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의 체스
- 작성일 2025-08-01
- 댓글수 2
[에세이]
스물의 체스
유지혜
생애 처음 체스를 배웠다. 체스는 내 왕을 사수하면서 상대의 왕을 공격하는 전략 게임이다. 내 편에는 총 16개의 기물이 주어진다. 앞줄에는 폰(pawn)이 줄지어 서 있고, 뒷줄에는 왕, 퀸 등 다양한 말들이 대칭을 이루며 자리하며 각 기물마다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 킹(king)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움직임이 적다. 생존이 최우선 인지라 보통 다른 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보존한다. 반면 작은 몸집으로 제일 많이 싸우는 건 앞줄의 작은 말 폰(pawn)이다.
그러나 나는 폰의 쓸모를 무시했다. 한 칸씩만 움직이는 폰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비숍(bishop)으로 판을 압도하고 싶었고, L자로 움직이는 나이트(knight)로는 상대가 시야에서 놓친 구석을 공격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근사하고도 빨리 이기고 싶었다. 결국 큰 말을 무리하게 내세우다 졌다. 그때 게임을 같이 두던 상대가 내게 말했다. 폰, 이 쫄병을 쭉쭉 내보내는 것도 중요해. 하찮아 보여도 얘가 뭘 지켜줄지 몰라.
체스판처럼 인생에도 전략과 기세, 무엇보다 여러 번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너무 빨리 망하지 말라고, 인생에는 젊음이라는 폰이 주어지는 줄도 모른다. 폰처럼 젊은 날은 가치는 적은 대신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기껏해야 한두 걸음 내딛는 시기. 젊음은 헐값에 좋은 것을 쟁취할지도 모를 기회이다.
하지만 스물엔 그 누구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지 않다. 앞수를 읽는 노련함은 없다. 가장 작은 몸집으로 큰 세상을 향해 나가는 폰의 시점일 뿐이다. 스스로의 위치조차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을 뿐. 좀 더 가면 헐값에 잡아먹힐 것 같다는 불안이 몰려올 수도 있다. 더 대범했어도 되었다는 건 순전히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갓 성인이 된 2011년, 나에게도 스물이라는 핑계로 얼떨떨한 용기를 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첫 애인을 사귀지도, 여행을 가지도 않았다. 대신 압구정에 있는 모델 학원을 등록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 내게 모델을 권했기 때문이었다. 지망했던 대학에 불합격한 나에게는 아득할 만큼 시간이 많았다.
뉴코아 아울렛에서 5만원을 주고 산 빨강색 게스 구두를 신고 몸매를 드러내는 옷차림의 나는 한쪽 벽 전면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워킹을 연습했다. 우리 기수에는 타고난 것으로 먹고 살고자 하지만 그렇다 할 독기는 보이지 않는 이십 대 초반 언저리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없는 건지 분간하지 어려운, 겉멋이 잔뜩 들었지만 그로 인해 활기찬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몇몇 친구들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당시 유행했던 발렌시아가 가방을 어디서 제일 싸게 구할 수 있는지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립스틱의 품명을, 이마 보톡스의 효과를 알았다. 그들은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이들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다들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흩어지면 나는 가까스로 3호선 막차에 몸을 싣고 경기도 끄트머리에 있는 본가로 귀가했다. “너 대체 집에 안 오고 대체 어디니?” 엄마의 부재중 문자에는 이제 난 어른이라는 말로 반박했지만, 나는 내가 그저 고등학생보다 한 살 더 많은 아이일 뿐임을 알았다.
어느 날 학원 1층에 생긴 피자가게가 생겼다. 전에 없이 살이 찐 나는 선생님께 한 소리를 듣고도 워킹 연습에 게을렀다. 외적으로 풍부한 표현을 하기에는 내 외모가 애매한 것 같다는 핑계를 장전해 두기 시작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예민하게 곤두선 자의식은 스물의 특권이었으니. 대표님은 가끔씩 말없이 들어와 손가락으로 연습생들의 배를 쿡쿡 찔렀다. “살이 너무 쪘어!” 연습생들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비쳤다.
너 대체 어딨는 거니? 엄마의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나는 내 복잡한 욕구들을 마주했다. 외적 상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 되고 싶다는, 내가 오를 무대를 직접 짜고 싶다는 욕망. 다시 말해 나는 모델을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으며, 몸이 나를 표현할 수단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봄에 배운 것은 사람들의 가벼운 제안이 내 안에 쌓이면 부채감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 실제 욕망과는 일치하지 않음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해 봤으니 미련이 남지 않았다. 더는 놀고 싶거나 이력이 될 만한 특별한 도전에 관심이 없어졌기에 7월부터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어진 고된 이사의 역사를 거쳐 어린 시절 추억이 많은 일산으로 돌아온 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 가족은 말이 아니라 판 자체를 되찾은 것이었다. 우리는 떠날 때와 비슷한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초등학생 때 자주 가던 단골 서점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나는 다시 그 익숙한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대리석, 칙칙한 보라색 시트지가 벗겨진 유리문 손잡이, 별로 친절하지 않아서 더 신뢰가 가는 중년의 직원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집어 들었다. 책에서는 밤이면 생명력을 얻어 말을 하는 인형들이 나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아나운서의 모험담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를 공감으로 경악하게 한 책은 양귀자의 『모순』뿐이었다. 인물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욕심을 부리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생각했다. 이건···. 완전 나잖아?
작가는 앞으로의 전쟁 같은 삶에 대해 예고하고 있었다. 전쟁은 서로 다른 면이 겹겹이 들러붙은 우리가 끝없이 변덕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실수했다. 그래서 인간이었다. 끝없이 후회했다. 갈피를 잡지 못했고, 고민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인생은 자신에게 허락된 1인칭의 좁은 시야 안에서 결국 스스로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 채 흩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독자로서의 인간은 신이었다. 등장인물들에게 대뜸 힌트를 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다. 열렬히 책을 읽을 때 나는 전략가가 된 기분을 느꼈다. 독자는 관객이자 감독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세계 전체를 내려다봄으로써, 모든 인물의 시야를 확보했다. 결국 자기 인생을 제일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나의 인생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리 있었다. 나는 모순이라는 버겁고 텁텁한 단어를 내 안의 변명으로 품었다.
공부보단 독서에 빠져 지냈던 가을을 지나, 그 겨울 두 번째 수능을 그럭저럭 치렀다. 희망했던 대학에 불합격이 확실해졌다. 귀가 시간 말고는 내게 일절 참견이 없던 엄마는 초조한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스물을 기름종이 삼아 내 스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젊음이 좌절로만 기억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엄마의 대학 진학을 만류했다. 승무원이 꿈이었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는 그를 받아 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가 분한 투로 회고하길, 결정적인 순간이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뺏기곤 했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은 딸이 고졸 학력을 달고 자신의 한 맺힌 청춘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합격 통보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엄마는 나를 동네 카페로 소환했다. 재수를 권할 줄 알았지만, 내 손을 꼭 붙잡으며 엄마가 한 말은 뜻밖이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스튜디어스* 시험 보는 거 어때? 네가 못다 한 내 꿈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나는··· 폭소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침묵하게 됐다. 이처럼 갑작스럽고 엉뚱하고 우스운 제안임에도, 엄마의 두 눈에 그득한 집요한 진심에 혼란스러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타인이 투영한 욕망이 나를 운명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더 크게는 사명감을 느꼈다. 엄마의 지난 꿈에 대신 기웃거리고 싶어졌다.
칼바람이 부는 새벽,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실기시험장에 수험생들을 태운 자가용이 몰려들었다. 엄마의 아반떼에서 내린 나는 꽝꽝 언 흙 운동장을 기세 좋게 걸어갔다. 나는 그 시절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이십 년 된 진주색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를 입고, 엄마의 에스콰이어 구두를 신고, 엄마의 립스틱을 발랐다. 머리는 대충 꽉 묶어서 젤을 발라 망으로 묶었는데, 다른 수험생들을 보자 내 머리가 엉망이라는 것을 알고 살짝 민망해졌다. “혹시 머리 젤 좀 남은 거 있으세요?” 다른 학부모에게 물었으나 그들에겐 쓸데없는 수다였을 것이다. 우린 소풍이었지만 그들에겐 전쟁이었으리라.
면접은 일렬로 열 명씩 서서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긴장감이 제로였고, 간단한 인사 멘트조차 준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토록 추운 날 대기실에 꼿꼿이 선 어린 여자들이 얼마나 치열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는지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곧 나는 발음이 정확하고 자태는 백조 같은 스무 살 여자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면접관이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와 오늘 아침 식사 메뉴를 물었다. 차례로 우아한 음색을 타고 청순한 아침 식사 메뉴가 들려왔다. 신선한 딸기스무디, 오가닉 바나나요거트, 한 잔의 커피.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는 지나치게 구수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된장찌개를 먹었습니다.”
“근데 내 목소리가 내가 들어도 너무 걸걸한 거야.” 나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로 돌아와 망에 묶인 머리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우리는 한바탕 깔깔깔 웃었다. 절박함 없이 엉뚱한 장소에서 부릴 수 있는 여유, 우린 그것에 도취했다. 그것은 나를 원하지 않는 곳에서 나 또한 무심할 사치였고, 더 팍팍한 인생이 들이닥치기 전, 마지막으로 건방을 떨 기회였다. “붙었어도 안 가.” 나는 공격적으로 허세를 부렸다. 그것이 엄마의 케케묵은 한을 끊어 버리는 치기 어린 방법이었기에. 엄마는 이후 더는 못다 한 꿈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 자신의 어린 날을 졸업했다.
그러나 나는 내 방에 돌아와 스타킹을 벗자마자 엉엉 울어 버렸다. 간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렸던 오만한 자유 뒤엔, 내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없다는 자각이 따라왔다. 계속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이유는 내게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체할 수 없는 이 무제한 자유를 단속해야 했다. 딴짓만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꿈을 기웃거리다가, 내 욕망에 직면하지 못하다가 나의 패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겨울부터 나는 쌀국숫집에서 첫 알바를 시작했다. 부주방장이 야한 농담을 잘하는 곳이었다. 뜨거운 국수를 한바탕 서빙하고 나서 식당이 한적해지면, 나는 식당 구석에 가짜 가죽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며 생각했다. 이번 판은 망했구나. 대학에 붙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실히 나의 작은 하루들을 바칠 꿈이 없어서였다.
내 인생에는 지켜야 할 킹이 전무하며, 사실 총알받이 폰만 있는 게 아닐까.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책 읽기뿐이었다. 책은 나를 어디로든 데려갔다. 한줄 한줄 황홀감을 또박또박 느끼면서도, 나는 의심했다. 책이 인생이 도움이 될까. 책만 읽는 것이 나의 인생이 되어도 될까. 그렇게 한 줄씩만 나아가도 괜찮을 걸까.
그렇게 1월이 끝나가던 무렵, 겨울답지 않은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나는 포장마차에 들렀다. 굵은 빗방울이 방수 천을 툭툭 건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묵꼬치를 먹고 있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3지망이었던 서울 끝자락의 대학 입학처 직원이었다. “추가 합격입니다.” 그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기쁘지도 않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들고 있던 어묵에서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했다. “국물 한 사발 더요.”
스물의 끝이었다. 그럴싸한 길 하나를 텄지만, 졸업을 2년 앞두고 대학을 관뒀다.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을 거라는 기시감 속에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여행만으로 이십 대를 채우다 보니 엄마가 늦은 밤 했던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인생을 살게 됐다. 지금은 어디야? 그런 말을 들을 땐 나는 좀 당황스럽다. 어디쯤인지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든다고 내 인생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주어진 말 한 수 한 수를 놓으며 생을 더듬거릴 뿐. 한 칸씩만 갈 수 있는, 빌어먹게 정직한 이 인생을.
잘못된 장소에서의 혼란과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나중에 보면 실패가 아닌 그냥 한 칸짜리 전진일 뿐이었음을 이제 와 고백한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나는 한 수 한 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삶이 나 몰래 꿴 전략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떤 말은 실패가 아니라 잠복해 있다가 엉뚱한 때 드러나니까. 여행과 독서. 별로 획기적이지 않은 이 두 가지 패가 나의 전부였다.
서른셋.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체스의 근사한 규칙을 곱씹는다. 모든 말 중에 오직 폰만이, 상대 진영 끝에 도달하면 원하는 다른 기물로 변신할 수 있다. 끝까지 가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움직임을 보장받는다는 뜻과 같다. 가장 작은 몸에 바보 같은 성실함으로 엄청난 야망을 꿈꾸는 나의 말. 결국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끝까지 간다는 지독한 모순. 나는 책의 등에 업혀 전쟁 같은 인생을 건넌다. 그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전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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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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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형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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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내가 사랑하고 또 질투하는 그녀의 글
읽고나서 멍해졌어요. 정말 잘 쓴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