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산책과 가을의 일

  • 작성일 2024-10-01
  • 조회수 318

[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수 없어 다른 자세로 읽었을 뿐이다. 읽기와 쓰기로 점철된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온 것일까. 적어도 자세에 대해서라도. 시간이 누적되어 온 결과가 몸 곳곳에서 나타난다. 

   3년째 쓰고 있는 장편소설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을 부상당한 채 뛰고 있는 상태랄까. 이미 나는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고 원래 고질적으로 아프던 곳에 통증을 느낀 지는 제법 되었고 새로운 곳도 아프다. 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인생 첫 소설을 그것도 장편소설을 이게 소설이긴 한 건지 의심하면서 한 달 만에 썼던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느리게 뛰면서 완주를 고민하게 되었을까.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 마감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청탁이나 계약이라는 외부적인 마감이 없는 작가였다. 대부분의 마감은 내가 스스로 약속한 마감이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만큼 지키기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스스로 마감을 만들고 내가 만들어낸 마감을 지키기 위해 다이어리를 펼친다. 7월은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지냈다. 올해의 계획은 장편소설을 끝내는 것인데 하반기의 시작이니 아직 여유가 있구나, 하면서. 단편소설 초고를 하나 쓰면서 장편소설의 뒷부분을 고민하면 되겠다 싶었다. 소설에 대한 계획이 언제나 제일 먼저이다. 그러나 파워 J가 무색하게 요즘 나는 되는 대로 쓰면서 산다. 

   어떤 날은 한 줄 쓰고 오늘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한 것 같은 문장이 있다. 어떤 날은 어떤 생각을 해내고 오늘 할일뿐 아니라 일주일 치를 다 해낸 것 같은 생각이 있다. 나는 한 문장을 썼고 이후에 어떤 문장으로 풀려 나갈지 모를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 문장과 생각이 산책 도중 떠오르면 걸음을 멈추고 메모를 한다. 

   한 문장과 하나의 생각은 단편소설에서는 제법 큰 부분이지만 장편소설에서는 조금 괜찮은 부분일 뿐이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쓰레기일지라도 초고를 다 써야 마음이 놓이는데 장편소설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나는 2번째 소설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생각이 날 때 단편소설도 써두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편소설에 비해 단편소설의 초고를 끝내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나는 완성의 기쁨을 느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산책을 하면서 에세이에 뭘 쓰면 좋을까도 생각해 본다. 소설이 아니라 가볍기도 하고 아주 오래간만에 쓰는 에세이라 어렵기도 하다. 청탁이 오면 무엇을 쓸까를 생각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에 따른 문장을 틈틈이 모으다가 어느 시기쯤이 되면 파일을 새로 만들고 쓴다. 

   산책 도중 바라보는 것 중 제일 마음이 쓰이는 건 나무이다. 크기가 주는 존재감 때문일까. 신도시가 시작되는 곳에 이사를 온 이후 나는 나무가 심기고 자라고 죽는 걸 지켜본다. 나무는 새 터전에 자리 잡기를 종종 실패한다. 지난여름 산책에서 나에게 예쁨을 받았던 붉은 꽃이 아름다운 배롱나무들이 올해는 영 시들시들하다. 

   나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죽고 끝내 살아나기도 한다. 나무의 세계는 복잡하다.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걸 본 적이 있다. 반면 전체를 잘 살리기 위해 가지를 쳐야 할 때도 있다. 어떤 나무는 마른 채로 버티다가 정비 사업이 시작되면 둥지가 잘리고 뿌리째 뽑혀 나가서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집 앞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2층에 있는 작업실의 책상 앞에 앉으면 그 나무의 우듬지가 보인다. 작년 늦은 봄 원래 있던 나무가 죽어 새로 심은 나무이다. 그런데 이 나무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병충해에 시달렸다. 나무는 겨울이 되어 잎을 다 떨구더니 봄이 되자 다시 빠르게 잎을 틔었다. 건강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다른 집 느티나무가 잎을 틔워 우리 집 느티나무를 앞질렀다. 그리고 얼마 후 알았다. 우리 집 느티나무의 어떤 가지에는 잎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티나무는 반은 죽고 반은 산 채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책상 앞에 앉아 새들이 느티나무의 죽은 가지를 오가며 노는 것을 보곤 한다. 나는 요즘 새의 이름을 궁금해 하고 있다. 예전에 나무와 풀꽃의 이름을 궁금해 했던 것처럼. 오후 다섯 시의 산책로에 어김없이 나타나던 후투티, 공원 산책로에서 내 앞을 통통 뛰어가던 물까치, 그리고 뒷마당에 빨간 열매를 먹던 딱새, 물가를 유유히 헤엄치고 날아가는 오리와 백로까지. 하지만 내가 알아낸 이름들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곤줄박이로 추정되는 새가 찾아와 때죽나무 열매를 먹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더위에 지친 나무와 점점 더 무성해지는 풀들을 보면서 아주 가끔 산책을 하는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8월 마지막 주 매년 구입하는 다이어리의 전체 라인업이 공개되었다. 작년 다이어리를 보면서 뭘 살까 고민하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9월이 되면 미리 사놓는 다이어리 때문인지 한 해가 다 갔다는 조급함이 느껴지곤 한다. 추석 연휴도 있고, 그러고 어영부영하면 겨울이고 연말이고 새해이다. 

   다이어리 구입 시즌이 되면 올해의 목표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거의 매년 같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는 걸 안다. 소설, 운동, 외국어 같은 것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건 어쩌면 소설뿐일지도 모르며 내가 지속하는 것도 사실은 소설뿐이다. 

   새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은 내년에는 어떤 삶을 살지 생각하는 것이다. 주간이 가로형인 것이 나을까, 세로형인 것이 나을까. 내년에는 기록할 것이 많은 해를 살게 될까. 그냥 간단한 일정과 메모만이라면 A6로도 충분할 텐데. 루틴을 만들려면 시간 단위가 기록된 것으로 골라야겠지. 한 권에 모든 것을 통합할 건인가, 쓰임에 따라 노트를 분리할 것인가, 등등.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쓰면서도 이 고민을 매번 한다. 올해는 작업과 생활을 분리해서 2권의 플래너를 썼다. 소설 작업만 따로 기록하는 건 내가 지금 뭘 얼마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 괜찮았다. 날짜가 박힌 플래너 외에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노트도 함께 쓰는데 생각만 하고 있던 산책 노트를 내년에는 만드는 것이 어떨까. 

   고민은 끝나지 않았는데, 다이어리 판매 사이트는 오픈하자 서버가 다운되었다. 일요일인데 다들 이렇게 열심히 내년을 준비하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내년의 다이어리 구성을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구입은 단편소설 초고를 마무리한 후로 미룬다. 

   일주일 내내 문장 하나가 있는 것이 나은지 없는지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문장이 소설이 시작된 문장이라 있으면 주제가 선명해지지만 그래서 이야기를 한정시키는 건 아닌지 하는 고민. 일단 초고는 있는 채로 마무리하고 파일을 닫았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고민이 시작되면 판단이 잘 서지 않아 같은 자리를 계속 서성이는 꼴이 되고 만다.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고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초고를 마쳤으니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면 보일 것이다. 


   이 에세이만 마치면 이제 여름의 일이 끝난다. 조금 쉬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 가을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 장편소설을 다시 꺼내고 처음부터 읽고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쓰고 산책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의 다이어리를 사서 고이 모셔 놓을 것이다. 그 다이어리에는 ‘아무것도 아닌 날, 축하해’라는 문구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소설을 생각하고 쓰는 아무것도 아닌 날들 가운데 아주 가끔 특별한 날이 오기도 할 것이다. 

   연말이 오기 전에 초고를 마치고, 그렇게 해서 올 한 해를 이 장편소설의 초고를 마침내 완성한 해로 기억하고 싶다. 장편소설은 한 번의 완주 후에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니 내년에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든 해야겠지. 내가 충분히 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뛰지 않거나 뛰다가 멈추는 건 괴로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이렇게 주춤거리는 건 반드시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뛰게 하고 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 아무도 시키지 않은 소설을 계속 쓰는 일,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괴로워도 한다는 것, 괴로워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작업. 그것이 오래 소설 쓰는 자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그래도, 그래서 아는 것도 있다. 초고를 마치면 아주 잠깐이지만 뿌듯하고 내가 자랑스러울 것이라는 것을. 완주를 해낸 자만이 느끼는 그 마음을 향해 오늘도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추천 콘텐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로맨스

[에세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로맨스 손진원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그러면 지금 너의 연애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야?”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난, 2017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던 내가, 드디어 장르문학과 웹소설을 펴내는 출판사와 계약해 원고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근황을 전한 것이다. 이를 전해 들은 친구들이 축하의 말을 건네던 중에 나온 말이었다. 마침 나는 한창 연애 중이었으며, 막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참이었다.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농담이었다. 내 일상과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장르가 이렇게 적절하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누구든 던질 법한 농담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저 농담에 가볍게 대꾸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소설 내용을 듣고 싶어 하는 동기들의 기대를 애써 외면하면서, “설마, 내 연애사에 관심 있어 할 사람이 있을까?”라는 소심한 대답으로 일축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반박하면서도, 정작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필명은 비밀이라고 덧붙이면서. 동기들의 행동이나 발화의 내용이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움이 더 컸다고 해야 할까. 웹소설과 로맨스라는 말을 듣고도 저 농담을 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동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무척 놀라웠다. 우리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여러 수업을 같이 들었다. 수업에서 다룬 소설과 시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동시대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기며 잡담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K팝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나 마블의 영화 시리즈, 혹은 최신 일본 연재만화까지. 꽤 폭넓은 관심사를 공유했던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심도 깊이 읽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많은 텍스트에 열광했고, 그 콘텐츠의 팬을 자처하며 진지하게 그것들을 읽었다. 우스갯소리를 남발하는 것 같았지만 대중적이거나 마니악한 텍스트에 대한 나름의 ‘리스펙’을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하곤 했다. 그렇지만 동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웹소설, 로맨스라는 영역만큼은 문외한이었다. 뭐,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면 내 글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이 장르가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하면 되는 일이니까. 문제는, 그걸 설명하려는 것이 부끄러워서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맨스 팬이면서, 심지어 창작까지 시작한 내가 이걸 부끄러워한다고?’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에 반발심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튀어 오르던 반박의 말은 금방 흐지부지되었다. 사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로맨스라는 장르를 진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는 것보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로맨스를 공들여 설명하는 것을 새삼스러운 일처럼 여겨야 할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소위 B급 텍스트들에 대한 ‘리스펙’을 공유했던 동기들 앞에서조차 말이다. 부끄러움에 대한

  • 관리자
  • 2024-11-01
애도편지

[에세이] 애도편지 - 내 것이 아닌 모든 것들에게,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나를 김종연 1 믿음의 가장 큰 일은 믿음이다. 2 누리의 없음을 지체 없이 받아들였다, 라고 쓰고 그날은 무엇도 더 적지 않았다. 무용함의 유용함, 그 얇은 가지를 누군가 뚝, 뚝 부러뜨려 주고 있어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가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잃고 있었다. 무관심을 잃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가능성으로 비어 있다는 말과 같다. 다만 위로가 되는 건 불가능성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이다. 3 알고리즘은 상실을 알지 못한다. 까치발을 들고 불 꺼진 거실로 나가 물을 따라 마실 때, 나는 이것이 어디에서 연원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와 언제나 쉬이 잠드는 아버지 그 사이에, 눈과 귀를 잃은 누리가 누워 있곤 했는데. 가장 나중에 떠나는 것은 목소리일까 생각했다. 안락사를 하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귀가 살아서 모든 소리를 듣고 간다는데, 들었으니 해야 하는 말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해서라도 토해 내야 하는 그 마지막 말은. 불을 켜면 그 목소리가 들릴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누워 듣는다. 밤의 혼곤 속에서 들려오는 낑낑거림을.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그 소리를. 4 시(의) 구조는 무수한 병렬의 직렬로 존재한다. 불이 켜진 A가 불이 꺼진 B를 마주하여 밝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B의 밝음은 아니다. 그때 보이는 것은 B의 어두움이며, 동시에 B에게서 어두움이 발견될 만큼 충분히 밝지 못한 A의 어두움이다. 그 순간 둘 사이에서 C가 나타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그렇기에 존재를 주장할 권리를 가장 강력하게 획득하게 되는 그것. 그것은 몸 없이 보는 자다. 기관도 없이 기능하는 자다. 지워진 자는 무(無)가 아니다. 그것의 시선은 그것을 보려는 자의 시계에서 존재한다. 5 네가 기뻐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하겠지만, 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이다. 6 우리가 관찰하려는 것이 공기와의 접촉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조건을 마련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0%를 시작할 수 있는가? 0이라는 것의 공간을 어떻게 완벽히 비워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보여주기를 그만두고 비유가 되어 비유를 중단할 수 있는가. 7 누리를 보기 위해 카메라 앨범을 되감는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기 전에 끈다. 선언의 힘은 실패에 있다. 탑은, 사람이 아니라 탑에 의해 쌓이기 때문이다. 누리는 개의 나이로 백 년을 살았지만, 사람의 나이로 이십 년을 살았다. 나는 누리의 나이로 백칠십 년을 살았다. 너무 긴 시간은 종종 너무 짧게 축약된다. 누리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모두 삶으로 이어진다. 불가능이 있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가능성이 없어서 죽는 사람만이 있다. 꿈을 읽는 방법을 배운 뒤로 꿈은 내게 지나치게 직설적인 장면만을 보

  • 관리자
  • 2024-11-01
바다는 요약이 없다

[에세이] 바다는 요약이 없다 이서안 “샘, 꼭 전문 다 읽어야 해요? 수능에 안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매 수업마다 이런 대사를 읊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전문 줄거리 요약한 건 없나요?” ‘요약한 것?’ 가슴 언저리를 뭔가 콕콕 찌른다. 시간이 부족해 그것도 걷기 중에 영화 줄거리와 결말을 보는 내 모습이 돌연 떠오른다. 나에게 꼭 집어달란다, 수능에 나올 작품들만. 중편 분량에도 못 미치는 소설을 혹 가다가 추천하거나 충분한 시간을 주어 과제를 내면 “이걸 언제 다 읽어요?”라며 지겹다는 낯빛을 단번에 드러낸다. 현대소설은 너무 길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데다 주제가 애매해 문제 풀기 어렵다나······ 고전소설은 글자가 아니라 기호 같다고······ 지겹지 않도록 강약을 조절하며 한껏 신나 가르침에도 괴로운 표정으로 시간을 견디는 학생들에게 나도 조금씩 지쳐 간다. 비단 소설 외에 다른 장르라고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의 이야기꾼 전기수들은 낭독의 귀재들이었나. 그들은 얼마나 맛깔나게 지은이의 숨은 의도까지 찾아내 상상력을 더 보태 구연했을까? 소설책을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 시대의 애독자들은 세책점에서 신간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가슴 저민 스토리에 같이 공감하고 감동 어린 몸짓으로 전기수들에게 반응했다. 장터나 마당에 앉아 전기수에게 귀 기울이는 애독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마구 달려가고 싶어진다. “영웅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게 놀랍지 않나요? 옛날에는 남성 중심 사회였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이 만난 홍계월전에서는 무엇보다 오랑캐와 싸우는 계월, 평국의 활약이 두드러지죠······.” 오늘 읽은 고전 소설은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 시대를 앞서가는 근대적 가치를 담을 줄 아는, 진보적 소설인 동시에 핫한 소설이었다. 도적 때문에 강에 버려진 계월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구출되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남장한 긴장 모티브도 있었고, 여성이 중심인물이 되어 나라를 구한 박진감 넘치는 활약의 절정과 사이사이 평국과 보국의 쿵쿵 로맨스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해피 엔드까지······. 하나 내 생각과 달리 나는 다른 색깔의 언어로 학생들을 간곡하게 유혹해야 했다. “얘들아, 홍계월전 만화책으로 나온 것도 있으니 그걸 보면 좀 쉽게 이해가 될 거야.” 학생들에게 제시한 유혹 계책에 씁쓰레하면서 ‘지금의 학생들은 영상세대들이잖아. 난 합리적 제안이라고 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잠깐이나마

  • 관리자
  • 2024-11-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