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 작성일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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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서경석(문학평론가, 전 문장웹진 편집위원)
2025년 3월에 2007년을 읽는다. 그 해 <문장웹진>에 수록된 소설들. 작품을 마주하니 새삼스러웠다. 김재영, 명지현, 한창훈이 눈에 띈다. 김재영의 소설은 중년 남성의 퇴직 후 삶을 그린 이야기였다. 「달을 향하여」는 『폭식』의 작가가 달나라 땅도 팔고 사는 세태를 작품의 마무리로 삼았던 작품이다. 모든 것이 ‘쓸쓸하게’ 돈에 포섭되는 폭식의 세상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읽으니 소설 속 주인공이 퇴직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회현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는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향처럼 아늑하고 친밀한 장소가 주는 위로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안식처에 대한 추억이 작품의 주된 정조를 이루어, 마치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하다. 명지현의 작품 「입안의 송곳」은 지금 다시 읽어도 ‘변함이 없다.’ 앓던 이‘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나 끊임없이 앓고 있고 세상 속 우리의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편안하고 충만한 삶의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삶의 근원적인 딜레마 속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부조리한 몸짓만이 있을 뿐이다. 야생의 인간처럼 뭔가를 계속 씹으며 서먹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저항할 따름이다.
한창훈의 소설 「삼도 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진정한 고향 이야기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사람이 전하니 더욱 그러하다. 작가 한창훈은 거문도가 그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와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곱 살부터 낚시를 했으며, 외할머니에게 잠수를 배웠다고도 한다. 그는 먼 곳, 먼바다를 떠돌다 거문도로 돌아와 글을 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간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의 말처럼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탐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제 내용을 살펴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삼도는 남쪽 바다의 한 섬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오직 ‘늙은이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고 있다. 지킨다기보다는 떠날 수 없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노인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초적인 삶의 뿌리이다. 벗어날 수도 없고, 설령 벗어난다 해도 그 몸에 새겨진 섬 생활의 그리움 때문에 곧 되돌아오고 마는 곳이다. ‘고단할지라도 섬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가는 것은 멀쩡한 배에 구멍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자연의 질서와 공동체의 관습, 그리고 어민으로서의 노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향’인 것이다.
그러니까 떠날 수 없는 세대와, 어떡해서든 떠나야 하는 세대가 완충 세대 없이 맞붙어 버린 경우인데, 하긴, 험한 바다 일은 죽어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별로 내켜하지 않던 아들딸 육지의 학교로, 학원으로 올려 보낸 게 자신들이기도 하니 딱히 누구를 탓하기도, 세상을 한탄하기도 뭐합니다.1)
이러한 삼도 노인들이 어떤 고립감 혹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섬을 떠나 보려는 용기를 낸 것이다. 그 여행기가 바로 이 소설의 내용이다. 노인회에서 여행은 쉽게 결정되었으나, 장소가 문제였다. 불국사, 설악산, 63빌딩, 놀이공원, 모 랜드, 금강산, 일본, 대만, 태국 등이 후보에 올랐다가 최종적으로 지리산과 제주도로 결정되었다. 바다만 보아 온 남자 회원들은 지리산을, 여자 회원들은 제주도를 원했다. 노인회 집행부는 역만에게 찾아온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자 화자인 이 섬의 청년회장 역만은 어쩔 수 없이 이 여행의 ‘리더 겸 가이드’라는 책무를 맡게 된다. 역만의 사정은 어떠한가?
그는 장인의 퇴직금까지 쏟아부어 참돔과 우럭 양식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병이 돌아 죽은 물고기들을 건져 내는 일로 나날을 보냈다. 치어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그 욕심 때문에 병이 났다고 비난하는 아내에게 변변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라,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노인회의 여행을 수락한다. 아내가 격렬히 반대했지만,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 소설에서 여로를 중심 플롯으로 삼는 작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생이 곧 여행이라는 비유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여로는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로인 것이다. 잘 알려진 근대 초기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북방의 외딴 지역으로 떠나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 여행에 내재된 의미이다. 그리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젊은이의 편지가 여행의 결말을 맺는다. 같은 작가의 「만세전」은 회귀형의 여로이다. 동경에서 유학하던 학생이 아내의 병으로 급히 귀국하여 식민지 조선의 여러 비참한 실정들을 확인하고 안타까워하며 다시 돌아가는 구조이다. 여행 자체가 조선을 두루 살피고 비판하며 자기 분발, 혹은 자아 각성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도시로 떠나온 젊은이의 고향행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잠시 들른 고향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도시의 삶에 적응해야 하는 어떤 타협이 그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 유명한 구절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무진기행>2))를 기억해 보자. 이러한 여행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여행을 통해 그간 부인되었거나 외면했던 ‘자신’, ‘고향’, 혹은 식민지 조선을 다시 한번 대면하고 ‘지양’한다. 이는 일종의 부정의 부정으로서, 그간 부인되었던 것들에 대한 보람찬 ‘지양’, 최소한 ‘타협적인’ 극복의 결말을 보여 준다. 그들의 여행은 ‘보람이 있었다’.
이렇듯 살펴보면 앞선 소설들의 여행에 비추어 삼도 노인회의 여행은 과연 무엇일까. 그 차이를 암시하고자 작가는 작품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번에 삼도(三島) 청년회장 김역만이 삼도노인회 회원들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온 후로는 서로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객선을 타고 항구로, 다시 버스를 이용하여 지리산으로 이동했다. 가이드인 역만은 아내가 화가 난 것이 마음에 걸리거나, 막상 집을 떠나 여행을 하게 되니 홀가분하다는 등의 한가로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노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또 안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요구는 이러했다. 덥다, 춥다. 목마르다, 체한 것 같다, 좀 쉬자, 걷자, 신발이 안 보인다, 안 묵을란다, 국이 짜다, 차멀미 난다. 일행은 선암사를 들른 다음 매화마을과 악양 최 참판 댁을 거쳐 쌍계사 근처 숙소에 도착한다. 여기서 사달이 난다. 일행 중 비교적 젊은 편인 집사 할머니가 “절 한 군데 갔으믄 됐지, 잠도 절에서 자는 것은 뭔가.” “우상 옆에서 마음이 편하겄소. 옮깁시다.” 두 사람의 신자 때문에 열댓 명의 일행 모두가 함께 백 리나 떨어진 온천 여관으로 옮겨야 했다.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둘째 날, 제주도로 출발했지만 일행들은 모두 고향 섬에 두고 온 일들을 더욱 걱정했다. 역만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로 제주도에 도착한 후, 점심 식사 때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오분자기탕을 먹던 중, 예전에 고기잡이를 하다 삼 일 동안 표류하다가 기적적으로 제주도에 닿았던 신 노인이 순식간에 소주에 취해 버린 것이다. 술에 취한 기색을 보이자 사람들이 만류했고, 결국 신 노인은 소주 두 병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역만은 노인을 업고 뛰었다. 이어진 일정으로, 중산간 지대의 목장에서 말을 타기로 되어 있었으나, 높은 곳은 싫다는 노인들 때문에 역만만 말을 타고 이동했다. 고난은 저녁 식당에서도 계속되었다. 여행사에서 정해 준 식당은 자리돔구이 전문점이었다. 자리돔은 삼도에서도 거의 매 끼니 구워 먹던 생선인데, 이곳에서는 자리돔의 비늘을 제거하지 않은 채로 굽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왜 비늘을 벗기지 않고 구웠느냐는 노인회 부회장의 항의가 이어졌고, 젊은 여종업원은 원래 그렇다는 답변으로 맞섰다. 대화는 자칫 성희롱으로 여겨질 수 있는 위험한 수준까지 이르렀고, 주인과의 긴급 조정 끝에 다금바리회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일행 중 평생 어부였던 노인이 다금바리는 하찮은 생선이라며, 똥을 먹는 고기라고 지적했고, 결국 주인마저 노인들과 함께 회를 먹지 않기로 하고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채 또 하루가 흘러갔다. 마지막 날, 역만이 일정에 있던 가두리 양식장 견학을 잠시 다녀온 사이, 일행들은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불만을 키웠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심심할 수 있다니. 대체 이런 여행은 왜 온 것일까?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그 순간, 제주도 하늘에 때마침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역만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시청에 노인회를 환영하는 축포를 쏘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듯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교회 집사 노인과 불교도 노인 사이에 설전이 벌어진다. 하나님이 놀라셨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기도와, 이를 비아냥거리는 노인 사이에는 거친 말들이 오고 갔다. 이로써 여행은 아무런 재미도, 휴식도 되지 못했으며, 서로에게 낯선 이질감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역만은 마지막 수단을 강구한다. 모두를 극장식 술집으로 데려가 붉고 푸른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역만은 “피로와 여독, 이곳은 관광특구, 노래와 술, 단합과 즐거움 따위의 단어를 적절히 조합하여 멘트를 했다.” 이제 억지로라도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술을 마시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수영복 차림의 무희들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일행은 혼란에 빠진다. 눈뜨고 보기 민망하고, 늙은 남편이 넋 놓고 바라보는 모습에 괴로워하는 할머니들의 동요가 시작된다. 역만은 중도 퇴장하면 이곳에서 벌금을 부과한다고 위협한다. 역만은 혼자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여행을 마무리했지만, 노인들은 서로 간에, 혹은 바깥세상과의 어떠한 소통이나 공감도 없이 여행을 끝마쳤다.
이러한 여행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신들의 고된 삶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노동 속에서 희생하며 살아왔다. 그들의 삶에는 고립과 가난, 그리고 고독한 노동만이 존재했다. 변두리, 주변부의 ‘내 몫 없는 삶’, 자신의 ‘활기찬 자리’가 없는 삶을 감당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낡은 삶에 새로움을 불어넣을 방법은 없을까. 삶의 폭을 넓히고 세상과 소통할 방도는 없을까. 바깥세상으로 나가 보자. 그리하여 그들은 여행을 택했다. 물론 여행은 비유이다. 현재의 삶을 더욱 나은 활기 있는 방향으로 ‘극복’, 즉 지양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들의 초라했던 삶 자체가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부정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 어느 과정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즐거운 사건 또한 없었다. 말들은 엇갈리고, 소통의 길은 막혀 버렸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인정받는 어떠한 경험도 없었던 것이다. 사회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포섭되지 못하고, 주변부의 덧없는 존재로만 남겨진 경험이었다. 가 보려 했던 수많은 장소들조차 결국 그들을 외면했고, 절에서의 숙소 사용마저 의견이 갈리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 가야 했다. 식당 종업원과는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불쾌한 경험을 했으며, 만나는 사람들의 몰인정에 분노했다. 가는 곳곳마다 낯설고 어색했으며, 그리하여 스스로에게조차 불편함을 느꼈다.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며 자식들을 도시로 내몰았던 삶, 그 희생적인 삶에 활력을 되찾으려 했던 시도는 또다시 좌절되었다. 도약하려 했던 여행은 오히려 그들의 삶을 더욱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앞선 소설에서 여행이 어떤 바람직한 ‘위로의 지양’을 이루어 냈다면, 여기서는 한 번 부정된 삶이 다시 부정되는, 부정의 부정이되 하향적인 지양이라는, 앞선 소설들과는 상반된 결말을 보여 준다.
알랭 바디우는 이러한 삶을 ‘몫 없는 자’의 삶이라 칭하며,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존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외된 자들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섬에서 평생토록 노동에 시달리며 자신을 소진해 온 이 인물들을 낙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환상의 투사에 불과하다. 이러한 추락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만이 그들의 ‘실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며, 그 실패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정면으로 진실하게 새기는 행위이다. 그들은 실로 고귀하다.
1)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3000000&bid=0003&act=view&ord=B&list_no=1694&nPage=1&c_page=
2) 문학동네, e-book, 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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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최창근 지난해 12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던 ‘2024 광주에서 온 편지’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 시간으로 그날 자정 스웨덴에서 시작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면서 광주시민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자리였다. 작가가 부른 노래도 흘러나왔고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시극도 공연되었다. 작품과 연계된 문학 강연도 풍성하게 열려서 시국은 비록 어수선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제였다. 운명의 날이었던 10월 10일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안무가가 연출한 춤 공연을 보러 청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작가의 여고 동창이기도 한 극작가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노벨상!!”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마치 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참 뿌듯했다. 작년 가을은 그 일로 내내 가슴이 설렜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이기도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한강 작가가 가장 가까울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이렇게 일찍 갑자기 받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그 당시에도 요즘과 마찬가지로 얘기되던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는 방안의 하나로 사이버공간에 문학 종합 포털사이트인 ‘문장’을 창안했다. 문장 안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터넷 문학라디오였고 나는 훗날 ‘문장의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문학라디오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작가를 겸한 피디였다. 한강 작가는 ‘문장의소리’ 첫 방송의 초대 손님이었고 그 후로 진행까지 맡아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9개월을 서울 합정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한 작가가 진행을 맡았을 때 프로그램 기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을 돌아가며 소개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낭독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강 작가와 떠나는 세계문학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협업해서 이미 노벨 문학 방송을 제작했던 건 아닐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그 문학 방송의 진행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지의 기운이 도운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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