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 작성일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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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mag’이라는 계정을 만들었어요.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도 아무 생각 없이 1초 만에 지었습니다. 곧 팔로워가 빠르게 늘더니 2년 만에 10만 팔로워를 달성했네요. 모두 여러분 덕분이고, 제 덕도 좀 있습니다. 샤라웃 투 퇴사한 나 자신.

사진1. 인스타그램 포엠매거진 @poemmag
자, 그렇다면 왜 하필 시였을까요? 이 이야기는 공군에 입대하기 전, 20살 새내기 배동훈의 여름 방학에서 시작됩니다. 20살의 배동훈은 코엑스에 위치한 어느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가 일찍 끝나면 코엑스 내 영풍문고에서 책을 읽는 것이 소소한 취미였죠. 사실 독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시끌벅적한 코엑스에서 조용히 숨을 만한 장소가 필요했었고, 그러기엔 서점이 적합했을 뿐입니다. 서점을 거닐다가 우연히 시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의 시집 앞에 멈춰 섭니다. 이토록 무책임한 책을 봤나,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사랑을 강요하다니. 과연 얼마나 좋을까 의심하며 책을 펼친 순간―배동훈은 번개를 100번 맞은 것 같은 충격과 각성에 휩싸입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글을 살면서 읽은 적이 있었나?(사실 살면서 책을 많이 안 읽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곧장 책을 구매하고 그 길로 바로 집까지 단숨에 뛰어갔습니다. 땀에 젖은 채로 집에 도착해 책의 나머지를 다 읽고, 노트북을 켜서 나만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의 여름밤을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물안개가 낮게 깔린 삼성역의 언덕을 지나, 8차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뛰어가던 두 다리. 얼굴에 자꾸 달라붙는 습기와 날벌레들. 미칠 듯이 쿵쾅대던 심장. 그러나 지치지 않던 두근거림. 처음이지만 인생이 바뀌는 순간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

사진2. 배동훈 산문집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 표지 중
“시가 뭐가 그렇게 좋은가?” 아마 포엠매거진을 운영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시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길래 10년 동안 매일 읽고, 아예 없던 직업을 만들어서 생업으로 삼을 생각까지 할 수 있는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2025년에 출간된 제 산문집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2025, 포르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그냥 좋다”라는 상당히 힘 빠지는 답변이긴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의가 아닌 것처럼, 제가 시를 이토록 아끼는 데에도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첫 만남부터 좋았고, 10년째 읽어도 여전히 좋습니다. 이젠 숨 쉬듯 자연스레 좋아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고작 ‘그냥’이 전부라면 구태여 시간 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미안한 일이겠죠. 그래서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나를 10년째 끌어당기는 시의 대단한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시는 짧아요. 그래서 부담 없이 읽기 좋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롱폼 대신 숏폼만 보는 것처럼요. 비유가 좀 별로인가요? 하지만 저는 진지하게 시가 텍스트계의 숏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되고, 한 편만 읽고 책을 덮어도 아무 문제 없거든요. 그렇다고 감흥이 떨어지는 장르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를 읽고 난 뒤에 찾아오는 여운은 소설, 산문보다 더 클 때가 많아요. 그리고 시집은 지금 읽고 1년, 2년,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도 달라요. 시는 그대로지만, 시를 읽는 ‘나’의 삶이 변했기 때문이죠.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한 인상을 느낄 수도 있으니, 가성비가 좋은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시를 통해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을 응시하고, 나만의 언어로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지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순히 ‘너를 많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너는 내 왼쪽 가슴 아래에 온 통증이야1)’ 라고 편지를 써줄 수도 있습니다. 내 심장에 찾아온 이 통증은 너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 그것은 ‘사랑해’라는 말을 선물 상자에 포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가의 백자를 헝겊으로 깨끗이 닦듯 ‘사랑해’라는 가장 투명하고 아름다운 상태로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이죠. 이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세상을 고해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시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시를 영업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그건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는 일을 하자’입니다. 뻔하디뻔하죠. 미디어에서는 꼭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걸 하라고 강요하듯이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따라오는 장점들을 나열하면서 꼭 한번 해보시라고, 스마트폰 속 대머리 외국인 남성이 팟캐스트에서 귀에 딱지가 지도록 떠듭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저 역시 시를 언급하며 여러분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집니다’라는 말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에이, 운동한다고 어떻게 건강해져?’라며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는 말도 똑같습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너무나 당연한 수순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불행해진다던데?’라는 말로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때 불행이란 것은 단순히 ‘행복하지 않다’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여러 감정이 뒤얽힌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평생 지속되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란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 뒤에 찾아오는 불행 속에는 잔잔한 행복도 숨어있고, 반대로 행복 안에는 권태와 불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생 커피를 사랑해 온 사람이 자신의 카페를 차렸다고 해서 앞으로 영원히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행복과 불행을 외줄타기처럼 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원래 우울과 평안, 권태와 불안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불행보다 행복의 빈도가 더 잦다는 사실입니다. 살면서 수차례 저 자신에게 실험해 본 결과가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같은 일을 해도 덜 피곤하고, 밤을 새워도 지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아까워서 자의로 내일 할 일을 미리 앞당겨 할 때도 있습니다. 순수하게 나의 의지로 일을 벌이고, 더 많은 업무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압니다. 내가 주도하는 나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시는 제가 온갖 마음을 퍼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대상이었습니다. 저울처럼 마음을 재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좋아할 수 있는 것,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합니다. 시가 아니어도 됩니다. 시를 읽지 않아도 되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미래에 꼭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좋아하게 되실 겁니다. 그것들을 꾸준히 하세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만의 방법을 찾아서 어엿한 직업을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아무튼 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 그것만은 이 글에서 여러분께 강요하고 싶었습니다.
<짧은 시집 추천>
자, 다시 정신 차리고 시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대부분 이미 시를 꽤 좋아하는 분들이겠죠. 그래서 시집을 추천해야 할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시잘알’인 여러분이 보기에 괜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러나 반대로,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꽤나 포용적인 분일 것이라고 혼자 마음껏 착각해 봤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존중의 태도가 기저에 깔려있을 분이라고……. 저는 여러분을 그렇게 오해하겠습니다.

사진3.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2008, 문학과지성사)
참 맑은 시집입니다. 제목과 다르게 이토록 맑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랑의 나라가 보일 것만 같습니다. 저는 시집을 구매할 때 시집의 표지력(표지 디자인의 느낌이 좋은 정도)을 중요하게 보는데요, 이 시집은 표지력이 상당합니다. 연갈색 테두리 안을 채운 연분홍 직사각형. 제가 채도가 낮은 색을 좋아해서 그런지 표지를 보면 일단 펼쳐서 읽고 싶어요. 자꾸만 손이 가는 시집입니다.

사진4. 김이듬,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2025, 민음사)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익히 아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포엠매거진 피드에서 아주 추천했던 시집이거든요. 개인적으로 2025년에 나온 시집 중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김이듬 시인은 이제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시 도사’가 되신 것 같습니다.

사진5. 조해주, 『가벼운 선물』 (2022, 민음사)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는 것처럼, 첫 페이지부터 사랑에 빠지는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집이 근래 저에게 가장 사랑스러웠던 시집입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다가 그 자리에서 완독했고, 포엠매거진에 콘텐츠도 올렸었네요. 타인의 존재와 관계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좋아하실 겁니다.
이렇게 가볍게 세 권의 시집을 추천해 봤는데요. 세 권을 고르며 이 원고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만큼 신중히(?) 골랐으니……. 한 번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시집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버겁기도 합니다. 부지런하게 읽지 않으면 어느새 신간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거든요. 저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해서 평소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디깅해서 듣는 편인데요. 좋은 음악을 찾는 과정이나, 시를 읽는 과정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다고 좋은 작품이 저에게 찾아오지 않고, 누가 더 노력했느냐, 누가 더 많이 두 발로 뛰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성이 게으르지만 의도적으로 바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법처럼 좋은 시를 만나게 되고, 콘텐츠로 만들어 구독자분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고, 좋은 시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보게 되면 하루 종일 히죽대며 웃습니다. 그 변태 같은 즐거움으로 저는 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포엠매거진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힘이 닿는 데까지는 포엠매거진을 해야죠’라는 말을 했었는데, ‘굳이 왜 그래요. 힘들면 그만하세요.’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가끔 그 단순한 응원의 말을 떠올리며 살아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겠구나. 힘들면 또 다른 일 찾아서 해봐야지. 굳이 나를 혹사하지는 말자. 그러니 지금, 제가 아직 시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시기에 여러분을 만나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는 제 인생을 순식간에 구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바라는 순간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구원해 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은 모두 시의 장기적인 계획일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시는 저를 구원해 주고 있습니다. 야금야금,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열렬히 나를 응원하며. 저도 세상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응원하는 제 모습이 보이면 부담스러우실 테니, 300미터 떨어진 뒤에서 전봇대에 숨어 10데시벨 정도의 목소리로 조용히 혼자 외치고 있겠습니다.
‘화잇띵…★’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 킹갓 인플루언서 포엠매거진 배동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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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은 창작자뿐 아니라 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책이 독자에게 닿기까지의 과정에 머무는 사람들, 문학과 독자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
1)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2001, 창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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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사는 섬[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 구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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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났던 서랍[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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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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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카르토그라피[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빛의 카르토그라피 임택수 여행지의 호텔에 며칠 묵게 되면, 나는 꽃을 샀다. 야생의 빛 같은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은 나를 밀어내듯 납작해졌다. 유리컵이든 값싼 꽃병이든 물을 담아 꽃을 꽂아두면, 방 안에 없던 높이가 생겼다. 오늘은 미모사 한 줄기. 만지면 부서지고, 멀어지면 공기 속으로 풀어질 것 같은 꽃송이들, 흩어지기 직전의 햇빛 알갱이 같다. 모네처럼, 아버지처럼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었지만 나는 여러 장소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주소는 자주 바뀌었고, 도착한 곳의 계절은 늘 막 시작되거나 막 끝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무는 일보다, 잠시 머문 것들에 눈길을 주었다. 지나가는 빛이나, 금세 사라질 장면 쪽으로 조용히 서게 되었다. 서울프린스호텔에서 걸어서 오륙 분, 남산 초입에 모교가 있다. 언제나 열려 있는 정문, 비좁은 마당, 대극장의 파사드. 창의 배열과 입면의 분절이 만드는 리듬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스물다섯에 입학한 학교는 경기도로 이전했고, 옛 건물은 부속 캠퍼스가 되었다. 오래전, 이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담장에 바투 붙어 걷던 뒷모습 같은 것. 그리운, 스승의 방에서 흘러나오던, 주먹만 한 물방울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 같은 음악. 이해한 만큼 오해한 시간. 나는 입을 다문 채, 늘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 같다. 겨울이므로, 칼바람이 분다. 조금 더 늙은 기분이 든다. 뺨부터 천천히 지워지는 것 같다. 밤이 내려오자, 명동의 창들은 하나둘 불을 밝힌다.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 위로 맥락 없이 떠올랐다 끊기는 장면들.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이 잠시 눈앞에 머무른다. 어떤 기억은 슬픔으로 남는다. 그 기억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십 대에 일했던 을지로입구 인쇄골목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 삼십 대의 직장과 디가 살던 충무로 적산가옥. 각각의 시절이 명동 주위의 위성처럼 가물거린다. 무력한 그리움. 명동이 아니라면, 나는 더 기꺼이 미쳤을 것이다. 저만치, 남산타워가 붉게, 느리게 깜박인다. 눈이 녹은 길 위에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큰길의 경사는 그대로인데, 안쪽 골목은 말끔히 정비되었다. 지워진 자리일수록 정돈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술관은 기억보다 작게 보이고, 주변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띄게 들어섰다.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얼굴들과 생소한 언어들이 궤도를 따라 떠다닌다. 어떤 식당에서는 히잡을 쓴 단체가 치킨을 먹고 있다. 닭을 볼 때마다 나는 김수영 시인을 떠올린다. 오래 머물지 못한 빛. 어쩌면 그가 남긴 짧은 밝음이야말로 우리가 통과한 벨 에포크였는지도 모른다. 네온이 쏟아지는 밤거리는 눈이 시리다. 불 꺼진 환전소 앞이 별안간, 환해진다. 눈을 떼면 사라질 것 같은 세 사람이 빛 속에 서 있다. 담배를 문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본다. 그의 두 눈에는 이미 끝이 와 있다. 현실은 늘 늦는다. 시는 그보다 먼저 간다.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내
- 임택수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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