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대담 7회를 준비하면서
- 작성일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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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대담]
익명 대담 7회를 준비하면서
김남숙, 양안다
처음 익명대담을 시작했을 때 김남숙과 양안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재미있는 걸 해요." 논의 되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 가벼운 이야기도 마음껏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봤을 때 익명대담은 마냥 가볍지 않은 편이라 생각한다. 1회 '등단제도'를 시작으로 6회 '문단권력'까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6월호 익명대담의 주제는 '작가들의 사담'이었다. '작가들은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그리고 처음으로 정한 "가벼운" 주제였다. 김남숙과 양안다는 두 명의 작가를 섭외한 뒤 그들에게 자유롭게 떠들면 좋겠다고 전했다. 두 명의 작가는 잘 먹고 잘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녹취 파일을 받고 나서 양안다는 이것을 싣지 않기로 생각했고, 그 생각에 대해 김남숙과 함께 의견을 나눴으며, 결국 두 명의 작가에게 양해를 구한 뒤 녹취 파일을 삭제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참여에 응해준 두 작가의 신분이 노출되는 대화가 많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또한 예민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이 예민한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에 대해 여러번 생각했다. 충분한 오해의 여지가 있어 보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이번 대담은 늘 그렇듯 익명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익명으로 끝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여러 지점에 있어 신경 쓰지 못한 점에 대해, 그리고 시간을 내어 녹음 파일을 전해준 두 작가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괜찮다는 말을 흔쾌히 해주신 두 작가에게 죄송하고, 또 감사드린다.
김남숙과 양안다는 문단권력과 관계있는 주제가 아닌 익명대담에서도 평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작가들은 평론가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데 평론가는 정말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평론가는 이런 의견에 대해 억울한 입장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7월호 익명대담은 그간 익명대담을 통해 언급된 문단권력과 관계된 이야기를 평론가의 입장에서 들어보기로 했다. 역시 "가벼운" 주제가 되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다음 7월에 실린 대담은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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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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