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진 - 작가의 창
- 작성일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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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
작가의 창
- 손서은 작가 인터뷰
류영진
2023년 도서관 상주작가사업의 성과로 2024년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그곳에서 손서은 작가를 만났다.
손서은 작가는 2020, 2021 원주에서 상주작가를 지내고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에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네트워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스웨덴에 가게 된 손서은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스웨덴에 살러 온 손서은입니다.”
유쾌하고 당찬 자기소개였다.
나는 살러 왔다는 말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손서은 작가는 말 그대로 3개월의 레지던스 기간 동안 관광객 마인드가 아닌 스톡홀름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말이라 했다.
상주작가 때 문학큐레이터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도서관 직원들과 파티를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서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으니 도서관 식구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어디를 가든 그곳을 살아가려는 손서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레지던스 생활을 시작한 손서은 작가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강의는 두 번이었다. 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손서은 작가에게 두 번의 강의는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손 작가는 스톡홀름대학교의 한국학과 학생들과 짧은 소설 쓰기로 하고 싶어 했다. 일기식으로라도 좋으니 한국말로 글쓰기를 하고 싶고, 그들이 쓴 글을 봐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친밀하게 만나길 원했다.
상주작가 기간에 ‘뭘 해서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데려오지? 뭘 해서 책을 읽게 하지?’ 하는 기획자 마인드로 임했던 손 작가는 레지던지 작가로서도 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강의는 두 번이지만, 더 하고 싶고, 더 많은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글을 쓰며 그 속에 어울리고 싶어 했다. 이에 학교 측도 손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준 것 같다.
레지던스 기간 동안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는 ‘계획은 없어요. 계획하지 않지만 공상할 뿐이에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학생들과 글쓰기 하고 싶은데, 글쓰기 하자고 하면 모일까?’ 걱정하던 차에 미래인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 <유령 아이> 40권을 보내 줬다고 한다. 강의 시작 전 책이 도착했고, 함께 한국어책 읽어 보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덕분에 모인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책을 읽으며, 공상만 하던 글쓰기 단계로 갈 수 있었고. 나아가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니까 한국어를 스웨덴어로 번역하는 일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생각을 하고 그렇게 공상하면서 다음 단계가 보이면 또 다른 도전을 하면서 레지던스 생활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다.
손서은 작가는 그리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고 아테네국립미술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손 작가는 대학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받아 달라는 신청도 함께했는데 서류 처리가 우리나라처럼 빠르지 않은 관계로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기다림의 시간 동안 손 작가는 결혼을 하고 임신 7, 8개월경에야 아테네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그리스어 시험에 통과해야 했던 손 작가는 학교에 유축기를 가지고 다니며 힘들게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에 통과하고 언어가 트이자 비로소 이웃들과 소통이 가능해지고 이후에는 이방인이 아닌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며 아주 특이하고 행복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이웃들은 자신의 어린 딸을 키워 주고, 밥을 나눠 먹는 식구가 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를 떠나올 때는 또 다른 가족을 남겨 두고 온 느낌이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출산과 육아, 학업을 병행하게 된 손 작가의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어 가는 경험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테오도루 24번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장 최근작인 <유령 아이>도 아테네가 배경이고 <테오도루 24번지> 속 ‘요나’라는 인물을 생각하며 쓴 책이라고 한다.
손서은 작가는 스톡홀름대학교에 레지던스 작가로 오기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돈을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내게 기회를 제공해 준 거지 돈은 내가 더 많이 쓸 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비행기표와 숙소비 등 1,20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생활비는 모두 손 작가 개인 부담이라고 했다. 실제 개인 부담이 크다고 했다. 생활비 외에도 자신을 돕는 학생에게 월 100만 원을 자부담으로 준다고 했다.
경제적인 면으로는 상주작가 사업이 월급을 줘서 안정적이었지만, 레지던스 사업은 작가로서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내가 너무 잘난 척했구나.’라고 웃음 지었다. 돈보다 더 큰 기회의 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손 작가의 설레는 웃음이었다.
꿈이 예술가라고 말했던 손서은 작가는 처음 책을 낼 때 월 250만 원(처음에는 260을 생각했다고)을 버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월 250이 얼마나 꿈같은 얘기인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인지 지금은 안다며 월 250에 대한 환상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상주작가를 신청했단다. 상주작가를 하면 대충 월 250정도는 벌 수 있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삶,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퍽퍽한지 말해 주는 대목이었다.
작가는 늘 공부해야 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한 손 작가는, 자기는 일용직 노동자라며 늘 돈을 벌기 위해 공모를 해야 하고, 공모해서 상주작가도 되고, 스웨덴까지 오게 된 거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안 봐주는 삶을 살고 있다고 그래서 늘 공모해서 무언가 따 내야 한다고. ‘우리도 좀 안정적으로 살면 안 될까? 좀 편안하게 살면 안 될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작가는 버지니아울프가 옛날에 했던 말이 왜 아직도 실현이 안 되냐고, 이게 안 될 거냐고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가 했던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연 500파운드의 소득이 필요하다.’는 말을 얘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실조차 없는 경우가 많고,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을 하지 않으면 창작활동을 할 수 없어, 창작활동이 일에 밀리거나 일에 잠식당해 결국 창작활동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손서은 작가가 자신은 일용직 노동자라고 했듯, 유럽에는 예술가의 예술 활동을 하나의 생산 활동으로 인정해 주려는 정책들이 마련되고 있는 것 같다.
아일랜드는 문화 노동자를 증명한 사람 중 무작위로 2,000명을 선정해 매주 약 45만 5,000원 정도의 예술인 기본소득을 주는 실험에 나섰다. 선정자들은 연간 1만 6,900유로(약 2,364만원)를 아무 조건 없이 받게 된다.
아일랜드의 서린 마틴 관광문화예술부 장관은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아일랜드의 예술인 기본소득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유럽 곳곳에서 예술인 기본소득 혹은 예술인 복지제도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아일랜드는 예술인 기본소득 실험을 하면서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는 예술가 1,000명을 대조군으로 선정해 향후 그들의 생계와 예술 활동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 분석해 보겠다고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상주작가사업도 예술인복지 사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손서은 작가도 책만 써서는 월 250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상주작가사업에 지원했듯이, 나 또한 그렇다.
상주작가 사업에 참여하며 고정적인 수입을 얻었다. 2022년 처음 상주작가 할 때는 상주작가 외에 기존에 해오던 다른 지역의 도서관 강의도 계속했었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창작활동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으니 보따리장수처럼 이곳저곳 도서관 강의를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출근하면서 다른 지역을 오가며 강의까지 하는 것이 창작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몸에도 무리가 왔다. 그래서 2023년도 상주작가 때는 작가 특강 외의 모든 강의를 접었다. 상주작가하면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싶었다. 내게는 월 220만 원의 월급이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주작가사업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극히 일부, 올해 기준 70명 정도의 작가가 하고 있는 정말 귀한 사업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생계 걱정 없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바란다.
연수에서 노르웨이의 노르마카숲을 갔었다. 한강 작가가 미공개 원고를 들고 걸었던 미래숲도서관이 있는 숲이다. 어린나무가 자라 2114년 책이 되는 숲.
2014년 시작해 백 년을 기다려야 완성되는 공공예술프로젝트를 보며 긴 호흡으로 예술을 대하는 마음이 놀라웠다.
2023년 상주작가 때 동화작가 임정자 선생님께서 실사를 나왔다. 당시 나는 상주작가 결과 보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2022년도에도 책을 내지 못했는데 23년도에도 책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상주작가 창작활동 내역서에 작성할 만한 것이 없었다.
임정자 선생님께서 장편 쓰냐고 물으며 장편이면 2~3년 걸릴 수도 있다. 자신도 그 정도 걸린다며 괜찮다고 열심히 쓰라고 격려해 주셨다.
2022년도에 이어 2023년도에도 새로 쓰고 있던 장편의 목차만 적어서 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그것을 가지고 왜 성과를 내지 못했냐는 말은 없었다. 아무 문제 없었다. 스스로 상주작가로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고 있더라도, 책이라는 형태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아무 활동도 증명되지 않고, 아무 수입도 발생하지 않는다. 창작의 과정 자체가 생산 활동이지만 발표되지 않은 창작의 과정은 인정되기 어렵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볼 수 없을, 100년의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될 예술작품을 위해 기꺼이 현재의 시간과 노력, 투자와 기다림. 그 모든 과정을 예술로 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반성했다. 작가인 나조차 스스로를 압박하고, 창작의 과정에 행해졌던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쉽게 헛수고로 치부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의 과정을 존중해 주고, 예술을 긴 호흡으로 대하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손서은 작가와의 인터뷰는 창문에서 끝이 났다. 숙소로 얻은 아파트에 창이 있기는 하지만 창문을 열면 굴뚝 풍경만 보인다고 한다. 몇몇 알아본 집 중 작은 창이지만 창문을 열면 드넓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현재 머무는 곳보다 헐었고, 더럽다고. 그래서 그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상주작가 때 집필실에 창문이 없어서 병이 났었다는 손서은 작가는 진지하게 창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손서은 작가가 새로운 창문을 얻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 드넓고 좋은 창문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창은 어느 방향으로든 열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햇살, 바람, 나비, 씨앗 등 수많은 무언가를 느끼고, 때로는 무언가가 되어 이야기 나누고 있을 것이다. 손서은 작가의 창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며 손서은 작가와의 만남을 마무리한다.
상주작가 기간 동안 집필한 손서은 작가의 <유령 아이>, 류영진 작가의 <갓이 사라진 세상에서>를 들고 서로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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