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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오래될 대한민국 청소년 SF

  • 작성일 2022-12-01

[비평 / 2022년 문학비평활동지원사업 선정작



오래된, 오래될 대한민국 청소년 SF

- 한낙원 장편 『금성 탐험대』가 지닌 값어치 짚어 읽기



정소금




1. 우주생물학자와 천체물리학자를 꿈꿀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은 2021년 10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하였고, 2022년 8월에는 달 탐사선을 발사하였다. 그리고 2024년까지 사람을 달에 다시 보내고 2028년부터는 사람이 항상 머무는 상주 기지 운영을 목표로 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에도 열 번째 참여국이다. 그렇다면 우주 개척 시대에 발맞추어 우주생물학자와 천체물리학자를 꿈꿀 독자들에게 대한민국 청소년 SF는 어떤 상상을 펼쳐 보여 주고 있을까?
고(故) 김이구는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뒤 더욱 치열해진 그 당시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착상을 얻”1)어 한낙원이 『금성 탐험대』(《학원》, 1962년 12월호~1964년 9월호 연재)를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당시에는 머지않은 미래인 1980년에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이 금성을 탐험하는 것으로 설정하였으나, 21세기인 오늘에도 유인 우주선의 금성 탐험은 요원한 상황”2) 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지난해 ESA는 ‘인비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다빈치+’와 ‘베리타스’라는 금성 탐사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각각 발표했다. 러시아도 1984년 종료된 베네라 계획을 잇는 ‘베네라-D 계획’을 내놓았고 인도는 슈크라얀 1호라는 금성 탐사선 발사를 준비 중이다.”3)
그러므로 2013년에 재출간 된 “한국 SF의 선구자 고(故) 한낙원(1924~2007)의 대표작” 『금성 탐험대』(창비)가 지닌 값어치를 짚어보고, 대한민국 청소년 SF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아도 좋겠다. “걸어온 발자국을 확인하는 일은 우리나라 청소년 SF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4) 이고, 바야흐로 금성이 주목받는 행성 자리를 꿰찬 까닭이다.


1) 김이구, 『금성 탐험대』 해설, 창비, 2013, 395쪽.
2) 김이구 엮음,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 해설, 현대문학, 2013, 557쪽.
3) 김선미, “금성, 온실효과로 460도 불지옥… 축복의 땅 지구 지켜내야”, 〈동아일보〉, 2022.11.07.
4) 졸고, 〈대한민국 SF 동화에서 AI 교사는 얼마나 진화하였나?〉, 《어린이와 문학》 174, 2021 봄, 201쪽에서 차용.



2. 과학적 설정이 치밀한 SF

2-1. 금성에서 마주친 지적 외계 생명체


“금성은 크기와 부피가 지구와 비슷하지만 지구의 90배가 넘는 대기압과 황산 구름, 460도 이상의 고온에 시달린다.”5) 그리고 세계 3대 SF 작가 아서 C. 클라크는 1973년에 처음 발표한 『라마와의 랑데부』(아작, 2017)에서 달 착륙 1세기 반 이후 시대에 헤르미안(수성에 이민 간 지구인과 그 후예들)을 상정하면서도 짙은 가스로 뒤덮인 금성에서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설정하였다.
그런데 1960년대에 발표한 『금성 탐험대』에서 미국 우주선 V.P.호(Venus Pioneer 금성탐험호)와 소련 우주선 C.C.C.P.(에쎄쎄르)호가 1980년에 도착한 금성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의 탐험 대원들은 금성인이 아니라, 켄타우로스 성좌에서 온 알파성인과 마주친다! 한낙원은 막연히 외계에서 태양계를 방문한 지적 생명체가 아니라, 우리 은하에서 지구로부터 4. 3광년 거리에 있는 알파 센타우리에 지구보다 더 발달한 문명을 상정하였다.


5) 김선미, 앞 기사글.


알파성이란 우리 지구에서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항성(恒星)이다. 이 별은 지구에서 보면 남쪽 하늘에 보이는 켄타우로스 성좌에서 제일 밝은 별이 된다. - 253쪽


알파성에서 우리 지구까지는 빛의 속력으로도 4년 4개월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것을 그들의 발달한 우주선으로 달려온다고 해도, 즉 거의 빛의 속력으로 달리는 우주선으로도 7년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 254쪽


세계 3대 SF 작가 가운데 로봇 3원칙으로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는 1986년에 발표한 『파운데이션과 지구』(황금가지, 2013)에서, 지금으로부터 2만 년도 더 지나서 인류가 우리 은하 곳곳으로 퍼진 은하 제국을 상정하고, 인류 기원 행성인 ‘지구’를 찾아 나선 주인공이 방문한 곳을 ‘알파’라고 부른다. 그리고 알파는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떠나 이주한 사람들이 정착한 ‘새로운 지구’가 있는 곳, 바로 알파 센타우리이다.
그러므로 알파 센타우리에서 지구인 몰래 태양계 다른 행성을 방문한다는 전개 하나만으로도 『금성 탐험대』는 값어치가 있다. 이것은 우주복에서 산소가 새고 운석이 우주선을 뚫고 들어오는 사건과 우주 장례 모습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설정은 금성 물 속에 사는 거룡(巨龍), 사람의 곱이 됨직하게 큰 게, “올빼미같이 둥근 두 개의 눈, 매부리코처럼 굽은 주둥이, 황소같이 위로 뻗은 뿔까지 달린 괴조(怪鳥)”에다가 심지어 공룡까지 출현시킨 장면마저 상쇄할 정도로 독특한 발상이다.
“2020년 9월 영국 카디프대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금성 대기 구름에서 수소화합물 포스핀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금성 탐사에 다시 불이 붙었”는데, 포스핀은 “산소가 없는 곳에서 서식하는 혐기성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배출할 수 있다고 하므로, 금성은 대기가 생물 거주 후보 영역”6) 이라고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한낙원의 생각처럼 외계 생명체가 금성 지하에 터를 잡았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은 『금성 탐험대』를 다시 꺼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덧붙여 살짝 과장하자면, 세계 3대 SF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이 단편 「지구의 푸른 산」(『세계 SF 걸작선』, 도솔, 2002)에서 상정한 금성의 도시 ‘비너스버그’가 세워질 때까지 『금성 탐험대』는 읽힐 수 있겠다.


6) 조승한, “태양계 불지옥 금성에서 생명체 흔적 찾는다”, 〈동아사이언스〉, 2021.06.18. 정리.




2-2. 외계 생명체와 소통하는 방식


눈과 입이 유난히 크고, 코는 구멍이 벌어졌고, 귀는 당나귀 귀처럼 양옆으로 솟아 있다. - 235쪽


한낙원은 “양파 같은 얼굴, 세 개의 눈과 한 개의 귀, 발과 손은 두 개에 가슴통만이 유난히 크”다는 알파성인의 눈, 코, 입, 귀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사소통 방식을 제시한다. 이 장면은 「네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16)에서 인간 언어학자가 “흘려 쓴 낙서 같은 느낌의 문자”를 쓰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와 “글자 쓰기를 통해 언어 습득 절차를 진행”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과학 발전의 시대적 한계로 『금성 탐험대』에서는 의사소통 수단이 “흰빛 비닐 같은 종이와 그 위에 글씨가 써지는 연필”에 그쳤지만, 서로 다른 종족이 언어로 소통을 시작하는 모습은 한낙원이 테드 창보다 50여 년이나 앞서 보여 준 셈이다.


치올코프 교수는 먼저 세모꼴을 그리고, 그 두 개의 밑각은 같다는 것을 손으로 시늉해 보였다. - 241쪽


이쪽이 나무를 그리고 나무라고 발음하면 저쪽이 나무라는 글자와 자기들의 발음을 하였다.
이와 같이 차례로 그림과 글자를 써 가는 가운데 두 개의 다른 문자들이 어떻게 다른지, 발음은 어떻게 하는지 깨닫게끔 되었다. - 251쪽


우선 사람 몸에 관한 낱말부터 시작하여 서로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것부터 깨우쳐 나갔지만 워낙 풍속이 다르거나 저쪽이 있고 이쪽이 없거나 또 그 반대의 경우에는 도무지 생각이 통하지 않아 서로 답답해하였다. - 251쪽


그리고 의사소통 결과, 알파성인이 금성에서 “우주선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금속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기지를 만들어 대규모 광석 채굴 시설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상황은 헬륨3 채굴 목적으로 활발해진 달 탐사가 겹쳐지며 설득력을 획득한다.
게다가 알파성인은 “겉으로 보기엔 알파성인과 비슷하고 어떻게 보면 피부색이 좀 다른 것 같”은 로봇을 만들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달한 종족이지만, 로봇 “머리에는 작은 안테나가 붙어 있고, 옷의 빛깔은 알파성인이 밝은 하늘색인데 비해 로봇은 엷은 오렌지빛”이라면서 생명체와 무생물을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더구나 외계 생명체도 로봇 3원칙을 바탕으로 로봇을 제작하리라는 설정은 안드로이드와 공존할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특이점과 맞물려 최근 SF 작품들에서 로봇을 너무 쉽게 인간과 동일시하는 문제를 재고하게 만든다.



2-3. 치밀한 과학적 설계는 SF 생명력


지구와 태양 중력이 평형을 이루는 칭동점인 라그랑주 포인트는 모두 다섯 지점(L1~L5)이 있다. 2022년 9월에 다누리호가 달궤도전이방식으로 지구로 선회한 지점은 지구에서 태양 방향으로 150만㎞ 지점인 L1이고, 2022년 1월에 JWST(James Webb Space Telescope,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가 안착한 L2는 지구에서 태양 반대 방향으로 150만㎞ 지점이다. 그런데 작가가 L2를 지구와 달 사이에 두거나 L1과 L2 위치를 착각하고 뒤바꿔 설계한다면, 작은 오류 하나가 작품 전체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그러므로 SF에서는 과학적 사실에 어긋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금성 탐험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한낙원은 과학적 설정을 두루뭉술 지나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금성에서는 하루가 얼마나 긴지는 잘 몰랐지만, 그들이 일어난 지금은 여전히 밤이었다.
대원들은 일어나자 이내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금성에서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이지만 그 서쪽 하늘은 밝아오는 대신 번개만이 번득였다. - 146쪽


지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지만, 시계 방향으로 자전하는 금성에서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 그리고 지구는 24시간 주기로 자전하지만, 금성의 자전 주기는 243일이다.
또 금성에는 “탄산가스가 15퍼센트”라면서 “지구의 탄산가스는 0.03퍼센트”라고 나오는데, 『최신 대기과학용어사전』(한국기상학회, 기상청, 시그마프레스)에 따르면 지구 대기는 질소가 78%, 산소가 21%, 이산화탄소가 0.035%(350ppm)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실제로 “금성의 표면은 대기의 96%가 이산화탄소7)” 라지만, 한낙원은 금성에 거대 생명체를 여럿 상정하였으므로 탄산가스 비율을 90퍼센트 이상이라고 하였더라면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질 뻔하였다.


7) 곽노필, “금성, 외계생명체 탐사의 희망이 되다”, 〈한겨레〉, 2020.09.21.


금성의 공기는 지구의 공기 성분과 비율이 크게 달랐다. 즉 산소가 극히 적은 데 비하여, 탄산가스가 엄청나게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밖에 질소와 소량의 아르곤, 네온 등이 포함되었지만, 문제는 탄산가스 포함량이다. - 133쪽


이처럼 꼼꼼한 서술은 『금성 탐험대』뿐 아니라, 또 다른 장편 「잃어버린 소년」(『한낙원 과학소설 선집』, 현대문학, 2013, 89~260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월세계’에도 주거지를 설정하였는데, 지구 중력 1/6인 달에서는 지구에서보다 키가 더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월세계에서 태어나 자란 용이는 “열여섯 살이지만 어른처럼 몸집이 좋았다.”고 서술하였다. 또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를 “약 23만 9천 마일”이라고 나타내었는데, 오늘날 실제 거리 384,000㎞에 가깝다.
「잃어버린 소년」은 “1963년 배영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후 … 1996년에는 ‘정원’에서 다시 『미래 소년 삼총사』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과학소설은 특성상 금방 낡은 작품이 될 수 있는데,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발표한 작품이 30여 년 뒤에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되었으니 상당한 생명력을 지닌 작품이다.”8)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적 배경은 1995년인데, 「잃어버린 소년」이 〈연합신문〉에 1959년 12월 20일부터 1960년 4월 7일까지 연재되던 때로부터 35년 뒤이다. 그리고 작가가 상정한 때로부터 27년 지난 2022년 현재, “한라산 우주과학연구소” 대신, 대전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전남 고흥에 나로우주센터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 “우주정거장 코레아호”가 실현되지 않은 까닭에, 대한민국 우주정거장이 언제쯤 현실로 이루어질지 기대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적 설정이 치밀할수록 SF 서사의 생명력은 길다. “영사기, 녹음기, 책” 같은 시대적 결과물들에도 불구하고 『금성 탐험대』는 대한민국 청소년 SF 발전에 기여할 값진 유산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소년」과 함께 반세기가 넘은 ‘오래된 SF’이면서 ‘오래될 SF’로서 매력을 갖는다.


8) 김이구, 〈과학소설 『잃어버린 소년』 연재 시기 찾기 분투기〉, 《어린이책이야기》 20, 2012 겨울, 54쪽.



3. 미래를 긍정하는 SF


“지구에도 원래는 탄산가스가 많았지만 식물들이 자꾸 무성하면서 탄산가스를 빨아먹고 산소를 내뱉기 때문에 점차로 산소가 많아지고 탄산가스가 적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사람의 힘으로 그런 과정을 빠르게 할 수 있다면 금성도 제2의 지구가 될 게 아닙니까?” - 135쪽


“찬란한 햇살, 상쾌한 공기, 우짖는 새소리, 해죽이는 꽃과 이슬들…… 이런 아침보다 인류에게 물려줄 더 좋은 유산이 어디 있어요.” - 149쪽


모리스 교수와 박철 후보생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낙원은 금성의 지구화를 염두에 두면서도, 지구 환경 보존을 강조한다. 미국 금성탐험호 선장 윌리엄 중령이 이미 인류는 그 유산을 받고 있다고 하자, 모리스 교수가 “인류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이 우주에서, 적어도 우리 은하에서는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 가능한 유일한 행성일 수도 있는 지구의 빛나는 아침을 다음 세대에 물려 줄 수 없을지도 모를 기후 위기에 봉착해 있으므로 더 의미심장하다.
흔히 SF로 제시되는 재난 서사는 경고 의미지만, 『금성 탐험대』에서는 세계 평화와 인류애를 언급하며 긍정적인 결말을 수렴한다. 소련 C.C.C.P.호 선장 니콜라이 중령은 지구로 귀환하는 대원들에게 하와이 우주 공항과 달을 왕래하는 우주선에서 일어난 스파이 사건들을 고백하며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지구인 니콜라이’가 된다.


“지구는 하나야……. 금성에 와 보고…… 나는 그것을 알았어. ……모든 민족은…… 적이 될 수 없어……. 형제야……. 싸워선 안 돼…….” - 383쪽


2020 휴고상 중편 부문 수상작 「비상용 피부」(N. K. 제미신, 『SFnal 2021 Vol. 2』, 허블, 2021)에서는 여러 국가를 움직였던 형성자들이 지구를 떠나자마자, 뒤에 남은 사람들은 “단지 서로를 돌보기로 결심”함으로써, “모두에게 살 곳을 갖게 하고, 모두에게 읽고 쓰고 충만한 삶을 살도록 보장”해 준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인류가 함께 노력한 결과 비약과 도약을 통해 회복시킨 지구를 보여 준다. 그리고 김초엽은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 2021)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포스트휴먼의 공존으로 지속 가능한 지구를 그려낸다. 22세기에 인재(人災)로 일어난 더스트로 말미암아 멸종의 코앞까지 다가섰던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곳곳으로 흩어진 프림 빌리지 사람들이 모스바나 군락지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킨 덕분에 굳건히 살아남는다. 이처럼 SF가 암울한 미래 대신 바람직한 미래를 맞이할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우리 행성과 인류에 대한 책임감을 북돋울 수 있겠다.
한낙원은 『금성 탐험대』뿐 아니라 단편에서도 미래를 긍정하는 결말을 장만한다. 「어떤 기적」(『한낙원 과학소설 선집』, 현대문학, 2013, 73~85쪽)에서는 “천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을 마련해서라도 우리 젊은이가 외로이 우주를 떠돌지 않도록 마무리한다. 주인공 송찬은 우주정거장 ‘배달호’ 용접 수리 중에 로프가 끊어져 “검은 먹을 푼 것같이 캄캄한 하늘”, “소리도 무게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퍼진” 우주를 혼자서 끝없이 흘러가다가 기적적으로 운석에 부딪히는 바람에 방향이 바뀌어 우주정거장 가까이 되돌아오다 마침 수색 나온 우주 트럭에 구조된다.


어느 이름 모를 운석이 침팬지 보비를 데려가고, 또 어느 이름 모를 운석은 송찬의 생명을 건져준 것입니다.
이런 일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아니 천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이었습니다. - 85쪽



4. 우주 개척 시대, 대한민국 청소년 SF


“소설에서는 한국의 청년들이 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 탐험을 한다. 미래에 한국의 발달한 과학으로 한국이 우주선을 쏘아 올려서 금성 탐험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면 어떠했을까?”
김이구는 『금성 탐험대』 해설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을 담아 묻는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제작한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 인도와 함께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가진 일곱 번째 우주 강국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 청소년 SF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삼은 생활 서사나 지구로 찾아오는 외계인 서사에서 벗어나, 국가 대표가 아니라 인간 종족을 대표하여 우주로 나아가는 주인공을 만나기 바란다.
이 지점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가 금성에 기지를 건설한다는 설정으로 치밀한 과학적 설계와 긍정하는 미래를 보여 준 『금성 탐험대』가 지닌 값어치는 독보적이다. 그러므로 걸어온 발자국으로 살펴본 『금성 탐험대』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반세기쯤 거뜬히 읽힐 대한민국 청소년 SF가 출현할 때이다.
우주 개척에 앞장설 우리 청소년 독자들이 두 발을 지구에 딛고 서서 먼 우주를 항해할 뜻을 품을 수 있도록 대기권 너머와 태양계 너머를 보여 줄 SF, 더불어 다시 창백한 푸른 점과 지구돋이를 보면서 오늘 여기 바로 옆 사람에게 좀 더 상냥해지도록 이끌어 줄 SF를 기다리며, 칼 세이건의 글로 끝을 갈음한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 이 조그만 점의 한 구석의 일시적 지배자가 되려고 장군이나 황제들이 흐르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또 이 점의 어느 한 구석의 주민들이 거의 구별할 수 없는 다른 한 구석의 주민들에게 자행했던 무수한 잔인한 행위들, … 사진은 우리가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9)


9)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현정준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26~27쪽.



* 이 글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비평활동지원을 받아 집필하였습니다.














정소금
작가소개 / 정소금

2021 《어린이와 문학》 신인평론가상 수상. 《아침햇살》, 《어린이책이야기》, 《시와 동화》, 《어린이와 문학》, 《한국동시조》에 비평 게재.


《문장웹진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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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1
방의 병리학

방의 병리학 ㅡ 유선혜와 차현준의 시를 중심으로 송현지 1.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몸 1929년,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내세운다. 이 요구는 여성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았던 사회적 조건을 폭로함으로써 당시에도 강한 호소력을 가졌지만, 그 구체성과 상징성으로 인해 약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되곤 한다. 특히 ‘자기만의 방’이라는 표현은 독립을 위한 물질적 요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며 여성 창작자만이 아닌, 청년 등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다루는 데까지 확장되어 활용되어 왔다.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금융 자기 계발서의 제목이나 그들의 주거 형태를 분석하는 사회학적 키워드로 변주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울프가 제시한 이 조건은 단순히 경제적 여유를 갖추거나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짚어 둘 필요가 있다. 당시 여성의 몸이 가사 노동과 돌봄을 위해 수시로 침범되며 공동의 재화처럼 사용되었음을 떠올려 본다면, 정기적 수입의 필요성은 생존을 이유로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양도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며, 독립된 방에 대한 요청은 몸이 침범당하지 않을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울프가 요구했던 저 경제적·물리적 조건이란 타인에게 뺏긴 자신의 몸을 되찾아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점에 기대어 오늘날 청년 세대의 거주 불안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이 아닌, 신체의 주권 문제와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 고시원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정민우가 그들의 불안정한 거주 자체가 아닌, 잦은 이동으로 인해 소유물을 버리는 일에 익숙해진 그들이 삶을 ‘요약’한 채 살게 되었음을 포착한 것처럼 말이다.1) 이처럼 방의 문제가 주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게 되는지를 규정하는 조건으로 작용하며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을 살펴보는 작업은 소재주의적인 탐색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임대된 방에 머무르는 유선혜 시의 화자와 내면의 방을 관리하는 차현준 시의 화자를 중심으로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고,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 그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방’을 상상하고 변형하며 자신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청년들의 인식 구조를 가늠해 보려 한다.2) 2. 임대된 몸과 구멍의 존재론: 유선혜의 경우 유선혜의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에서 청년 인물들은 주로 좁고(「흑백 방의 메리」), 어두운(「Nirvana」) 방에 머문다. “조립형 서랍장이 쓰러져가”는 방에서 “싸구려 보드카와 오렌지주스를 종이컵에 섞”(「잡종의 별자리」)어 마시고, 여러 개의 방이 있는

  • 관리자
  • 2026-03-01
반복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반복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ㅡ 김엄지론1) 안세진 1. 색소폰 연주와 살아남은 소설들 내가 살고 있는 집 앞 하천 굴다리에는 매일 저녁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가 있다. 처음에는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있었다. 어제도 있었다. 당신은 테이프 반주에 맞추어 끈적한 유행가를 연주하는 중절모 쓴 노신사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풍경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벽을 보고 색소폰을 분다. 반주도 없고 관객도 없다. 중절모는 쓰고 있다. 한 이십 년쯤 들었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아직도 그가 대체 매일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 같은 프레이즈가 툭툭 던져지고 호흡을 고르는 듯 어색한 침묵이 길게 흐른다. 몇 개의 음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멜로디가 수십 번 반복되기도 한다. 아무리 들어 보아도 그것은 노래 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오래 연주하지도 않는다. 한 시간쯤 지나면 색소폰을 케이스에 넣고 어딘가로 털레털레 사라진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매일 무엇인가를 연주하고 있다. 어떤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유 모를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무엇인가 반복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는 장인(匠人)일까, 아니면 광인(狂人)일까. 언제부터인가 김엄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색소폰 소리를 듣는다. 무엇인가가 소설 속에서 그저 미친 듯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엄지의 연주가 시작된 순간은 언제였을까? 정확히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겠다. 그때 데뷔 육 년 차의 소설가 김엄지는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문학과지성사, 2015)와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민음사, 2015)라는 두 편의 책을 거의 동시에 문단에 상재했다. 전자는 그의 등단작 「돼지우리」부터 시작해 비교적 ‘단편소설’의 통상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는 초기 작품들이 모여 있는 소설집이었고, 후자는 그가 최근 발표했던 각종 소설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조합되어 만들어진 그야말로 괴이쩍은 장편소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지만 김엄지의 소설은 명백히 전자에서 후자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개념 상태로 널브러져 있”2)는 오피스 맨들의 기이한 무기력은 이미 그의 초기 소설이 잠시 펼쳐 보였던 ‘씹’, ‘뻑’, ‘좆’의 치기 어린 발랄함을 모조리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야흐로 - 이후 김엄지의 소설을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규정하게 될 - “삶의 무게, 아니 ‘무게 없음’을 형상화한 듯한 하나의 형식”3)이 발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엄지의 문체(style)는 사실상 그때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성의 없이 툭툭 끊어지는 문장, 몇 페이지를 채 이어 가지 못하고

  • 관리자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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