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무한히 증가하는 숫자의 방

  • 작성일 2025-10-01

[문장웹진 REWIND]


   무한히 증가하는 숫자의 방

   -서유미 「검은 문」 (문장웹진 2012년 3월호 수록) 읽기


편혜영(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검은 문」을 처음 읽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이자 ‘벽’에 관한 정보이다. ‘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를 규칙으로 가진 이곳은 소등 후에는 방 사람들이 돌아가며 출구 앞에서 불침번을 서는 규칙-그러고 보면 규칙이 많은 곳이다-을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갇힌 사람들은 출구로 끌려 들어가면 죽는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어서, 출구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소설을 읽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소설을 다시 읽을 때도 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보다는 ‘숫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 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세 사람, 211번, 123번, 99번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벽돌을 돌리며 의미 없이 ‘숫자’를 올리는 작업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낸다. 세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진한 향을 풍기는 박하 맛 사탕을 습관처럼 먹으며 손잡이를 돌리고 숫자를 증가시키는 무의미한 노동에 열중하며 하루를 보낸다.


   도대체 숫자만 끝없이 증가하는 벽돌의 손잡이 돌리는 노동은 왜 계속하는 걸까. 이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 그들에게 즉각적인 대가를 건네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노동’은 좁고 무료한 공간에서 그들의 존재 의미를 형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숫자를 얻고 싶다는 갈망이다. 세 사람은 하루 종일 손잡이를 돌리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마음의 평화를 회복한다. 원하는 숫자에 닿지 못하면 부족한 수만큼 불행해진다. 하지만 열심히 돌려도 원하는 숫자는 항상 앞서 있기 때문에,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 대도 원하는 숫자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간수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놓은 숫자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들은 끊임없이 손잡이를 돌리며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는데, 이는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가 된다. 다른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에서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갇힌 자들에게 삶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공간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성취는 조금이라도 높은 숫자를 획득하는 것뿐이다.


   숫자가 올라가거나 목표한 숫자에 도달했다고 해서 갇힌 자들의 삶이 달라지거나 실질적인 변화가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맹목적으로 숫자를 올리는 일에 매달린다. 숫자는 그저 그들이 이곳에서 존재하게 만드는 규칙에 지나지 않음에도 그들은 이 규칙을 따라 무료하고 무의미한 체계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체계와 처지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폭력이 발생하는 부분도 이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 간수들은 숫자를 통해 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한다.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마치 어떤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재된 듯도 싶다. 숫자를 조금 더 올리기 위해 벽돌을 반납하지 않으려고 하자 철창 앞에 갇힌 나머지 사람들이 폭력을 써서 그것을 빼앗아 간수에게 자진 반납한다. 즉 숫자는 시스템이 그들을 통제하는 수단이자, 그들이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된다.


   독특하게도 소설은 이들이 어떤 공간에 갇혔다는 정보만 제공할 뿐, 그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제공하지 않는다. 철창이 있는 방의 크기가 얼마나 하는지, 그들이 불침번을 서는 자리는 어디인지, ‘출구’라고 일컬어지는 문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으며 크기는 어떠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생략되어 있다. 이 생략은 자못 의도적이다. 정보가 없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이 방의 구조를 자의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기존에 익숙하게 보아 온 영상이나 다른 텍스트에서 축적된 여러 형태의 독방이나 창살 달린 감금실의 이미지가 이 소설에 묘사되지 않은 ‘방’의 이미지로 차용되면서 더 큰 불안을 자극한다.


   이런 불안은 짐짓 이 소설이 가진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도대체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묻게 되는데, 묘사의 생략을 통해 이 질문이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출구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인물들은 과연 출구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머물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출구를 찾아 나서는 행위 역시 내재적인 자아와의 대결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지극히 우연적이고 충동적이어서 어쩌면 이들은 ‘나가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급적 이곳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사람들’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문’이나 ‘출구’의 비유가 다소 익숙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익숙함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인간 존재와 시스템에 대한 부조리한 반복성, 무의미함과 불합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왔기 때문이고, 그런 오랜 질문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이 별로 나아지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반복되고 되풀이되어야 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어쩌면 갇혀 있는 세 인물을 겨냥한 부조리는 질문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갇힌 인물들은 하나 같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어째서 숫자를 올리는 단조로운 노동을 반복하며 시간을 소모하는지 간수에게도, 서로에게도 묻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채로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기고 감내하고 감수한다.


   같은 공간에 머무는 세 사람은 서로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드러난 유일한 호의는 간혹 다른 사람에게 사탕을 건네는 것인데, 그것은 소통이나 연대를 위한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금지하고 사고를 정지시키기 위한 당의정일 뿐이다. ‘사탕’은 그들이 질문 대신 입에 머금는 것으로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해방처이지만, 짧은 단맛만 남기고 금세 녹아 없어지고 만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다’. 그 익숙한 진술을 작가는 출구가 곧 ‘입구’라는 관점으로 바꿔 버린다. ‘출구’가 다른 형태의 ‘입구’로 연결된다면 변화나 탈출은 요원할 것이다. 그저 무의미한 숫자 올리기에 열을 내고,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는 것을 벽에 빗금으로 표시하는 것뿐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곳에서, 출구와 입구가 동일한 곳에서, 별 의미도 없고 그저 반복될 뿐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게 곧 우리가 아니라고,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 서유미의「검은 문」:  검은 문 | 소설 | 문장웹진 : 문학광장 웹진


[문장웹진 REWIND]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추천 콘텐츠

간결하고도 복잡한

간결하고도 복잡한 이주란 헤밍웨이의 소설 「깨끗하고 밝은 곳」에는 카페 손님들이 모두 떠난 시간까지 전등빛 아래 앉아 집에 가지 않는 노인 한 명이 등장한다. 박인성 평론가가 그 노인과 겹쳐보였다는 뜻은 아니다. 노인과 그는 좋은 손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많이 취하면 돈을 내지 않고 가는 버릇이 있는 노인과 달리 그는 우연히 카페에 들른 친구에게 종종 커피를 사는 버릇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몇몇 날 내가 보았던, 박인성 평론가와 그를 둘러싼 풍경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서울역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일주일에 절반은 부산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는 목요일 저녁, 7시 18분에 도착하는 열차에서 내리는 그의 표정을 관찰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한 사람이 END가 아니라 AND, 명심해라 이것들아, 하는 행동은 꼭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지나쳐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어쩌면 E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END라고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후 열차를 타기 직전까지 세 개의 수업과 세 개의 회의를 마쳤고 먼 거리를 이동했기에 짐도 좀 있고 다소 지친 표정일 거라 짐작한 것과 달리 그는 크지만 무겁지 않은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친 채 바쁘지 않은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회색 쓰리피스 수트와 똑딱이 체크 셔츠를 입은 그는 플랫폼을 지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에스컬레이터 안 타세요? 저는 그냥 계단으로 갑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 속에 뒤섞여 그는 빠르게 걸었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오늘은 성수로 갑니다. 그는 여러 개의 출구 중 맨 오른쪽 출구를 향해 걸었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는 것 없이 평범했으나 힐리스라도 신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내 기준 너무)빠른 걸음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이미 성수에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왜 이렇게 빠르세요? 진짜 눈을 감고 간다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익숙한 길이죠. 서울에 오면 저는 보통 성수 아니면 상수에 있는데요, 상수에 갈 때는 삼각지역에서 갈아타거든요. 삼각지역에서 상수역으로 갈 때는 맨 끝에서 갈아타면 빨라요. 성수로 가면서 상수로 가는 길을 설명하던 그는 상수로 갈 때 절반쯤은 가야 할 맨 끝의 반대편 맨 끝으로 가는 결정을 하는 바람에 더 먼 길을 걷게 되곤 한다고 말했다. 걷기의 날들이죠. 차라리 중간에서 타는 게 나으려나. 늘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려요. 틀리면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앞서 걷던 그에게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그래. 거기서는 삼십 분쯤 있을 것 같은데 너도 그때까지 있게 되면 봐. 간결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은 그는 내게 저리로 가서 2호선 타고 가시면 돼요, 간결하게 말하

  • 관리자
  • 2025-11-01
우리의 고백

우리의 고백 - 진은영 『고백』 (문장웹진 2010년 11월호 수록) 읽기 이영주(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시 쓰기는 재미있다. 인간의 언어란 흥미로운 것이니까. 인간의 언어란 오염과 환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것을 이상한 쾌락으로 즐기게 해 주는 수수께끼의 세계. 시는 이런 언어의 가장 예민한 촉수이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가고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내부에 가장 깊이 침투해 있다. 시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이런 멀고, 가깝고, 깊은 주름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존재들. 시인들은 주름을 펼쳐 보이고 때로 섬세하게 접기 위해 늘 몸이 열려 있다. 열린 몸이란, 복잡하고 구불구불하고 황폐하고 어지럽고 축축하고 미끌거리고 우수수 돋는‧‧‧ 아무런 규정도 할 수 없는 무정형의 상태. 시인들이 몸을 열고 받아 적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백 진은영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 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 버린 사람들에 대해 나의 가득한 입맞춤을 대신하는 가을 벤치의 연인들 나 대신 식물원 화단의 빨간 석류를 따고 있는 아이의 불안한 기쁨과, 나 대신 구불구불한 동물내장을 가르는 칼처럼 강, 거리, 언덕을 불어 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달콤한 술 향기의 전언을 빈틈없이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의 단호함과 확신에 대해 수음처럼 또다시 은밀해지려는 나의 슬픔에 대해 할 말이‧‧‧ 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 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 나 대신 울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잠깐 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인인데 시인이 아닌 채로 살아야 하는 순간들에 대하여. 내가 생활의 우악스러움을 드러내면 누군가 내게 시인 아니에요? 라고 미묘한 공격성을 띠고 물어볼 때, 그러니까 시인은 삶에 대해 초연해야 하고, 가난도 자랑스러워해야 하며, 슬픔도 웃어넘기는, 여유로운 포즈로 뭐든지 받아안고 가는 존재여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할 때, 그러니까 시인이 (과장해서) 영양실조에 걸려도 역시 시인이란 그런 존재지‧‧‧ 하고 동정의 포즈를 보낼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할 때(전근대적인 낭만성이 아직도 있긴 하다‧‧‧), 나는 시인 아니에요? 라는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함정에 빠진다. 시인은 원고료나 특강비 등 돈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일종의 허상에 가까운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러 시선에 대하여‧‧‧ 나는 종종 공중누각에 던져져 온몸이 찢겨 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시를 쓰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은 ‘나’의 생활과 삶은 어떻게 하지? 그 생활과 삶의 세부들이 모여 하나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결국 시를 쓰지 않는 순간에도 시를

  • 관리자
  • 2025-11-01
파고

파고 한영원 그날, 은선 씨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은선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빨간 잠바를 입고 갔는데 은선 씨 역시 빨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기에 차에 타면서 멋쩍게 조금 웃었다. 은선 씨는 내게 음악 하는 A와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은선 씨가 자신이 그와 친구라고 대답해서 나는 어쩐지 그 둘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조근조근한 어조와 노래를 부를 때 예쁠 것이 분명한 음색이 비슷하다고.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해 버린다. 그리고 잘 부를 것 같은 목소리를 짐작하고 그러한 짐작은 대부분 잘 맞는다. 차는 영종도로 들어가고 있었고 공항 가는 목적이 아닌 영종도 놀러 가는 일은 꽤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은선 씨가 내게 말했다. 바다를 좋아해서 자주 가요. 아, 저도요.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태어나서인지 내가 여태껏 본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차는 영종도 안에 작은 섬인 무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해루질을 하러 가나요? 내가 묻자 은선 씨는 첫 만남에 해루질을 좀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도 꽤 시인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인을 관찰하러 간다니 나의 소설가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멋있을 것 같아. 비 오는 해변을 마구 걸을 것만 같고···, 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당신에게 시인이란 그런 이미지냐고 물으려다 그냥 관두었다. 물론 나는 시인이 되기에 조금 모자란 것만 같지만 은선 씨는 정말로 시인이다. 시집을 몇 권이나 냈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시인. 은선 씨는 내게 오늘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일단 엄청나게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갯벌을 좀 걸을 것이고요. 갯벌은 모래펄이라 부드럽고 더럽지도 않아요. 은선 씨의 계획은 멋져 보였다. 나는 어떤 것이든 좋다고 말했고 근사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더 섬의 안쪽으로 몇십 분 들어간 뒤 우리는 곧이어 무의도에 있는 한 식당의 주차장에 내렸다. 나는 내리며 언뜻 식당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영업을 하나 보다 했으나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였다. 들어간 사람들과 우리는 불이 꺼진 식당 안에서 화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는 문구를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식당에서 나오며 은선 씨는 그럴 줄 알고 다른 식당 두어 군데를 더 찾아 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탔다. 은선 씨는 내게 식당에 가면 메뉴를 많이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욕심은 많아요. 나도 조금 그런 편이라 답하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러나 은선 씨가 두 번째로 찾은 식당 역시 닫혀 있었다. 은선 씨는 당황해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아까 지나가다가 보인 그 쌈밥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은선 씨가 고개를 끄덕

  • 관리자
  • 2025-11-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