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한 걸음
- 작성일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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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날마다 한 걸음
고수리
상경했던 날을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합실을 나서자마자 길을 잃었다. 인파 속에 덩그러니 나 혼자. 서울 한복판에 뚝 떨궈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서울의 첫인상은 삭막한 회빛, 그리고 몹시 추웠다. 눈이 푹푹 내리던 강원도는 사방이 희고도 따뜻했는데. 나는 목도리를 둘둘 고쳐 매고 한 걸음 내디뎠다.
서울은 복잡하구나. 시끄럽구나. 무심하구나. 아무도 웃지 않는구나. 애꿎은 지하상가를 헤매다 얽히고설킨 출구를 빙빙 돌다가 겨우 개찰구를 찾아 전철표를 샀다. 전철을 타 보는 것도 혼자선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전철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노선도를 올려다보았다. 풀빛으로 주욱 이어진 선을 따라 도착할 역사는 ‘온수(溫水)’. 따뜻한 물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위안처럼 스몄다.
온수역에 내려 자취방을 찾아갔다. 대로변 가로 이어진 인도를 한참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새겨진 해태상을 맞닥뜨렸을 때, 기이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돌아보니 ‘안녕히 가십시오 서울특별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바로 맞은편에는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부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경계에 서 있었다. 아니, 이 기이한 기분의 실체는 기시감일지도. 불안하고 난처한 마음 한구석에 익숙하고도 지긋한 체념이 몰려왔다.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서울과 부천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한 걸음 넘어섰다. 거기에 내가 살 방이 있었다.
내 사정 역시 고학생들의 유구한 상경의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으니, 학교 근처에 가장 싼 방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상경해 처음으로 얻은 방은 월세 18만 원짜리 남녀공용 고시원 방이었다. 한낮에도 침침한 복도를 걸어가 방문을 더듬어 열 때마다, 엄마가 이 방을 안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광등부터 켰다. 창문 없는 길쭉한 방. 방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려 누우면 어둡고 눅눅한 관 속에 눕는 기분이었다. 얇은 합판을 덧대어 가른 방은 방음이 되지 않았고, 간간이 들리는 기침 소리와 통화 소리, 텔레비전 소리에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 살아 있구나 실감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대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 있었다. 밤마다 돌아가는 고시원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있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3년을 유학하고, 졸업 후에 잠시 강원도 삼척시에서 지냈다. 삼척은 엄마의 고향이자 내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도시지만, 거기도 선뜻 내 고향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려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떠돌며 살았다. 아무도 모르게 함구해야 할 사정이란 게 삶을 짓누를수록 나는 가벼워져야 했다. 짐 하나만 꾸리면 잠시나마 살아갈 사람처럼, 짐 하나만 꾸리면 언제라도 사라질 사람처럼. 갑작스럽고 비밀스럽게 떠나며 살아야 했던 내게는, 소속감에도 존재감에도 언제나 애매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세계에 선을 그으면 면과 면이 생긴다. 그때의 면과 면은 같지 않다. 선을 그음으로써 호오와 시비와 명암과 희비의 성질이 생긴다. 세계에 떨궈진 점 하나에 불과한 나는, 때마다 하나의 면을 택하면서 살아간다. 한 면은 보여 주고 한 면은 감추면서 무던하게 적응해 간다. 나는 번번이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좋은 면만 선택하고 보여 주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낯선 생활에도 금세 적응했다.
날마다 대학교와 고시원을 오갔다. 아침마다 서울과 부천의 경계선을 거슬러 온수동으로 걸어갔다. 대학에선 중어중국학과를 전공했다. 원하던 전공은 아니었다. 수능을 망쳤는데 재수할 형편은 안 되고, 특출난 재능이나 특별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2외국어로 일어를 공부해 수능을 치렀으면서도, 단지 중국이 뜬다더라 주위의 말들에 떠밀려 고른 최선의 선택지였다. 사실 그땐 무언갈 자의로 결정할 만한 의욕이랄 게 없었다. 수능이 망해서 인생이 다 망해 버린 것 같았으니까. 방에 틀어박혀 끙끙 앓고 있을 때 느지막이 합격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 입학을 포기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간 덕분에, 나는 마지막 합격자로 학과 문을 닫고 들어왔다.
성조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시작한 중국어 공부는 어려웠다. 하지만 한자의 음과 뜻의 아름다움을 알아 가는 게 좋았다. 중국의 설화와 고전을 읽는 것도, 중국의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는 것도 재밌었다. 욕심껏 새로운 활동도 도전해 봤다. 교내 교육방송국 수습 국원으로 들어가 방송 실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선배들을 따라 대학 언론 취재에 나서고, 카메라와 편집기를 다루며 영상을 만들고, 원고를 쓰고 콘솔을 다루며 라디오 방송을 준비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하는 짝사랑 상대가 생긴 것도, 도서관이 끝날 때까지 마음껏 책을 읽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어떤 수업이었더라. “혼자서만 똘똘 자기에게로 골몰하면 똬리를 틀고서 자기 안에 빠지고 말아. 힘들어도 힘을 내서 밖으로 향해야 해.”라던 교수님 말씀이 기억난다. 이상하게 그 말이 울컥해서 코가 매웠던 것도. 어쩌다 보니 떠밀려 온 줄만 알았는데 여기서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다. 따뜻한 물 같은 마음이 차올라 찰랑거렸다. 해 보고 싶은 것, 잘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건 가난이었다.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며 술 마시고 연애하고 강의를 째는 또래들이 나에겐 신기했다. 대체 돈은 어디서 나는 것일까. 제일 싼 고시원 방에 누워서 가만히 숨만 쉬어도 방세가 나갔다. 아무리 저렴한 학식이라도 아르바이트 시급보다도 비쌌다. 술 마시러 가자,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선 자판기 커피로 허기를 채울 때. 나는 넘을 수 없는 선을 자각했다. 좋은 면만 보여 주고 싫은 면은 감추고 싶었는데, 다들 똑같아 보였던 교복을 벗자 타고난 것들이 도드라지고 구분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기에는 희망이라는 게 존재했다.
학교와 고시원을 넘나들던 경계선으로 내가 살던 세계를 가른다면. 호오와 시비와 명암과 희비가 극명한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로 나뉘었다. 꿈만 꾸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꿈을 넘어 현실로,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부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을 향해 걸어가는 날들이 늘어났다.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러 갔다. “친권자의 동의가 없어서 불가능해요.” 안타까워하는 직원에게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은행을 빠져나왔다. 이혼과 동시에 고의적으로 모든 재산과 권리를 가져가 버린 아버지 때문에, 법적으론 미성년자였던 스무 살의 나는 학자금을 구할 수 없었다. 은행은 울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재빨리 건물 틈새로 숨어들었다. 차가운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골목에서 보이는 길가는 너무도 환했다. 사람들은 태연하게 지나갔다. 고개를 떨궜다. 흐리게 어룽지는 바닥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급 1,800원을 준다던 유흥가에 있는 커다란 빵집이었다. 면접은 CCTV로 몇 시간 동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유난히 내게 쌀쌀맞았던 기존 알바생이 일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면서 열심히 따라 해 봤다. 일을 마치고 주인을 마주했을 때 “오늘치 일당은요?”라고 물었다가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시급 1,600원을 주는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편의점 주인은 CCTV로 지켜보다가 득달같이 전화를 걸고, 폐기하는 삼각김밥 개수 같은 것들에 예민하게 굴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도 빵집에 비하면 혼자 하는 일이라 마음은 편했다. 편의점 단골 중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외제 차를 타고 와 쌍화탕을 사 가던 노인이 있었다.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웃으며 존대해 주던 신사 같은 면모에 나도 싹싹하게 인사하곤 했다. 하루는 노인이 쌍화탕을 계산하며 말했다. “언제 만나 볼래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바보 같은 얼굴로 웃어 버렸다. 두고두고 곱씹으며 부끄러웠다. 나는 왜 웃었을까.
방세 18만 원을 다달이 내려면 시급 1,800원인 아르바이트 100시간을 일해야 했다. 심지어 나는 그보다 낮은 시급을 받으며 일했다. 나는 성실하고 무지했다. 당시에 법률로 규정된 최저임금이 2,840원이라는 사실도, 내가 버는 돈에는 노동뿐 아니라 수모와 수치를 견디는 대가도 포함되어 있단 사실도 뒤늦게야 알았다. 일이 고되다는 주점도 아니었고 겨우 빵집과 편의점일 뿐인데도 그조차도 나는 견뎌 내기가 힘들었다.
유난히 나를 챙겨 주던 고학번 선배가 있었다. 1학년은 밥을 사 먹는 게 아니라며 자주 밥을 사 주던 친절한 선배였다. 하지만 선배의 친절에 미묘한 감정이 배어 있단 걸 감지했을 때, 나는 거리를 두었고 선배와 데면데면해졌다. 여느 때처럼 같이 밥 먹자며 선배가 연락해 왔다. 수중엔 돈이 없었고 또 얻어먹기는 여간 불편했다. 한사코 괜찮다는데도 선배는 나를 데리고 가서 돈가스를 시켰다. 식사를 마친 후 선배가 말했다. “네가 사.” 돈가스 정식 2인분, 총 7,000원이었다. 그 돈이 모자랐다. 주저하는 나에게 선배가 만 원을 내밀더니 픽 웃었다. “너 그러면 안 돼. 돈 빌려줄 테니까 꼭 갚아.” 만 원을 받아 들던 손이 벌벌 떨렸다.
관 속 같은 방에 누워서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싶었다. 그러나 잠들 수 없었다. 새벽까지 일하던 엄마에게서 종종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런 날 엄마는 취해 있었다. 엄마는 전화기를 들고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전을 부치며 내 학자금을 벌던 엄마도 견뎌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돈과 관계의 대가에 포함된 수모와 수치를. 그래도 살아 보려고 삼켜 보던 자존심이 아팠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달래 주었다. 엄마,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정작 하고픈 말은 꿀꺽 삼켰다. 엄마, 사람은 왜 사람을 막 대하는 걸까. 삶이라는 게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이 되면 나는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어폰을 끼고 아이리버 MP3에 담아 둔 노래를 재생했다. 왕페이의 〈몽중인(夢中人)〉이 흘러나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두고 무심하게 춤을 추던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왕페이처럼, 나는 볼륨을 한껏 높였다. 싸구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밑창이 해진 컨버스를 신고도 무심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윽고 경계선을 앞에 두고 멈춰 섰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 그어진 선을 가지런히 맞대 접으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질 두 개의 표지판 앞에 섰을 때. 한 걸음. 한 걸음이 나의 최선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를 거슬러, 날마다 한 걸음씩 걸어갔다. 현실을 넘어 꿈으로. 공부하고 사랑하고 희망할 수 있는 나의 세계, 따뜻한 물이 흐르는 반쪽짜리 세계로 걸어갔다. 나는 번번이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좋은 면만 보여 주는 데 능숙하다고 믿었다. 하나 그럴 수 있을 리가. 이 이야기는 능숙한 척 괜찮은 척 씩씩한 척했어도 감추기엔 너무나 미숙했던 나의 다른 면에 관한 고백이다.
일찍이 빈 강의실에 도착해 창가 자리에 엎드려 햇볕을 쬐던 내가, 실은 지독하게 싫고 부끄럽고 어둡고 슬퍼서 구겨 두었던 스무 살의 그림자. 누가 날 부를까 봐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종종걸음을 걷던 내가, 실은 감당할 수 없이 외로워서 한껏 움켜쥐었던 스무 살의 손바닥.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기에 도서관에 여행책을 모조리 읽어 버렸던 내가, 실은 누구에게라도 발견되고 싶어서 숨겨 두었던 스무 살의 페이지.
그리하여 어느 날 루쉰의 문장을 읽다가 느닷없이 울어 버린 건, 그때 내가 스무 살이었기 때문이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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