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모임 - 책방곡곡 제주 시옷서점 1편 – 시 쓰기 좋은 제주도에서
- 작성일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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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모임-책방곡곡]
2019년 독자모임 코너 [책방곡곡]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독립서점들을 방문하고, 그 지역의 문인 및 독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합니다. 각 지역의 문학 생태계와 특수한 현안들이 곳곳에 계시는 독자들에게 서로 공유되어, 사유와 비평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 시옷서점 1편
- 시 쓰기 좋은 제주도에서
사회 : 현택훈(시인)
참여 : 안민승(사진작가), 홍임정(소설가), 김진철(제주대 강사, 동화작가), 허유미(시인), 김신숙(시인)
김신숙 시집『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한그루, 2017)[/caption]
정찬일 시집『가시의 사회학』
(다층, 2018)[/caption]
현택훈 : 제주의 문화가 생산보다는 소비에 치중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현장과 문화가 분리되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작가들이 과연 제주도에 대한 고민을 창작으로 연결 짓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제주의 현안과 연결 지어 논의해 보기로 했는데요, 오늘은 김신숙 시인의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한그루, 2017), 정찬일 시인의 시집 『가시의 사회학』(다층, 2018) 이 두 권의 시집을 중심으로 제주의 시가 제주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제주 현안 문제에 대해 제주의 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하면 좋겠습니다.
안민승 : 명제 자체부터 말해야겠어요. 물론 예술이 생산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가, 그것이 다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술의 생산적인 측면을 강요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과연 생산적인가, 생산적인 것은 중요한가, 비생산적인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다양한 생각이 드네요.
홍임정 : 예술의 생산성이 없다는 것에 기준을 두는 것은, 예술에 대한 어떤 잣대를 대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많거든요. 그런 기준이 오히려 하나의 한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진철 : 문학을 통한 생산의 의미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이 생산인가, 예술 활동을 통해서 예술가에게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건 생산이라 말할 수 없을까 하는 점이죠. 제주도의 문화 정책은 생활문화 예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소비형 행사들이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그에 상응해서 도내에서 문화 관련 동아리들이 많이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대중들의 이런 문화 욕구를 단순히 생산성과 소비성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좁혀서 제주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통해 제주도를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에 대한 접근이 먼저 진행되면 좋겠어요.
안민승 : 그러니까 제주를 도식적으로 소재로만 사용하면 제주를 말한 것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제주 어느 곳의 공간만 가져온다면 알맹이가 없습니다. 학술적인 접근이나 아카이브 관련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창작자는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점을 생각해 봅니다.
김진철 : 예술가로서의 사회적인 책무에 대한 것이죠. 사회적인 부조리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예술가가 그 사회에 살고 있다고 꼭 그 사회의 굵직한 이슈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듭니다.

허유미 : 예술가들이 문화 행사를 하면서 시민들과 문화를 향유하면서 유대감을 느끼고 싶은데, 일회성으로 그쳐 아쉬워하는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지역 예술가들과 지역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그 점이 지역 예술가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될 것이고요.
김진철 : 문학 관련 행사를 보면, 관객이 대부분 작가들입니다. 다른 예술 분야 행사에는 일반 관객들도 오는데, 문학은 왜 이리 폐쇄적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대중과 깊이 호흡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작가들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구요. 행사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문예지들이 꽤 발간되고 있는데 거기에 실린 작품들이 과연 대중들한테까지 도달하고 있나, 라고 봤을 때는 아쉬운 지점이 있죠.
김신숙 : 제주의 문예지가 '제주'라는 이름으로 제호를 다는 것을 보면 고집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대안으로 '수평문학'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수직적이지 않은 수평적인 것으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그 점을 생각하면서 제주는 중앙 문단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서울의 유명한 작가를 초청하는 식의 수직적 특강이 우리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이러한 문학 행사를 깨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문학 관련 단체들의 성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임정 : 제주작가회의의 계간 《제주작가》는 제주 관련 특집을 꾸준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점은 상당히 특별한 업적입니다. 특히 4·3 문제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제주처럼 제주 지역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지역문학은 보기 드문 것 같습니다. 제주 문학의 특수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좀 전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시스템에 관한 고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만 봐도 우리는 지금 김신숙 시인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는데, 여러 가지 문학 환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게 되는 거죠.
김신숙 : 몇 년 전에 유명한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말이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더라구요. 어머니가 해녀인데, 하루 종일 물질을 하면서 고독을 견디는 수행자로서의 어머니를 느꼈다고 말했더니, 그 편집자가 그 외로움을 도시 소시민의 삶과 연결 지으라고 해서 처음엔 고개를 끄덕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이 과연 해녀의 삶을 얘기하는 좋은 방식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책이 많이 팔릴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드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제주의 문학일까.
현택훈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걷는사람, 2018)
현택훈 : '제주'라는 말이 고립된 측면도 있지만 독립적인 면도 있어서요. 제주의 특수성이 장점과 단점으로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런 성격이 제주 시인들의 시에 반영될 수밖에 없겠죠. 제가 최근에 낸 시집 제목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걷는사람, 2018)를 두고 한 신문기자분이 저를 이 제목처럼 제주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시각을 가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는 늘 제주도를 떠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바다 너머를 동경해 왔습니다. 난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해서 가지 않는다고 얘기한 점이 있습니다. 기자도 그렇고 서울 사람들은 제주를 책임져 줄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요.
허유미 : '제주'를 산업으로, 상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시옷서점을 선택한 것 같아 처음엔 반갑고 고맙다가 이 흐름이 제주 작가들에게 긍정일지 부정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김진철 : 이곳에 오면서 《문장 웹진》이 왜 제주에 귀 기울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것은 아마도 《문장 웹진》에서도 기존에 해왔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찾았을 것이고, 제주도에서 문학과 관련된 변화의 싹을 본 게 아닐까요. 제주의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기는 트렌드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관심들이 진정성이 없다면 단순한 유행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민승 : 글 노동자, 그림 노동자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4·3, 제주어도 중요하지만 이런 주제 때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작가들 스스로 다양한 시선의 생산을 고민하면 어떨까요.
김신숙 : 오광석 시인의 시집 『이계견문록』(시작, 2017)을 보면 샐러리맨의 삶이 들어 있는데요. 그렇다면 샐러리맨의 삶은 제주도의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오광석 시인은 오광석 시인의 방식대로 제주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광석 시집 『이계견문록』
(시작, 2017)
김진철 : 그렇죠.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지역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꼭 지역의 거대담론에 대한 것만 다루어야 지역의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현택훈 : 공감합니다. 오광석 시인은 4·3시도 판타지로 쓰던데, 그렇다면 김신숙 시인의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에 나타나는 제주에 대한 모습을 봅시다.
김진철 : 기존의 제주 시인들의 시와는 정말 다른 결을 느꼈습니다. 작가들이 그동안 봐왔던 시야에서 볼 수 없었던, 또는 보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죠. 평범한 시야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대한 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이 시집의 가치일 겁니다.
허유미 : 김신숙 시인은 서귀포가 고향인데 서귀포는 낮에는 화려한 관광 도시잖아요. 그런데 김신숙 시인의 시는 서귀포의 낮이 아니라 밤을 그리고 있습니다. 항구 도시 서귀포에서 일어난 여성의 비극 혹은 가정의 비극적인 일들을 하나하나 해부하여 다소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로 서술한 것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시집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젖에서 고름이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김신숙 시인의 시집은 서귀포의 여성 혹은 제주 여성의 젖에 오랫동안 고여 있던 고름을 짜주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고향을 소재로 한 시들은 보편적인 정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향에 대한 서정과 풍경만 노래하는데, 이 시집은 고향 여성의 삶을 다루고 그 삶을 처절하게 울부짖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이제까지 제주 여성 시인들의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작품입니다.
김진철 : 제주가 관광산업이 부각되면서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유배지였던 역사나 4·3과 같은 제주의 부정적인 이면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했던 시절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지점들의 금기를 하나씩 깨고 있는데요. 이 시집은 그런 제주의 또 다른 금기를 깨는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다섯 살의 차도르」라는 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삶을 보여주면서 제주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판타지를 철저하게 깨뜨리고 있습니다. 결국 그녀들이 겪었던 삶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 시집은 말하고 있습니다.
홍임정 : 제주를 여행하면 오름이나 유명 관광지를 돌게 되는데, 오름, 바다, 한라산만이 제주는 아니에요. 저는 이 시집에서 한림읍의 뒷골목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항구의 지린내 같은. 김신숙 시인의 시는 피상적인 제주가 아니라 실제의 제주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안민승 : 저는 사진을 찍으니까 제가 이국적인 사진을 찍고 김신숙 시인의 시와 연결 지어보려고 했는데, 이국적인 시가 없었어요. 가족 이야기, 유년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사적인 이야기의 원형이 설화처럼 들리면서 제주의 원형으로 다가오는 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가령 「새끼회」, 「복자성당」, 「신혼」 등의 시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김신숙 : 서귀포에 있는 시인들의 시를 보면서 자랐어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예쁜 시를 읽었는데, 내 눈에 보이는 서귀포는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한번은 제 시집을 잘 읽었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내 시집 속 유약한 한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라서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나는 그 소녀의 슬픔을 말하고 있는데, 그 독자는 그 소녀를 성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실망한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생일 때 술집에 나가는 친구들을 봤습니다. 1997년 그즈음에 원조교제, 허영심,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용한 어른들의 모습에 대해 나름 저 바탕에 자리 잡게 된 겁니다. 예전에 서귀포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이혼 후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던 여성분이 거리에서 칼에 찔려 숨졌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의 딸이 자라서 술집에서 일하다가 자살을 한 것을 접했습니다. 변함이 없는 겁니다. 이곳은 이상한 섬입니다. 다른 도시들도 다 그렇겠지만 제주는 제주라는 이름 때문에 덮는 경향이 있어서 저는 그 지점을 참지 못하겠어요.
허유미 : 제 고향 모슬포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인구 대비 단란주점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약 30년 전만 해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지 않을 때 돈벌이를 위해 유흥업소에 가서 빨래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얘기를 들어 보면 정말 어린 나이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시집에서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진'과 '음희'라는 이름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인물인 것 같은데, 그 이름들은 호명하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강덕환 시집 『생말타기』
(한그루, 2017)
현택훈 : 26년 만에 복간한 강덕환의 시집 『생말타기』(한그루, 2017)와 첫 시집 이후 정말 오랜만에 새 시집을 낸 정찬일의 시집 『가시의 사회학』(다층, 2018) 두 권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 있을 것 같습니다. 정찬일 시인은 굉장히 논리적 시를 씁니다. 그리고 문화운동의 측면에서 봤을 때 《다층》이라는 문예지를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홍임정 : 정찬일 시인의 시 중에서 「내일 날씨」라는 작품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경홍이라는 사진작가가 있는데, 텅 빈 내용을 사진으로 보여줘요. 그 사진과 같은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고요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허유미 : 강덕환의 시집에는 제주의 옛 모습들이 잘 담겨 있습니다. 정찬일의 문학은 시와 소설을 넘나들면서 좋은 작품들을 계속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정찬일 시집 『죽음은 가볍다』
(다층, 1999)
김신숙 : 《다층》 시선의 첫 번째 시집이 정찬일의 시집 『죽음은 가볍다』(다층, 1999), 제 시집도 한그루라는 지역 출판사의 시선 1호이고, 강덕환의 이 시집 역시 제주의 출판문화 운동의 첫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서 눈덩이로 모아질 것 같습니다. 시집이 갖는, 시는 무용한 것이지만 여러 질문이 모여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민승 : 정찬일 시인이 처음에 신학을 공부한 것으로 아는데, 영성적인 구도자의 길을 가는 시인의 자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며 나쁜 시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해줬어요.
김진철 : '가시'라는 소재가 좋았습니다. '가시의 사회학'이라는 시를 보면 가시가 원래 우리에게 있었는데 퇴화되면서 내재화된 것으로 시인은 보고 있습니다. 장미나 고슴도치를 보면 가시가 있는데 둘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시들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가시는 없어도 말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가시와 같은 비수를 날리죠. 공격하기 위한 가시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죠. 인터넷 악플도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가시 하나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까지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김신숙 : 저는 결국 시의 힘은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찬일의 시 중에서 '뼈 안이 축축이 젖는다'라는 문장을 만나 감탄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한 줄의 풍경을 문장화한 표현입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이 시집의 문장을 통해 시인으로서 치유되는 느낌을 저도 받았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문학의 힘일 텐데, 저도 정찬일 시인의 시에 있는 문장 같은 새로운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허유미 : 저는 이 시집의 표제시인 「가시의 사회학」을 먼저 읽고, 다른 시들을 읽었습니다. 시인은 가시에 대해 정의를 합니다. 그 가시는 인간이 진화하면서 이루어진 퇴화기관이라는 것인데,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감성이 현대에 살면서 사라졌기에 그 감성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정의를 통해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안민승 : 언어의 유희는 아니지만, 저는 가시(可視的)적이다, 비가시(非可視的)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통증을 느끼는 것은 찌르는 것의 물성이 있는데, 통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비가시적이 비가시성의 통증에 더 집중을 해서 통증의 원인이 된 가시를 말하면서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김신숙 : 제주의 새로운 풍경이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나와야 합니다. 제주도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을 수상한 이원하 시인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나 그가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들을 보거나, 제주가 고향인 문보영 시인의 시들, 또 제주에 거처를 둔 시인들의 시를 보면 제주에 관한 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시의 성찰이나 시의 이미지들이 특화된 것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원하 시인의 제주도에 관한 시가 보편적 매력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제주의 시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기운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허유미 : 제주에 이주한 시인 중에서 신태희 시인, 안은주 시인을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둘의 시에서 저는 치유의 문장을 자주 봅니다. 가령 제주도 사람들 누구나 아는 외돌개를 이 두 시인은 다른 시각으로 제주를 봅니다. 자신만의 아픔을 보듬고 이겨내는 세계로 제주를 그립니다. 제주 작가들은 작품을 쓸 때 특수성과 보편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특수하게 생각하는 제주의 모습들이 이미 보편적일 수도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그냥 넘기는 모습들을 외지 사람들은 특수성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제주 작가들은 그런 점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요. 예를 들면 오름에 관한 시들이 많은데 제주 사람이 죽으면 오름에 묻는 사실을 시로 표현했다면 그 점이 특수성일 수 있으니 우리가 사는 곳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거꾸로 된 곳입니다.
신태희 시집 『나무에게 빚지다』(황금알, 2018)[/caption]
안은주 시집 『오류의 정원』(시인동네, 2018)[/caption]
김진철 : 제주도에 관한 것만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제주도에 너무 빠지면 외부의 시선을 놓쳐버리는 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눈이 가게 마련인데요.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가들은 오히려 제주스럽지 않은 것에 더욱 관심이 갈 수도 있으니까요. 미래의 제주 문학은 젊은 작가들이 해야 하니까 이들에게 제주적인 것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민승 : 안은주 시인의 시에 그런 비슷한 내용이 나오던데요. 유년 시절 기억에 있는 그 근린공원이 어느 도시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특수성이 깨졌다는 겁니다.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의 <아메리칸>을 보면 아메리카의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작가는 스위스 태생입니다. 고착화 된 눈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특수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편성을 알기는 힘들어요. 저의 경우에는 '불안의 기호들'이라는 사진 연작을 준비해 봤는데요. 균형을 잃은 불안한 기호들에 관한 장면들을 이곳 제주에서 느꼈어요. 그러다 발견한 것이 '재선충'이었어요. 이 재선충 때문에 너무 많은 나무들을 잃었어요. 마치 격렬한 싸움 끝에 훼손된 채 남은 지경을 저는 봤습니다. 벌목하고, 토막 내고, 무덤을 만들고 하는 모습을 통해 4·3을 떠올려 봤습니다. 전기톱에 나무 갈리는 소리가 끔찍했습니다.
김신숙 : 저는 요즘 제주도 곳곳에서 몇 년씩 살아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택훈 : 그렇습니다. 지역의 지역도 있습니다. 제가 이제 마흔다섯 살인데, 제주에 이주한 지 45년 됐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제주도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낯선 어느 마을에 가서 전형적인 제주도 마을의 풍경을 보면 낯설어요.

허유미 : 제주도는 작은 섬이지만, 동서남북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날씨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그것처럼 동서남북 자생하는 나무들이 다 달라요. 그런 것 같아요. 그 기후에 맞는 나무들이 자라는 것처럼 제주 문학도 제주 곳곳에서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현택훈 : 오늘 이렇게 제주의 시를 통해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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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소개 / 김진철(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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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1981년 제주 출생. 2006년 《제주작가》로 등단. 단편동화집 「잔소리 주머니」.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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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소개 / 김신숙(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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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979년 제주 출생. 2012년 《제주작가》, 2015년 《발견》으로 등단.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시린발》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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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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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6-02-01
[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거대한 사랑의 기록 - 김명순 창작집 『생명의 과실』 박소란 사진1. 『생명의 과실』 (한성도서주식회사, 1925) 표지 지난 2025년은 『생명의 과실』(한성도서주식회사, 1925)이 출간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였다. 『생명의 과실』은 김명순(金明淳, 1896~1951 추정)이 쓴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창작집이다. 국내 서지 기록에 등록된 여성 작가 최초의 단행본. 문학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명의 과실』도 김명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100주년은 터무니없이 고요했다. 별다른 의식이나 언급 없이 우리 문학장은 지난 한 해를 지나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전 김명순이 겪어야 했던 갖가지 고난과 핍박을 떠올리게 된다. 혹여 김명순이라는 선구적 예술가를 아직까지도 과거 그늘진 그 자리에 세워 둔 것은 아닐까, 못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을 해 봐도 대략의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김명순은 쉽게 소거될 수 없는 이름이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문예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친 한국 문단 최초의 여성 작가다. 1920, 30년대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친 김명순은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는 등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피아노를 잘 치고 독일어로 곡을 만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신문기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할 만큼 다재다능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기생 출신의 ‘첩'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자유연애’를 주창한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을 받았다. ‘부정한 혈액’ ‘문란한 여자’ 등 모욕적인 꼬리표가 일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와 집필에 힘썼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힘겨움이 잇달았고, 결국 1951년경 일본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김명순은 생전 시, 소설, 수필, 희곡(각본) 등을 한데 묶은 두 권의 창작집을 냈다. 『생명의 과실』과 『애인의 선물』(회동서관, 1929 추정)이 그것이다. (세 번째 창작집을 준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불발되었으며, 때문에 창작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도 상당하다.) 이 중 『생명의 과실』은,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단행본으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1 『생명의 과실』에는 등단작 「의심의 소녀」를 포함해 소설 2편, 시 24편, 수필(목차에는 ‘감상(感想)’이라 표기되어 있다) 4편이 수록되었다. 소설 「돌아다볼 때」나 시 「유언」, 「저주」, 「탄실의 초몽」, 「유리관 속에
- 관리자
- 2026-02-01
[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100년 전 멋진 신혼여행의 기억 -염상섭의 『해바라기』와 나혜석의 결혼 전후 박진영 노처녀 결혼 풍경 신부 나이 스물넷이면 노처녀인 시절이었다. 서른넷의 신랑이라고 첫혼인일 리 없었다. 암만해도 결혼식을 버젓하게 치러야 했다. 둘 다 유명 인사다 보니 결혼 소식이야 진작에 왁자그르르 퍼졌고, 신문에 신랑 신부 사진까지 실렸건만 그래도 아쉬웠다. 내친김에 결혼 기사 아래 청첩장을 내기로 했다. “저희는 목사 김필수 씨의 지도를 받자와 4월 10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정동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옵나이다. 이날에 귀댁 왕림의 광영 주심을 엎드려 빕니다. 경신년(1920) 4월 3일, 김우영 · 나혜석.” 신문에 청첩장을 광고한다고 발칙한 일은 아니다. 대체 뉘 집 아들딸인지 이름이 없는 게 문제다. 1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청첩장은 신랑 신부가 아니라 부모 이름으로 보내고 있지 않은가? 무릇 결혼이란 당사자들의 일이기에 앞서 엄연히 집안 대사인 까닭이다. 요즘에야 신랑 신부가 나란히 팔짱 끼고 걸어 들어가는 일도 흔하다지만 여태 청첩장 문화는 그대로 아닌가? 이만한 기세라면 혈기 넘치는 청년들이야 박수 칠 법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못마땅하다 못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둘 다 웬만한 정도가 아니라 내로라하는 집안 자식들이었다. 그나마 넷째, 다섯째 자식이라서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체 무슨 남부끄러운 짓이란 말인가? 시아버지는 기어코 폐백을 물리치고 술잔이나 기울이러 나갔다. 하기야 목사 주례에 답사랍시고 감히 신부가 한마디 아니라 일장 연설을 떠든 예식이었으니 결혼식이고 피로연이고 애당초 안 들어선 게 차라리 나은 지경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신랑 신부는 이튿날 식전 댓바람부터 양가에 차례로 들이닥쳐서는 신혼여행 떠난답시고 들썩여 놓고는 훌쩍 기차를 탔다. 신부는 두 주일쯤 예정이라고만 무지르고는 어디로 가는지 신랑에게도 도통 알려 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잡아끌다시피 했다. 이쯤 되고 보면 아무래도 웬만한 신혼여행이 될 리 만무했다. 신랑은 교토제국대학 출신의 변호사 김우영, 신부는 진명여학교 최우등 졸업생이자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출신의 화가 나혜석이다. 사진1. 나혜석 결혼사진 (1920) 출처: 수원시립미술관 남도 신혼여행 사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전에서 잠시 여관에 들렀다가 호남선으로 갈아탄 신혼부부는 한밤중에 목포에 도착했다. 열 시간 넘게 걸린 곤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인력거 잡아타고 곧장 여관에 들어서서는 하녀 이름부터 대는 신부가 영 수상쩍다. 초행길이 아니었던 셈이다. 신부는 3년 전 그 여관 2층에서의 하룻밤을 홀로 추억했고, 영문 모르는 신랑은 얼추 짐작이 나섰지만 섣불리 입을 열 계제가 아니었다. 아직 신혼 둘째 날 밤이었으니. 부산 유곽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하녀와의 사연인즉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신부는 3년 전 도쿄에서 다니던 학교를 빼먹고 홀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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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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