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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새치

  • 작성일 2025-08-01

[에세이]


   담배와 새치


서솔


   S#1. 아파트 앞의 오피스텔 화단

   멍하게 앉아 있던 여자. 무언가 떠오른 듯 가방을 뒤진다. 가방 앞주머니에서 빨간색 말보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여자는 머뭇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손에 쥐어 보지만 불을 붙일 용기는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여자는 담배를 구겨 가방에 넣는다. 부러진 담배에서 재가 쏟아진다.


   스무 살, 나는 이모 집에 얹혀살았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발바닥을 뜨겁게 데우는 화장실 대리석의 온기였다. 화장실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올 수 있구나. 그것은 ‘폐업’ 종이가 붙어 있는 단골 카페를 마주한 것처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사건이었다. 방배동의 방 네 개짜리 브랜드 아파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속까지 가닿는 훈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내 마음에는 야멸찬 비바람만이 몰아쳤다. 흔쾌히 방을 내준 이모가 지금 듣는다면 뒤통수가 얼얼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무렵 나는 어떻게든 집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배회했다. 야심한 시각에 일어나는 술자리에 굳이 참석한다든지, 카페베네에 앉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시시한 문자를 보내곤 했다. 이모와 이모부가 잠든 사이 들어가는 것이 하루를 끝마치는 일과였다. ‘이모에게 빚을 지고 있다’라는 빚쟁이의 감각은 해가 지면 더욱 선명해졌다. 선명해질수록 무거워지는 감각은 나를 언제나 주눅 들게 했다. 


   등록금이 너무 비싼 예술대학에 입학한 것은, 아무래도 그 시절 나에게 큰 짐이었다. 아직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졸업하지 않은 시점. 먼저 미대에 진학한 언니를 따라 덩달아 영화과에 진학한 나는 나의 선택이 우리 집의 기둥을 뽑아 먹을까 봐 입학 전부터 전전긍긍했다. 그러면 조금 눈을 낮춰 장학금을 받은 학교에 진학했어도 됐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선뜻 욕심과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타협보다는 욕망을 선택한 나는, 그때부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능이 끝난 친구들이 하릴없이 시간을 죽일 때, 엄마 친구 딸들의 집을 전전하며 영어 과외를 했다. 그렇게 ’입학하면서 용돈을 받지 않은 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이모 집으로 들어갔다. 내방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언덕에 있던 아파트로 올라가던 길.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을 억지로 찾던 의미 없는 행동은 발걸음을 늦추기에 제격이었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칠흑같았다.


   이렇게 진행되는 에세이는 무릇, 그 시절 내가 겪었던 슬픈 사연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에세이 주제로 전달받은 ‘스무 살’ 키워드에서 떠올랐던 건, ‘스무 살의 내가 지녔던 비대한 자아’뿐이었다. 당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자아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지녔던 것은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너무 고생할 것‘이라는 명제였다. 거기서 오는 자기연민과 우울에는 세상의 중심이 나의 우울함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고약한 환상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식들의 학비를 위해 엄마 아빠는 배로 열심히 노동하셨으며 때로는 지난한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알고 보니 우리 집이 나의 학비 따위 상관없는 부잣집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가졌던 돈에 대한 연민이 문제였다는 이야기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예술대학에 진학시켜 주신 부모님께 지금도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불행하다는 환상은 점점 더 커졌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으면서 담배를 손에 쥐어 버렸다. 그해 여름, 촬영장에서 소품으로 썼던 말보로 레드가 우연히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던 날이었다. 그날은 이모 집에서 살던 6개월 동안 단 한 번, 대낮에 아파트 앞을 서성였던 때로 기억한다. 여지없이 선배의 영화 촬영장을 갔다 온 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일정이 끝났다. 그 시절 내가 아는 대학생들은 해가 어느 위치에 떠 있든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종족들이건만, 왜인지 그날은 모두 집에 돌아갔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집에 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내방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대낮의 오후. 해가 아직 머리 위에 떠 있다는 뜻은 이모 집에 몰래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카페에 갈 돈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멍하게, 어느 오피스텔 앞 차디찬 대리석 화단에 걸터앉아 있던 나. 내 손에 쥐어진 말보로 레드. 그 담배는 빨간색 케이스를 빛내며 ‘너도 영화 속 주인공이 돼 봐’라며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촬영장에서 여자 주인공이 쥐고 있던 담배가 내 손에 있다. 그것을 들고 있는 나를 제3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오피스텔 앞 화단 풀샷. 스마트폰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담배를 들고 있는 손까지 나오는 바스트 샷. 그리고 고민하는 나의 눈, 클로즈업.

   내가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카메라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그 순간을 나는 매우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 몇 번씩 카메라 앵글을 재조립하던 나는 다행히 연기를 멈추고 일어났다. 내가 왜 지금 카메라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지? 대리석의 한기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엉덩이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담배를 부러뜨리자 아릿한 담뱃재 냄새가 났다.


   결국 내가 그 시절 획득하고 싶었던 자아는,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으며 장학금을 타는 씩씩한, 그러나 어딘가 좀 외로운 대학생‘이었다. ‘엄마 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돈이 궁할 때 엄카를 긁으면서도, 정기적인 용돈을 받지 않는다는 껍데기가 나를 완벽히 감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모순된 자아를 가진 둘째 딸을 엄마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비록 사정이 있어 이모 집에 얹혀살지만, 학교생활은 완벽하게 하는 나. 그걸 아무도 몰라봐 주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쿨한 나. 제법 멋져. 그러나 가끔씩 외롭고, 가끔씩 슬퍼.

   ‘불행한 여자‘가 멋있어 보일 거라는 생각에 가짜로 만든 내 모습이 스무 살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고, 지금은 명료하게 보이는 스무 살의 비대한 자아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한심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언제나 그 시간의 막대기를 빠져나와야만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S#2. 카페에서 소개팅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 어색한 전운이 감돈다. 남자가 입을 열수록 여자는 입을 닫는다.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가득한 공간. 여자는 소개팅을 주선해 준 친구를 어떻게 멱살 잡을까, 그 궁리만 하고 있다.


   학교에 가면 팽배한 자의식을 철갑처럼 두른 대학생이 널려 있었다. 영화에 심취한, 사진에 심취한, 음악에 심취한, 심지어 혐오에 심취한 20대들. 그들의 군상은 다양했고, 터지기 직전의 비눗방울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다만 허공에 떠다니는 비눗방울은 너무나 잘 보여 소외감 혹은 위화감을 주었다. 그들의 자의식에는 빈틈이 없었다. 개별로 존재하는 비눗방울은 같은 농도의 것만이 흡수되어 위세를 키웠고, 그 밖의 것은 끼어들 수 없었다. 나는 어디서든 후자라고 느꼈다. 그 시절 나의 자의식은 예술과 철학이 아니라 위태로운 통장 잔액에 있었으므로. 그러나 그 누구도 나와 비슷한 정서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예상하건대 그 무렵 스무 살의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뒤틀린 자의식은 삶의 주체를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 버렸다. ‘어딘가에 나의 힘듦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위험한 명제. 스스로 고난을 이겨 내기보다, 고난을 위로해 줄 유니콘을 찾기 시작했다. 나를 진정으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나를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속 우울한 주인공, 나오코에 대입했던 것 같다. (입학 직전 읽었던 나오코의 우울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의식과잉이 이렇게 무섭다). 그렇게 첫 소개팅을 나갔고, 대차게 실패했다. 영화과 앞에서 영화관에 왜 가는지 모르겠다는 공대생이 퀴퀴한 비눗방울을 내뿜었다.


   학교에 가면 언제나 사람이 넘쳤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깔깔거리는 친구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지하철만 타면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신입생은 각자의 이유로 너무나 바빴다. 나의 핵심을 건드릴 수 있는 미지의 사람을 원했다. 새벽녘 이모 집에 누워있던 나의 1번 자의식은 ‘세상의 중심은 나로 돌아간다’라고 인식했지만, 대낮의 학교에 부유하던 2번 자의식은 ‘그런 나를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라는 억울함으로 채워졌다. 곳곳에 널려 있는 캠퍼스 커플을 바라보며, 모순된 자아는 점점 더 세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언니와 방을 구해(정확히는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집) 이모 집에 나온 뒤에는 희미해진 1번 자아 대신 2번 자아만 남았다. ‘왜 나를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거지?’


   솔직하게 과거를 밝히자면,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는 나를 어딘가 하자 있는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를 좋아했는지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생에 한 번뿐일 스무 살‘에 연애 한 번 못 해 보고 저문다는 것이 인생의 죄악처럼 느껴졌다. 혼자 있는 여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던 시대. 그 흐름을 거부하기에 스무 살의 자아는 너무나 연약했다. 여기서 기인하는 욕구 불만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가, 삶의 무게추를 외부의 시선에서 내부로 옮겨 오자 사그라들었다. 불필요한 욕망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주었던 상처에는 많은 위로가 필요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S#3. 학부생 열댓 명이 원형으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가장 나이 든 남자가 진실게임을 하자고 말한다. 어두침침한 공간. 부식된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깜빡거린다. 앉아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기침하듯 비밀을 누설한다. ‘얘가 쟤 좋아하잖아.’ 그 순간 ‘얘‘와 ‘쟤’ 모두 당황한다. 기침하던 남자는 쟤를 다그친다. ‘정말 몰랐어? 당연히 아는 줄 알고 말한 건데.’ 기침남이 부연 설명을 할수록 얘와 쟤의 표정이 굳어 간다.


   돈에 대한 자격지심은 자기연민에 그쳤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에 대한 위기의식은 공포로 이어졌다.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솔직하게 말할 용기를 끌어 올려야만 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앞에 생략된 말은, ‘그럴듯한 남자로부터’이다.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 스물두 살, 각자의 짝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 친구들 사이에서 중요해지는 대화 주제가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위기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듣게 된 ‘너는 왜 남친이 없냐?’라는 세간의 물음은, ’이상하다. 넌 왜 혼자지?’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혼자 있는 건 이상한 거구나.’


   몇 살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대 초반 S#3의 ‘쟤’가 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또 다른 공포에 마주해야 했다. 원한 적 없는 상대로부터 욕망의 대상이 되는 일은 겪어 보니 처참한 기분이었다. 그런 불쾌한 시선을 메일 게이즈(Male Gaze)라고 한다는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나는 어땠는가. 학교에 돌아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 사건을 이겨 낼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직접 고백을 했으면 거절이라도 했을 텐데, 빙글빙글 허공을 맴도는 소문은 잊을 만하면 귓가를 때렸다. ‘받아 줄 줄 알았는데 안 받아 주네?’ 


   허망한 해프닝이었지만 치기 어린 시절의 나에게 분명한 교훈이 되는 사건이었다. 불특정 남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황당함, 나아가 공포라는 것.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의 기억이 많이 희석됐지만, 남아있는 잔여물은 여전히 미끈거리는 비눗방울처럼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후 내가 원하던 욕구가 원만하게 해소되었느냐 묻는다면, 역시 아니라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화장실에 들어오는 보일러가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니듯, 나의 고난을 위로해 줄 타인 역시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 그걸 깨닫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지만 말이다. 30대가 다 되어서야 깨달았던 건, 나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시선은 카메라일 수도, 내 속을 볼 수 없는 다른 사람일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비대한 자의식도, 우울도, 절망도, 나아가 삶의 목표도 내가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유튜버로 살아가는 지금, 나는 구독자의 간택을 기다리는 삶을 산다. 그러나 그들의 손가락이 나를 선택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하자 있는 인간이라 여기진 않는다. 구독자가 100명일 때도, 1,000명일 때도, 10,000명일 때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의 기쁨이나 불행을 재단하지는 않았다. 약 70만 명의 구독자 앞에 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모두 직접 겪어 온 방황 덕분이었다. ‘나‘에서 출발하는 감정은 오직 나만이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모두가 그렇듯 한 번밖에 살아 보지 못하는 인생이기에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20살에 흔들렸고, 30살에는 더 흔들렸으니 40살도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해 볼 수 있다. 30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양과 질감이 다를 뿐 인생의 변곡점마다 요동치는 감정을 붙잡는 건 쉽지 않다. 올해를 기점으로 급격히 늘어난 새치를 보며,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 흰머리가 빨리 났던 엄마를 보건대 나의 머리카락 노화는 남들보다 훨씬 빨리 올지도 모른다. 흰머리, 새치, 주름. 인간이 살아 있다면 당연히 거쳐야 할 노화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걸 알면서도, 거울 앞에서 방황하는 내가 있다. 그러나 허리에 꼿꼿이 힘을 주고 새치 염색을 할 생각이 있냐는 미용사의 권유에 항변한다.

   “새치 신경 안 써 보려고요. 일단 놔둘게요.”

   그렇게 새치를 방치하던 손님들도 결국엔 주변에서 하는 잔소리에 못 이겨 염색하더라는 답변이 돌아오지만, 그렇게 대화를 일단락한다.


   스스로에게 주입하던 불행 서사에서 빠져나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시선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왜곡하려는 마음에 조금씩 대항한다. 


   타인의 왜곡된 시선을 거부하는 것이 중요하듯, 그럴듯한 타인이 나를 옳게 바라봐 주고 감싸안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역시 언제나 달콤하게 다가온다. 이 때문에 삶의 무게추를 엉덩이뼈 밑으로 내리는 연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야만 또다시 시간이 지나고 현재를 되돌아볼 때, 내가 가졌던 알량한 껍데기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가 가진 또 다른 비대한 자아가 무엇인지는 현재로선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당분간은 새치 염색을 하지 않을 예정이니 ‘새치 긍정 자아’는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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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봄, Primave

[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미완의 봄, Primave 김봄 이십 대 중반,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다. 회사만 아니면 된다, 뭔가 작게라도 만들어 팔 수 있는 가게를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방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남시장 인근을 걷다 가게 자리를 발견했고 나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가게 앞으로 출근해 시간대별·연령별 유동 인구를 조사했다. 신사대로와 압구정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꽤 널찍한 골목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았다. 커피 선호도가 높은 소호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연령대도 청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권리금도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되는 자리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굳은 의지만 가지고 결심한 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가게를 계약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물음표로 남았다. 내 머릿속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라는 막연한 테마만 존재했을 뿐 어떤 콘셉트로 가게 이미지를 만들 것인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게 이름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데, 무어라 부르지?” 나는 난데없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쿨하고 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그 골목 곳곳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커피 가게의 정체성은 커피 원두가 좌우하는 법이니 나는 이태리 원두 ‘라바짜’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서부터 가게 콘셉트를 잡아가기로 했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는 9,800원짜리 코스트코 스타벅스 원두를 사서 쓰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영세업자들의 원두를 사다 썼다. 대상에서 만든 ‘로즈버드’라는 전문 브랜드는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가볍게 느껴졌다. 진하면서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 승부하고 싶었기에 나는 대담하게도 44,000원짜리 라바짜 원두를 선택했다. 1킬로그램 원두 한 봉지에 100잔 정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컵과 뚜껑, 컵 홀더, 빨대와 같은 부자재와 우유 등의 식재료 가격을 따져 보면 다른 가게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문이 좀 적게 남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공들여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가게는 작아도 이탈리아 원두를 쓰느니만큼 정통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가게 이름을 이탈리아어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어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뜻하는 ‘프리마베라(Primavera)’로 결정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주역 여성 가

  • 김봄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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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와리가리할리갈리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여성으로서 깊이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겪고 고민하는 주제이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해지기 어려워 쉽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조금 더 일찍 깨닫고 덜 방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5-08-01 21:08:50
    와리가리할리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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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즤

    초창기부터 쭉 보고있는 구독자입니다. 매번 놀라우리만큼 솔직한 이야기들을 해주신 덕에 저 스스로도 저에게서 숨기고 있던 많은 것들을 발견해내곤 합니다. 제 삶이, 그리고 제 친구들의 삶이 방향성을 갖는 데에 매번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의 당신들의 삶 또한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봅니다. 응원합니다.

    • 2025-08-02 00:56:01
    이지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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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감

    고견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담담하면서 진솔한 글이 가벼움에 길들여져 있던 요즘의 저에게 거울을 마주한 제 자신이 코앞에 놓여진 것과 같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 2025-08-02 22:26:52
    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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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왕왕
    감동했어요

    누구나 그 시절, 그 환경이었을 때 느끼고 생각했을 법한 상황이라 너무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시간이 흘러야만 깨닫는 것이 있더라구요. 최대한 시야를 넓히고 많이 경험을 해서 나만의 기준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어요. 솔님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온 날을 뒤돌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 글 구조가 너무 잘 짜여졌다고 느껴져서 술술 읽었어요. 씬넘버와 카메라 렌즈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묘사한 부분이 너무 기억에 남네요. 앞으로도 솔님의 글 기대할게요!

    • 2025-08-03 01:37:34
    전왕왕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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