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 작성일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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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최창근
지난해 12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던 ‘2024 광주에서 온 편지’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 시간으로 그날 자정 스웨덴에서 시작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면서 광주시민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자리였다. 작가가 부른 노래도 흘러나왔고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시극도 공연되었다. 작품과 연계된 문학 강연도 풍성하게 열려서 시국은 비록 어수선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제였다.
운명의 날이었던 10월 10일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안무가가 연출한 춤 공연을 보러 청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작가의 여고 동창이기도 한 극작가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노벨상!!”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마치 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참 뿌듯했다. 작년 가을은 그 일로 내내 가슴이 설렜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이기도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한강 작가가 가장 가까울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이렇게 일찍 갑자기 받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그 당시에도 요즘과 마찬가지로 얘기되던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는 방안의 하나로 사이버공간에 문학 종합 포털사이트인 ‘문장’을 창안했다. 문장 안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터넷 문학라디오였고 나는 훗날 ‘문장의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문학라디오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작가를 겸한 피디였다. 한강 작가는 ‘문장의소리’ 첫 방송의 초대 손님이었고 그 후로 진행까지 맡아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9개월을 서울 합정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한 작가가 진행을 맡았을 때 프로그램 기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을 돌아가며 소개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낭독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강 작가와 떠나는 세계문학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협업해서 이미 노벨 문학 방송을 제작했던 건 아닐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그 문학 방송의 진행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지의 기운이 도운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참 오랜만에 한 작가가 출연하고 진행했던 옛날 방송을 한 회씩 다 들어보았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으로 들어가 ‘문장의소리’를 검색하면 지금도 초창기 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첫 방송에 출연해 당시 『채식주의자』 연작을 쓸 때의 심정과 외부의 시각과는 다른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의 정확한 의미와 지향점을 들려주었다. 14회부터 46회까지는 직접 방송을 진행하면서 동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인 정이현, 김애란, 김경욱, 하성란, 조경란 같은 소설가들과 유종인이나 성미정, 김소연처럼 개성 있는 시인을 손님으로 초대해서 자유롭게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대 손님의 명단엔 시인이나 소설가뿐만 아니라 동화 작가, 번역가, 비평가를 비롯해서 당시 화제가 됐던 인디고 서원의 허아람 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또 방송의 로고 송을 만들어 주었던 재즈 보컬 말로와 ‘12월 이야기’를 듀엣으로 부른 이지상 가수가 출연했던 신년 특집 공개방송을 능숙한 솜씨로 진행해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작가의 음성은 깊고 서늘해서 뭐라고 딱 꼬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신비함이 배어 있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유리가 깨질 듯 민감하면서 섬세하고 속으로는 담금질 된 강철처럼 단단하게 절제되어 있는 외유내강형의 목소리라고나 할까. 아주 먼 곳을 응시하면서 배회하는 여행자의 우수와 슬픔이 깃들어 있어서 특히 조락의 계절인 가을과 겨울에 잘 어울리는 음색이었다. 어찌 보면 남성과 여성의 측면을 모두 보유한 중성적인 보이스 컬러였다.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와 어딘지 닮아 있는 듯한.
피디와 진행자는 방송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상호 보완해 갈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음악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피디가 ‘시노래 산책 잔잔한 두근거림’이라는 꼭지를 통해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가수들의 곡을 소개하고 전문 낭독가의 육성으로 주옥같은 한국의 명시들을 들려주기도 했다면 자신이 손수 만든 노래들을 한 곡씩 선보였던 ‘잠수함통신 노래일기’는 진행자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꼭지이다. 몸담고 있는 장르는 서로 달랐지만 문학 방송을 잘 만들어 가야겠다는 특별한 열정과 소신이 있어서 작가나 피디, 진행자 할 것 없이 스태프 모두가 헌신적으로 방송에 매달렸다.
지금 다시 그 시간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 그 순간처럼 각자 시와 소설, 희곡을 쓰는 창작의 시간도 잠시 접어두고 열과 성을 다해 온 힘을 집중해서 문학 방송을 만드는 일에만 오롯하게 빠져들 수는 없을 것만 같다. 한두 마디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열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제반 환경이나 여건도 변변치 않은 아주 작은 방송이었지만 새로운 역사를 써 간다는 묘한 흥분감도 섞여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일을 걸어가는 개척자 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때 그 순간이 아니면 절대 다시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단 한 번뿐인 방송. 그래서 흘러간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애틋하고 간절하고 소중한 느낌이 드는.
처음 시작할 때는 작가들이 방송 원고도 쓰고 진행도 하고 피디도 맡아 보는 이 작은 문학 방송이 그 후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팟 캐스트의 전신으로 분명하게 자리 잡으면서 그로부터 20년 뒤에는 곧 있으면 천 회를 맞이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 방송을 거쳐 간 진행자와 작가, 피디들뿐만 아니라 초대 손님까지도 한국문학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고 급기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하게 되었다. 꿈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이 꿈같은 현실은 계속해서 우리 눈앞에 총천연색 영화처럼 펼쳐질 것이다. 한국 문단의 〈전원일기〉 같은 방송.
한강 작가는 그 무렵 내가 무대 위에 올렸던 연극 〈12월 이야기〉를 보러 왔다가 영감을 얻어 스스로 작사 작곡해서 만든 동명의 노래를 방송의 로고 송으로 쓰자고 할 정도로 문학 방송을 사랑했다. 그때는 ‘12월 이야기’가 한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12월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국문학 전체의 이야기인 듯도 하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흘러가고 흩어져도/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기억들/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순간들/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속에 남은 노래”라는 〈12월 이야기〉의 3절 가사처럼 노래의 생명력은 이처럼 길고 아득하다.
2025년 올해는 문장 사이트가 만들어진 지 20년째가 되는 해이다. 연말인 12월에 한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20년 만에 다시 ‘12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올려보려 한다. 작가가 수상 소감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문학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 같은 동료이자 친구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관계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관계는 친구 사이이다. 202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작가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에도 나와 있듯이 한평생 고단한 삶을 헤쳐 온 평범한 어부 요한네스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을 저세상으로 배웅하러 나오는 사람은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였다.
지난 연말 밥을 먹으러 들어간 어느 식당에서, 차를 마시러 간 찻집에서 또 술 한잔 걸치러 들어간 술집에서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마주쳤다. 문화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를 포함한 그 모든 분야에서 수시로 거론되는 ‘한강 신드롬’으로도 부를 수 있는 이런 현상은 해가 바뀐 새해에도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원래부터가 다정다감하고 순수하고 명민한 사람이었지만 이번에 큰 상을 받고 난 후에 보인 의젓한 말과 행동이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들어 봐도 한 작가의 힘이 참으로 크구나, 이제는 정말 더 깊고 너르고 큰 세계적인 작가가 됐구나, 하는 사실을 문득문득 실감할 때가 많다.
2014년 봄 『소년이 온다』 출간 직후 서울 연희동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뜻깊은 행사 ‘부끄부끄부띠끄’가 열리고 작가들의 시 낭송과 공연, 플리 마켓이 마련되었을 때 우연히 같이 부스를 차려 자신이 갖고 나온 소장품을 판매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소년이 온다’를 썼으니 ‘소녀가 온다’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한 적이 있었다. 그 말처럼 요즘 시국 집회에 나가 보면 옛날과는 다르게 응원 봉을 든 수많은 소년 소녀 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축제를 즐기듯 유쾌하고 새로운 집회 문화를 창조해 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지구 위의 모든 소년 소녀 들이 자신의 팬을 응원하듯이 당차게 만들어 가는 상쾌하게 발랄하고 통쾌하게 아름다운 세상.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오른다.
한 작가는 아주 오래 전인 1998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주최한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석 달 동안 참여한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작가 친구들과 생활한 이야기를 글로 묶은 자신의 첫 번째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서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그저 생각만 해도 즐거운 꿈, 개인적인 소망을 밝힌 적이 있었다. 하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문학 낭독회가 열리는 아담한 동네 책방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작은 라디오 방송국을 여는 것이었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독립 서점을 여는 일은 이미 이루었고 이제 일 년 365일 하루 종일 문학 방송만 흘러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갖는 것만 남아 있다. 그 일은 예전에는 재력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지금 작가의 위치를 생각하면 의지만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듯하다. 혹시 작가가 잊지 않고 그 일을 추진한다면 그 옛날 ‘문장의소리-행복한문학여행’을 함께했던 귀한 인연을 매개로 삼아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한 성심껏 돕고 싶다. 그 또한 한국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이므로.
강 작가님.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 줘서 참 고마워요. 그리고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 써 줘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감사하고요. 온 국민이 당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어요. 사랑합니다. 오늘 마지막 곡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인생이여, 고마워요〉와 함께 그때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갔던 문학 방송의 로고 송으로 골라 봤어요 ‘자, 우리 이제 길을 떠나요. 바람 구두를 신고 향긋한 풀냄새 맡으며 짙푸른 문학의 숲속으로 행복한 여행을 떠나요. 즐겁게~’
영상 촬영 및 편집: 메이크센스 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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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11-01
우리의 고백 - 진은영 『고백』 (문장웹진 2010년 11월호 수록) 읽기 이영주(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시 쓰기는 재미있다. 인간의 언어란 흥미로운 것이니까. 인간의 언어란 오염과 환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것을 이상한 쾌락으로 즐기게 해 주는 수수께끼의 세계. 시는 이런 언어의 가장 예민한 촉수이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가고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내부에 가장 깊이 침투해 있다. 시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이런 멀고, 가깝고, 깊은 주름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존재들. 시인들은 주름을 펼쳐 보이고 때로 섬세하게 접기 위해 늘 몸이 열려 있다. 열린 몸이란, 복잡하고 구불구불하고 황폐하고 어지럽고 축축하고 미끌거리고 우수수 돋는‧‧‧ 아무런 규정도 할 수 없는 무정형의 상태. 시인들이 몸을 열고 받아 적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백 진은영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 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 버린 사람들에 대해 나의 가득한 입맞춤을 대신하는 가을 벤치의 연인들 나 대신 식물원 화단의 빨간 석류를 따고 있는 아이의 불안한 기쁨과, 나 대신 구불구불한 동물내장을 가르는 칼처럼 강, 거리, 언덕을 불어 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달콤한 술 향기의 전언을 빈틈없이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의 단호함과 확신에 대해 수음처럼 또다시 은밀해지려는 나의 슬픔에 대해 할 말이‧‧‧ 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 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 나 대신 울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잠깐 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인인데 시인이 아닌 채로 살아야 하는 순간들에 대하여. 내가 생활의 우악스러움을 드러내면 누군가 내게 시인 아니에요? 라고 미묘한 공격성을 띠고 물어볼 때, 그러니까 시인은 삶에 대해 초연해야 하고, 가난도 자랑스러워해야 하며, 슬픔도 웃어넘기는, 여유로운 포즈로 뭐든지 받아안고 가는 존재여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할 때, 그러니까 시인이 (과장해서) 영양실조에 걸려도 역시 시인이란 그런 존재지‧‧‧ 하고 동정의 포즈를 보낼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할 때(전근대적인 낭만성이 아직도 있긴 하다‧‧‧), 나는 시인 아니에요? 라는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함정에 빠진다. 시인은 원고료나 특강비 등 돈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일종의 허상에 가까운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러 시선에 대하여‧‧‧ 나는 종종 공중누각에 던져져 온몸이 찢겨 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시를 쓰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은 ‘나’의 생활과 삶은 어떻게 하지? 그 생활과 삶의 세부들이 모여 하나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결국 시를 쓰지 않는 순간에도 시를
- 관리자
- 2025-11-01
파고 한영원 그날, 은선 씨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은선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빨간 잠바를 입고 갔는데 은선 씨 역시 빨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기에 차에 타면서 멋쩍게 조금 웃었다. 은선 씨는 내게 음악 하는 A와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은선 씨가 자신이 그와 친구라고 대답해서 나는 어쩐지 그 둘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조근조근한 어조와 노래를 부를 때 예쁠 것이 분명한 음색이 비슷하다고.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해 버린다. 그리고 잘 부를 것 같은 목소리를 짐작하고 그러한 짐작은 대부분 잘 맞는다. 차는 영종도로 들어가고 있었고 공항 가는 목적이 아닌 영종도 놀러 가는 일은 꽤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은선 씨가 내게 말했다. 바다를 좋아해서 자주 가요. 아, 저도요.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태어나서인지 내가 여태껏 본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차는 영종도 안에 작은 섬인 무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해루질을 하러 가나요? 내가 묻자 은선 씨는 첫 만남에 해루질을 좀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도 꽤 시인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인을 관찰하러 간다니 나의 소설가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멋있을 것 같아. 비 오는 해변을 마구 걸을 것만 같고···, 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당신에게 시인이란 그런 이미지냐고 물으려다 그냥 관두었다. 물론 나는 시인이 되기에 조금 모자란 것만 같지만 은선 씨는 정말로 시인이다. 시집을 몇 권이나 냈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시인. 은선 씨는 내게 오늘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일단 엄청나게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갯벌을 좀 걸을 것이고요. 갯벌은 모래펄이라 부드럽고 더럽지도 않아요. 은선 씨의 계획은 멋져 보였다. 나는 어떤 것이든 좋다고 말했고 근사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더 섬의 안쪽으로 몇십 분 들어간 뒤 우리는 곧이어 무의도에 있는 한 식당의 주차장에 내렸다. 나는 내리며 언뜻 식당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영업을 하나 보다 했으나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였다. 들어간 사람들과 우리는 불이 꺼진 식당 안에서 화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는 문구를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식당에서 나오며 은선 씨는 그럴 줄 알고 다른 식당 두어 군데를 더 찾아 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탔다. 은선 씨는 내게 식당에 가면 메뉴를 많이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욕심은 많아요. 나도 조금 그런 편이라 답하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러나 은선 씨가 두 번째로 찾은 식당 역시 닫혀 있었다. 은선 씨는 당황해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아까 지나가다가 보인 그 쌈밥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은선 씨가 고개를 끄덕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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