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 작성일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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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현장 방문 및 <한-캐나다 앤솔로지 프로젝트: 연결의 속삭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 북토크>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20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방문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공존으로의 여정’이었어요. 이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 그 밖에 다양한 사회적 갈등 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공존이란 단순히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타자를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으며, 나 역시 타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에서 출발해요. 문학과 예술, 자연과 인간,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대화하는 장이 바로 이번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었습니다.


20여 곳의 출판사가 참여한 만큼,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도서 판매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기후 위기 등과 관련된 사회학 서적부터 다양성과 포용력을 주제로 한 동화책까지 다양한 도서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며, 업사이클링 굿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는 제10회 <상상만발책그림전>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컬러링 체험존도 한창이었어요.
이외에도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포럼들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10월 12일 서교스퀘어에서 진행된 <한-캐나다 앤솔로지 프로젝트: 연결의 속삭임>에 참여해 보았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작가가 국경을 초월하여 ‘다양성과 포용’을 주제로 협업한 앤솔러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를 출간했으며, 기념행사와 책 판매를 이번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진행했습니다. 이번 앤솔러지에는 한국 작가 김멜라, 김애란, 윤고은, 정보라와 캐나다 작가 리사 버드-윌슨, 얀 마텔, 조던 스콧, 킴 투이가 참여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들은 <연결의 속삭임>에서는 박혜진 평론가가 진행을 맡았으며 김멜라, 윤고은, 조던 스콧, 킴 투이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가들의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의미와 힘,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먼저 「판사님」이라는 단편소설로 엔솔러지에 참여하신 킴 투이 작가의 이야기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킴 투이 작가는 난민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사랑과 포용의 가치를 말씀하셨어요.
“퀘백의 난민 캠프에 있던 어린 시절에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나는 아시안으로서 그게 너무 낯설게 느껴졌어요. 나는 난민이었고 더러웠고 형편없는 몰골이었는데, 그들은 나를 망설임 없이 안아 주었고 10살 때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가 본다면 나는 똑같이 안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때 난 내가 동화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프랑스어 첫 단어를 발음하기도 전부터 이미 캐나다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난민 캠프에서 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존엄성, 인간성을 돌려주었고 나는 그때 캐나다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번 엔솔러지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자신감은 이때 받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건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사랑이고, 난 캐나다에게 이 사랑을 동일한 방식으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처럼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주제에 이어 김멜라 작가는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이라는 단편소설로 참여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흥미로운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배꼽에서 빛이 나오는‘크리스마스’인데요, 이 인물의 설정에 대해 이야기한 대목이 재미있었습니다.
“배꼽에서 빛이 나오는 건 주인공 크리스마스가 선택하지 않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피부색, 성별, 경제적 지위 등 우리가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 몸이, 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스스로 찾을 수 있고, 내가 의미를 찾음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왜 하필 배꼽을 선택했냐면, 탯줄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탯줄과 연결된 순간은 분명히 온기가 있던 상황, 차별 없는 사랑의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배꼽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다음으로 「보라색 뗏목」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한 조던 스콧 작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말더듬증을 바탕으로 언어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들려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솔직하게 다가온 이야기였어요.
“제가 어릴 때 어머니는 숲에서 나를 안내해 주셨는데, 갑자기 멈춰 서서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도 했고 나방이나 이끼를 보여 주시기도 했습니다. 설명 없이 그저 보여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을 때 제 삶에 있어서 마법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죠. 제 아들을 안고 숲을 거닐면서 제 어머니가 그랬듯, 아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을 더듬는 사람으로서 모든 소리가 고통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제가 언어를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비밀이에요. 숲을 걸으며 강, 나무껍질 등 자연을 보며 입안에서 어떤 폭력과 고통이 생성되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그 모든 걸 아들에게 보여 주면서 제가 그의 언어적 세계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말 더듬는 걸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고 제 비밀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제 아들에게 세상을 안내해 주는 게 이번 엔솔러지였습니다. 세상을 담되 제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제 말더듬이 증상도 알려 주고 싶지 않았어요. 자연을 바라보며 배우는 첫 번째 언어가 말을 더듬는 것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은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신경 씁니다. 저 역시도 저라는 개인으로서는 뭐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아들과의 관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달라지죠.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을, 내가 말을 더듬는지 안 더듬는지에 대해 신경 쓰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학이란 언어와 내 신체가 밀접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끝으로 단편 소설 「테니스나무」로 엔솔러지에 참여한 윤고은 작가의 차례였습니다. 뭐든 점점 빨라지는 오늘날에 대해 말하며, 문학을 통해 우리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아야 하진 않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 주신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효율적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걸 어느날 깨달은 적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테니스나무」에는 비효율의 끝판왕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마라톤 결승 통과를 앞두고 자신이 지나쳤던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역주행하는 주인공이 나와요. 이런 찰나의 순간 때문에 예측 가능했던 내 선택들을 무참히 포기하는 게 인간적인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찰나의 순간이라는 건, 어느 날 제가 테니스장 옆을 지나가다가 테니스공 몇 개가 빛을 받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매번 지나가던 길인데 이상하게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마치 라임 열매들처럼 테니스공 껍질을 벗기면 과육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옆에 나무가 있었기에 아 저건 테니스나무에서 떨어진 테니스열매구나, 이게 나를 홀리는 찰나의 순간이구나, 했던 적이 있어요. 이렇게 지나친 순간, 관중 속의 어떤 얼굴, 내가 확인하지 않은 어떤 것이 나중에 불어나서 나를 훅 치고 지나가서 후회하면 어쩌지, 싶은 걱정에 저는 뒤를 자주 돌아보는 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뒤흔드는 순간들이 인간에게는 강렬하게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보통 이런 순간들을 지나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작가로서 저는 제가 지나친 것들과 언젠가 조우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윤고은 작가의 마지막 말이 가장 공감이 되었습니다. 내가 지나친 것들과 언젠가 조우하게 될 거라는 것, 그때 후회해도 늦을 거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빨라지기만 하는 세상 속에서 멈춰 서서 뒤를 자주 돌아봐야 한다는 것. 이런 이야기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이번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주제와도 연관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공존으로의 여정’을 해야만 한다면 천천히 걸으면서 뒤를 자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왔던 길을 역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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