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 작성일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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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자전거 도둑
장은진
나에게는 15년 된 자전거가 있다. 생김새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성용 삼천리 자전거다. 분홍색 프레임에 분홍색 안장과 스테인리스 바구니가 달린, 작고 낮은 자전거. 본래는 엄마 거였는데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자전거 타는 게 자신 없다며 나에게 물려주었다. 그렇게 그것은 가족 공용이 아닌 내 개인 소유의 자전거가 되었다.
자전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웠다. 그러나 내게는 배우기 과정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면들을 찾아볼 수 없다. 보호 장비를 착용한 아이의 자전거가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부모가 뒤에서 잡아 준다거나 흔들흔들 비틀대다 서너 번 정도 넘어지며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해 가는 모습들. 애초부터 자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부모를 가진 아이는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배우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하기에 그런 아이는 혼자 뭔가를 이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혼자 하게 내버려둔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걸 눈치로 알고 몸으로 단단히 익혀서다. 일테면 그것은 겨를 없는 부모의 아이라면 일찍부터 습득하게 되는 자립성이다.
눈치 있는 단단한 몸을 가졌기에 초등학생의 나는 자전거를 단번에 배웠다. 보호 장비도 없이. 뒤에서 잡아 주는 부모도 없이. 넘어지는 시행착오나 하나의 상처도 없이. 그것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패를 모르던, 완전무결한 성공이었다. 너무 식은 죽 먹기라 인생도 자전거 타기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시할 만큼 쉽게 이룬 건 인생을 통틀어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자전거를 탈 때의 기분은 절대 시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숨에 성공했을 때는 물론이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시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랬다. 지상에서 두 뼘쯤 떠올라 있는 몸과 발이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하늘을 난다고 생각했다. 새가 된다면 꼭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나는 새가 아니므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새가 되는 기분이 시시해질 리 없었다. 수백 번 수천 번을 타도 그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시시할 수 없는 이유는 자가용 없는 나에게 특히 소중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기름이나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몸의 에너지로 움직여서 환경에도 무해한 이동 수단. 차를 타기에는 가깝고 걷기에는 먼 거리일 때 자전거의 위력은 더 대단해진다. 애매한 거리에서 자전거는 나의 빠른 발이 되고, 애매한 거리인데 그것이 없으면 눈앞을 막막하게 해 필수품이 된다.
자전거는 부지런한 이동 수단이라서 그것을 애용하는 사람은 매사에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려면 멈추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므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내 주변만 봐도 게으르고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은 자전거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콜택시를 부른다. 추우니까, 더우니까, 비가 내리니까, 짐이 무거우니까란 핑계로. 게으른 사람에게 자전거는 쓸모와 필요가 약한 물건이라서 대개 집에 가 보면 먼지 쌓인 채 구석에 처박혀 있다.
자전거가 단순히 나를 목적지까지 빨리 데려다줘서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리 근육을 길러주는 운동도 되기에 좋아한다. 가끔 자전거로도 꽤 먼 거리다 싶을 때는 운동 삼아 다녀오지, 라고 생각하면 가는 길이 힘들지 않고 그날은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할 필요가 없다. 운전면허 취득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자가용의 편리를 알아 버리면 자전거를 잊고 살 것 같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늘을 나는 새의 기분과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다리 근육이 유지되고 있다는 안도감도.
자전거가 없었다면 내 발은 얼마나 많은 길을 디뎌야 하고, 무릎 연골과 운동화 밑창은 얼마나 닳아야 했을까. 나는 종종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최대 거리가 어디까지일까 상상해 보곤 한다. 삼천리 자전거니까 삼천리 정도는 될까. 내가 갈 수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서 작년에 즉흥적으로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 멀리까지 나를 데려가서 도중에 되돌아오고 말았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내년 봄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자전거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을 때까지 길을 나서는 것이다.
15년 동안 자전거는 내 삶을 어디론가 실어다 주었다. 눈송이를 맞으며 빙판길을 엉금엉금. 잎이 떨어진 가로수 길을 바스락바스락. 벚꽃 향과 강물이 흐르는 천변로를 느적느적. 폭염으로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길을 후끈후끈. 별을 보러, 풀밭 위 점심 식사를 즐기러, 스케일링을 받으러, 책을 빌리러, 편지를 부치러, 생일 케이크를 사러,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만나러, 길고양이를 묻으러. 그 길에서 나는 마음 놓고 울었고, 웃었고,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노래를 불렀고, 기도를 했다.
비바람을 맞으며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른 자전거는 그렇게 나와 같이 나이를 먹었다. 15년이나 됐으니, 자전거의 꼴이 온전할 리는 없다. 바구니는 뒤틀린 지 오래였고, 닳아 버린 안장에서는 스펀지가 비어져 나와 있다. 관절염 걸린 노인처럼 그것은 아이고 무릎이야, 하듯 자주 삐걱댄다. 너무 낡아 녹슨 자국이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많다. 덜덜거려서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는 듯 쳐다보기도 한다. 가족들은 창피하지 않으냐며 그만하면 탈 만큼 탔으니 새로 장만하라고 한 번씩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차피 도둑맞을 텐데.
이렇게 닳고 닳도록 자전거를 타게 된 건 다 자전거 도둑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샀다 하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는 자전거 도둑이 아파트 단지로 잠입해 훔쳐 가버렸다. 그렇게 도둑맞은 자전거가 세 대나 되다 보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낡은 자전거가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도둑은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이면 뭐든 훔쳐 갔다. 안장과 라이트도 떼어갔고, 짐받이 줄도 구매한 지 보름 만에 가져갔다. 도둑맞지 않더라도 자전거는 비를 가려줄 곳에 보관하지 않으면 금방 녹이 슬어 버린다. 새 자전거의 기분을 만끽하기도 전에 자전거가 먼저 지치는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조금만 더 타 보자 한 게 어느새 15년이 흘러버렸다.
그러다 이 낡은 자전거에 사건 하나가 생겼다.
은행 앞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창구에 앉아 은행 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초로의 아줌마가 은행 출입문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요 앞에 세워 둔 자전거 주인이 누구요?’ 하고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줌마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내 자전거였다. 나는 은행 일을 보다가 말고 밖으로 나갔다. 아줌마는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는 6개월 전에 잃어버린 자기 자전거라며 막무가내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팔로 아줌마를 저지한 뒤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10년 넘게 탄 제 자전거인데요.”
아줌마는 나한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남의 자전거 훔쳐 간 도둑년 보소. 경찰에 신고해야겠네?”
옆에 같이 서 있던 아줌마의 친구까지 가세해 나를 도둑으로 몰아세웠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억울하고 기가 찼다. 내가 아는 자전거 도둑은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을 훔쳐 가는 사람인데 15년이나 된 고물 자전거를 훔쳐 갔다고? 게다가 그 도둑이 바로 나라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 가며 도둑맞은 자기 자전거 바구니와 찢어진 안장 부위까지 똑같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따르릉 벨은 원래 이게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벨은 고장 나서 내가 두 달 전에 자전거 점포에서 교체한 것이었다.
나는 이 자전거가 내 것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무엇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너무 당황스러워서 머릿속이 정지된 상태라 기억을 모아 줄 사람이 필요해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동생이 한달음에 달려왔고, 동생은 그사이에 경찰에 신고했다. 5분도 되지 않아 경찰차를 타고 두 명의 경찰이 은행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우선 나와 아줌마의 싸움을 뜯어말린 뒤 은행 건물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나를 데려갔다. 수첩을 꺼내 든 경찰이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물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뒤 자초지종을 묻는 경찰에게 자전거 도둑으로 몰린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엄마와 동생은 기억을 더듬어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경찰에게 얘기했다. 15년 전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에게 사 준 자전거란 말과 어느 자전거 대리점에서 구매한 건지도.
경찰은 아줌마에게도 똑같은 걸 물었다. 아줌마는 15년 전에 아들이 사 준 자전거라고 했고, 아들과 직접 통화해 그 사실까지 확인받았다. 그러다 6개월 전 역 앞에 세워 두고 일을 보고 온 사이 자전거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잃어버린 후 여러 날을 찾아 돌아다녔다고, 아직도 그 자전거를 잊지 못해서 한 번씩 생각나곤 했는데 마침 여기서 찾았다며 나한테 또 자전거 도둑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화가 나 아줌마에게 소리쳤다.
“훔칠 거면 새 자전거를 훔치지, 누가 이런 고물 자전거를 훔칩니까!”
내 자전거는 누가 거저 준다 해도 마다할 정도로, 굴러가는 게 신기할 만큼 낡은 상태였다. 아줌마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물을 훔쳐야 쉽게 단념하고 경찰에 신고도 안 하지. 그때 나는 되려 자전거와 함께 한 15년의 내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에 새겨진 명백한 세월의 흔적까지 내 것이 아니라며 돌려 달라고 협박당하는 것 같았다.
서로가 자기 자전거라고 완강하게 주장하는 가운데 경찰이 자전거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다는 게 허망했다. 나는 경찰에게 자전거를 샀던 대리점 사장님을 찾아가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다시 자전거 대리점에 모였다. 나는 대리점 사장님에게 15년 전 여기서 구매한 자전거인데 혹시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타고 왔던 회색 자전거를 처분해 주실 수 있냐니까, 우리는 중고 자전거는 처분하지 않지만 그냥 놓고 가라고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사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카드 결제 기록이라도 있으면 증거가 되겠지만 당시 현금으로 구매했었다. 아저씨는 경찰까지 온 상황이라 말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았다. 확실한 기억이나 증거도 없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걸 난감해하는 것도 같았다. 대신 사장님은 휴대폰으로 자전거에 붙어 있는 바코드를 찍었다. 15년 전에 출시된 제품이 맞다고 했고, 바구니를 보고는 당시 유행하던 모델이라고도 했다. 그때 아줌마가 15년 동안 쌓인 추억이 많아서 꼭 되찾고 싶었다는 말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뒤에 유아용 안장을 설치하고 손주를 태우고 다녔어요.”
아줌마에게는 손주와의 추억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장님이 짐받이를 쓱 살피고는 말했다.
“유아용 안장을 설치했다 떼면 자국이 남는데, 여기에는 설치했던 흔적이 전혀 없는데요.”
그 말을 듣고 아줌마가 짐받이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깨끗한 짐받이를 보더니 아줌마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전체적으로 한 번 더 꼼꼼하게 둘러봤다. 아줌마의 얼굴에 가득했던 확고한 기운이 점점 사라지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자신의 자전거와 다른 부분들이 눈에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줌마가 독기 빠진 표정으로 내게 한마디를 했다.
“미안해요.”
나는 왈칵 눈물이 났지만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그 낡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무엇이든 오래된 물건은 자기 거라 착각할 만큼 똑같은 모습으로 낡아 간다고. 이상한 건 덜덜거리고 볼품도 없는 내 자전거가 그때만큼 가치 있어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건 아줌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줌마는 자전거보다 그 자전거에 얽힌 15년의 추억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했고, 잊지도 못해서 절실하게 찾고 싶어 했던 거니까. 물론 나에게도 15년의 추억은 도둑맞을 수 없는 거였다. 그래서 더욱 소중해진 오래된 나의 자전거. 나에게 도둑 누명까지 씌워 준 낡은 자전거. 나는 이 자전거를 조금 더 타보기로 했다. 여기서 더 낡아질 때까지. 더 타기 위해 최근에 바구니와 안장을 새로 교체했다. 자전거가 얼마나 더 나와 짐과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끝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자전거에게 작별을 고할 것이다.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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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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