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요약이 없다
- 작성일 2024-11-01
- 좋아요 0
- 댓글수 1
- 조회수 531
[에세이]
바다는 요약이 없다
이서안
“샘, 꼭 전문 다 읽어야 해요? 수능에 안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매 수업마다 이런 대사를 읊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전문 줄거리 요약한 건 없나요?” ‘요약한 것?’ 가슴 언저리를 뭔가 콕콕 찌른다. 시간이 부족해 그것도 걷기 중에 영화 줄거리와 결말을 보는 내 모습이 돌연 떠오른다. 나에게 꼭 집어달란다, 수능에 나올 작품들만. 중편 분량에도 못 미치는 소설을 혹 가다가 추천하거나 충분한 시간을 주어 과제를 내면 “이걸 언제 다 읽어요?”라며 지겹다는 낯빛을 단번에 드러낸다. 현대소설은 너무 길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데다 주제가 애매해 문제 풀기 어렵다나······ 고전소설은 글자가 아니라 기호 같다고······ 지겹지 않도록 강약을 조절하며 한껏 신나 가르침에도 괴로운 표정으로 시간을 견디는 학생들에게 나도 조금씩 지쳐 간다. 비단 소설 외에 다른 장르라고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의 이야기꾼 전기수들은 낭독의 귀재들이었나. 그들은 얼마나 맛깔나게 지은이의 숨은 의도까지 찾아내 상상력을 더 보태 구연했을까? 소설책을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 시대의 애독자들은 세책점에서 신간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가슴 저민 스토리에 같이 공감하고 감동 어린 몸짓으로 전기수들에게 반응했다. 장터나 마당에 앉아 전기수에게 귀 기울이는 애독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마구 달려가고 싶어진다.
“영웅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게 놀랍지 않나요? 옛날에는 남성 중심 사회였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이 만난 홍계월전에서는 무엇보다 오랑캐와 싸우는 계월, 평국의 활약이 두드러지죠······.”
오늘 읽은 고전 소설은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 시대를 앞서가는 근대적 가치를 담을 줄 아는, 진보적 소설인 동시에 핫한 소설이었다. 도적 때문에 강에 버려진 계월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구출되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남장한 긴장 모티브도 있었고, 여성이 중심인물이 되어 나라를 구한 박진감 넘치는 활약의 절정과 사이사이 평국과 보국의 쿵쿵 로맨스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해피 엔드까지······.
하나 내 생각과 달리 나는 다른 색깔의 언어로 학생들을 간곡하게 유혹해야 했다.
“얘들아, 홍계월전 만화책으로 나온 것도 있으니 그걸 보면 좀 쉽게 이해가 될 거야.”
학생들에게 제시한 유혹 계책에 씁쓰레하면서 ‘지금의 학생들은 영상세대들이잖아. 난 합리적 제안이라고 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잠깐이나마 청중을 휘어잡는 전기수가 못 된 아쉬움이 물결 가득 밀려온다.
문장 하나에 눈빛이 살아난 아이들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밤을 새워 소설을 읽고 감명 받아 울었다는 학생들은 희귀식물 채집하듯 아주 이따금 발견한다. “왜 소설을 읽기 싫어하니?” “재미없어서요.” 이런 즉답을 들을 때마다 내 미래 독자가 점점 두려워진다. 만약 내 소설을 읽고도 이런 반응들이라면······.
떠들썩한 수업이 끝나면 바스러진 육체에 기를 불어넣듯 긴 심호흡을 해본다. 돌아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출근한다. 내 글쓰기의 비롯한 공간으로. 해거름은 벌써 지고 내가 앉은 의자 뒤 창문에 어둑한 그림자가 차오르기 시작하면 육체와 정신이 어느 정도 지친 상태에서 한 가닥 정신 줄을 잡으려고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재미없는 소설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한번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카페 주인을 만났다. 그 카페는 북 카페가 아닌데도 여러 문학책이 켜켜이 진열돼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소설도 많이 읽었으리라 생각했다. “소설책을 자주 읽으시나 봐요?” “아뇨, 소설책보다는 시나 수필집을 읽어요.” 질문한 내가 민망스러워 나도 모르게 건드리지 말아야 할 본질을 건드리고 말았다.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군요.” "네,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든데 소설까지 읽어 복잡해지고 싶지 않아서요. 등장인물들의 처절한 사연들에 빠져들기보다 머리가 아파져 잘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그냥 짤막한 내용이나 가볍게 읽는 게 마음에 힐링 되죠.”
그럼에도 밤하늘에 별을 찾듯 희망을 오늘도 나는 찾는다. 소설이 진짜 좋아서 즐겨 읽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거였다. 드문드문 만나게 되지만 여름날 무더위에도 추운 겨울에도 카페나 도서관이나 작은 책방에서 애독자들이 들고 있는 소설책에서 나는 적지 않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애독자가 되었다가 그중에 소설이 좋아서 쓰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좋다기보다 삶을 살아가듯 덤덤하게 쓴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성취감이 주는 도취에 중독되었다고 해야 하나. 매번 미완의 마무리라도 인쇄를 누르는 그 몇 초의 순간, 검은 활자로 도배된 종이가 쓰륵쓰륵 쌓여 가는 그 찰나의 맛이 고된 시간을 투쟁했던 나의 연대기에 스스로 위로받고, 어쩐지 나도 모르는 상상이 시작될 것만 같아서, 라고 봐야 하나······.
키보드를 한참 두드리며 서사의 세계에서 헤매다 농익어 가는 밤과 아직 오지 않은 새벽의 경계에서 나는 컴컴한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걷는다. 적요한 거리는 이제 새벽 어스름 녘에 퇴근하는 나를 주시한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짙은 그림자에 잠든 건물들과 다문다문 불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에 지쳐 잠들지 못한 나무들을 등지고, 쓰레기수거차가 골목을 비집고 서둘러 달린다. 한두 건물 지나면 ‘임대’라는 노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비어 있는 공간에는 어둑한 물체들이 굴곡진 서사를 안고 버텨낸다. 정적을 깨는 건 간간이 스치는 자동차 바퀴소리와 발정 난 고양이들의 자지러진 소리뿐이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다 나는 깊숙이 간직한 그리움을 안고 스르륵 잠이 들고······ 그렇게 꿈꾸다 나는 바다를 만나러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바다를 만나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돌아오는 게 태반이었다. 노트북의 배터리를 가득 충전해 출발하지만 정작 노트북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구멍 난 마음들만 더욱 확인해야 했다. 그렇다고 아주 빈손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내가 바로 깨닫지 못할 뿐 핍절한 내 삶에 녹아들어 일주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주 5일을 학생들을 가르치며 퇴근과 출근이 반복되는 공간에서 글을 쓰고 정작 그리워하던 바닷가에서는 썼던 것을 잊기 위해 바다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여류 작가 린드버그는 바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색에 잠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화려한 유혹 앞에 속수무책 혼을 빼앗긴 게 틀림없었다.
날것의 바다, 정제되지 않은 바다, 바다는 언제나 벌거벗은 육체를 들이밀었다. 거리낌 없는 바다에 움츠러드는 건 오히려 나였다. 집착과 가식을 내려놓으라고 해변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밀물이 되어 쓰르륵 충고했다. 진실의 대가는 소금기 가득 담은 바닷물처럼 짜고 쓰디쓰다. 진실을 구현하는 소설, 심해 깊이 숨겨진 정체들을 밝혀야 하는 소설, 인물들을 향한 지대한 관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릿한 바다 향기로 먼저 나를 맞은 정오의 바다는 온몸으로 파닥파닥 뛰어올랐다. 은빛의 난무는 태양을 따라 한층 도드라져 멈출 줄을 모르고, 오늘도 눈에 익은 진한 푸른빛의 수평선 해도는 또 다른 누군가의 도발로 바다에 선을 긋고 생경한 길을 만들었다.
푸르디푸른 저 멀리에서부터 하얀 메밀꽃이 피어올랐다 사그라졌다. 파도는 일정한 간격으로 몽돌해변에 닿았다가 다시 밀려나기를 지겹도록 반복한다. 비죽 솟은 바위에 느슨하게 부딪힌 파도는 잠시 물러갔다가 드센 힘으로 다시 바위를 들이친다.
바다를 처음 만난 느낌은 뭐랄까, 어마어마한 광활함에 놀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동시에 색다른 세상의 한 페이지는 낯선 세계로의 방문처럼 잔뜩 호기심을 남발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날선 바다에 불편했고 무한정 스며드는 날것들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피부에 와 닿는 센 소금기가 그랬고, 파도를 안고 들이치는 생 비린내가 그랬고, 갯벌의 역한 냄새가 그랬다.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만든 건 선창가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와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는 배들이었다.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며 나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배처럼 훨훨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배말뚝의 고박(固縛)처럼 내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머뭇거리다가 단지 너머를 향한 그리움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언젠가 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표상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감춰진 것이 많아 바다가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가라앉음이 본질이 아니냐고 했다. 가라앉은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잠수부들이 그러하듯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우리가 접근 가능한 바다의 영역은 제한적이라고······.
망망하고 굵직한 바다에 하얀 부표가 물결에 떠다닌다. 짜디짠 소금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일상을 천연히 살아가는 생물들이 바다를 에워싼다. 뜨거운 태양에 고무된 갈매기들도 나름 지쳤는지 해변 가까이 바위들을 찾아 오수에 젖어 있다. 바다에 순응한 개체들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늘 인간 문제는 순응하지 않는 데 있는지 몰랐다.
이제 바닷가 마을에는 고기를 잡는 본토박이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횟집들과 민박과 펜션이라는 큼직한 글자를 내건 생계의 현장만 씨름한다. 포구에 그물을 깁는 거친 손등들은 먼 나라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두려움과 기대를 안은 눈망울을 굴리는 다문화 노동자들이 저들만의 사연을 안고 다문다문 서사를 만들어 갔다. 저들에게 바다는 어떻게 기억되는 것일까? 결핍을 채우러 노동의 고된 현장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거친 삶처럼 바다를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바다를 보며 만선의 꿈을 안고 고국의 바다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묵묵히 응원할 뿐.
해거름의 바다는 행간의 의미를 찾게 만든다. 마음을 휘젓는 화려한 놀을 바라보며 그 어느 누구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감미로운 오렌지빛 하늘가에 열기 식은 저녁 빛이 깜박이면 수평선 너머로 강렬한 집어등이 하나둘 저녁을 밝힌다. 집어등이 없었다면 하늘과 바다가 맞물린 수평선을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하늘과 하나가 된 바다는 빛나는 별들과 달빛을 물결에 투영한다.
우리의 인생처럼 바다에도 발단이 있고, 전개가 있고, 위기가 있고, 절정이 있고, 결말이 있을까? 꾸밈없이 벌거벗어 보인 바다가 어떤 때는 불편했다. 바다는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투명하게, 천진하게 벗어 보였다. 나는 바다가 준 것들을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내가 본 바다는 지극히 나의 관점으로만 본 바다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르게 바다를 만났을 것이다. 배에 가득 고기들을 싣고 돌아오는 어선처럼 받은 선물들을 안고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바다는 요약이 없다.
전체가 스토리고 전체가 행간이다. 파도가 행간이고 내밀한 바다 향내가 행간이다. 시험에 출제되는 문항들과 달리 저자의 의도보다는 독자에게 감상이 오롯이 맡겨진다.
어둠 속에서 메밀꽃이 다시 뽀얀 포말을 일으키며 나를 향해 달려든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바다와 다시 오는 다른 날의 바다는 어떻게 될까? 내가 바뀐 것일까? 바다가 바뀌는 것일까? 밀물과 썰물이 무한히 반복되는 공간에서 지금 오는 파도와 다음에 오는 파도가 다르듯이.
추천 콘텐츠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을 방문한 날, 공기는 서늘했다. 우리 일행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천천히 푸른 서가를 거닐었다. 숲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최초의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은 한 세기 동안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세계적으로 엄선된 백 명의 작가에게 일 년에 한 명씩 원고를 제출케 하고, 백 년 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었다. 여기엔 나무를 심고 키우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외곽의 ‘노르마카’에 미래도서관 숲을 조성한 후, 가문비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선정된 작품의 원고는 한 세기 동안 읽히지 않은 채, 오슬로의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각각 보관된다. 2114년이 되면 모든 원고의 봉인을 풀고 이 나무들을 베어 책으로 펴낸다. 2018년에는 한강 작가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오슬로에서 숲으로 가는 길,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가 한 마리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근처 호수에서 신을 벗고 발을 담그니, 한겨울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먹은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피오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길섶엔 갈색빛의 버섯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촌락 같았다. 개미들이 가문비 나뭇잎을 끌어모아 고층 집을 지어 놓았다. 잘 익은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장식처럼 붉었다. 퇴고하지 않은 초고의 숲은 뿌리가 땅 위로 자라고, 이끼가 그 위를 덮어, 또 다른 문장을 쓰고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새파랗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노르웨이의 하늘도 그에 못지않았다. 잘 뻗은 가문비나무가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숲에는 곳곳에 두 가지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붉은색은 스키 길을, 하늘색은 트래킹 길을 의미한다고 했다. 수문장 나무에 두 색이 함께 칠해진 걸 보니, 여기는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로 뻗어 오르는 가지는 내 어깨와 키를 맞추기도 했지만, 머리 위로 쑥 솟아오르기도 했다. 쑥쑥 자라 질 좋은 펄프를 생산할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반드시 가문비나무를 쓴다. 이 나무는 최대 오십 미터까지 자라며 수명은 수백 년이나 된다. 작년에는 칠십 년 된 이십 미터짜리를 런던시에 선물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는 그 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추위 속에서 고요히 자라는, 단단한 나이테 덕분이라고 한다. 장 지오노의 소설
- 관리자
- 2024-12-01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① - 스톡홀름과 쿨투어후셋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스웨덴까지의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인천에서 도하까지 10시간, 다시 스톡홀름발 비행기에 탑승하여 7시간을 더 날았다. 하늘길에서 20시간을 보낸 후여서인지 유럽의 공기는 달콤했다. 스톡홀름은 통나무(Stockar)와 섬(Holmar)의 합성어이다. 1255년 무렵 구시가에 통나무로 성을 쌓아 도시의 기초를 마련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13세기 중반 현재의 감라스탄 지역의 언덕 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요새를 만들고 도시를 형성해 발전시켰다. 방문하기 전, 이 도시는 내게 심리학 용어로만 존재했다. 1973년 8월,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고, 이때 인질로 잡혔던 한 여성이 강도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다. 도서관 앞 광장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세르겔 광장은 퇴근하는 시민들로 붐볐다. 늘씬한 키와 금발의 하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이곳이 이국임을 실감케 했다. 남녀 모두 수수한 옷차림으로 큰 가방을 메거나 등에 진 사람들이 많았다. 왕궁과 의회가 있는 감라스탄, 철도와 지하철노선이 교차하는 센트럴역 등 스톡홀름의 모든 길은 이곳 광장으로 통한다고 한다. 쿨투어후셋도서관의 외관은 쇼핑몰처럼 보였다. 광장 분수 안에 세워진 자수정 탑 같은 조형물 때문인지도 몰랐다. 모든 차는 분수를 중심으로 돌아 나갔고 건물 앞에는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 상업 시설이 아닌 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을 보니 이 나라에서 도서관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막 트램이 도착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쿨투어후셋도서관 내부 쿨투어후셋은 ‘문화의 집’이란 뜻에 걸맞게 공연장, 전시 공간, 6개의 도서관으로 이루어졌다. 한 건물에 6개의 도서관이 있다니. 안으로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체스판이었다. 스웨덴의 도서관이라면 반드시 마련된 공간으로, 체스대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공원에서 바둑 두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젊은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어울려 체스를 즐기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초록과 연두 그리고 오렌지로 채워진 가구로 인해 도서관이라기보다 서점 같은 분위기였다. 낮은 서가에 진열된 책과 빽빽하게 채워진 CD, 감각적인 책꽂이에서 고른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의자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또한 꽂힌 책들이 잘 보이도록 세심
- 관리자
- 2024-12-01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작가의 창 - 손서은 작가 인터뷰 류영진 2023년 도서관 상주작가사업의 성과로 2024년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그곳에서 손서은 작가를 만났다. 손서은 작가는 2020, 2021 원주에서 상주작가를 지내고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에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네트워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스웨덴에 가게 된 손서은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스웨덴에 살러 온 손서은입니다.” 유쾌하고 당찬 자기소개였다. 나는 살러 왔다는 말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손서은 작가는 말 그대로 3개월의 레지던스 기간 동안 관광객 마인드가 아닌 스톡홀름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말이라 했다. 상주작가 때 문학큐레이터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도서관 직원들과 파티를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서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으니 도서관 식구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어디를 가든 그곳을 살아가려는 손서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레지던스 생활을 시작한 손서은 작가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강의는 두 번이었다. 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손서은 작가에게 두 번의 강의는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손 작가는 스톡홀름대학교의 한국학과 학생들과 짧은 소설 쓰기로 하고 싶어 했다. 일기식으로라도 좋으니 한국말로 글쓰기를 하고 싶고, 그들이 쓴 글을 봐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친밀하게 만나길 원했다. 상주작가 기간에 ‘뭘 해서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데려오지? 뭘 해서 책을 읽게 하지?’ 하는 기획자 마인드로 임했던 손 작가는 레지던지 작가로서도 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강의는 두 번이지만, 더 하고 싶고, 더 많은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글을 쓰며 그 속에 어울리고 싶어 했다. 이에 학교 측도 손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준 것 같다. 레지던스 기간 동안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는 ‘계획은 없어요. 계획하지 않지만 공상할 뿐이에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학생들과 글쓰기 하고 싶은데, 글쓰기 하자고 하면 모일까?’ 걱정하던 차에 미래인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 40권을 보내 줬다고 한다. 강의 시작 전 책이 도착했고, 함께 한국어책 읽어 보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덕분에 모인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책을 읽으며, 공상만 하던 글쓰기 단계로 갈 수 있었고. 나아가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 관리자
- 2024-12-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1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시험을 보기 위해 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고 두려웠다. 다들 글만 읽으면 문제의 답이 보인다는데 나는 아무리 읽어도 납득이 되지 않아 되려 탐구 과목만큼이나 암기할 것이 많은 과목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걸 즐거워하면서도 시험을 위해 읽는 텍스트들에 한해서는 과정을 기뻐할 수 없었다. 정독하는 시간이 사치스럽고, 오히려 내게 불확실한 결과로 가는 길목을 터주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에서도 보이다시피, 그런 교육 환경에서 자라면 자발적으로 소설이라는 삶의 전체성이 담긴 텍스트를 선택하기가 선뜻 쉽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요약본을 바라는 아이들에게 탄식하고 있지만, 이것이 내게는 책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되려 위로 받는 느낌도 든다. ‘바다는 요약이 없다.‘는 문장에서 특히나 눈이 뜨이는 기분이다. 우리가 아무리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과정과 덧붙여지는 설명들을 불필요 하다며 제거해나가도 요약이 없는 바다처럼 인생에는 줄곧 파도가 들이치고 그 과정 사이에 물결은 불가피하다. 물에 잡힌 주름들이 우리의 삶에 남는 길고 짧은 에피소드, 그러니까 꼭 기억처럼 남는 것 아닐까. 자신의 삶을 요약해버리고자 하는 사람 없듯이, 또한 용건과 정보로만 기록되는 인생이 과연 인생 같지 않듯이, 우리는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진 인생을 담은 소설을 줄곧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