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품은 도시, 광주
- 작성일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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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서포터즈]
시를 품은 도시, 광주
-제34회 용아 박용철 백일장 르포
문장서포터즈 2기 이시우
1. 초여름, 시의 정원에 들어서다
2025년 6월 21일, 나는 광주 소촌아트팩토리에 도착했다.
소촌아트팩토리는 광주 송정역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과거 농공단지의 관리사무실과 민방위대피소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 전시실과 도서실 등으로 개조한 공간이었다. 하얀색 컨테이너 철제 기둥과 유리천장이 혼재되어 있는 곳. 쌀과 무기가 쌓여 있던 공간이 지금은 광주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거점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날은 제34회 용아 박용철 전국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주제는 ‘초여름 시의 정원’. 이름부터가 한 편의 시 같았다. 문학제는 백일장과 문학 전시, 기념식, 문화 공연, 미디어아트 개막까지 다채롭게 이어졌다. 문학의 도시, 광주의 한편이 조용히 들썩이는 날이었다.
이번 백일장이 특별한 이유는 추계예술대학교 특기자 전형 인정 대회이기 때문이다. 백일장 수상 실적만으로 수시모집에 지원할 수 있는 특기자 전형은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인데(이제 단 2곳–중앙대학교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만이 남았다), 추계예대는 중앙대에 비해 비교적 많은 백일장들을 인정해 주고 있다. 문예창작과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들이 많은 만큼, 이번 백일장은 또 다른 입시의 관문이기도 했다.
2. 백일장의 풍경, 고요한 전쟁
문학제와 동시에 진행된 이번 백일장은 시화전 등 다른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즐기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날씨 문제. 계속되는 비로 인해 참여자들은 소촌아트팩토리의 다른 공간들을 둘러보기 힘들었다. 야외에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던 푸드트럭, 그 슬러시 간판 옆에 서 있던 사장님의 표정만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시간 배분의 문제도 있었다. 보통의 백일장은 오전에 이루어지고, 오후에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시 낭송 등이 진행되는데, 용아 박용철 백일장의 경우 오후에 시제가 발표되었다. 참가자들은 자기 글만 쓴 뒤, 각자의 우산을 펼친 채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래도 백일장은 백일장이었다. 초등부부터 일반부까지, 운문과 산문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나는 고등부 참가자로 광산구지역경제활력센터 건물 안을 배회했다. 지하 1층부터 민방위 교육장까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학생들이 가득했다. 고요한 전쟁 같은 분위기였다. 펜 끝은 바삐 움직였지만, 모두 말이 없었다.
시제는 “약속”과 “그림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단어를 곱씹었다.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쓰려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백이 두려웠다. 이상하게도 어떤 이야기를 써야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떤 글을 써야 ‘3등 이상의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자꾸 그런 생각들만 떠올랐다.

3.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요?” –참가자들의 목소리
백일장이 끝난 후, 데스크에서 다른 고등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이번 백일장에 참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서00 학생: 광주에 살며 평소에 시에 관심이 많았는데, 매년 광산구에서 용아 박용철 전국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00 학생: 평소에 백일장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참여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엽서시 문학 공모를 통해 용아 박용철 전국 백일장을 알게 되어 참여했습니다.
Q. 이번 시제가 어땠나요?
A.
서00 학생: 저는 이번에 시제 중 ‘그림자’를 통해 시를 썼습니다. 첫 백일장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되었습니다.
한00 학생: 저는 시제가 간단해서 오히려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다른 참가자들과는 차별성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Q. 이번 백일장이 추계예대 특기자 전형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A.
서00 학생: 아니요, 몰랐습니다.
한00 학생: 네, 문예창작과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여러 특기자 인정 백일장들을 생각하며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4. 한 사람의 시인, 한 도시의 기억
이 백일장의 배경엔 ‘용아 박용철’이라는 이름이 있다.
광산구 소촌동 출신의 시인. 일제강점기, 「떠나가는 배」를 비롯한 작품을 남겼고, 김영랑과 함께 순수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일제에 맞선 저항시였는가 하면, 그것보단 오히려 이념보다 언어의 결을 더 깊이 고민한 사람이었다. 번역 작업에도 심취했고, 생전보다는 사후에 더 많이 읽힌 시인. 우리는 그를 기리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
5. 시가 입시가 되는 풍경 속에서
백일장의 입구에 서 있을 때, 나는 시보다 먼저 보이는 것들을 마주했다.
에코백을 멘 학생들, 피곤한 얼굴들, 바닥에 주저앉아 대기 시간을 버티는 아이들. 대부분은 집에서 먼 길을 달려왔고, 대부분은 수험생이었다.
대학 백일장과 특기자 인정 백일장은 대개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시작해 오후 2~3시에 끝난다. 여기에 오는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대학의 특기자 전형에 해당한다는 정보는 은근히 공유된다. 그 사실이 백일장을 무겁게 만든다. 웃는 얼굴은 적다. 당일 시상식에서 울며 돌아가는 학생은 더 많다.
언제부턴가 상은 ‘3등 이상의 상’으로만 의미를 갖게 됐다.
그 아래 상은 이제 ‘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시대가 되었다. 어떤 학생은 수상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의자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시를 써서 울었다기보단, 시로 입시를 해야 하기에 울었던 듯했다.
백일장이 우리에게 시를 쓰게 하는 걸까, 아니면 시를 쓰게 만들도록 강요하는 걸까. 일부 예술고등학교와 문예 학원에서는 백일장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도록 가르치고, 강요한다. 입시를 위해서다. 그렇다면 문학은 결국 입시를 위한 것일까? 고교 문학은 입시를 마치고 나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한 줄이라도 진심을 담은 학생이 있다면, 그 백일장은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은 잊힐지 몰라도, 진심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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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서포터즈] 2025년에 시작되어 1기 '몽글'에 이어, 2기 '쓰담' 6명이 새롭게 선정되었습니다.자신의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문장의 든든한 서포터들과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문장서포터즈가 담아낸 마음을 쓰다듬는 이야기들을 문장웹진 '모색'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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