말했다. 우석은 보이지 않았는데 꿈에서 나는 서나를 보며 왠지 아는 얼굴 같아 생각했다. 그리고 꿈은 사라졌고 나는 다음날 느지막이 눈을 뜰 때까지 계속 잠을 잤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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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내게 백가흠 방안에 어둠이 번지며 축축한 기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차며 퍼진다. 가스가 끊긴 지 두 달 전이다. 조금만 견디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이다. 내게는 겨울이 ‘가혹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겨울을 내 생에서 다시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나는 혹독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매일 나는 마음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마흔다섯 번째 겨울을 나는 강원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원룸 안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웬만한 추위를 견디는 데 불편이 없었지만, 며칠 전부터 엄청난 한파가 시작된 뒤로는 소름 끼치는 한기가 등에 붙어 나를 괴롭힌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별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서관은 따뜻하고 읽는다는 일거리가 있어서 좋다. 나는 휴대용 버너에 물을 올린다. 텐트 안에 습기가 차며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누워 밤이 시작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지루한 삶의 권태와 살이 갈라지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 사이 내 밤이 놓여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와 생의 존속을 위한 고통 사이 내 하루가 있다.1) 핸드폰은 정지된 지 몇 주가 지났다. 내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친구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는 일 빼면 전화기는 내게 불필요한 물건이었다. 평생 내가 맺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한동안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곰곰 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세 주전자가 울기 시작한다. 고요함이 물러간다. 가끔 이는 소란스러움이 내게는 퍽 소중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신다. 추위가 잠시 녹는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담아 꼭 껴안는다. 다른 하나는 침낭 안에 넣어 둔다. 얼어붙었던 하루의 고뇌가 녹는 것 같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배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허기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제는 한 끼라도 먹었으니, 어제, 오늘은 굶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굶었다. 끼니를 때우는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남은 돈으로 소주 두 병과 담배를 샀다. 마지막까지 나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견디기로 했다. 소주와 담배만큼은 쉬이 참을 수 없었다. 술이 없으면 한잠도 잘 수가 없고 담배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담배는 허기를 채워 주는 묘약이다. 소주는 내 안에서 끓고 있는
- 관리자
- 2026-03-01
서브리미널 안종성 여러 대의 카트가 교차 레일 지점을 충돌 없이 지나갔다. 높은 위치를 누비면서도 질서 정연히 움직일 줄 알았다. 출로에 다다를 때쯤 천천히 감속하더니 허공에 뚫린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윤무의 눈동자는 천장 주행 장치의 행렬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 장면으로부터 슬픈 기분을 느끼고는 습관처럼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붙잡아 두는가? 그러나 기록할 도구를 찾지 못한 윤무는 걷기로 했다.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벽과 바닥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흰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소리와 냄새, 온도, 어떤 예감마저 느낄 수 없었다. 윤무는 이곳을 알 것만 같았다. 얼마 전 필경사와 무한한 흰 공간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필경사는 권면에 들기 전 미리 가서 둘러볼 것을 권했다. 깨어날 때 부분적인 기억상실이 있을 테지만 영원히 망각한 게 아니라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권면 전의 삶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필경사는 뇌의 저장 용량을 컴퓨터 저장 단위로 환산하면 2.5페타바이트에 달함에도 인간의 상상력이 쉼 없이 활동하므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보관한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인간의 신체가 권면과 죽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기억 편람의 업로드가 끝나면 직계 가족이라 할지라도 오십 년 뒤에나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필경사는···. 구축 아파트에서 볼 법한 편복도를 지날 때 윤무는 재건축 직전의 폐허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호수마다 잡동사니가 나뒹굴거나 무가지가 쑤셔 박혀 있었다. 앞바퀴 없는 자전거도 복도를 비좁게 만들었다. 윤무는 그중 현관문이 열린 곳에 서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곳에는 회색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그 역시 깨어난 게 얼마 되지 않았는지 윤무에게 여러 번이나 같은 내용을 물었고─여기 당신의 집인가요? 다른 누가 또 살고 있습니까? 식사했습니까?─결국 이들은 임장하러 온 일행처럼 나란히 집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내부는 따로 특별한 게 없는 가정집이었다. 통유리에 붙은 주먹만 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휠을 돌려 보거나 싱크대 위에 널브러진 여러 가재도구를 들춰 보던 윤무는 커피믹스를 발견하고 남성을 향해 들어 보였다. 포장 비닐이 아침의 배경 앞에서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스스로 마토메라 밝힌 남성은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를 다니고 있지만, 서울 출장 경험이 잦아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안다고 말했다. 윤무는 소파에 앉은 마토메의 다부진 체격,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 외형만큼이나 독특한 건 마토메의 상태였다. 한눈에 보더라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내려다보는데 호흡이 불규칙했으며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렸다. 윤무와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업무차 여기에 온 건가요? 윤무는 낯에 익은 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무대를 오며 가며 보았을 조
- 관리자
- 2026-03-01
우주의 영향 아래 임수지 언젠가 우주에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함께 가 보자고 말한 적 있다. 거기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방을 보게 될 거야. 팅커벨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화장실에 다녀오면 문 앞에서 두꺼비가 널 지키고 있을 거야. 두꺼비들은 착하다. 두꺼비들은 두껍두껍 울지 않아. 걔들이 울면 동그란 구슬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정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주는 그곳은 꿈과 환상의 나라네, 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 기사는 나를 미림슈퍼 앞에 내려 주었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을 잠시 바라보다 미림슈퍼 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두 번 꺾어 집 앞에 서서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바다 냄새가 몸속 깊이 들어왔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 전화를 했는데도 할머니는 정말 내가 곧장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준 할머니의 짧은 파마머리가 멋대로 눌려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짜증을 조금 부리다가 곧 이불을 내어주었다. 날 밝을 때 오지, 뭐 하러 이 늦은 시간에 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보일러를 안 틀었나? 얼굴과 손발을 대충 씻고 작은방에 깔아 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불이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안방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워 물어볼까 고민하는 동안 내 체온에 맞춰 이불이 천천히 데워졌다. 이불을 코까지 덮은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데운 이불이 다시 나를 데우며 조금씩 따뜻해졌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오늘은 우주의 기일. 오늘 나는 우주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잠들 것이다. * 우주가 내 방에 머물 때 입던 품이 큰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는 잘 개켜 종이 가방에 넣고 옷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나는 그걸 다시 꺼내 본 적 없다. 우주가 쓰던 면도기나 낡은 양말 같은 것들도 진작 정리했다. 이제 내 방에 우주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용 기한이 지난 음식점 할인 쿠폰 같은, 우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쓸고 닦아도 계속 생겨나는 먼지처럼 어딘가에서 자꾸만 하나씩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그런 것들을 찾아낸 날이면 나는 자꾸만 골똘해졌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있다니. 그런데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2년이라는 시간은 하루이틀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사실은 하루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년이 흘렀다고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매트리스와 벽 사이에서 영화 티켓을 발견했다. 어쩌다 여기에 티켓이. 영화 제목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그날 관객은 다섯 명뿐이었다. 재미가 없는 영화인가. 영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으므로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옆에 앉은 우주에게 작게 말했다. 전세 낸 것 같고 좋은데
- 관리자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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