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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 작성일 2024-12-01
  • 조회수 293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을 방문한 날, 공기는 서늘했다. 우리 일행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천천히 푸른 서가를 거닐었다. 숲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최초의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은 한 세기 동안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세계적으로 엄선된 백 명의 작가에게 일 년에 한 명씩 원고를 제출케 하고, 백 년 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었다. 여기엔 나무를 심고 키우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외곽의 ‘노르마카’에 미래도서관 숲을 조성한 후, 가문비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선정된 작품의 원고는 한 세기 동안 읽히지 않은 채, 오슬로의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각각 보관된다. 2114년이 되면 모든 원고의 봉인을 풀고 이 나무들을 베어 책으로 펴낸다. 2018년에는 한강 작가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오슬로에서 숲으로 가는 길,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가 한 마리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근처 호수에서 신을 벗고 발을 담그니, 한겨울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먹은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피오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길섶엔 갈색빛의 버섯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촌락 같았다. 개미들이 가문비 나뭇잎을 끌어모아 고층 집을 지어 놓았다. 잘 익은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장식처럼 붉었다. 퇴고하지 않은 초고의 숲은 뿌리가 땅 위로 자라고, 이끼가 그 위를 덮어, 또 다른 문장을 쓰고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새파랗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노르웨이의 하늘도 그에 못지않았다.    

   잘 뻗은 가문비나무가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숲에는 곳곳에 두 가지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붉은색은 스키 길을, 하늘색은 트래킹 길을 의미한다고 했다. 수문장 나무에 두 색이 함께 칠해진 걸 보니, 여기는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로 뻗어 오르는 가지는 내 어깨와 키를 맞추기도 했지만, 머리 위로 쑥 솟아오르기도 했다. 쑥쑥 자라 질 좋은 펄프를 생산할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반드시 가문비나무를 쓴다. 이 나무는 최대 오십 미터까지 자라며 수명은 수백 년이나 된다. 작년에는 칠십 년 된 이십 미터짜리를 런던시에 선물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는 그 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추위 속에서 고요히 자라는, 단단한 나이테 덕분이라고 한다.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는 떡갈나무를 심는 양치기가 나온다. 벌목과 난개발로 황폐해져 가는 마을을 보면서 주인공은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 간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것도 아니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지만, 매일매일 도토리를 주워 와 백 개씩 선별한 뒤, 정성스럽게 땅에 심었다. 십만 개를 심으면 이만 그루의 싹이 나와 그중 절반가량이 죽더라도 일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살아남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는 세계 대전이 두 번이나 지나가는 동안에도 묵묵히 심고 가꾸는 일에 몰두했다. 결국 그곳은 푸른 숲으로 변했고 사람들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되었다.

   왜 하필 도토리를 백 개 골랐을까. 그것은 완전함을 의미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백전백승, 백발백중, 백년해로 등 100은 심리적으로 완벽함을 나타내는 숫자라 할 수 있다. 미래숲 도서관에서 백 년 동안 키워 책을 펴내기로 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리라. 한 세기 뒤의 미래세대와 소통하면서 숲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닐까. ‘지속 가능한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나무와 숲, 예술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음 세대에까지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고 한 것이리라.





   세계에는 단 두 곳에 ‘씨드 볼트(Seed Vault)’가 있다. 하나는 노르웨이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백두대간 봉화에 있다. 우리나라의 종자 은행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라면 씨드 볼트는 전 세계에서 씨앗을 받아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꺼내 쓰는 종자 은행과 달리 생물의 다양성과 미래 생태계 복원을 위해 오직 보관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시리아 내전 때 중동 국가들이 종자를 돌려달라고 부탁해서 딱 한 번 외부로 인출된 사례가 있을 뿐이다. 중립국이고 북극에 가까워 접근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이 나라에 지었다고 한다. 이 또한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원합시다.” 일행 중 누군가 간절하게 외쳤다. 원고를 전달하고 인터뷰하는 색 바랜 나무 벤치는 법정 스님의 생각하는 의자처럼 한없이 수수하고 검소했다. 그러나 우리의 염원은 소박하지 않았다. 

   한강은 당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95년 뒤에 이 도서관이 남아있을지, 또 정말로 백 명의 작가의 작품집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저는 불충분한 낙관 속에서 무엇인가 하려고 애쓰는 것, 그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어요.”

   매년 5월이면 전 세계에서 문학 애호가들이 이곳에 모여든다. 숲을 가꾸는 이들은 불을 피워 커피를 내리고, 작가가 원고를 넘겨주는 동안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 의식은 엄숙하게 진행된다. 한강 작가가 수년 전에 거닐었던 숲을 걸어 이곳에 다다랐고, 인터뷰한 자리에 앉아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 조깅하는 오슬로 시민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산책 나온 이들이 개를 앞세우고 다가온다. 개를 키우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이 마당의 유무라 하니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실감 난다. 신비로운 숲에서 길을 잃고 싶은 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한강이 노벨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노르웨이 숲을 방문한 날로부터 꼭 11일 만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숲의 정령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그런 예지력을 말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상수 작가

신라문학대상, 《영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울산문학 편집주간, 에세이문학 편집위원. 동서문학, 에세이부산, 철수회 회원. 23~24년 울산 양정작은도서관(23년 우수도서관 선정) 상주작가. 수필집 '라그랑주점' 23년 문학나눔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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