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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이방인

  • 작성일 2026-05-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날마다 이방인


진보라


  그날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하다. 서울의 한파가 절정에 달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따뜻한 부산에서는 볼 수 없는 함박눈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배정받은 방의 문 앞에 내 이름이 적힌 ‘소설가의 방’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본래 호텔 객실이란 철저히 익명의 장소다. 하루, 혹은 며칠 단위로 주인이 바뀌며 앞선 이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는 것이 그곳의 가장 큰 책무일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호텔이라는 공간이 지닌 엄격한 불문율일 테고. 그 견고한 익명의 공간이 기꺼이 나를 제 일부로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를 위한 소설가의 방은 마치 이 공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왔다는 정중한 방증 같았다. 집이 있는 부산을 떠나 이토록 긴 시간 서울의 심장부에 거처를 둔 것은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창가로 다가가, 흰 눈의 눈부신 비행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바닥에 내려앉은 부드러운 눈이 세상을 덮으며 명동의 소음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처 없이 서울을 떠도는 유랑자가 아닌, 비로소 머무는 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호텔 투숙객의 90퍼센트는 외국인이었다. 로비에는 늘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들렸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매일 새로운 얼굴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짧으면 이틀, 길어야 일주일 사이에 짐을 싸서 떠났다. 누군가 잠시 머물다 흔적 없이 증발하는 곳. 이 공간의 본질은 본래 머무름이 아니라 스쳐 감에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호텔의 배경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호텔 직원들에게 나는 수많은 익명의 투숙객 중 하나였을 테니. 나 역시 그들의 친절한 마스크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던 어느 아침, 직원 한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작가님, 오늘도 일찍 나가시네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익숙한 이를 발견한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게, 날마다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나는 어쩌면 일종의 균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방 번호 뒤에 숨지 못하고, 익숙한 얼굴과 기척으로 호텔이라는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과, 나라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위화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역설적으로 내가 여전히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 들인 시간보다, 내가 그 공간을 홀로 기억해 온 시간이 훨씬 깊고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용 세탁기가 몇 시에 제일 붐비는지 체감했고, 조식 식당 창가로 들어오는 서울의 아침 볕이 몇 시쯤 따스해지는지를 알아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지나간 수십 개의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어제 본 눈매를 찾아내기도 했다. 나는 이 공간을 서서히 파악하며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지만, 공간은 이제야 겨우 내 이름 석 자를 발음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투숙객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대다수가 여행자인 그들은 가볍다. 떠나고, 도착하고, 다시 떠나는 그들의 행보에는 즐거움과 설렘이 묻어 있다. 그러나 홀로 남아 기억하는 쪽은 그 공간과 시간, 스쳐 간 얼굴들을 온전히 짊어지고 가야 한다.

  결국 기억하는 쪽이 늘 이방인이 된다. 내가 공간에 쏟은 마음의 크기와 공간이 내게 내어준 자리의 크기는 결코 평형을 이룰 수 없었다. 일방적인 친밀감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무언가에 품는 애틋함을 누군가는 영원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 따스한 환대 속에서도 날마다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방인의 삶이 늘 쓸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 적을 둔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이곳에 머물던 이들과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염려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차마 챙기지 못했던 얼굴들을 마주하며, 내가 조금이나마 그들을 도울 수 있음에 벅찬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부르면 곧장 달려 나갈 수 있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이 도시에 더 이상 객이 아닌 다정한 이웃이 되어가고 있었다.


  6주라는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써야만 하는 이야기를 썼다. 그것이 내가 이 호텔로 들어온 이유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작품은 오직 그곳의 공기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물리적으로 절연된 자리, 매일 아침 초기화되는 풍경 속에서 나는 가장 정직해질 수 있었다. 

  이곳에는 진짜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해방감과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이 모니터 속 세상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이방인의 감각은 곧 예민함이었고, 그 예민함이 잠자던 문장들을 바닥에서부터 밀어 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가의 방이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입주 기간이 끝나가던 어느 아침, 나는 호텔 밖에서 들려오는 명동의 소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았다. 익숙함이란 얼마나 쉽게 ‘실체’로 둔갑하는가. 우리는 곁에 오래 머무는 것들을 당연한 권리라 여기고, 반복되는 형태를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 믿는다. 고향과 일상이라 부르는 것들 역시 결국 내가 먼저 기억하기로 선택한 기억의 조각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꿈결 같던 시간이 지나고 짐을 쌌다. 내가 떠난 뒤 호텔은 지체 없이 다음 손님을 맞았을 것이다. 내 이름이 적혀있던 안내문은 수거되어 서랍 깊숙이 들어가거나 폐기되었을 것이다. 나를 알아보던 직원들의 기억 속에서도 내 얼굴은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얼굴들에 덮여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것이 공간의 순리이며, 호텔이라는 장소가 가진 서글픈 미덕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호텔의 고요함과 아침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던 서울의 차가운 공기, 그 이방의 감각 속에서 한 줄씩 글을 써 내려간 날들을. 세상이 나를 잊는 속도보다 내가 세상을 간직하는 속도가 언제나 더 느리기에, 나는 그곳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창밖의 세상은 속도에 밀려 끊임없이 단절되고 있었다. 열차가 속력을 높일수록 지상의 모든 것들은 과거가 되어 뒤편으로 밀려났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열차가 굉음과 함께 찰나의 잔상으로 스쳐 가고, 도로 위를 나란히 달리던 차들은 잠시 기차를 뒤쫓는가 싶더니 이내 시야 밖으로 탈락해 버렸다. 

  길의 양옆으로 무수한 풍경이 명멸했다. 어떤 마을은 덧없이 느리게, 어떤 들판은 비정한 속도로 사라졌다. 철로로 나뉜 세상은 그 자리에 시간마저 묶어둔 것처럼 보였다. 철로를 경계로 세계는 매 순간 조각나고 있었지만 기차는 기억하지 않고 그저 달릴 뿐이었다. 나는 지나쳐 온 이름 모를 마을과 짧게 눈을 맞춘 들판의 잔상을 하나하나 내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의 바다와 거친 말투,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세계의 기준점으로 삼게 된 것은 필연이 아닌 우연한 축적의 결과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눈을 떴다면, 나는 한강의 흐름을 모태(母胎)로 여기며 명동의 소음을 안식의 노래로 들었을 것이다. 고향이란 어쩌면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둘지 무의식중에 내려버린 첫 번째 결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 자뿐만 아니라, 변해가는 세상을 지켜보며 제자리에 남은 자조차 결국은 이방인이다. 소중한 것을 기억하려 애쓰는 한, 우리는 필연적으로 잊어버리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언젠가 서울이 내 고향이었던 적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홀로 기억하는 쪽이 이방인이라면, 이방인이란 결국 세상을 더 많이 품고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잊는 쪽의 가벼움 대신 기억하는 쪽의 고독을 선택한 대가는 외로움이지만, 그 무게는 이내 나의 글이 되고 나의 생이 된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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