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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웃

  • 작성일 2013-07-01

 

 

  아름다운 이웃

 

 


  김혜진

 


 

 

아름다운-이웃-소설삽화

 

    아버지의 두 눈이 환해진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아버지가 웃는다. 까만 밤을 배경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낡은 상가 내부의 압력이 서서히 높아진다. 금방이라도 창문을 밀어내고 불길이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다. 아버지가 상가를 올려다본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주위가 소란스러워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간다. 뜨거운 상가가 또박또박 가까워진다. 사람들이 더 모여들기 전에, 소방차가 당도하고 화재가 진압되기 전에, 상가를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심장을 때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호흡을 가다듬은 아버지가 걸음을 떼고. 누군가 아버지를 불러 세운다.
    -이봐요, 아저씨! 기다려요, 일일구 불렀다고요!
    오층짜리 상가 입구에서 아버지가 뒤를 돌아본다. 한 남자가 컴컴한 공중으로 손바닥을 흔든다. 창문이 깨지거나 파편이 터져 나올까 봐 멀찌감치 물러선 채.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린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참, 신고는 귀신같단 말이지.
    침을 탁 뱉은 다음, 슬며시 웃는다. 그리고 뛰어 들어간다. 불길이 거세지면서 오층 유리창이 부서진다. 유리 조각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아버지의 까만 머리통이 추락하는 유리조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건물 속으로 사라진다. 일단은, 성공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사계절 내내 바라 왔던, 꿈 말이다.
    일 년 전 봄, 아버지는 방화 용의자로 연행되었다. 자정이 훨씬 넘은 무렵이었고 엄마가 수화기를 들었다.
    -거기 신방호 씨 댁이죠?
    엄마의 아래턱이 미세하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엄마는 오래 앓은 치통 탓으로 대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편이었지만, 더 힘껏 어금니를 깨무는 때가 있었다.
    -신방호가 아니라, 신만호 아닌가요?
    거의 입술을 떼지 않고 말했으므로, 엄마의 목소리는 냉랭하고 건조하게 느껴졌다. 수화기 밖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멀어졌다. 신방호인지, 신만호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신만호 씨네요. 어쨌든 당장 경찰서로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신만호 씨. 내 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어렵게 얻은 아들이 좀 잘살라는 의미에서 넘칠 만, 넓을 호 자를 이름으로 지었다. 신, 만, 호. 하고 천천히 발음해 보면 풍족하고 평화로운, 그래서 더 바랄 게 없는 뭔가가 연상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물속에서 대책 없이 허우적거리는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게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신만호 씨였다.
    아버지는 앙증맞은 철제 의자에 겨우 엉덩이를 걸쳐 놓고 있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송구한 뒷모습이었다. 엄마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으므로 내가
    -아버지.
    소곤거렸다. 아버지는 겁에 질린 토끼마냥 이쪽을 돌아보며
    -왔구나.
    꼴깍 침을 삼킨 뒤,
    -많이 놀랐지. 내가 몇 번이나 신,만,호,라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말이다. 이 양반들이…….
    얼굴을 구겼다. 딴에는 미소라고 지어 보인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연습이 더 필요해 보였다. 경찰은 불이 난 건물 주변을 서성거린 점, 주거 지역과 무관한 곳을 배회한 점, 화재를 꽤나 유심히 보고 있던 점 등으로 미뤄 아버지를 방화 용의자로 지목했다. ‘누군가의 아버지’거나 ‘누군가의 남편’으로밖에 정의할 수 없는 간략한 신분 때문에 의심받을 소지는 충분했다. 조사를 받는 내내 아버지는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가 한숨을 쉬며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다. 사실 그 이상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경찰관도 아버지의 됨됨이를 알아채는 눈치였으므로. 그러니까 모두 암묵적으로 ‘신만호 같은 사람은 절대 방화처럼 대범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어금니를 꼭꼭 깨물고 있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입술을 최소한으로만 벌린 채.
    -그래서 저 인간을 감옥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형사님?
    그럴 땐 엄마가 꽉 물고 있던 치통이 조금씩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경찰관은 측은한 눈길로 아버지를 보고, 그보다 더 측은한 눈길로 어머니를 본 다음 손을 내저었다.
    -가보세요. 다시는 화재현장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요. 그러니 괜히 의심이나 받는 거 아닙니까.
    엄마는 이를 꽉 닫았고, 아버지는 냉큼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래야지요. 그래야지요.
    그래야지요, 했지만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자주 화재현장을 들락거렸다. 소매 끝에 묻은 재나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운동화 코, 뜨거운 화기의 냄새 같은 것을 숨길 만큼 아버지는 치밀하고 전략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내 쪽에서 먼저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말하자면 낌새를 채고 있다는 경고 같은 거 말이다.     그날도 아버지는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살그머니 들어오던 참이었다. 아홉시 뉴스가 끝나 가는 중이었다.
    -아버지, 어디 갔다 와요?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아버지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어김없이 매캐한 냄새가 났다.
    -근데 무슨 냄새 안 나요?
    아버지는 콧구멍을 벌려 거실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곤
    -그러게, 냄새가 좀 나긴 나는구나.
    앞머리를 빗어 넘겼다. 바삭한 머리칼들이 후두두 부서지더니 앞머리가 순식간에 껑충해졌다.
    -머리가, 없어졌네. 또 불구경 했어요?
    아버지는 두꺼운 손바닥으로 허전한 머리칼을 쓸어 올린 다음 소파에 앉았다. 그런 다음 잠자코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곤 재빨리 두 눈을 화면 속에 담그는 거였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종일 텔레비전만 보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텔레비전이 종일 아버지를 시청한다고 해도 좋았다. 적어도 아버지의 수상쩍은 외출이 잦아지기 전까진. 수백 마리의 얼룩말들이 화면 밖으로 달려 나갔고 아나운서의 뽀얀 얼굴이 튀어나왔고 란제리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가 바짝 다가왔다. 아버지는 리모컨 쥔 손을 허공에 잠깐 멈추었다가 버튼을 눌렀다. 순간, 컴컴해진 브라운관 위로 아버지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떠올랐다.
    -네 엄마 이 치료를 해줄 거다.
    문득 아버지가 말했다. 정말 문득. 나는 새까만 브라운관 속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새까만 브라운관 속에서 우리 두 부자의 눈이 마주쳤다.
    -무슨 수로?
    -이 아버지만 아는 수가 있지.
    엄마는 매일 해질녘쯤 출근하고 자정이 넘으면 귀가했다. 십 년이 넘도록. 아버지와 나는 엄마가 어디서 일하는지 몰랐다. (그래도 모른다는 말은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다만 엄마가 비슷한 종류의 일자리를 전전한다는 것과 그날그날 싸오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뿐이었다. 식당 주인들이 메인 메뉴를 싸주는 경우는 전무했으므로 아버지와 나는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먹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내가
    -이 깍두기는 약간 비리네.
    운을 떼면 아버지가
    -이건 분명 횟집이다.
    알은체를 하는 거였다. 내가
    -엄마 설렁탕집에서 일한다던데?
    반박하면 아버지는
    -네 엄마 설렁탕집에서 전복 집으로 옮긴 지 꽤 됐는데, 몰랐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밥을 밀어 넣는 것이었다. 동시에, 힘껏,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두 남자가 힘차게 밥알을 씹을 때마다, 우적우적하는     소리가 텅 빈 거실을 가득 채웠다. 몇 년째 물렁한 음식만 겨우 삼키는 엄마의 사정 따윈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치통은 정말 오래된 것이었으니까.
    어느 날 차가운 물을 마시다가 어금니가 시린 것을 알게 된 엄마는 가벼운 풍치겠지 했다. 부디 풍치였으면 했으므로, 통증이 무사히 지나가기만 빌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하는 사람은 엄마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가 시렸고, 나중엔 공기만 들이마셔도 부르르 몸이 떨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를 악물었다. 컴컴한 입 속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으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치과를 찾았을 땐 더 이상 손쓸 수 없게 된 뒤였다. 의사는 어금니를 몽땅 뽑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고, 엄마는 의사의 말보다 말도 안 되는 치료비용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치통을 참는다는 건, 몇 천 만원의 돈을 아낀다는 의미와 동일했다. 때문에 엄마는 몇 년째 몇 천만 원가량의 돈을 퉁퉁 부은 잇몸으로 꽉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몰라도 되는 일이었다. 비용을 대주지 못할 바에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걸, 우리 부자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아버지가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하고 있었다. 마치 엄마의 치통을 내내 염려한 사람처럼.
    -돈이 엄청 많이 들 텐데.
    대책 없이 늘어지는 아버지의 푸념을 딱 잘라내자, 아버지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한 곳으로 훔치며 소곤거렸다.
    -너 말이다. 우리나라엔 이상한 화재보험이 있다는 거 아냐.
    나는 리모컨을 집어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의 황당무계한 계획들은 지난 이십 사년 간 들은 것으로도 충분했다. 브라운관 위로 보랏빛 브래지어가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전에, 아버지가 다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다시금 우리 부자의 얼굴이 시커먼 화면 속에 나란히 떠올랐다.
    -그런 게 있다니까. 그게 신체, 신체, 특약 뭐 그런 건데.
    아버지는 고요한 공기 중을 노려보며 입술을 움직이다가 그만 허탈하게 웃었다. 뭔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이번에도 머릿속에서 단어를 완전히 놓쳐버린 모양이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힘줘 말하고 그런 게 있다, 다짐하듯 선을 그었다.
    -그게 뭔데요?
    -이번엔 틀림없다. 이건 국가에서 보장하는 거니까 말이다.
    아버지는 꺼진 화면 속에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뛰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아버지에게 보험은 갑자기 사고가 일어날 때를 대비하는 목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고에 뛰어들어야 하는 기회였던 셈이다. 불이 난 곳을 발견하고, 용감하게 뛰어 들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피해를 입고, 무고한 화재 피해자가 되는 것. 아버지는
    -어떠냐? 보험료 한 푼 안 내고도 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는 거야.
    했지만,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미리 예고하고 일어나는 화재는 하나도 없을 테니까.
    아버지는 화재현장을 찾기 위해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종일 뉴스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앞을 지켰고, 화재, 불, 방화, 소방차 출동, 등의 검색어를     번갈아 넣으며 트위터를 뒤져댔다. 인터넷으로 화재 관련 정보를 모으고, 시장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건 기본이었다. 인근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소방차 출동했습니까?
    선수를 치기도 했다. 소방관이 무슨 출동이요, 되물으면 아무 일이 없다는 거였고, 곧 출동합니다, 하면 인근에 불이 났다는 뜻이니까. 아버지는 아주 희미한 사이렌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세수를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아버지는 신속하게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별 다른 소득 없이 돌아오기 일쑤였지만, 지나치게 열심이었으므로 나는 머잖아 아버지의 뜀박질이 끝날 거라 예상했다. 커다란 호수에서 평생을 허우적거려도 절대 수영을 배울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는 신만호 씨였으니까. 더구나 아버지는 평생 같은 꿈을 일 년 이상 꾼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뭐든 쉽게 꿈꾸고, 그보다 더 쉽게 포기해 버렸다. 그런 것도 재능이라면, 아버지는 평생 절망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절망을 배우는 것보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는 편이 훨씬 간편하고 쉬웠으니까.
    그리고 정확히 사계절이 지나고, 아버지는 텔레비전 속에서 발견되었다. 한밤이었고 퇴근한 엄마가 텔레비전 앞에서 웃옷을 벗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한쪽 손으로 턱을 붙잡고 골똘히 화면 속을 노려보다가 나를 불렀다.
    -저거, 네 아빠 아니니?
    나는 화면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정말,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오층짜리 낡은 상가에서 치솟은 불길이 서서히 잦아드는 중이었고, 소방차가 막바지 차가운 물을 쏟아 붓고 있었다. 잠옷 차림으로 나온 동네 주민들의 머리통이 화면 바닥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어. 진짜네.
    엄마는 한쪽 어깨에 웃옷을 걸친 채, 화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밤이었고 불길 탓으로 화면 속은 울긋불긋 했다. 아버지는 소방관에게 양쪽 팔을 붙잡힌 채, 오층 창문가에 서 있었다. 멀리서 봐도 소방관이 아버지를 만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보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한 가장의 애처로운 모습으로 읽힐 법했지만, 진짜 아내와 자식은 텔레비전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뭐 하는 짓일까. 저 양반이.
    입술 새에서 빠져나온 치통이 거실 바닥에 고요히 쌓이는 것 같았다. 나는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여차하면 텔레비전을 끌 요량이었지만 때마침 아나운서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고 짤막한 멘트가 이어졌다. 이번 화재로 오천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있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상 김현주 기자였습니다. 뭐 그런 정리였다. 오천만 원의 재산 피해를 입고, 몸이 성한 것과 몸이 성하지 않은 것 중 다행한 일은 어느 쪽일까. 어쨌건 몸이 성하면 아버지가 말한 그 복잡한 보험의 수혜자가 되긴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금이라도 다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화면이 바뀌기 전, 카메라가 불이 난 건물을 정면으로 잡았다. 아주 잠깐, 아버지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아버지는 낡은 점퍼를 얼굴에 친친 동여매고 있었는데, 이미 앞머리가 반 뼘쯤 잘려 나가고 없었다. 색이 바란 감색 스웨터는 시커멓게 그을린 채였다. 틀림없는 아버지였다.
    -미치려면 곱게 미칠 것이지.
    엄마는 화면 속을 묵묵히 들여다보다 몸을 일으켰다. 입이 마음대로 벌어지지 않는지, 발음이 불지 않은 콩처럼 딱딱했다. 나는 엄마의 입 속을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단단하고 성난 콩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 콩들을 깨끗하게 제거하기 위해선, 아버지가 뛰어들어야만 했다. 불길이 치솟기 전에, 미처 불길이 다 잡히기 전에. 말하자면 그건 완벽에 가까운 타이밍이어야 했다.
    -그래서 보험은 타이밍인 거다.
    아버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한 가지 생각에만 골몰했다. 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보험료를 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버지는 뛰고 또 뛰고, 또 뛰었다. 힘껏 달려가면 소방차가 화재현장을 떡하니 막고 있기 일쑤였고, 어디서 나왔는지 잔뜩 몰려나온 사람들 탓으로 불이 난 건물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때가 많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답지 않게, 좀처럼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매일 늦은 아침을 먹으며
    -첫술에 배부른 게 있겠냐.
    중얼거렸고
    -밥도 이렇게 많이 먹어야 배가 부른데.
    두 볼 가득 밥과 반찬을 밀어 넣었다. 내가 차라리 어디 일이라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소곤거리면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느 천 년에 일해서 이빨을 고치겠냐.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다시금, 불이 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무사히 화재현장으로 진입할 수 있기를, 그래서 건물주가 소유한 보험의 수혜를 조금 나눠가질 수 있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치통을 말끔히 해결할 수만 있다면. 나는 잠자코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거나 줄이며 밥알을 씹어댔다. 아버지가 작은 화재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그건 내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어떤 타이밍을 잡은 것이었다. 아버지 평생 가장 운 좋은 순간이라 해도 좋았다. 불은 집에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상가에서 시작되었고, 아버지는 정확한 순간에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화재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아버지가 드디어 새 봄을 맞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젖은 수건으로 입을 막은 뒤,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뿌연 연기가 계단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참이었고 건물 내부의 소음이 조금씩 격렬해지던 차였다.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므로 아버지는 두려움 없이, 망설임도 없이, 건물 입구로 뛰어들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의 계단을 올랐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난간을 붙잡고 뛰어 내려오던 사내가 아버지와 충돌했다.
    -나가요! 불났다고요. 아저씨.
    그가 아버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글쎄. 나도 압니다.
    아버지는 난간을 붙잡고 버텼다. 사람들이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아버지는 벽에 바짝 붙어 계단을 올랐다. 아, 정말 덥구나, 중얼거리면서. 지하는 안마소, 일층은 휴대폰 가게, 이층은 병원, 삼층부터는 고시원이었다. 아버지는 문이 잠긴 일층과 이층을 지나 삼층에 닿았다. 내친 김에 사층을 지나 오층까지 오른 것은 때맞춰 탈출하기 용이하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뽀얀 연기가 차오르는 중이었고 아버지는 계단을 오르다 자주 눈을 깜빡였다. 눈을 비빌 때마다 자꾸만 눈물이 삐져나왔다.
아버지는 한참 만에 오층에 닿았다. 사층에서 시작한 불은 삼층과 오층으로 번져 가는 중이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비상구를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시원 입구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다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 어깨에 이리저리 치였다. 누군가 여기, 여기! 소리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갔다. 아버지는 차곡차곡 밀려나 더운 벽에 바짝 등을 기댔다. 사람들이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갈 때까지.
    이윽고 아버지는 홀로 남았다. 비명이나 고함이 사라진 건물 내부는 부서지고 무너지는 진동으로 들썩거렸다. 덜컥 겁이 난 것은 그때였다.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속수무책 벽에 등을 기댄 채, 아버지가 두 눈을 깜빡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요란하게 창문이 깨지더니 사이렌 소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곧장 두 명의 소방관이 들이닥쳤다.
    -거기, 누구 계세요? 어디 계십니까?
    두 개의 랜턴이 동그랗게 연기를 뚫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고개를 반짝 쳐들었다.
    -아, 이건 좀 이른데…….
    했던 것은 또다시 어떤 타이밍, 때문이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 때쯤 소방관이 들이닥쳤고, 아버지의 염려는 이러다 불이 너무 일찍 꺼질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쪽으로 옮겨 붙었다. 기회란 두 번 세 번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몇 번의 계절을 흘려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동그란 랜턴이 무시로 희뿌연 공중을 뚫어놓는 통에 아버지는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되도록 소방관에게 들키지 않게 살며시. 아버지는 한 걸음, 한 걸음 고시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신속한 출동은 소방관의 투철한 직업의식 때문이었지만 아버지는 그게 못마땅했다. 조금 더 꾸물거렸으면. 그러니까 소방관이 커피 한 잔만 더 홀짝였어도, 담배 한 개비만 더 피웠어도, 완벽한 타이밍이 될 뻔했으니까. 아버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명의 소방관을 힘껏 노려본 다음,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환한 랜턴이 뚜벅뚜벅 아버지의 뒤를 쫓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급했다. 네 엄마 이 치료를 해줄 거다, 하고 다짐을 둔 일이니까. 이를 치료하려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버텨야 했다.
    아버지는 고시원 입구를 통과해 좁은 복도로 들어섰다. 뿌연 연기 탓에 사방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는 뜨거운 문고리에 부딪히거나 비스듬히 세워 놓은 행거에 걸려 휘청거렸지만 쉬지 않고 걸었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발이 걸리기 직전까지. 한 발을 떼고 또 한 발을 떼려던 참이었고, 공중을 가르던 아버지의 발이 정지했다. 뭔가에 발이 걸렸다 생각한 아버지가 요란하게 발길질을 해댔고 좀처럼 털어 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닥이었다. 아버지가 우뚝 멈췄다.
    -거기, 누구 있어요?
    대답이 건너온 건 한참 만이었다.
    -절 좀 도와주시라요.
    아버지의 발을 잡은 건 손이었다. 여자의 두 손.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팔을 뻗었고, 보드랍고 긴 손가락이 허겁지겁 아버지의 손을 찾아 쥐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폈다. 동그란 랜턴이 뚜벅뚜벅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조금만 기다리면 소방관이 올 거요.
    저기, 하면서 기침이 터졌고 미안, 하면서 다시 기침이 터져 나왔으므로 아버지의 말은 자주 끊어졌다. 여자의 팔이나 다리를 밟지 않도록, 아버지가 보폭을 넓혀 여자를 넘어서려 했을 때, 여자가 다시 바지 자락을 움켜쥐었다. 아까보다 더 센 악력으로.
    -도와주시라요.
    아버지의 한쪽 발이 공중에 멈췄고, 균형을 잃으면서 여자의 배를 헛디뎠다. 여자가 기침을 토해 냈고 당황한 아버지의 두 발이 여자의 몸 여기저기를 밟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버지는 미안, 하고 콜록거렸고 합니다, 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금방이라도 소방관들이 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소방차가 너무 신속하게 도착했고, 사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생각만큼 신속하게 번지지 않았다. 유독 가스라도 빡빡하게 차올라 준다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 있을 텐데. 건물은 덥고 답답할 뿐, 좀처럼 아버지를 깔끔하게 기절시켜 주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까지. 아버지는
    -이봐요. 이봐요. 아가씨.
    소곤거렸다. 소방관들의 고함소리가 바짝 다가왔다. 한참 만에 여자가 앓는 소리를 냈고 아버지가 여자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저기로 가면, 출구요. 소방관들도 있고, 저기, 불빛 보이지요?
    아버지가 희뿌연 공중을 검지로 푹 찔렀다. 그리고 재빨리
    -내 이야기는 할 필요 없어요. 나는 알아서 잘 나가니까.
    주의를 주었다. 여자는 구역질이 솟는 듯, 탈출 말고 오 백, 팔 호, 하면서 콜록거렸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뭐요? 아버지가 되물었고 여자가 다시 오 백, 팔 호, 했다. 오백팔 호로 함께 가지 않으면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는 경고처럼, 여자는 필사적인 데가 있었다.
    -내 전붑니다. 그곳에 내 전부가 있습네다.
    여자는 울먹였다. 그러니까 문제는, 아직 모든 게 너무 멀쩡하다는 사실이었다. 건물도 아버지도, 여자도. 탈출은 여전히 너무 일렀다. 이대로 건물을 빠져나간다면 보험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게 뻔했다. 가봅시다, 그렇게 말한 건, 순전히 건물 안에 더 머물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기 속에서 모든 방은 오백팔 호처럼 보였다. 모든 방이 오백팔 호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자는 이쪽이야요, 했다가 이쪽이 아니야요, 했다가 내 전부입니다, 훌쩍거렸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만한 좁은 문을 열면, 침대가 있었고, 책상이 있었고, 옷장이 있었다. 그러니까 똑같은 규격과 구조로 늘어선 방들 중, 여자의 방을 골라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뭘 찾는다고요?
    서너 개의 방을 차례로 둘러본 다음, 아버지가 소리쳤다. 공기가 차츰 뜨거워졌고, 이전보다 자주 기침이 터졌다. 매운 연기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풀었다. 뭔가 깨지고 터질 때마다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덜컥 겁이 났고, 곧바로 안도했다. 어쨌거나 건물은 부지런히 타오르고 있었고, 아버지는 여전히 건물 안에 있었으니까. 여자는
    -거기 내 가방이 있습네다. 가방 구해야 합니다.
    소리쳤다. 꼭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급박한 화재현장 속에서 구해야 하는 물건치고는 너무 사소한 게 아닌가. 아버지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아니, 불이 났는데 사람이 아니면 개나 고양이, 하다못해 금붙이나 집문서 땅문서 같은 것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둑어둑한 연기 속에서 여자의 형체는 희미하게 나타났다가 연기 속에 곧장 파묻혔다. 아버지는 잠자코
    -아, 가방이요?
    했지만 힘이 쭉 빠졌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고작 가방 하나 때문에 자꾸 건물 안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가방은 어느 방에나 있고, 아버지가 가방을 찾아 나올 때마다 여자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가방이 아니라고. 허리를 굽히고 가방을 더듬고, 기침을 쏟아내고 눈물을 닦는 여자의 실루엣 때문에 아버지는 다음 방을, 또 다음 방을 열어 보며 고시원의 더 깊숙한 곳으로 내몰렸다.
    그러니까 그때, 여자가 찾던 가방 속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날 수 있는 최소한의 옷가지와 사진 몇 장, 나달나달한 봉투 속에 보관된 오만 원 권 세 장과 여권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찾아 헤맸던 가방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고 처량한 구석이 있었지만, (어쨌건 그때는 몰랐으므로) 아버지는 열심히 가방을 찾아 헤맸다. 오층으로 진입한 두 명의 소방관이 진지하게 철수를 고려하던 순간까지도.
-    그건 제 전부입니다.
    여자는 엄마와 내게도 똑같이 말했다. 아버지에게 말한 것처럼.
    -가방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건 미처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인사 같았다. 어쨌건 가방을 찾아 준 것은 아버지였으니까 엄마와 내가 들어야 할 인사는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는 한참 만에 여자의 가방을 찾았고, 여자는 손을 뻗어 가방 안을 더듬었다.
    -맞습네다. 맞습네다.
    여자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커졌고, 한꺼번에 많은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여자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여자는 꿈쩍 하지 않았다. 자욱한 바닥에 깔린 여자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아, 이런 게 아니었는데.
    중얼거리던 잠깐, 아버지는 별수 없이 꿈을 접어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힘껏 희뿌연 사방으로 고함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버지는 뜨거운 연기를 들이켜고 여기요! 했고, 기침을 쏟으면서 도와줘요! 했다. 한참 만에 동그란 랜턴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소방관이었다. 그는 고시원 가장 안쪽 복도에서 두 사람을 발견했다고 했다. 처음엔 화재를 틈타 귀중품을 훔치는 좀도둑인 줄로만 알았다고, 소방관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상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구조된 사람은 아버지였다. 사다리차가 올라왔고 아버지는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자신은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떼를 썼다. 아직도 모든 게 너무 이르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여자가 안전하게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간 뒤에도, 아버지는 좀처럼 건물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깨진 오층 창문 앞에서 아버지는 오래도록 소방관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창문을 올려다보는 동안. 엄마와 내가 브라운관 너머로 아버지를 시청하는 동안.
    결국 소방관이 힘으로 아버지를 제압했고, 아버지가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지상으로 안전하게 내려섬과 동시에 박수가 터졌다고 소방관이 말했다. 채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아버지는 쓰러지고 말았지만. 때문에 어둔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갈채 소리를 아버지는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방관은
    -그래도 요즘엔 다른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분이 많지 않으니까요.
    나와 눈을 맞췄다. 그때 소방관의 표정은 뭐랄까. 아버지를 좀 자랑스러워 여겨라, 그런 강요 같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엄마는 어금니를 꽉 닫은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엄마와 내 곁을 서성이던 여자가
    -그분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고맙습네다.
    거들었다. 생경한 말씨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어지간히 고마운 모양이라고 중얼거렸다. 도우미들이 무대로 올라와 꽃다발을 건넸다. 엄마 하나. 나 하나. 한 팔을 완전히 구부려 안아야 할 만큼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무대 아래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우리를 올려다보는 눈빛들이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따뜻해서, 어떻게든 웃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엄마도 나도 그런 시선에는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어금니를 꽉 다문 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텔레비전에 나온다던데.
    내가 소곤거렸고 엄마가 입을 조금만 벌려 되물었다.
    -그래? 그럼 아무래도 좀 웃는 게 좋을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엄마가 입 꼬리를 억지로 말아 올렸고 덕분에 얼굴이 애매하게 구겨졌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힘겹게 웃는 우리 두 모자를 무대에 세워두고 사회자가 준비한 멘트를 읽어 내려갔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타인의 생명을 구한 신만호 씨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뭐 그렇게 시작하는 식상하고 진부한 멘트였다. 길고 지루한 말이 이어지는 동안 엄마는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고
    -일 가야 하는데.
    중얼거렸다. 나는
    -좋은 일인데, 오늘은 사장도 좀 봐주지 않을까.
    소곤거렸다.
    -그런 게 어딨니. 일이면 매일 가야지.
    그리고 사회자가 목소리에 힘을 실어 여러분! 하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마지막 대사인 모양이었다.
    -아직 쾌차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주인공을 모시겠습니다. 신만호 씨!
    무대 위에서, 엄마와 내 눈이 마주쳤다. 쏟아지는 박수소리로 작은 구민회관이 들썩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등장해야 하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 마라, 갈 테니까. 두 번 세 번 다짐을 하고서도 또 잊은 모양이었다.
    -잊어버렸나.
    내가 중얼거렸고
    -몰라. 난 일이나 갈란다.
    엄마가 안고 있던 꽃다발을 내게 건넸다. 사회자가 몇 번이고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아버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박수가 터졌고,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아무래도 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무대 아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엄마가 막 무대를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마이크를 끈 사회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전화라도 한 통화 해보는 게 어떨까요. 저희도 어렵게 준비한 행사라서 말입니다.
    엄마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내가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만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숨이 턱까지 찬 듯 호흡이 가빴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버지. 왜 안 와요?
    -어딜?
    -구민회관. 말했잖아요.
    -지, 지금, 이, 일이, 좀, 있어서 마, 말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쁜 호흡을 따라 울렁거렸다.
    -다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다들 기다린다니까.
    다그쳐도 마찬가지였다.
    -글쎄. 지, 지금은 아, 안 돼.
    -어차피 엄마 이빨도 날아갔잖아.
    나는 엄마를 힐끔거리며 소곤거렸다. 엄마는 구민회관에 모인 사람들을 마주보며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이대로 치통이 계속된다면, 웃는 법도 잊어버리게 될 거였다. 아버지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걱정 마라. 내가 네 엄마 이 치료를 해줄 거니까. 넌 도대체 아버지 말을 뭘로 듣는 거냐.
    어떻게? 내가 물었고, 아버지가 보험으로, 확답을 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재차 걸어 봐도 소용없었다. 더는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까.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꽃다발을 주워들었다. 방법이 없었다.
    결국 엄마는 아버지 대신 아름다운 이웃상을 받았다. 상이라지만 싸구려 벨벳 케이스에 꽂힌 상장 하나와 약소한 상금이 다였다. 상장과 봉투까지 안아들고 엄마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웃으려고 노력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꽃다발을 안은 엄마와 내가 나란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함께, 동시에, 웃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축사가 이어졌고, 사진사가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거 참 활짝 좀 웃으시라니까요!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아버지도 없는데.
    투덜거렸고, 엄마가
    -어쩌겠니. 좀 웃어 봐라.
    모범을 보였다. 사진사는 뭐가 못마땅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손으로 입가를 잡아당기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무래도 엄마의 표정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웃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 같았다.
    마침내 사진사가
    -자, 지금 좋습니다. 찍습니다. 하나, 두울, 세엣!
셔터를 눌렀다. 펄컥! 펄컥! 펄컥! 환한 빛이 쏟아졌다. 슬그머니 열린 엄마의 깜깜한 입 속에서, 치켜뜬 내 두 눈 속에서, 플래시가 거푸 터졌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좋았을까. 나는 낯선 동네를 헤매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불이 난 건물 속으로 용감하기 뛰어들기 직전, 아버지가 이쪽을 보며 슬그머니 웃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눈꺼풀에 힘을 주고 볼 근육을 잡아당겼다. 세 번의 플래시가 지나가는 동안 묵묵히. 유심히 살펴보면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겠지만, 다들 웃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엄마도 나도. 그리고 아버지도.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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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들 김혜진 정해는 남편 영기에게 가져다줄 전복죽을 포장해 오는 길에 그 애를 봤다. 추운 날이었다. 한겨울은 아니지만 제법 겨울이라고 할 만한 공기가 아파트 단지 내의 풍경을 빠르게 바꿔 놓는 중이었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는 여름내 노인들이 점거하다시피 애용하던 팔각 정자에 누군가 두고 간 인형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찌그러진 음료 캔, 지저분한 돗자리, 마른 낙엽 같은 것들과 나란히 놓인 아이의 모습이 이상한 방식으로 시선을 끌었다. 그건 날씨에 비해 얇은 아이의 옷차림 탓인지도, 어쩐지 울적해 보이는 표정 탓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건 정해의 성격 탓이 컸다. 그녀는 그런 사람을,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해는 아이에게 다가갔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 뭐 하니, 여기서? 아이의 자그마한 코가 빨갰다. 동생 기다려요. 동생이 어디 있는데? 집에요. 집에? 그럼 집에 있지 왜 나와서 기다리니?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을 그녀는 알아보았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단속하듯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이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어렸다. 그건 그녀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완강하게 입을 다문 아이를 간신히 관리사무소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전복죽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정해는 냄비에 죽을 데우며 (남편 영기는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 것을 싫어했다) 그 아이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냄비를 태울 뻔했다. 애가 혼자 정자에 있었다고? 이 날씨에? 며칠 전, 대장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영기는 숟가락으로 죽을 맥없이 휘젓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평생 설비업자로 일한 그는 재주에 비해 늘 아쉬운 대우를 받았지만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정해는 바로 그 점(소박함이라고 해야 할지, 아둔함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이 그의 삶을 고만고만하게 만들었다고, 더 높이 도약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여겼지만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뭔가를 수리하고 복구하고 바로잡는 것에서 그가 큰 희열을 느낀다는 걸 알았으니까.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가 그런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맞다. 그에겐 뭐든 고칠 수 있다는 자신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은 그에게선 이제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해는 그가 잃어 가고 있는 것이 다만 자신감 하나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니까. 그렇게 대답하며 정해는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날은 저물어 있었다. 정해는 아이가 입고 있던 얇은 바지와 바지 아래로 드러난 발목, 구멍이 숭숭 뚫린 슬리퍼 같은 것들을 떠올렸고 미안함을 느꼈다. 아이를 떠넘기듯 관리사무소에 맡기고 돌아올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뭔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들어서였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봐. 누가 와서 애를 데려갔는지. 영기가 재촉했고 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곧바로 연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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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진
  •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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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맨

비눗방울 맨 김혜진 미안하다는 말은 사실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손이 시렸고 나중엔 손끝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계속 내가 케이스를 들고 다닌 탓이었다. 그 안에 철수가 있었다. 손잡이가 망가지기 직전이어서 무게 중심은 자꾸 어긋났다. 그래도 더러운 바닥에 케이스를 내려놓고 싶진 않았다. 나는 골목 안쪽을 힐끔거렸다. 거리를 메운 사람들 탓에 계속 떠밀리다가 우리는 어느새 이런 뒷골목에 서 있게 된 거였다. 일단은 근처 카페로 들어가 계속 이야기하기로 했다. 카페 안은 사람이 많아서 몹시 시끄러웠다. 나는 케이스를 테이블 아래로 밀어 넣고 잠깐 안을 들여다봤다. 철수와 눈이 마주쳤는데 녀석이 기습적으로 큰 소리를 냈다. 내보내 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케이스를 벽에 바짝 붙인 다음 가볍게 두 번 찼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였다. 그게 무슨 뜻이야? 커피 두 잔을 시켜와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네가 물었다. 뭐가? 커피는 뜨거운 데다 지독하게 썼다. 형편없는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 쥐고 있자니 겨우 손을 녹이려고 만 원도 넘는 돈을 써버렸다는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떻게든 너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나는 반짝이는 커피 머신 앞을 지키는 종업원들만 노려봤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뜻이냐고? 너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미 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기어이 확인하려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오기, 집착. 혹은 끈기나 집념. 어쨌든 고마움이나 미안함 같은 따뜻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혼잣말을 시커먼 커피 안으로 하나씩 던져 넣으며 침묵을 지켰다. 부주의하게 입을 열고 어쨌든 빌미가 될 만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카페 안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커다란 출입문이 열리면 냉랭한 바람과 함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와 말소리들이 밀려들었다. 똑같은 조끼와 점퍼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고 전단지와 홍보물을 쥔 손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고 자리를 마련하며 소란스럽게 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더 말할 기분이 안 났다. 나는 여기저기 널린 전단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골똘히 그걸 읽는 척했다. 탄압, 졸속, 규탄. 숨바꼭질하듯 그런 단어들 사이로 숨었다가 잠깐씩 너를 훔쳐보는 거였다. 내가 말했지? 지금 얘는 내가 알던 걔가 아니라고. 원래대로 해놓으면 데려갈게. 그땐 진짜 데려가겠다고. 너는 답답하다는 듯 검지로 테이블 아래를 가리켰다. 모든 게 계산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그 지난번에도, 더 지난번에도 너는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빨갛게 충혈이 된 네 눈을 잠깐 확인했다. 어쩌면 밤새 잠 안 자고 나와 철수를 대면했을 때의 대응 매뉴얼 같은 걸 치밀하게 준비했을지도 몰랐다. 수 쓰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연애가 잘 되고 있는 모양이네. 너는 잠시만 철수를 맡아 달라고 했었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만. 그러다가 막상 철수를 데려오던 날에 석 달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 김혜진
  •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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