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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

  • 작성일 2026-06-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1)


서윤빈

 

  우선 하나 고백하면서 시작하겠다. 나는 여태 진실한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없다.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적어도 일곱 번은 에세이 내지는 에세이격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을 썼다는 뜻인데, 그중에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이는 몇 편의 글에서도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할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고, 인기가 없다는 건 내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건 작가로서 죄를 범하는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이 글에서는 거짓말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원고 청탁 내용 자체가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 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레지던시 일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소설가의 방’이 10년이 넘는 연식을 가진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6명의 작가가 머물렀다고 치면 대충 추산해 봐도 여태 120명 이상의 소설가가 호텔 프린스에 머물렀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무언가를 꾸며내어 쓴다면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글이 턱 막혔다. 망상과 기현상 없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일단은 내가 벌인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자. 틀렸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유튜브 영상을 몇 편 찍은 것, 장편 소설 원고를 쓴 것, 가능한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 애쓴 것 정도가 전부였다. 남들 다 한다는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명동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트를 갈아주는 새하얀 침대의 느낌이 꽤 각별하기는 했으나… 그거야말로 120여 명의 작가가 다 아는 지루한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이기만 할까? 지금 객실에 관해 생각하면 객실의 공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먼지 냄새와 함께 감돌던 어떤 끈적한 기운. 그 기운은 내 몸에 부드러이 달라붙어 나를 잠으로 이끌곤 했다. 혹시 그 기운이 수많은 작가가 거쳐 간 흔적이었던 건 아닐까? 얼핏 깨끗해 보이는 객실의 벽지와 침대 시트에 사실 앞서 머물렀던 작가들의 땀과 한숨, 권태가 지층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작가 레지던시답게 ‘소설가의 방’ 중 한 객실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귀신 역시 축적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귀신은 한밤중에 슬쩍 나타나 소설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속삭이겠지.

  — 특별한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 너도 알잖아.

  물론 내 방에는 귀신이 나오지 않았으니 귀신이 정말로 어떤 스타일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오해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나도 서운하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귀신을 만나고 싶었다. 내 인생에도 남들에게 이야기해 줄 만한 놀라운 일이 한 번쯤은 생기기를 바랐고, 한편으로는 귀신을 만나면 점점 무기력해지는 내 정신이 번쩍 들 것만도 같았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귀신에게 이런 걸 바라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시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의 간절함으로 타자기를 사서 호텔에 체크인했을 정도로 말이다.

  내게 타자기는 비현실로 가는 매개체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서 주인공은 겨울 동안 폐쇄된 호텔의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타자기로 소설을 쓰다가 미치광이 살인마가 된다. 코엔 형제의 작품 <바톤 핑크>의 주인공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할리우드의 호텔에 머무르며 타자기를 두드린다. 그는 이내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웃기게도 그게 또 영감이 되어 글이 술술 풀린다. 폴 오스터는 타자기로 빵도 구웠다. 요컨대 핵심은 타자기다. 노트북을 들고 호텔에 체크인하는 요즘 영화에서는 귀신을 만나더라도 그게 노트북 탓인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 않나. 게다가 생각해 보면 타자기에는 장점도 많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니 집필 이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쓴 글을 프린트하지 않고도 바로 볼 수 있다. 콘센트 위치가 번거로워도 충전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다. 기원의 의미에서나 실리적인 의미에서나 내게는 타자기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소설가의 방 문
침대 방 내부


  시작은 좋았다. 내게 배정된 방은 305호였다.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를 떠올리며 나는 내게도 놀라운 만남과 인연(적어도 귀신)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싱글 베드 두 개가 자리한 방은 깨끗했고, 화장실에는 욕조도 있었다. 책상이 따로 없어서 화장대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는 사소한 이슈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나는 가져온 택배 상자를 뜯었다.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구매한 타자기를 나는 그날까지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보관하고 있었다. 타자기는 짙은 하늘색 플라스틱 케이스와 일체형이었으며 꽤 무거웠다. 뚜껑을 힘주어 열자 쇠로 만들어진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지 않았기에 종이를 끼우고 첫 문장을 쓰기까지 약간의 연구가 필요했다. 나는 더듬더듬 첫 문장을 써 보았다.

  아ㄴ녀ㅇ하세요, 호ㅏㄴ여ㅇ하ㅂ니다.

  철컥거리는 경쾌한 소리와는 달리 종이 위에 찍힌 문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디지털 키보드와 달리 타자기에는 내가 자음을 입력할 때 이것이 종성인지 초성인지 유연하게 구별할 능력이 없다. 나는 망가진 글자들을 입력해 가면서 받침과 쌍자음, 겹받침을 그럴듯하게 쓰는 법을 익혔다. 잘 쓰지 않는 겹받침을 입력하기 위해서는 버튼을 무려 다섯 번이나 눌러야 했지만, 대개의 경우 디지털 키보드와 비교해 입력 절차가 하나나 둘 정도 추가되는 정도였다. 그쯤이면 낭만의 값으로 흔쾌히 지불할 만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깥이 어둑어둑했다. 비록 제대로 된 글은 전혀 쓰지 못했지만 타자기는 벌써 자신의 효용을 입증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이토록 몰입해 본 것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그 뒤로 며칠 간은 글을 쓰며 보냈다. 귀신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작은 방을 가득 채우는 타건음과 문장이 종이 끝에 도달했을 때 울리는 땡—하는 소리가 사뭇 만족스러웠다. 타자기로 열심히 종이 한 장을 채우면 워드 프로세서로 쓸 때와는 달리 원고지 4매 정도의 분량만 나온다는 점이나 글자를 선명하게 입력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이 뻐근하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는 점은 사소한 불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릇 사건이란 모든 게 다 잘 풀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벌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고, 그 뒤로 내 집에는 한 번도 욕조가 있었던 적이 없다. 객실 화장실에 욕조가 있는 걸 발견한 첫날부터 나는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영감을 얻는 상상을 했다. 그날은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나는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타자기 앞에 앉았다. 단락 하나가 풀릴 듯 말 듯한 임계점이었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은 일종의 메타 소설로 주인공이 게임의 메인 캐릭터를 구해내 현실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만약 게임 캐릭터가 자신이 게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캐릭터는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꼭 시뮬레이션 우주론 같기도 한 내용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새끼발가락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드디어 초자연적인 현상이 시작되는 것인 줄 알았다. 드디어 내 방에 워터홀(Water-hole)이 열렸나? 객실 바닥에 ‘디랙의 바다1)’가 형성되면서 그렇게 귀신이 나타나는 것인가? 하지만 고개를 숙여보니 바닥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수돗물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욕조에 물을 받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과연 물은 화장실에서부터 꿀렁꿀렁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슬리퍼를 벗어두고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가까워질수록 발바닥에 닿는 물이 따뜻해졌다. 문을 열자 가벼운 저항감이 들면서 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정강이 아랫부분까지 젖었다.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고, 바닥은 이미 물바다였다. 전등의 노란빛이 수증기에 맺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지점에서 욕조 구조에 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욕조는 직사각형으로 삼면이 욕실 벽에 딱 달라붙어 있다. 사람은 세면대 쪽으로 난 긴 면으로 드나드는 구조인데, 그 긴 면에는 거의 천장까지 빈틈없이 이어지는 유리 벽이 설치되어 있고 한가운데에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 있다. 나는 물을 틀어놓은 다음 그 문을 닫아놓고 욕실을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유리 벽으로 된 닫힌 공간 안에는 내 키만 한 물기둥이 있었다. 문 아래쪽의 작은 구멍이 물을 열심히 쏟아내고 있지 않았더라면 물기둥은 내 키를 넘겼을지도 몰랐다. 



  나는 물기둥에 완전히 압도당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평생 이 정도의 물은 감당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도꼭지를 잠그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만 했다. 나는 욕실 문을 닫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욕조의 유리문은 살짝 밀어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왼쪽 어깨를 문에 붙이고 힘차게 밀어붙였다. 문이 조금 열리면서 마치 바다에서 건져낸 사람을 인공호흡하는 데 성공했을 때처럼 물을 켁, 켁,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자  물은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왔다. 나는 문 손잡이를 부여잡고 조난자처럼 간신히 버텨냈다. 마침내 수도꼭지를 잠갔을 때, 욕실 안에는 무릎 높이의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참사였다. 솔직히 그냥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욕실 문을 열면 사태가 더 악화될 터였다. 다행히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있었으므로 나는 이미 흠뻑 젖은 옷을 벗어 욕실 문틈을 막았다.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광경 속에 유일하게 천연덕스러운 것은 욕조였다. 욕조 안에는 딱 욕조의 높이만큼 물이 차 있었다. 나는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원래 목적했던 바대로 목욕을 하기로 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자 내 몸의 부피만큼 물이 넘쳤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곳에서 귀신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이미 현실만으로도 벅찬 사람에게는 귀신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한참 뒤에 목욕을 마치고 욕실 밖으로 나왔을 때, 방에는 발톱 높이까지 오는 엷은 물의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방이 퍽 건조했던 덕에 외출하고 돌아오니 물은 다 말라 있었다. 그러니까 뭐 결과적으로 별일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금세 일상을 회복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날 이후로는 타자기를 잡아도 아무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1)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 <샤이닝>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스티븐 킹에게 연락해 던진 질문.

1) 진공을 무한한 전자의 바다로 보는 이론적 모델. 전자는 음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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