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사랑의 기록
- 작성일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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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거대한 사랑의 기록
- 김명순 창작집 『생명의 과실』
박소란

사진1. 『생명의 과실』 (한성도서주식회사, 1925) 표지
지난 2025년은 『생명의 과실』(한성도서주식회사, 1925)이 출간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였다. 『생명의 과실』은 김명순(金明淳, 1896~1951 추정)이 쓴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창작집이다. 국내 서지 기록에 등록된 여성 작가 최초의 단행본. 문학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명의 과실』도 김명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100주년은 터무니없이 고요했다. 별다른 의식이나 언급 없이 우리 문학장은 지난 한 해를 지나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전 김명순이 겪어야 했던 갖가지 고난과 핍박을 떠올리게 된다. 혹여 김명순이라는 선구적 예술가를 아직까지도 과거 그늘진 그 자리에 세워 둔 것은 아닐까, 못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을 해 봐도 대략의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김명순은 쉽게 소거될 수 없는 이름이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문예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친 한국 문단 최초의 여성 작가다. 1920, 30년대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친 김명순은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는 등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피아노를 잘 치고 독일어로 곡을 만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신문기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할 만큼 다재다능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기생 출신의 ‘첩'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자유연애’를 주창한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을 받았다. ‘부정한 혈액’ ‘문란한 여자’ 등 모욕적인 꼬리표가 일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와 집필에 힘썼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힘겨움이 잇달았고, 결국 1951년경 일본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김명순은 생전 시, 소설, 수필, 희곡(각본) 등을 한데 묶은 두 권의 창작집을 냈다. 『생명의 과실』과 『애인의 선물』(회동서관, 1929 추정)이 그것이다. (세 번째 창작집을 준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불발되었으며, 때문에 창작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도 상당하다.) 이 중 『생명의 과실』은,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단행본으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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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과실』에는 등단작 「의심의 소녀」를 포함해 소설 2편, 시 24편, 수필(목차에는 ‘감상(感想)’이라 표기되어 있다) 4편이 수록되었다. 소설 「돌아다볼 때」나 시 「유언」, 「저주」, 「탄실의 초몽」, 「유리관 속에」, 수필 「대중 없는 이야기」, 「네 자신의 위에」 등의 빼어난 작품들이 모두 이 첫 창작집에 담겨 있다. 시집이나 소설집과 같은 하나의 장르에 국한된 형태가 아니라 여러 장르의 작품이 두루 담긴 창작집 형태 또한 김명순이라는 작가의 개성에 걸맞은 다분히 현대적인 방식이라 여길 만하다.
책의 표지를 넘기면 곧장 내지 제일 첫 페이지 상단에 적힌 ‘生命의 果實’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 바로 그 위에 우뚝 자리한 ‘金明淳․創作集’이란 글자가 보인다. 같은 페이지 하단에는 ‘京城 漢城圖書株式會社 發行’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1~3페이지에 시, 수필, 소설 순으로 목차가 게재되어 있고, 그 바로 앞 페이지에는 ‘머리말’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을 오해받아 온 한 젊은 생명의 고통과 비탄과 여름(열매)으로 세상에 내노음니다(내놓습니다)”. 읽을 적마다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아직 재래의 인습이 지배적이던 시절, 자기 발성으로 새로운 신념을 주창하는 여성 창작자로서 그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그런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창작에 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각 장르별로 고루 아끼지만, 그중에서 먼저 시 「유언」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를 통해 나는 처음 김명순이라는 작가에게 매료되었다.
세상이여 내가 당신을 떠날 때
개천가에 누웠거나 들에 누웠거나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하시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하시오,
그러면 나는 세상에 다신 안 오리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별합시다.
-「유언」(1924) 전문
7~8년 전 어느 앤솔러지에선가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그만 그 책의 제목도 잊어버렸다. 다만 이 시를 읽자마자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문장마다 깃든, 입술을 잘끈 깨물듯이 참아 내는 울음을 누가 쉽게 지나칠 수 있을까. 아, 이건 진짜구나! 좀처럼 본 적 없는 진정과 절절한 몸부림을 엿본 순간, 매료되었다고 할까, 감염되었다고 할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는 1924년 5월 29일 「조선일보」 지면에 처음 발표된 것이었다.
「유언」을 만난 후 나는 몇 년에 걸쳐 김명순의 전작을 탐독했다. 지금은 절판된 전집을 구해 열어 보기도 하고 작가가 작품을 발표한 옛 신문이며 잡지를 뒤적여보기도 했다. (알다시피 요즘은 컴퓨터 앞에 가만히 앉아서도 이런 일이 능히 가능하므로.) 그렇게 다소 부산스레 여러 작품들을 만난 뒤에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김명순의 작품을 현대어로 편역하는 작업에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2023년 2월 출간한 김명순의 산문집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를 시작으로 2025년 6월과 7월에 잇달아 출간한 소설집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 문장집 『사랑하는 이 보세요』가 그 결과물이다.
편역 준비 과정에서 나는 『생명의 과실』과 『애인의 선물』 원본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기관을 수소문했고, 얼마 뒤 근대서지연구소의 서지학자 오영식 선생님을 통해 원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명의 과실』의 경우 아직 몇 권의 원본이 남아 있고, 1970년경 문학사상사에서 ‘한국현대시 원본전집’ 시리즈로 발간한 복각본 또한 있지만 『애인의 선물』 원본은 오직 한 권뿐이다. 그것을 소지하신 분이 오영식 선생님이다.)
처음 근대서지연구소에서 『생명의 과실』을 대면한 당시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누렇게 변색된 낱낱의 페이지를 조심스레 넘기자 금세 김명순이 살던 100년 전 그 시절로 거슬러 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조금만 세게 만지면 곧장 으스러질 것 같은 종이를 딛고 있음에도 한 글자 한 글자가 뿜어내는 위용은 대단했다. 당시의 책이 으레 그렇듯 세로쓰기 방식,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이 이어지는 우종서(右縱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데다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있는 등 오늘날의 관점에서라면 결코 읽기 수월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자리한 단어와 문장 들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으로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내게 오영식 선생님은 왜 하필 이제는 완전히 잊힌 이 작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물으셨다. 여러 대답이 속에서 맴도는 가운데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저 “작품이 좋아서요”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생명의 과실』 속 「유언」은 개고를 거친 모습이다. 1924년 조선일보 발표작과 비교했을 때 시의 첫 대목과 마지막 대목을 비롯 부분부분 달라진 점들이 보인다. 언어나 감정에 있어 다소간 정제된 면이 있다. 초고 버전과 개고 버전, 두 버전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독자로서 누리는 뜻밖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든지 들에 피 뽑았든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구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유언」(1925) 전문
현재 『생명의 과실』 원본을 직접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김명순의 문장을 원문으로 확인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출판사 핀드가 지난해 김명순이 낸 두 권의 창작집을 복원했기 때문. 오영식 선생님을 통해 『생명의 과실』과 『애인의 선물』 원본을 확인한 뒤, 당시 창작집의 규격이며 장정까지 고스란히 살려 냈다. (아쉽게도 『애인의 선물』 원본은 판권란을 포함한 뒷부분 몇 장이 소실된 상태로 남아 있어 이 책 마지막에 실린 각본 「두 애인」의 결말 내용은 확인이 불가하다. 출판사 핀드는 복원 과정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 곳의 도서관을 수소문했고, 어렵사리 「두 애인」이 발표된 문예지 『신민』 36호(1928년 4월)를 찾아 그 누락된 내용을 메웠다.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간 근대 여성 작가의 단행본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더욱이 근대 여성 작가의 단행본을 복원하다니, 아마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한국 여성 작가의 계보를 되짚고 한국문학의 보배로운 유산을 발굴한 뜻깊은 작업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2. 『생명의 과실(복원본)』(핀드, 2024)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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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과실』 속 한 편 한 편을 찬찬히 읽어 나갈수록 그 속에 담긴 겹겹의 사유는 가슴속에 거센 파문을 일으킨다. 사는 내내, 쓰는 내내 치열한 내적 전투를 멈추지 않았던 김명순의 작품은 더없이 처연하고 동시에 굳세며, 무엇보다 깊다. 작품을 통해 보건대, 여러 불행의 증거에도 김명순은 결코 지치거나 꺾이지 않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절망하고 비탄하면서도 끝내 굳건한 마음으로, 의지로 삶을 일으키는 사람.
아- 비웃는 이들이여 당신들이 나를 실연자라고 오래 비웃어왔다. 하나 불행히도 당신들은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한 처녀가 불의의 능욕을 받고 살기를 원해서, 썩은 기둥으로 기왓장을 받쳐온 것을 도무지 헤아려주지 못했다.
당신들은 나를 비웃기 전에 내 운명을 비웃어야 옳을 것이다. 나는 이 지경이 겨우 이르렀어도 힘 있는 대로 싸워왔노라.
- 수필 「대중없는 이야기」 부분
대체 그 근저에 무엇이 있었기에? 『생명의 과실』을 비롯 김명순의 다양한 작품들을 짚어 보자면 그는 분명 혼자였으나 실은 ‘사랑’과 함께였구나 알 수 있다. 마치 가슴 깊숙이 하나의 씨앗을 심어 둔 듯이. 그 하나만을 정성으로 보살펴 가꾸듯이.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그는 사랑을 버리지 않았구나. 그의 삶은 사랑으로 기어코 충만할 수 있었구나. 김명순이 그린 사랑에 대해 헤아릴수록 이 거대한 사랑이야말로 김명순이 수확한 ‘생명의 과실’과 동의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련 씨, 사람은 절대로 누구와든지 꼭 육신으로 결합해야만 살겠다고는 말 못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정을 유통시켜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 대항하여 발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능할 것이지만 우리는 한 대상을 앎으로 그 주위의 모—든 것까지 곱게 보지 않습니까.”
- 소설 「돌아다볼 때」 부분
강렬한 만남 이후 남몰래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된, 「돌아다볼 때」 속 주인공 소련과 효순은 결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안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감정을 간직하는 것으로 서로의 삶을 보다 성숙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김명순이 그린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보다 훨씬 광의의 개념이다. 동경이자 이상이자 신념인 것. “육적 충동과 호기심 만족에 불과한”(희곡 「의붓자식」) 일반의 ‘사랑 운운’과는 완전히 다른 것. 결혼과 같은, 자기 결정권이 박탈된 낡은 사회 제도나 도덕관념과도 철저히 대척하는 것이다. 자유를 향한 분투로 봐도 무방하겠다.
사랑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것. 내가 나로서 온전하고자 한 의지. 오롯한 한 존재로서 자유로이 삶을 일구고 올바로 세우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을 향한 거센 집중. 이로써 빚어진 사유는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자신에 오롯이 몰두하며 사색하는 한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함.
탄실아 너는 간다. 네 한몸의 영화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 너는 간다. 그리고 입을 다문다.
오오 탄실아 탄실아.
네 한몸의 문제만 풀러 너는 간다.
- 수필 「네 자신의 위에」 부분
사랑으로 충만한 ‘탄실’(김명순의 호이자 대표 필명)이 향하는 곳은 다른 어디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값없이 던져지던 남의 생활의식 남의 감정” 따위 “전부 뽑아내어 던져”(수필 「겨울 앞 독백」)버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 위에 고요히 돌아가 정밀히 생각해보”(「네 자신의 위에」)고자 하는 것이다. 오직 이 하나의 사실을 새기는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이 지닌 깊이를 확인하기란 충분하겠다.
이처럼 김명순이 일군 문학의 힘은 의심할 나위 없이 건재하다. 그러나, 그 힘과는 별개로, 김명순을 생각하는 이따금 나는 사무친다. 힘겨운 매 순간 그가 혼자였으리라는 짐작 때문에. 생의 마지막까지 가정이나 국가 같은 최소한의 울타리도 그에겐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창작자로서, 그리고 자유롭고자 한 한 인간으로서 전심으로 분전했기에 더욱 외로웠을 그 삶을 떠올리게 된다.
올해 2026년은 김명순 탄생 130주년이 되는 해다. (그의 생일은 1월 20일!) 지난해에 이어 올 한 해 그의 작품을 읽고 그의 책을 되살리는 일이 더 중하게 여겨진다. 이제 우리에게는 읽는 일이 남았다. 어떻게 해서든 읽는 일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김명순, 그 빛나는 사유의 힘을 믿고 독자로서 부지런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문득 소설 「돌아다볼 때」 속 주인공 소련의 방 머리맡에 족자로 걸려 있다는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를 떠올린다. 그 시에는 허공에 쏘아 올린 화살도, 허공을 향해 부른 노래도 땅에 떨어져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아주 오랜 뒤 한 그루 참나무 속에서 / 나는 그 화살을 찾았네, 여전히 부서지지 않은 채로 / 그리고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 한 친구의 마음속에서 다시 찾았네.” 『생명의 과실』과 100년 전 김명순의 빼어난 작품들은 오늘날의 친구들, 독자들에게 조금도 부서지지 않은 채로 가닿을 것이라 믿는다.
『생명의 과실』에 수록된 수필 「계통 없는 소식의 일절」의 한 대목을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랑은 지극히 드물게 있습니다. 사람의 인격 완성과 같이 드물게 있습니다. 아득거리고 변하고 속이는 것이 사랑이 아님은 당연합니다.
참사랑을 얻으면 노래하지요. 그때까지 밀어(密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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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2월호의 기획 콘텐츠 ‘단 한 권의 책’에서는 시인, 연구자, 학예사 3인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독자분들께 소개합니다. 김명순의 『생명의 과실』부터 염상섭의 『해바라기』, 류달영의 『소심록』까지. 각각의 책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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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른 빛[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스스로 고른 빛 허희 1. 주어진, 선택한 이름 본명은 주어진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먼저 도착해 있다. 이름으로 불리고 거기에 반응하며, 어느 순간 명명된 내가 곧 나라고 믿으며 자란다. 그러한 점에서 본명은 숙명과 비슷하다. 삶의 첫머리에 놓인, 직접 쓰지 않은 나의 첫 단어. 반면 필명은 스스로 취한다. 이러한 선택이 자율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대 정신, 언어 감각, 타고난 기질 등이 개입하니까. 그럼에도 마지막에 나의 의지는 남는다. 새로운 이름으로 한번 살아 보고 싶다는 미래형의 소망이 필명에 깃든다. 그래서 필명은 완성된 자아의 명패라기보다, 아직 닿지 못한 어떤 상태를 향한 선언에 더 가깝다. 그러기에 왜 필명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략 두 갈래의 답이 떠오른다. 하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 글 쓰는 나를 분리하기 위한 실용적 장치라는 설명. 다른 하나는 본명보다 조금 더 문학적 자아를 추구한다는 낭만적 소명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 필명은 어떤가 하면, 그 두 지점 사이 생활의 편의와 문인-되기의 욕망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러기에 필명을 둘러싼 사정은 꽤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이름 하나를 골라 자기 앞에 내세우려면 오랫동안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필명은 자기를 향한 해석의 과정이자,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장의 행로를 설정하는 제일 짧은 서문이라고 할 만하다. 내 필명은 ‘허희’다. 성은 내 본래 성인 양천 허씨의 ‘허’이고, ‘희’는 ‘빛날 희’다. 여기에는 극적인 계시나 비밀 따위는 없다. 다만 이러한 고민은 품었다. 필명으로 불릴 때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어떤 글쓰기의 윤리를 두 음절로 새겨야 하나. 따져 보면 필명의 두 음절 안에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이어받은 것(계보)과 내가 갖고 싶었던 것(지향)이 나란히 들어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전적으로 주어진 것도, 온전히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 존재. 물려받은 것 위에 스스로를 덧쓰고, 선택한 것을 통해 과거를 다시 반추하며 산다. 반은 유산이고 반은 결심인 셈이다. 나는 이름이 한 사람의 캐릭터를 표상하는 한편으로, 그에 따라 그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고 여겼다. 운명론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명은 애초에 그러려고 지은 이름이 아닌가. 사람들은 필명으로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이름으로 원고를 보내고 서명한다. 호명이 누적될수록 필명은 실체화되고 힘을 갖는다. 필명이 가면과 다른 이유도 거기 있다. 가면은 상황에 따라 벗을 수 있지만, 오래 사용한 이름은 어느새 나와 일체화된다. 그러니까 필명은 나에게 자기를 감추는 수단만은 아니었다. 자기를 재발명하는 방법이었다. 필명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사적으로 고른 이름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날은 쓸 문장을 한
- 허희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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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과 언어[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옷장과 언어 이자켓 저는 작가로 마주하는 첫 만남에서 대부분 필명에 관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 꺼내입는 자켓은 한 벌이 아닙니다. 제게는 각기 다르게 디자인된 자켓이 여러 벌 있고 매 시기 골몰하던 것을 나름대로 다르게 직조해 보며 다른 답을 해 봅니다. 각기 진의를 담은 것이라 하나만 꼽아 진실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글은 그중 한 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매번 다르긴 하여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면 ‘자켓’을 말할 때 문학을 빼놓은 적은 없습니다. 필명에 관한 질문은 질문자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저는 그보다 이전에 ‘자켓’에 대한 질문자이기에 이 명명에 문학을 둘러싼 어떤 관점이 깃들어 있음을 염두하고 있으니까요. 문학은 무상을 가장한 유상의 것입니다. 자연히 주어지는 것 같지만 물질적 지불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의 지불은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한 점에서 거래처가 불분명한 자영업과도 같습니다. 그러한 인위 속에서 예상치 못한 덤이 따라옵니다. 신기루 같은 덤은 원두 찌꺼기가 담긴 쓰레기봉투를 내놓을 때, 건너편 상점의 불이 꺼졌을 때, 공산품을 포장하고 있을 때 거미처럼 있다가 사라집니다. 이 가게는 폐점한 다이보 커피가 여전히 연중무휴하듯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따릅니다. 매일 옷을 입고 생활하는 것처럼 때로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잊으며, 한편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가 되물으며 가게를 열고 닫지요. 저는 특별히 옷을 모으거나 자주 구매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빈티지와 구제를 구분하며 옷의 내력과 미학을 따르는 이도 아닙니다. 다만 옷을 입고 살기에 되도록 편하고 잘 맞는 것을 갖추어 오래도록 입습니다. 지금 옷장에 있는 옷들은 대개 10년이 넘었거나 비교적 새것인 제품들은 제 성정을 잘 아는 이들에게 선물 받은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지 않아도 삶에는 여러 변화가 있겠습니다만, 제가 의도를 가지고 추구하는 변화는 문학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작년 봄에는 꿰맬 수 없이 해진 것들을 정리하였으니 어떤 옷들은 이미 그리고 아직 내가 착용하는 옷들은 무형이 되어 갑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내게는 주요한 옷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시장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다 준 잠바의 모습을 한 것인데 짙은 쪽빛에 표면이 매끄러운 것입니다. 스포츠를 위한 바람막이 디자인이었고 지금도 즐겨 입는 필드 재킷의 디자인과도 닮았습니다. 품이 넉넉하고 부담 없이 입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그것을 입고 그와 비슷한 색채의 어둠 속에서 맹꽁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입고 배드민턴을 치러 한겨울에 나섰다가 추위에 떨며 스테인리스로 된 벤치에 웅크려 있을 때 친구들과 이름 모를 동네 아이들이 패딩을 벗어 제 위에 쌓아 두기도 했습니다. 그때 옷더미 속에서 포근한 어둠을 보았고 드문드문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을
- 이자켓
- 2026-04-01
문장웹진 기획
미완의 봄, Primave[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미완의 봄, Primave 김봄 이십 대 중반,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다. 회사만 아니면 된다, 뭔가 작게라도 만들어 팔 수 있는 가게를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방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남시장 인근을 걷다 가게 자리를 발견했고 나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가게 앞으로 출근해 시간대별·연령별 유동 인구를 조사했다. 신사대로와 압구정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꽤 널찍한 골목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았다. 커피 선호도가 높은 소호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연령대도 청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권리금도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되는 자리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굳은 의지만 가지고 결심한 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가게를 계약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물음표로 남았다. 내 머릿속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라는 막연한 테마만 존재했을 뿐 어떤 콘셉트로 가게 이미지를 만들 것인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게 이름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데, 무어라 부르지?” 나는 난데없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쿨하고 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그 골목 곳곳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커피 가게의 정체성은 커피 원두가 좌우하는 법이니 나는 이태리 원두 ‘라바짜’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서부터 가게 콘셉트를 잡아가기로 했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는 9,800원짜리 코스트코 스타벅스 원두를 사서 쓰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영세업자들의 원두를 사다 썼다. 대상에서 만든 ‘로즈버드’라는 전문 브랜드는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가볍게 느껴졌다. 진하면서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 승부하고 싶었기에 나는 대담하게도 44,000원짜리 라바짜 원두를 선택했다. 1킬로그램 원두 한 봉지에 100잔 정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컵과 뚜껑, 컵 홀더, 빨대와 같은 부자재와 우유 등의 식재료 가격을 따져 보면 다른 가게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문이 좀 적게 남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공들여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가게는 작아도 이탈리아 원두를 쓰느니만큼 정통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가게 이름을 이탈리아어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어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뜻하는 ‘프리마베라(Primavera)’로 결정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주역 여성 가
- 김봄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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