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같은 소리 (1)
- 작성일 2014-10-01
- 댓글수 0
사랑, 같은 소리(1)
내게 말해다오, 사랑이여,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이 짧고 몸서리치는 시간을,
그저 생각과 교류하며 오로지
사랑이 아닌 것만 알며 사랑이 아닌 것만 행해야 하는가?
잉게보르크 바흐만 1)
조재룡(문학평론가)
*
사랑이 무엇일까, 뭐 이런 멍청한 물음을, 그러나 한 번쯤 던져 보지 않은 청춘이 또 있을까? 누구나 그랬을 것이며, 그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거나, 어느 시각, 어느 정해지지 않는 순간들을 몰래 열고, 그래서 급습해 오는 기억에다가, 까닭을 모를 발작처럼, 사랑이라는 말을, 사랑이라는 관념을, 사랑이라는 몸의 경험과 시간의 뭉텅이를 개인의 역사라는 허명을 들고 불러내고, 또 거기에 나름의 윤색을 가해, 암튼, 저 지리멸렬의 순간들을 빛나는 교집합으로 추려내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끔씩 우리는 모두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무시로 찾아드는 걸 막아낼 재간이 없다고, 제 앞에, 친구건 동료건, 앉혀 놓고 고백을 한답시고, 듣는 사람의 찡그린 미간은 본 체 만 체, 지루한 제 사랑 이야기를 신이 나서 주구장창 늘어놓는 사람은 필경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무언가를 선택하라고 돌아오고 또 돌아 나가는 초밥집의 회전 벨트처럼, 하루하루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 제 무른 속살과 거기에 묻어 있는 감정들이 마모되어 가는 바로 그만큼 두꺼워진 표피를 잠시 망각하고서, 우리는 언제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불러낼 기회를 일상에서 만들어내고, 그 기회가 연출될 때마다, 감상에 젖어 무언가를 한 움큼씩, 뱉어내고, 쏟아내고, 토해 내고, 그러면서, 술을 한잔 입에 털어 넣으며, 또 후회를 하고, 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사랑에 관한 담론들은 사랑 자체에 온전히 바쳐지지 않는, 거개가 무언가를 사칭하기 마련인 옛이야기요, 한갓 공설이라는 것인데, 십분 양보한다 해도, 그걸 묻곤 했던 모일모시의, 단속이 없어 느슨했던 저 과거의 어떤 순간에조차, 나는 사랑이 온갖 개인적-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문화적-정서적 후유증으로 생겨난 쭈글쭈글한 고난이나,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삶의 피곤과 그 피곤들로 구겨진 주름들을 말끔하게 펴주거나, 그 사이사이 더께 낀 흔적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개인적-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문화적-정서적 억압의 사슬과 절연해 낼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흔히들 말하던, 그 무슨 미지의 가능성이라고도 믿지도 않았다. 차마 믿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었을 개연성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지금에서 주절거릴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1) 「내게 말해다오, 사랑이여」, in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김재혁 옮김), 자연사랑, 1999, 55쪽.
그러니까 ‘사랑’과 ‘동지’는 같은 말이 될 수 없었다. 그건 막연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사랑을 손에 쥐고서, 사람 자체를 보는 일이 그리 쉽던가? 젊은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사랑 앞에서, 사랑에 관해 몇몇 그럴 듯한 말들을 늘어놓고서, 절망의 그림자만 움켜쥐었던 셈이다. 동지는 오롯이 계급의 문제였을 뿐이었으므로. 암튼 90년대 초반의 사랑은 그런 식으로 사랑과 동지라는 편리한 이분법을 선택했고, 당시 출간되어 또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던, 몇몇의 후일담 소설들이 힘주어 강조한 바도 있는 바, 함께 도모한 결기의 순간에서도 인간은, 특히 남자라는 종자는, 투철한 이념과 어렵게 다잡아 놓은 제 결심조차 존재의 불안과 타오르는 욕정에게 우선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자멸적 태도를 고의로 택했던 것이 일견 사실이 아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지도 못하고, ‘깊은 슬픔’에 빠져 이데올로기를 저버린 자의 허탈한 마음을 소파에 앉아 투덜거릴 수도 없었으며, 임과 함께 ‘오래된 정원’을 서성이며, 사랑의 상념에 빠져 돌아 나오는 제 발걸음을 붙잡아 둘 수도 없었던 나는, 인간의 악마적인 속성에 모종의 내기를 걸고, 그걸로 장사를 좀 해보려는 의도를 크게 감추지도 않는 그런 소설들을 읽고 또 신나게 욕을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동지와 사랑이 하나가 될 가능성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수가 있었다. 사랑은 대관절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거나 설명될 수 없었던, 어떤 개념을 동원해도 비끄러맬 수 없었던, 오히려 모호한 관념과 이상한 난센스에 가깝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당시의 내 생각은, 거개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물리적 구속력에서 자유롭지 못해, 방만한 자유의 역설에 입회하거나, 다채로운 경험을 미래의 일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던 어느 날의 추억으로부터 빚어진 헛된 믿음 같은 것들이 따지고 보면 사랑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라고 유추를 해내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고, 이 유추를 바탕으로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다른 것들과 쉽사리 동어어가 되거나 부분적으로 포개어진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랑,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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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욕구, 들뜸], [애틋함, 위로], [쓰다듬고 싶은 충동, 웃옷 파진 부분을 넋 놓고 바라보기,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 × [기다림, 설렘, 심장의 박동, 확대된 동공, 우쭐해지는 기분], 의미, 그러니까 빠져나가는 의미, ♪ 아마 늦은 여름날이었을 거야♬, [포근함, 연민, 안쓰러움], 나 예뻐?, [매력 포인트만 바라보기, 매력 포인트를 찾아내기, 허용, 현혹, 이상한 우아함], [√매력 포인트 허용하기, 기이한 고결함, 참혹한 비참함], [친근함, 기대고 싶은 마음, 안고 싶은 감정], 감정 × 감정, 감정의 움직임, 감정의 동요, 미칠 것 같은 기분, {새벽, 그리고 안개, 안개 속으로의 도피}, 환상, 환상, [환상, 환각], 환각, [매캐함, 시큰거림], [육중함, 날렵함, 둔중함, 무게, 무게, 비중, 내려앉음], 딴생각 하면 너 죽어, 우울, 강력한 우울, [보고 싶어 하는 것, 그럼에도 보지 못하는 것], [빵 터트린 어이없는 장면들, 다시 기다림, 또 기다림, 한 번 더 기다림], 지키고 있기, 뒤에 있기, 올려다보기, 울음, 가끔 울음, 또 울음, 그러니까, 좌우지간 울음, 속으로도 못내 울음, |
등등이 변형되고 뒤섞여 찾아오고 또 그렇게 타인에게로 깃드는 무엇이다. 이 수많은 단어들의 교집합이자 합집합, 여집합이자 공집합이기도 한 것, 그렇게 남겨진 무정형의 무엇이자 이 모든 낱말들의 조합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이질적인 경험들을 머금고 수없이 왕래하고 서로를 엇대면서 굵은 자국으로 도드라진 두 사람의 그 무슨 누빔점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 낱말만큼의 시간과 공간에 조응하면서 그때마다 무작위로 불려 나온 어떤 형태의 감정을, 몸의 체험을, 알 수 없는 형태의 관념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우리는 항상 사랑에서 빠져나가고 사랑을 빠져나간다. 그건 그렇게 또, 사랑이 아니기도 할 것이며,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고만 말하면 삶에게 너무 미안하니까. 사랑? 여전히 오리무중. 사랑은 그러니까, 아주 딱한 말, 처지가 난감한 말, 그러나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말인 것이다. 다시 옛날 일을 떠올려 보면, 구제되지 않는 사랑, 그 빌어먹을 놈의 사랑이 명료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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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울 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이다 - 박판식, 「언제나」 전문 - |
그건 “매번 허탕 치는 괘종시계”이며, “어둠이면서도 스스로 빛이라고 착각하는 꿈”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 안에서 빠져나간” 그러나 “자기가 아닌 것”의 발산이다. 호르몬의 과다한 분비, 시각적-청각적-촉각적 환상, 신경과민이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풀려 나온 주책없는 수다들의 향연, 현실을 무지르며 내려놓은 만용이자, 애정과 정서의 결핍은 물론, 이해심이나 현실감, 상식적으로 사고하는 평범한 능력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한 치기, 무작정 타인에게 내기를 걸고 그걸 빌미로 자기 자신에게도 도박을 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허영이자 객기이며, 그것도 거개는 시도 때도 없이 샘솟는 쾌락의 욕망이 이성의 감시 장벽을 뚫고 현실로 범람해 가능해진, 매우 일시적이고 단속적인 현상일 뿐이다. 다소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행동으로 엉뚱한 매력을 뿜어내곤 하는 로맨티시스트와 빠진 사랑은, 그러니 사랑이 아니라, 착각을 붙잡고 그 착각을 나누어 먹을 허상의 파이를 공설처럼 크게 키워낸, 그런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아주 가볍고 사소하며, 자주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일시적인 일탈이자 서로가 알고 있는 공모일 뿐이다. 믿고 싶지 않을 뿐,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누군가로부터 제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은 악의나 선의에 의한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불행도 행복도 아니다. 그건 결핍이 낳은 정신적 착란, 얼빠진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아주 잠시 겪게 되는, 우리가 속된 말로 ‘멍 때린다’고 할 때의 상태에 잠시 젖어든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어딘가에서 쾌락과 욕망을 판매하고 있는 무인 잡화상에 잠시 들러 뭔가를 구매한 것일 뿐이다. 사랑은 제 개념을 쉽게 포기하거나 다른 것들에 양도한 상태에서만 우리에게 살짝 모습을 내민다. 사랑은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는, 둘이 함께 착각에 빠지는 모종의 시뮬레이션이기도 한 것이다. (계속) *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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