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응답
- 작성일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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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응답*
― 한강과 90년대 문학의 (비)정치적 감수성에 관하여
최진석
1. 감수 능력과 문학
2024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롬의 콘서트홀에서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그 주인공은 한국의 소설가 한강.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여러 작품 중 『소년이 온다』를 대표적으로 거론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평가했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과 고통의 참화를 세계 시민들의 보편적 공감으로 끌어올린 문학적 성취에 관해서는 앞으로 끊임없이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직전에 벌어진 사건, 즉 광주의 역사로부터 44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계엄이 재연되었다는 점에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사태의 정치·사회적 후폭풍에 대해서는 일단 말을 아끼자. 지금은 한강의 문학적 성취가, 더 정확히 말해 ‘노벨상 수상’보다는 작품 세계를 통해 표현해 낸 ‘문학적 울림’으로서의 성취가 어떤 토대에서 나온 것인지, 작가 개인의 재능을 넘어서 어떤 시대사적 배경으로부터 발아한 것인지 묻는 것이 더욱 유익할 성싶다. 만일 그것이 작가의 개인적 재능에 전적으로 기인했다면 우리는 그에 더 보탤 말이 없다. 하지만 이로부터 한강으로 상징되는 한국문학의 ‘높이’나 ‘폭’을 운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뿌리를 내린 문화적 감수성의 토양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감수성이란 묻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것을 가시화하는 여러 지표를 선택하고 분류하는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감수성을 정의하고 실체로서 규정짓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실증성이 신뢰의 유일한 담보물이 되는 우리 시대에 주관성과 모호성으로 둘러싸인 이 감각의 구성물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어쩌면 감수성이란 실물을 통한 증명의 문제라기보다 그에 다가서는 자가 감수(感受)하여 공명함으로써 받아들여야 할 경험은 아닐까?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글쓰기를 실천해 온 한강과 그의 시대는 이 같은 공감적 경험의 지평선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70년대생 작가들은 9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문학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1970년생 한강의 경우 93년에 시로, 94년에 소설로 등단했다. 그럼, 90년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알다시피, 그 시기는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진 직후이며, 민족‧민중문학으로 대변되던 이전의 흐름과 ‘다른’ 의미에서의 새로운 문학이 모습을 드러내던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명시적인 사회‧정치적 의제가 문학장에서 빠져나가고 보다 자유롭고 유쾌한 감성으로 충전된 ‘문화의 시대’가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말이었다.1) ‘서태지와 아이들’,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 등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90년대의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감성을 사로잡던 표제들이었다. 나아가 우리는 흔히 그 시절을 ‘탈정치화된 문화’ 혹은 ‘비정치적 문학’의 시대로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탈정치’ 혹은 ‘비정치’가 갖는 정치적 감수성일지 모른다.
사전적 의미로 감수성이란 ‘외적 자극을 받아들이거나 느끼는 성질’을 말한다. 기초적인 생물학적 본능이나 생리에 준하는 정의일 것이다. 이를 보다 확장하여 말한다면, 외부로부터 전달된 기호에 반응하고 변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 부를 만하다. 산책로를 거닐던 화가가 문득 눈에 든 주변의 이미지에 착안하여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든지, 아무 노랫말이나 흥얼거리던 음악가가 돌연 자신만의 곡조를 지어내는 것도 여기 포함될 법하다. 또는, 한가롭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갑작스레 머릿속을 파고든 한두 구절에 깜짝 놀라 수첩 위에 써 내리는 장면을 연상해도 좋다. 자극과 반응이라는 생리학적 묘사로는 충족되지 않는, 재현보다는 표현이라는 문화적 언명으로 더욱 정확히 기술되는, 수신한 것의 수십 배 이상으로 새로운 발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 사건. 감수성이란, 따라서 ‘감수 능력’이라 불러야 옳다.2)
굳이 ‘능력’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감수성이 외적 세계의 변화를 막연히 수용하는 현상에 머물지 않고 내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반응의 향방을 탐색하고 행로를 결정해 가는 능동적 힘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감수 능력에 초점을 맞춰 70년대생 90년대 작가들의 문학을 다시 조명한다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비정치적 문화 이상의 다른 어떤 것,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이 아닐까?3) 이 글은 그에 관한 탐색의 출발점에 있다.
2. 김승옥과 ‘감수성의 혁명’
한국문학사에서 감수성에 관해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예의 ‘감수성의 혁명’을 둘러싼 문단의 신화이다. 이 세련되고 멋진 단어 조합은 1966년 비평가 유종호가 김승옥의 소설에 관해 쓴 글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1941년생인 김승옥이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것은 1962년이었다. 대학 2학년생이 입대 전 써 본 글이 문예 공모전에 덜컥 당선되었던 것은 당시에도 큰 화젯거리였다. 청년 김승옥은 곧이어 김현, 김치수, 염무웅, 최하림, 서정인 등과 동인지 《산문시대》를 펴냈고, 여기에 「건(乾)」, 「환상수첩」,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을 발표한다. 마침내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로 《사상계》가 주관하는 제10회 동인문학상까지 휩쓸었으니 가히 소년 급제가 아닐 수 없다. 유종호의 비평은 이처럼 승승장구하는 청년 작가 김승옥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짧은 논평에 해당된다.
유종호에 따르면, 한국의 현대문학은 “지적 체험을 감각적 정감적 체험과 마찬가지로 직접적 구체적으로 표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오랫동안 고대해 왔다.4) 지적인 통찰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 곧 인식과 감각의 일치가 한국문학의 오랜 과제였으며, 김승옥이 드디어 이 “난문제에 신선한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환호가 긍정만은 아니다. 김승옥의 성취를 “평범한 일상의 저변에서 경이를 조성하면서 환상과 현실을 희한하게 조화시키는 허구 조성 능력”이라 상찬하면서도, 이는 결국 “참신한 언어 재능에 의존”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즉, 김승옥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감수성”이란 “언어 재능이 성취한 혁신”으로 한정되어 있다(425).
후일 ‘문지’ 사단으로 약칭되는 김승옥의 동년배 비평가들, 김현과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 등은 정치적으로는 ‘4‧19세대’로 불리고, 문화적으로는 ‘한글세대’라 불렸다. 전자는 5‧16으로 인해 짧게 지속되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의 경험과 그것을 학생 신분으로 이루었다는 자긍심을 채워 주었고, 후자는 처음부터 모국어로 문학적 글쓰기의 터전을 닦았다는 점에서 한국어 문학의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이런 점들이 김승옥으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지적 통찰을 생동하는 언어적 감각 속에 녹여 내도록 만들었을 법하다. 그것은 한글세대가 누렸던 후발 세대의 이점, 곧 말과 사유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모국어의 감수성에서 비롯된 능력에 다름 아니었다.5) 이는 정신의 심부에서 외국어를 번역하듯 언어를 풀어내야 했던 이전 세대로서는 넘보기 힘든 세대적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관건은 유종호가 김승옥의 “새로운 감수성”을 추켜세우면서도, 그것이 맞바꾼 소설적 요소를 걸고 넘어갔다는 데 있다. “얘기의 국면이 극도로 축소”되어 버린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426). “얘기의 해체”라고도 할 만한 이 현상은, 기이하게도 김승옥의 작품에서 문학적 흥미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다. 이를테면 “회화적 선명성이나 심리적 기미가 기지 있는 대화나 섬세한 분위기 포착력과 함께 이 작품의 자초지종을 쉬지 않고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젊은 소설가가 갖는 “희유한 자질”로서 독자를 “쉬지 않고 매혹”시킨다. 서사 문학의 본령인 이야기의 구성을 양보하면서도 독서의 즐거움을 훼손하지 않았다니 일견 대단한 능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의 뛰어난 언어 구사의 솜씨”를 인정하면서도(같은 곳), 비평가는 뼈 있는 한마디를 내놓으며 ‘감수성의 혁명’이 갖는 한계를 명확히 적시한다.
우리는 이 특수한 작가의 특수한 자질과 능력을 이상과 같이 검토하고 확인함으로써 이 문장을 끝낼 수가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첨가할 의사가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위대한 종합력이 결해 있는 문학은 결국 사회적 쇠약의 산물이며 그것이 아무리 첨예한 미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필경은 전환기의 황혼을 장식하다 스러지는 저녁놀 이상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이러한 소극적 수동주의는 풍요한 종합력을 지향하는 문학의 자세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외적 사상(事象)의 작용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나 외적 현실에 대해서는 공헌도 창조적인 작용력도 가하지 못하는 무력한 내면에의 길은 이렇게 뚫린다(429).
“위대한 종합력”이란 무엇인가? 단지 이야기 구성이라는 서사 문학의 한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소극적 수동주의”나 “무력한 내면에의 길” 따위를 거론하지는 않았을 듯싶다. 매혹적인 언어 구사와 더불어 그 매혹의 이면과 마주하게 만드는 것, 달리 말해 우리를 사로잡는 현상의 근본을 파헤침으로써 어떤 한계를 갖고 무엇이 진정 문제인지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감각과 인식의 동행, 그 종합일 터. 이에 유종호는 다음과 같은 진단으로 평문을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때때로 반문한다. 날카로운 감성이나 언어에 대한 감각이 보다 중요한 윤리의식이나 종합력과 제휴되지 못하고 도리어 그러한 것의 빈곤의 대상으로 획득된 듯이 보일 때 과연 그 재능을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 재능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고 — 모국어의 한 형용사에 대해서는 섬세한 반응을 보일 수 있으면서도 가령 사회구조의 모순에는 전혀 태연할 수 있는 감성이 올바른 감성일 수 있을까 하고. 방향감각이란 중요한 것이다(430).
물론, 이는 1966년의 상황에서 젊은 작가 김승옥에 대한 비평가의 판단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를 격해 있는 우리는 이 작가의 문학 세계가 갖는 시대사적 의미와 문학사적 의의를 보다 객관적으로 두루 돌아볼 수 있다.6) 그럼에도 문학의 현장은 언제나 동시대적이고 현행적으로 작동한다. 신선하고 매혹적인 언어적 감각으로 불러내어진 현실, 그렇게 호출된 현실 너머로 낯선 삶을 사유하고 지금-여기서 조형할 수 있을지 타진해 보는 글쓰기의 요청은 언제나 불가피한 문학의 과제이다. 1960년대 문학의 새로운 흐름으로서 김승옥과 그의 세대가 남긴 기여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당대의 문학장이 놓인 사회‧정치적 현실은 ‘감수성의 혁명’을 어디로 조타해야 할지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4‧19세대의 정치적 의식만큼 글쓰기의 감수성이 이를 받아 내어 전진시켰을지 의문스러운 것이다.7) 이것은 이후 70년대로 이어지는 민족문학이나 민중문학의 향방과는 또 다르게 생각해야 할 문학적 감수성의 진로에 관한 한 주제를 이룬다.
3. 한강과 그의 세대, 글쓰기의 기원
1980년대까지 한국문학의 주요한 과제는 시대정신에 대한 호응, 즉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민족과 민중을 계몽하고 불러 모으는 문학운동에 있었다. 김대중이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시대, 김남주가 십 년 가까이 옥중에서 시를 써야 했던 시대, 그 야만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분위기의 한가운데 문학이 꽃피었던 것이다.
정치적 목적성이 분명한 작가에게 그에 부합하는 윤리의식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과 문학운동을 하나로 종합하고 실천했던 수많은 문인, 가령 고은, 신경림, 김지하 등의 시인이나 송기숙, 현기영, 황석영 등의 소설가들에게서 나타났던 치열한 문학적 고투는 그 자체로 글쓰기에 녹아 있는 당대의 사회적 감각을 반증한다. 이는 80년대를 청년기로 보낸 세대 일반의 정치적 (무)의식을 보여 주는 현상이었다.8) 작가 개개인의 문학적 성향을 뛰어넘어 ‘정치적 변혁 시대의 정치적 문학’에 속한 현상이 70-80년대의 문학정신이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비정치적 문학’이라 불릴 만한 흐름도 없지 않다. 60년대 ‘참여시’의 반대편에 섰던 ‘순수시’처럼 비판적 문학운동에 대립하는 조류나 반문명주의, 초현실주의를 내세우면서 근대 문화 전체에 대항하기 위해 당대의 문화적 흐름과 선을 그은 조류도 있다. 대단히 거친 분류법이긴 하지만, 이런 정치와 반정치의 구분은 기실 그 자체로 정치적이라 부를 소지가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90년대의 비정치적 문학, 혹은 탈정치적 문화는 냉전이 끝난 후 정치적 거대서사가 실종된 시대를 규정짓는 지표가 된다.9) 근대성을 특징짓는 거대서사는 낱낱의 개인보다 사회구성체 전체를 의미화하고 방향 지어 주는 조향타 기능을 맡았다. ‘나’의 욕망이나 의지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 사회가 무엇을 옳다고 정의하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이 같은 이념의 시대가 저물면서 나타난 현상은 개인을 그의 삶의 주체 자리에 온전히 옮겨다 놓았다는 사실이다. 근대인은 항상 개인이 자기의 주인이고 삶의 주체라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믿어 왔지만, 실질적으로 자기 삶의 중심 자리에 자신이 있음을 지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은 주체의 자리로 떠밀려 갔고, 자기 삶의 중심으로 그때 내던져진 셈이다.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거대한 이념이 개인의 삶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문화는 삶의 ‘방향감각’을 지정해 주는 길라잡이가 아니라 한낱 ‘엔터테인먼트’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은 필요한 만큼만 즐기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수단으로 존재한다. 사회를 바꾸는 정치적 방법으로서 문학이 작동하던 시기를 지나자, 문학은 그만큼 해방되었지만 또한 방기되었다. ‘비정치적 문학’이라는 꼬리표가 가장 유효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이 부근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비정치적’의 구별이 정치의 시대에나 기능하던 이분법임을 상기한다면, 정치가 무(無)화된 시대의 정치적인 것이란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랑시에르의 말을 빌린다면, 근대의 정치적 규범, 체제, 의식적 분할선을 넘어서는 데서 정치는 비로소 존립하는 것이니까.
한강과 그의 세대, 그러니까 70년대생 90년대 작가들의 글쓰기가 작동하는 조건이 여기에 있다. 비정치화된 문학과 문화가 주류가 되었던 시대에 이전과 동일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완전히 다르지도 않은 자신의 길을 걸었던 한강의 글쓰기는 어떻게 21세기 현재에 ‘낯선 의미에서의’ 정치적 주제와 연결되었을까?10) 당연하게도, 이는 직접적인 정치적 의식이나 사회적 소재들을 조합하는 식으로 구축된 것이 아니다. 나는 차라리 이를 예의 ‘방향감각’, 곧 세대 전체가 표류하던 시대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행로를 결정해야 했던 작가적 감각의 문제로 돌려 생각해 보고 싶다. 당연히 그것은 한강 개인의 것이기보다 그가 속한 세대 전반의, 근대가 종언을 고한 채 새롭게 시작되는 시대의 (무)의식과 관련된 것이다. 이 논제를 한강의 초기 작품 두 편을 통해 풀어 가 보자.
3-1. 「붉은 닻」과 이정표 없는 삶
등단작 「붉은 닻」(1994)의 주인공 동식은 대학 시절에 얻은 신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몰락해 가는 동네에서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어느날 군대에서 전역한 동생 동영이 올 것이라는 사실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어느 시점부터 동영은 말없이 집을 나가거나 한참 길거리를 헤매다가 발견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런 동영에 대해 동식은 사랑과 증오가 복합적으로 얽힌,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폭음과 폭연, 오입질” 때문에 간경변을 얻었다고 진술되지만,11) 맥락상 동식의 병은 절망의 은유처럼 보인다. 다음 장면을 읽어 보면, 이 ‘병’으로 인해 그가 겪는 고통이 비단 육체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골목 중앙의 붐비던 네 갈래 길은 이웃 동네 어린아이들의 공터가 되었다. 자동차의 위협이 없는 그 공터에서 아이들은 욕지거리를 하며 뛰어놀았다. 동식은 한 해 남짓 그 소리를 들으며 단칸방 아랫목에서 앓았다. 육신의 병이 영혼을 어떻게 물어뜯는지를 동식은 그때 알았다. 헛구역질을 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목과 어깨와 다리에 올라타고 매달린 수많은 귀신들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내뱉고 들었던 말, 유행가 가사, 책에서 읽은 모든 단어와 문장 들이 이명처럼 울리며 귓속과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동식은 완전한 통증을 배웠으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오만해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육체의 무력함과, 그 무력한 육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는 자 앞에서는 어떤 희망도 그리 눈부시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233).
「무진기행」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묘사는 동식이 정신적 피폐로 말미암아 육체의 병을 얻게 되었음을 시사한다.12) 정신의 피폐는 어디서 연유했는가? 아버지의 부재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바다에 떠밀려 사망한 사건은 이후 집안의 몰락을 불러일으켰고, 동영의 사고와 행위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일반적인 ‘가장’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모범적인 것이 아니었음도 주의해야 한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이후의 동영이 그런 것처럼 예측 불허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사인도 물에 떠밀려 갔기 때문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죽음은 실체 없는 흔적처럼 가족의 삶에 남겨진 것이다. 마치 전대(前代)의 거대서사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는 기실 유령처럼 존재했을 따름이며 그마저도 불투명하게 사라져 버린 지금, 가족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유령처럼 예전에 살던 장소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발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 동영의 발 역시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이동의 불가능성을 뜻한다. 달리 말해, 새로운 삶을 향해 출발하지 못하는, 원치 않는 정체와 중단의 현실을 드러낸다.
소설의 말미에서 동식과 동영은 답이 없는 질문을 서로에게 거푸 던진다. “왜 넌 변하지 않았냐.” “형은 왜 아팠어?” “왜 술을 마셨어.” 이는 그들의 실존적 삶을 정치하게 복기하여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삶을 감싸안고 지탱하며 갈 길을 지정해 주는 아버지, 거대서사, 또는 그 무엇이라 부르든 선험적 의미의 이정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상실해 버린 지난 시대의 흔적을 복원하거나 그리워하는 데 있지 않다. 어차피 아버지로 불릴 만한 모든 것, 이념이든 거대서사든 그런 것은 ‘발이 없는 존재’ 즉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유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여기에 열린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자, 그들 각각일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던 발이 보이기 시작하는 장면이 바로 여기다.
동영이 말없이 구두를 벗기 시작했던 것이다. 구두와 양말을 아무렇게나 갯바닥에 팽개친 녀석은 맨발이 되었다. 녀석은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파도가 들어오고 있었다. 일순 그 고요한 물결이 닻들의 무리를 어루만지며 쓸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 수많은 운명들이 소리 없이 해안으로 밀려드는 것 같았다. [···]
동식은 어머니의 목마른 시선이 닿은 곳으로 성급히 몸을 돌렸다. 불타는 닻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한 사내의 검붉은 그림자가 그 속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259).
바닷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버지의 형상을 암시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동식과 동영,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던 그들 자신의 반영적 이미지에 가깝다.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 거대서사가 지워지고 비어 있는 자리에 옮겨져야 할 것은 또 다른 서사의 우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야기다. 매혹적인 언어로 치장되지는 않았어도 나름의 ‘윤리의식’과 ‘종합력’을 형성한 ‘나의 서사’가 이로부터 생성된다. 이렇게 한강 문학의 첫머리에는 자신의 힘에 의한 자신의 이야기가 출현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는 그의 세대 전체가 직면했던 질문, 즉 정치와 이념, 부권적 권위의 종언 앞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모종의 응답이었을지 모른다.
3-2. 「여수의 사랑」과 자기-삶의-이야기
「여수의 사랑」(1994)은 이러한 자기 형성적 서사의 여정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결벽증에 사로잡힌 젊은 여성 정선은 동숙자로 자흔을 맞이한다. 정처 없이 전국을 돌아다닌 듯한 자흔의 삶에는 어떤 목적의식이나 자의식 같은 것이 없다. 심적인 부채감이나 자의식 없는 무구한 모습이 자흔의 자아상으로 묘사된다. 무언가에 늘 억눌린 채 매사를 정확하게 분별하고 엄격히 나누며 살아가는 정선은, 이상스럽게도 자흔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며 어울려 살게 된다. 실제 고향이 여수인 정선은 고향에 대해 떠올리는 것조차 질색하며 오직 현재에 머물려 하지만, 여수가 고향인지조차 불명확한 자흔은 여수로 돌아갈 꿈에 늘 사로잡혀 있다. 이들에게 실제 고향이 여수인지 아닌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기피나 동경의 대상으로서 ‘어디’인가가 존재하는지가 문제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정선의 결벽증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급기야 자흔을 적대적으로 밀어내는 지경까지 이르고 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위와 눈병과 콜레라보다도 나를 괴롭혔던 것은 자흔에게서 풍겨 오기 시작한 여수의 냄새였다. 방금 목욕을 하고 들어온 자흔의 젖은 머리털에서 나는 여수 앞바다의 짠물 냄새를 맡았다. 그녀의 손에서도 입에서도 여수 선착장에 버려진 상한 생선들의 냄새가 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흔의 잠든 얼굴에 그곳 부두의 검붉은 노을이 어리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손을 뻗는 곳에서마다 꿈틀거리는 선창가의 노랫소리, 구슬피 흐느껴 우는 소리, 밤새워 가슴을 앓는 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조그만 체구의 내 어머니가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토해냈던 무시무시한 기침 소리가 자취방의 벽면을 타고 음습한 메아리를 울렸다.
제발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
내 얼굴을 보고 이야기도 하지 말아요···
이를 악물며 나는 분명한 말씨로 덧붙였다.
더러우니까(43)
정선의 결벽증은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거부감에서 기인한다. 불결함 즉 외부적 이질성에 대한 일체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한편으로 위생과 안전, 상처받지 않는 생존을 도모하는 길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타자와 자기의 변화 가능성을 영구히 박탈하는 길일 수 있다.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은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는(affect and be affected) 감응의 관계이기도 한 까닭이다. 감수(感受)의 능력은 상처와 폭력의 결과를 빚어내더라도 타자와 그 세계를 만날 때 비로소 개시되고 작동한다. 어떤 결과가 생겨날지 정해진 것은 없기에 예측 불가능하지만, 저 열려 있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사유와 행위는 ‘방향감각’(윤리적 판단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밝혀지는 사실은, 정선이 어릴 적에 술에 취한 아버지가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 놓았고 그녀 자신 또한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그 후 정선은 여수를 떠나 홀로 서울살이를 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끊다시피 했고, 이것이 결벽증으로 나타났던 것. 하지만 자흔과의 관계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타인과의 관계가 가능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고, 세계를 향해 닫힌 문도 조금씩 열어 주었다. 자흔이 떠나 버린 어느날, 정선이 여수를 향해 열차를 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여행은 태생의 고향 즉 기원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낯선 세계와의 만남으로 표징되는 새 출발의 상징이다. 어쩌면 정선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또 무엇인가로 인해 다시금 상처받고 결벽의 망상에 시달릴 수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새로운 삶의 여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사건들의 한 과정일 것이다. 아버지 없이, 거대서사 없이, 바람부는 대로 또 빗방울 날리는 대로 걸음을 옮기며 만들어 가는 내-삶의-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열차에 탄 승객 모두가 저마다 제-삶의-이야기를 찾아 분주히 길을 떠나는 것처럼.
열차가 멈추었다
승객들은 저마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간혹 머리 위에 웬만한 사람의 몸통만 한 짐들을 이고 승강장으로 내려섰다. 나갈 차례를 기다리며 나는 객실 가운데에 서 있었다. 차창 밖 승강장에는 얼마나 바람이 불어 대는지 승객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뒤집혀질 듯 흩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마다 빗물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승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 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 흐르고 있었다(57-58).
80년대 이전까지 한국문학사를 수놓았던 문인들의 감수성, 대개 정치적이고 사회적 의식으로 충만했던 그것을 평가 절하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것대로 당대의 요구에 대한 감수 능력의 발휘이자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관건은 싸움의 대상이 명확하고 대의가 분명하던 시절을 지나 모두를 창도하고 이끌어 줄 거대한 이념과 서사가 사그라들었을 때, ‘이후의 삶’을 지탱하고 또 견디며 나아갈 발걸음에 관한 질문에 어떤 응답을 내릴 것인가에 있다. 발이 없는 형제들, 주위의 모든 것과 단절한 결벽의 고독과 단독성에 갇힌 채 90년대를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선택과 판단, 그리고 결단의 행로가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도 회피하거나 뒤로 물러설 수 없고, 단지 나아가기만 해야 했던 한강과 그의 세대에게 정치란 어떤 이데올로기의 기치를 받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 발을 단단히 땅위에 뻗고 조심스레 걸음걸이를 옮겨 놓는 실존의 실험이자 발명이었을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에 대한 기성의 척도를 내려 둔 채, 오직 자신의 방향감각과 감수 능력에 의존하여 주체화되어야 할 필요 속에 스스로를 세우는 것. 자기의 세대가 직면한 삶의 과제를 온전히 이야기에 담아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는 것. 여기에 한강과 그의 세대가 닻을 내린 글쓰기의 기원도 있으리라.
4. 정치, 혹은 삶에 대한 응답 능력
한강을 ‘정치적 작가’라고 부를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사회의식으로 충만한 작가라고 추어 주는 것 역시 어딘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2014)나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두고 정치적이지 않다고 할 수 없고, 『채식주의자』(2007)를 정치와 무관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이토록 역설적인 정치적 감수성, 그것이 한강의 문학 세계를 근저에서 떠받들고 있다. 그의 문학은 명시적인 정치의 선언에 기반하기보다 텍스트에 대한 결단적인 독서를 통해 독자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도록 인도하는 매혹에 기반한다.13)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는 과정, 곧 감수 능력이 한강과 그의 세대를 관류하는 ‘비정치적 문학의 정치성’을 형성해 준다.
감수할 수 있음, 그것은 또한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음이기도 하다. 누구도 또 무엇도 상처받지 않고는 함께 존재할 수 없고, 함께 행위할 수 없다. 공-동(共-動)이라는 사건은 함께-있음(共-存)으로서만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나, 아무것이나 함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가 놓여 있는 조건에 의해 조형된, 한 시대가 우리 ‘사이(間)’를 규정짓는 관계의 조건에 따라 우리는 연결되거나 분리되고, 또 다르게 변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수 능력은 시대라는 전체성에 대한 응답 능력(answer-ability)에 값한다. 각자가 고유한 개인으로서 자기의 삶에 대해, 서로에 대한 타자로서 서로의 삶에 대해 응답하는 것. 바로 여기에 삶도 사유도 행위도, 그리고 정치도 모두 존재할 터. 이는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 공-동의 관계,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상호성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 정서의 공유이자 공감에 다르지 않다. 한강과 그의 세대의 글쓰기가 시작되고 작동해 온 시대와 그 응답의 장면들을 주시해 보자.
그렇게 70년대생 90년대 작가인 한강은 출발했다. 아마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그 여정에서 비단 그만이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90년대를 함께-겪었던 동시대인들, 당대의 작가들 모두가 그러한 응답의 길에서 여전히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다.
* 이 글은 2024년 12월 21일 한국작가회의 50주년, 전국작가대회 문학 심포지엄 “더 멀리 가는 문학: 문학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한 것이다.
1) “혁명에 대한 신념,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죠. 혁명이 퇴장한 자리를 자본주의적 문화생산의 조건들이 장악해 들어왔는데, 이것은 90년대라는 ‘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죠.” 황종연‧진정석‧김동식‧이광호, 「좌담: 90년대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 민음사, 1999, 19~20쪽.
2) 정체된 사유에 운동성을 부여함으로써 다시-다르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우연성, 외적으로 촉발된 것이지만 내적인 반응을 필연코 불러내는 수동적 활동성으로서의 감수 능력은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vulnérabilité)’으로 개념화된다. 서동욱, 『차이와 타자』, 문학과지성사, 2000, 101~104쪽.
3) 이때의 정치는 제도와 규범 바깥의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결국 삶의 분할선 전체를 바꾸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과 다르지 않다. Jacques Rancière,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ntinuum, 2004, pp. 11~19.
4) 유종호, 「감수성의 혁명 ― 김승옥」, 『비순수의 선언』, 민음사, 1995, 425쪽. 이 절에서 이 글의 인용은 괄호 속에 쪽수만 표시한다.
5) “미완의 삽화적 구성이라는 허술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자를 매혹시키는 마력”으로 유종호가 인용하는 부분은 「무진기행」의 다음 대목이다. “아침에 잠자리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426).
6) 최용석, 「1960년대 시대상과 김승옥 서사문법의 상관성 고찰」, 『우리문학연구』 30, 2010; 신형철, 「여성을 여행하(지 않)는 문학 — 무진기행의 정신분석적 읽기」, 『한국근대문학연구』 5(2), 2004.
7) 산문시대 동인들이 추구하던 ‘자기의 발견’과 ‘내면성의 실험’은 한국문학의 한 획을 긋는 여정이었지만, 동시에 사회적 현실에 대한 밀봉의 의미를 띠어 그들의 행로를 ‘미완’에 그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했다. 임영봉, 『청년 김현과 한국문학』, 경진, 2009, 57~58쪽. 가령 여성을 대상화함으로써 허위적 만족감에 빠져드는 지식인의 나르키쏘스적 운명은 김승옥의 초기 소설부터 반복되는 주제이다. 백지연, 「도시의 거울에 갇힌 나르키쏘스 — 김승옥론」, 최원식 외, 『4월혁명과 한국문학』, 창작과비평사, 2002, 89쪽 이하.
8) 예컨대 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소위 386세대의 공통적 (무)의식이 그렇다. ‘심성’, ‘마음의 습관’, ‘정서 구조’, ‘세계감’ 등으로 통칭되는 이 현상은 당대인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자리한 (무)의식의 심층을 가리킨다.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19~25쪽.
9) 황종연 외, 「좌담: 90년대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2쪽.
10) 노벨상 수상과 함께 세간에 널리 회자되는 신문 기사가 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출판을 다룬 1995년 7월 26일자 <한겨레>의 기사이다. “그의 소설은 이른바 ‘신세대 문학’의 일반적인 경향이나 특징과는 거리를 둔 채 지극히 전통적이다 못해 복고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면모를 보인다. [‧‧‧] 한강의 소설들에서 주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진한 외로움과 피로의 기색을 띠고 있다. [‧‧‧] 삶의 고통과 슬픔은커녕 그것의 기쁨과 즐거움조차도 양껏 누려 보지 못했을 나이의 젊은 작가가 어째서 이토록 도저한 절망과 곤핍에 함몰되어 있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간결하다. ‘어둡고 슬픈 게 좋지 않아요?’” 절망과 곤핍의 감수성은 90년대 비정치적 세대의 공통된 정서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한강의 글쓰기는 당대성의 주류와 어긋나면서도, 동시에 그 밑바닥에 깔린 새로운 세대적 감각을 공유하고 있던 셈이다.
11) 한강, 「붉은 닻」, 『여수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2012, 232쪽. 이하 이 책의 작품 인용은 괄호 속에 쪽수만 밝혀 둔다.
12) 내가 염두에 두는 장면은 윤희중이 징병을 피해 무진의 골방에 숨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거기서 윤희중은 수음을 하며 자기모멸과 오욕감에 젖은 채 무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글은 한강과 김승옥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 자세한 분석은 후일을 기약한다. 하지만 문학과 정치의 감수 능력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들의 작품들이 기묘한 평행선을 그린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13) ‘성실한 작가이자 성실한 독자’임을 자처하는 한강의 독서는 그 자체로 창작의 원천으로 충분하다. 아마도 한강을 읽는 이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의 진실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강을 읽는 것 곧 그의 작품에 감응하는 것은 정치 너머의 정치적인 것과 맞닿는 실천이자 사유 너머의 사유, 행위 너머의 행위를 여는 사건의 과정이기도 하다. 한강 읽기와 회복의 여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강도희, 「압도적인 읽기의 시간, 회복하는 읽기의 삶」, 『더 멀리 가는 문학: 문학은 작별하지 않는다』, 한국작가회의 50주년, 전국작가대회 문학 심포지엄 자료집, 2024, 1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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