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봄, Primave
- 작성일 2026-04-01
- 댓글수 0
[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미완의 봄, Primave
김봄
이십 대 중반,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다. 회사만 아니면 된다, 뭔가 작게라도 만들어 팔 수 있는 가게를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방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남시장 인근을 걷다 가게 자리를 발견했고 나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가게 앞으로 출근해 시간대별·연령별 유동 인구를 조사했다. 신사대로와 압구정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꽤 널찍한 골목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았다. 커피 선호도가 높은 소호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연령대도 청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권리금도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되는 자리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굳은 의지만 가지고 결심한 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가게를 계약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물음표로 남았다. 내 머릿속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라는 막연한 테마만 존재했을 뿐 어떤 콘셉트로 가게 이미지를 만들 것인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게 이름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데, 무어라 부르지?”
나는 난데없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쿨하고 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그 골목 곳곳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커피 가게의 정체성은 커피 원두가 좌우하는 법이니 나는 이태리 원두 ‘라바짜’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서부터 가게 콘셉트를 잡아가기로 했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는 9,800원짜리 코스트코 스타벅스 원두를 사서 쓰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영세업자들의 원두를 사다 썼다. 대상에서 만든 ‘로즈버드’라는 전문 브랜드는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가볍게 느껴졌다. 진하면서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 승부하고 싶었기에 나는 대담하게도 44,000원짜리 라바짜 원두를 선택했다. 1킬로그램 원두 한 봉지에 100잔 정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컵과 뚜껑, 컵 홀더, 빨대와 같은 부자재와 우유 등의 식재료 가격을 따져 보면 다른 가게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문이 좀 적게 남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공들여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가게는 작아도 이탈리아 원두를 쓰느니만큼 정통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가게 이름을 이탈리아어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어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뜻하는 ‘프리마베라(Primavera)’로 결정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주역 여성 가수인 ‘프리마돈나(Prima Donna)’도 떠오르는 게 ‘시작이면서 으뜸이 되는, 새롭게 도약하는 마음’을 품기에 좋은 단어였다.
가게 간판에는 원어에서 철자 두 개가 빠진 ‘Primave’가 걸렸다. 거의 제작이 완료된 벽 간판 안에 전체 글자가 다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의 순서가 바뀌었지만 왠지 ‘완성되지 못한 프리마베라’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손님들이 가게 이름의 뜻을 물을 때마다 나는 호기롭게 ‘미완의 봄’이란 의미라고 설명해 주었다. 왠지 모르게 뭔가 완성되지 못한 게 남아 있을 것 같은 여지를 보여 주고 싶었었나 보다, 나는. 듣는 사람들마다 ‘캬’하는 소리를 내며 감탄을 해 줬고 그건 또다시 나를 고무시켰다.
2001년, 프라마베의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9.11이 발발했다. 어쩌면 가게도 오픈하지 못하고 세상과 함께 멸망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며칠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나는 ‘미완의 봄’을 무사히 오픈했다. 피크 타임이면 내가 만든 커피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손이 무척이나 빠른 나는 30초마다 한 잔씩 커피를 조제해 손님 앞에 내놓았다.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절이었는데도 나는 좀처럼 지칠 줄을 몰랐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생생한 에너지를 탑재한 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나는 명함 이벤트 같은 마케팅 전략을 자주 활용했다. 손님들의 이름이 담긴 명함을 보면서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이 회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 상상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중에는 비룡소, 황금가지, 민음사 등의 강남출판문화센터 명함도 많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들의 명함을 책을 읽는 것처럼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읽다 보면 뭔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신기한 기물을 손에 쥔 선무당처럼 집중하다가, 멍해지다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음을 상기했다. 봉인이 해제된 기억들은 쉼 없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처럼 감흥에 젖어 들다가도 자주 선득함을 느끼곤 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수시로 바뀌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마 안 되어 나는 가게를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내놓고 학교에 들어갔다. 졸업을 하면서 스터디를 결성해 1년 동안 12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그 당시에 썼던 작품들 몇은 신춘문예 최종심에 언급되기도 했다. 금방 될 것 같다가도 안 되기를 반복하면서 7년이 지났다. 나는 또 새로이 학교에 입학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10년이면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쏟은 열정과 시간이 아까웠지만 글 쓰며 사는 삶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 만큼 했으므로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강남시장 골목을 떠난 지 꼭 10년 만에 나는 그 골목에 다시 들어서게 되었다. 프리마베는 다른 커피 가게로 바뀐 후였고, 이전에 있던 다른 가게들도 이름을 바꾼 가게가 많았다. 나는 그 가게들을 지나쳐 민음사 회의실로 향했다. 10년 전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던 손님들이 일하던 건물 안으로, 그들이 부르는 내 이름을 들으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김봄 작가님 맞으시죠?”
오랜 습작기 동안 나는 내 본래의 이름을 유지해 응모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이름이 너무 흔해서 그런가 하며 괜히 이름을 탓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성연’이라는 이름으로 접수를 하기도 했었다. ‘성연’으로는 몇 번 최종심에 올랐다. 주역에 능통한 어떤 선생님이 지어 주신 ‘정진’이란 이름으로도 투고를 했었지만 그건 영 신통치가 않았다. 물론 작품이 신통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농담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음, ‘봄’이란 이름으로 응모를 했는데, 나조차도 응모한 것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다 포기하고 학원이나 차려서 학생들을 가르쳐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때 내게 ‘김봄’이란 이름을 부르며 민음사 대표가 전화를 해 온 것이었다.
시상식장에서 나는 나의 파란만장했던 이십 대의 어느 날, 이곳에서 근무하던 분들의 명함을 받았던 일과 오래 근무하신 분들이라면 제가 타 드린 커피를 드셨을 수도 있을 거라는 소감을 밝혔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과 나는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은 ‘봄’이란 필명을 아주 낯설어했다. ‘범’에 가까운 인상이라 그런가? 나는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며 머쓱해했다. 내가 ‘봄’에 딱 붙은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하니까. 가증스러운 필명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봄’이라는 단어의 소리가 주는 기운이 좋았다. 그런 작명을 스스로 했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고, 나아가 여름, 가을, 겨울도 다 내 이름으로 쓰고 싶어졌다.
여러 이름을 갖는 것은 성명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우리 선조들은 대부분 본명(本名) 외에 아명(兒名)을 널리 사용하였다. 성인이 되면 아명을 버리고 관명(冠名)을 지었다. 성명학은 사주팔자의 선천운을 후천적으로 추동(推動)할 수 있는 유일한 가변 수단으로 이름의 운을 따지는 학문이다. 새로 만든 이름의 운으로 변화를 얻으려 함이 성명학의 본질이다. 운명은 변하기에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한다. 성명학의 관점으로 보면, 나는 새롭게 지은 ‘봄’이라는 필명으로 내 삶을 한층 더 가변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내 이름 봄은 신록으로 찬란해지는 계절의 이름 봄이 아니라 ‘보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물론 ‘보다’와 ‘봄’은 따로 떨어진 단어가 아니다. 봄이 따뜻한 온기가 다가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따뜻해진 봄볕 가운데 만물이 생동하는 새 계절을 새롭게 보는 ‘새봄’을 봄의 근원으로 두는 이들도 많다. 그립고 보고 싶으면 바라보게 되고, 보다 보면 봄이 오는 것이니.
내가 ‘보다’의 ‘봄’을 선택하게 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보고,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도, 관찰력도 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잘 관찰하고 잘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건 내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나는 여전히 ‘봄’으로 살고 있다. 돌보고, 맛보고, 해 보면서 김봄으로 살아온 지도 어언 15년이 넘었다. 나는 김봄의 정체성으로 권리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요즘에는 나를 본명으로 대하는 사람보다 ‘봄’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많이 만난다. 어디 그뿐인가. 매년, 봄이 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봄’을 연호한다. 어서 와서 온 누리에 만발하라고 소리친다.
성명학 연구를 살펴보면 사물의 명칭을 명명(命名)하는 것에 대해서 “천지(天地)의 도(道)를 본받은 것을 호(號)라 하고, 소리를 내어 사물의 이름을 명명(命名)한 것을 명(名)이라 하였다.”1)하고 호(號)와 명(名)에 대하여 “천지(天地)의 도(道)를 본받은 것이, 호(號)가 되고, 소리를 내어 사물의 이름을 명명한 것이, 명(名)이 되었다. 명(名)과 호(號)가 소리는 다르지만, 근본(根本)은 같다.”2)고 한다. 따라서 호(號)는 천지(天地)에 대한 숭고한 사명과 의미를 지닌 것이 되고, 명(名)은 사물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근본은 하나로 천지의 도를 본받는 것이 같다고 본 것이다.
그처럼 나를 ‘봄’으로 불러 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타고 넘어온 에너지들이 나에게도 도착하고, 나는 남과 다른 ‘봄’으로 나의 정체성을 가르고 있다. 새록새록 연두색 이파리가 솟아나는 새봄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완료되지 않은 봄인 채로, 언제라도 변화할 수 있는 보는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프리마베! **
1) 『春秋繁露(춘춘번로)』, 「察名號(찰명호)」: “謞而效天地謂地號, 鳴而施命謂之名, 名之爲言.”
2) 같은 책
|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4월호의 기획 콘텐츠는 ‘작가들의 필명’이에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시인, 소설가, 평론가 3인이 자신의 필명에 얽힌 이야기들을 독자분들께 전해드립니다. 일상의 시간과 작가로서의 시간을 구분해주는 필명이 세 사람의 글쓰기와 삶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함께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게임과 작가[편집위원 기획-Game & Writer] 게임과 작가1) 임가영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림이 좋다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다는 이유로 예술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현대미술’이 좋았다. 더 정확하게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계 설정에 관여하는 시도들이 좋았다. 더불어 ‘작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았다. 위대한 창작자의 숙련된 솜씨와 천재적 재능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창작의 공을 돌리는 시도들이 공감이 갔다. 말하자면 나는 ‘저자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현대미술을 택했다. 예술을 하기 전 나의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고, 처참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관심이 갔던 과목이 ‘정치철학’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려(웹툰 어시스턴트와 게임 캐릭터 원화가)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나 자신을 창작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내 그림에서 예술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미대를 들어갔고,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애썼다. 미술 갤러리 안에서 카레를 끓여 나눠 먹거나 지역의 경찰과 청소년이 다 같이 둘러앉아 청소년 범죄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작품들을 리서치하고, 이러한 참여형 미술을 둘러싼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그랜트 케스터(Grant Kester)의 담론적 논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어렴풋이, 나는 그게 내가 원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인 듯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믿고 예술을 시작했는데, 저자는 좀처럼 죽지 않았던 것 같다. 한 교수는 술자리에서 내게 “너는 아직 작가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작가는 ‘자기 일을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사람, 혹은 그에 준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중심점’처럼 느껴졌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준 다음 그 과정을 포트폴리오에 잘 기록해서 다음 전시 기회를 얻어낼 수 있는. 다른 교수는 작가가 에고가 강하고 별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작가가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미술은 일종의 폰지 스킴(Ponzi scheme)처럼 나를 가짜 약속으로 끌어들였던 걸까? 아니면 나는,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을(아무리 이런저런 반작가적 실천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담론이 존재한다 해도 결국 제도는 안정적인 창작자–수용자 모델 속에서 지속되며, 이것은 사실 ‘저자의 죽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 같은 걸)
- 임가영
- 2026-05-01
문장웹진 기획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이태형 1. 게임 준비(Rule Book)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완구점의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전소된 창고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온전한 장난감을 몇 개씩이나 집어 왔다고 합니다. 당신도 친구와 함께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해 위로 중년의 여성이 울면서 욕설과 함께 타다만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집니다. 쥐 떼 같은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눈에 불을 켜고 온전한 물건을 찾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친구는 망설임 없이 쥐 떼 무리에 합류합니다. 당신은 친구의 눈에서 평소와 다른 광기를 느낍니다. 광기가 당신에게 친구처럼 무리에 합류하라 명하며 그로 인해 당신이 얻을 혼돈의 기쁨에 대해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면 민첩(2)을 테스트합니다.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면 의지(1)를 테스트합니다. ➜ 합류하기로 하고 민첩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곰 인형 1개와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있다면 추가로 지식(1)을 테스트합니다. 성공했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핑계를 떠올립니다. 실패했다면 당신은 잠시 죄책감을 느낍니다. 정신력 1을 잃습니다.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없다면 정신력 2를 잃습니다. 민첩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여성이 던진 물건에 맞아 잔해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오른손으로 잔불을 짚어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체력 1을 잃고 화상 카드를 얻습니다. 힘(2)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기로 해서 성공했다면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이 정도 화상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패했다면 손 골절 카드를 추가로 얻습니다. 무모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 골절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손 보조도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지 않기로 했다면 화상 카드를 뒤집고 즉시 지시를 따릅니다. 물품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 합류하지 않기로 하고 정신력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친구는 당신과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신력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광기가 여전히 당신도 합류하라고 귀에 계속 속삭입니다. 정신력의 최대치 1이 줄어듭니다. 당신은 가만히 서서 이 장면을 눈에 담습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를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인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하는 보드게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장소 조우’로 재구성한 글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물품을 2개나 훔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이익을 피하는 첫 번째 선택이 가장 좋은 판단 같아 보인다
- 이태형
- 2026-05-01
문장웹진 기획
모르면 죽어[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모르면 죽어 박서련 근황 얘기에 영 소질이 없다. 웃길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를 박장대소하게 하거나 전혀 어두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소재로 분위기를 망치거나. 요즘은 게임도 그렇게 재미 있지가 않아요. 최근에는 이 말을 좀 자주 했다. 별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지만 듣는 분마다 놀라셔서 내가 더 놀랐다. 헉 진짜요? 서련 씨가요? 작가님이요? 그게 그렇게 의외이실까, 약간은 머쓱해하다가 내가 한 말이 왠지 ‘요새 밥도 맛이 없어요’처럼, 그러니까 중증 우울증 환자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음을 조금 의식하곤 했다. 그럼 이제 여가 시간에 뭘 하세요? 요즘엔 뭐가 재미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게임을… 합니다. 안 하는 게 아니고요 재미있지는 않아도 그냥… 해요. 전보다 게임 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습하듯 덧붙이곤 최근에 삭제한 어떤 게임을 떠올린다. 영주가 되어 한 도시국가를 경영하고 연맹의 일원으로서 왕국 간의 전쟁에 참전하는 콘셉트의 모바일 게임이었는데, 삭제하기 직전 확인한 플레이 타임은 대략 700시간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였나, 한국인 유저가 별로 없을 때 시작해서 다국적 연맹에 가입했고 이따금 인도네시아에 사는 여성 연맹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런 게임에서 아시안 여성 게이머를 알게 되어서 좋아요. 나도 그래요. 연맹원들에게 내가 한국인 여성인 것을 밝히고 받은 메시지는 대체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나요?’ 같은 것이었고, 그 사람과 내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대화도 내가 잘 모르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서 역시 크게 관심 없는 멤버가 탈퇴했다는 소식에 대한 거였다. 상대방이 아주 슬퍼했기에 나는 그 주제에 그리 관심이 없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 며칠 후에 별다른 개연 없이 그 사람이 다른 왕국(이 게임에서 ‘왕국’은 서버를 의미한다)으로 이주했다. 뒤따라 이주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없으니 더는 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떠난 후에 나의 성은 연맹 내 등급이 차츰 떨어진 후에 연맹에서 자동 탈퇴될 거다. 그러면 연맹 사냥터 인근 개꿀 자리에 위치한 내 성이, 연맹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물처럼 여겨질 거다. 그럼 연맹원들이 내 성을 공격하겠지. 성이 충분히 데미지를 입으면 왕국 내 랜덤 위치에 자동 이동하게 되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한 일주일 걸리려나? 길면 2주? 이 게임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기 직전 나는 전투력 1억을 막 넘긴 상태였다. 축하해, piupiu.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연맹원이 연맹 채팅 채널에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성의 전투력이 그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내 성을 공격할 때 연맹원들은 애를 좀 먹으려나? 아니겠지, 우리 연맹에는 일
- 박서련
- 2026-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