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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테이프 원더월

  • 작성일 2025-10-01

   믹스테이프 원더월


임국영


   #1 인투로 (이승윤)

  무대 위에 록 밴드가 서 있었다. 조명이 드리운 실내 공연장은 마치 화마가 뒤덮은 것처럼 새빨갰다. 땅속 깊은 곳에서 길어온 듯한 베이스 기타 소리가 인트로 라인을 열었다. 긴장감이 고조되자 보컬이 관객에게 정중히 알렸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쇼.” 

   보컬이 말을 끝맺자 일렉트릭 기타 두 대와 드럼이 달궈진 무쇠를 망치가 내려치는 듯한 굉음을 내뿜었다. 관중은 음악에 맞춰 고개나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쏟아 냈다. 리듬을 따라 움직이던 나는 잠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다. 연주 파트가 끝이 날 즈음 고개를 들자 코앞에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어? 이게 왜 내 앞에? 의문이 가시기 전에 나는 그간 매일같이 불러서 입술 끝에 달라붙은 가사를 발음하기 시작했다. 1절 후렴을 끝내고 나서야 온전한 기억을 되찾았다. 맞다. 내가 보컬이었지.



   #2 나는 왜 (못)

   “록 얘기 좀 그만 쓰면 안 돼요?”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기 직전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 사람 말고도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조언을 했던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유난히 진지한 그의 태도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록 같은 걸 누가 듣겠는가? 당신이 어떤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지 아무도 관심 없다. 주구장창 똑같은 이야기만 하면 질리지도 않는가? 

   그날 술자리를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의 말에 사로잡혀 지냈다. 저기요 선생님, 내가 쓰고 싶은 거 쓰겠다는데 님이 뭐 어쩔 건데요, 하는 반발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으레 애주가가 적은 글에는 술이 등장하고 흡연가가 쓴 소설에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삽입되기 마련 아닌가. 작가에게 친숙한 소재가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항변을 스스로 되새겼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음미해 볼 만한 화두임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소설을 쓸 때 늘 음악을, 특히 록을 소재로 삼는가. 어째서 한 번도 이 현상에 관해 의구심을 갖거나 깊이 성찰해 본 일이 없었을까? 

   나에게 록이란 무엇인가?



   #3 난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 

   당신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은 무엇인가? 라디오, 오디오 플레이어, TV와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거나 부모님이나 유치원 선생님이 알려 주신 동요인가? 나의 경우는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재생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였다. 힙합 장르를 베이스로 한 댄스 팝에 메탈 요소가 가미된, 네 살 남짓한 꼬마한텐 여러모로 자극적인 노래였다. 얼마나 자극적이었냐면 노래를 듣는 순간 트랜스 상태에 빠진 샤먼처럼 눈이 뒤집혀서 별안간 춤을 췄을 정도였다. 이 소리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 감정을 멋대로 조종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얼굴도 모르는 이와 마치 하나가 된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이 곡을 듣고 있을 누군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마음이 된 것만 같은 기이한 일체감이었다. 그때부터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가 지닌 불가해한 권능을 숭배하게 됐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라디오 모드로 변환하는 법을 알고부턴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올드 팝부터 당대의 최신 댄스곡까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랜덤 재생되었으니까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종다양한 음악이 존재했다니. 끝 모를 축복이 고막에 깃들었다. 나와 취향이 맞는 프로그램이 송출을 시작하면 스피커에 귀를 가져다 대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어떤 음악의 인트로를 듣다가 ‘이건 내 취향에 부합한다’라는 판단이 서면 잽싸게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앞부분 몇 초 정도가 날아간 녹음본들로 가득 채워진 믹스테이프가 그 시절 내겐 최고의 보물이었다.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 로드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인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을 아끼던 것처럼 말이다. 

   god, H.O.T, 젝스키스, 1TYM, 코요테, 이정현, 김현정, 양파, 조성모, 김건모···. 일일이 열거 할 수 없는 수많은 뮤지션들을 TV와 카세트테이프, 라디오로 접하며 90년대를 보내고 나자 컴퓨터로 마음대로 음원을 들을 수 있는 2000년대에 들어서게 됐다. 그 당시엔 ‘벅스 뮤직’ 같은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가(후에 문제가 되는 서비스 방식이긴 했다지만) 꽤 많았는데 이 시기부터는 대중 미디어에선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음원들도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에미넴 같은 해외 힙합 음악이라든가 크라잉넛, 델리스파이스 같은 인디 록 음악들처럼 말이다. 바로 이즈음부터 아버지가 내 방문을 수시로 열기 시작했다.



   #4 호텔 캘리포니아 (이글스)

   “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

   소싯적에 인천에서 LP바를 운영했던 만큼 아버지는 제법 음악을 애호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절친한 친구가 좋아했던 곡이라며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컴퓨터로 들려달라며 요청하곤 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 미국에 가 보고 싶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던 아버지의 친구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신청곡을 들으며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내 방에서 줄담배를 피우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신청곡은 점차 늘어났다. 나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케케묵은 넘버들을 재생하는 불운한 디스크자키가 됐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손님으로부터 진위를 검증할 수 없는, 음악에 관한 두서없는 트리비아를 청취해야만 했단 점이다. 〈노 워먼 노 크라이〉와 〈미스티 모닝〉을 들으며 레게의 전설 밥 말리가 죽었을 때 고국인 자메이카에선 대통령한테도 해 주지 않는 국장(國葬)을 치렀다거나 에릭 클랩튼이 실족사한 아들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으로 〈티어즈 인 헤븐〉을 만들었다는 사연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외에도 드러머 존 본햄이 죽자 해체한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 경비행기 사고로 멤버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는 레너드 스키너드의 〈심플 맨〉 같은 곡들을 들으며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아버지가 신청하는 곡은 반드시 죽음과 근접한 사연과 얽혀 있단 것이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죽은 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양식으로 음악을 대했던 것 같다.

   아직 10대였던 아들의 정서 함양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그의 끈질긴 음원 신청과 넋두리 덕에 결국 나는 음악, 특히 록이란 장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문화적인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때를 생각하면 밴드 오아시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이 떠올랐다. 

   오아시스는 악동 형제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를 주축으로 한 세계적인 밴드다. 젊은 시절 음악에는 전혀 관심 없고 동네 양아치 노릇이나 하던 동생 리암은 어느 날 괴한이 휘두른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진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리암은 그 순간부터 ‘음악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한다. 노엘은 이 일화를 두고 ‘리암은 망치에 맞은 게 아니라 음악에 얻어맞은 것’이라 평한다. 한편 노엘은 아버지로부터 심각한 가정 폭력을 당했는데 노엘은 이를 두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재능을 때려 박은 것’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상당히 폭력적인 계기로 음악에 발을 들인 이들의 이야기가 큰 인상으로 남은 까닭은 나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긍정적이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를 괴롭게 만든 대상으로부터 내 삶을 지속시킬 정신적 유산을 얻게 되었다는 이 서사가 내겐 좀처럼 풀리지 않는 아이러니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마지막 날 새벽, 다른 가족들을 방으로 보내고 나는 홀로 빈소를 지켰다. 영정사진 앞에는 술이 든 종이컵 몇 잔이 놓여 있었다. 평생 술 때문에 가족 고생시키다 간 사람한테 죽어서도 술을 먹이냐며 어머니가 으름장을 놓았지만 아버지의 오랜 친구들은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용케 어머니의 눈을 피해 친구를 위한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원망했던 세월이 길었던 탓에 아버지의 죽음은 슬픔보다는 서글픔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도 아버지를 어떤 얼굴과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게 맞는지 좀처럼 갈피를 못 잡았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작게 〈호텔 캘리포니아〉를 틀어 놓고 영정사진 앞에 술을 따라 올렸다. 과연 음악에는 죽은 사람을 추억하고 기리는 힘이 있는 모양인지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듣던 시간이 향연처럼 피어올랐다. 늘 피하고만 싶던 사람이었는데 함께 음악을 듣던 순간만큼은 마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린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생전 아버지의 신청곡 리스트를 틀어 놓고 새벽을 보냈다. 

   그렇게 아침을 맞고 나서야 나는 풀지 못한 앙금 같은 것을 얼마간 내려놓고 오롯이 그의 명복을 빌 수 있었다. 이 또한 음악이 지닌 불가해한 권능 덕일 것이다. 



   #5 원더월 (오아시스)

   앞서 록에 눈을 떴느니 어쨌느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렇다고 뮤지션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여력과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내 소설을 읽은 독자 중에 작가가 밴드 활동을 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밴드는 개뿔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방방 뛰거나 고함을 지르는 게 고작인 참으로 한 많은 삶을 살아왔을 뿐인데 말이다. 이게 다 주구장창 록을 소재로 소설을 써 온 나의 부덕함 탓이었다. 이쯤 되면 음악을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직무 유기 아닐까?

   지인들과 얼떨결에 밴드를 결성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그간 꾸준히 명곡들을 카피하거나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 연습했다. 연습곡들이 제법 쌓이자 친한 사람들을 불러 자그맣게 공연을 열기도 했다. 음악에 일가견 있는 척 떠들다 보니 어느새 진짜로 음악을 시작한 격이었다. 마치 자신이 음악인이라며 거짓말을 일삼다 뒤늦게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는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의 사연처럼 말이다. 


   “연습은 좀 했어?”

   홍대입구역 근처 합주실에 도착해 짐을 두고 마이크에 커버를 씌우고 있으면 밴드 리더(퍼스트 기타 겸 작곡, 작사가이자 서브 보컬, 엔지니어, 총무를 맡고 있다)가 묻는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답을 대신하지만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안다. 딱히 연습은 하지 않았다. 록은 기세니까.

   뮤지션으로 대성할 각오까진 없어도 합주할 때만큼은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주간 무대에 서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어 보컬을 맡은 나는 중학생 때부터 노래방을 다녀온 구력을 토대로 악을 썼다. 그러나 가사를 수시로 까먹고 음정 박자가 들쭉날쭉하는 바람에 민망한 상황을 한두 번 맞닥뜨린 게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합주를 마치고 나면 ‘방금 나 많이 틀렸나?’ 하는 눈빛으로 서로 눈치 보기 바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주파수가 완벽에 가깝게 들어맞는 기적과도 같은 찰나를 맞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린 주변을 돌아보지 않아도 잠시나마 서로가 ‘연결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소설에서 음악을 다뤄 온 이유다. 음악이란 소재는 대사와 진술만으론 전해지지 않는 일체감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한, 나의 비밀스러운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슈퍼소닉〉에서 노엘 갤러거는 1996년 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냅워스 공연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대규모 공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아시스 덕이 아니라 음악을 들으러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 덕분이라고. 정말로 대단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라고. 말하자면 오아시스란 밴드는 매개였을 뿐이고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기적에 가까운 시공간을 빚어냈단 얘기였다. 나는 그의 말에 무한정 동의한다. 


   나는 존재라는 어휘를 볼 때면 하릴없이 복수가 아닌 단수로 읽곤 한다. 태생적으로 외로운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타인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며 지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진정으로 내면에 있는 모든 언어와 감정을 꺼내 보여 전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타인의 진심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더더욱 요원하다. 진정한 소통의 순간은 절대적으로 희소할 따름이고 그러므로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와중에도 대체로 혼자다. 

   혼자인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혼자이기만 한 것은 유쾌한 일이 되기 어렵다. 지독한 외로움에 놓여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존재의 고독을 해갈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일을 살아 보게끔 하는 힘이 생성되지 않겠는가. 우리에겐 연결이 필요하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즉효 약이 음악이라 주장하는 바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던 사람마저 한순간이나마 이해하고 용서하게 했던 만큼 그 효과는 보장한다. 햇볕을 쬐거나 과일을 먹어서 비타민을 얻는 것처럼 우리는 더 많은, 더 좋은 음악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


Because maybe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And after all

You're my wonderwall

- 오아시스 <원더월> 중



그러니까 여러분, 음악 들으세요. 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습니다.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정다연 편집위원이 참여한 ‘나의 반려들’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존재에게 삶을 빚지며 살아갑니다. 그 존재는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고,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와 오랜 시간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만은 변함없습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세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반려가 되어주었던 대상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들의 반려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포개보면서 즐겁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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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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