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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사회, 역사가 쓴 시대의 시놉시스

  • 작성일 2025-01-01
  • 조회수 449

   비정상 사회, 역사가 쓴 시대의 시놉시스

   김설원 「팔월극장」


김유림


   1. 불가능한 연출


   정상과 비정상 사회를 구분하긴 사실상 어렵다. 기준을 찾는다면 역사일 것이다. 역사란 과거이며, 과거는 현재 시점으로 소환될 때 의미가 있다.1) 역사에 내재한 의미는 비정상과 정상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하다. 헤겔은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 집적된 현상을 추론하고 검증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 ‘절대정신’에 이르기를 주문한다.2) 절대정신은 역사 변증법을 거쳐 ‘앎에 이르는 자기 인식’이다. 자기 인식은 ‘자유의지’와 동일한 의미로 억압을 벗어날 때 실현된다.3) 문학을 포함한 예술, 철학 등 인문학이 역사를 검증하려는 노력도 자유의지, 주체적인 인간의 실존을 강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김현 평론가는 ‘문학이 억압하지 않지만,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4)라고, 적시한 바 있다. 이는 문학이 결코 유희적이거나 감상적 산물이 아닌 억압당하는 인간의 실존을 복기하는 장르임을 알린다. 김설원5) 작가의 단편소설 「팔월극장」6)은 2024년 현진건 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비정상 시대를 밀도 있게 다루면서도 미학적인 감응이 풍부한 작품이다. 특히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에 4‧19 역사를 덧입혀 주목된다. 

   「팔월극장」은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는 화자 영진을 중심으로 연기자를 꿈꾸는 윤희,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영진의 엄마와 여동생이 등장한다. 영진은 엄마, 여동생과 함께 지방 도시에서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홍보 인쇄물 제작업체에 취업하지만 ‘생존 활동’에 불과한 일에 회의를 느끼고 직장을 그만둔다. 직장을 그만둔 영진의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실존 여부가 물음으로 확증된다고 밝힌다.7) 영진은 육체 보존 목적뿐인 삶에 왜? 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다. 푸코는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구현하는 행위를 심지어 ‘예술 행위’로 규정했다.8) 영진은 육체만으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자기 세계를 찾아 고향을 떠난다. 학원에서 연출 전공 강좌를 수강하고 운 좋게 영화제작사에 들어간다. 영화(제작, 연출)에 매진하지만, “성질이 더욱 고약해진 ‘가난’과 마주쳐야 했다.” “자부심이랄지 성취감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한숨과 카드 빚만 늘어 가는 생활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25쪽) 영진은 물질이 지배하는 비정상 시대에 억압당했다. 생활고에 엄마의 죽음이 포개지면서 영화감독의 꿈은 와해 될 상황에 직면한다.


   엄마가 숨을 거둔 시간에 나는 클럽 디디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여동생이 문자메시지로 임종 소식을 알렸다. 새벽 한 시가 막 넘어선 때였다. 휴대전화에 찍힌 부고를 보는 순간 목덜미가 싸늘해졌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맥주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공연히 신경질을 부렸다. 부주의로 내 어깨를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는 여자에게 눈을 부라리다 싸울 뻔했다. 침착하자고 마음을 다잡을수록 악의가 솟구쳤다. (팔월극장, 18쪽)


   영진이 클럽에서 추는 춤은 유희가 아니라 생존 투쟁이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생존 투쟁은 악의가 솟구칠 만큼 절박하다. 영진은 클럽에서 나와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구상하고 피시방으로 간다. 피시방에서 고스톱 게임을 하지만 첫판에서 깨지고 게임에서 퇴장하고 만다. 게임에서 번번이 졌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고향의 엄마 장례식장이 아닌 영화 촬영 장소로 내몬다. 엄마의 육신이 불에 태워지는 순간 영진은 “감독 뒤에 바싹 붙어 앉아 모니터를 보며 남자 배우가 어느 쪽 손으로 여배우의 뺨을 때렸는지, 여배우가 무슨 색깔의 립스틱을 발랐으며,”(19쪽) NG가 몇 번 났는지 등을 꼼꼼하게 적는다. 

   영진의 행위는 삼십 중반의 보편적인 여성의 사고라고 보기에는 상식에 어긋난다. 코너에 몰린 영진에게 삶은 죽음과 같다. 그녀는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죽음이 엄마의 것이든, 영진의 것이든, 우리 모두의 것이든, 생존 본능은 죽음을 거부하기 마련이다. 죽음 앞에서 상식과 윤리보다 앞서는 가치가 생존 본능이라면 영진의 행위는 설득력을 얻는다. 즉 영진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격렬한 투쟁 중이다. 춤을 추고 고스톱 게임을 하고, 촬영장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NG 장면을 기록하면서 버틴다. 그녀는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삶이라는 촬영장에서 자신의 NG 장면을 보았다. 엄마의 죽음과 함께 영진이 꿈꾸던 삶의 시나리오도 미궁에 빠진다. 



   2. 균열의 심층


   영진은 이성을 찾으려 하지만, 엄마의 장례식이 지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흔들리고 만다. 일자리를 주겠다는 송 피디의 연락을 받고 여행을 떠나겠다며 거절한다. “여행 때문에 일자리를 포기한다고? 너 같은 억척꾸러기가?”(20쪽) 송 피디의 말처럼 영진은 억척스럽게 삶이라는 시놉시스를 다듬어 왔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은 그녀가 빚어내고자 하는 세계에 균열을 낸다. 


   오늘 오전 열한 시쯤 등기 소포를 받았다. 유별나게 누리끼리한 박스 상단에 고향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여동생이 보낸 거였다. 빈틈없이 붙인 테이프를 쭉 뜯어내는 순간 뭔가가 불쑥 튀어나오거나, 아니면 인체에 치명적인 어떤 기체가 확 퍼져 기절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을 대기가 꺼려졌다. 엄마가 저승길을 밟은 상황에서 여동생이 무슨 먹거리를 보내기야 했을까. 분명 망자와 관련이 있는 등기 소포일 터였다. 말하자면 유품.

   내 짐작은 맞았지만 그 유품이 성경책일 줄은 몰랐다. 손때가 묻다 못해 흐물흐물해진 성경책에 편지 한 통이 부록처럼 달려왔다. 글씨에서 이토록 뜨거운 감정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20, 21쪽)


   등기 소포에 적힌 고향집 주소는 영진의 죄책감을 부추긴다. 병든 엄마를 여동생에게 맡기고 장례식도 외면한 장녀, 소포에서 기체가 나와 기절하고 싶은 영진의 심리가 바로 죄의식의 산물이다. 엄마는 영진이 겪게 될 심리적 고통을 간파한 듯 성경을 유품으로 남긴다. 신이 인간의 죄를 대속했으니 성경 유품은 영진의 죄의식을 덜어주려는 엄마의 마음이 배어 있다. 하지만 영진은 초월적 존재에 불신감을 드러낸다. 엄마는 신앙심이 깊었다. 그런 엄마의 삶에 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복한 팔자로나마 오래 살게 해주지도 못해요?”(21쪽) 영진은 신을 허상이라고 느낀다. 

   영진의 엄마는 고향 재래시장에서 십 년 가까이 생선 장사를 했으나, 생계유지가 힘들어 식당을 차렸다. 식당은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았다. 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하는 영진의 여동생이 짬짬이 일을 도왔다. 영진 가족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도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엄마는 혼자 몸으로 두 딸을 키우며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다 생을 마쳤다. 영진 가족의 고통은 지역 경제의 파탄이 원인으로 제시된다. “엄마의 오랜 생활 터전이자 내 고향인 항구도시는 변모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쇠락했다. 물론 엄마도 그 불화의 피해자였다.”(22쪽) 로컬 회생의 현실적 대안 마련은 사회 정치 영역이다. 이 시대 정치는 진영논리, 계파 싸움, 권력욕에 취해 영진 가족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영진의 영화 연출은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남는다.



   3. 실존 가능성 타진 


   샐러리맨은 팔베개를 한 채 벤치에 드러누워 있었다, 너무나 피곤하다는 듯 혀를 쑥 내민 얼굴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측은했다. 넥타이가 반으로 접혀 가슴께에 늘어져 있었다, 구두는 벗어 던졌다. 왼쪽 무릎에 오른쪽 다리를 걸친 그의 머리맡에는 두툼한 서류 가방이 놓여 있었다. (25, 26쪽)


   영진이 현실에 회의감을 안고 찾아간 샐러리맨은 인공 조형물이다. ‘제목, 제작자, 제작 연도’가 그의 정체지만 그것조차도 확인 불가능하다. 영진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듯이 샐러리맨의 고단한 일상을 지켜본다. 그의 양복 자락을 깔고 앉아 “오늘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지쳐 있는지”(26쪽) 묻는다. 급기야 운동화를 벗고 샐러리맨 팔에 머리를 기댄다. 그의 해쓱한 얼굴을 쓰다듬고 넥타이도 매만진다. 샐러리맨과 교감은 영진 자신이 인공 조형물과 다름없는 상태임을 알린다. 샐러리맨은 조직의 체계에 따라 움직이고 정해진 임금을 받는다. 틀에 짜인 일상을 영위하는 그들은 자유의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샐러리맨과 영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해 아무것도 규정할 수 없다. 

   “딸기 먹을래요.”(27쪽) 영진은 배낭에서 딸기를 꺼내 샐러리맨에게 말을 건넨다. 딸기를 치유제처럼 먹고 상처, 고통, 죄의식, 실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새콤달콤 살맛 나는 딸기’ 플라스틱 투명 상자에 붙은 홍보 스티커의 문장은 매혹적이다. 영진은 딸기를 먹으면 정말 살맛이 나는지, 엄마를 살릴 수 있는지 샐러리맨에 묻는다. “엄마는 이런 생각이 든대요. 살맛 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27쪽) 딸기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과일이었다. 샐러리맨은 어떤 답도 줄 수 없다. 조형물에 불과하니까. 영진은 샐러리맨 곁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펼쳐진 하늘을 본다. “어떤 상처든 낫게 해주는 신비한 물이 가득 담긴, 옹달샘을 닮은 하늘이었다.”(27쪽) 자연은 생명이고 근원이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 시도된 삶의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다. 영진도 샐러리맨처럼 조형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대학교 입학 선물로 사 준 손목시계는 흠집 하나 없다. 항상 차고 다녀서 신체의 일부 같았던 손목시계의 거처만큼은 분명히 해 두고 싶었다, 윤희라면 진심으로 끝까지 간직해 줄 것이다. (··‧) 내가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줄 수 있다면 엄마부터 살려내야지. 그런데 엄마는 이승에서 다시 살고 싶다고 할까? 얼마쯤 살아 보니 차라리 저승이 낫다고, 함부로 환생시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칠지도 몰랐다. (28쪽)


   영진은 윤희에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시계를 넘겨주려 한다. 시계를 넘기려는 의도는 시간의 포기로 실존 불가능성을 암시한다. 시계는 엄마와 영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엄마를 살리고 싶은 욕망은 실현 불가능하다. 영화제작은 현실적인 꿈이지만 영진에게는 이룰 수 없는 욕망이다. 따라서 이승으로 환생하고 싶지 않아 손사래를 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영진이 틀림없다. 그녀는 시계를 윤희에게 넘기기 전 ‘룩안경원’에 들린다. “오늘 나의 눈은 촬영 카메라인 만큼 어디 이상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28쪽) 자살을 결심한 영진이 세심하게 살펴보려는 것이 무엇일까. 안경사는 렌즈에 와인 색깔을 입혀 멋을 내 보라고 권하지만, 영진은 “그냥 물처럼 투명하게 해주세요.”(28쪽)라고 말한다. 상식이 통하고 열심히 일하면 기회가 주어지는 공정한 사회, 영진이 새 안경을 맞춰 쓰고 보려는 세계는 투명한 사회가 아닐까. 뒤르케임은 자살을 개인이 사회로부터 강한 제약을 받을 때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라고 보았다.9) 사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면 영진이 죽음을 기획할 필요가 없다. 

   영진은 불투명한 미래에 무력감을 느낀다.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안경을 기다리는 동안 정수기의 물을 넉 잔이나 마셨다. 손바닥에 얽힌 손금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할 필요조건을 찾는다. 영진의 눈에 비친 손금은 손바닥에서 자라나는 나무뿌리(희망)다. “우리는 너나없이 손에 나무 한 그루씩 지니고 산다. 단풍나무, 사과나무, 복사나무, 뽕나무, 바오밥나무···.”(29쪽) 나무는 ‘생존 무대’를 지키고 싶은 영진의 내면 심리를 표상한다. 샐러리맨/딸기/손금/나무 메타포는 김설원 작가 특유의 미학적 문법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새 안경을 맞춰 쓰고 영진이 바라본 사회는 살고 싶을 만큼 투명해졌을까. 의문이 든다.



   4. 다시 쓰는 시대의 시놉시스


   윤희는 전형적인 소외계층으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중학생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꿈을 지니고 사는 여성이다. 팔월극장에서 배우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영진이 속해 있는 극단을 찾는다. 극단 재정이 좋지 않아 재능 기부자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윤희가 자원한 건 ‘자기 배려’, 즉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다. 영진과 윤희는 연기자와 연출자로 만나 동갑, 여성이라는 동질감으로 뭉친다. 영진은 일상적인 고통이나 투자자가 변심하여 영화제작이 무산될 때 윤희를 생각했다. 윤희는 속이 허할 때 영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신적인 지주였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극단이 문을 닫게 되면서 영진과 윤희가 꿈꾸던 무대도 위기를 맞는다. 


   “너의 꿈은 유효기간이 없는 거지?”(···)

   “뭐가 되는 것 같다가 어그러지고, 어그러지고··· 우리는 만년 대기 상태야.”(34쪽)


   ‘우리’라는 포괄적 어법은 청년 세대가 미래를 기획할 수 없어 ‘만년 대기 상태’라는 엄중한 항의가 분명하다. 빛이 바래지는 꿈 때문에 다 내팽개치고 싶냐는 윤희의 물음에 영진은 답을 유보한다. 영진이라는 개별 주체는 비정상이 춤추는 사회의 가학성을 피할 수 없다. 이 시대 정치는 기득권 유지, 권력 지키기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청년실업, 양극화, 고독사는 한국 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되었다. 영진에게 있어 버팀목이던 팔월극장은 회생 불가능 상태다. 엄마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답을 낼 수 없는 현재만이 영진 앞에 존재한다. 꿈을 버리고 싶냐는 윤희의 물음은 곧 영진이 자신에게 물음이며 사회 공동체 모두의 자조적인 물음과 같다. 


   “너희들이 ‘팔월극장’을 앞세워 광고를 냈잖아. 생각나지? 어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라 좋았거든.”

   “그럼, 기억하지, 팔월극장. 학원 선배가 지은 이름이야. 팔월극장은 4.19가 일어나기 바로 전 해에 생긴 극단이래. 1960년 봄 공연이 엿새 예정으로 막이 올랐는데 4‧19 때문에 도중하차했대. 극단도 사라졌고. 그 시절의 팔월극장은 운명이 짧았지만 우리의 팔월극장은 오래오래 숨을 쉬자고 포부가 대단했어.” (37쪽)


   영진은 “시대적 정치적 상황으로 막을 내린 ‘팔월극장’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들과 다시 ‘팔월극장’을 만들었지만, 그것도 허망한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10) 영화를 제작하여 시대상을 알리려고 뜻을 모았던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팔월극장’은 젊은 세대의 팍팍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다. 영진은 영화를 포기하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의 부고를 듣고, 엄마 얼굴을 지워 버리려 애썼다. 장례식장이 아닌 영화 촬영장으로 달려갔고, 자양강장제, 수면제를 복용하며 무섭도록 한길(영화)만 보고 질주해 왔다. 영진에게 팔월극장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소망, 절망, 미련이 흔적도 없이 쓸려 나간, 백지상태의 공간.”(24쪽) 짐이 빠져나간 원룸은 삶을 지워 버리고 싶은 영진의 무의식이다. 영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놉시스’를 쓰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시대상을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꿈’ 영진이 무대에 올리려는 시대는 1960년 4·19 혁명의 역사다. 4·19는 국가 주권 권력의 부패와 장기 집권, 권력 강화를 위한 부당한 무력행사에 학생들이 반발하여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다. 청년들이 팔월극장의 공연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원인이 비상계엄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부패 권력이 청년들의 꿈을 찬탈한 것이다. 1980년대 신군부의 계엄 선포에 이어 공교롭게도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가 우리 앞에 다시 실체를 드러냈다. 이는 4.19 이래 60년이 넘는 동안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는 주체가 사회 주권 권력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과거나 현재나 청년들은 죽음을 기획할 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에 내몰려 거리로 나가 호소한다. 살고 싶다고. 부활을 꿈꾸다가 다시 해체된 ‘팔월극장’은 희망 없는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청년의 미래가 없는 시대는 죽은 시대다. 영진이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잔혹한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가해 주체가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굴까. 가해 주체를 모르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권력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삶으로의 전회


   1970년 후반 미국에서 구체화 된 ‘공공 역사’ 개념은 정부와 민간, 역사 유관 단체, 나아가 개인의 활동까지 “역사 연구와 실천을 장려하는 운동이자 방법론이며 접근법이다.”11) 한국 학계의 공공 역사 논의는 ‘역사 대중화’가 기치다. 역사 대중화 프로젝트는 ‘계몽’이 핵심이다. 민중/대중/시민/일반인의 삶에 밀착되어 역사에 관심을 촉발하자는 의도다.12) 이러한 움직임은 역사가 인류의 실존에 해답을 쥐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역사철학이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다. 문학의 역사 재현도 가해 주체조차 가려보지 못하는 맹아적 단계에서 탈출하여 자유의지를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발전해 왔다. 「팔월극장」도 이러한 맥락으로 읽힌다.


   “시계가 스포티하면서도 여성스럽다. 첫눈에 반할 외모야. 근데 이 멋스러운 시계를 왜 나한테 줘?”

   “넌 시간이랑 친하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나 보네. 골동품 같은 시계를 나한테 주고. 나는 남방을 오래 입어서 특특해지면 염료를 사다가 물을 들여. 그럼 새것 못지않아져. 꿈도 그렇지 않을까? 빛이 퇴색하면 다시 색을 입히면 되잖아. 순전히 내 스타일로.” (36~37쪽)


   영진은 엄마에게 선물 받은 시계, 자기 신체 일부나 다름없는 손목시계를 윤희에게 건넨다. 영진의 의식을 마지막까지 붙잡은 존재는 윤희였다. 윤희와 영진은 시계를 통해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는 동일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극장 안의 인물이 영진이라면 윤희는 극장 밖의 인물이다. 영진은 극장 안에서 실패했으나, 극장 밖의 윤희는 직장생활과 김밥 장사를 병행하며 현실에 맞선다. 영진은 죽음의 시놉시스를 썼으나 영화 밖 실제 세계에서 윤희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두 사람은 생존이라는 고단한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자기 세계를 구축해 왔다. 김설원 작가가 「팔월극장」의 여성들을 통해 보여주는 ‘실존의 시놉시스’는 ‘자유의지의 존엄성’이다. 

   영진은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단을 오가면서도 4‧19정신을 영화에 담아내려 했다. 「팔월극장」이 호명한 4‧19 역사는 인간의 실존과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가 사회 권력의 비정상적인 통치 행위임을 밝힌다. 문학은 시대를 고민하고 억압에 저항하며, 미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인간 실존의 무대다. 문학은 정상 사회를 지향한다. 김설원 작가와 영진, 윤희(청년 세대)가 다시 쓰는 ‘삶의 시놉시스’는 새로운 시대, 꿈의 무대에 오를 것이다.


1) 김기봉,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문학과지성사, 2018, 140쪽.

2) 테리 핀카드, 서정혁 역, 『역사는 의미가 있는가』, 그린비, 2024.

3) 강순전, 『정신현상학의 이념』, 세창출판사, 2016.

4)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 문학과지성사, 2015, 29쪽.

5) 김설원 작가는 2002년 「은빛 지렁이」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별 다섯 번」으로 200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상을, 2019년 『내게는 홍시뿐이야』로 제12회 창비 장편소설 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팔월극장」으로 2024년 제16회 현진건 문학상 본상에 당선되어 작가의 역량을 다시 보여 주었다. 단편집 『은빛 지렁이』를 포함, 장편소설 『나의 요리사 마은숙』 등이 있다.

6) 김설원, 「팔월극장」, 김설원 외 6인, 『현진건 문학상 작품집, 팔월극장』, 화니콤, 2024, 18~38쪽.

7) 하이데거, 이기상 역, 『존재와 시간』, 까치글방, 159~170쪽.

8) 푸코, 문경자, 신은영 역,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활용』, 나남, 1984.

9) 에밀 뒤르케임, 황보종우 역, 『자살론』, 청아출판사, 2019.

10) 박상우, 「잘 여문 과일의 씨앗처럼 견고한 중심성」, 김설원 외 6인, 『현진건 문학상 작품집 팔월극장』, 화니콤, 2024, 8쪽.

11) 마르틴 뤼케, 이름가르트 췬도르프, 정용숙 역, 『공공 역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20, 29~30쪽

12) 이하나, 「풍부한 현실, 이론의 빈곤」, 이하나 외 23인 공저,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 푸른역사, 2023, 30~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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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응답* ― 한강과 90년대 문학의 (비)정치적 감수성에 관하여 최진석 1. 감수 능력과 문학 2024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롬의 콘서트홀에서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그 주인공은 한국의 소설가 한강.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여러 작품 중 『소년이 온다』를 대표적으로 거론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평가했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과 고통의 참화를 세계 시민들의 보편적 공감으로 끌어올린 문학적 성취에 관해서는 앞으로 끊임없이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직전에 벌어진 사건, 즉 광주의 역사로부터 44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계엄이 재연되었다는 점에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사태의 정치·사회적 후폭풍에 대해서는 일단 말을 아끼자. 지금은 한강의 문학적 성취가, 더 정확히 말해 ‘노벨상 수상’보다는 작품 세계를 통해 표현해 낸 ‘문학적 울림’으로서의 성취가 어떤 토대에서 나온 것인지, 작가 개인의 재능을 넘어서 어떤 시대사적 배경으로부터 발아한 것인지 묻는 것이 더욱 유익할 성싶다. 만일 그것이 작가의 개인적 재능에 전적으로 기인했다면 우리는 그에 더 보탤 말이 없다. 하지만 이로부터 한강으로 상징되는 한국문학의 ‘높이’나 ‘폭’을 운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뿌리를 내린 문화적 감수성의 토양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감수성이란 묻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것을 가시화하는 여러 지표를 선택하고 분류하는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감수성을 정의하고 실체로서 규정짓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실증성이 신뢰의 유일한 담보물이 되는 우리 시대에 주관성과 모호성으로 둘러싸인 이 감각의 구성물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어쩌면 감수성이란 실물을 통한 증명의 문제라기보다 그에 다가서는 자가 감수(感受)하여 공명함으로써 받아들여야 할 경험은 아닐까?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글쓰기를 실천해 온 한강과 그의 시대는 이 같은 공감적 경험의 지평선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70년대생 작가들은 9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문학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1970년생 한강의 경우 93년에 시로, 94년에 소설로 등단했다. 그럼, 90년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알다시피, 그 시기는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진 직후이며, 민족‧민중문학으로 대변되던 이전의 흐름과 ‘다른’ 의미에서의 새로운 문학이 모습을 드러내던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명시적인 사회‧정치적 의제가 문학장에서 빠져나가고 보다 자유롭고 유쾌한 감성으로 충전된 ‘문화의 시대’가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말이었다.1) ‘서태지와 아이들’, ‘무라카

  • 관리자
  • 2025-01-01
시간의 재생, 재생 없는 공간

시간의 재생, 재생 없는 공간 - 『사랑의 꿈』과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함께 읽기1) 이성민 1.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 모더니티를 역사 속에서의 위치 상실로,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망각해 버린 시대”2)의 지배적 징후로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해 어떤 근본적인 단절이 우리 시대와 그 이전 사이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이전과 같은 역사적 방식으로는 우리가 어떤 시공간 속에 위치하는지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제임슨의 어법을 따르자면 포스트모던 감각은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표출되는데, 이를테면 깊이의 상실과 역사성의 쇠퇴 및 그로부터 비롯되는 시간예술의 통일성 와해가 이에 해당된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시간성의 와해 이후의 예술, 즉 공간성이 점점 더 지배적인 문화 논리가 되는 예술 형식을 포스트모던 건축으로부터 읽어 내고 있다.3) 포스트모던의 하이퍼스페이스는 우리로 하여금 공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을, 완전히 균질해져 버린 탈역사의 공간 내부를 영속적으로 떠도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우리는 이제 방향감각과 목적(telos)을 상실한 채 무한한 패스티시만이 잔존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것 같다. 상술한 시대감각을 하나의 전제로서 미리 염두에 둘 때,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문이 우리 앞에 출현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4) 물론 각 개인은 위도와 경도로 이루어진 하나의 좌표 위를 점유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월가 점령 이후의 ‘신냉전’ 시대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질문하는 위치는 그러한 3인칭 좌표의 개념이 아니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하나의 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도 좋을 것이다. 실존의 1인칭 관점에서 올바르게 보았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스스로의 삶이 속해 있는 1인칭 좌표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려 할 때, 그런 시도는 곧바로 난관에 봉착하며 미궁으로 좌초되고 만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과 내 행위 역량을 감소시키는 것들의 연쇄는 너무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데, 바다 건너편에서 발생한 가뭄이 선물시장의 원두 가격 상승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거미줄처럼 얽힌 시장-신의 불가해한 변화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연기(緣起)는 축자적인 진실이기 때문이다. 내 위치, 내가 나아가는 하나의 화살표, 나를 형성하는 기억과 기대의 교차점은 지구 전체와의 공동 실존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지구를 실존의 토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가 지구 위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감히 사유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이미 말했듯 올바르게 본다는 것의 문제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나 자신의 실존, 나의 시공간이 속하지 않는 담론의 역사, 실존과 담론 바깥에 있는 실재적인 것의 작용을 함께 사유할 때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존-담론-실재의 이음새를 엮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처럼 느껴지고, 나를 살게 하는 무한한 연쇄의 무게 앞에서 사유는 한없이 무기력해

  • 관리자
  • 2025-01-01
이등시민과 세계시민 사이

이등시민과 세계시민 사이 ― 소수자 시민권의 기획과 해외 이민의 상상력 오혜진 ‘탈조선’이라는 모험과 자기 계발의 윤리 2015년을 기점으로 확산된 ‘헬조선’ 담론은 계급 세습이 고착화된 한국사회를 풍자하는 ‘수저론’과 결합하며 당대 가장 대중적인 정치 담론으로 회자됐다. 잘 알려졌듯 이 담론은 한국사회를 더는 진보의 기획이 불가능할 정도로 도태된 미개한 공간으로 정의하며, 젊은 세대를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호명하려는 기성세대의 욕망 또한 단호히 거절한다. 헬조선 담론과 함께 부상한 ‘죽창론’ 역시 ‘리셋’에의 강렬한 열망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회변혁에 대한 의지라기보다는 ‘죽으면 끝’이라는 자기 파괴의 제스처에 가깝다고 해석된다.1)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2015)2)는 청년 세대의 분노와 좌절, 자조의 정동이 주조한 헬조선 담론을 발 빠르게 포착해 선동적인 대중 서사로 가공한 사례다. 전작들에서 ‘자살’(『표백』, 2011)과 ‘덕질’(『열광금지, 에바로드』, 2014)을 통해 “저항하는 잉여”3)로서의 청년 형상을 부조한 바 있는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에서 ‘해외 이민’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출한다. 다만 그가 모종의 “도발”4)을 의도한 것과 달리, 독자들에게 이미 ‘탈조선’의 상상력은 불온하다기보다는 또 다른 차원의 ‘노오력’을 요하는 규범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소설은 ‘해외 이민’이라는 선택지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두 가지 정황을 제시한다. 하나는 ‘평범한 여성’은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등시민”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싫어서』, 44쪽)라는 진단이 ‘홍대 나온 20대 후반 여성’ ‘계나’의 자기인식이다. 즉 계나는 학벌과 외모, 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파악한다. 또한 그는 어릴 적 자신의 할머니가 새벽에 폐지를 줍기 위해 무단 횡단을 하다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다고 회고함으로써 ‘폐지 줍는 할머니’의 형상을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이자 비참한 미래로 의미화한다.5) 다른 하나는 소수자들이 연대해 사회구조를 변혁하고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일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 관리자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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