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여름나기 일기
- 작성일 2025-10-01
- 댓글수 0
[문장서포터즈]
나만의 여름나기 일기
-《문장웹진》 다시 읽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소리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을까요? 저의 첫 번째 《문장웹진》 작품 「도슨트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이후 두 번째로 인사드립니다. 김소리입니다.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어요. 이런 무더위 속에서 무기력한 기분이 들 때도 글을 쓰는 일만큼은 그만둘 수 없네요. 저는 글을 쓰는 일만큼 읽는 일을 좋아하는데요. 글을 ‘읽는다’는 것은 좁은 세계에서는 작가와, 넓은 세계에서는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는 여러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문학뿐만 아니라 에세이나 일기 등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쓴 글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를테면, 여름의 무더위 속 일상을 적은 글에서 우리는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에 이와 관련된 나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겠네요. 그리고 글을 읽은 뒤 타인과 감상을 공유하거나 비슷한 주제의 다른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하나의 경험이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곤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세계는 자전을 시작하지요.
그럼 우리는 글을 쓸 때 어떤 방식으로 읽게 할 수 있을까요? 나와 타인의 세계가 어우러져 짝이 맞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시작점은 어디서 기인할까요? 글도 하나의 콘텐츠고, 콘텐츠를 보여 주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특히 요즘은 디지털 콘텐츠나 오프라인 이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개인적으로 글을 읽는 방식도 풍부하게 확장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문장웹진》의 기획들도 이처럼 글을 다양하게 소비하기 위한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따라서 이번 두 번째 기획에서는 이전 《문장웹진》의 기획 중 한 가지를 다시 읽고, 관련된 저의 경험을 기록하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제가 다시 읽은 《문장웹진》은 강영숙 작가의 「인디언 썸머」인데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를 읽고 저만의, 그리고 여러분만의 여름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디언 썸머’는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인 10월 말~11월 중순경에 나타나는 고온 현상’을 의미해요. 여름은 덥죠. 무더위가 지속돼요. 저는 땀이 많은 사람이라 한여름 대낮에 길가를 걸을 때마다 무엇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는데요. 그래서 제가 지나온 여름을 돌이켜 보면 그저 ‘덥다’는 감상 말고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들 없이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 여름이 가장 길다고들 하는데 우스운 이야기지요. 더워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은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계절 감각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지요. 그중에서도 여름과 겨울은 봄과 가을에 비해 온도 차가 커서 ‘계절감’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작품에서 활용되고 있어요. 앞서 언급했듯 저는 여름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편이라 영화 등의 매체에서 감각적인 여름을 묘사할 때마다 경험한 적 있는 환상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요. 하늘보다 새파란 나뭇잎들이 무더운 바람에 얕게 흔들리고,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밤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는 장면들이 제게는 닿을 수 없는 환상인 동시에 언젠가 경험해 본 적 있는 과거 같기도 합니다. 분명 이번 여름에도 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기 바빴는데 말이죠. 그만큼 무더위가 주는 강렬한 감각이, 그 감각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이미지가 수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것이겠지요.
수많은 웹진들 중 「인디언 썸머」가 제게 특별했던 이유도 비슷합니다. 그저 지나 보낼 수 있는 일상을 조명하는 일은 곧 나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강영숙 작가의 「인디언 썸머」 속에서 ‘나’는 헬스 센터에 방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이렇게 말하죠.
그날 밤 더위는 잊혀지지 않는다,
헬스 센터에 방문하고, 맥주를 마시는 일은 언제나 경험할 수 있는 일임에도 특정한 하루를 재조명함으로써 잊히지 않는 무더위와 함께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되었다고 해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재조명했다는 점입니다.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는 일은 피곤해요. 혹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바쁘죠. 저만 해도 여름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것처럼 기억하기 어려운데, 늘 비슷한 일상 중 하루를 집요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러나 모든 글은 이러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곤 하지요. 우리가 보내는 매일은 비슷할지언정 분명 달라요. 그러니까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는 거고요.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일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할 수 있지만 굳이 ‘오늘’의 내가 했기 때문에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이 있지요. 특히 「인디언 썸머」는 이러한 일상을 겨울에 돌이켜 보며,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계절 감각과 그날 내가 그곳에 있었기에 경험할 수 있던 순간들을 조명해요. 그리고 여름이 지난 겨울에 다시 생각하죠. 그날 밤 더위는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구나. 이날을 계기로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겠구나, 하고요.
스무 살 여름에 이상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열아홉 막바지에 갑작스럽게 역사 선생님에서 작가로 진로를 변경하고, 문예창작과로 원서를 넣은 대학에서 전부 탈락하고 말았지요. 절망할 시간도 없이 내년의 재시험을 준비하던 날이었어요. 그 시절 제 방은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매우 비좁았는데, 어디선가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어요. 창문 바깥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 앞으로 나뭇가지가 작게 흔들리고 있었죠. 비좁은 방 안에서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틈이 저를 밖으로 불러냈어요.
재수생 시절에는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에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반바지,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신은 핑크색 나이키 슬리퍼를 끌고 다녔답니다. 그 착장은 어느 날 밤 종종 저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곤 했어요.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지만, 그렇기에 어디든 갈 수 있었지요. 느리게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을 지나 앞으로 쭉 뻗은 대로변으로 향했어요. 대로변 끝 사선 도로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차가 많이 다니는 길목이었는데 그 시간대에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어요. 고작 몇 시간 지났다고 사람이 가장 많던 길목에 지금은 나 혼자 서 있다니. 기분이 이상했죠. 시골이라 건물에도 불이 다 꺼져서 보는 곳마다 어두웠어요. 그러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었고요. 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사선 도로에 몸을 뉘었어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눈밭에 누워 담소를 나눌 때, 저는 무더운 여름날 밤 별들이 떠 있는 밤하늘 아래 양팔을 뻗고 누웠답니다. 무더운 숨이 폐부를 지나 몸 곳곳으로 스며들고, 동시에 두 눈이 크게 떠졌어요. 밤하늘을 똑바로 바라본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내가 나로서 쓸 수 있겠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남기고 싶어지고,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졌죠.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어. 너도 살아 있니? 잘 숨 쉬고 있니? 하고서요.
저만의 ‘인디언 썸머’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써 내려간 이 글을 언젠가의 겨울에 다시 읽어 보겠어요. 그리고 다시 올여름을 멋대로 상상하고, 다시 글을 쓰겠지요.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여름에 쓰일 여러분의 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필, 반드시 여름이어야만 했던 지난날의 경험이 미래에서 어떻게 펼쳐질까요? 기회가 된다면 저에게도 꼭 여러분만의 ‘인디언 썸머’를 들려주세요. 언제나 찾아오실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환대하겠습니다. 그럼, 조금은 덜 무더운 계절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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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서포터즈] 2025년에 시작되어 1기 '몽글'에 이어, 2기 '쓰담' 6명이 새롭게 선정되었습니다.자신의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문장의 든든한 서포터들과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문장서포터즈가 담아낸 마음을 쓰다듬는 이야기들을 문장웹진 '모색'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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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리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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