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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형식(3)

  • 작성일 2023-06-08

상실의 형식 (3)

김요섭


1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온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아마도 이제는 50년 정도 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가졌지만, 항상 자신을 농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낯선 곳을 찾아간 기분이었다. 먼 친척 어른의 집을 찾을 때나 가족묘를 방문하는 일 정도를 제외한다면, 경기도 북부의 그리 멀지 않은 그 마을을 방문하는 날은 정말 드물었다. 나에게도, 아버지에도. 10년 전 오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 아버지는 고향을 자주 찾아가셨다. 그리 크지 않은 선산에 아버지는 밭을 만드셨고, 그렇게나 많은 모종이 그곳에 심을 수 있는지 신기하게 느껴 질만큼 다양한 작물을 기르기 시작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운영하는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한 뒤로도, 아버지는 매주 고향 선산을 찾아가서 몇 종인지 알 수도 없는 수의 식물을 기르며, 계절마다 다른 작물을 수확해오신다.
   군대를 제대 후에는 자주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선산에 있는 밭으로 가서 일을 도왔다. 아버지의 고향을 함께 가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하실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므로 나도 그 농부의 시간을 함께 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일하기 힘든 시기였다. 아직 모종을 심을 때가 아니었지만, 파종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밭에 덮어두었던 비닐을 걷어야 했다. 아직 다 녹지 않은 땅은 축축하고 단단해서 비닐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힘을 줘가면서 당겨야 했지만, 혹여나 너무 강하게 당기면 끊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흙더미를 들어 올리면서도 비닐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힘을 쓰는 요령이 필요했다. 비만 체형 때문에 쪼그려 않는 게 힘들어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일해야 하는 그 시기를 가장 싫어했다. 어설픈 자세로 끙끙거리는 젊은 아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돕고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아버지는 밭이랑 사이를 누구보다 능숙하게 오가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몇 주, 몇 달에 한번 아버지를 도우려고 밭에 함께 가는 일은 힘이 들어서 싫기도 했지만, 일이 힘들어서라면 그렇게 많이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일정대로 하루를 보내는 회사원이던 아버지는 고향에 있는 자신의 밭에만 가면, 농부의 시간을 보내신다. 날이 너무 더워지기 전에 도착해서 햇볕이 따가운 시간에는 그늘에서 늦은 식사를 하고는, 해가 질 때까지 마저 농사를 짓다가 집으로 가셨다. 말수가 많지 않으신 아버지는 한참을 물어야 오늘 밭에서 할 일이 무언지 알려주셨고, 계획한 일을 끝낸 뒤에도 한참을 다른 일거리를 찾아서 분주히 오가셨다. 그럴 때면 나는 멀뚱멀뚱 그늘에 서서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지 생각하며 지루하게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할 일은 다 끝내지 않았냐고, 갈 시간이 이미 지났다고 따지는 일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농사일에 끝날 때가 어디 있냐며, 한 두 시간은 더 정리를 하고는 집으로 출발했다. 이름도 모를 나무에 기대서 할 일도 없이 기다리다 보면, 이곳에서 나만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시간으로 하루를 셈하는 아버지는 항상 그 장소에 있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난 뒤로 도시의 시간에 적응해 매일을 살았지만, 그에게 어울리는 시간은 시계를 쳐다볼 필요조차 없는 농부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사무실에 나가는 시간을 쪼개서 밭에 가신다. 어떤 상실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의 일생이었을 농부의 시간을 아버지는 이제야 조금씩 돌려받고 있다. 어릴 때는 상실을 빈자리이거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과 비슷하리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자신의 시간을 돌려받기 위해 고향을 찾는 아버지의 모습은 상실이 그런 텅 빈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상실은 엇박자 같아서, 익숙하고 당연했던 일상의 리듬에서 엇나게 만든다. 남겨진 이들은 이미 놓쳐버린 박자를 따라잡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어긋나는 자신을 의식하며 불편한 자세를 매일 힘겹게 교정하려고 노력한다. 계속 자신의 걸음을 의식하면서 걷는 사람,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가 발견한 상실은 그렇게 성실하게 견뎌야만 하는 무언가였다. 


2


  안윤의 소설 속 상실의 경험을 읽으면 상실과 성실이 기이하리만큼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안윤의 소설은 상실 이후의 삶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 과정은 극적 사건이나 충격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일상이 된 상실, 상실로서의 일상이 그의 소설을 구성하는 가장 큰 줄기가 된다. 그의 첫 단편인 「달밤」에서 '나'는 며칠째 분주하게 '소애'의 생일상을 준비한다. 그의 친한 동생인 소애가 집에서 끓인 육개장을 생일상으로 받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애가 고모 집에서 1년 얹혀 살 때 객식구라 눈치 보여서 마음껏 먹지 못했던 음식인 육개장은 그때 받지 못했던 환대를 대신 전해주려는 '나'의 마음이다.
    토란대를 대신할 숙주와 대파, 한우 양지머리에 고춧가루와 술, 찹쌀떡과 흰 절편 등 한 가득 장을 보고 돌아와서 육개장을 끓이는 '나'는 일 년 전 세상을 떠난 '은주' 언니를 생각한다. 수많은 알바를 전전하는 가난한 극작가였던 그. 주린 속을 달래면서 카페에 오래 앉아 이야기하기에는 아메리카노 보다는 프림을 넣은 비엔나 커피가 좋다며 가난에 익숙해져 있지만 약간의 수입이 생길 때면 '나'에게 꼭 밥을 사주던 은주 언니를 말이다. 
   은주 언니는 1년 전 소애의 생일날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다. '나'는 생일상을 함께 먹고 소애가 잠들자, 은주 언니의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생일상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제사상을 연이어 차리는 이 슬픈 광경은 은주가 '나'를 위했던 마음을 소애에게 향하게 하고, 다시 소애를 아끼는 마음이 은주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향하는 이 마음의 순환은 "은주와 화자의 사랑은 화자와 소애의 사랑 안에서 재생됨으로써 사라지지 않1)게 하는 재생의 과정이다. 소애의 생일을 준비하면서 '나'는 끝없이 은주 언니에게 말을 건다.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간 그에 대한 그리움과 서로 너무나 잘 어울렸을, 자신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담아서 각자를 추억하고 각자를 축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이 함께하는 그런 자리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나'를 통해 만난 적 없던 두 사람은 연결되고, 그렇게 연결된 그들은 '나'가 경험한 상실을 좀 더 견딜만한 것으로,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소설의 화자인 '나'가 은주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

  살아 있는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언니가 없는데, 언니가 스스로 없기를 원했는데 살아 있는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나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집에 와 외투를 입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수첩에 그렇게 썼어요.2)

   타인의 삶의 여분으로서 남겨진 '나'의 삶, 그가 없는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상실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나'를 지켜봐주기를 바란다. '달밤'에서 소애를 향한 '나'의 시선은, 상실 이후의 '나'에게 향했으면 하는 은주 언니의 시선과 닮아 있다. 그가 바라는 것, 그가 잃어버린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주는 사랑의 반복으로, '나'는 은주 언니에 대한 사랑을 재생한다. 안윤이 포착하는 상실의 풍경에는 한 사람만이 담기는 일이 없다. 그의 소설이 담아내는 상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어떤 관계의 모습을 통해서 나타난다. 두 번째 단편인 「방어가 제철」도 한 사람의 상실을 견디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상실 이후의 관계를 보여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안라'는 오랫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오빠의 친구인 '정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안라의 오빠인 '재영'의 죽음 이후 17년 만에 다시 만난 그들은 이후 3년 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식사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매 계절마다 정해진 식당을 찾는 그들은 방어 철인 겨울이면 창해라는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아내와 이혼한 중년의 영업사원인 정오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어머니와 이모들이 함께 운영하던 반찬가게를 이어받은 안라를 연결 해주는 이는 그들의 성장기를 함께한 재영이다. 재영의 중학교 친구였던 정오는 재영이 21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들의 집을 찾아와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던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하지만 재영이 죽은 이후로 그들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들 재영의 상실을 각자 견디고 있었다.
   안라는 재영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를 힘들어 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다니던 재영은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어머니는 왜 군입대를 앞둔 아들이 그곳에서 일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만, 안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안라는 미대에 가고 싶어했지만 가세가 기운 상황 때문에 어머니는 미대 진학을 반대한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학원에 다녀야 했지만, 학원비가 없을 때, 정오가 한 달치 학원비를 빌려주었다. 재영은 동생의 입시 준비를 위한 나머지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공사장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다. 안라는 오빠의 죽음을 자기 탓이라 생각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을 벌하듯 시간과 돈을 허비한다.
   재영이 사고를 당해 두 달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리고 재영의 장례를 치룰 때도 정오는 나타나지 않는다. 안라는 정오가 오빠를 찾아오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그들이 재회하고 몇년이 지나고 안라가 정오에게 오래전 빌렸던 학원비를 돌려줄 때도, 무엇도 묻지 않는다. 정오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안라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라가 15살이던 여름 방학에 함께 붓글씨 연습을 하던 정오가 화선지 위에 쓴 자신의 이름 옆에 재영의 이름을 나란히 쓰던 그때, 두 사람의 사랑으로 함께한 "지금의 모든 순간이 돌이킬 수 없이 분명해졌"(73쪽)기 때문이다. 정오 역시 재영이 떠난 뒤의 삶을 그렇게 홀로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째인 겨울에 그들은 서로가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그 고통을 서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안라는 어머니가 왜 반찬가게를 시작했었는지 이모들에게 묻는다. 영업이 잘되기는 했지만, 운영하는 과정이 너무 고생스럽기 때문에 안라는 어머니가 반찬가게를 시작한 이유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이모는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여러 반찬 중에 자기 좋아하는 것만 골라가면 된다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는 어머니의 말을 안라에게 전해준다. 원하는 데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을 찾는 일은 안라의 어머니가 상실을 견디어 내는 한 방법이었다. 상실 이후에도 그 작은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이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단편 「만화경」이 보여준다.
   세 번의 유산 이후 남편과 이혼하고 '숙분'의 빌라로 이사를 한 '나경'은 아직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지만, 계약을 연장하지는 않아야 겠다고 결심한다. 집주인인 숙분의 괄괄한 성격과 자신의 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나경은 같은 빌라에 사는 숙분의 또래 노인인 '단심'의 친절함과 배려가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집주인에게 느끼는 불편함을 털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어느날 숙분이 집에서 사고를 당하고 단심과 나경이 구급대원을 불러서 그들을 구한다. 숙분을 병원으로 옮기고 나경은 단심으로부터 자기가 오기 전에 302호에 살았던 세입자, '이미리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병으로 고독사한 30대 초반의 여성 이미리내를 숙분은 자신의 가족처럼 정성을 다해서 추모한다. 숙분이 사십구재가 끝날 때까지 302호의 방문을 열어놓고 향을 피우고 마지막 날에 제사상까지 마련하며 이미리내를 애도한 이유는 그를 혼자 보냈다는 미안함이다. 숙분이 가깝지 않던 이의 죽음에도 마음을 쏟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나경은 자신을 불편하게 하던 그의 행동들 속에서 배려와 걱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서 같은 집에 살았던 이미니래에 대해서 생각한다.

  지구가 점만큼 작아지고 태양계와 우리은하도 점만큼 작아진다. 더 먼 우주마저도 마침내 하나의 물방울만큼 작아지고 그런 물방울들이 모여 수없이 많은 물방울이 되고 강이나 바다처럼 보이게 되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나경은 등골이 서늘해졌고 동시에 어떤 안도감이 들었다.(95쪽)

   유산과 이혼으로 홀로 남겨진 자신의 고통을 끝없이 작아지는 것으로 견디려고 했던 나경은, 그가 사는 방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미리내가 남긴 서른 다섯 개의 야광별을 바라본다. 끝없이 작아지는 방식으로 고통을 지웠던 그는 이제는 가장 작고 희미한 빛을 발하는 야광별에서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애틋함을 발견하게 된다.


3


   안윤의 소설에서 상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위치를 찾는다. 아니 상실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타인의 존재로부터 배워간다. 안윤의 장편 『남겨진 이름들』은 모든 것을 잃어가는 시기에 떠나보냈던 이들에 대한 생각을 반복하는 간호사, ‘나지라’의 이야기다. 키르키스스탄의 비슈케크에서 2년간 유학을 했던 '윤'은 그가 살던 하숙집 주인이었던 '라리사 니칼라예브나'가 그에게 남긴 물건들을 다른 친구를 통해서 받게 된다. 라리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죽은 그의 딸인 '나지라 하미돕나'가 쓴 공책들을 모아서 윤에게 전달한다. 윤이 글을 쓰는 사람,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겨진 이름들』은 윤에 의해서 번역되어 전달되는 나지라가 남긴 기록이다.
   이름도 모르는 친모로부터는 버림받은 뒤 라리사 아주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아이를 유산한 뒤에는 간호사로 일했지만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유전적 요인으로 급속하게 진행된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나지라. 그는 생일을 축하해주려는 친구의 연락을 받은 뒤에야 자신의 생일을 떠올린다. 그가 남긴 공책 속에서 나지라는 매일은 그가 살았던 과거와 뒤섞인다. 그는 지나간 과거를 계속 현재형으로 이야기한다. 반면에 미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그에게 미래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 경험과 기억의 단어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에 다가간 모든 것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삼켜지듯, 나지라 역시 그 미래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나는 무한히 수축하지만 동시에 어딘가로 유출되고 있어요. 폭식하듯 빛을 빨아들이지만 한없이 어두워요. 캄캄해져요. 쿠르만. 이 고백은 그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이 고백은, 말로 뱉어지지 못하고 내 안에서 나에게만 발설된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무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말해버린다.(32쪽)

   기억을 잃어버릴 때, 나지라의 세계는 계속해서 작아진다. 점점 더 자신이 작아지고 있는 나지라의 기억과 기록 속에서 반복되는 것은 그가 입주 간호사로 일했던 ‘쿠르만’과 ‘카탸’ 부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다. 교통사고로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무엇도 할 수 없게 된 전신마비 환자 카탸와 그를 보살피는 쿠르만의 곁에서 나지라는 입주 간호사로서 그들의 생활을 함께한다. 소설의 중반까지 이들을 돕는 입주 간호사로서 나지라의 일은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처럼 말해진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나지라에게 십여년 전에 쿠르만과 카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현재와 함께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지라는 카탸와 쿠르만의 이야기를 항상 현재형으로 말한다. 회복될 희망 없이 그저 ‘별 이상 없다’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말에도 아무런 대답을 돌려주지 못하는 카탸를 돌보던 시간을 왜 나지라는 자신의 현재와 겹쳐서 보고 있었을까. 그 자신 역시 ‘별 이상 없다’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익숙한 하루를 더 이어가는 것만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코 나아질 수 없지만 별 이상 없을 수는 있는 삶에서 이어지는 체념에서, “때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체념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일상에 푸른 잎을 내보이는 희망”(42쪽)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액자형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소설 속에서 액자 속의 서사인 나지라의 공책 사이에 단 한 사람의 목소리만이 끼어든다. 나지라가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 목소리는, 카탸의 말이다. 사고로 온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 카탸, 그래서 그저 자신이 완전히 사라져가기만을 바라면서 ‘별 이상 없다’는 상태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을 엎고 주무르고 다독이는 손길을 원망하기도 했던 그는 모든 것이 사라져갈 때 익숙했던 작은 감각들이 돌아오는 과정을 느낀다. 수액 대신에 자신의 목으로 삼기는 물의 단맛과 같은 그런 작은 감각, 훼손되었고 일어버렸기 때문에 겨우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들이 “점점이, 내가 흩어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점점이 나는, 점묘화처럼 다시 내 모습이 되어갔”(167쪽)던 그런 감각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유산을 한 이후에, 자신을 잃은 이후에 자신이 아닌 타인을 토닥이기 위해서 간호사가 된 나지라가 했던 그런 행동들이 상실 이후 카탸의 삶을 아주 작은 부분으로나마 다시 모여들게 했다. 카탸가 그러했듯, 나지라도 그 작은 토닥임과 위로 속에서 자신을 모아둔다. 
   나지라가 자신을 잃어가는 가면서도 남긴 기록 속에는 그 자신의 이야기에는 많은 빈틈이 놓여 있다. 나지라가 사랑했던 ‘그 사람’조차 이름 없이 그저 ‘그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 그 기록은 나지라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지라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비춰주는 타인들이 빼곡하게 페이지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수밖에 없다”는 인간에게 “신이 있다면 그 존재는 타인이라는 거울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는 빛”(51쪽)일 것이라는 나지라의 생각처럼, 사라져 가는 그를 타인과의 일들이 비춰주고 또 점점이 모아주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또 다른 타인,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아주 먼 곳의 타인에게 전해져서 다시 나지라를 비춘다. 나지라가 가졌던 기억을 끝내 어둠이 삼켜버렸지만, 그를 비추던 타인의 빛은 오히려 더 멀리로 퍼져간다. 무언가를 잃고, 체념하고 그래도 여전히 계속 걷고 있는 서로를 비추면서 말이다.


1) 김보경, 「재생되는 사랑, 재생하는 이야기」, 『방어가 제철』, 자음과모음, 2022, 133쪽.
2) 안윤, 「달밤」, 『방어가 제철』, 자음과모음, 2022, 30~31쪽. 이 글에서 다루는 안윤의 소설은 「달밤」, 「방어가 제철」, 「만화경」(『방어가 제철』)과 『남겨진 이름들』(문학동네, 2022)이다. 이후 인용 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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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비평

상실의 형식 (1)

현장비평 2023년 비평연재는 두 명의 평론가가 3회씩 연재하며, ‘시대와 작품을 가로지르는 비평가의 눈’이라는 주제로 보다 확장된 문제의식을 펼쳐 보인다. 상실의 형식 (1) 김요섭 할아버지의 죽음은 작은 기억의 조각들로만 나에게 전해졌다. 어린 시절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실은 그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것,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이 조심스레 내비치던 그리움과 원망 정도였다. 내가 군대에 입대했을 무렵에야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해주셨다. 군복무 중 갑작스레 고열로 입원한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할아버지가 어떤 이들을 찾아가서 한 부탁에 대해서였다. 70년대 초 열악한 군대의 의료 환경에서 초임 부사관이 제때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했던 부탁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믿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찾아간 이가 누구였는지, 그가 어떻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던 젊은 하사를 좋은 병원으로 보내 줄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들었던 우리 가족의 역사는 가난한 시골 농부 집안의 이야기였을 뿐이니까. 어른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던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말이다. 내가 서른이 넘은 뒤에야 할아버지가 시골 마을의 공무원이었다는 것과 그 이상을 목표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 방법에 대해서도. 둘째 작은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많이 필요로 했고, 자식 중 노동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너무나 일찍 일을 배워야 했다. 둘째 작은아버지는 집을 떠나 일을 배웠다고 했다. 아직 학교에서의 배움이 한참 남았던 나이에. 양주에서 태어난 가난한 일곱 남매가 어떻게 흩어지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어릴 때는 경기도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친척들이 명절이 되면 의정부의 우리 집으로 모이는 장면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아버지의 고향에는 먼 친척들만 살고 있었다. 나도 내 사촌들도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의 부재를 의식할 일이 없었다. 아이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기에는 그의 빈자리는 가족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재였다. 다만 어른들은 아이에게 들려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자주 했다. 정치는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을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장례식에서도 그 말이 들려왔다. 마치 그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 주듯이. 할아버지가 왜 그런 꿈을 꾸었고 왜 그토록 좌절했는지, 그 절박함의 이유를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단지 할아버지의 고향 마을에서 전쟁 중에 여러 사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무렵에 한 외국 학자가 자기 외조부의 과거를 추적하는 책을 읽었다. 영국의 법학자 필립 샌즈는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에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외할아버지, 레온 부츠홀트가 숨겨 놓았던 기억의 단서를 쫓는다. 외할아버지가 전쟁 중 가족과 떨어져 있게 되

  • 김요섭
  • 2023-04-01

문장웹진 비평

문학상에 대해 말해야 할 것과 문학상이 말해주는 것

[특별기획_문학상 리뷰] 특별기획 〈문학상 리뷰〉는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수많은 문학상 중 주요 문학상의 최근 10년간(2011-2020)의 공개된 자료(수상작, 심사위원 등)를 취합 정리하였으며, 이 자료를 토대로 4명의 평론가가 각각 시와 소설을 다루는 주요 문학상들의 경향에 대한 리뷰를 2021년 2월호와 3월호에 순차적으로 발표합니다. - 홍성희, 「이름과 이름과 이름 들」 - 김요섭, 「문학상에 대해 말해야 할 것과 문학상이 말해주는 것」 - 노태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문학상 이야기」 - 김정빈, 「문학상 - 비평 기구」 문학상에 대해 말해야 할 것과 문학상이 말해 주는 것 김요섭 1. 질문해온 것과 질문하지 않은 것 비평사의 관점에서 2020년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제도 비평의 해로 기억될지 모를 것이라는 인아영의 말1)처럼, 지난 한 해는 한국 문학의 제도에 대한 비평적 논의들이 뜨거웠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에 대한 불공정 계약 문제나 수상 작품집의 상업화, 젊은작가상 수상 취소로 이어진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인용 사태 등 문학상이 제도 비평의 중심적인 대상이 되었다. 기존의 제도 비평이 문예지와 등단제도, 출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할 때 이상문학상과 젊은작가상처럼 등단제도 이외의 문학상까지 확대된 논의는 문학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점차 섬세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같은 시기 글쓰기-노동에 대한 장은정의 문제제기나 여기서 파생된 계약서, 공공기관 문학지원 등 문학 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로 확대하려는 시도들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문학상 문제로 촉발된 제도 비평의 흐름이 향하는 방향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선회하는 양상도 함께 포착된다. 구조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익숙한 세대 담론의 형태로 회수되는 것이다. 김봉곤 사태 직후 강동호가 발표한 「비평의 시간 – 김봉곤 ‘사건’ 이후의 비평」으로 촉발된 논쟁은 그가 젊은 세대 비평가의 대표 격으로 설정한 인아영, 김건형을 향한 세대 비판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강동호는 이들 젊은 세대 비평가들의 작업이 “스타 시스템의 속도주의”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위계적 관계”와 같이 기성 문학장의 재생산 경제 시스템에 내재한 구조적 불평등을 반복하고 있음을 비판2)한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 비평의 구조를 비판적 논의의 전면에 세우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대론의 부각은 역설적으로 문학의 제도와 구조에 대한 논의를 비평가라는 주체성의 구성 문제로 환원한다. 한영인은 문학 제도에 대한 논의가 매번 불충분하게 이루어진 상황에서 비평가의 역할을 과잉해석 하는 일이 반복되었음을 지적한다. 비평가 개인의 자의식을 강조하는 태도의 기저에는 비평가라는 주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현실의 죄를(비록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의 책임으로 떠안”으려는 일종의 과잉윤리가 작동해 왔다는 것이다.3) “한국 문학과 비평

  • 김요섭
  •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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