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그리기
- 작성일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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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그리기
최은영
얼마 전, 김창환 님이 쓴 글을 읽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글의 제목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대로 그려 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를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1)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위로받았고, 하루를 원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하루가 동그랗게 완성되며, 시간은 마냥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은 여러 개의 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일 초, 일 분, 한 시간, 하루, 일주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일 년··· 한 해를 사는 것을 동그라미 하나 그리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나는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셈이다. 앞으로 이 동그라미를 몇 개나 더 그릴 수 있을까.
끝의 끝이 되었을 때 새로운 시작이 돌아온다는 걸 연말이 오면 매번 깨닫는다. 만족하며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새해는 거저 주어진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듯이. ‘새로운 동그라미를 그려 봐’ 하면서. 그러면 마흔셋이 된 나는 다시 손에 연필을 잡고서 새로운 페이지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한다.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여전히 동그라미 그리기는 막막하고 어렵다. 언제부터 동그라미 그리기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새 시간, 다시 주어진 기회, 새로운 삶···.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언제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삶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 중에서는 가장 덜 힘든 시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십 대와 이십 대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나는 마흔셋이 되었는데, 사는 일이 극적으로 쉬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너의 삶보다는 훨씬 더 평온하다고.
마흔세 번째의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회한도 많고 아쉬움도 많아서 ‘시간을 되돌린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는다. 한때는 바보 같은 선택을 거듭한 어린 나를 용서하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바보 같아서 미워질 정도의 어린 나를. 하지만 그게 그 아이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나니 더는 그런 내가 미워지지도 않았고, ‘시간을 되돌린다면’ 같은 가정을 하지 않게 됐다. 내 타고난 기질과 성장 배경을 이해하면서 내가 인생을 낭비했다거나 훼손했다는 식의 나를 탓하는 생각들도 옅어졌다. 이제 회한 같은 무거운 감정보다는 순간순간 드는 아쉬움 정도는 있는 것 같다.
가령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서 이십 대에 목디스크가 터지지 않게 해야 했는데’ 라든지, ‘인생을 조금만 덜 진지하게 살아야 했는데’ 같은 생각 말이다. 이 또한 나의 기질과 성장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여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마음껏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린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동그라미를 하나 완성한 순간, 그 동그라미는 내게서 떠나가 버린다. 언젠가 내가 죽을 때가 된다면, 나는 그 동그라미들을 단 하나도 내 품에 끌어안고 떠나지 못할 것이다. 지나간 건 지나간 것으로 받아들이고 집착하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나는 왜 나의 기쁨과 행복을 지지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 그냥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통과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서 더는 집착하면서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그런 문제를 회피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핍을 결핍 그 자체로 두고서 문제로 삼지 않기로 했다는 말이다. 그때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내가 안전하지 못했다면 이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주고, 그때의 지켜지지 못했던 나를 지키면 된다. 내가 들어야 마땅했지만 듣지 못했던 말을 내게 해 주고, 내가 결코 듣지 말았어야 했던 말을 나 자신에게 더는 하지 않으면 된다.
*
상담을 몇 년 동안 받고 글을 쓰면서도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여전히 데면데면한 상태였다. 낯을 가리는 친구의 일곱 살짜리 아이를 앞에 둔 것처럼 나는 그 애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얼마 전, 독자 모임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가수 신승훈의 12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기차에 앉아서 그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봤다. 한참 영상을 따라 보다가 눈물이 나왔는데, 내가 여전히 이 가수의 노래에 감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그러니까 삼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자의로 신승훈의 노래를 찾아 듣거나 영상을 찾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신승훈은 내가 좋아한 첫 번째 가수이자 연예인이었다. 나는 이 사람의 목소리가 좋았고 음악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기보다는 이 가수의 음악이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닿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가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와 어떤 면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별로 즐거울 것 없었던 어린이였던 나는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면서 사는 게 조금은 좋아졌다.
나는 그 마음을 다해서 신승훈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 내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서. 나는 다 쓴 편지를 부치지 않고 간직했다. 아마 어디로 부쳐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건 실수였다. 내가 숨겨 둔 편지를 찾아서 읽은 엄마는 내가 편지에 쓴 내용들을 입에 올리면서 한동안 나의 마음을 조롱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한동안 조롱을 받은 후에는 ‘성인 남자 가수에게 어린애가 팬레터를 썼다’는 이유로 혼났다. 내 편지를 읽었다는 암시 속에서 조롱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나는 게 나았지만,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팬레터를 썼다는 행위보다도,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가슴이 뛰고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다. 내 적나라한 마음을 엄마의 시선으로 다시 살펴보니 수치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이 너무 커서 나는 마흔이 넘어서까지도 나도 모르게 신승훈에 관한 모든 정보를 발견한 순간 바로 넘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마흔두 살의 그날, 나는 다시 그에 관한 정보를 넘기려다 내 행동을 의식했다. ‘아, 나 아직도 이러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웠던 일이 떠올랐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의 영상을 클릭해서 다시 음악을 듣는 건 깊은 수치심을 느낀 열세 살짜리 나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건 너를 비난한 사람이 암시한 것처럼 불결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조롱받아서는 안 될 소중한 마음이라고.
나는 그날 이후 내내 신승훈의 노래를 들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듣지 못했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열세 살의 나를 대신해서, 열아홉 살, 스물여덟 살, 서른다섯의 나를 대신해서 들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노래를 들을 때면, 그 노래를 들었던 그때의 나 자신과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열세 살의 나와 마흔두 살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신승훈 콘서트에 가서 나는 순수한 행복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내게 이런 시간을 많이 선물하려 한다.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싶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불결하다는 식의 믿음이 여전히 조금이라도 내 안에 남아 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 마음을 미워하는 대신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더 키워 나가고 싶다.
누군가 어린 내게 어둠을 줬다면, 다 자란 내가 나에게 빛을 주면 된다. 예전에는 나의 지난 시간을 잊기를 소망했다. 혹은 빨리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를, 혹은 죽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가기를. 하지만 삶을 해마다 그리는 동그라미 그리기라고 생각하면 죽지 않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린 내가 소망했으나 누리지 못했던 그 작은 따뜻함을 지금의 내가 내게 주면 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편지에 적었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건네받은 내가 그 수치심을 수치심으로 두지 않고 다시 그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 과거를 지우지 않고 계속해서 다시 써 나가고 싶다. 버려짐, 실패, 상처와 고통이 오로지 전형적인 방식으로만 내 안에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도록.
*
지난 이 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 소설을 쓰지 않고 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것이다. 동그라미 두 개, 라고 생각하니 이 년간의 공백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나쁜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들을 지나가기도 했지만, 내가 겪은 어려운 일들이 완전히 나쁘기만 한 일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허구의 세계를 내 언어로 짓는 것이 얼마나 나를 벅차게 하는 일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면서 좋아하는 마음만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문학번역원 출장으로 도쿄 현지 행사를 가기도 했다. 4박 5일의 일정 중에 내 개인 행사도 있었는데, 도쿄에서는 7년 만의 행사였다. 그곳에서 7년 전, 나의 작은 행사에 와 준 독자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내 책의 번역가인 아야코 님과 쿠온 출판사의 김승복 대표님, 책거리의 이토 님과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일상을 공유하는 분들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어제 본 것처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어쩐지 조금은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내 삶에 주어진 이런 작고 따뜻한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수 있고, 따뜻한 순간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의 고양이들이 여전히 건강하다는 것.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지나간 것들을 소망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 내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 다가올 것들을 소망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한 것, 내가 지금 누리지 못하는 것, 내게 지금 허락되지 않는 것. 그런 소망들은 너무 무거워서 나약한 내가 오래 짊어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저 나와 주변 존재들의 무탈함을 소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욕심이었다는 걸 이제 안다.
지금 내가 소망하는 건 여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언제 떠나든 너무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미소 지으면서 떠날 수 있는 그런 가벼운 마음이다. 그리고 끌려가듯 살지 않고 하루를 살더라도 나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단순하고 단정하게 살고 싶다. 이 소망은 어렵지만 무겁지는 않다.
1) 김창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웅진지식하우스, 202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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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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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6-01-01
소망, 반성, 시작 김상규 1. 소망 여러분은 언제부터 새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은 1월 1일을 새해로 생각하실 것이며, 또 어떤 분은 설 명절을 생각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또 어떤 분은 해가 다시 길어지는 동지를 새해의 시점으로 잡으실 수도 있겠군요. 저는 새해의 시작을 정월대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과학적으로 분명하거나 이론적으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 할머니와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할머니는 늘 정월대보름이 되면 가족 수에 맞게 하얀 종이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지(燒紙)라고 불렀습니다. 준비된 소지를 앞이 두껍고 기다란 직사각형으로 접고 나면 우리 집 정월대보름 준비는 끝마친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할머니는 나를 부르시곤 그 소지에 가족의 나이와 이름을 적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소학교도 나오지 않으셨기에 글을 더듬더듬 읽을 줄 아나 쓸 줄은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불러 이 일을 시키신 것이지요. 잘 정리된 소지와 초 하나를 들고 할머니는 마당 구석으로 향했습니다. 불을 태우는 방향을 해마다 바뀌었는데 아마 동네 용한 무당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리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남쪽이 흉하면 남쪽으로 소지를 태우고 북쪽이 흉하면 북쪽으로 소지를 태우는 것입니다. 준비가 다 되면 할머니는 이름이 적힌 소지를 순서대로 가슴에 품고 무언가를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원이 무엇인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몰락해 가는 집안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기도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기도가 다 끝나면 가슴에 품었던 소지를 촛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더 멀리 소지의 불꽃이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습니다. 제주 중간산 마을의 거친 겨울바람을 타고 훨훨 오르는 종잇장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제 소지는 제가 가슴에 품고 불을 붙일게요.” 할머니는 흔쾌히 제 말을 따르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우리 집안 종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잔병치레가 많아 유난히 병약했던 나에게 할머니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날 버리고 떠난 엄마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와 삼촌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그게 아니면 빨리 어른이 되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가슴에 품었던 하얀 종이를 촛불에 붙여 하늘로 올려보냈던 기억과, 제 소원이 담긴 소지의 불꽃이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을 휘저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2. 반성 소지를 태우며 빌었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요? 불행하게도 그 기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철저하게 몰락했으며 저 역시 혈족의 굴레 속에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 관리자
- 2026-01-01
한 해의 뒷면 최현진 첫 눈이 내린다. 나의 글쓰기 방에 난 창문으로 흰 원들이 신호등과 선로 위에 앉는 걸 본다. 눈과 바람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외투를 되살리며 종종종 걸어간다. 눈이 쌓인 지면은 세상으로부터 떠 있는 것 같다. 사물의 형체를 지우며 공백에 가까워진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공백(空白)에서 찾아온다. 이 글은 지난겨울에서 다시 첫눈이 내리는 동안의 이야기다. 아홉 살 때 ‘단감’이라는 시를 써 본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내 꿈은 작가였다. 2025년은 꿈을 이루며 시작했다. 나의 첫 책이 나온 것이다. 출간 이후의 삶이 책의 질량만큼 가벼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연초 문학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바터팽대부암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으셨다. 시상식 가는 길이 앞으로 펼쳐질 투병과 간병의 길처럼 더디고 어려웠다. 이른 봄, 나는 희미한 감각으로 수상과 첫 책의 기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최종 교정지를 만지는 날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고층 병동에서 쏟아지는 폭설을 보다가 그만 커피를 쏟고 말았다. 얼룩이 책에 인쇄되어 나올 것도 아닌데 참을 새 없이 눈물이 푹신 떨어졌다. 나는 서운했다. 내 삶에. 작가는 어떻게 가족구성원 내에서 돌봄이라는 균형을 지키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가. 휠체어를 끌다가 메모를 하고 병실에 불이 꺼지면 노트북을 켜 타닥타닥 불씨를 지피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불과하다.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중지해야 한다’는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거린다거나, 환자에게 무뚝뚝하게 군다 거나. 간병 일수를 줄여 보자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기에 내 직업은 출퇴근이 따로 없는 작가이고 또한 애매한 태도가 걸림돌이었다. 수상과 첫 책의 행운이 함께 왔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쉽사리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나를 축하해 줄 때였다. 병원 앞에 뜬 부드러운 점선의 구름을 보며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기쁨의 전부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문학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작가가 무엇인지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나는 빠져나갈 출구를 찾고 있었다. 첫 강연은 부산이었다. 책을 내고 공식적으로 들어온 첫 번째 일이었다. 식구들에게 떳떳하게 통보하고 짐을 쌌다. 얼마나 걸리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강연은 두 시간이었지만 부산까지 가는 데 오고 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짐을 싸냐고 물어보셔서 간 김에 글을 쓰고 오겠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내가 초청받은 곳은 시외에 위치한 고등학교였다. 따뜻한 땅에서 올라온 연둣빛 들판을 거쳐 봄 멸치를 잡던 배가 묶여 있는 작은 항구와 벽돌로 쌓은 젓갈 공장을 지나서 달려간 곳에 아늑한
- 관리자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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