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좌담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 작성일 20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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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차별 구성
-1차: 책장 업고 튀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일 시: 2024년 12월 7일(토) 17:30~19:30
ㅇ 장 소: 온라인 zoom
ㅇ 참여자
-사회자: 김준현(소설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참여자: 이지용(단국대학교 HUSS사업단 연구교수), 이명현(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염승숙(소설가, 문학평론가), 이어진(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웹문예학과 객원교수, 웹소설 작가 레고 밟았어)
〈개회〉
김준현: 반갑습니다. 사회를 맡은 국립목포대학교 김준현입니다. 먼저 이번 좌담의 기획 의도를 다시 짚어 보는 것을 통해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래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제도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다양한 ‘콘텐츠’, ‘웹’, ‘크리에이티브’ 관련 전공들이 두 학과 제도를 대체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문학 산실’인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는 점점 다른 교육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시대, 교육 현장에서 교강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이러한 체제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기획 의도는 이러하고, 이러한 의도를 참가자 선생님들과 공유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맥락에서 제 소개를 드리면, 올해 4월부터 국립목포대학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 전 직장은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였고요. 이 기획 의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야말로 학과의 이름에 ‘웹’이 들어가는 학과였습니다. 제가 올해 4월부터 일하게 된 국립목포대학교도 아마 국립대 최초로 문예창작에 웹소설, 웹문예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하여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웹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 3년 정도 있었고요.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이지만, 웹소설 특화를 표방한 학과에서 두 학기 정도 일한 셈입니다. 4년 정도를 소위 말해 ‘전통적인 문예 창작 교육’이 아닌 새로운 문예 창작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웹소설 작가이기도 하고, 데뷔는 2012년에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사회를 맡게 됐고, 패널로 초대받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반갑다는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화면에 떠 있는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마다 화면이 다를 텐데, 제 화면으로 보기에 제일 위에 떠 계신 분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명현 선생님이십니다. 이명현 선생님 자기소개를 한번 받아 보겠습니다.
이명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가르치고 있는 이명현입니다.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2016년부터 근무했고,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면서 고전문학콘텐츠론과 고전문학과 스토리텔링 등 문화콘텐츠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이 좌담에 초대받은 것 같습니다. 고전문학의 현대적 계승과 변주에 대해 관심이 많고, 과거의 이야기들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서사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좌담에서 많은 것을 배워 가고 싶습니다.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김준현: 예 선생님 반갑습니다. 그다음 순서로 띄워진 것이 이지용 선생님입니다. 이지용 선생님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지용: 안녕하세요. 이지용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단국대학교 HUSS 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있고요. 저희 사업단이 현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 웹소설 분야입니다. 그 분야 교육을 담당하고 있고, 저는 학부 때부터 문예창작과 출신이고요. 대학원까지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위를 받았고, 학위는 SF를 연구해 받았습니다. SF를 비롯한 장르문학 평론과 연구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경력으로 각 학교에서 문예창작, 융합콘텐츠학과, 스토리텔링미디어학과 등에서 스토리텔링과 웹소설, 장르문학, 시나리오 등을 15년 정도 가르치고 있는 경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10여 년 이상 계속해서 배움과 배움을 주는 역할을 해 왔으니 오늘 함께 나누어 볼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준현: 반갑습니다. 다음 순서로는 염승숙 선생님입니다. 염승숙 선생님 한번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염승숙: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여기 들어와 계신 선생님들의 경력을 듣다 보니 제가 확실히 대조군으로 등장한 것 같습니다. 저는 웹소설이나 장르소설 관련해서는 배워 본 적도, 써 본 적도, 가르쳐 본 적도 없는 작가이고요. 2005년 등단해서 소설을 쓰고 있고, 2017년부터는 문학평론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은 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2013년 정도부터 학부와 대학원을 오가며 소설 창작과 문학 이론을 강의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웹소설 전공자 분들이나 실제로 웹소설을 쓰시는 작가 분들에 비하면 제가 이 자리,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굉장히 고민이 많이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인혁 선생님의 짜여진 판에 의하면(웃음) 전통적인 문예창작 강의 내부에서 제가 웹소설 쓰기를 지망하거나 실제 웹소설 작가들을 여러 차례 만나서 경험해 본 사례 정도를 들려주기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 그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 선생님의 의견과 이야기를 잘 귀담아듣고 배워 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준현: 반갑습니다. 마지막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예 학과 이름부터 새로운 문예 창작 교육의 패러다임을 투명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문화예술 창작 교육에서도 웹이나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에서 다양성이 있기에 오늘 우리 논의를 좀 더 두텁게 해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 순서로 이어진 선생님께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어진: 네 안녕하세요. 저는 2013년부터 ‘레고 밟았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웹소설 작가이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강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소개로 따지자면 꾸준히 웹소설을 써 왔고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곳, 명예의 전당에 제 구작이 몇 개 올라가 있어서 12년간 웹소설을 쓰며 시장의 상황이나 현업 웹소설 작가의 생각에 대해 감히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김준현: 이어진 선생님 반갑습니다. 제가 선생님 본명으로는 처음 뵙는데, 필명을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패널 명단을 제공 받았을 때 필명은 제공이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님을 몰라뵀는데,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도 후배 웹소설 작가인지라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미리 주제를 받아보고, 기획 의도를 받아보고 판단하기로는 크게 두 가지 화두로 나눌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선생님들께는 제가 미리 질문지를 배부해 드렸는데요. 하나는 문학과 문예 창작의 범위, 문학과 문예 창작의 정의라든가 하는 것들이 현재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작성해 보았고요. 두 번째는 문학이나 문예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10~20년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으니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입니다. 두 가지 정도로 다양한 논의를 이어 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질문지를 작성해 보았는데요. 본격적으로 첫 번째 논의를 하기 전, 다른 선생님들께서 조금 더 추가적으로 큰 흐름을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의견을 확인해 보고 본격적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생각하신 것이 없으면 자연스레 첫 번째, 두 번째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문학’, ‘문예 창작’ 개념의 변화/확대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가르치면서 ‘문학’의 개념이 상당히 넓어졌다는 사실을 강의 등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학적 요소’가 들어가도 전통적으로 ‘문학의 하위’가 아니면 문학 취급을 받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문학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저 같은 경우 가령 웹문예창작학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거나 문예 창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학생들로부터 여러 질문을 받는데, 이 범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이것도 배울 수 있나요? 이걸 문예 창작 커리큘럼에서 가르치는 게 맞나요?’ 이런 식이죠. 저 같은 경우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웹툰입니다. 웹툰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겠으나, 웹툰의 스토리가 중시되고 그런 부분은 문학적인 요소에 가깝고, 그렇다고 해서 문예창작과에서 배우는 웹툰은 스토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데서 그치기는 어렵더라고요. 보통 웹툰은 그림 작가와 글 작가의 소통 문제, 유통 문제 같은 것들을 다루게 되다 보니 결국은 이게 학술이나 이론적 개념에서 문학과 문예 창작의 개념이 넓어지는 것도 있지만, 또 학과에서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문학과 문예 창작의 범위 변화 같은 것들도 있을 것 같아 이것을 첫 질문으로 뽑아 보았습니다. 순서대로 하지 않고 다양하게 선생님들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제 사례를 언급하며 진행해 보았는데, 혹시 지금 교육하는 과정에서 예전 같으면 문학이 아니었는데 가르치게 된 경우만 공유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현: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있기 때문에 문학 창작 교육은 크게 실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학과는 전통적인 강단 문학을 중심으로 한 국어국문학의 기본적인 커리큘럼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융합한 교과목을 일부 개설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목별로 편차는 존재하겠지만, 학생들의 수요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웹소설이나 웹툰 등을 다룬다든가, SF를 다루기도 하고요. 그럴 때 예상외로 학생들이 ‘이런 것까지 배우는 줄 몰랐다’는 말을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그렇지만 배우는 학생들도 기본적으로 강단 문학에서 가지고 있는 학제 간의 벽을 인식하거나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사실 문학과 문학 아닌것의 경계가 애매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계를 넘어 다양한 것을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학제를 다루고 있는 국어국문학과라 이런 변화가 일시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차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업 커리큘럼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융합 전공이라든가 학생들의 소모임 등에서 보이는 것 같고요. 그런 걸 보면서 시대가 변했고 학생들이 원하는 게 달라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낍니다. 다만, 교수님들은 이러한 변화를 실용적인 대안 정도로 생각하지, 근본적인 변화로서 수용한다고 하기에는 미진한 것 같습니다. 현상이 선행하고 현상을 제도에 반영하는 것은 후행되죠. 현재는 변화한 현상이 제도에 반영되기 전 단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준현: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굉장히 전통적인 국어국문학과 출신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익숙한 것도 있어 공감되기도 하는데, 추가적으로 여쭤 보자면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같은 경우 학생들에게 수요 조사를 공식적으로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얘기하는 방식으로 수요를 예측하는 편인가요?
이명현: 공식적으로 조사하는 건 없는데, 학회나 소모임에 교수님이 참여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편입니다.
김준현: 감사합니다. 또 다른 선생님 의견 들어 보겠습니다. 아마 학교마다 되게 다를 것 같습니다. 이명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도 학교마다, 정책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학교에 수요 조사를 하라던가 교과목 개편 시에는 반드시 학생 수요 조사를 하라고 하는 과정에서 싫더라도 조사를 하게 되기도 하죠. 학교마다 굉장히 다를 것 같아 사례가 많을 것 같습니다. 다른 선생님 의견도 한번 들어 보죠.
이지용: 제가 이야기해도 될까요? 원론적인 얘기부터 해 보면 문학이 확장된다는 게 문학에 없던 것들이 생겨서가 아니라, 저는 반대로 기존에 있던 문학의 헤게모니가 축소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웹소설을 제외한다면 다른 스토리텔링 분야의 모든 창작 활동은 기존에도 있어 왔고, 20세기 중후반부터 이미 있어 왔던 것이고, 그것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요구가 사회적으로 많아지다 보니 산업적으로도 커졌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웹소설이나 웹툰을 학생들이 요구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요구한다는 말은 곧 산업계에서, 현재 산업계 혹은 직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 있다는 것은 내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그걸 염두에 둔다는 거니까요. 저도 그렇지만 김준현 선생님께서도, 이어진 선생님께서도 종종 느끼실 겁니다. 그런데 현재 현장의 상황은 어떠냐면, 아직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종종 문피아나 네이버, 카카오 페이지와 같은 웹소설 플랫폼의 관계자를 만나다 보면 작가들이 올라오는 건 맞는데, 작가들을 어떻게 케어하고 교육하고 루트를 만드는 것인가에 대한 것은 사실 웹소설도 그렇고, 웹툰 쪽이나 시나리오 쪽도 명확한 교육이나 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당 영역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커진 것이 사실이고, 학생들은 그것을 자신의 진로를 설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 쪽에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나왔던 문예창작과는 스토리텔링을 가르친다고 2000년대에 이미 선언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상 창작이라든지 콘텐츠 스토리텔링 같은 것을 계속 배워 왔는데, 그랬던 것이 이제는 조금 더 직접적인 요청의 형태로 변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교육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문학의 범위가 달라졌다고 하는 것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넓어진 문학에 대한 창작 교육은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영역인 것 같고, 말씀 주셨던 국어국문학과에서 그것을 창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읽어 내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에 들어가는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것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면 융합, 콘텐츠 혹은 스토리텔링이 붙은 학과들이었어요. 게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도 가르쳤습니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려면 게임 엔진을 공부해야 하고, 스토리 작법을 배워야 하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위한 시나리오의 분기 등을 배워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배워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기존의 문학을 교육한다, 문학 창작을 교육한다는 것과는 사뭇 다른 영역들이 다 포섭되는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서사를 다루거나 텍스트 전반을 대상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학교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인식하는 것과 대응하는 것이 현상에 후행한다고 할지라도 이 현상 자체의 변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준현: 다른 선생님들도 의견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진: 말씀해 주신 분들이 너무 정리를 잘해 주셨어요. 저도 준비한 발언이나 생각들이 앞서 말씀해 주신 것과 너무 흡사해요. 조금 더 단순한 의견 하나를 덧붙이자면, 사실 저는 경제적인 면에도 집중해 보았거든요. 저도 국어국문학과를 나왔고, 동기나 선배, 후배들이 많지 않습니까? 문예창작과나 다른 대학과도 동아리를 하며 교류를 많이 해 보았는데, 문예창작과 친구들은 신춘 문예 준비와 등단 준비를 많이 하거든요. 이런 면에서 어려워하긴 하더라고요. 공모전이나 투고했을 경우 자신의 소설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굉장히 소수이고, 이 사람들의 취향을 공부해야 하고,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원고를 뽑아 왔는지를 연구해야 하고, 데뷔를 했다고 해도 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보니 차라리 요즘 20, 30대 젊은 작가 지망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차라리 처음부터 시장에 나가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를 받아 상업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데뷔하는, 좀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특정 다수에게 어필하지 못해 주목을 받지 못하면 덜 억울하다’는 반응이 있기도 하더라고요. 지엽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앞서 말씀 주신 분들의 의견에 살짝 덧붙이자면 트렌드가 좀 바뀌는 것 같습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농산물도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농민의 수요가 올라가고 있잖아요. 그것처럼 작가들도 바로 독자들과 접촉하고 싶다, 온라인이니까 쌍방향 소통이 더 잘 되는 시대를 맞이했으니 독자를 직접 만나 보고 싶다는 의견과 수요가 점점 올라가는 상황에서 웹소설로 많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김준현: 지금 이어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게 제가 올해 초까지 있었던 웹문예창작학과에서 강조하던 바이기도 합니다. 웹소설을 어떻게 하면 잘 쓰느냐, 어떻게 하면 인기를 끄느냐도 있지만, 결국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옛날과 바뀌었잖아요. 웹 매체에 오면 직접적으로 작가와 소통하는 법, 직접적으로 작가가 퍼블리시하는 법이 커리큘럼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그게 어쩌면 방금 말씀하신 수요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염승숙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염승숙: 일단 제가 직접 웹소설 창작이나 웹소설 창작 교육에 개입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아주 사적인 부분을 얘기하자면 강의 시작을 2013년 정도에 했는데, 그때부터 문예 창작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실제적인 예로 제가 출강을 시작하던 시기에 신한대학교 문예창작학과가 있었어요. 제가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신흥대학교였는데, 출강하는 과정에서 대학명이 바뀌고 학제 개편을 여러 차례 거치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학과명이 문예창작학과였기에 소설 창작을 가르쳤는데, 1년여 만에 ‘미디어’ 자가 붙었어요. 미디어문예창작학과로 학과명이 바뀌고 나서도 소설 창작 과목이 지속됐었는데 1년 만에 다시 미디어언론학과로 바뀌었거든요. 제가 강의 시작하고 3년 만에 학과명이 세 번 바뀐 거예요. 그래서 미디어언론학과이면서 창작 수업을 병행하고, 매스미디어와 결합한 커리큘럼을 가져오기 시작한 거예요. 이를테면 광고 카피 쓰는 법이라든지. 소설 창작 강의로 시작했던 과목이 이상하게 변형되면서 강사로서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고요.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학생들의 요구사항과 목표 의식이 다분화되는 걸 직접 목격했던 것 같아요. 문예 창작은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학과명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이후로 미디어언론학과에서 또다시 ‘미디어’ 자를 떼어 냈던가 잘 모르겠네요.
염승숙: 맞아요. 한 번 다시 바뀐 걸로 알아요.
염승숙: 그 학교에 4년간 출강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학과명이 바뀌면서 창작 수업 자체가 사라졌거든요. 제가 강의를 안 나가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느꼈던 당혹감과 충격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 학교가 놀라운 방식으로 변모를 꾀한 것과 달리, 저는 여전히 순문학 대상의 소설 창작 강의를 문예이론과 병행하며 이어 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생각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웹소설이 유행하고, 본격소설보다 웹소설을 쉽게 접하는 학생들이 역설적으로 ‘제가 순문학을 쓸 수 있을까요?’라며, 얼마간 두려움을 느끼는 듯한 질문을 해 오기도 하고요. 반대로 ‘나는 웹소설 쓰러 왔는데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같지만, 순문학에 집중되어 있다’며 어렵고 당혹스럽다고 고민을 호소하는 학생도 있었고요. 1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문예 창작의 개념 혹은 그 외연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과정이 격정적이다 보니 그 안에서 흐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고, 또 학생들과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 저로서는 난제인 것 같아요.
김준현: 지금 말씀을 들어 보면 해당 학교가 자주 바꾼 것 같긴 한데, 2015년 전후로 굉장히 많은 국어국문 혹은 문예 창작 계열 학과가 겪어야 했던 과정인 것 같습니다. 아마 전통적인, 역사가 오래된 국어국문 혹은 문예창작과와 비교했을 때 신설 학과는 학교에서 기다려 주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는 제 기억상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국어국문과 문예 창작이 비인기 학과가 되면서 학과를 론칭하면 ‘이미 많은 문예창작과가 전국에 있는 상황’에서 자리 잡기 쉽지 않았던 것 같고요. 제가 있던 웹문예창작과도 원래 문예창작과로 시작했다가 1년 반 만에 ‘웹’을 붙인 거거든요. 아마 처음 만들어진 문예창작과들은 만들어지고 1년~3년간 수요를 보고, 수요에 대해 조사를 다시 해 학과명을 어레인지하라는 요구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질문 중 말씀드렸던 것도 그런 사례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사례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웃지 못할 사연도 많을 것이고요. 흥미로운 사례도 있을 것이고요. 지금 얘기하다 보면 정해지는 게 수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에 한 마디 정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저는 2009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93년도에 소설 쓰겠다고 국문학과를 갔습니다. 99년도에 석사 학위를 받으러 갔더니 그때 지도교수나 선배들이 ‘네가 좋아하는 작가를 가지고 작가론을 쓰는 건 좋은데, 죽은 사람으로 쓰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아마 이명현 선생님께서 말씀 주신 학문이라는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나는 요즘 소설에 관심이 있어서 국문학과에 들어왔는데, 이미 세상에 없는 작가로 연구해야 인정받고 학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평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 제게는 당시 어색했는데요. 학문은 엄밀성을 추구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면서 수요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문학의 범위를 기존과 바꾸자고 할 때 에너지가 수요 이외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체를 가지고 문학 연구를 했던 사람이기에 소설이나 시, 특히나 제가 중·고등학교 때나 학부 때 배웠던 작품처럼 완고한 문학의 틀을 설정하고 있는 작품들과 그것에 대한 교육을 받았던 것 같은데요. 소설이라는 것은 형식이 배타적이지 않다든가,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나누는 것은 한 번도 허상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든가 하는 목소리가 탄력받지 못했던 것은 수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근 탄력을 받은 건 수요가 생겼기 때문이겠습니다. 그것 자체로 에너지가 있었을 수 있겠고, ‘문학은 그런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적 욕구나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수요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도 그런 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고요. 90년대, 2000년대에 저도 문학에 대해 완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기보다 항거를 했던 편입니다. 최근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물을 만났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이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실 선생님 있으시다면 들어 보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명현: 사회자 선생님께서 저희가 말을 안 할까 걱정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저도 떠오른 것이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말씀 중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는데, 저는 2000년대 초반에 박사 학위 과정을 했습니다. 당시 대학원에서 〈고전소설과 대중문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써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지도교수님께 엄청 혼났거든요. 지도교수님이 완강하셨던지라 다른 주제를 선택했고요. 또 2006년, 7년쯤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교수와 강사를 대상으로 문화콘텐츠 강의 요원 교육이 있었어요. 당시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새롭게 대두되기도 했고요. 어떤 교육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가 봤어요. 재미난 건 거기에 현대문학 선생님들보다는 고전문학 선생님들이 많으셨어요. 위기감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당시 고전문학 전공자들이 학문 영역의 위기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거든요. 한편으로는 고전소설의 원래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전공은 고전소설인데, 본래 고전소설은 천것의 문학이거든요. 지금 교과서에서 고전소설을 아주 어렵게 배우지만, 고전시가나 한문학과 다르게 신분이 낮은 사람의 문학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대중문학, 대중문화에 대한 수용성이나 접근 방식이 열려 있어요. 최근 강의할 때 보면 학생들이 반응하고 변하는 속도가 엄청 빠릅니다. 중앙대 국문과는 아직 학부 졸업 때 논문을 써야 합니다. 제게 논문 지도 받으러 오는 친구들 대부분이 웹소설로 학부 졸업논문을 쓰려는 친구들입니다. 또 융합 전공에서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 창작 실습 강의를 네 분반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다만 융합 전공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었어요. 저는 전략적으로 서브컬처나 웹 서사를 커리큘럼에 반영하자고 제안했지만, 반대가 많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계속해서 논의가 필요해요. 공식적인 수요 조사를 거친 건 아니지만, 학생들이 웹 서사나 서브컬처에 대해 강한 요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거든요.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기존 선생님들이 스스로 변화해서 가르치기에는 역량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고, 기존 학제나 교수님들이 유지하고 있는 헤게모니 또한 매우 견고합니다. 갭이 생각보다 크지만, 어느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현재는 이 갭이 작동하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준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말씀 주신 갭이라는 것이 학교마다 조금씩 작동하는 것 같아요. 새롭게 만들어진 학과, 우리도 문예창작과를 만들어 보자고 하는 학과들이 굉장히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기존 학제를 변화시키며 하는 것이 다른지라 그 부분을 나누어 보면 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제가 사회자로서 한 번 더 상기하면 오늘 기획에서 웹소설이라는 것이 표제로 있지 않았습니다. 문학 교육의 변화가 주된 틀인데, 대중적으로 웹소설이 가장 큰 변화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웹소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에 웹소설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조금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셔도 되겠습니다. 웹소설이 아니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문학 양식이나 장르의 변화가 있고, 문학의 외연을 변화시킬 새로운 양식들, 그에 대한 소개와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웹소설이 기존 소설과 연속되거나 대립하는 지점 등을 간단히 언급할 생각인데요. 제가 웹소설과 관련한 논문이나 발표, 특강을 하다 보면 대략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당시 웹소설 연구는 대부분 어떻게 웹소설이 기존 소설과 대비되는가, 얼마나 다르냐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제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웹소설에 대한 논문을 썼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본 것이 매체가 바뀌어 매체에 맞게 변화를 겪고 있지만, 소설을 봤을 때 연속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라면 둘 중 무엇이 맞는지 얘기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항상 그 점을 강조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단면적으로 봤을 때 어떠한지는 남들이 많이 이야기했으니 나는 연속적으로 이야기하겠다고 생각했고요. 저는 웹소설을 기존 문학에 끼워 올리는 과정에서 소설이 종이 매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어떻게 변화되는 과정이 있다는 식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는 문예창작과 웹소설의 관계를 연속적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저는 시간적으로 매체의 변형 과정을 생각하기도 하고요. 학생일 때와 가르쳐야 할 때를 비교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양식의 변화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을 허심탄회하고 다양하게 말씀해 주시고, 이것을 모아 보면 우리의 기획 의도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지용: 이어받아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처음부터 제기되었던 문학의 외연, 변화에 대해 매체의 변화와 발달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발표하는 매체가 계속 변해 왔고, 매체가 확장하고 다양해지다 보니 매체에서 내러티브를 만들어 낼 때 각각 다르게 변모한 서사성이라는 게 작동하게 됩니다. 그건 인간이 계속 생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이 생산하는 이야기가 기존 문학이라고 했을 때 종이책으로 나오던 한정된 매체에서의 정형화된 형식으로 머물러 있었다고 보고요. 매체가 워낙 넓어지다 보니 매체의 변화 양상에 대응할 수 있는 서사 양상들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하는데, 매체가 큰 폭으로 달라지면 웹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창작과 소비 방식 전반이 다 달라지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은 단지 웹소설뿐만 아니라 서사가 필요한, 그러니까 이야기가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영화과 학생들에게 판타지와 SF 시나리오를 가르쳤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의 글로벌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OTT 등의 매체의 변화가 활발해지면서 영화 쪽에서도 급하게 SF와 판타지를 다루어 달라고 제게 의뢰했던 겁니다. 전공과목을 맡아 3~4여 년 가르쳤습니다. 넓게 보면 게임 시나리오, 광고 카피 같은 것도 다 산업적인 영역이나 각각의 특수한 영역으로 분리해 다뤄 왔지만 이 역시도 근본적으로 창작에 속한 부분입니다. 매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은 계속해서 넓어지는 것 같고, 다양한 매체에서 하게 되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지금 10여 년 내에 가장 활발히 만들어진 새로운 양식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준현: 이지용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매체가 어떤 양식을 만들고, 양식을 교육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지용 선생님께서도 그렇고 저도 많은 대학에서 교육을 했던 사람들이어서 더더욱 피부로 느끼는 위치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염승숙: 일단 대학에서 주로 맡는 과목 자체가 소설 창작에 치중되어 있어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그 안에서도 많은 수의 학생을 만나요. 웹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을 만나기도 하고요. 그런 학생들이 당연히 자신의 작품을 제출하고, 합평 받는데요. 합평 받는 형태도 웹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웹소설의 형태와 형식이라고 하는 것이 그다지 정확하게 규범화되어 있다거나, 규율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어요. 실제로 웹소설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부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 이미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상태인 경우를 여럿 만났거든요. 이미 작가가 되어 밤새 웹소설 업로드하고 아침에 순위를 확인하고 오느라 지각했다고 말하는 학생을 보기도 했고요. 그 정도로 웹소설 시장이 학생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원하면 업로드할 수 있는 곳이구나, 생각을 했는데요. 저마저도 지엽적으로 만난 형태의 학생 작가군이었겠죠. 그때 학생들이 제게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것은 ‘웹소설을 쓴다고 무시 받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시 받기 싫다’는 것에는 대단히 안정적인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분명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수업을 들으며 그 학생들은 웹소설을 제출했지만, 웹소설을 제출했다는 것과는 별개로 문장을 봐 주고, 안정적인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봐 주었던 것 같은데요. 웹소설을 쓰고 있지만, 보다 평균 이상의 문장을 구사하고자 하는 욕망이 학생들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웹소설 작가이면서도 순문학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고요. 순문학을 통해 웹소설 쓰기에 훨씬 전위적인 지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학생도 있었어요. 현대소설 강독 수업을 하다 보면 자기가 웹소설을 쓰고 있고, 작가 지망생이기도 한데, 보다 더 남성적인 문체나 남성 작가의 글쓰기를 가르쳐 줄 수 없느냐는 요구를 받은 적도 있거든요. 현대문학을 구성하는 작가들이 대부분 여성이었기에 여성 작가의 작품만을 의도적으로 선별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웹소설을 쓰고자 하니 남성적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가져가면 지향점과 다르다는 식의 합평을 내놓기도 하고요. 웹소설 장르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특정한 문체나 서사의 톤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재미있는 지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문학의 외연은 당연히 웹소설 지망생과 실제로 웹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분들에 의해 많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웹소설도 장르적으로 세분화되어 있잖아요. 본격소설을 쓰기를 원하는 학생들 중 오히려 형식적으로 스크롤하듯 읽어 낼 수 있는 형태를 써 온다기보다는 세분화된, 이를테면 탐정이나 수사국이 나오는, SF나 로맨스, 청소년 화자를 내세운 청소년 소설 등으로 장르소설에 대한 지평이 웹소설의 발달과 함께 확장되는 인상을 받는 것 같아요. 문예창작과의 현장에서는요.
김준현: 저도 학생들을 보면 웹소설 쓰러 왔으면서도 순수문학에 관심이 많고, 순수문학을 하러 왔으면서도 웹소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실제 학생들의 수요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명현: 앞의 말씀을 반복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는데, 이지용 선생님께서 언급하셨던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문학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를 묶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들이 과연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학 ‘바깥’에서 존재하는 또 다른 이야기의 형태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과거 문학에 속했던 서사가 이제는 문학과 별도로 ‘이야기’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춘향전』이라는 작품의 계보를 잇는 웹툰도 있고, 춘향과 심청의 계보를 잇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인기입니다. 우리가 아는 원작과 거리가 있지만, 과거의 이야기에서 지금의 이야기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매체가 변화하지만, 매체의 변화와 관계없이 이야기는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의문도 듭니다. 매체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생산된 이야기는 예전의 이야기와 당연히 다른데, 근대에 확정된 학문 제도인 문학 안에 포함될 수 있을까? 새로운 이야기는 학제의 벽을 넘거나 융합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텐데, 다들 아시다시피 쉽지 않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질문 안에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어쩌면 문학이라는 틀을 벗어나야 전통적인 문학, 그리고 장르의 변화와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이어진: 앞서 말씀해 주신 분들이 너무 좋은 논의를 주셔서 저도 살짝 숟가락 하나 얹어 논의를 보태자면, 그리고 현업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오히려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순문학 했던 저의 또래 친구들이 장르문학, 웹소설로 많이 넘어왔어요. 저는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 짓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는 변화의 바람을 보면 순문학을 지망하다가 장르문학으로 온 친구들이 다시 순문학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관찰되고 있거든요. 사실 저부터가 좀 그렇습니다. 장르문학이라는 게 어찌 보면 정형화와 이론화의 틀에서 벗어나 있고, 권위적이지 않고, 좋은 말로 하자면 탈권위적이지만요. 나쁜 말로 하자면 특별히 이론적이거나 체계적인 모습이 없기에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습니다. 직장인이 퇴근 후에 일기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몽상 같은 것을 썼는데 갑작스레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경우를 주변에서 정말 많이 봤거든요. 제 친구 중에서도 9급 공무원이나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하다가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글을 썼는데 갑자기 1억 벌고, 10억 버는 경우가 많이 생겨 장르문학에 정착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이 친구들이 자기의 문장이나 머릿속에 생각한 이미지를 기술적으로 잘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본격적인 이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문장을 좀 더 체계적으로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결국 작품 세계를 보다가 고전으로 회귀하게 되더라고요. 로판의 경우 『몬테크리스토 백작』, 어쩌면 앞서 말씀 주신 『춘향전』이 현재까지의 로맨틱 판타지랑 비교했을 때 굉장히 큰 차이가 있지 않거든요. 판타지의 경우에도 그렇고요. 플롯만 심플하게 추출하면 그렇습니다. 이런 고전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얼마나 이걸 현대식으로 오마주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말 크게 달라지더라고요. 웹소설의 경우에도 말초적이고 스낵 컬처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 범람하기에 경쟁력이 떨어지잖아요. 거기에서 스낵 컬처로 대리만족을 시켜 주는 게 하루에도 100 작품, 1,000 작품씩 쏟아진다면 거기에서 결국 메가 히트를 기록하는 작품은 작가의 철학이나 신념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이른바 ‘충성 독자’가 되어 매출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수많은 사람을 공감시키려고 한다면 철학이나 신념 같은 것들이 풍미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 풍미라는 것이 실은 오래 묵은 고전들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20대 초반에 웹소설을 써서 우연히 사랑을 받아 활동할 때는 오히려 국문학과 이론이나 교수님들께 배웠던 것이 아무런 도움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대중이 좋아하는 걸 스스로 찾아 혼자 했다는 오만함과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경력이 쌓이고 보니 그때 그 교수님들께 배웠던 고전의 가치가 결국 새 글을 쓸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결국 독자가 보고 싶어 하고 소개하고 싶어 하는 건 『춘향전』 때부터 지금까지 바뀐 게 없구나, 살아 있는 화석 같은 것이라 얼마나 현대적으로 예쁘게 인테리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뒤늦게 진학하거나 대학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요즘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시장이 성숙하는 과정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 주신 분들과 똑같은데, 조금 현장의 이야기라고 할까요.
김준현: 현장의 이야기, 새로운 창작을 위해 고전을 공부한다는 말씀인지라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이 공감할 생각이기도 할 텐데, 이런 것을 주장하려면 근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과정에서 대학원에 진학한다든가 전공자로 배웠던 것을 들춰 본다는 것이 중요한 사인일 것 같습니다. 저는 웹소설이 기존 전통적 소설과 연속적 지점, 단절적 지점이 모두 존재하는 것 같다고 시작했었고요. 그런 과정에서 여러 선생님께서 현재 양식의 문제를 이야기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매체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저도 많은 지면에서 얘기했다시피 매체가 양식을 만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음 질문이 매체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문학과 문예 창작의 범위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문학 매체로써의 웹’이 정착의 큰 변수일 텐데요. 지금 이명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매체와 양식의 변화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학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누어진다는 맥락인 것 같습니다. 비슷하지만 표현은 다르겠지요. 아마 작가가 실제로 해야 하는 일도 많아지고, 작가와 독자의 소통 양상도 달라지다 보니 결국 우리가 문학이라는 걸 이야기하며 매체 이야기를 하게 되고, 매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현대문학 쪽에서는 죽으라고 안 했던 것 같아요. 저도 고전문학 수업을 좋아해서 많이 들었는데, 고전문학에서 오히려 매체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구비 문학도 시장에서 읽어 주는 것들, 누가 읽었느냐에 대한 것, 장편의 길이나 누가 창작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현대문학에서는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들었던 수업은 대개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문학 매체로써의 웹이 큰 변수이고, 이게 큰 요인인데요. 이 좌담의 기획 의도 중에는 웹을 제외한 변수도 들어 있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서도 짚어 가며 문학교육의 변화로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웹 말고도 문학이나 문학 교육을 변화시키는 요인 중 이건 언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답변 없음)
이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고, 시간이 남는다면 마지막에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학 교육으로 넘어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문예 창작 교육에서는 볼 수 없던 학과 명칭, 과목 명칭 등이 있는데요. 저는 이게 ‘웹’을 붙이느냐, ‘미디어’를 붙이느냐, ‘콘텐츠’를 붙이느냐와 또 어느 자리에 붙이느냐에 따라 담당 교수님들이 대응하고 계시는 방안이 드러나는 것 같아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웹문예창작과’라면 이게 ‘웹소설/ 웹툰과’인지, 정말 전통적인 소설과 시도 가르치는데 웹에서 유통하는 걸 가르치는 건지 질문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모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이름을 바꿔 보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웹문예창작과에서 이름이 한 번 다시 바뀔 뻔한 적이 있습니다. ‘웹툰을 넣으라’고요. 그러면 ‘웹문예’라는 말이 이상해진다며 제가 거절했고, 몇 번 오갔던 적이 있습니다. ‘웹문예웹툰학과’가 될 뻔한 거죠. 그런 식으로 여러 사례가 있을 것 같아 나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지용: 학생들 입장에서는 명시해 주는 게 좋지 않나 생각은 합니다. 미디어나 뉴미디어, 웹소설, 웹문예 등으로 하면 방어적인 용어잖아요. 그렇게 해 놓고 웹소설을 가르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상당히 많아요.
김준현: 학과 이름을 바꿨어도 커리큘럼을 안 바꾼 경우가 많죠.
이지용: 교과목 이름이 바뀌어도 수업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거나, 지엽적으로 시도하거나 특강으로 대체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아예 과감하게 접근한 경우도 몇 번 봤습니다. 이를테면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융합대학원인데, 장르 스토리텔링과 서브컬처 전공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예 목적을 전면에 내걸고 하려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과목이나 학과 이름 변경의 양상을 보면세 가지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전환을 한다고 명시하긴 하지만 방어적이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것, 이름만 바꿔 놓고 변하지 않는 것, 아예 과감하게 명시하고 구조의 변화도 가져가려는 것. 그런데 이 중에서, 겉으로만 바꿔 놓고 내용과 구조는 그대로인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세 번째도 가치 판단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과연 동시대적인 변화 양상과 필요들을 잘 포착해서 교과목이나 학과 단위로 정착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고요. 말씀드렸던 한양대의 경우에도 학생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신생 학과이고, 그것이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은 맞지만 진학을 한다는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당장 달려들 수 있는가는 분명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을 테고요. 그런 반면, 이어진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셨듯 역으로 기존에 공부하셨던 분들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필요 영역인 것 같습니다. 그걸 커버할 수 있는 영역도 분명히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저는 지난 5~6년간 각 대학의 석사와 박사 논문 외부 심사 의원으로 정말 열심히 다녔거든요. 그때 주제가 거의 웹소설, SF, 판타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창작뿐 아니라 연구나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전문가의 영역으로서의 새로운 문학 영역에 대한 수요도 분명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명칭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하지만 문학은 문학대로 정형화시키고 다른 영역들을 분리시켰을 때 이 두 개가 모두 존속 가능할지가 항상 미지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가능하다면 분리하는 게 맞겠지만, 그게 가능할까. 당장.
김준현: 맞습니다. 저희가 자칫 지엽적이 되거나 수박 겉핥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씀해 주셨는데요.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이명현: 전통적으로 국문학은 고전문학, 현대문학으로 나뉘지 않습니까.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인문융합콘텐츠 전공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국문학의 하위 전공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대학원생 수가 늘어나면서 국문학과는 다른 방향으로, 특히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수업 개설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 채팅창에 올려드린 건 내년 1학기부터 바뀌는 커리큘럼입니다. 문화연구, 대중문화 연구, 서브컬처에 대한 요구를 이런 방식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국어국문학 더하기 문화콘텐츠가 아니라 매체 연구나 스토리텔링 연구를 하고 싶다는 수요가 늘어나는 거죠. 문제는 이런 변화 자체가 아니라, 정작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학습자들의 요구는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선생님과 지도할 만한 전공자를 매칭하는 게 너무나 어려워요.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연구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관심 분야가 다양하고 편차도 큽니다. 국어국문학과 연계된 문화콘텐츠를 희망하는 친구도 있는가 하면, 매체 연구로써 웹소설이나 웹툰, 게임을 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고요. 분명히 연계된 요구들이, 이걸 어떻게 담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따로 인문융합콘텐츠 전공을 만들었는데, 솔직히 이 표현이 다소 두루뭉술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도 포함, 저것도 포함되는 표현이니까요. 어떤 용어가 전면에 나오면 누군가가 불편할 수 있고, 반대로 특정 용어가 빠지면 해당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나름대로 고민해 폭넓은 표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준현: 아까 이지용 선생님께서 말씀 주신 것처럼 실제로 가르칠 수 있는가, 학생들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는가, 연속시킬 수 있는가로 항상 여러 고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문학 교육의 과정에서 과목을 만드는 게 사소할 수 있지만, 실제로 운영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되더라고요. 결국 교육의 방법론, 영역의 범주까지 건드려야 하고요. 방금 이명현 선생님께서 말씀 주신 사례가 이지용 선생님께서 말씀 주신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서로 사례로써 부합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염승숙: 이명현 선생님께서 올려 주신 커리큘럼이라든가 강좌명을 보면 이 중에서 제가 강의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강사로서 위기감을 느끼기도 합니다.(웃음) 그만큼 시대의 변화가 격정적이고 훨씬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서사 양식이 일시에 쏟아지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면, 문학 매체로써의 웹과 웹의 외양적 확대나 발달에 따라 웹소설이나 웹콘텐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급진적으로 늘어난 것은 맞는데, 최근 2020년대 독서 출판 시장 자체가 확실히 K-콘텐츠, 소설 장르가 웹소설처럼 쉽게 쓰여 독자와 대중을 확보하면서도 유행처럼 K-힐링 콘텐츠 도서들이 인기더라고요. 서점이나 편의점 등이 배경인 힐링 소설들이요. 오히려 최근 문예 창작을 배우러 온 학생들은 그것을 목표 의식으로 삼기도 하는 것 같아요. 힐링 소설류의 추가 확대에 따라 출간 이전에 ‘밀리의 서재’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책이 전자책으로 선발간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방식으로 사유하고 소설의 형태로써 써 내려고 하는 소설도 늘었거든요. 그런 전자 매체의 형식을 빌려 소설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종이 출간물에 대한 기대 효용을 갖는 학생도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웹으로써의 매체가 주는 포용감이 있고, 그 과정에서 덩달아 종이 매체와 활자 매체 시장이 확장되는 긍정적 방향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김준현: 웹 매체와 문학의 이야기까지 더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진: 앞서 많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은 말할지 말지 고민했거든요. 전에 말씀하셨던 한양대 해당 학과에 제가 대학원생으로 재학 중인데, 거기에서 강의하시는 분들과 이 자리에서 겸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앞서 말씀 주신 선생님들의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부족하지만, 강의를 나갈 때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스마트폰이 가로 10cm, 세로 7cm인데 이게 15~25cm 정도 되는 책에서 변화해 오고, 또 읽는 장소가 바뀌면서 ‘책을 읽는다’는 이미지가 덩달아 바뀐 것 같아요.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는다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빠르게 읽는다거나, 신호 많이 걸리는 나들목에서 신호 대기 기다리며 보거나. 읽는 장소와 읽는 방법, 또 시간이 나서 읽느냐 내서 읽느냐가 변함에 따라 문단을 구성하는 방법, 문장의 길이, 호흡,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2015~2017년도까지는 강의를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여기에서 더더욱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웹소설이 웹툰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재창작되잖아요. 저만 해도 이전까지는 웹소설 매니지먼트랑만 소통했는데, 이제는 웹툰 제작사나 게임 제작사와 소통, 드라마 제작사나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소통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귀멸의 칼날〉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회사에도 다녀온 적이 있고,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한 회사에도 다녀온 적이 있고요. 웹툰 만드는 회사에도 미팅을 다녀오면서 느끼는 게 생겼는데, 도저히 한 사람이 연구해서 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웹소설을 웹툰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글을 그림으로 바꾸는 전문 각색가가 생기기 시작했고, 기존과 색다른 직업군으로 분류되기까지 합니다. 이 사람들은 웹소설을 읽고 순서를 짜깁기하거나 오리지널 스토리를 덧대고 생략하며 만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만화를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제가 쓴 것 중에는 종이책 기준 11권 분량의 작품이 있었는데, 이걸 드라마로 바꾸니 80개 넘는 에피소드 중 6개가 살아남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꼭 들어가야만 하는 에피소드인데 그게 빠지고, 아무것도 아닌 에피소드가 드라마의 한 회차로 채택되기도 하고요. 드라마 작가님께 여쭤 보니 웹소설 독자가 원하는 것과 드라마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아예 다르다는 겁니다. 작가 나름대로 기준에 의해 자르고 붙이게 되는 거죠. 그걸 듣는 동안 저는 이해가 어려운 거예요. 내가 드라마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내 웹소설이 드라마로 재창작되기를 바란다면 드라마학까지 공부해야 그걸 반영한 웹소설을 창작하고, 애당초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되게끔 해야겠죠. 요즘 저는 어떤 신작을 쓸 때도 웹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요즘 웹툰화를 약속하고 작품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애초에 그림 작가가 그리기 어려울 만한 것들을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유기적인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저보다 매출이 좋고 원 소스 멀티 유즈가 활발한 작가들은 애초에 웹툰 이외에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까지 염두에 두고 소재를 고르고 집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웹소설이 다양한 매체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게 다원화, 복합화되고 있어 아무것도 모른 채 미팅을 다니다 보니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론을 가르쳐 주는 대학원이나 대학교로 회귀하게 되는 흐름도 이 과정에서 생기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김준현: 지금 말씀 주신 것은 다음 질문과 연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잠시 시간을 확인해 보자면 10분여 남은 것 같습니다. 남은 질문은 유기적 연관성이 짙은지라 함께 이야기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저도 지금 이어진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원작 스토리 작가로서 담당자나 독자와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재창작되는 경우 재창작하는 매체와 시청자, 제작자까지 전부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이전 직장부터 현 직장까지 도입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과 연결되어 있는데요. 웹소설 기획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웹소설 기획은 독자를 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 기획을 가르치다 보면 타깃을 가장 중시하고 수요를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이것과 관련된 과목을 정말 많이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령 서울사이버대학의 ‘웹문예 비즈니스’라는 과목이 있었고, 이것이 내 IP를 어떻게 산업적으로 매니지할 것인가에 대한 과목이었습니다. ‘웹 리터러시’라던가 ‘웹 스토리텔링’ 같은 과목은 내가 웹소설을 쓰고 있지만,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웹소설을 완성시키는 것, 웹소설에서 웹툰으로 넘어갈 수 있는 원천 스토리를 만드는 것. 이런 것을 강화하고 있고, 연속되는 OSMU로 생각하다 보면 웹소설 독자를 영화나 드라마의 시청자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유니버설한 과정에서 기존 서사 장르와 연결되기도 하고요. 기존 서사를 공부해야 하고, 결국 기존 고전을 봐야 한다는 것이 필요해 오늘 좌담으로 사례로써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문학 교육에서 각자 바뀌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되는 부분을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이어진: 제가 이전에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감명 깊었거든요. 『옹고집전』을 현대식으로 해석해 서양 철학과 비교한 건데, 『옹고집전』이 허수아비가 옹고집으로 변해 나타나자 자기 스스로를 증명해 내는 과정에 대한 소설이잖아요. 옷은 몇 벌이고, 부모님은 어떻게 알아볼 거고. 그런데 허수아비 옹고집을 부모님이 더 좋아하게 되었을 때, 옷에 대해서도 허수아비 옹고집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철학 중 ‘나를 나로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가’와 관련 있다는 내용의 강의였는데요. 나를 나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동양철학에서는 하늘이 ‘너는 죄를 다 치렀으니 돌아가거라’라고 하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제가 이걸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에 녹여 내 게임 속에 있는 ‘나’와 게임 바깥에 있는 ‘나’가 서로 다르게 구분된다면? 하는 가정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이게 성적이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때 당시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 중에서도 몬스터 잡고, 아이템 받는 류가 인기 많았는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있어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아요. 차별성을 그러다 갖게 된 것 아닌가 싶어 이런 류의 웹소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고전 스토리를 분석해 알짜배기, 독자들이 통속 소설을 소비하는 이유를 분석해 현대적으로 만든 예를 웹소설 작가들에게 알려 주면 그걸 잘 써먹지 않을까, 그런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준현: 저희 학교에서도 고전 자원과 웹소설, 지역 문화 자원과 웹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어진 선생님께 추후 자료나 실례를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다른 선생님들 이야기 들어 보겠습니다.
이명현: 사회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도 했는데, 저희도 고전문학 콘텐츠론이나 고전문학과 스토리텔링 등의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비평적 해석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고전문학 교육이 강독 중심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각을 적용해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문학을 이해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 역시 그런 편이고요. 그것이 말씀하신 연속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문학 창작 과정에서 유효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일 것 같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사유와 관점을, 문학을 매개로 펼쳐 보이는 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학의 힘인 것 같은데요. 방금 이어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러한 힘이 녹아들 때 매체를 떠나 호소할 수 있는 힘이 강하게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웹소설과 웹툰을 좋아하는데, 서사 저변의 무엇이 제게 호소된다는 느낌이 든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확실히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문학교육, 고전문학 교육으로 언제까지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당분간 국어국문학과 학제가 유지될 수 있겠지만, 변화가 급격히 일어날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성대도 문화콘텐츠학과로 학과명을 변경했고, 선문대도 비슷한 변화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도권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과가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국어국문학 전공자는 임용되기 쉽지 않은 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학령 인구 감소, 사회적 구조 변화도 국어국문학과의 변화를 강력하게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5~10년 이내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이지용: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우선으로 이야기해 보면, 웹소설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에 입시의 형태와 학교의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문예창작과는 실기를 보고 입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실기는 철저하게 순문학 형식을 트레이닝해서 보게 되어 있어요. 입시 미술처럼요. 그것을 통과한 실기 경쟁률이 높은 학교의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1, 2학년 때 특히나 ‘웹소설 쓰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면 나는 순문학이 아닌 것 같다는 선언과 함께 길을 모색하다 웹소설을 찾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니즈라는 것도 굉장히 다층화되어 있고, 이전에 있던 것을 폐기하고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매체와 문화의 역사가 그랬듯 새로운 층이 생기고,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 고안되고 보충되는 방식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방식이 폐기되는 형태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 형식들에 대해서 교육 현장에서 좀 더 많은 경우와 논의를 통해 전수 조사해 보고, 수요 조사도 열어 놓고 해 보면 어떤 지표를 펼쳐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요.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을 뿐, 개개인의 지엽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것 아닌가 아쉽기도 하고요. 현장의 학생들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이 중요할 것도 같고요. 다양한 사례가 많이 공유되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장이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염승숙: 이지용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너무 크게 공감했어요. 확실히 여러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제가 느낀 점은 제가 작가로서, 혹은 평론가이거나 대학 강사로서 아주 공고화된 세계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대 변화의 바람에 빗겨 나 있는, 순수 문예 창작의 굴레 안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처음 말씀드렸듯 학과명을 바꿔 가며 문예창작과에 재학했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이탈해서 추계예대, 명지대, 동국대 문예 창작 쪽으로 편입하거나 재입학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최근 1~2년 내에도 계속해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대학원으로 문예 창작을 배우러 다니는 학생들을 만났고요. 그런 방식으로 보면 여전히 순수 문예 창작을 희망하는 친구들이 존재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문예 창작 교육의 전선에서 제가 이야기할 때도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할 때도 여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들, 스토리의 힘을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요. 저도 본격 수업에서는 계속해서 고전의 중요성, 스토리텔링의 힘, 매력적인 인물을 찾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실제로 본격 소설이나 웹소설이나 무언가 쓰기 위해 모인 학생들도 사실은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조차 읽어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현대소설의 원형이 『데미안』 안에 있는데 말이죠. SF 등장 소설에 심취한 친구들조차도 조지 오웰이나 마거릿 애트우드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서 수업을 진행하며 그런 부분에서 고전적 서사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찾아 읽게끔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매체나 웹의 변화와 별개로 그런 수업이 문예창작과 내부에서 개설되는 새롭게 요구되는 사안인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스토리의 힘을 강조하면서도, 문예 창작 내부 커리큘럼 내에서 훌륭하고 매력적인 스토리를 어떠한 플롯으로 변주해 또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나가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문예 창작 교육 과정에서 여전히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듯 고전의 힘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고, 와중에 저는 강사로서 웹소설에 대한 수요나 의식화된 니즈에 대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매체적 성격에 대해 고민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준현: 어느덧 주어진 시간이 대략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마무리 의견을 받고서 끝내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여러 번 이야기하였듯 현상을 한 명이 따라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러다 보니 연구자든 선생이든 겸손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 다섯이 모였다고 해서 어떠한 결과나 대단한 의미가 찾아지는 건 아니겠지만, 많은 욕심을 내기보다 서로 간 사례를 공유하고 피부로 겪는 것을 이야기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기 학문이 쌓아야 하는 초반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다양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명현: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고요.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이야기 들으며 저도 다시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김준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변화하는 현상을 개인이 다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각에 대한 부분을 책임지고 모아야 전체 그림이 나오는데, 내가 가진 조각이 전부인 것처럼 오만해서는 전체 현상에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협력하고 맞추어 가는 노력의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지용: 이 말씀 드리고 싶어 처음부터 기다렸는데요. 저는 음악 교육하는 시장이 문예 창작 교육과 비슷한 형태를 띠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레거시한 클래식이나 국악과 같은 영역이 있고, 대중음악은 실용 음악이라는 식으로 나뉘고요. 상업적으로는 K-POP 등으로 분류되는데요. 아마 문학의 영역도 이렇게 분류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클래식이나 국악과 같이 고전에 대한 교육과 연구의 영역이 남을 것이고, 대중음악에 속하는 부분은 현대문학 영역인데, 거기에서 결국 20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장르물까지도 아울러 포섭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K-POP에 해당하는 것이 웹소설 영역일 텐데, 이것이 완벽하게 고등 교육 영역으로 편입될 수 있을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컨템포러리한 음악 기초 교육을 시키듯 문학 교육에서도 이러한 카테고리화가 적용되어 당분간 만들어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이명현 선생님께서 올려 주신 과목명도 저는 십수 년간 저런 과목이 신설되면 일차적으로 투입되는 인원이었거든요. 항상 외로웠고, 이게 맞는 건가 아닌가 갈등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영역이 단순히 실험하듯 몇 번 진행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되고 발전해서 관련된 더 많은 인력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사실 다양한 영역에 대한 위기가 제기되는 최근에 이 사회가 이러한 영역에까지 관심과 지원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 좀 더 많은 목소리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게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염승숙: 말씀 듣다 보면 계속 공감만 되는데요. 확실히 특정 대학, 문예 창작에 대한 강의가 없는 학교가 있어요. 그런 대학의 학생들은 학교 외부에서 하는 문학 강의, 이를테면 출판사 ‘민음사’나 ‘창비 교육’이나 ‘한겨레 교육’ 같은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합평이나 문학 강연을 따로 수강해서 듣는 경우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대학 기관에서 글쓰기 강좌나 창작 관련 부분을 어떻게 지도하고 선도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문예창작과가 개설되어 학과 명칭이 바뀌어 가며 본질이 흐려지는 신생 대학도 있을 테고, 여전히 견고하게 소설 창작을 본격 문학으로 다루는 학교들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강단에서 느끼는 점은, 학생들의 창작에 대한 열의와 열망이 여전히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대학 기관이 하는 교육적 기능이나 위치가 과도기에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웹소설이든 본격 문학이든 창작을 향한 학생들의 열망이나 수요는 역설적으로 커지고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진: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어떤 분이 참여하시는지 들었거든요. 제가 방청객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너무 대단하신 분들과 한 자리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고, 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이틀 전에 자동차 사고를 크게 당해 팔다리가 부러져 있어 본의 아니게 휴대전화로 누워서 참여한 점 송구합니다. 이런 사정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고, 정말 감사한 자리였습니다.
김준현: 참석해 주신 것만으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요즘 사건 사고도 많고, 시작하며 여러 시국 때문에 집중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위안을 얻은 것 같습니다. 많은 말씀 감사하고, 이렇게 좌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른 자리에서 뵐 기회가 있는 선생님들 같아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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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최창근 지난해 12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던 ‘2024 광주에서 온 편지’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 시간으로 그날 자정 스웨덴에서 시작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면서 광주시민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자리였다. 작가가 부른 노래도 흘러나왔고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시극도 공연되었다. 작품과 연계된 문학 강연도 풍성하게 열려서 시국은 비록 어수선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제였다. 운명의 날이었던 10월 10일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안무가가 연출한 춤 공연을 보러 청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작가의 여고 동창이기도 한 극작가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노벨상!!”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마치 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참 뿌듯했다. 작년 가을은 그 일로 내내 가슴이 설렜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이기도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한강 작가가 가장 가까울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이렇게 일찍 갑자기 받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그 당시에도 요즘과 마찬가지로 얘기되던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는 방안의 하나로 사이버공간에 문학 종합 포털사이트인 ‘문장’을 창안했다. 문장 안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터넷 문학라디오였고 나는 훗날 ‘문장의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문학라디오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작가를 겸한 피디였다. 한강 작가는 ‘문장의소리’ 첫 방송의 초대 손님이었고 그 후로 진행까지 맡아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9개월을 서울 합정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한 작가가 진행을 맡았을 때 프로그램 기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을 돌아가며 소개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낭독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강 작가와 떠나는 세계문학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협업해서 이미 노벨 문학 방송을 제작했던 건 아닐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그 문학 방송의 진행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지의 기운이 도운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 관리자
- 2025-01-06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 사이에 총 3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책장 업고 튀어 - 2차 :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 3차 :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5년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ㅇ 일 시 : 2024년 11월 28일(목) 13:00~14:30 ㅇ 장 소 : 예술가의집 라운지룸(서울 종로구 동숭길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참여자 - 사회자 : 이소(문학평론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 참여자 : 곽선희(‘위즈덤하우스’ 편집자), 김은혜(문학웹진 ‘림’ 편집자), 이유리(소설가), 한영원(시인) 〈개회〉 이소: 반갑습니다. 저는 평론을 쓰는 이소입니다. 《문학과사회》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다들 어떤 책을 만드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유리: 저는 소설 쓰는 이유리입니다. 최근에 『비눗방울 퐁』이라는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곽선희: 저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위픽’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곽선희 편집자라고 합니다. ‘위픽’ 시리즈는 단편소설 한 편이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지는 기획이어서 오늘 종이책의 무게라든가 부피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오늘 자리에서는 좌담에 앞서 문구 덕후이자 전자책 편애자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영원: 저는 시 쓰는 한영원입니다. 『코다크롬』이라고 하는 시집을 썼습니다. 김은혜: 안녕하세요. 저는 열림원 문학웹진 ‘림’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은혜입니다. 어제 마감이 끝났습니다. 조만간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올 예정이고, 전시를 기획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소: 어떤 전시를 하시나요? 김은혜: 문학상 시상식과 전시를 접목시키는 기획을 하고 있는데요. 전시 기획은 처음이라 조금 떨리기도 합니다. 이소: 제가 미리 질문지를 드리긴 했는데, 꼭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첫 질문은 ‘책과 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책이라는 것이 부피가 크기도 하고 공간과 큰 연관이 있잖아요. 카페 같은 곳에서는 예쁜 책이나 시집을 인테리어 용도로 쓰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에게는 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취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피가 크다 보니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책을 모으시는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전부 다를 것 같아 궁금합니다. ‘집에 책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집에서 취향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 관리자
- 2025-01-01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을 방문한 날, 공기는 서늘했다. 우리 일행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천천히 푸른 서가를 거닐었다. 숲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최초의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은 한 세기 동안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세계적으로 엄선된 백 명의 작가에게 일 년에 한 명씩 원고를 제출케 하고, 백 년 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었다. 여기엔 나무를 심고 키우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외곽의 ‘노르마카’에 미래도서관 숲을 조성한 후, 가문비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선정된 작품의 원고는 한 세기 동안 읽히지 않은 채, 오슬로의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각각 보관된다. 2114년이 되면 모든 원고의 봉인을 풀고 이 나무들을 베어 책으로 펴낸다. 2018년에는 한강 작가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오슬로에서 숲으로 가는 길,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가 한 마리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근처 호수에서 신을 벗고 발을 담그니, 한겨울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먹은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피오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길섶엔 갈색빛의 버섯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촌락 같았다. 개미들이 가문비 나뭇잎을 끌어모아 고층 집을 지어 놓았다. 잘 익은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장식처럼 붉었다. 퇴고하지 않은 초고의 숲은 뿌리가 땅 위로 자라고, 이끼가 그 위를 덮어, 또 다른 문장을 쓰고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새파랗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노르웨이의 하늘도 그에 못지않았다. 잘 뻗은 가문비나무가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숲에는 곳곳에 두 가지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붉은색은 스키 길을, 하늘색은 트래킹 길을 의미한다고 했다. 수문장 나무에 두 색이 함께 칠해진 걸 보니, 여기는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로 뻗어 오르는 가지는 내 어깨와 키를 맞추기도 했지만, 머리 위로 쑥 솟아오르기도 했다. 쑥쑥 자라 질 좋은 펄프를 생산할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반드시 가문비나무를 쓴다. 이 나무는 최대 오십 미터까지 자라며 수명은 수백 년이나 된다. 작년에는 칠십 년 된 이십 미터짜리를 런던시에 선물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는 그 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추위 속에서 고요히 자라는, 단단한 나이테 덕분이라고 한다. 장 지오노의 소설
- 관리자
- 2024-12-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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