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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처럼 마음을 울리는 소설의 목소리

  • 작성일 2024-11-01
  • 조회수 325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①

   스톡홀름과 쿨투어후셋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스웨덴까지의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인천에서 도하까지 10시간, 다시 스톡홀름발 비행기에 탑승하여 7시간을 더 날았다. 하늘길에서 20시간을 보낸 후여서인지 유럽의 공기는 달콤했다. 

   스톡홀름은 통나무(Stockar)와 섬(Holmar)의 합성어이다. 1255년 무렵 구시가에 통나무로 성을 쌓아 도시의 기초를 마련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13세기 중반 현재의 감라스탄 지역의 언덕 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요새를 만들고 도시를 형성해 발전시켰다. 방문하기 전, 이 도시는 내게 심리학 용어로만 존재했다. 1973년 8월,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고, 이때 인질로 잡혔던 한 여성이 강도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다.



도서관 앞 광장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세르겔 광장은 퇴근하는 시민들로 붐볐다. 늘씬한 키와 금발의 하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이곳이 이국임을 실감케 했다. 남녀 모두 수수한 옷차림으로 큰 가방을 메거나 등에 진 사람들이 많았다. 왕궁과 의회가 있는 감라스탄, 철도와 지하철노선이 교차하는 센트럴역 등 스톡홀름의 모든 길은 이곳 광장으로 통한다고 한다. 

   쿨투어후셋도서관의 외관은 쇼핑몰처럼 보였다. 광장 분수 안에 세워진 자수정 탑 같은 조형물 때문인지도 몰랐다. 모든 차는 분수를 중심으로 돌아 나갔고 건물 앞에는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 상업 시설이 아닌 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을 보니 이 나라에서 도서관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막 트램이 도착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쿨투어후셋도서관 내부



   쿨투어후셋은 ‘문화의 집’이란 뜻에 걸맞게 공연장, 전시 공간, 6개의 도서관으로 이루어졌다. 한 건물에 6개의 도서관이 있다니. 안으로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체스판이었다. 스웨덴의 도서관이라면 반드시 마련된 공간으로, 체스대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공원에서 바둑 두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젊은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어울려 체스를 즐기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초록과 연두 그리고 오렌지로 채워진 가구로 인해 도서관이라기보다 서점 같은 분위기였다. 낮은 서가에 진열된 책과 빽빽하게 채워진 CD, 감각적인 책꽂이에서 고른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의자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또한 꽂힌 책들이 잘 보이도록 세심하게 조명등을 설치해 두었다. 서가 사이를 걷자니 책들이 말을 걸어오고 음악이 들려왔다. 단지, 걸었을 뿐인데‧‧‧. 다 읽고 난 책을 돌려 읽을 수 있도록 기증하는 드럼통도 이채로웠다. 

   위층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라바도서관, 10대 초반 사춘기를 위한 티오트레톤,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 있었지만, 해당 나이를 초과한 우리 일행은 아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책은 겨우 13권뿐으로 일본 만화보다 턱없이 적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이튿날, 스톡홀름 대학살의 현장인 감라스탄 대광장을 찾았다. 덴마크의 지배를 받던 1502년, 바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82명이 처형을 당한 곳이다. 비통한 역사는 국경을 뛰어넘어 한때 식민지의 고통을 겪었던 동양의 관람객을 한마음으로 묶어 주었다. 서글픈 기분으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었다.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혼재해 13세기에 지은 왕궁을 한 바퀴 돌고, 가장 좁은 골목인 모르텐 트로치스그렌에 섰다. 길게 놓인 계단은 위로 갈수록 좁아져 통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한국문화원 직원들과의 면담이 잡혀 있어 서둘렀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전형적인 스웨덴 아가씨가 맞아 주어 잠시 당황했다. 한국문화를 즐길 수 있는 2층에는 갓과 한복이 걸려 있고, 개다리소반에 차려진 찻상도 보였다. 어쩌면 한국적인 것은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소멸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어로 된 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을 들으며 서가에 진열된 책을 둘러보다 낯익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내 수필집 『라그랑주점』이었다. 감격스러워 경위를 알아보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보낸 것이었다.



한국문화원에 전시된 『라그랑주점』



   한국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스톡홀름대학교의 쏘냐 교수를 만났다. 한국어는 시민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 교수와 함께 스웨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청소년 소설가가 상주작가로 나가 있었다. 한국문화원과 협업하여 번역 대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 책 알리기에 열심인 것을 보고 어깨가 한 뼘 올라갔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대적인 공공도서관 체계를 만들고 주도한 도서관 대국은 미국이었다. 구소련에는 도서관이 도시마다 잘 갖추어졌지만 나라가 몰락하면서 함께 무너졌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자 방에 몇백 권의 책을 모아 두고 돌려 읽는 형태로 시작했다. 미국은 경제 대국이지만 복지국가라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구소련은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가 없었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 도서관을 벤치마킹한 스웨덴은 복지국가가 되었다. 

   스웨덴은 아바의 나라이다. 1972년에 4명의 멤버로 결성된 이 혼성가수 팀은 2년 만에 유럽 최대 팝 음악 축제인 유로비전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맘마미아>, <댄싱퀸> 등의 노래는 동명의 뮤지컬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곳엔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도 많지만, 세계적인 프로듀서들도 많다. 겨울과 밤이 길고 낮에도 해를 보기 어렵기 때문일까. 우울한 시간을 견디는 방편으로 책과 더불어 음악을 함께한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음악 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은 역시 도서관이다.

   남부 유럽이 성당 중심이라면 북유럽의 한가운데는 도서관이 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만들어 내는 공간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재봉틀 앞에 앉은 남자도 흔하지만, 여자라고 보살핌을 원하지도 않는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삶은 도서관에서 함께 길러졌을 것이다.

   내일 오후엔 예테보리로 향하는 기차를 탈 예정이다. 스톡홀름의 조용하고 맑은 밤거리를 걸으며 유럽 도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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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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