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의 방식
- 작성일 2025-07-01
- 댓글수 0
[문장웹진 REWIND]
응원의 방식
-염승숙, 「지도에 없는」 (《문장웹진》2007년 4월호)
조경란(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좋은 소설에 대한 사적인 기준
단편소설 「지도에 없는」을 지금까지 세 번 읽었다. 처음엔 2007년 4월에 《문장웹진》에 수록되었을 때, 두 번째는 이듬해 염승숙이라는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에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면서. 앞에 두 번을 읽었을 때는 나도 아직 중견작가라고는 불리지 않을 시기였고, ‘소설’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잘 알지 못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주변을 둘러볼 새 없이 바삐 뛰면서 소설을 쓰던 시기라면 지금은 느리게 걸으며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어느 면으로 소설에 대한 나의 견해나 취향, 좋은 소설에 대한 기준이 약간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눈으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거의 처음 읽는 소설처럼 읽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쩌면 나는 예전에는 이 단편을 나의 취향이 아니라고 쉽게 여겨 버렸을지 모른다. 이야기나 인물보다는 여러 가지 소설적 요소의 완결성과 미학적인 면에 더 집착하기도 했던 시기였으므로. 소설이 어떤 메스(mess), 즉 그것이 크기와 상관없이 ‘엉망인’ ‘헝클어진’ 상황에 인물이 놓이고 거기서 출발한다고는 여전히 여긴다. 그 메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조용히 파동하는 미니멀리즘 이야기에 가까우며 메스의 크기가 크면 큰 소동, 리얼리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말했지만, 지금의 나는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란 어때야 할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몰두하면서 더 긴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단상을 메모해 두곤 한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설이 갖춰야 할 조건들은 요즘은 이렇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어야 하며, 그 인물을 둘러싼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일 만큼 세심하게 구축해야 하고, 인물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을 작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결말에 그 과정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의미(meaning)가 작게라도 내포된 소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시대를 담고 있을 것. 그런 개인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읽게 된 셈이다. 그래서 놀랐다고 할까, 그리하여 놀랐다고 할까. 당시 첫 책도 내지 않았던 젊은 작가 염승숙은 혹시 십팔 년 후에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십 대 청년들의 삶이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서.
누구에게나 방이 필요하지만
중심인물인 이십구 년 차 중개업자인 김 씨는 “햇빛이 잘 들고 보증금 천오백만 원 정도의 방을 원하는” 손님을 위해 불광동 1-173번지를 찾아갔다가 그곳이 없어진 걸 보았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사라지고 “그곳엔 그저 오래된 잿빛 시멘트벽만이” 서 있었다. 어쩌면 김 씨라는 인물이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이 있지도 않고, 자신이 소개해 준 세입자들에게 관심도 애정도 없는 중개업자였다면 그 일은 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씨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며 직접 발품을 팔아 일대의 ‘지도’까지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의욕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 대단해 보이지 않는 불광동 1-173번지의 옥탑방, 그 방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새로 생긴 소명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방에 살았던 사람들, 김 씨가 모두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 전개 방식에서 독자는 작가가 공교히 마련해 둔 상황의 인과에 저절로 설득당해서 앞으로 김 씨가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궁금해져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불광동 1-173번지는 ‘옥탑방’이었다.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추운 방, 대개는 임시 거처로 지내다 가는 방. 김 씨가 소개해 줘서 오 년 동안 그 방을 거쳐 간 사람들은 모두 이십 대 젊은이들이었고 독신 남성들이었다. 그 방을 떠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청년은 꿈을 이루었을까. 지금은 1-173번지보다 안전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그런 방에서 살고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으며 많은 부분은 방, 즉 안전한 거주지로서 개념의 집일 가능성이 크지 않나. 누구에게나 필요하나 누구나 가질 수 없고, 더 나은 공간을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소설은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플롯을 염두에 둔 듯, 작가는 두 번째 장부터 다섯 번째 장까지 예전 세입자들을 찾아다니는 순차적인 이야기를 멈추곤 여섯 번째 장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보여 준다. 장마다 소제목을 붙이고 이 장의 제목은 ‘고! 고를 해야죠!’. 나름대로는 친절한 부동산 중개업자라고 여겼던 자신을, 그리고 그 방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친 김 씨가 아직 한 명 더 남은 청년을 찾아 나서게 되는 감정의 인과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 좀 이상하지만, 어쩌면 그사이 잠시 자신의 집까지 떠나서 아무에게도 증명할 수 없고 물질적으로도 도움도 안 되는 그 방을 ‘기억’하는 누군가를 찾는 여정을 나선 김 씨를 독자가 응원하게 되고 그래 고, 계속 가 보는 거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지게 되는.
김 씨는 자신의 집을 떠나서 어쩌면 그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는 옥탑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이 단순한 표면적 이야기 밑에는 김 씨의 존재에 대한 증명,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김 씨의 여정이 계속될수록, 그 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제가 이사를 좀 자주 다니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이 서글픈 진술은 그들이 1-173번지의 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뒷받침해 줄뿐더러 독자에게 잠시 멈춰서서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서울에서 이사를 자주 다녀야만 하는 이십 대의 삶은 어떠할까‧‧‧. 고향을 떠나, 어딘가를 떠나 이 지역에 방을 구할 때, 두 번째 장의 소제목 ‘나름대로 로망’이 있었던 사람들의 삶은. 갑, 을, 병, 정, 무.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김 씨의 여정은 타인에 대한 이런 관심이 생긴 독자의 여정 대신이기도 한 셈이리라.
“묘하게 슬프면서” 박수를 쳐 주고 싶은
김 씨가 만난 이십육 세의 마지막 청년은 명동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김 씨와 그 옥탑방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제야 김 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1-173번지를 기억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고”. 왜냐하면 그들이 너무나 “빡빡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뭔가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게 가혹한 일 같아서.
김 씨는 이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귀환의 여정에서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이 단편 내내 김 씨는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덧붙이고, 설명하고 되묻고 털어놓으며 자신의 장부와 지도를 들고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그 대상은 부동산을 찾아온 손님으로, 공무원으로 보이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짐작이 든다. 혹시 소설 내내 김 씨가 말을 건넨 사람은 독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방에 누워서 김 씨는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며 진술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먼지 쌓인 사무실에서 나름대로 로망 있는 합동결혼식을 준비하는 갑, 이 나라의 중년들을 멀티플레이어로 만들겠다고 목 놓아 부르짖는 을, 자신의 이름이 도용되는 것을 막고자 가로 뛰고 세로 뛰는 병, 요식업 종사자들의 엄지손가락 안전을 사수하기 위해 부루스타의 레바 리콜을 요구하는 정, 이 사회를 쿨 드링커들로 채워 건전한 음주 문화를 사수하겠다고 노래하는 무, 그리고··· 이제 와 새삼 그들을 찾아다니며 불광동 1-173번지에 살았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고 애원하듯 물어보는 김 씨 자신. ““지금으로서는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조차 사실 잘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분명 다섯 명을 만났는데, 꼭 한 사람을 만나고 온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오. 어쩐지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묘하게 슬프기도 하고, 묘하게 슬프면서 그게 또 웃기기도 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한때 북한산이 내려다보이고 벌레가 많았던 그 옥탑방을 거쳐 간 청년들은 다들 어디선가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 이사를 너무 자주 다니느라 1-173번지 방을 기억하진 못해도, “필사적으로”. 이 소설을 이제 와 다시 읽으니 이런 마음이 저절로 든다. 모두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는. 이러한 마음이 드는 건 시대 때문일까, 나라는 독자의 지나친 감정이입 때문이었을까.
「지도에 없는」처럼 “이야기는 아주 엉뚱한 곳에서, 어쩌면 조금은 사소하달 수도 있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가 ‘진정한 허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데서 시작한 게 아니었으며 사소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지점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필요하기도 할 터이다. 손수 만든 지도에서 1-173번지의 옥탑방이 어느 날 살아졌다, 라는 엉뚱한 지점에서 시작한 단편에서 작가가 보여 주고 싶었던 의미는 무엇일까. 거기 살았던 갑, 을, 병, 정, 무라는 다섯 청년의 삶은 십팔 년이 지난 지금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1-173번지의 옥탑방에는 “분명 사람이 살았었”고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김 씨뿐만이 아니게 되었다. 독자는 이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지켜본 기억의 목격자가 되었다. 거기엔 사람이 살았었고 거기엔 방이 있었고 그들이 꾸던 ‘나름대로 로망’, 꿈들이 거기에 있었다. 묘하게 슬프면서도 웃기기도 한 건 김 씨와 이십 대 청년들을 포함한 모든 인물이 아직도 그 꿈을 잃지 않고 분투하고 있으며 어딘가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자가 본 것은 주변에 있을 수 있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 등으로 명명한, 눈에 띄지 않는 타인들의 살아감의 증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2025년에 이 단편을 읽는 일은 그 시절 젊은 작가가 고심해 낸 응원의 방식에 동참해 ‘자신의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브이”를 만들어 보내는 일과 같을지도.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이 단편을 읽기로 한다. 이제 네 번째로.
|
[문장웹진 REWIND]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
추천 콘텐츠
간결하고도 복잡한 이주란 헤밍웨이의 소설 「깨끗하고 밝은 곳」에는 카페 손님들이 모두 떠난 시간까지 전등빛 아래 앉아 집에 가지 않는 노인 한 명이 등장한다. 박인성 평론가가 그 노인과 겹쳐보였다는 뜻은 아니다. 노인과 그는 좋은 손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많이 취하면 돈을 내지 않고 가는 버릇이 있는 노인과 달리 그는 우연히 카페에 들른 친구에게 종종 커피를 사는 버릇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몇몇 날 내가 보았던, 박인성 평론가와 그를 둘러싼 풍경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서울역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일주일에 절반은 부산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는 목요일 저녁, 7시 18분에 도착하는 열차에서 내리는 그의 표정을 관찰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한 사람이 END가 아니라 AND, 명심해라 이것들아, 하는 행동은 꼭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지나쳐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어쩌면 E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END라고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후 열차를 타기 직전까지 세 개의 수업과 세 개의 회의를 마쳤고 먼 거리를 이동했기에 짐도 좀 있고 다소 지친 표정일 거라 짐작한 것과 달리 그는 크지만 무겁지 않은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친 채 바쁘지 않은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회색 쓰리피스 수트와 똑딱이 체크 셔츠를 입은 그는 플랫폼을 지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에스컬레이터 안 타세요? 저는 그냥 계단으로 갑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 속에 뒤섞여 그는 빠르게 걸었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오늘은 성수로 갑니다. 그는 여러 개의 출구 중 맨 오른쪽 출구를 향해 걸었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는 것 없이 평범했으나 힐리스라도 신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내 기준 너무)빠른 걸음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이미 성수에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왜 이렇게 빠르세요? 진짜 눈을 감고 간다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익숙한 길이죠. 서울에 오면 저는 보통 성수 아니면 상수에 있는데요, 상수에 갈 때는 삼각지역에서 갈아타거든요. 삼각지역에서 상수역으로 갈 때는 맨 끝에서 갈아타면 빨라요. 성수로 가면서 상수로 가는 길을 설명하던 그는 상수로 갈 때 절반쯤은 가야 할 맨 끝의 반대편 맨 끝으로 가는 결정을 하는 바람에 더 먼 길을 걷게 되곤 한다고 말했다. 걷기의 날들이죠. 차라리 중간에서 타는 게 나으려나. 늘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려요. 틀리면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앞서 걷던 그에게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그래. 거기서는 삼십 분쯤 있을 것 같은데 너도 그때까지 있게 되면 봐. 간결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은 그는 내게 저리로 가서 2호선 타고 가시면 돼요, 간결하게 말하
- 관리자
- 2025-11-01
우리의 고백 - 진은영 『고백』 (문장웹진 2010년 11월호 수록) 읽기 이영주(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시 쓰기는 재미있다. 인간의 언어란 흥미로운 것이니까. 인간의 언어란 오염과 환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것을 이상한 쾌락으로 즐기게 해 주는 수수께끼의 세계. 시는 이런 언어의 가장 예민한 촉수이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가고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내부에 가장 깊이 침투해 있다. 시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이런 멀고, 가깝고, 깊은 주름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존재들. 시인들은 주름을 펼쳐 보이고 때로 섬세하게 접기 위해 늘 몸이 열려 있다. 열린 몸이란, 복잡하고 구불구불하고 황폐하고 어지럽고 축축하고 미끌거리고 우수수 돋는‧‧‧ 아무런 규정도 할 수 없는 무정형의 상태. 시인들이 몸을 열고 받아 적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백 진은영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 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 버린 사람들에 대해 나의 가득한 입맞춤을 대신하는 가을 벤치의 연인들 나 대신 식물원 화단의 빨간 석류를 따고 있는 아이의 불안한 기쁨과, 나 대신 구불구불한 동물내장을 가르는 칼처럼 강, 거리, 언덕을 불어 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달콤한 술 향기의 전언을 빈틈없이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의 단호함과 확신에 대해 수음처럼 또다시 은밀해지려는 나의 슬픔에 대해 할 말이‧‧‧ 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 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 나 대신 울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잠깐 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인인데 시인이 아닌 채로 살아야 하는 순간들에 대하여. 내가 생활의 우악스러움을 드러내면 누군가 내게 시인 아니에요? 라고 미묘한 공격성을 띠고 물어볼 때, 그러니까 시인은 삶에 대해 초연해야 하고, 가난도 자랑스러워해야 하며, 슬픔도 웃어넘기는, 여유로운 포즈로 뭐든지 받아안고 가는 존재여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할 때, 그러니까 시인이 (과장해서) 영양실조에 걸려도 역시 시인이란 그런 존재지‧‧‧ 하고 동정의 포즈를 보낼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할 때(전근대적인 낭만성이 아직도 있긴 하다‧‧‧), 나는 시인 아니에요? 라는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함정에 빠진다. 시인은 원고료나 특강비 등 돈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일종의 허상에 가까운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러 시선에 대하여‧‧‧ 나는 종종 공중누각에 던져져 온몸이 찢겨 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시를 쓰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은 ‘나’의 생활과 삶은 어떻게 하지? 그 생활과 삶의 세부들이 모여 하나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결국 시를 쓰지 않는 순간에도 시를
- 관리자
- 2025-11-01
파고 한영원 그날, 은선 씨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은선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빨간 잠바를 입고 갔는데 은선 씨 역시 빨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기에 차에 타면서 멋쩍게 조금 웃었다. 은선 씨는 내게 음악 하는 A와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은선 씨가 자신이 그와 친구라고 대답해서 나는 어쩐지 그 둘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조근조근한 어조와 노래를 부를 때 예쁠 것이 분명한 음색이 비슷하다고.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해 버린다. 그리고 잘 부를 것 같은 목소리를 짐작하고 그러한 짐작은 대부분 잘 맞는다. 차는 영종도로 들어가고 있었고 공항 가는 목적이 아닌 영종도 놀러 가는 일은 꽤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은선 씨가 내게 말했다. 바다를 좋아해서 자주 가요. 아, 저도요.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태어나서인지 내가 여태껏 본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차는 영종도 안에 작은 섬인 무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해루질을 하러 가나요? 내가 묻자 은선 씨는 첫 만남에 해루질을 좀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도 꽤 시인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인을 관찰하러 간다니 나의 소설가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멋있을 것 같아. 비 오는 해변을 마구 걸을 것만 같고···, 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당신에게 시인이란 그런 이미지냐고 물으려다 그냥 관두었다. 물론 나는 시인이 되기에 조금 모자란 것만 같지만 은선 씨는 정말로 시인이다. 시집을 몇 권이나 냈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시인. 은선 씨는 내게 오늘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일단 엄청나게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갯벌을 좀 걸을 것이고요. 갯벌은 모래펄이라 부드럽고 더럽지도 않아요. 은선 씨의 계획은 멋져 보였다. 나는 어떤 것이든 좋다고 말했고 근사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더 섬의 안쪽으로 몇십 분 들어간 뒤 우리는 곧이어 무의도에 있는 한 식당의 주차장에 내렸다. 나는 내리며 언뜻 식당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영업을 하나 보다 했으나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였다. 들어간 사람들과 우리는 불이 꺼진 식당 안에서 화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는 문구를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식당에서 나오며 은선 씨는 그럴 줄 알고 다른 식당 두어 군데를 더 찾아 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탔다. 은선 씨는 내게 식당에 가면 메뉴를 많이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욕심은 많아요. 나도 조금 그런 편이라 답하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러나 은선 씨가 두 번째로 찾은 식당 역시 닫혀 있었다. 은선 씨는 당황해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아까 지나가다가 보인 그 쌈밥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은선 씨가 고개를 끄덕
- 관리자
- 2025-11-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